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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과 참회의 상관관계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는다.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다. 난 그저 성격대로 살아왔을 뿐인데. 모두 날 손가락질하고 싫어한다. 왜? 어째서? 아, 또 짜증이 난다. 하필이면 이런 좆같은 세상에 태어날 건 뭐람.

 다른 이들은 내 성격을 불같다고 표현한다. 조금은 인정한다. 날 만만하게 보면 어떻게든 복수를 해야 속 시원하고, 할 말 못하고 혼자 삭히는 사람들이 너무 한심하다.

 안타깝게도 사회의 대다수는 그런 한심한 부류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주로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따위의 별 거지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나는 그런 짓거리를 이해할 수 없다.

 사랑을 꼭 말로 드러내야 하나? 실수했을 때에도 사과를 해야 돼? 남이 마땅히 해야 할 일에서 감사를 느낀다고? 도덕책 같은 병신소리 하고 앉았네.

 햇살이 맑고 바람이 선선한 날인데도 이렇게 화가 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스물아홉 나이에 첫 취직한 직장에서, 잔소리만 연발로 갈겨대는 상사를 만나서 그만……성질을 못 이기고 마시던 커피를 그의 몸에 뿌렸기 때문이다. 순도 백 퍼센트의 해고사유다.

 사실 난 그와 첫 만남부터 눈치 챘다. 야근에 찌들었는지 충혈 된 눈, 단정한 2:8가르마의 헤어스타일, 가식적인 웃음까지. 그도 '한심한 사람들' 소속인 것이다. 그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세례해주는 심정으로 커피를 끼얹었다. 고작 그 정도가 뭐가 뜨겁다고 으악-소리 지르며 호들갑을 떨었을까? 복부를 한 대 쥐어 패려다 간신히 참았다. 나도 성격 참 많이 좋아졌다.

 사춘기 시절 나는 한층 다혈질이고 남자다운 성격이었다. 아빠의 꾸중에도 눈을 부라리며 물러서지 않았고, 라면 좀 그만 먹으라는 엄마의 말 한마디에 열이 받아 끓인 물을 그녀의 얼굴에 부은 적도 있다. 사실 방바닥에 던지려고 했는데 손목이 삐끗해서 생긴 일이다. 난 당황했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그건 명백한 실수였다. 실수는 누구나 한다. 그래서 나는 당당하다. 엄마는 그 뒤로 얼굴에 칭칭 붕대를 감았지만, 내 입에선 '미안해'의 'ㅁ'도 나오지 않았다.

 우우우웅-.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발신자는 그냥 여자라서 만나는 여자친구다. 짜증나게 왜 또 전화질이지? 전화가 끊길 때까지 무시한다. 그랬더니 한번 더 전화가 온다. 에이, 귀찮은 년.

 "여보세요?"

 "오빠…뭐해?"

 "취직 몇 시간 만에 짤렸어."

 "하, 오빠답네."

 "기분이 안 좋단 뜻이야. 뭔 일이야?"

 "…나 할 말 있어."

 "뭔데 무게를 잡아? 애라도 생겼어?"

 "…맞아."

 "지워."

 난 단칼에 선을 그었다. 이런 문제일수록 한낱 인정에 사로잡혀선 안된다. 6주가 지나기 전에 떼야 한다. 내 큰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가 흐느낀다.

 "오빠, 어떻게 그렇게…쉽게 말할 수 있어? 나는…흐흑…."

 "네가 안전한 날이라고 했잖아1 몸 함부로 굴리려면 계산이라도 정확하던가! 네가 알아서 해, 걸레같은 년아!"

 신경질내며 전화를 끊었다. 귀찮아질 일은 애초에 싹을 잘라야 한다. 그녀가 울건 말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애초에 진지한 관계가 아니었다. 가끔 만나서 열정적으로 몸뚱이를 흔들며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그 정도일 뿐이다. 게다가 실수는 그녀가 했다. 그러니 책임은 그녀가 져야한다. 이런 상황이 있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난 참 논리적인 남자다.

