<창작콘테스트> 제15차 공모 당선작 및 심사평

by korean posted Feb 2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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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콘테스트> 제15차 공모 
당선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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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한국인]이 작가로서의 꿈을 이루고자 분발하는 젊은 영혼들의 순수 문학 창작의욕을 북돋기 위해 기획한 <창작콘테스트>가 제15차 당선자를 맞았다. 이번 제15차 공모 또한 이전과 비교하여 질적 수준이 크게 나아짐 바 없음에도 응모자들의 의욕을 고취하겠다는 의미로 금,은,동상의 당선작을 모두 냈으며, 작품에 대한 욕심이 동하여 동상 한 편을 더 뽑았다. 
  [월간문학 한국인]<창작콘테스트>는 작가로서의 무궁한 필력이나 완벽한 전문성을 하나하나 따져 시상하는 그런 대단한 문학상이 아니다. 오로지 전문작가가 되기만을 꿈꾸어온 예비작가들의 작품들 가운데 다소 흠결이 있더라도 치열한 작가정신과 독특하고도 개성있는 표현, 문학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따져 우열을 가릴 뿐이다. 따라서 설혹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 가능성을 보아 당선작을 뽑을 뿐임으로 문학상으로서의 권위를 논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할 것이다.
  이번 응모자 또한 모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을 터이고 나름의 재능을 발휘하였다고 보여지지만, 상당수의 작품들은 여전히 진부한 낱말들의 사용과 구태의연한 표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점이 아쉽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그간 겪어온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에 의해 산고를 겪듯, 그 누구도 쓰지 않는 자기 자신만의 문체와 어법, 시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작업이 아니겠는가.
  이번 <창작콘테스트> 제15차 공모에 참여해주신 작가 여러분들, 그리고 여러 어려운 여건에서 창작을 자신의 운명으로 택하려하는 모든 분들께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기원하며 각별한 감사와 격려의 뜻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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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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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부문





카데바
정소영

 


해부실 문이 열린다. 갇혀 있던 포르말린 냄새가 옅게 흩어진다. 흩어지는 입자들을 밟으며 백여 명의 대학생들이 들어온다. 나는 그들을 한 명 한 명 찬찬히 훑어본다. 낯익은 얼굴들이 많다. 그들은 모두 동일한 감청색 해부복을 입고 있다. 자주 빨지 않는지 해부복 군데군데에 얼룩이 더럽게 져 있다. 그들은 교수의 지시에 따라 좁게 모여든다. 그들이 모여든 곳은 나의 하반신 아래다. 몇 개의 시선들이 나의 음모로 향한다. 후끈거리는 마음이 들지만 얼굴이 발개지지는 않는다. 이미 얼굴은 반쪽이 잘려 있다. 수박처럼 두 동강 난 얼굴의 단면에서는 표정이 사라지고 없다.

날카로운 면도칼이 음모를 스쳐지나간다. 음모가 있던 자리는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맨얼굴을 드러낸다. 검은 풀들이 잘려나가며 깊은 동굴 속이 드러나는 과정을 백여 명의 학생들이 조용히 지켜본다. 털을 깎는 과정은 해부의 가장 첫 번째 단계이다. 해부 대상을 더욱 자세히 보기 위해서. 그들 중 하나가 거뭇한 음부 위로 매스를 들이댄다. 음부 속은 지방이 많아 일일이 지방들을 손으로 긁어내야 할 것이다. 피부가 두껍게 벗겨져 나간다. 방부제를 넣은 탓인지 잘려나간 부위에서 피 대신 반투명한 물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린다. 누런 지방들이 섞여 흘러내린다. 학생들 중 한 명이 붙어있는 남은 지방을 떼어낸다. 지방은 닭고기처럼 결대로 손쉽게 뜯겨져 나간다. 자궁 바로 위까지 도려내진 생식기관은 이제 나의 몸과 별개로 그들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들의 시선이 생식기관 속으로 모여든다. 나도 본 적 없는 가장 깊고 고요한 공간이 그들의 손에 의해 파헤쳐지고 연구된다. 깊은 자궁 속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텅 비었을까. 아니면 탯줄을 통해 양수를 받아먹고 자랐던 나나의 흔적들이 아직도 투명하게 남아있을까.

-이름은 나나로 하자. 예쁘잖아.

 

폰은 아직 불러오지 않은 나의 배를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스물두 살이라는 나이에 덜컥 생긴 아이였다. 성인이 되고서야 탄탄한 몸매로 아름답게 굴곡지기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임신이 된 것이었다. 이제야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임신이라니……. 나는 병원 의자에 앉아 미소 짓는 폰을 외면한 채 애꿎은 바닥만 말없이 바라보았다. 팔이 의자 위로 힘없이 떨어졌다. 폰은 늘어진 손가락에 깍지를 끼고 잘 키워보자고 웃었다. 망막에 온전히 내 모습이 비치는 폰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나는 우리의 학생시절을 떠올렸다. 지금보다 훨씬 앳된 얼굴이었던 폰의 손에는 항상 나의 가방이 들려있었다. 폰의 눈동자에는 항상 내가 들어가 있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병원 창문 밖으로 바게트를 파는 라오스 여자들의 높고 청량한 목소리가 진료실 복도까지 새어들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줄줄이 이어진 마사지 샵 간판에 차례로 불이 들어왔다. 젊은 여자들이 가게 앞에 하나 둘 의자를 내어놓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 차림새였다. 나 또한 검은색 슬립원피스를 입고 출입문에 기대어 서 골목을 지나다니는 여행자들을 바라보았다. 여행객들은 골목을 지나다 걸음을 멈추고 불 켜진 가게 앞으로 다가와 메뉴판을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인 라오스는 젊은 여자들이 일하기 좋은 나라였다. 그중에서도 내가 일하는 가게는 루앙프라방 시내의 중심가에 놓여 있었다. 여행자들이 지친 발길을 멈추기에 좋은 위치였다. 폰의 입술에서 나나라는 이름이 처음 호명된 날에도 어김없이 손님들은 찾아왔다.

-허벅지가 탄탄하네.

중년의 백인남자가 햇볕에 옅게 그을린 나의 허벅지를 슬쩍 쓰다듬었다. 마사지를 하기 위해 남자의 어깨 근처에 무릎을 꿇고 앉았을 때였다. 나는 남자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손바닥에 오일을 적당량 덜었다. 주인에 의해 보라색 암막커튼이 느리게 쳐졌다. 남자는 커튼을 조용히 바라보더니 꿇고 있는 무릎 안쪽으로 팔을 뻗었다. 고개를 숙이자 허벅지와 종아리 사이에 십만 낍이 위태롭게 끼어있었다. 나는 속옷 깊숙이 지폐를 집어넣고 남자의 어깨 사이 근육들을 주물렀다. 어깨를 타고 등과 허리로 안마가 진행될 때마다 접혔던 다리를 조금씩 폈다. 그러고 나서 딱 만 낍 정도로만 다리를 벌렸다. 백인남자의 눈길이 다리 사이에 머물렀다.

