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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0 16:55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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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다



 하루 남았다. 2012519일의 밤, 하루 남았다. 12시다. 519일이다. 금요일이다. 출근을 해야 한다. 운전을 해야 한다. 자야한다. 기대한 만큼의 느낌은 없다. 의외로 잠이 잘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기가 날아다닌다. 날이 덥다. 해는 졌지만 빛을 잃은 햇살들이 아직 방안에 가득하다. 씻을까,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모기가 시끄럽다. 잡을까. 내일인가, 당장은 모기가 거슬린다. 이상하게도 내 몸에 앉지 않고 계속 날아다니기만 한다. 자지 말고 좀 더 깨어있으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모기가 날아다닌다.

내일은 일을 나가야 한다. 불을 켤까, 모기가 다시 한 번 내 귀 옆으로 날았다. 모기인 건 확실한데 그냥 날개 달린 것이 날아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가려운 곳이 없다. 불을 켤까.

 파리채를 찾아 잡아들었다. 불이 켜져서인가, 내가 서서 돌아다녀서 그런가. 날개소리가 멈췄다. 홈키파를 들어 방 곳곳에 뿌렸다. 덥다. 약냄새가 심해 문을 열어두었다. 아마 밖에 있던 모기들은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잠시 거실에 있기로 했다.

거실에는 모기가 많았다. 보이는 대로 잡아 죽였다. 거실을 돌아다니니 작년에 잡은 모기들이 군데군데 벽지에 말라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붉었었을 핏자국들이 거의 보이지도 않을 만큼 희미하게 변해있었다.

잠을 자야한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보니 10분도 지나지 않았다. 다시 들어간 방엔 아직도 약냄새가 가득했다. 창문을 열었다. 선풍기를 켜놓고 다시 거실로 나와 냄새가 빠져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동안 거실에서 다시 모기를 잡았다. 잡힌 모기 중엔 피가 터지는 모기가 한 마리도 없었다. 몇 분이 지난 후에 방에 다시 들어가 모기를 잡기 시작했다. 방안에서는 겨우 한두 마리의 모기만이 잡혔다. 조금이었지만 피와 함께 터졌다. 가려운 곳은 없다. 팔과 다리를 살펴보아도 물린 자국이 보이지 않는다. 모기는 누굴 물었을까.

창문과 방문을 닫고 선풍기의 타이머를 켰다. 작동시간을 2시간으로 맞춰두고 순풍으로 돌렸다. 선풍기의 목이 돌아가는 소리가 상당히 여름다웠다. 모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가끔 선풍기의 목에서 끽, 끽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모터소리가 잔잔했다.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633분이다. 3분 동안이나 알람을 못 들은 걸까, 분명 630분으로 알람을 설정해둔 것 같은데 이상했다. 선풍기도, 분명 타이머를 설정해두었던 것 같은데 아직까지도 돌아가고 있었다. 손을 갖다 대보니 모터가 뜨거웠다. 선풍기를 끄고, 옷을 입었다. 일을 나가야 한다.

 덥다. 땀이 옷을 잡아당기는 통에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는다. 운전석에 타기 전에 산더미 같은 짐들을 차에 실어야 했으므로, 몸에서는 힘이 빠져나온 만큼 땀이 빠져나왔다. 운전석은 얼마동안이나 햇빛을 쬐고 있었던 건지 겨우 참을 수 있을 정도로 뜨거웠다. 차 안은 말 그대로 후끈후끈했다. 공기가 더워 들이킬 때마다 숨이 막혔다. 의자에서 나왔는지 바닥에서 나왔는지 모를 먼지들이 햇빛에 반짝이며 겨울에 눈이 내리는 모습을 닮아 있었다. 그렇다고 먼지들이 햇빛에 녹아 없어질 리는 없었다. 아무리 오랜 시간 햇빛을 쬐어도 녹지 않을 것이다.