 아아, 부모고 여자고 직장이고 나발이고 한결같이 병신같다. 갑자기 분노가 치민다. 사회라는 틀에 갇힌 것처럼 답답하다. 에이 씨발. 그냥 콱 죽어버릴까?








 오른발을 살포시 들어 허공에 세운다. 나는 지금 고층빌딩 난간에 올라서있다. 평소 느끼지 못한 중력의 무서움이 엄습한다. 자연스레 침을 꿀꺽 삼킨다. 귓가를 스치는 매서운 바람소리. 발밑으로 내려다보는 아찔한 광경. 곧 보도블록 위로 한 사람이 산산조각 난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고, 나른한 눈빛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시민들.

 내가 몸을 앞으로 조금만 기울인다면, 또는 실수로 휘청거린다면 그 순간 나는 피로 물든 고깃덩이가 되겠지? 그런 상상을 하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세상은 정말로 허무하구나.

 사실 별로 살고 싶진 않지만 죽을 마음도 없었다. 그냥 돌아가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루하지만 평온할 내일의 아침을 맞이하자. 바로 그 때 거짓말처럼 한줄기 돌풍이 분다. 휘이잉. 그 짧고 간단한 소리 때문에 내 인생은 죽음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으아아악-! 간혹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이런 비명소리와 함께 추락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럴 때면 작가의 한심한 대사 선택능력을 비웃으며, 나라면 더 멋있는 말로 인생을 끝내겠노라 결심했다. 모든 걸 다 내려놓은 표정으로 '여기까진가….' 라고 하던가, 추억의 인물을 회상하며 아련하게 '안녕….' 이라고 하던가.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초라하다. 마구 몰아치는 풍압에 입술은 벌어지지도 않고, 닥친 죽음의 공포에 미사여구 따윈 생각도 안 난다. 그저 이상한 신음소리만 소리칠 뿐이다. 엄마아아아악-!!

 몇 초가 흘렀을까?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나를 바라보는 몇 명의 눈동자가 스쳐지나가고, 그들의 동공이 막 커졌을 때쯤, 내 눈앞엔 광활하고 딱딱한 땅바닥이 있었다. 나는 온몸의 뼈와 살을 잘게 찢어줄 고통을 상상하며 눈을 감았다.

 응? 나는 곧 위화감을 느낀다. 선풍기를 '최강' 으로 틀어놓은 듯한 바람소리는 계속 귓가에 메아리치는데, 정작 단숨에 내 인생을 앗아갈 결말은 다가오지 않았다.

 감았던 눈을 슬며시 뜬다. 그제야 나는 무엇인가 잘못됐음을 깨닫는다. 어둠, 어둠, 사방엔 오직 칠흑 같은 어둠이 가득하고, 그 안에서 나는 영원히 추락하고 있다. 그런 사실을 깨닫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세상은 정말로 기묘하구나.








 처음 얼마간은 신생아실의 아기처럼 마구 소리치며 울었다. 다리 사이로 기어 나와 강렬한 빛에 놀란 생명처럼 엉엉, 부모와 멀어졌을 때의 서러움을 담아 꺼억꺼억.

 그러길 몇 시간. 나는 갑작스레 눈물을 뚝 그친다.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아기처럼, 어리광 부릴 때가 아님을 직감했다.

 한번 차분히 이 상황을 따져볼까?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났다. 실수로 죽음의 문턱에 놓인 지금 상황에 절묘하게. 그 말은 곧 나에게 일종의 기적이 일어났단 소리다. 즉 지금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살아날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닐까?

 어느새 나는 양반다리를 하고 턱을 괸 자세로 허공에 앉아 있다. 안전벨트도 없는 낙하의 무서움은 까맣게 잊고, 본격적으로 생각에 빠져 들었다.

 어쩌면 이것은 죽기 직전 내 인생을 주마등처럼 회상하는 것이 아닐까? 잠깐,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 삶이 이렇게 어두컴컴했다는 뜻이야? 하하하. 뭔가…슬픈걸.