마사지가 끝나자 백인남자는 여느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흡족한 표정을 지은 채 가게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여기 마사지가 훌륭하네, 라는 말을 주인에게 던지며.

 

학생들이 조를 지어 생식기 안을 들여다본다. 그들은 말라 비틀어져 썩은 고기처럼 보이는 음부덩어리를 다각도로 관찰한다. 여학생 한 명이 눈을 찌푸리며 바라보더니 기어이 문 앞에 구역질을 한다. 해부실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나와 봐. 이런 걸 가지고 뭘.

남학생 중 한 명이 나의 생식기를 집어 든다. 이런 걸이라니. 한 생명이 자라기도 했던 공간에 이런 걸이라니. 그는 질 속에 손을 집어넣고 힘을 주어 벌린다. 힘없는 자궁이 쉽게 모습을 드러낸다.

-진짜 작다.

남학생이 자랑스럽게 자궁을 손바닥 위에 올려 보여준다. 마치 자신의 전리품인 것처럼 당당하게 미소 짓는다. 그래. 저 작은 자궁 속에서 나나가 나왔지. 그 아이의 눈과 코, 입이 저 속에서 생겨났지. 심장 속에서 또 다른 심장이 뛰었지. 그렇게 작고 위대한 공간을 고작 이런 걸이라니.

마지막 조 해부가 끝나간다. 많은 손을 거쳐서인지 조그마했던 자궁이 더 작아 보인다. 학생들이 장갑을 벗는다. 몸에서 분리되었던 자궁이 다시 하반신 속으로 들어온다. 꿰매지 않은 자궁은 이물질처럼 골반 뼈 안에 자리 잡는다. 지금까지 몸에서 분리된 장기는 자궁을 포함해서 여섯 개다. 그들은 나의 얼굴을 반으로 갈라 눈과 코 입을 보았으며, 창자를 꺼냈고, 피부를 도려냈다. 폰은 알았을까. 학생들이 우루루 몰려와 나의 뇌를 들었다가 놓고, 자궁을 집었다가 다시 집어넣으며 개복된 채로 언제까지 해부되어야 할지 모르는 시간들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죽어도 해부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적어도 마음은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나간 자리에는 해부복 하나만이 주인을 잃은 채 버려져 있다.

 

감청색 외투를 입고 가게로 들어온 것은 한국남자였다. 남자는 여느 배낭여행자들과는 달리 깔끔한 차림새였다. 신발에 흙먼지 하나 묻어있지 않았다. 나이는 서른 중반쯤 되어 보였다. 남자는 조용히 들어와 마사지만 받고 가게를 빠져 나갔다. 남자가 다녀간 자리에는 많은 금액의 팁이 놓여있었다. 마사지 이외에 어떠한 요구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남자가 떠난 자리를 정리하며 어떤 사람일지를 상상했다. 외형상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음에 틀림없었다. 남자를 생각하자 폰의 얼굴이 잇따라 떠올랐다. 남자에 반해 폰은 손이 거칠고 항상 햇볕에 검게 그을린 얼굴이었다. 폰이 웃을 때마다 치료받지 못해 생긴 충치 하나가 검게 빛났다. 그날 이후로 남자는 날마다 밤이 되면 가게를 찾아왔다.

-같이 한국으로 가지 않을래요?

남자가 어깨를 주무르던 나의 손을 잡고 입술을 열었다. 일주일 째, 아무 말 없이 마사지만 받고 가다 처음 내게 뱉은 말이었다. 나는 말없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쌍커풀 없는 눈이 느리게 깜빡였다. 남자의 눈은 검고 깊었다. 폰과는 또 다른 눈이었다. 보랏빛 커튼이 조용히 흔들렸다. 커튼 사이로 늙은 부모님과 나보다 어린 여동생 두 명의 웃음소리가 둥그렇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더 이상 누군가의 몸을 만지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그가 마사지를 마치고 나가자마자 짐을 싸 주인에게 몸이 아프다고 말했다. 일찍 퇴근을 하고 그의 숙소로 들어가 그에게만 맞는 마사지를 더 해주었다. 우리는 이제 가게에서 만나지 않아도 되었다. 그날부터 내게 ‘우리’라는 존재는 ‘나’와 ‘한국남자’로 바뀌었다. 어느새 ‘우리’라는 단어에 ‘폰’과 ‘나나’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의 방에 가기 전에 전화기 또한 가게에 놓고 나왔다. 언제 폰에게 안부 전화가 올지 몰랐다. 지금 기분은 어떤 지, 태아의 상태는 어떤 것 같은지에 대해.

매일같이 그의 침대에 누워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전해 들었다. 그의 입술에서 그려진 한국은 라오스보다 더욱 아름답고 멋있는 나라였다. 그곳은 종교를 갖는 것도 자유고, 결혼할 상대가 꼭 아니더라도 자유롭게 연애할 수 있다고 했다. 도심 가운데에 인공파도가 치는 수영장이 있다고도 얘기해주었다. 나는 그의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을 때마다 한국을 떠올리며 있는 힘껏 배에 힘을 주었다. 점점 배가 불러오고 있었다. 나나의 정체를 들켜선 안 되었다. 폰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한국이 어떤 모습일지 그의 얼굴을 통해 선명하게 그려질 뿐이었다.

밤이다. 해부실에는 나만이 남아 있다. 이제는 나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실험물이 된 몸체이다. 누군가가 창문을 닫지 않고 나갔는지 몸체 위로 덮인 천 쪼가리가 휘날린다. 개복된 몸체 안으로 바람이 가볍게 드나든다. 과연 라오스 장례풍습인 송사깐대로 화장되었어도 뼛가루 사이로 바람이 가볍게 드나들 수 있었을까. 스님들이 장례행렬에 따라 따뜻하게 유골함을 안아주고 돈과 사탕을 뿌려주었을까. 창문 바깥에서 어렴풋이 찬송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해부실 문이 열린다. 교수가 해부실 안으로 들어온다. 자주 해부실을 왔다 갔다 하며 연구를 하던 노교수이다. 교수가 내게 다가와 잘린 얼굴 단면 사이로 눈알 하나를 꺼낸다. 핏줄을 확인하고, 눈알 뒷면을 더듬으며, 풀린 홍채를 본다. 교수는 밤마다 나를 찾아와 장기 하나씩을 훑는다. 어느 날은 심장을, 또 다른 날에는 구멍 뚫린 식도를. 오늘은 눈이다. 이 눈으로 항상 웃던 폰을 보며 따라 웃었었는데. 나나의 초음파 사진을 폰과 함께 바라 본 적이 있었는데……. 늙은 교수는 정수리가 훤히 보이고, 허리는 구부정하다. 그는 자켓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을 닦아내기 시작한다. 기억들을 지워버리라는 것인가. 그가 뚫어져라 눈알 한쪽을 바라본다. 폰이 수없이 바라봤을 나의 눈이다. 내가 한국남자를 따라 비행기를 타기 전, 폰은 마지막으로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섭다.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다니. 그렇게 빠르게 생명 하나를 손으로 죽일 수 있다니.

