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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어둠을 원하는 이들의 기도와 소망을 배신하며 떠오른 해는 그들의 얼굴을 비춘다. 좁다한 창틀 사이의 햇빛이 광수의 얼굴을 비춘다. 그는 그 지독한 열기를 이기지 못해 눈을 뜬다. 냉장고에서 진통제를 꺼내 주사바늘에 꽂는다. 매일 진통제를 맞으며 생각한다. 만약 해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새벽이 오지 않고 영원한 어둠이 눈앞을 가린다면. 제발 그곳이 천국이기를. 어떠한 악인도 존재하지 않는 하늘 위의 쉼터이기를.

밤새 틀어놨던 텔레비전을 끈다. 누래진 런닝셔츠를 벗고 머리를 감는다. 비누를 찾을 즈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수건으로 대충 흐르는 물만 닦고 문을 연다. 손목시계를 보니 가정부가 올 시간이다. 그녀는 딱 시간에 맞춰 나타났다. 주황색 단발머리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볼을 지닌 아가씨. 해봐야 갓 스무 살을 넘었을 거처럼 보이는 이 어린 여자에게 그는 구겨진 만 원짜리 네 장을 내민다. 스스로를 가정부라 칭하는 선미는 찡그린 표정으로 돈을 받는다.

-오늘도 같은 시간에 들어올 거죠?

광수는 굽은 목을 위아래로 흔든다.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은 그는 검은색 반팔티를 입고 색이 다 바랜 청바지에 다리를 쑤셔 넣는다. 청록색 잠바를 걸치고는 잠든 동생 다예의 두 손을 꼭 잡는다.

-오빠 금방 돌아올게.

그 말을 들었는지 작은 머리가 살짝 움직인다. 선미는 자기 안방 마냥 자리를 잡고 텔레비전을 본다. 남자는 문을 닫으며 작게 중얼거린다. ‘재수 없는 년

 

광수는 기어가 녹슨 낡은 자전거에 올라탄다. 끽 끽 소리가 나는 페달을 몇 번 밟은 후에야 바퀴는 천천히 굴러간다. 원색을 알아보기 힘들 만큼 더럽혀진 5층짜리 아파트를 뒤로 한 채 속력을 높여간다. 300원 짜리 아이스크림을 빠는 뚱뚱한 소년, 폐지를 줍는 노파, 술에 취해 가로등 아래에서 잠든 아가씨를 강간하는 백수.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버스를 타고 싶다. 차라리 눈을 감을 수 있는 차에 올라타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동생의 따뜻한 손, 가정부의 차가운 손, 그의 끈적이는 손, 돈이 닿는 그 손들을 위해 버스정류장을 향할 수 없다. 자전거는 힘겹게 앙상한 광수의 몸을 지탱한 채 앞으로 나아간다.

자전거를 타고 50. 공터 옆 공장 사이에 자리한 컨테이너 박스 앞에는 의자가 하나 있다. 건장한 체격의 나이가 든 남자는 광수의 이름 옆에 출석 도장을 찍는다. 박스 옆 간이화장실 하나. 그 옆에 나열된 물통들 그리고 각목과 쇠파이프. 이곳이 그가 직장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자로 자리 잡은 소파와 그 사이의 초록색 테이블, 점검 한 번 오지 않은 정수기와 야한 동영상만 가득 깔린 컴퓨터, 그리고 명패가 놓인 책상과 등받이가 넓은 의자가 있다. 명패에는 과장 노원섭이라 적혀 있다. 갓 서른 살을 넘긴 키가 작은 건장한 남자는 자신의 명함으로 종이비행기를 잡아 날리고, 부하 직원들을 종이비행기를 잡기 위해 노력한다. 선착순 한 명, 선착순 두 명, 선착순 세 명....... 웃음이 만발하던 과장님은 표정을 굳힌 채 재떨이를 집어 던진다. 광수는 목을 꺾어 피한다. 남자는 다가와 광수의 배를 발로 찬다. 그 힘없는 발차기에 일부러 나자빠진다.

-, 광수야. 이 머저리 새끼야. 내가 마스크 똑바로 쓰고 일 하라고 했지? 눈은 나와도 하관까지는 나오면 안 된다고 내가 여러 번 말했잖아.

상사는 오늘자 지역신문을 부하직원의 얼굴에 내던진다. 신문 1, 용역업체의 시위 폭력 진압에 대한 기사에는 광수의 얼굴이 찍힌 사진이 있다. 각목을 들고 입을 벌린 채 나이든 어르신들을 때리는 모습이.