 사실 이건 꿈이 아닐까? 잠시 후 정신을 차리면 난 술냄새에 찌든 꼬질꼬질한 런닝을 입고 자취방에 누워있는 거지. 오후 세 시쯤 깨어나 컵라면을 먹기 위해 커피포트에 물을 받을 거야. 그럼 그렇지. 내가 취직을 했다는 것부터 좀 이상했어. 하하하, 가장 마음 편한 추측이군. 다만 이 가정을 증명하기 위해선 잠에서 깰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뻔한 방법으로 볼을 꼬집어도 아픈지 안 아픈지 모르겠다.

 지금 내가 꿈속이라면 결말은 어떻게 이뤄질까? 저 단단한 돌바닥에 철퍼덕-하고 부딪혀, 파삭-하고 온몸이 갈가리 찢어지면, 그 고통을 계기로 헉-하고 깨어나지 않을까? 아, 그건 너무 아프겠네. 그냥 알람소리에 깨어날 순 없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곳이 이미 사후세계일지도. 어쩌면 죽음의 신 하데스는 새로 들어온 영혼을 몇 박 며칠 동안 추락시키며 저승의 입구로 안내하는 악취미를 가졌을 수도 있다. 어디에나 있는 '신입 길들이기' 같은 개념이군. 음음, 이제야 알겠어. 음음…. 으음…. 으으으….

 그건 그렇고, 도대체 이 추락은 언제 끝나는 거야?

 







 손목시계를 봤더니 벌써 다섯 시간 정도 지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장 필수적인 본능이 수면위로 떠오른다. 어떤 이는 인간이 사는 이유라 말하고, 혹자는 살기 위한 것이라 지칭하는 식욕 말이다.

 난 보통사람들보다 많이 먹는 편이다. 한 끼에 치킨 두 마리는 기본이요, 라면은 심심할 때마다 씹는 껌 같은 존재고, 학창시절 많은 친구들이 내가 먹을 빵을 바치느라 고생했으며, 그걸로 모자라 부모 등골까지 쪽쪽 빼먹었다. 언제부턴가 뱃살이 툭 튀어나온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살을 한번 빼보려고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은 적 있다. 의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 이렇게 말했다.

 "피하욕심층이 너무 두터워서 치료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질문했다.

 "피하욕심층이요?"

 "예. 지방은 흡입이라도 할 수 있지만, 욕심은 남이 치료해줄 수 없습니다. 그딴 인생을 사느니 자살을 추천 드립니다."

 나는 말없이 자리를 떠났다. 이미 주먹을 세 대 정도 갈기긴 했지만.

 꼬르륵-. 허기가 점점 고통으로 진화한다. 배고픈 위장을 달래려 손으로 배를 쓰다듬어보지만, 이 정도에 화를 누그러트릴 만큼 그는 순하지 않다. 하는 수 없이 대화로 협상을 시도한다.

 야 이 답답한 녀석아, 난 지금 언제 철퍼덕-하고 부딪혀 파삭-하고 갈가리 찢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내 인생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철학적 사색을 위해 잠시만 참아주지 않으련?

 시끄러운 꼬르륵-소리가 거절의사를 단호히 드러낸다.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이 세상엔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그런데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난다.


 







 킁킁. 무의식적으로 냄새의 근원지를 찾는다. 얼큰하면서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어디선가 자주 맡아본, 그러면서 한국인의 정서를 자극하는 향이다. 나는 한참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하늘을 올려본다. 공중에선-마치 다스베이더가 "I'm your mother." 이라 말하듯 뜬금없이-찌그러진 노란 양은냄비 하나가 덜그럭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냄비 안에는 어서 먹으라는 듯, 나무젓가락 한 쌍도 올라가 있다.

 무엇이 들어있을까? 물끄러미 들여다본다. 그 안에는 뽀얀 주홍빛 국물이, 야들야들하게 반짝이는 면발이, 완벽한 한그릇의 라면이 담겨있다.










 나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이젠 하다하다 공중에서 라면이 떨어져? 내가 마약이라도 한 걸까? 누군가 나를 사육하는 건가?

 "아들, 어서 먹어. 배고프잖니."

 다정다감한 목소리에 움찔하고 시선을 돌려보니, 그곳에는 어떤 여자가 나처럼 양반다리를 하고 추락 중이었다. 좀 더 자세히 보니, 나이를 꽤 먹은 아줌마였다. 더 면밀히 살펴본 그녀는, 나의 어머니였다.