한국 남자가 내게 한국행 티켓을 쥐어주었을 때, 나는 산부인과로 향했다.

나나는 너무나도 쉽고 빠르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스테인레스 쟁반에 담긴 나나는 잘잘하게 분해되어 있었다. 장기가 분리되고, 팔과 다리, 얼굴이 뒤섞여 점토처럼 놓여 있었다. 잘린 나나의 넓적한 뒤통수가 폰을 빼닮아 있었다. 폰의 주먹 정도만큼 자란 나나를 떨리는 손바닥 위로 옮겨 닮았다. 나나의 무게가 생각보다 무거웠다.

노교수는 오늘도 어김없이 무게를 잰다. 나의 심장과 창자 그리고 뇌의 무게를. 오늘은 눈의 무게를. 마음의 무게는 왜 재지 않는 것일까. 내 속에 부장품처럼 놓여 있는 마음의 무게. 왜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가며 해부하지 않는 것일까. 이렇게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데.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공항에 마중 나온 것은 한국남자의 아내였다. 남자에게 아내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한국에 도착하면 강남에 들려 파스타와 피자를 먹자는 남자의 말에 비행하는 다섯 시간 내내 비행기 날개를 힘 있게 바라봤을 뿐이었다. 이혼서류는 아직 법원에 넘어가지 않은 상태였다. 남자는 아내를 보더니 인천공항 근처 모텔에 나를 내려주었다. 어느새 내 손에는 한국 돈 이십만 원이 쥐어져 있었다. 남자는 중화반점에 전화를 걸어 짜장면 하나와 탕수육 하나를 주문하고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사라졌다.

모텔 방 안은 붉은 꽃이 새겨진 벽지로 뒤덮여 있었다. 나는 거기서 처음으로 짜장면과 탕수육이라는 것을 보았다. 검은 음식이라니. 어쩐지 불결한 느낌이었다. 면발을 힘겹게 집어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면발을 후룩 빨아들이자 고춧가루가 뒤섞인 자장소스가 가랑이 근처에 이리저리 검붉게 튀었다. 나는 점토처럼 묻은 자장소스를 내려다보다 바지를 벗어 화장실로 달려갔다. 비누를 물에 풀어 바지를 거칠게 빨았다. 손이 물에 점점 불었다. 지문 사이로 주름이 물렁하게 잡힐 때까지 바지 가랑이를 오랜 시간 벅벅 긁어냈다.

남자가 모텔주인의 계좌로 보내주는 돈의 액수가 점차 줄었다. 일주일에 십만 원에서 오만 원으로, 삼만 원에서 만 오천 원으로. 세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주인은 방을 빼라고 했다.

-남자 분이 번호를 바꾸셨더라고요.

주인이 더듬더듬 하는 영어에 따르면 남자가 법원에 낸 이혼서류를 다시 회수했다고 했다. 나는 얼마 없는 짐을 꾸려 모텔 밖으로 나갔다. 택시를 타고 인천 부둣가에 내렸다. 조금 걷자 방파제가 나왔다. 나는 방파제 위로 올라가 주저앉았다. 짠 소금 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언어들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바닷가에서는 파도가 세차게 일렁이고 있었다. 루앙프라방에서는 볼 수 없는 포말이 이는 파도였다. 나는 인천 바다를 바라보며 블루라군을 상상했다. 그곳은 잔잔한 물결이 유영하는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우리, 폰과 나의 놀이터였다. 햇살이 비치면 티셔츠를 벗고 나뭇가지 위에 올라가 다이빙을 하고 놀았었는데. 폰은 수영을 굉장히 잘했었는데……. 물결 사이를 헤엄치는 폰의 기다란 팔다리가 인천 바다 속에서 잠시 비쳤다. 그러나 이내 파도와 함께 휩쓸려 사라졌다.

나의 사망 절차는 간단히 이루어졌다. 누군가의 발견으로 인해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선고시간이 정해졌다. 나는 곧바로 병원 근처에 있는 대학 해부실에 옮겨졌다. 연고자가 없는 이유에서였다. 손에는 한국남자에게 받은 한국 돈 삼천 팔백 원이 쥐어져 있었다. 나나를 마지막으로 손에 만졌던 무게 정도였다. 피는 쉽게 빠졌다. 혈관에 넣은 방부제가 몸속을 빠르게 타고 돌았다.

 

바깥에서 향냄새가 스며든다. 나의 영결식이 있는 날이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영결식이 치러졌다. 고인에게 예를 다해 추모하는 영결식. 자신들이 해부하고 몸 속 곳곳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보았던 시체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추모이다. 예를 갖춘다고 차려입은 양복쟁이 백여 명의 학생들이 해부실 근처로 모여든다. 영결식에 내 사진은 없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나의 영정사진 대신 자신들의 기념사진을 찍는다. 개인 또는 단체로. 양복 입은 자신의 모습을 애인에게 전송하며 자랑스러워하겠지. 폰이 나나의 초음파 사진을 들고 와 아빠가 되었다며 자랑스러워했던 것처럼. 폰이 웃으며 내게 좋아한다고 할 때마다 나도 저렇게 사랑스럽게 웃었는데. 그들이 영결식을 하고 나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내일이면 똑같이 새로운 학생들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칼집이 그대로 나 덜렁거리는 뱃가죽과 함께. 또 다시 이국에서의 밤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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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당선작 심사평


  제15차 <창작콘테스트> 금상 역시 소설부문에 주어졌다. 금상의 수상 영예를 안은 작품은 정소영 씨의 단편소설「카데바」이다. 
  정소영 씨의 금상 당선을 축하한다.


소설가 김영찬 / 소설가 김충근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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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부문



■ 아타카마 사막
   - 최우영


모래가 붉은 낙타의 고향
밤하늘 유성의 꼬리만큼이나
길게 늘어진 발자국
유일하게 젖어있는 낙타의 눈은
마지막 남은 오아시스
그 생기 없는 바람이 부는 곳에
죽은 눈을 한 것이 황혼
살아서부터 죽을 때까지
낙타는 걸음만으로 제세상
사막의 중심에
세상에서 가장 떨어진 곳에
버려진 작은 나뭇가지만큼이나
침묵이 내린 삶
 
 
 
■ 여로
   - 최우영

 
쓸쓸한 모래바람
걸음 없는 여로에 날린다

흔적 없이 온전치 못한 길에
소리가 고여 있다

갈퀴로 긁어내는 울음소리
파고드는 그리움에

굴러다니는 돌 조각들
모두 내 가슴에 들어찼다 

세월로 깎인 그리움
날카롭기 그지 없다 

붉은 것이 흐르지 못하고 
나 역시도 고여 있다

아마도 마음에 다녀간
발자국이 없어서인가

 
 