-이제 인터넷에 용역깡패라고 치면 네 이 모습이 딱 이미지 첫 번째에 뜰 걸? 너 이제 좆 된 거야. 여기 이 노인네들이 너 고소하면 끝장이라고. 알아? 네 얼굴 팔렸으니까 고소할 수 있다고!

광수는 그의 놀이에 장단을 맞춰준다. 일부러 손을 떨고 항문에 힘을 주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원섭을 쳐다본다. 신이 난 남자는 볼을 꼬집으며 쾌활하게 말한다.

-우리 광쭈, 귀여워 죽겠어~ 당연히 내가 다 힘써놨지. 이건 말이지, 원래 오늘 아침 나올 예정이었던 신문이고, 오늘 건 짜자잔~~ 봐봐. 용역에 대한 기사는 하나도 없지? 우리 회사가 어떤 회사냐. 이 일로 밥 벌어먹고 사는 회사인데 설마 실수를 하겠어?

광수는 안도하는 표정으로 일어선다. 개 마냥 고개를 숙이며 감사하다고 꼬리를 흔든다. 원섭은 종이비행기를 날린다. 광수가 잡은 그 명함 뒤에는 에이스라 적혀 있다.

-내가 배움이 좀 짧아요. 그래서 영어로는 못 적었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넌 우리 회사의 에이스야. 에이스는 말이지, 한 번에 승부를 내요. 그래서 그 존재가 소중한 거야. 그러니까 이번 일도 빨리 끝내줬으면 좋겠어. 알았지?

광수는 꿈꾸었다. 직장에 다니고 싶다고. 남들처럼 높은 고층빌딩을 향해 바쁘게 뛰고 지친 얼굴로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싶다고. 딱 남들만큼. 남들만큼만 살고 싶다고. 원시적인 이 우선이 되는 삶을 살아가지 않기를 꿈꾸고 또 꿈꾸었다. 그리고 꿈은 깨어나자 끝나 버렸다.

 

단추 하나가 튀어나왔다. 6개의 셔츠 단추 중 하나만 홀로 떨어져 나왔다. 단추가 문제가 아니다. 실이 문제인 것이다. 셔츠와 연결시켜 주는 실이 약한 것이다. 연결고리가 약해지면 대상은 소멸된다. 위태롭게 끊어지려는 그 실을 이미 끝났다 여기고 끊어버린다. 그리고 단추는 실 때문에 바닥으로 떨어진다. 광수의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차마 자신의 손으로 단추를 뜯어내고 싶지 않다.

-, 에이스! 뭐하고 있어? 넌 너무 늑대 스타일이야! 꼭 보면 혼자 딴 데 가 있더라?

동료 두 명이 그를 부른다. 한 명이 캔 음료수를 건넨다. 그들의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다. 이들의 임무는 인간사냥이다. 튀어나온 블록을 모양에 맞춰 집어넣는 게임처럼 튀어나온 사람을 집어넣는 일이다. 튀어나온 이를 정하는 건 그들이 아니다. 이 땅을 개발할 계획을 세운 정치인이, 그리고 건설사가, 건설사에 제안을 받은 회사가, 그리고 지역이 개발되기를 바라는 땅 주인들과 동네 주민들이 결정한다. 그들은 그저 블록이 된 사람들을 잡아 모양을 맞추면 그만이다. 광수는 튀어나온 단추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린다. ‘누가 정한 걸까? 단추도 사람도 누가 고통 받을 존재를 정하는 것일까?’

배추동 주현마을은 구불구불한 골목으로 가득하다. 집과 집이 미로를 이루고 있고, 계단과 내리막길이 연관성 없이 이어져 있다. 어디가 마을의 시작이고 끝인지 주민들도 알 수 없다. 그저 여기가 시작이고 끝이라는 시청 공무원의 말에 따라 위치를 가늠할 뿐이다. 이런 마을의 지형적인 어려움은 경찰들에게 좋은 변명거리가 되어줬다. 경찰들은 주민들의 신고에 같은 답을 반복했다. 출동은 했는데 마을이 너무 복잡해서 길을 잃어버렸다고. 여기에 많은 인력을 동원하기에는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며 항의하는 음성에 답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자기들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 더 이상 피해를 보기 싫으면 합의를 봐라. 그 정도 금액이면 최대한 많이 쳐준 거다. 가끔 정의감에 찬 기자들이 마을에 들어오지만 그들이 찍은 영상과 사진은 공개되지 않는다. 아니, 공개되었다 하더라도 잠시 화제가 되고 끝이 날 뿐이다.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 열정을 이어갈 힘이 없다. 광수는 많이 봐왔다. 이런 식의 싸움을. 태생부터 나약한 인간들이 불공평한 처지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나 무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어린아이에게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어른을 탓해야 하는데 힘없는 아이를 욕한다. 그래서 당하는 거라고. 멀리서 소리가 들린다.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그는 가지 않는다. 인간사냥은 혼자서도 충분하다. 늑대는 무리지어 생활한다. 무리에서 멀어지는 건 강한 늑대가 아니다. 약한 늑대는 무리에 속할 수 없다.