519일이다. 내일이면 토요일이다. 520일이다. 덥다. 내일은 더울까, 지금은 햇빛에 눈이 따가울 정도다. 오늘은 돌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 없다. 기름 값이 상당히 깨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41 가구 중에 45가구가 아무도 없이 비어있었다. 주문자의 집이 비면 주문에 따라 집 주위 어딘가에 있는 짐을 둘 수 있는 장소나 관리사무소, 혹은 근처 이웃에게 물품을 전달해둬야 했다. 그렇게 일을 하면 항상 밤 8시가 넘어서야 일이 끝났다. 저녁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택배를 받으러 오는 사람이 많은 시간이다.

 오늘 일이, 전부 끝났나 싶었는데 물품 목록을 보니 아직 하나가 남아있었다. 목적지 주소는 여기서 가까웠다. 차로 5분이면 갈 수 있는 아파트였다. 아까 주문자가 전화로 밤에 다시 와주실 수 있느냐고 물어본, 그 여자의 집이었다. 여자의 집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이상하리만큼 자세하게 기억이 났다.

 문 옆 창문의 건너편은 어두웠다. tv소리도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벨을 눌러보고 문을 두드려보아도 대답이 없자 나는 여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안녕하세요. 항성택배입니다. 고객님 혹시 지금 집이신가요?”

 “그거 그냥 가지세요.” 

 그렇게 전화가 끊겼다. 뇌가 팽창하는 것같이, 순간 짜증이 나긴 했지만 착불이 아니었고, 무거운 물건도 아니라 계단 타고 낑낑대며 올라온 것도 아니었고, 그냥 버려도 무관했으므로, 나는 곧 신경을 꺼버렸다.

 궁금해진 것은 집에 도착한 후였다. 도대체 뭘 샀을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아까운 돈을 주고 산 걸 버리듯이 나에게 준 걸까. 상자의 크기는 내가 한 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였다. 크기로만 본다면 신문지 한 쪽을 반으로 접은 정도의 크기였다. 그리 크지도, 무겁지도 않았다.

도대체 뭐가 들었을까. 하나를 배달할 때마다 700원을 받으니 물건 하나 700원으로 샀다고 생각한 거면 손해랄 것도 없이 오히려 이득이지만, 무슨 물건인지도 모를뿐더러 지금 내겐 필요한 것도 없다. 가만, 생각해보니 착불이 아니었다. 내가 싸인만 하면 700원은 그대로 들어오는 것이다.

 920. 회사에 차를 반납하고 걸어서 집에 와보니 시곗바늘이 9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3시간도 안 남았다. 사실, 3시간도 그다지 의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생각을, 하고 있을까. 5분 정도의 고민 끝에 영화를 보기로 했다.

 기념할 날일까, 생각할 것도 없이 그럴 날은 아니었다. 무슨 생각이 들까, 지금이나 세 시간 뒤나 별로 다를 것 같진 않았다. 사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러니까 몇 년 전부터 2012520일은, 의미 없는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를 찾아다니다 한 외국 영화에 눈이 갔다. 액션 영화였고, 2시간 30분이라는, 다른 영화에 비해 긴 러닝타임을 가진 영화였다. 시간을 보내기엔 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그 영화를 골라 다운을 받았다. 영화를 전부 다운 받기까지 약 5분 정도 남아있었다. 생각해보니 저녁이라고는 삼각 김밥 두 개가 전부였다. 배가 허했다. 먹으면 바로 배가 부를 것 같았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먹고 있으면 금세 고파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밥이 남았나, 밥솥에 다가가 확인을 해보니 한 공기보다 약간 부족하게 남아 있었다. 라면은 충분히 남았다. 라면을 끓이면서 계란을 풀었다. 5분은 충분히 넘었을 것이다.

 앞 접시와 받침대를 미리 모니터 앞에 두려고 갔는데 아까까지 5분 남았다고 했던 다운로드 시간이 7분으로 바뀌어있었다. 분명히 5분은 지났을 텐데, 그랬다.

 다시 부엌에 가 라면을 들고 왔다. 영화를 보며 라면을 먹는 것도 고개를 들다 내렸다 힘든 일이니 미리 먹어 치워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라면을 먹다가 고개를 들어 영화가 얼마나 다운받아졌는지 확인 해보니 다운로드 창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도 전부 된 모양이었다. 벌써 7분이나 지났을까, 아직 몇 젓가락밖에 먹지 않았는데 벌써 그렇게 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배가 부르다. 싱크대에 냄비를 두고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았다. 영화를 틀었다. 오프닝이 끝나고, 담배를 문 검은 양복의 두 젊은 사내가 보이면서 영화가 시작되었다.