 
■ 청춘
   - 최우영

 
파란 물감으로 하늘을 칠하지 않은 이유는
그저 푸르지만은 않아서

때로는 붉게 물든 것이 
아름다운 청춘이라

나의 젊음 요동치는 
어느 겨울날

뜨거운 심장이 
손과 발을 굳지 않게
 
눈동자에 담긴 
별이 가득한 도시에서
 
나는 그저 
하늘을 하늘이라 부르지 않길

 
 
 
■ 거울
   - 최우영

 
내가 거울을 쉬이 보지 못하는 것은
그 모습이 온전한 알몸인 까닭입니다

부끄럼 없이 봐야 하는 것에
가장 나다운 것이 서있습니다

말도 없는 것이
글도 없는 것이
시도 없는 것이

거울 앞에 선 나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바라보고 있음에
호수와 같습니다

물결이 이는 것은 아마도
눈물이 고인 까닭입니다
 
 
 
■ 비망록 
   - 최우영

 
그대는 나의 비망록
첫 페이지에 가련한 두 글자

마음이 타고 남아
잿가루로 남긴 이름

색이 바래고
종이는 너덜너덜해졌지만

변치 않는 그리움은
시간과 평행선을 달린다

방울 방울 떨어지던 눈물이
금새 빗소리처럼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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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당선작 심사평


  제15차 <창작콘테스트> 은상은 시(詩)부문 최우영 씨의「아타카마 사막」외 네 편의 시를 선정했다. 
당선자께선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시인 김호철 / 시인 정은정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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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부문





화이트 아웃
이언

 


  혓바닥이 얼얼해질 때까지 개의 뼈를 핥는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지만 쉴 틈 없이 혀를 놀린다. 모든 감각을 집중하면 어렴풋하게 짠 맛이, 혹은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지기도 한다. 얼음으로만 겨우 축인 입안에서는 지독한 구취가 난다. 입김을 뱉을 때마다 풍기는 노린내를 견디며 나는 대원들을 바라본다. 어제까지만 해도 살아 있던 윌슨은 이제 딱딱하게 얼어붙어 있다. 다들 언제 잠든 걸까. 윌슨의 옆 일찌감치 동사한 세 명의 대원들을 훑어보며 나는 살점 없는 뼈다귀를 핥는다.

  

  처음 고립되었을 때만해도 창밖으로 설산이 보였는데, 이제 보이는 건 백태 낀 혀처럼 하얀 어둠뿐이다. 애초 우리가 도달하려 했던 남극점의 중간까지도 가지 못한 채 횡단은 유보되었다. 세종기지가 있는 웨델 해에서 출발해 남극점 도달을 최종 목표로 두고 나와 각국에서 온 다섯 명의 대원들은 원정을 시작했다. 육 개월 동안 이어질 남극의 밤이 시작되기 전에 서둘러 원정을 마쳐야 했다.

  화이트 아웃이 일어난 것은 베이스캠프에 갓 도착했을 때였다. 블리자드라 불리는 강풍이 불고, 한 차례 폭설이 지나간 후로 이곳엔 화이트 아웃이 일어났다. 강설로 사방이 온통 하얘 어떤 것도 식별할 수 없었다. 백야로 인해 원정은 점점 더뎌졌다. 혹여 햇빛이라도 섞여들면 눈도 뜨기 어려울 정도였다. 어둠의 농도가 옅어졌다 짙어지는 것으로 낮과 밤을 겨우 구분하며 우리는 원정을 이어갔다. 

  곧 남극의 밤이 시작될 예정이다. 속히 복귀 하도록. 

  전기가 끊기기 전, 마지막으로 들은 교신은 이러했다. 거기 있던 누구도 장비를 챙기거나, 짐을 싸지도, 앞으로의 복귀 계획에 대해 섣불리 말하지도 않았다. 되돌아가기엔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화이트 아웃이 일어난 뒤로 기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베이스캠프의 지붕은 눈 무게로 절반쯤 내려앉아 있고, 얼음이 팽창해 갈라진 창틈으로는 눈이 밀려들어 온다. 그저 䃰’밖에 없는 곳이다. 사람도, 동물도, 언어도 사라지는 곳. 소멸만이 이어지는 불모지에서 나는 머릿속이 하얘질 때까지 뼈다귀를 핥는다. 이곳에선 모든 것이 하얗게 표백된다.  

  

  그제는 허스키를 잡아먹었다. 레토르트와 통조림마저 떨어져 남아 있던 소금을 묽게 끓여 나눠 먹은 지 사흘 째 되는 날이었다. 사흘 전, 세 명의 대원이 죽고 나와 부대장인 윌슨만이 살아 있었다. 조국에서 몇 번 개를 먹어본 적 있는 나와 달리 윌슨은 개의 눈을 보며 한참 망설였다. 동조 없이 침묵하면서도 연신 입맛을 다시는 그를 보며 나는 칼을 잡았다. 

  대장님, 차라리 소금물을 마시는 게 어떨까요. 저는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 

  개의 목에 칼을 가져다 댔을 때, 침묵하고 있던 윌슨이 말했다. 그는 신실한 성도였다. 손목에 찬 묵주를 만지작거리며 그는 잠시 코를 훌쩍였다. 

  꼬리를 흔드는 허스키의 눈동자를 나는 멀거니 바라보았다. 유일하게 오래 살아남은 개였다. 썰매개로 데려온 다른 허스키들은 일찌감치 얼어 죽었다. 잘 벼린 칼을 들고 나는 잠시 주춤대었다. 개의 푸른 눈동자에 기묘하게 일그러진 인간의 형체가 어른대고 있었다. 

  어렵지 않은 일이야. 윌슨. 내가 살던 곳에서는 다들 개를 잡아먹었거든. 그래. 다들 점심으로 개를 먹었어. 한국말로 하면 보신탕, 그러니까 스튜 같은 것. 그런 걸 먹었지.   

  손을 떨며 아무 말이나 중얼대는 나를 보며 윌슨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별 수 없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허기는 개의 그것처럼 날선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개는 짖지도 않고 죽었다. 오랫동안 썰매를 끈 개의 목을 찌르며 나는 잠시 울컥했지만, 곧 평정을 되찾았다. 이곳에서 죄책감 같은 사사로운 감정은 수신호도 없는 통신장비만큼이나 불필요했다. 

  허기가 가시자 윌슨의 얼굴에 잠시나마 혈색이 돌았다. 개의 고기는 따뜻하고, 생각 외로 부드러웠다. 미약하게나마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어 우리는 스토브에 고기를 익혔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리만이 가득한 베이스캠프 안에 어떤 훈기 같은 것이 감돌아 꽝꽝 얼어 있던 창문에 금세 김이 서렸다.  

  대장님,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뭡니까?

  개의 간을 질겅질겅 씹으며 스캇이 물었다. 

  저는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싶습니다. 기왕이면 맥주도 마시고 싶구요. 

  점퍼 안에 몸을 파묻고 호기롭게 말하는 윌슨을 보며 나는 작게 웃었다. 오랜만에 짓는 웃음이었다. 굳어 있던 안면의 근육이 모아지고, 다시 펴질 때마다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묘한 감정이었다. 대장님은요? 한참 웃던 내게 윌슨이 물었다.