 

청국장 집이 하나 있었다. 폐주유소 옆에 노파가 운영하는 음식점이. 재개발이 들어가면서 대부분의 건물은 싼값에 계약을 끝냈지만 3대째 가게를 이어오고 있다는 노파는 나갈 생각이 없었다. 굳이 치우지 않아도 상관없는 건물이었지만 재개발을 담당하는 업체는 노파가 보인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며 꼭 그 집을 처분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광수는 동료들과 몇 번 그 집에 간 적이 있었다. 당연히 서빙을 하는 그 집 첫째 손녀의 얼굴도 알았다. 원섭이 그 애를 죽이거나 반병신으로 만들라고 했을 때, 광수는 망설였다. 조그마한 유원지의 어린이 수영장에서 수영복을 입고 동생과 노는 그 아이의 머리를 벽돌로 내리 찍었다. 한 번, 두 번, 그가 두 번 내리칠 때까지 아무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그저 두려움에 떤 채 방관만 할 뿐이었다. 세 번째, 벽돌로 내리 찍었을 때 동생이 그를 밀쳤다. 피를 흘리는 언니를 껴안고 여자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광수는 힘을 주지 않았다. 아니, 줄 수 없었다. 소녀는 죽지도, 병신이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청국장 집은 문을 닫았다. 겁에 질린 노파는 서둘러 계약을 끝낸 채 사라졌다. 그날 이후 그는 안정제를 먹었다. 가슴이 뛰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시간이 금이라면 잠은 다이아몬드다. 잠시라도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귀한 보물이다. 광수는 발걸음을 멈췄다. 한 소녀가 깡통에 담배꽁초를 올려놓고 민들레 몇 송이를 따서 돌 위에 올려놓았다. 벽에는 사진이 붙어있다. 그 광경이 마치 장례식장 같다. 두 손을 모은 소녀는 기도를 드린다.

-하느님, 하늘나라에서 우리 오빠 잘 보살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주님.

광수는 그 광경을 흥미롭게 바라본다. 기도를 마친 소녀는 고개를 돌린다. 눈이 마주친 광수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여자 아이는 담배에 불을 붙여준다.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인 남자는 깡통에 담배를 넣는다. 향을 피우듯이. 그리고 묵념한다. 사진 속 남자가 주님을 만났기를 바라면서.

-제 이름은 예빈이에요. 아저씨는 누구에요? 아저씨 용역업체 직원이죠?

광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왜 절 잡아가지 않아요? 용역업체 직원들, 우리 마을 사람들 다 잡아가잖아요? 우리 오빠도 잡혀갔는걸요?

알고 있다. 사진 속 남자를 잡아간 건 광수니까. 이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모르는 게 분명하다. 누가 그녀의 오빠를 죽였는지. 예빈이는 손을 뻗는다. 그 자그마한 두 손이 광수의 뺨을 어루만져준다.

-아저씨 왜 울어요? 아저씨도 누가 소중한 사람을 잡아갔어요?

 

*

 

문 앞에 설 때면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선미는 고함을 지르고 다예는 울부짖는다. 광수는 바로 손잡이를 돌리지 않는다. 나방이 돌아다니는 불빛 아래에서 화를 삭이고 또 삭인다. 현관 앞으로 다예는 기어온다. 광수의 바지를 잡고 올라와 오빠의 품으로 안긴다. 밥그릇을 들고 있던 가정부는 화를 낸다.

-매번 느끼지만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돌보는 거 같네요. 오늘은 조금 늦었으니까 내일 추가수당 주세요. 그냥 넘어갈 생각 말고요.

나름 비빔밥이라고 만든 개밥과 같은 것을 동생에게 먹인다. 다예는 절반을 흘리며 힘겹게 밥을 삼킨다. 그녀의 다리에는 푸른 멍이 가득하다. 오빠는 귀에 대고 속삭인다.