 “윌튼, 이것 좀 봐봐.” 

 데이빗이 입에 물었던 담배를 다시 손으로 잡았다. , 이라고 물었더니 담배가 마치 예수처럼 생기지 않았냐고 데이빗이 물었다.

 “헛소리.” 

 하지만 봐봐, 하고 데이빗은 담배를 내 앞에서 흔들어보였다. 주황색 필터 부분은 예수의 머리, 아랫부분은 예수의 백의 같지 않냐고, 데이빗은 그렇게 말했다.

 “담배를 피면 천국에 빨리 가게 되는 게 그런 이유였군.”

 내 말을 듣더니 데이빗은 웃으면서 제법인데, 하고 주먹으로 가볍게 내 팔뚝을 쳤다. 데이빗은 담배에 불을 붙여 피우기 시작했고, 우리는 담배를 모두 태운 뒤 걸음을 옮겼다. 호텔 그랜드 힐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직 해가 밝아서인지 호텔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로비에만 몇몇 사람이 있었을 뿐,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에 내리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큰 호텔인 만큼 복도도 넓고 화려했다. 미리 웨이터 복을 입은 데이빗은 1107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

 “룸 서비스입니다.”

 나는 검은 양복을 그대로 입은 채 문 바로 옆의 벽에 기대어있었다. 똑똑, 데이빗이 다시 문을 두드리며 말해도 방 안에선 아무 대답도 없었다. 데이빗은 날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허리춤에서 소음기를 장착해둔 권총을 꺼내 문을 쏜 뒤 열어젖혔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발바닥에서 철퍽 소리가 났다. 아직 마르지도 않은 피였다. 100사이즈 와이셔츠가 꽉 낄 정도로 덩치가 있는, 회색 양복을 입고 죽어있는 표적이 보였다. 그의 머리엔 검은 구멍이 뚫려 있었고, 회색 머리칼은 군데군데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우리가 죽였어야 할 표적이었다.

 나는 바로 문을 닫아 잠갔다. 표적의 오른손에 검은색 권총이 들려있었고, 총알은 머리 옆을 뚫고 지나가 벽에 박혀있었다. 자살인 듯했다. 누군가 총소리를 듣고 신고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밖에서 드릴 소리가 들려왔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밖에서 드릴이 사정없이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배수관공사 같은 것이 시작한 모양이었다. 나는 곧바로 안심할 수 있었다.

 “여하튼, 빨리 가는 게 좋겠지. 윌튼, 표적이 맞는지 한 번 확인해 보지 그래.”

 데이빗의 말을 듣고 나는 조심스럽게 시체의 몸에 손을 댔다. 시체의 머리를 집어 올려 사진과 얼굴을 비교했다. 틀림없이 표적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데이빗은 밖을 확인해보겠다며 문을 열었다. 데이빗의 나오라는 손짓에 나는 곧바로 그 자리를 떴다. 복도의 카펫은 붉었기 때문에 구두에서 묻어나오는 핏자국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피가 끈적하게 말라 걸을 때마다 카펫에 달라붙어 쩍쩍 소리가 나는 것이 신경 쓰일 뿐이었다.

 우린 무사히 호텔을 빠져나왔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윌튼은 표적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있지 못했다. 단지 그를 죽여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왜 자살을 했는지에 대해서 알 수 없다는 대사와 함께 영화는 계속 진행되었다. 표적은 자살했지만 둘은 원래 받기로 했던 돈만큼 돈을 받았다.