  

  나는…… 개고기가 먹고 싶네. 딱딱하게 굳은 혀를 움직여 아무도 하지 않은 질문의 답을 쏟아낸다. 윌슨도, 허스키도 가물가물 사라진다. 차가운 뼈다귀를 들고 나는 몸을 달달 떤다. 어제부터 윌슨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잠을 자려는 개처럼 몸을 둥글게 만다. 서늘한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온몸을 쿡쿡 찌른다. 몸을 말고, 온 신경을 곤두세우면 얼음의 밑바닥 어디에선가 개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린다. 나는 빳빳해진 귀를 바닥에 바짝 붙인다. 조난 된 지 닷새째 되는 밤에도 비슷한 울음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그 때가지는 네 명의 대원 모두 살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막 취침 준비를 마치고 램프를 껐을 때였다. 처음에는 통신장비에서 나는 잡음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들으니 아니었다. 조그맣게 들리다 서서히 격렬해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몸을 모로 돌렸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것이 이곳저곳에서 들렸을 뿐이다. 

  눈꺼풀이 무거워질 때마다 환한 밤이 조금씩 희미해진다. 대장님, 지금 가장 하고 싶은 게 뭡니까? 눈이 감길 때마다 윌슨이 내 귀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는다. 어디선가 퀴퀴한 피비린내가 난다. 끈적한 침이 턱을 타고 흐르는 듯한 환각도 함께 느껴진다. 가장 하고 싶은 것…….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아마 죽는 게 아닐까. 이대로 이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죽는 것.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고, 이대로 죽는 것. 죽기 위해 남극점 횡단에 지원한 것을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거의 이틀간 잠을 자지 않았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제야 졸음이 온다. 마지막일까. 천천히 눈을 감는다. 


  *


  눈이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루 넘게 잔 것 같은데, 시간을 가늠할 수 없어 얼마나 잠들었던 건지 알 수 없다. 마비된 몸속 가득 눈이 쌓여 있는 느낌이 든다. 후우우 하아아. 아랫배를 부풀려 숨 쉬려는 노력을 하고나서야 비로소 등과 가슴이 부드러워진다. 폐를 억지로 부풀리며 천천히 일어나 앉는다. 숨을 들이쉬기가 괴로울 정도로 공기가 싸늘하다. 얼굴을 더듬어본다. 눈썹과 수염은 이미 딱딱하게 얼어붙어 있다. 눈썹에 붙은 얼음 알갱이들을 조심스럽게 떼어낸다. 통증과 함께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면서 불쑥 요의가 느껴진다. 참다 그대로 쏟아낸다. 뜨겁고, 축축한 것이 아랫도리를 적신다. 온기가 거의 사라진 인간의 몸에서 여전히 이렇게 뜨거운 것이 나온다는 사실에 놀란다. 

  바지에 실례를 한 건 초등학생 이후로 처음인데. 잠시 웃음 비슷한 것을 지어본다. 수치나 모멸은 오래 전 잊어버렸다. 

  창틀에 쌓인 눈을 긁어모아 갈증을 달랜 뒤, 조심조심 여러 개의 몸을 건너 뛰어 윌슨이 누운 자리로 간다. 가슴 부근부터 천천히 더듬어본다. 예상한대로 윌슨의 몸은 차갑다. 팔뚝과 허벅지는 이미 딱딱하게 굳어 있다. 윌슨을 들어 올리려다 곧 포기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체온이 떨어지는 게 느껴져 윌슨의 점퍼라도 걸치려 했지만 이대로라면 어려울 것 같다. 행여 숨겨놓은 식량이 있을까 싶어 윌슨의 점퍼를 뒤져본다. 점퍼를 뒤져 발견한 건 은으로 만든 묵주뿐이다. 차가운 묵주 알을 하나씩 넘긴다. 

  윌슨은 작고 말랐고 말이 많은 편이었다. 가끔은 저 작은 몸 어디에서 저런 에너지가 나오는 걸까, 궁금할 정도로 활기찼다. 

  대장님, 혹시 에우로파를 아십니까. 

  에우로파?

  네, 목성의 위성 말입니다.

  죽기 며칠 전, 개의 뼈에 붙은 살을 발라내다 말고 그는 문득 생각난 것처럼 말했다. 입술이 얼어 발음이 자꾸 뭉개져 들렸다.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는 위성이라고 합니다. 듣기로는 그 두꺼운 얼음 층 밑에 바다가 있다는데, 그 바다 속에 생명체가 살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만약 그 밑에 생명체가 산다면 우리가 상상하는 생명체는 아닐 겁니다. 왜냐면 거기는 빛이 없는 닫혀 있는 공간이기에.

  잠시 말라붙은 입술을 축이다 스캇은 말을 이었다. 

  저는 그 얼음바다 속에 어쩌면 눈이 없는 고래가 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 것도 보지 못한 채 외롭게 섭식만 이어가는 그런 고래 말입니다.

  그게 스캇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유난히 짧은 대화였다. 어쩌면 그 뒤로도 며칠 더 살아 있었으니 그 대화가 마지막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한 말은 떠오르는 것이 없으므로 그 말이 마지막 대화가 되어버렸다. 에우로파와 눈이 없는 고래. 이제는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이야기. 

    

  윌슨의 점퍼 안쪽으로 깊숙이 손을 넣어 몸을 더듬는다. 다행히 복부에서 미세한 온기가 느껴진다. 안도하며 그를 다시 들어올린다. 윌슨은 눈을 부릅뜬 채 죽어 있다. 몸을 굽힐 때마다 윌슨의 푸른 눈동자와 마주한다. 그 눈동자에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괴이한 형체가 비친다. 윌슨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숙인 채 점퍼를 벗긴다. 경직된 관절 때문에 한쪽 팔을 빼내는 것도 힘겹다. 숨을 몰아쉬며 팔을 빼낸다. 힘을 줄 때마다 한기가 감돌던 몸에 열이 퍼진다. 

  겨우 점퍼를 벗겨 낸다. 땀으로 축축했던 등이 다시 서늘해진다. 표면이 얼음조각으로 뒤덮인 점퍼 위에 윌슨의 방한 점퍼를 걸친다. 운신조차 어려울 만큼 갑갑하지만, 이가 딱딱 소리를 내며 저절로 부딪히던 전보다는 한결 낫다. 다시 여러 개의 머리를 건너뛰어 내가 있던 자리로 되돌아간다. 조심한다고 했는데, 누군가의 머리가 발등에 부딪힌다. 단단하고 작은 그 머리를 밟고 순식간에 넘어진다.


  꿈일까. 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로 나는 유유히 헤엄치는 고래와 마주한다. 에우로파의 두꺼운 얼음 층 밑에 산다는 눈이 없는 고래. 부력도, 중력도 미약한 그곳에서 섭식만을 이어가는 고래의 입 속으로 나는 서서히 들어간다. 