-조금만 참아. 이 더러운 집에서, 저 개 같은 가정부한테서 조만간 탈출시켜 줄 테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견뎌줘, 다예야.

동생은 해맑게 웃는다. 누런 이를 드러내며 광수의 손을 잡는다. 따스한 맥박이 전해진다. 그가 살아있음을 그리고 살아가야 될 이유는 오직 다예다. 이 고동이 모든 아픔과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어준다.

더러운 아파트 5층에서 광수는 신음한다.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 턱걸이를 한다. 살과 근육이 고통에 신음을 해도 팔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어린 시절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약하게 태어났다. 그들에게는 자신을 지킬 무기가 없다. 그래서 도구를 이용한다. 신이 준 가장 큰 선물인 두뇌를 이용해 약점을 가리고 상대의 장점을 무력화시킨다. 인간이 지배하게 된 자연은 인간끼리의 싸움을 가져왔다. 절망과 두려움만이 지배하는 싸움 속에서 그가 가진 무기는 오직 육체뿐이다. 더 강하게 몸을 단련시키는 방법만이 나약한 자신이 누군가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아버지는 입이 닳도록 말했을 것이다. 몸이라도 건강해야 한다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몸이 건강할 수밖에 없다고. 아버지는 건강을 잃었지만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저 생명이 다할 때까지 돈을 벌고 또 벌었다. 그리고 이 아파트를 샀다. 보잘 것 없는 둥지라도 물려주기 위해 그는 모든 것을 바쳤다.

 

경찰은 일렬로 방패를 만든다. 주현마을의 입구와 출구를 봉쇄하고 용역깡패들을 투입시킨다. 광수는 쇠파이프를 쥐고 있다. 이 흉기에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 가끔 아주 가끔 사람이 죽지만 이를 아는 경우는 극소수다. 시위현장에서 서로 몸이 얽히다 보면 누가 누구를 때렸는지 잊어버리고 쌍방의 기억은 엇갈리고 엇갈려 진실을 왜곡한다. 죽음은 슬픈 일이라 치부되지만 이를 이용하지 말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매일 발행되는 신문의 수많은 이름들처럼 기억 속에 묻혀버린다. 시위대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처럼 젊은 남자들만 모여 있지 않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부터 철모르는 어린아이까지. 택시기사부터 노점상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해 연대하고 저항한다. 그들을 와해시킬 수 있는 건 두 가지 뿐이다. 첫 번째는 돈, 두 번째는 폭력이다. 광수를 필두로 마스크와 모자를 쓴 용역업체 직원들은 시위대에게 달려든다. 돌과 벽돌이 날아오고 몇 명은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들이 도달할 즈음 시위대는 뿔뿔이 흩어진다.

-이래서 포크레인으로 미리 밀어버리자니까. 이것들 숨으면 진짜 답이 없다고요.

누군가 불만을 터뜨린다.

-그래서 어떡해? 따라가, 아니면 다시 모일 때까지 빠져 있을까?

누군가의 말에 벽돌에 맞아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 이가 대답한다.

-뭘 이대로 빠져? 빨리 쫓아야지. 다 잡아서 죽여야 돼, 아주.

그들은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흩어진다. 광수도 그들 무리 중 하나에 속해 골목을 질주한다. 시위대는 시민회관으로 도망친다. 볼품없는 2층짜리 건물 안으로 숨 가쁘게 몸을 움직인다. 용역들은 그들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정신없이 계단을 올라 목표물을 쫓는다. 절뚝거리는 노인들이 사정권에 들자 각목을 휘두른다.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돌이 머리를 내리친다. 쓰러진 남자를 따라 뒤따르던 남자들이 넘어진다. 죽창을 든 젊은이들이 튀어나와 계단을 오르던 직원들을 찌른다. 함정이란 걸 깨달은 용역들은 아래층으로 도망친다. 출입문 앞에는 여자와 노인들이 죽창과 벽돌을 들고 서 있다. 뒤이어 나타난 남자들의 손에는 쇠파이프가 들려 있다. 계단을 내려오는 이들을 향해 2층에서는 돌을 던진다. 사방에서 피가 튀고 비명이 난무한다. 광수는 겁에 질린 채 돌을 피하기 바쁘다.

-이봐, 에이스! 어떻게 좀 해 봐!

