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의 크기
정영석
오늘, 나는 마당벽을 부순다.
하늘 빛을 닮은 마당에 있는 그것은
그곳에 있기에는 뭔가 많이도
이질적인 것, 그림자도 비추지 않는.
딱히 내가 무서워서가 아니다.
마당을 나서면 그 곳에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임을 풀밭의 벌레마저
알기에
나는 나의 오래된 벗을 만나러
마당에 나선다.
그 날, 나의 오랜 벗이었던 그것은.
그 해, 허전해지리만큼
그 공간이 너무도 컸음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구멍
정영석
모든 거울에는 보이지 않지만
구멍이 있다고 한다.
어떤 이가 거울을 보았을 때
그 구멍은 가슴에 위치해 있었고
거울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가슴 한 구석이 시려온다. 마치
내가 그들로 인해 상처 받은 것들에
가슴에 구멍이 난 건 아닐까.
거울이 없는 방에 콕, 박혀 있을 때
문 밖에서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그 구멍이 오롯이 애기해준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아니 모든 것들의 어떤 이들은
나로 인해 생긴 구멍은 아니라고.
나는 안다.
그것이 선의의 거짓말이란것을.
기다림
정영석
인연과 인연의 사이
우리는 그 사이에는 많은 것이 있음을
짧게 나마 느낀다.
찰나의 전율과 같이 짜릿하지만
없어지면 허무의 나락으로 빠질것만 같은.
공감각적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사이이다.
만남과 헤어짐의 사이
우리는 그 사이에는 많은 것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것은 필수불가결한 관계이지만, 그 사이에는
인연과 인연이라는 또 다른 사이가.
헤어지면 또 만난다는 말
만나면 헤어진다는 말
인연의 끈으로 묶여있는 사이에서마저
느껴지는 이,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공허함과 공허함 사이에서 우리는
기다리고 있을지도, 다른 이의 사이에서
자정의 간이역
정영석
새벽 열두시 반
늦게까지 간이역에 둘러 앉아
소소한 얘기거리 안주삼아
소주 한 잔 걸치고, 나는
순희가 땡칠이를 좋아한다는 그 소문과
땡칠이가 오늘 철수에게 맞았다는 소식에
혹여나 내가 순희를 좋아한다는 걸
들키지는 않을까, 털어놓지는 못한 말
해가 뉘엿뉘엿 떠 갈때즈음
술에 취한 아이들이
하나 둘씩 눈을 뜨고
소소한 얘기거리따위는 모두 잊어버린 채.
어제 하지 못한 말, 쉽게 털지 못할 말을
가슴에 품은 채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리고 또 자정이 되면
어슬렁어슬렁 나타나 소주 한 잔에
소소한 얘기들로만 하루를 지세겠지.
모순적인 나에 대한 고찰
정영석
나를 보는 모든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독선적인지를 말이다.
오로지 나를 위해 살아왔고
오로지 나를 위해 행동했다.
그렇다.
나는 이기적이다.
하지만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던지, 그것은
한낱 사치에 불과할 뿐.
나를 보는 모든 것들은 나를 잘 알지 못한다.
누가 나를 보고 욕하는 것도
내가 나를 욕하는 것도
결국은 본말전도이자 모순덩어리다.
그렇지만 모순이 많은 삶이
딱히 싫은 것만도 아닌,
결국엔 '나' 밖에 없는 현실.
열심히 습작을 거듭해나가다보면
좋은 결실을 맺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