 "엄마? 엄마가 여기 왜 있어?"

 그녀는 여느 아줌마들이 그렇듯 뽀글뽀글한 파마머리를 했다. 얼굴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화상을 가리려고 붕대를 몇 겹으로 꽁꽁 여몄는데, 강한 바람에 천 조각이 춤을 추듯 펄럭거렸다. 눈동자와 콧구멍, 입 주변만이 붕대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자신의 아픔 따윈 잊었는지, 엄마는 따스한 눈빛으로 날 응시하며 말했다.

 "아들, 어서 먹어보렴."

 "아니, 대답부터 해봐. 엄마가 여기 왜 있냐구? 여긴 어디야?"

 "맞은편 옥상에 있었는데, 네가 떨어지는 걸 보고 엄마도 뛰어내렸지. 그래야 우리 아들하고 마지막 대화라도 할 것 아니니?"

 어처구니가 없다. 고작 그깟 이유를 위해 목숨을 버리다니. 엄마는 원래부터 좀 둔한 구석이 있다.

 "정말로 안 먹을 거야?"

 나는 혼란스런 마음에 괜히 소리 지른다.

 "아, 좀! 조용히 해! 지금 그게 중요해?"

 그녀의 어깨가 축 처진다.

 "넌 어쩜 말을 그렇게 하니? 언제 철이 들려고…."

 그녀가 뒤돌아 앉는다. 나도 일부러 씩씩거린다. 분위기에 어색함이 감돈다. 우리 둘은 계속 추락하고 있다.









 꾸깃꾸깃 신문지를 구기는 소리가 들린다.

 "너 이 자식!"

 설마 이 목소리의 주인은? 역시나. 위엄 있는 풍채와 근엄한 목소리가 특징이고, 항상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의 아버지다. 그 또한 이 넓은 어둠 속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어라? 언제부터 거기 계셨어요, 아빠?

 "넌 아직도 네 엄마를 그렇게 함부로 대하냐!"

 "아빠? 아빠는 또 여기 어떻게 왔어요?"

 "아, 중국 쪽 출장 비행기를 탔는데, 내려다보니 네가 옥상에서 추락하지 뭐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네 엄마까지 떨어지더라? 가족끼리 마지막 이야기라도 하려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지."

 부부는 닮는다더니, 하는 행동이 멍청한 것도 똑같다. 저런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의 머리가 좋을 수 없는 건,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일 거다.

 "그런데 아버지, 신문은 왜 들고 내려오셨어요?"

 "왠지 널 혼내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혼낼 땐 역시 신문을 보다가 촤악-하고 접으면서 화를 내야 근엄하지 않니?"

 아버지는 언제나 그랬다. 예의와 도덕을 무엇보다 중시하며, 당신 자식이 조금이라도 엇나가는 모습을 보이면 엄격하게 꾸중했다. 마치 트집을 잡기 위해 날 키우는 것처럼 보였다. 가족끼리 외식을 나가도 포크와 나이프의 올바른 사용법에 성을 내고, 지금껏 나를 보며 환히 웃어준 적 한번 없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행복한 삶을, 올바른 성격을 지닐 수 없다는 것도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일 거다. 아버지는 구깃구깃해진 신문지를 다시 슬금슬금 펼치더니, 촤악-하고 접으며 소리친다.

 "너 이 녀석!"

 "또 왜요, 아버지?"

 "감히 자살 따윌 하다니! 생명은 소중한 거야!"

 "그럼 아버지는 왜 떨어지셨어요?"

 "얌마!"

 아버지가 머쓱했는지 뒤돌아 앉는다. 그의 어깨가 예전보다 초라해보인다. 우리 셋은 고요한 어둠 속에서 끝없이 낙하 중이다.







 일곱 시간쯤 지났을까? 오랫동안 가만히 떨어지는 것도 꽤 힘든 일이다. 눈 뜨기도 힘에 부치고, 바람소리에 혹사당한 귀는 이명증까지 생겼다. 나는 피곤함에 스르륵 졸다가 익숙한 샴푸 향기에 깨어났다. 뭐야, 또 무슨 일 있나?

