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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솔로몬

집을 나섰다

2600, 내가 바라던 이상은 하늘 아래 공존할 삶일까

쥐어진 2병의 소주에 깊게 뱉어내본다

 

발끝이 차가워지면 아직은 이른 봄이라고 속삭이듯

자연은 내게 거짓을 고한적이 없다

듣고싶지 않아서 귀를 막은적은 있겠지만

 

오늘은 라일락을 받아들였다

가볍게 안아버리고 싶었던 마음에

눌려가는 삶을 조용히 바라본다는건

생명을 잃어가는 라일락 한가닥을 바라듯

삶의 끈을 놓쳐버린 파아란 꽃잎조차

벙글게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오장육부를 타고 나를 가져간 한아름 담긴 리어카에

나는 몸을 맡기고 가만히 세상에 취해간다

타협조차 원하지 않았던

둥글게 나를 감싸버린 안대를 넘어선 이상의 벽

 

조용하게 나는 느낄 수 있다 어디에도

나를 떠나 구만리 멀어진 마음도 나는 닿을 수 있다

라일락이 수줍게 향을 줄여가면

메마른 공간이 봄비로 젖어간다



텅빈 다리

                                                                                이 솔로몬 

찬바람이 불었다

소매깃에 묻어난 진한 향기에

서슬바람줄기 잡아 그곳에 닿았나보다

 

비추지 못한 빛에 생명이 없듯이

퍼렇게 뜬 바람이 죽은 나날을 드리웠나보다

찬란한 빛을 바란 연어의 몸부림처럼

휘엉청 회색빛깔 달덩이,

 

성기어진 공간 사이에

구만리 장벽이 자리를 튼다

내 작은 노크엔 생명이 없었나보다

 

찬바람이 불었다


 



남녘

                                                                                     이 솔로몬 

아로이 새겨진 기억이 추억의 파편을 긁으며 너를 깎아오면

상처난 너에게 성긴 생명체를 바랄 수 있는가

 

작은 울림이 적히면 대지를 가로질러 닿을 정처에도 방향을 가늠할 수 없고

100리를 돌아도 모자란 걸음으로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아름다운 기억을 간직한다는건, 가장 사랑한 누군가를 기억한다는건

마냥 아름다운 일이 아니다

 

찬비에 떨어진 벚꽃에도 노오란 빛이 서린 것 처럼

너와 닮은 누군가를 기억하고 추억한다는건 무척이나 자명한,

 

동면에 빠진 개구리를 깨우는 봄비

제 풀에 지치도록 먹은 더위를 식혀주는 장맛비도

너무 힘들면 쉬어가라고

너와 내게 조심스럽게 일러주는 것일 텐데

 

뿌옇게 내려앉은 먼지가 날리면

나는 창문을 연다

 

남쪽을 향하는 철새, 파아란 창공을 바라본다

뭉쳐진 날갯죽지를 무시한 비행, 딱딱한 부리엔 찬바람이 스친다


    

 

흡출기

                                                   

                                                                             이 솔로몬 

바라보는 적색 구슬더미 빛바랜 새벽 노을

붉게 둘아가는 철근을 비춘다

젖어가는 머리를 따갑게 치면 짜증이 날 법 한 것을

어쩐지 너는 오른방향이 옳다고 고집한다

짜릿한 벽돌의 협심이 지친 너를 토닥이고

난 다시금 너를 마셔버린다

한모금 들이켜도 견고한 너를 닿을 길이 없다

 

축축하게 젖어버린 탈출구, 벗어나지 못하게 잡아버린 수분기,

너의 방향을 물어온다 다시는 벗어나지 못할 것처럼

벗어나도 너의 방향은 이곳이라고 납득 불가한 자아의 갈등을

가만히 안아주면 난 그렇게 또 너를 따라가야 하는걸까

 

꽃을 꺾으면 너는 생명을 다한다

그게 너의 몫이라면 그것조차 값지게 풀어질 수 있을테니

나는 차가운 이상을 합리화 시킨다

코끝을 가만히 적셔오던 너의 파동이 한잔에 취해버린 아득한 봄꽃내음에

너에게 닿듯이 난 조용하게 너를 취하고 싶었나보다

 

떨려오는 바람따라 파아란 수분기가 흐른다

녹이 스며든 쇳덩이, 비가 그쳐간다


비상

                                                                                                       이 솔로몬 

글을 쓴다

먼 능선에서 울린 지저귐 메아리 한번 없이

창공을 타오르는 마음을 써올린다

 

내 글엔 쫘악 뻗은 날개가 있었다고

그건 내 착각이었나보다

 

높은 거기서 세상을 담은 눈은

삶의 회한을 담을 수 있을꺼라 여겼지만

물 한모금조차 쏟아져버린 그것이 현실이었구나

 

쑥쓰러운 낯, 붉힌 사과 한 입 베어물면

달콤한 그것이 바알간 행복 가져다주지 않을까

기대도 잠시 아린 혀끝이 일갈의 반문을 알린다

 

무리를 따라 날아오르는 너의 날개짓 아래로

떨어진 종이 한 장

 

모서리 사이로 주인없는 글들이 쏟아진다


lslm@naver.com

  • profile
    은유시인 2016.04.28 14:08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좋은 결실이 거둬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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