  환청인 걸까. 하얀 어둠뿐인 고래의 뱃속에서 울음소리를 듣는다.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그 소리를 따라 눈을 돌린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뜨거운 무언가가 맺히는 것만 같다.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눈 먼 고래와 비슷한 울음소리를 내며 나는 천천히 운다. 


  벽 틈으로 파고든 얼음이 팽창해 뻐근하게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윌슨과 누군지 가늠할 수도 없을 정도로 부패한 대원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드러눕는다. 점퍼에 남아 있는 윌슨의 채취가 코를 후벼 판다. 점퍼 안주머니에 빳빳한 무언가가 짚인다. 손을 깊숙이 집어넣어 꺼내본다. 좀 바래긴 했지만 사진이다. 컬러사진이겠지만, 얼마나 만졌는지 손때가 묻어 바래고 바래 마치 흑백처럼 보이는 사진이다. 테마파크 같은 곳에 윌슨의 가족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일렬로 서 있고, 그 가운데 아이를 든 채 환하게 웃는 윌슨이 있다. 언젠가 윌슨이 자신의 아이의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그를 닮아 파란 눈동자를 가진 여자 아이었다. 

  곧 세 살입니다. 두 달만 있으면 생일인데 이번 생일도 같이 보낼 순 없겠네요. 

  말하며 그는 설핏 웃었다. 내가 본 그의 얼굴 중 가장 슬픈 얼굴이었다. 

  고개를 돌려 윌슨을 바라본다. 파란 눈동자는 점점 뿌옇게 흐려지고 있다. 사진을 윌슨의 몸 위에 올려놓는다. 아이의 생일은 지났을까. 손을 꼽아 날짜를 세다 이내 포기한다. 

  

  꽤 오래 전 일이지만, 내게도 아이가 있었다. 아내도 있었다. 행복한 가족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때때로 드라이브를 했고, 주말마다 함께 교회에 갔다.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는 아내와 어린 딸을 볼 때면, 이 가지런한 세계가 흩어지지 않고 온전히 유지될 것만 같아 마음이 놓였다. 

  그날도 그랬다. 천국의 문이 가장 넓게 열린다는 크리스마스, 기상청이 생긴 이래 최대의 폭설이 내린 날이었다. 아이는 성탄 예배가 끝나고 실종되었다. 폭설이 그치고 사흘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았는데, 눈이 다 녹고 신축공사 중이던 교회 부지에서 벌거벗은 채 발견되었다. 아이의 몸 곳곳엔 시퍼런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흉부에서 허벅지까지 듬성듬성 찍힌 발자국들을 나는 천천히 쓰다듬었다. 아이의 몸은 냉동육처럼 찼다. 

  한동안 초등생 실종 살해사건으로 불리며 여기저기서 아이의 죽음에 대해 떠들어대곤 했다. 아내가 자살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괴로워만 하다 범인이 잡혔다. 교회 소년부에서 중창단을 하는 중학생 남자아이였다. 

  저 이런 말씀 드리긴 뭣 합니다만. 범인이 아직 미성년자고, 그 친구도 많이 반성하고 있답니다. 그러니 합의 생각을 해보시는 게……. 

  교회의 단상 아래 소년을 세워 둔 채 담당형사는 말했다. 중창단복을 입은 채 손톱을 깨무는 소년과 카메라로 소년을 연신 찍어대는 기자들을 멀거니 바라보다 그대로 그곳을 떠났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 전엔 생각조차 못했던 극지 횡단을 계획한 것도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눈이 먼 고래처럼 섭식만을 이어가며 극지를 차례차례 횡단할 때마다 나는 가족이라 불렀던 이들의 기억을 조금씩 지워갔다. 


  여전히 백야뿐이다. 하얗고, 하얗기만 한 세계를 올려다보며 보고 싶다, 중얼거린다. 한동안 발음하지 않아 낯설기만 한 말이다. 이제는 아무에게도 전해질수 없는 견고한 언어들이 입 안에서 둥글려지다 허공으로 서서히 흩어진다.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싶다. 되뇌다 한때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던 사람들이 생각나 울컥한다. 저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렁거린다. 외로움엔 무뎌질 만큼 단단한 인간이라 생각했는데. 

  눈이 감긴다. 허스키가 극점을 향해 썰매를 끈다. 대원들이 깃발을 꽂으며 헹가래를 한다. 얼굴이 까맣게 타버린 그들과 함께 환호한다. 성공적으로 횡단을 마치면 늘 그랬다시피 우리는 눈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는다. 눈앞이 하얗게 암전된다. 얼음 속에서 아내와 아이의 뒷모습을 본 건 착각이었을까. 그곳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함께 천천히 녹고 싶다. 눈을 감는다. 이제야 깊게 잠들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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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당선작 심사평


  제15차 <창작콘테스트> 동상 수상작엔 소설부문 이언 씨의 단편소설「화이트 아웃」이다. 
  이언 씨의 동상 당선을 축하한다.


소설가 김영찬 / 소설가 김충근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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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 가을의 감기
   - 신은숙


순전히 첫 문장때문이었다. 알베르 까뮈, 그의 '시지프의 신화'를 중학생이 구입했던 건.
 
'참으로 중대한 철학적 문제는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중학생 때 어설픈 자살시도를 한 건 초등 동창 한 명밖에 모른다. 당시에 나는, 전화로 그에게 책망하듯 이렇게 소리쳤다.

"나 죽으려고 감기물약 여러병 마셨다고!"

어렸던 그 친구가 무슨 죄라고. 나는 중학생 때 너무 진지했고 오죽하면 중 3때 담임선생님이 내게 괴테를 닮았다는 말씀까지 했었다. 이제야 그 때는 예민한 사춘기여서 그런 해프닝이 있었다고 변명하더라도, 친구는 얼마나 놀랐을까? 나는 이제 죽을 거라고 자살시도를 알린 뒤 눈을 감고 기다렸다. 그러나 배만 살살 아프다 말아버린 이 사건 뒤에 그 친구에게 화풀이라도 하기위해 알베르 까뮈를 변호인으로 내세우려고 시지프의 신화를 거들먹거리러 그를 만났다.

"너 까뮈의 시지프 신화는 아냐? 그 책 첫 문장이 뭔지는 알아?"

사실 부조리의 1음절도 이해 못한 책을 판사로 모시고 그 친구에게 자살하려는 사람을 '방치'한 '너'는 못된 사람이라는 시비를 걸려고 했다. 그런데 웬만하면 말싸움에서 지지않으려는 그 자존심 센 친구가 어째서인지 그 날 내가 하는 공격에 일절 대꾸하지 않았다. 싸움이 안되니 어쩌랴. 이 철없는 여중생은 죄없는 친구에게 쉴새없이 씩씩대다가 그냥 집에 조용히 들어가고 푹 잘 잤다. 그리고 지금 그 친구는 결혼까지 한 두 아이의 엄마이지만 여전히 내게 소중한 절친이다. 
 