 어두운 한쪽 구석에는 또 손에 이상한 핏덩이를 쥔 여자친구가 보인다. 그녀가 손을 흔든다. 오빠, 나야.

 "뭐야, 넌 또 왜 여기 있어?"

 "나? 산부인과에서 아기를 꺼냈는데, 아기가 바로 성큼성큼 기어서 창문 밖으로 달려 나가더라. 갑자기 모성애가 생겨서 애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손바닥에 기댄 아기가 고맙다는 듯 까르륵거린다.

 "근데 그거 알아? 결국 떨어진 애는 잡았는데, 생각해보니 자궁이 아니면 태아는 어차피 죽더라고! 하하하."

 아기가 슬픈 표정으로 칭얼댄다. 나는 당혹스런 눈빛으로 그녀를 훑는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녀는 충격에 미친 것처럼 보인다. 적당히 달래줘야겠다. 그녀가 웃으며 핏덩이를 쥔 손을 내민다.

 "기념품으로 가질래? 나중에 신혼집에 두면 집들이 온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할 거야! 오빠, 애 지우길 잘했지? 헤헤헤."

 "그래, 그래. 지우길 잘했어."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굳더니, 눈빛은 스멀스멀 끓어오르는 광기에 물들어간다. 나를 매섭게 째려보며 쏘아붙인다.

 "지우길 잘했다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네가 방금 지우길 잘했다며?"

 "흥! 실망이야. 우리 그만 헤어져!"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뒤돌아 앉는다. 핏덩이를 좌우로 흔들며 자장가를 부르는 모습이 섬뜩하다. 우리 넷은 무한한 어둠 속에서 나락을 향해 떨어진다.








 이제 점점 패턴이 예상된다. 지금쯤이면 한 명 더 생겨날 타이밍이다. 주변을 한번 둘러본다. 그럼 그렇지, 또 한 명 있다. 내가 학창시절 가장 친하게 지내던, 유일하게 말이 통하던 친구가 이곳에 있다. 나는 기쁨에 소리친다.

 "야! 잘 지냈…."

 "조용히 해."

 항상 어벙하게 실실 웃던 친구가 오늘따라 표정이 심각하다. 내가 심심해서 장난으로 청소도구함에 가둬도, 배고파서 뭐 좀 사달라고 부탁해도 헤헤-사람 좋게 웃곤 했었는데. 기분 나쁜 일이 있었나 보다.

 "내 표정? 당연히 널 만났으니 이러지."

 아무 질문도 안했는데, 그가 짜증내며 대답한다. 이젠 내 마음까지 읽는 걸까? 나는 선량한 눈빛과 부드러운 몸짓으로  그를 회유한다. 왜 그래,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안 반가워?

 "너 임마, 탁 까놓고 말해보자. 내가 널 반가워할 거라 생각했냐?"

 "그래도…나는 너랑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친해? 학창시절엔 맨날 힘 길러준다고 장난으로 때리고, 빌려간 돈은 안 갚고, 귀찮은 숙제 다 떠넘기고, 내가 만나던 여자나 건드리고!! 네까짓 게 친구야? 친구냐고!!"

 그의 얼굴에 노기가 번진다.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로 비난을 퍼붓는 그에게 약간 반항심이 생긴다. 저런 사소한 일들을 아직도 기억하다니. 쩨쩨하고 소심하고 계집애 같은 놈.

 "또 쩨쩨하다, 남자답지 못하다, 이런 생각하지?"

 "응? 아냐, 아냐."

 "뭐가 아냐? 네 생각 패턴은 전부 예상이 돼. 넌 아직도 네 이미지를 모르니?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고, 온갖 패륜에, 작은 일 하나라도 네 맘대로 안 되면 분이 안 풀리지? 이 세상에 너 혼자 사냐? 배려와 참을성이라는 단어를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 있어? 그래놓고 남들이 뭐라 하면 또 화가 나지?"

 "무슨 말을…그렇게…심하게…하냐…."