 윌튼은 노견을 키우고 있었다. 덩치가 큰 골든리트리버였다. 개의 이름은 타월이었다. 타월 은 윌튼이 개를 찾던 중 입양하게 된 개였다. 입양했을 때는 이미 5살이었고 타월의 이름이 타월인 이유는 단지, 입양했을 당시 서류 맨 아래 칸 기타 란에 어린아이가 썼을 법한 글씨로,  ‘걔의 이름은 타월이에요. 걔는 꼭 수건 같거든요. 가끔 저는 그 애의 털로 물기를 닦아요. 아저씨, 어쩌면 아줌마. 타월을 잘 돌봐주세요.’라고 써져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때가 벌써 6년 전이고, 기타 란에 삐뚤빼뚤한 글씨를 쓴 그 아이도 제법 그럴 듯한 청년이나 숙녀가 되었을 것이다. 이미 노견이 다 되어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타월은 윌튼이 돌아오면 흐느적 흐느적, 얇은 쿠션이 놓여있는 자신의 작은 잠자리 바로 옆에 누워서 꼬리를 흔들거릴 뿐이었다.

 윌튼은 집에 돌아오면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타월과 함께 산책을 나갔고, 타월은 몇 분만 걸으면 지쳐서 걸음걸이가 느려지거나 아무데서나 앉아버렸다.

 목표였던 남자가 자살한 후 며칠간 그 둘에겐 일이 없었다. 그 며칠 사이의 하루, 윌튼은 데이빗의 집에 찾아갔다.

데이빗의 집엔 흙이 3분의 2쯤 채워진 커다란 유리관이 있었다. 넓이는 웬만한 식탁의 두 배는 되었고 높이는 데이빗의 키와 비슷했다. 윌튼이 말하길 자신은 182cm였고, 데이빗은 조금이었지만 확실히 윌튼 보다는 컸다. 그런 대형 유리관을 놓고도 꽉 차지 않을 만큼 데이빗의 방은 넓었다.

 스티비는 잘 있냐고 윌튼이 물었다. 자기도 모른다고, 데이빗이 대답했다. 스티비는 데이빗이 키우고 있는 두더지의 이름이었다.

 “저번에 왔을 때보다 더 쌓인 것 같은데.”

 유리관을 메우고 있는 흙 위에는 썩고 있는 곤충의 시체와 과일들이 보였다. 예전보다도 더 많아졌다는 게 눈에 보일만큼, 스티비의 먹이일 것들이 흙 위에 널브러져있었다. 개중에는 살아있는 곤충들도 있었다. 내가 저것들이 왜 안 사라지냐고 묻자 어쩌면 지렁이만 먹는 걸지도 모른다고 데이빗이 말했다. 혹시 스티븐이 죽은 건 아니냐고 내가 말하자, 데이빗은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 말을 하고 나서도 데이빗은 시간이 됐다며 옷장을 열더니 흙이 담겨있는 플라스틱 박스와 곤충이 담긴 채집통을 가져와 유리관 앞에 놓았다. 데이빗은 유리관의 뚜껑을 열어 지렁이와 곤충 몇 마리를 꺼내 그 안에 넣었다.

 집에서 흙 밖으로 나온 스티비를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냐는 내 물음에 데이빗은 고개를 저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게 거짓말인지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먹이를 주는데도 저것밖에 안 쌓여있는 것을 보면 분명 스티비가 살아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먹이를 줄이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스티비를 보러온 건 아닐 거 아냐. 하긴, 기르고 있는 나도 못 봤는데.”

 데이빗은 픽 웃더니 방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며 그렇게 말했다. 나는 데이빗을 따라 거실로 나와 말없이 가방을 열었다. 다음 표적이었다. 나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고, 위험한 일이 아니었기에 두 명이 나설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한 가족을 전부 죽여야 했다. 19살의 여자아이도 있었다. 어째서 한 두 명도 아니고 한 가족을 죽여야 하는 건지는,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내가 데이빗에게 할 거냐고 묻자 데이빗은

 “우리가 앞으로도 일을 할 거라면, 어쩔 수 없지만 해야지 뭐.”라고 말했다. 나는 고맙다고, 그렇게 말했다. 예전부터 데이빗은 내 대신 그런 일을 해주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둘 다 하기 싫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의 대부분을 데이빗이 해주는 것이다. 우린 그렇게 함께 일했다. 데이빗의 실행일은 나흘 뒤, 1987417일 그 가족이 클래식 콘서트를 보고 돌아올 날의 밤이었다.

