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안경알이 깨졌다
교정을 원했던 눈은 이내 흐려졌다
깨진 안경을 콧잔등에 걸쳐놓고
가로막힌 장벽에 대해 생각했다
꽃이 하늘을 물들 오월의 봄은
깨져버린 안경알이 하늘의 별이 되어 반짝, 빛을 냈다
텅 빈 오월의 밤
어매 몰래 이불 속 숨겨두었던 눈깔사탕을 빨며
바닥에 눕고 싶어
총성소리가 하늘의 별을 걷어낸 오월의 밤
어제의 골목은 구불구불했다
깊숙이 들어가도 길은 바깥과 닿지 않았다
어매여, 오늘 밤 이불 꼭 덮고 자라, 알째?
곧 들어가 어매 옆자리에 누울기라
나를 정면으로 바라 볼 수 있던 날,
단칸방에 누워 아무도 모르게
이불 속에 숨겨둔 눈깔사탕을 빨기 시작했다
구불거리던 골목은 아직도 구불거리고
콧잔등에 올려둔 깨진 안경을 낀 나는
눈만 깜빡거렸다
아이를 찾습니다
석유병을 든 사람이 나를 향해 걸어왔어
곤봉으로 나를 때린 사람은 나를, 땅을 향해 던졌어
마주 본 우리의 얼굴은 지워져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어
저벅저벅 다가오는 군화소리에 나의 눈커풀은 파르르 떨렸어
얼굴을 간질이는 흙을 만져보려 움켜 쥔 주먹, 펴보았어
펼쳐지지 않은 손바닥, 그제야 움켜진 주먹에 대해 생각했어
잃어버린 그날의 밤,
공중을 향해 외친 우리의 목소리가 바닥으로 파편처럼 흩어졌고
지상의 두고 온 우리의 주먹
흔들리지도, 펼쳐지지도, 어두워지지도 않았어
파편처럼 흩어진 우리의 목소리는 주인을 찾아오지 못했어
내 몸을 타고 흐르는 석유의 감촉은 짜릿했어
촉촉했던 흙내음이 푸른 빛과 함께 타들어가던 순간
나의 몸이 강이 되어 흐르는 장면을 지켜보았어
지금 이 곳, 끝나지 않는 강이 흐르는 곳
오랜 시간이 흐르고
바다로 향해 쉴 새 없는 비가 내리던 날
불이 꺼진 암흑의 공간에
삼백 여개의 기울어진 태양이 떴어
세상의 모든 창문을 통해
깰 수 없는 꿈을 꾸고 있어
삼백 여개의 태양을 향해
나는
움켜진 주먹을 펴고
악수를 청해보았어
수신날짜: 5월 18일
죽은 시체들을 밟고 흰 계절이 왔다
물 밖으로 떠오른 시체 위로 벚꽃 잎이 떨어졌다
얼굴을 지우고 움켜 쥔 주먹은
꽃이 피지 않았던 봄에 만개를 이루려 했다
꽃이 피지 않았던 그날의 봄,
수많은 위조문서가 세상에 뿌려졌다
위조문서는 나를 내려다보며
앙칼진 목소리로 웃었다
위조문서는 사람들을 한 명씩 가두었다
완전한 침묵이 가득한 문장 속으로
한 줄당, 한 명씩 가두었다
사람들의 중얼거림은 문서와 문서사이에 갇혀버렸다
주춤, 걸어오던 만개한 꽃은 이내 잠식했고
나는 수직으로 찍어내리는 군화 소리에 맞춰
문서와 문서사이에 숨은 사람들을 찾아보았다
누구도,
스스로의 공기를 들이 쉴 수 없었다
5월의 부정
부정 속에서 기울어졌던 시간
총성의 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네모난 가면을 잠시 빌린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삼켰다
네모난 투표용지 속으로
사람들의 내뱉지 못 한 목소리 채워나갔다
구겨져버린 오월의 시간
길을 걷던 여고생은 다리를 하늘로 향한 채 걸었다
다섯 명의 사내는 찢어진 깃발과 함께 하늘로 날았다
네모난 가면을 잠시 빌린 그는
모든 문을 봉쇄한 채
모든 귀를 닫은 채
모든 것을 거꾸로 뒤집었다
일그러진 그날의 시간
일그러진 그들의 얼굴
물 속에서 기울어졌던 시간
고함의 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몸이 바닥으로 기울었고
나의 다리는 하늘로 향했다
일그러진 지금의 시간
일그러진 우리의 얼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가 외치는 구호소리에
소녀는 그 자리에 멈췄다
30년이 흘렀고 60년이 흘렀지만
소녀는 반쯤 감긴 눈으로
조용히 소리없는 술래를 응시 한 채 멈춰있다
어깨 위에 앉은 나비가 가슴속으로 들어와 앉았고
소녀의 뒷모습은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다
길바닥 가장 깊숙한 곳이 핀 꽃
꼭 쥔 두 손의 온기는 가시지 않았고
신발을 신지 않은 부드러운 맨발로
어둠 속에 피어있는 꽃을 따러 가보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오늘도 술래는 구호를 외치지 않았다
60년 전, 술래가 외치는 구호소리에
소녀는 그 자리에 멈췄다
반쯤 감긴 눈으로 술래의 구호소리가 들릴 때까지
소리없는 술래만을 응시한 채 멈춰앉았다
소녀의 뒷모습은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다
소녀의 어깨 위에 앉은 나비는 가슴속으로 들어와 앉았고
텅 비어있는 소녀의 옆자리, 귓불을 만져 주었다
이름: 김비아
연락처: 010-5220-6822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좋은 결실이 거둬지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