 "심한 게 아니라 사실이야. 너 그렇게 살다가, 나중에 장례식에서 널 위해 울어줄 사람 한 명 있을 것 같아? 아니, 지금 당장 봐도 그래. 누구 한 명이라도 널 좋아하는 사람 있어? 너에게서 등 돌리지 않은 사람이 있냐고! 네 뒤를 좀 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사람은 창피할수록 고개를 숙인다. 평소라면 나도 맞서 노발대발 했을 텐데, 그의 말이 묘하게 설득력 있다. 분노보다 창피함이 일었다. 뒤를 보라고? 난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목격한다. 아-! 저 많은 사람들은-!

 등 뒤엔 수백, 아니 수천 명의 사람들이 추락하고 있었다. 어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온 시야를 빽빽하게 채웠다. 뒤태만으로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있다. 날 혼낸 보복으로 자동차 백미러가 부러진 초등학교 담임. 어깨를 부딪쳤단 이유 하나로 앞니 두 개가 부러졌던 허약한 남자. 갑작스런 이별 통보에 찾아가 머리끄덩이를 잡았던 내 첫사랑. 커피자국을 다 지웠는지, 만족스럽게 양복 상의를 들고 있는 내 직장상사.

 그 수천 명의 사람들은 모두, 단 한명도 빠짐없이 나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심지어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조차. 내가 친하다고 생각했던 이들조차. 그 사실에 나는 어딘가 마음이 짠하다. 내가…그 정도로 더럽게 살았었나? 나란 존재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좋았을까? 가슴팍에 고드름이 박힌 기분이다. 손가락이 파르르 떨린다.

 "뭘 쳐다보냐 이 새끼야!"

 그 수많은 군중 사이에서 욕설이 터져 나온다. 평소라면 곧바로 나도 울컥-해서 머릿수에 밀리지 않는 욕을 퍼부었을 텐데, 그럴 마음이 안 생긴다. 점점 사람들이 나를 알아본다. 욕의 함성이 전자기타 연주처럼 거칠고 강렬하게 울려퍼진다. 나는 그 선율에 숙연해져 몸을 웅크린다. 조선시대 죄인의 목에 끼우던 칼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다. 그가 진범이라면, 마음을 짓누르는 죄의 무게에 고개를 들 수조차 없을 텐데.

 







 "아저씨, 왜 그래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린다. 땅에 박힐 듯이 푹 숙인 고개를 찬찬히 들어본다. 수많은 군중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주변은 한없이 고요하다.

 막대사탕을 먹느라 볼이 볼록 튀어나온 소년이 말을 걸었다. 나는 잊고 지내던 어떤 순수성과 대면한 것처럼, 마음에 한 순간 정적이 인다. 평범하게 여린 체형과 평범하게 맑은 눈망울을 바라보며, 가슴팍에 약한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지릿찌릿하다.

 "다른 사람들이 욕해서 그래요? 내가 하지 말라고 할까요?"

 "…아니야. 내가 문제야."

 "그럼 아저씨가 바뀌면 되겠네."

 아이들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핵심을 찌른다. 나는 그 동심을 지켜주고자, 내 상황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맞는 말이야. 하하…. 그런데 아저씨가 너무 멀리 와버렸거든. 그래서 어떤 수를 써도 안 될거야."

 "되게 비관적이고 재미없는 아저씨네. 나 갈래."

 뒷굽이 다 닳아 허름한 운동화를 신고도 소년은 사뿐사뿐 잘 걸어간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에, 나는 다급히 외친다.

 "네 꿈은 과학자 맞지?"

 "어라? 어떻게 알았어요?"

 "네 나이 대다수가 원하는 너무 뻔한 꿈이긴 하지만, 한번 열심히 해 봐. 뭐든지 노력하면 이 한심한 아저씨보단 나은 사람이 될 테니까…."

 "정말 끝까지 우울한 아저씨네. 걱정 말아요! 전 미래에 빌 게이츠급의 부자가 될 거에요!"

 소년은 콧노래를 부르며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나는 작게 중얼거린다.

 "만약…나중에 취직하면 자판기 커피를 조심해."