세월이 그렇게나 흘렀다. 물론 그동안 무조건적인 행복만을 느끼며 살지는 못했다. 자신감 넘쳐야할 청춘의 정점이 지금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그와의 이별, 퇴직, 잇따른 사건들 속에서 삶에 회의가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동안은 입을 다물고 싶었다. 어쩜 그렇게 피해자인 것처럼만 생각하는 나 자신이 싫던지.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찾아 위로를 얻으라는 말은 더더욱 싫었다. '설득'이 전제된 말들은 따뜻한 '향기'로 느껴지지않고 역한 향수 '냄새'로 느껴졌다. 그저 알고만 있었다. 스스로 극복해야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기적인 글쓰기, 그림, 노래를 한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눈떴을 때는 정말 기분이 나아지지않았다. 전 날 밤 다른 친구와의 대화가 씁쓸해서였다. 

"야, 우리가 죽지않고 사는 게 어디냐? 우리 진짜 잘하고 있는거야. 한국이 자살률 1위잖아."

그 친구도 회사 스트레스로 무척이나 예민한 상태였고 우린 서로를 위로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화를 곱씹을수록 오히려 쓰디썼다. 

"너는 좋은 문장들을 성경처럼 적어놓고 힘들 때마다 읽는다며?그래도 요즘 극복이 안돼?"

친구가 '세이노의 가르침'이라고 인터넷에서 젊은이들에게 회자되고있는 문서를 보내줄 때 한 말이다. 그런데 어쩌랴. 이슈가 되고있다는 세이노라는 한국 어르신의 말씀부터 '니체의 잠언집'을 찾아 읽어봐도 나는 회의감의 구덩이에서 나오고싶어 발버둥만 칠 뿐이었다.
 
, 가까운 지역의 복지관에 봉사활동을 신청했다. 토요일. 백조가 맞이하는 주말은 평일과 딱히 구분되지 않는다. 좋은 점은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걸어다닌다는 것이다. 노오란 은행낙엽들과 구름없는 하늘을 감상해본다. 내가 좋아하는 컬러매칭. 디자인 초보자들에게 넌지시 공식처럼 외우라고 했던 하늘색과 노란색을 디지털이 아닌 자연의 색으로 보고 있다. 오전 11시. 다행히 약속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다.
 
아줌마들이 많으시겠지?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봉사자들은 대부분 고등학생들이었다. 봉사활동의 내용은 복지관에서 어르신들에게 무료배식하는 과정을 도와드리는 것. 생각보다 바글바글 모여든 고등학생들 틈에서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될까 걱정되어 제일 분주해보이는 여성분에게 말을 걸었다.

"봉사왔는데 어디서 도와드릴까요?"

"아, 어머님 성함이? 우선은 주방에 가셔서 도와주시겠어요? 거기 일손이 부족할 수도 있어서요."

내가 어머님? 민낯이라 확실히 나이들어 보이는구나하는 후회가 들었지만 체념하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 곳엔 고등학생 4명과 우리 어머니와 닮은 조리사님이 배식준비에 여념없었다.

"아니, 무슨 오늘따라 이렇게 봉사자가 많아? 저번주엔 너무 없어서 내 입 안이 바짝 탔는데."

봉사하러 와서는 그냥 돌아가긴 싫었다. 나는 팔을 걷어붙이며 말씀 드렸다.

"저는 설겆이할까요?"

조리사님은 남학생 둘과 나를 번갈아 보더니 고민하는 눈치였다. 이내 아줌마로 보이는 내가 더 일을 잘하겠다싶으셨는지 나를 향해 말했다.

"고무장갑 끼겠소?"

그런데 갑자기 지켜보던 다른 봉사협회 조끼를 입은 아주머니가 말리신다.

"승호야, 지원아, 너희가 설겆이 해. 배식시간 30분씩 1교대, 2교대니까 30분만 설겆이하면 이따 2교대때는 서빙으로 교체해줄께. 알았지? 고무장갑 빨리 껴. 앞치마매고."

이 후 내게 그 분이 보내는 눈빛을 보아하니, 같은 어머니의 입장에서 설겆이는 더 힘든 거니 좀 더 쉬운 일을 나눠주겠다는 입장 같았다. 그리하여 내가 맡은 일은 결국 한시간동안 어르신들이 다 드신 급식판의 잔반과 그릇을 분리하는 일. 모두가 묵묵히 열심히 일을 했다. 간간히 어머니같은 조리사님은 내게 말도 걸어주셨고.

"어이구, 이게 엊그제 바짝 탄 그릇이라 버리라고 한 건데 저기 어르신이 싹싹 닦아오셨어, 세상에, 이거 새까맣던 그릇인데, 언제 가져가셔서 씻어오셨을꼬. 이거 보소, 이거, 새거 같은 거."

정말 반짝반짝거리는 국그릇을 보여주시는데 예전에 나도 타버린 그릇을 포도쥬스로 닦아내려 애썼던 기억이 나 감탄사를 보냈다. 조리사님은 정말 우리 어머니와 많이 비슷하셨다. 키가 150cm가 되실 듯 말 듯한 작은 키에 무척이나 단단해 보이는 인상. 도와드리겠다는데도 커다란 국통을 번쩍 들어 배식터에 혼자 옮기시고, 소독된 수저와 젓가락들을 옮길 때에도 도와드리려는 몸짓을 보이면 뜨거우니 만지지말라며 손사레치셨다. 거듭되는 만류에 나는 딱 내가 맡은 일 외에 크게 도와드리지 못하는 죄송함으로 방해라도 안되려고 노력했는데 허리가 뻐근해질때쯔음, 시간은 어느새 뒷정리하는 분위기로 갔다.

"어이, 점식먹고 가. 이제 그만 일하고."

조리사님이 등을 떠미신다. 고등학생들도 대부분 식사하고 파하는 시간이었고, 비록 1시간이지만 나름 노동을 했다고 배가 출출해 어르신들 틈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사를 하며 유난히 방실방실 웃으시는 한 할머니께서 자리를 일어나시며 말씀하신다.

"아니, 이상하지. 분명 집에서 혼자 맛난 반찬 사다가 먹어도 여기 복지관에서 친구 여럿이랑 먹는 게 더 꿀맛이야. 신기해. 집에서 혼자먹는 밥은 맛이 없어."

"그렇지, 그렇지."

여기저기서 동의하는 어르신들의 대답이 나온다. 나도 속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그렇지. 혼자가 아닌 식사가 분명 더 낫지. 내가 좋아하고 편한 사람들과 먹을 때가 더 맛있고. 갑자기 너와 헤어질 때쯤 죽고 싶다고 말했던 그 순간이 떠오르는데- 말도 안되는 웃음이 씰룩 나왔다. 이따 들어갈 때 귤 삼천원어치라도 사가야겠다. 엄마랑 먹어야지. 그리고 저녁엔 오랜만에 연락 온 힙합크루사람들의 버스킹 공연을 보러가봐야겠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야말로 꽤 괜찮은 일이니까. 나는 느긋하게, 하지만 자연스럽게 가을의 감기를 어느새 극복하고 있었다. 