상처를 입은 동료들은 애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에이스가 겁에 질렸다는 사실을 모른 채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 도망치지 못하면, 여기서 나가지 못하면 우리는 다 죽을 것이다. 그러면 다예는 혼자 남을 것이다.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그 아이는 혼자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는 질주한다. 동료들을 버려둔 채 혼자 달려간다. 신호로 착각한 동료들은 그의 뒤를 따른다. 그들은 하나의 뭉텅이가 되어 시위대를 들이박는다. 살점이 떨어지고 핏줄이 끊어진다. 광수는 용역들의 머리를 짓밟고 올라서 남자들을 뛰어넘고 여자들을 넘어뜨린다. 그리고 노인들을 밀쳐내고 창문을 부순다. 그는 달린다. 쇠파이프를 내던진 채 살기 위해 땅을 밟고 또 밟는다. 마스크고 뭐고 다 집어던진 채 뜀박질을 한다. 소녀가 보인다. 예빈이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집을 가리킨다. 그는 소녀와 함께 그 집에 숨는다. 그녀는 남자의 등을 토닥인다.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나 같은 어린아이도 견딜 수 있는 일이니까 아저씨도 견딜 수 있어요.

그는 듣는다. 더 많은 직원들이 달려오는 소리를. 그들과 시위대가 사투를 벌이는 끔찍한 비명소리를. 그리고 경찰들의 총소리. 사방으로 흩어지는 발소리. 열을 맞춰 움직이는 발소리. 피에 젖어 축축한 발소리. 처량하게 끌려가는 발소리. 그리고 모든 것이 사라진 침묵의 소리를.

 

구불구불한 길을 비추던 가로등은 모두 부셔졌다. 용역업체는 사람들의 눈을 빼앗기 위해 가장 먼저 가로등을 다 부수었다. 다음으로 전기를 끊었다. 그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가스를 끊고 수도를 끊었다. 그럼에도 시위는 한 달이 넘게 지속되고 있다. 살기 위해서. 그들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빛을 찾을 때까지 광수는 조그마한 핸드폰 불빛에 의존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가정부는 이미 퇴근했겠지? 혼자 남은 다예가 어둠에 두려워하고 있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선미는 불을 켜두지 않았을 것이다. TV나 보다가 시간이 다 되면 자기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밖에서 본 집 안은 환하다. 안도의 숨을 쉰 광수는 5층 계단을 올라간다. 그 소녀가 숨겨주지 않았다면, 예빈이가 자신을 친척 오빠라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는 죽었을 것이다. 피가 튄 옷을 벗지 않았다면, 마스크와 모자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의 몸에는 죽창이 박혔을 것이다. 주현마을의 시위는 죽고 죽이는 전쟁이 되어버렸다. 그 시작은 원섭에게 있다. 원섭이 그 말만 안했더라면. 겁을 주기 위해 한 녀석 죽이고 시작하자는 말만 하지 않았더라면......... 집안에서는 소리가 들린다. 시끄러운 음악소리, 남녀의 웃음소리, 그리고 다예의 울음소리. 문을 열자 현관에는 다예가 누워있다. 입에서는 침이 흐르고 옷은 그녀가 싼 오줌으로 범벅이 되었다.

-뭐야?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잖아? 미안해요. 아저씨 늦게 와서 죽은 줄 알고 말했거든요. 네 오빠 죽었다고.

광수는 다예를 안아 침대 위에 눕힌다. 동생은 힘겹게 말한다.

-........ 오빠........ 오빠.........

선미와 남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비웃는다. 한심하다, 애잔하다, 처량하다. 마음대로 정의를 내리고 조소에 찬 표정으로 광수를 쳐다본다.

-일은 오늘까지인가? , 일당도 받았겠다, 우린 그만 가 볼게요. 여태까지 힘들었어요. 당신네 장애인 동생 돌보느라.

광수의 두 손이 선미의 목을 붙잡는다. 세 명의 남자는 광수에게 달려든다. 그는 침착하게 남자들을 하나씩 때려눕힌다. 팔을 잡아 꺾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다. 팔꿈치로 이를 내리쳐 부러뜨리고 무릎으로 코를 찍어버린다. 겁에 질린 선미는 도망치려고 하나 억센 손에 머리카락이 붙잡힌다. 광수의 주먹이 그녀의 얼굴을 강타한다. 코가 부러지고 이빨이 빠진다. 선미는 주저앉아 피를 토해낸다. 가까스로 의식을 지탱한 세 남자가 선미를 데리고 도망친다. 광수는 동생을 욕실로 데려간다. 녹물이 흐른다. 동생을 깨끗하게 씻기고 싶은데 맑은 물은 나오지 않는다. 그는 주저앉는다. 욕조에 기대 눈을 감은 다예를 보고 흐느낀다.

-미안해........ 정말, 정말 미안해.........