 그 해맑고 긍정적인 소년에게 어떻게 알려주겠는가? 이 초췌하고 삐뚤어진 아저씨가 그의 미래모습이라고. 그보다 잔인한 스포일러가 어디 있을까. 나는 아련한 눈빛으로 소년이 사라진 방향을 응시한다.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듯 한없이 애절하게.









 그때 훅-하고 어둠이 사라졌다. 구멍 난 타이어에 바람 빠지듯 순식간에 어둠이 사라졌다. 누군가 이 우울한 세계에 불이라도 켠 것일가? 지금껏 계속 시끄럽던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날 바닥으로 끌어당기던 중력의 힘도 느껴지지 않는다. 둥실둥실 허공을 부드럽게 배회한다. 희망이 가득 담긴 풍선처럼 여유롭게 두둥실.

 추락이 끝났다. 예상과 달리 땅바닥에 철퍼덕-하고 부딪혀 파삭-하고 갈가리 찢어지는 잔혹한 결말은 다가오지 않았다. 이곳은 어쩌면 고행을 겪어야만 다다를 수 있는 천국이 아닐까? 내 삶의 죗값을 모조리 치렀다는 뜻인가? 하지만 정신적 충격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에 손을 얹고 신음한다.

 "만약 이곳이 천국이라면…전 그것을 누릴 자격이 없습니다. 아직도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전 죄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부모님께도 못을 박은 죄인. 그냥 절…지옥에 보내주세요."

 이젠 하늘에서 한줄기 햇볕까지 내리쬔다. 따스하고 포근한 이곳은 역시 천국이 확실하다. 나는 가지런히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누군가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애야, 하늘을 뒤덮을 죄도 뉘우칠 회(悔) 자 하나를 당하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깨달은 점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새로운 삶을 살면 돼."

 엄마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질러도 항상 날 걱정하고 배려해주는 엄마의 상냥한 목소리다. 붕대가 흩날리는 펄럭펄럭 소리가 그쳤다. 날 용서했다는 의미일까? 내 어깨에 얹은 그녀의 손에서 온기가 퍼진다. 난 지금에야 깨달았다. 내가 정말로 구제불능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그런데 그녀는 아직도 날 포기하지 않았다. 엄마도 참…똑같은 구제불능이다.

 나는 획하고 돌아서 그녀를 꽉 껴안았다.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미안하다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저지른 죄가 떠올라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녀의 괜찮다는 위로는 인두처럼 내 마음을 뜨겁게 지진다. 눈시울이 차츰차츰 붉어진다. 그녀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내 맘을 다 안다는 듯. 다 이해한다는 듯. 하지만 이렇게 어정쩡하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진심을 담아, 엄마에게 사죄를 해야 한다.

 "엄마…그동안 정말 미, 미…."

 꼬르륵-. 완벽한 타이밍에 위장이 초를 친다. 배가 고픈 건 자연스런 생리현상이라고 쳐도, 이런 고차원적인 감정을 교감 중인데 방해를 하다니. 엄마는 흐뭇하게 웃고 있다.

 "아들, 배고프지? 일단 뭐라도 먹어."

 엄마가 달그락 소리 내며 흔들리는 양은 냄비를 내민다.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조금만 건드리면 순간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다. 말없이 양은냄비와 젓가락을 집어 든다. 열 시간 넘게 아무것도 못 먹었다. 허기가 나를 재촉한다. 한 젓가락 크게 떠서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면발을 후후-불고 한입 먹자, 왈칵-하고 장맛비처럼 눈물이 주룩주룩 쏟아진다. 이렇게…이렇게 뜨거웠구나. 얼마나…얼마나 아팠을까?

 나는 엄마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녀도 날 바라본다. 그녀의 눈빛엔 지금이라도 아들이 철들길 바라는 희망이, 버릇없고 무식한 자식이라도 행복하길 바라는 소망이 서렸다. 나는 울먹거리면서 간신히 말을 꺼낸다. 지금이야말로, 내 인생 처음으로 사과를 건네야겠다.

 "엄마…."

 "…?"

 "있잖아…정말로 미, 미…."

 






 철퍼덕-







 파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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