 그 나흘 동안 데이빗은 아마 하루도 빠짐없이 스티비의 밥을 줬을 것이고,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타월과 함께 밤 산책을 나갔다. 데이빗의 집을 다녀온 그날 밤, 나는 타월과 함께 밤 산책을 다녀온 뒤 손을 씻고 타월의 털에 물기를 닦아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별다른 감흥이랄 것은 없었다. 그냥 그랬구나, 하는 생각만 들뿐이었다. 나는 그날 다시 한 번 손을 닦았다. 언젠가부터 습관처럼 며칠에 한 번씩 나는 타월의 털에 손을 닦고 있었다.

 작전 실행일에, 데이빗은 아무런 무리 없이 표적들을 처리했다. 뉴스에는 한 가정의 부주의로 인한 가스 폭발로 인한 화염사고라고 몇 십 초 정도 나올 뿐이었다. 진실은 아니었지만 흔한 일이었다. 불타 죽은 시체에게 약성분까지 부검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표적을 처리한 다음 날, 데이빗은 우리 집에 찾아왔다.

 “어제 녀석들을 죽이려는데 말이야, 여자애가 꽤나 이상한 짓을 하더라고.” 

 별로 듣고 싶진 않았지만, 데이빗에겐 항상 신세를 지고 있었고 데이빗도 꽤나 말하고 싶어하는 눈치였기에 나는 뭔데, 하고 물어보았다.

 “글쎄 여자애가 밥 먹기 전에 손을 씻더니 개털로 손을 닦더라고, 털이 많고 덩치가 큰 개였어. 여자애의 아빠는 하지 마라고 했지만 여자애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눈치더군. 어차피 상관없는 일이었겠지, 밥을 먹자마자 모두 죽었으니까 말이야. 네가 알려준 방법은 언제나 깔끔해 윌튼.”

 순간, 떠오르는 것은 타월을 입양할 때 보았던 어린 아이의 글씨뿐이었다. 그 아이였을까, 그렇다고 해도 내가 손 쓸 방법은 없었다. 애초에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 한 두 명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고, 그 아이였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해도 하지 않을 일은 아니었다. 나는 생각을 지워버리기로 했다. 내가 아무 말도 없이 있자 데이빗은 나에게 물었다.

 “넌 항상 나보다 보수를 적게 받는데, 불만은 없어?”

 내가 할 대답은 뻔했고, 데이빗도 내가 할 말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불만 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언제나 데이빗이 도맡아 해주었으니까. 이미 의뢰처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가끔은 아예 나를 통해서가 아니라 데이빗에게만 직접적으로 의뢰가 가는 일도 있을 정도다.

 “그래도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윌튼, 나 혼자 이 일을 했다면 아마 바가지 좀 쓰면서 일을 했겠지. 보수 같지도 않은 보수를 받으면서 말야.”

나는 말하지 않고 가볍게 웃어보였다. 데이빗도, 말없이 가볍게 웃었다.

 이제 서로 할 이야기가 없어 데이빗이 집에 돌아가려는 참에 갑자기 타월이 일어나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데이빗과 함께 있느라 아직까지도 산책을 가지 못했다. 산책이 하고 싶은 걸까, 데이빗이 나갈 때 같이 나가려고 목줄을 챙기는데 데이빗이 타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개였어. 그 여자애가 키우던 개 말이야.”

 그 대화를 끝으로 윌튼은 타월과 함께 산책을 나갔고, 데이빗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 날 이후로도 둘은 계속해서 일을 처리해나갔다. 백발이 무성한 할머니도 있었고, 아직 젊은 남자도 있었고, 평범한 사람일리는 없겠지만, 샐러리맨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중년도 있었다. 윌튼과 데이빗은 의뢰처가 왜 표적들을 죽이려는지 알 수 없었고, 의뢰처는 도대체 어떻게 윌튼과 데이빗이 표적들을 죽이는지 알 수 없었다. 환경만 허락해준다면 사고사처럼 위장하는 것, 의뢰처가 그 둘의 방식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게 전부일 것이다,

 영화의 중반부쯤, 아니 중후반부쯤일까. 데이빗이 죽었다. 표적을 처리하다 배에 칼을 맞았다. 식칼이었다.