 

*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새로운 남자와 그들 남매를 쫓아내고 새로운 삶을 꾸리려고 했지만 광수는 끝까지 저항했다. 어머니는 그를 회유했다. 동생을 버리고 우리 셋이 함께 살자고. 어차피 다예는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광수는 거절했다. 그날 밤 자신과 다예를 내보내려는 남자와 그의 동료들과 싸웠다. 식칼을 든 채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두 사람을 내버려둔 채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섰다. 광수는 고등학교를 그만두었다. 국가에서 지원금을 받았지만 그 돈으로는 다예의 치료도, 먹고 살기도 빠듯했다. 먼 친척들은 다예를 시설로 보내자고 했다. 하지만 계약서에 적힌 한 줄, ‘사고나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에 그의 마음은 돌아섰다. 친척들은 아빠를 닮아 고집이 세다며 하나 둘 그의 곁을 떠났다. 그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새벽이 오는 것이 두려워진 것이. 해가 떠오른다는 사실이 광수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원섭은 새로 산 골프채를 자랑한다. 큰 맘 먹고 할부로 지른 것이라며 컨테이너 안에서 스윙을 연발한다. 그 옆에서 일렬로 늘어선 직원들은 억지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들은 모두 팔이나 배, 머리에 부상을 당해 붕대를 감고 있다.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광수만이 소파에 앉아 점점 다가오는 원섭을 바라본다.

-그런데 말이지, 이 골프채, 환불해야 될 거 같아. 이거 잘못하면 회사에서 잘리게 생겼거든. 난 말이지, 빨리 처리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우리 아가들은 내 기대를 충족시킬 생각이 없나 봐. 안 그래, 광수야?

과장은 골프채를 캐디백에 집어넣는다. 프림을 가득 넣은 커피를 들이키더니 일부러 시선을 끌게 다리를 크게 꼰다.

-꽝수! 무서웠니? 무서워서 그런 거야? ? 뭐가 무서워? 죽을 까봐? 죽을까봐 그런 거야? 어차피 좀만 버티면 경찰 친구들이 구하러 갈 텐데 뭐가 그리 무서웠어? 나 참, 진짜 어이가 없네.

광수는 동료들을 쳐다본다. 그들의 얼굴에는 환멸과 염증이 차 있다. 도망치는 에이스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2명이 죽었다고 한다. 용역업체 직원만 두 명이. 언제나 그랬듯 책임은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고 회사는 엄청난 보험금을 내주게 되었다고 한다.

-광수야, 왜 그래? 갑자기 왜 병신이 되었어? 너 에이스야, 여기 에이스라고! 가장 손에 피를 많이 묻혀본 녀석이 자기 피날 거 두려워서 피한다고 하면 누가 이해해주겠어, ? 무슨 일이 있어도 네가 얘들을 데리고 나와야 했을 거 아냐?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손에 묻은 피를 당연하게 여기고 피를 흘리는 게 의무가 되어버린 이 일은 대체 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 왜 이곳에서는 법도, 질서도, 관용도, 용서도 사라지는 것일까? 나가지 않으려는 그들의 잘못일까, 아니면 내쫓으려는 우리의 잘못일까, 대체 정의는 누구의 편인 걸까?

-마음 단단히 먹어라. 쟤들은 진짜 죽기 살기로 저러는 거다. 저기서 나가면 갈 곳이 없으니까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드는 거라고. 너도 그래야 해. 죽을 각오를 해야 쟤들을 이길 수 있는 거야. 노인이고 애들이고 병신들이니까 쉬워 보이지? 아니냐. 저런 애들이 제일 무서워. 병신들이 뭉치면 가장 무섭다고.

-우리는 입니까?

광수의 물음에 원섭은 입을 다문다. 잠시 침묵이 돌고 상사는 웃음을 터뜨린다. 그를 따라 부하사원들도 폭소한다. 몇몇은 고통에 배를 움켜쥐고 어설픈 웃음을 내뱉는다.

-우리 광수 요즘 철학책 읽니? 그런 책은 말이지, 다 탁상공론이다. 사회생활이라고는 해본 적 없는 고귀하게 자란 철학자님들께서 씹기 좋게 만든 빛 좋은 개살구란 말이야.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는 말이지 도 없어. 내 편이 선이고 날 방해하는 녀석들이 악이야. 그러니까 광수야, 네 편은 우리고 선은 우리야.