■ 그 여자의 명품가방
   - 신은숙


고등학생때였다. 이스트팩과 잔스포츠가 유행하던 시절, 길거리의 모든 학생들은 얇은 천 소재의 색깔만 다른 백팩을 너도나도 책가방으로 메고 다녔다. 이 글을 쓰는 '나'는 그 가방을 돈 주고 사진 않았고, 국영수 종합반 학원수강을 등록했더니 사은품으로 받아볼 수 있었다.  유행따르기 싫던 나는 소풍을 앞두고 동대문에서 오천원이란 가격대비에 튀는 디자인의 가방을 사고 보란듯이 메고 다녔다. 
 
 친구들은 그 흔하지 않은 디자인의 가방을 보고 칭찬해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매우 흡족하여 소풍때도 당당히 메고 나갔는데 그다지 친하지 않던 어느 여자애가 가방예쁘다며 다가왔다. 이어 뒤적뒤적 내 가방을 훑어보던 그녀가 물었다. 이 가방, 어디서, 얼마에 샀어? 나는 솔직히 말했다. 동대문 길거리에서 오천원에 샀다고. 그러자 그녀는 크게 웃어대며 선배언니에게 쫄래쫄래 가서 말했다. "언니, 쟤 가방 동대문서 오천원밖에 안하는 거래요" 갑자기 주위 시선이 모두 내 싸구려 가방으로 꽂혔고, 나는 그동안 좋은 물건을 보는 '안목'에 갖던 자부심이 무너지는 수치심을 느꼈다. 
 
 그래서 그 후 명품가방을 밝히게 되었느냐고? 그 때 내가 깨달은 교훈은 이거다. 물건 값이 질에 비해 낮을 수록 가격을 공개할 필요는 없다고. 때로는 신비주의가 필요하다.
 
 분수에 맞지않게 자신의 경제적 상황보다 비싼 '명품'가방을 메는 허영심 많은 여자. '된장녀'라는 단어는 한 때 그렇게 신조어로 등장했다. 불과 3년전 나는 L마트에서 십몇만원짜리  가방을 사고선 저가임에도 브랜드라는 것을 남이 볼까 열쇠고리처럼 달려있던 마크를 빼고 다녔다. 당시 '된장녀'로 손가락질 받을까봐 조심한거였다기보다는, 생애 처음으로 '비싼가방'을 구입한 '나'의 가치가 좀 올라갈 줄 알았는데 변화는 없다는 결론에서 오는 반성에서였다.
 
그리고선 결국 본연의 습성을 버리지못하고 1만원대의 백팩을 메고 다녔다. 회사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난해서가 아니라 그게 편했다. 어느날인가는 브랜드는 아니지만 큰 마음먹고 7만원대에 샀다. 한 두달썼을까? 끈을 잇던 곳이 뜯어지고 색이 금방 변색되어 그는 단명하고 말았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눈에 반해 지하철에서 비오는 날 사버렸던 코카스페니엘 강아지가 일주일도 안되어 죽음을 맞이하던 때가 떠올랐다.
 
 한편 가방은 나를 닮은 단짝이자, 파트너였다. 여지껏 살아오며 거친 가방의 수는 열개정도겠지만, 어린시절 가방은 부모님이 골라주시고 10대의 가방은 개성표현이거나 편안함으로, 20대의 가방은 비싸거나 중저가이거나였다. 그렇게 단명하고 말았던 가방에 대한 상처로 나는 만원짜리 가방을 다시 메고 다녔다. 몇 권의 책들이 담겨져도 부담없고 주머니 많이 달린 실용성을 택한 것이다. 
 
거의 넝마가 될 정도로 쓰고나서는 종각 지하철 길바닥에서 노트북이 들어갈 수 있는 큼지막한 거북이 가방으로 갈아탔다. 그런데 이번에는 보기에도 심했나보다. 나와 만나는 사람마다 가방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두번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에게서였다. 집에 들어가는 길, 지하철 대형거울앞에서 거북이 가방을 짊어진 내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나만 좋으면 되지라고 생각했던 고집이 꺾이던 순간이었다.
 
 여자에게 '명품가방'이란 무엇인가. 그 유명한 마가릿 대처의 패션에서도 가방은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다. Handbagged(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운다)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여자에게 가방은 확실히 중요한, 하찮게 여겨선 안 될 핫 아이템인 것이다. 르몽드에서는 여자의 가방을 '또 다른 자아'라고까지 언급했다. 게다가 명품이란 그 '물건'만을 사는 게 아니라 거기에 담긴 '정신'을 사는게 아닌가.
 
 나는 3만 5천원짜리 거북이 가방에서 벗어나기로했다. 거북이 가방을 멜 때마다 캠핑을 떠나는 듯한 설레임은,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서비스'할 모습이 아니었다. 나만 좋으면 되지라는 고집이 꺾였다는 건, 나 자신부터가 새롭게 '나'를 정의하고 싶었고, '지금'을 함께할 파트너가 필요함이었다. 나는 또 큰 결심을 하고 백화점에서 지금의 '가방'님을 모신다. 물론 세일가격에 사긴했으나 이제 삼십몇만원을 들고 다니게 된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는 내게 '잘했다'라고 한다. 뭘 잘했다는 건지...어느 기사를 보니 여성들에게 명품을 사는 일은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며, 남들이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니 나도 갖고 싶다라는 마음이 유래해서라고한다. '가방'이 뭐길래 여자들은 비난받아야하는 걸까. 남자들에게 '차'가 있다면 여자들에겐 '가방'이 있다. 된장녀 의미에 맞춘다면 나 또한 그럴 수 있다는 반성도 온다. 시대가 변했다. 젊은이들은 '부자될거야'보다는 '지금을 즐기자'는 주의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또 다른 의미로 명품가방은 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사람'을 만날때 '나 이런 사람이요'라고 이미지 마케팅할 수 있다. 확실히 회사사람들도 내게 가방님 예쁘다며 전보다 훨씬 낫다고해주었다. 근데 이 가방님, 나를 돋보이게 해주는건지, 내가 가방님의 장신구가 되는 건지 외출 시마다 상해라도 입으실까봐 걱정이 된다. 아직 할부금이 끝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빠른 이별이 온다면 내가 받을 상처도 염려되어서이다.
 
 가방님을 지른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않지만 더이상 '싸구려'가 어울리지 않게 된 나의 '자아'가 명품가방의 가격처럼 거품만 가득해진 건 아닌가하는 안타까움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옛날에 즐겨부르던 노래 가사 중 '내가 입으면 가짜도 진짜'라는 자부심이 더 이상 들지 않는 초라한 나와 거울앞에서 마주할 때, 최근에 만난 가방님으로부터 애써 위안을 얻으려함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잘 모시겠습니다. 가방님, 아직은 어색하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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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당선작 심사평


  제15차 <창작콘테스트> 동상에 이름을 올리게 된 작품은 신은숙 씨의 수필「가을의 감기」외 1편이다. 
  신은숙 씨의 동상 당선을 축하한다.



수필가 유미숙 / 수필가 정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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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당선자들께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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