 타월과 함께 산책을 하고 돌아와서도 데이빗에게서부터 전화가 오지 않았다. 이런 일은 없었다. 직접 찾아오기라도 해서 일을 제대로 마쳤다고 항상 나에게 말해주던 데이빗이었다. 나는 차를 몰고 그 집으로 향했다. 주위에 경찰차는 보이지 않았다.

 “윌튼.”

 들어가자마자 데이빗이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집의 불은 모두 꺼져있었다. 창문도 모두 커튼으로 가려져있었고, 데이빗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가끔은 괴롭다는 듯 으, 하는 소리를 내며 누워있었다. 총을 맞았거나, 어느 쪽이든 심하게 다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행히 바로 죽을 상처는 아니었는지 데이빗의 숨소리는 거칠긴 했지만 빨라지거나 느려지지는 않았다. 데이빗은 화장실 안에 누워있었다. 스탠드를 켜자 런닝만 입고 있는 대머리 중년과 그의 부인으로 보이는 여자, 그리고 그의 딸로 보이는 중학생 정도의 여자아이가 죽어있는 것이 보였다. 대머리의 중년과 그 부인은 총을 맞고 죽어있었고, 여자아이는 목이 졸린 듯했다.

 “개 같은 년. 편하게 죽여주려 했는데 칼로 내 배를 찔렀어.”

 데이빗은 밟힌 지렁이처럼 몸을 꿈틀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난 우선 데이빗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있으라고 했다. 내 말을 듣지도 못한 건지 데이빗은 내 말엔 대답도 하지 않고, 짧게 짧게 욕을 뱉었다. 난 우선 그 집에 있던 커다란 수건으로 데이빗을 감싼 뒤 내 차로 옮겨두었고, 시체를 제외한 증거가 될 만한 것들을 될 수 있는 대로 서둘러 치운 뒤 자리를 떴다. 아마 내일쯤, 어쩌면 모래쯤에나 시체가 발견될 것이다. 그 동안에 어떻게 데이빗을 살려야하는지, 이 일의 뒤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우선은 데이빗을 살리는 게 급선무였다.

 “병원도 못 가. 배에 칼을 맞았어. 윌튼. 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데이빗은 뒷좌석에 누워 괴로워하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망할. 아직 스티비가 밖으로 나온 것도 못 봤단 말야. 씨발. 씨발. 내가 그 새끼한테 얼마를 쏟아 부었는데. 맙소사 윌튼. 우리가 돈을 받을 때 너보다 더 받았던 돈들은 아마 모두 스티비한테 썼을 거야.”

 아무리 말을 하지 말고 있으라고 해도 데이빗은 듣는 척조차도 하지 않았다. 데이빗은 딱히 할 말이 없을 때는 스티비를 욕하거나, 아무도 겨냥하지 않고 짧게 짧게 욕을 뱉으면서, 끝까지 말을 했다. 마냥 있을 수는 없었지만,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 의뢰처에 전화해 방법이 없냐고 물어보았다.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들과 연관되지 않도록 조심하게 처리하라는 말이 전부였다. 사건과 무관하게 다친 것이라면 아무 문제도 없지만, 사건 중에 생긴 치명상은 치명상 중의 치명상이었다.

 “맙소사 윌튼. 운전을 어떻게 하는 거야. 세상이 핑핑 돌잖아. 흐흐, 어렸을 때 놀이기구를 타고 나면 꼭 이런 기분이 들었었지.”

 데이빗을 살릴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사실 애초부터 없었다. 총알이 박힌 것도 아니고 칼에 배를 찔린 거라 한 가지라도 내가 손을 쓸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잘 벌긴 하지만 개인의사를 둘 정도로 잘 버는 것도 아니었다. 어디 아는 의사가 있다거나, 동네 수의사와 친한 것도 아니었다. 배에 칼을 맞고도 병원에 가지 못할 일을 저지르고 왔다는 것을 비밀로 담아둘 수 있을 사람자체가 우리에겐 없었다.