아버지는 말했다. 너를 위해 살라고. 세상에 네 편은 없기 때문에 네가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만나면 되잖아요. 함께 뭉치는 게 혼자 사는 것보다 더 힘이 되고 강해질 수 있어서 좋잖아요. 안 그래요?

아버지는 아들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쉽지 않더라. 약한 사람은 겁이 많거든. 뭉쳐있으면 다 같이 죽는다고 생각해서 혼자 살기 위해 도망친단다. 너도 알게 될 게다. 네가 어른이 되면........ 다 알게 될 게다.

 

*

 

사건 이후 회사는 더 조심스럽게 마을에 접근했다. 지형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했고 섣부르게 시위대를 공격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 동안 직원들은 마을에 대해 알아갔다. 그리고 모든 위치가 파악된 후 일을 진행했다. 더 철저하고 잔인하게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던 주현마을 사람들은 강한 주먹질에 나가 떨어졌다. 그들은 아주 적은 금액으로 마을을 떠났다. 광수는 새 가정부를 구했다. 키가 작고 뚱뚱한 단발머리를 한 아가씨는 그가 말하는 내내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그는 침대 아래에서 상자를 꺼낸다. 그 안에는 돈이 들어있다. 한 평생 그가 모은 돈. 피를 흘리고 담을 닦고 눈물에 젖어 모은 돈의 액수는 이사를 가기에 턱 없이 부족하다. 가정부가 원하는 금액을 맞춰주면 이 아파트를 떠나는 날은 늦춰진다. 하지만 다예를 시설에 맞길 수도, 혼자 둘 수도 없다. 어머니는 싫었던 것이다. 아버지의 유전자가 준 더러운 가난의 씨앗을 품기를 거부했다. 만약 그때 어머니를 따라 저 현관문을 나섰다면 이 지독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광수는 구부러진 골목으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한동안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경력 어린 애들을 보조하고 가르치고 물건을 정리하거나 화장실을 청소했다. 며칠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것이 징계라는 것을. 기간이 지나고 다시 현장에 투입되었을 때는 이미 일이 거의 끝난 후였다. 벽에는 사진이 걸려있다. 한 남자의 사진이. 그는 혼자 힘으로 대학에 입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생의 학비를 대던 남자였다. 마을 주민들은 고학력자인 그에게 의존했다. 그는 전장에서 너무 홀로 앞서있었다. 법을 내세웠고 인터넷을 이용했다. 그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경멸했다. 그 남자를 처리하는 건 광수의 몫이었다. 이 골목에서 그는 쇠파이프로 남자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리고 돌을 들어 내리 찍고 또 찍었다. 얼굴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남자를 부수었다. 닭 한 마리가 다가온다. 닭은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모이 마냥 쪼아 먹는다. 새벽이 올 때마다 닭은 운다. 내일이 온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이 녀석의 목을 비틀어버리면 아침은 오지 않는 걸까?

-어이, 거기 뭐해?

오토바이 한 대가 광수 앞에 멈춘다. 헬멧을 벗은 남자는 오랜 시간 같이 일해 온 동료다.

-이거, 이거, 에이스라고 농땡이는 곤란하다고. , 이제는 구 에이스인가? 다 같이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혼자만 이러면 곤란하지.

그는 광수를 오토바이 쪽으로 민다. 오토바이 뒤에는 끈이 묶여 있다. 그 끈의 끝에는 피투성이가 된 소녀가 묶여 있다.

-겨우 동네 한 바퀴 돌았을 뿐인데 벌써 초죽음이 되었지 뭐야. 이 년 이제 보니 그 새끼 동생이더라고. 제 오빠 이야기를 하면서 약 올렸더니만 달려들더래. 그래서 교육 좀 시키고자 같이 놀아줬지. 어때? 너도 해 볼래?

분노의 감정이 들끓는다. 피부가 다 찢어진 소녀의 모습에 그는 이를 악문다. 두 주먹이 화를 이기지 못해 움츠려들고 손톱은 살갗 아래를 파고든다. 반대편 길에서 원섭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피우던 담배를 소녀의 몸에 지진다. 벗겨진 살 아래로 파고든 불에 지독하게 타는 냄새가 올라온다. 소녀가 지르는 비명에 그는 실실거린다.

-아직 안 죽었네? 이 년이 말이지, 오늘 춥다고 자기 오빠 사진 가지러 왔다 우리한테 딱! 걸렸지 뭐야. 우리가 좀 놀려대니까 얼마나 성질을 내던지. 그래서 이렇게 해버렸어. 어차피 고아인데 잘됐지, .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얘한테도 좋을 걸? , 에이스. 마지막 처리는 너한테 맞길 게. 최대한 안 아프게 한 번에 끊어버려. 알았지?

굳게 다문 주먹이 남자를 내리친다. 오토바이 헬멧을 들어 그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친다. 남자의 깨진 머리 사이로 피가 튀어 올라 원섭의 얼굴에 튄다. 당황한 원섭은 뒷걸음질 친다.

-진정해, 이봐, 진정하라고. 대체 왜 이러는 거야, ?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두 손은 목을 움켜쥔다. 요동치는 맥박을 천천히 짓누른다. 저항하는 생명의 기염을 무시하듯 힘은 세게 더 세게 목을 비틀어버린다.

 

밝게 피어오른 달은 감추고 싶은 어둠을 비춘다. 좁은 방 안에서 자리를 빼앗긴 다예는 울부짖는다. 침대 위는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예빈이가 있다. 광수는 그녀의 팔에 진통제를 투약하고 몸에 소주를 붓는다. 그녀는 아픔을 견디지 못해 소리를 지른다. 이에 답하듯 다예도 악을 쓴다. 예빈이는 손짓한다. 광수는 그녀의 입에 귀를 가져다댄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움직이던 예빈은 그의 귀를 깨문다. 있는 힘껏 살과 근육과 연골을 잘라버린다.

-개새끼, 이 쓰레기 새끼야! 다 들었어! 녀석들한테 다 들었단 말이야! 네가 죽였다며. 네놈이 우리 오빠를 죽였다며? , 왜 오빠를 죽였어? 왜 죽였냐고, !

절규를 마친 소녀는 소명을 다한 거처럼 숨을 헐떡인다. 상처가 더 벌어져 붕대를 새빨갛게 물들인다. 죽여........ 제발 죽여줘.........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입모양이 말하고 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광수는 베개를 들어 소녀의 얼굴을 짓누른다. 떨리던 소녀의 몸은 이내 평안을 찾는다. 다예는 비명을 지른다. 온몸을 뒤틀어 대며 다가오는 오빠에게 저항한다. 동생의 팔에 진정제를 주사한다. 광수는 그 여린 몸뚱이를 꼭 껴안는다.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다예는 잠에 빠진다.

-힘들었지?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제 더 이상 고통은 없을 거야.

다예는 속삭였다. 그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마지막으로 오빠에게 말을 남겼다. 광수는 동생을 안고 베란다를 향한다. 이런 결말일 줄 알았다면 진작 끝을 낼 걸. 동생에게 너무 많은 희망과 생명을 부여한 자신을 원망하며 광수는 아스팔트 아래로 그녀를 던진다. 달님은 편안하게 영원한 잠에 빠진 소녀의 모습을 비춘다. 광수는 난간을 붙잡는다. 발을 땅을 향해 둔 채 턱걸이를 시작한다. 팔에 힘을 더하면 더할수록 몸은 점점 뜨거워진다. 그는 난간에서 손을 뗀다. 그의 팔은 4층의 난간을 잡는다. 그리고 다시 턱걸이를 시작한다. 아버지는 알았던 것이다. 쳇바퀴 속의 삶을. 그는 조금이라도 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 자신을 죽였던 것이다. 임종을 앞둔 밤, 아버지는 그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어떻게든 살라고. 집이 있으니 어떻게든 살아남으라고. 그는 손을 떼고 3층의 난간을 잡는다. 어머니는 탈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노력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는 단호하게 말하였다. 살아남기 위한 노력. 달은 모습을 감춰가고 어둠 속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 사이로 그림자가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원섭에게 물은 적이 있다. 우리는 악이냐고. 모두가 자리를 비운 뒤 원섭은 이 말을 덧붙였다. 나 혼자 바르게 산다고 세상이 바르게 돌아가지 않더라. 세상이 바뀌어야지. 그는 손을 뗀다. 2. 발 아래로 그들의 모습이 보인다. 각목과 쇠파이프로 무장한 동료들이. 죽기 전 예빈이의 오빠는 말했다. 마지막이 이럴 줄 알았다고. 회한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 거야!

그는 1층의 난간으로 내려온다. 태양은 반쯤 감은 눈으로 광수를 쳐다본다. 사라지는 어둠 속에서 광수는 속삭인다. 그때 닭의 목을 비틀어 버렸어야 했다고. 거친 수탉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의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새벽은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린다.

  • profile
    korean 2019.03.02 20:21
    열심히 쓰셨습니다.
    보다 더 열심히 정진하신다면 좋은 작품을 쓰실 수 있을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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