 “젠장할. 나 지금 몇 살이지. 이봐 윌튼, 니가 몇 살이었더라. 기억이 안 나. 머리가 정말 어지러워. 망할. 오늘 몇 월 며칠이지? 그러고 보니 오늘은 스티비한테 밥을 못 줬어.”

 나는 갈 곳을 찾지 못해 내 집 앞에 차를 세웠고, 데이빗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도 계속 말했다. 차가 멈추고 나서도 데이빗의 말은 멈추는 법이 없었다. 저렇게 말을 할 수 있는 걸 보면 어쩌면,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데이빗을 업어 집으로 들어갔다. 데이빗은 업힐 때는 상당히 괴로워하며 신음소리를 냈지만 바닥에 눕혀주니 다행히 신음소리가 점점 멎어갔다. 나는 수건을 적셔 데이빗의 배 주위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타월은 우리 옆에 엎드려 내가 피를 닦는 장면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니 개보다 더 일찍 죽게 생겼어. 숨을 쉴 때마다 뱃속의 상처가 벌어지는 것 같아. 공기가 날카롭게 느껴질 정도라고 윌튼. 씨발. 화장실을 거기서 가는 게 아녔어.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칼에 찔렸다고. 망할년. 죽일년. 배에 칼이 꽂혔었어. 목을 졸라 죽이려는데 배가 너무 아파서 힘이 안 들어가더라고. 그냥 총으로 죽이는 거였어. 그랬으면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너무 무리해버렸어. 윌튼. 망할. 언젠가 잡혀서 감옥에 가거나 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죽을지는 몰랐어. 윌튼, 내 장례식은 말야. 안 해줘도 되니까 스티비 있지. 그놈이 살고 있는 흙에다가 뿌려서 골고루 섞어줘. 달리 마땅한 곳이 없어.”

 “넌 안 죽을 거야.”

 우리의 대화는, 어딘가 묘했다.

 데이빗은 땀을 많이 흘렸고, 말을 많이 했다. 정말 끝도 없이 말했다. 잠시 말이 없는 게 이제야 좀 진정이 됐나 싶었는데 다시 데이빗이 입을 열었다. 담배 한 개비만 달라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데이빗의 입에 물려주고, 불을 붙여주었다.

 “원래 집에서는 담배 안 피우는데. 이번만 특별히 봐주는 거야.”

 내 말을 듣고 데이빗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웃음소리라기보다는 힘들 때 헐떡이는 소리 같았다. 데이빗은 계속 웃었고, 어째서인지 나도 따라 웃어버리고 말았다. 나와 데이빗은 수십 초가 지나서야 웃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봐 윌튼. 그거 기억 나. 몇 달 전인가에 말야. 내가 담배가 꼭 예수 같다고 했던 적 있었잖아.”

 “그래. 있었지.”

 “예수를 만나러 갈 거라면 담배는 다 태우고 가고 싶군. 생각보다 훨씬 빨리 만나게 됐어.”

 데이빗은 담배를 다 태우자마자 다시 또 한 개비만 주라고 했다. 내가 데이빗에게 담배를 물려주려 하자 데이빗은 오른손을 뻗어 담배를 받았고, 자기 입에 물렸다. 불을 붙여주려는데 데이빗이 담배를 문 채 입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스티비 그놈 얼굴은 끝까지 못보고 가게 되겠네.” 그게 데이빗의 마지막이었다.

 정식적인 장례를 치르는 것이 불가능했던 데이빗이었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듯했지만 만약 밝혀진다면 데이빗의 장례를 치러준 윌튼이 곤란에 처할 것이 뻔했다. 윌튼은 스스로 데이빗을 화장시켜 골분을 스티비가 있는 유리관에 뿌려주려고 했다. 화장하는 법을 찾고 재료를 구하는 데 하루가 걸렸고, 마땅한 장소를 찾아 거기까지 가는 데 하루가 걸렸다. 영화 속의 도시는 날이 덥지 않은 건지 데이빗의 시체는 의외로 멀쩡했다.

 밤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어두운 새벽에, 윌튼은 사막의 한 가운데서 데이빗을 장작과 짚 위에 올려두고 불을 붙였다. 알아본 방법대로라면 화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이었다. 윌튼은 불을 붙이고 한 시간 뒤에 확인을 해보았지만, 그대로 골분을 만들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가져온 장작과 짚을 더 올리고, 윌튼은 조금 더 기다려보았다.

 한 시간을 더 기다리자 불이 약해졌고, 윌튼은 상태를 확인해보았다. 데이빗의 뼈는 재의 아래에 쌓여있었다. 뼈는 윌튼의 생각보다 훨씬 하얬다. 날이 점점 밝아오기 시작했고, 윌튼은 장갑을 끼고 주섬주섬 뼈를 챙기기 시작했다. 윌튼이 데이빗의 뼈를 잡으며 따뜻하다고 말했을 때, 멀리서부터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경찰은 윌튼의 차 옆에 경찰차를 세워두고 내려와 무전기에 무슨 말을 한 뒤 윌튼에게 다가갔다. 차에 붙어 뒷짐을 지라고 했고, 윌튼은 아무 저항도 없이 경찰의 말대로 뒷짐을 지었다. 경찰은 윌튼에게 수갑을 채운 뒤 차의 뒷좌석에 태웠고, 데이빗의 뼈를 들고 둘레둘레 살펴보더니 잿더미 위에 툭, 하고 던져두었다.

 나는 타월과 함께 산책도 가지 못했고, 데이빗을 스티비가 있는 유리관에 뿌리지도 못했다. 도대체 누굴까, 그 시간에 그곳에서 나를 보고 신고한 것은.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런 식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데이빗도 이런 비슷한 말을 했었지.

 끝났다. 몇 년일까. 시체를 처리하려 했다고 보였겠지. 도대체 몇 년일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부탁하면 들어줄까. 데이빗의 골분을 유리관에 뿌려주고, 타월이 만약 입양될 수 있다면 이 개의 이름은 타월이라고, 기타 란에 그렇게 쓸 수 있냐고 물어볼까.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있을 리가 없다. 분명 책에서는 한 시간이면 끝낼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어쩌면 한 시간을 해놓고도 한 시간이나 더 할 필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사막 한 가운데의 도로를 달리는 경찰차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영화가 끝났다. 영화를 끄고 컴퓨터의 시계를 확인해보니 열두 시 일 분이었다. 토요일이다. 520일이다. 끝났다. 끝났을까. 아마도 진작에 끝났었겠지만, 내가 예상한 시간이라면, 오늘이다. 7년이 지났다. 오늘로 난 완전히 범죄자의 이름을 벗게 된 것이다. 법적으로, 완전히 깔끔하게. 이 이상 걸릴 리가 없다. 분명 오늘일 것이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오늘 이상으로 갈 리가 없다.

 특별할 느낌이랄 것은 역시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어차피 의미 없는 일이었다. 몇 달이 지나고서부터 원래 아무렇지 않게 지냈었으니까. 알고 있었지만, 후련하다는 느낌은 확실히 느껴진다. 잠시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벌써 1210분이다. 잠에 들기 전에 설거지를 하려고 부엌에 갔다. 냄비와 접시와 젓가락의 설거지를 끝내고, 방에 들어가려는데 그 여자가 그냥 가지라고 했던 택배물이 보였다. 택배물을 들고 거실과 부엌의 불을 끈 뒤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궁금한 마음에 상자를 벗겨보았다.

 상자 속에는 선물을 넣을 때나 쓸 법한 고급스러워 보이는 진한 갈색의 나무상자가 에어캡에 둘러 쌓여있었다. 그 상자 속에는 이때까지 본 적도 없는 외국 담배 한 갑과 라이터 기름, 상당히 값이 나갈 것 같은 은색 민무늬 지포라이터가 들어있었다. 민무늬였지만 결이 아름다운 라이터였다. 라이터와 담배 위에는 편지가 놓여있었는데, 내용은 이랬다.

 ‘드디어 오늘이야! 정말 축하해 ^^!’

 담배를 좋아하는 여자였던 걸까. 아니면 자기가 자기한테 배송해두고 남자친구나 누군가에게 선물할 생각이었을까. 두 번째 쪽일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무슨 사정이 있는 건지 그저 배달하기만할 뿐인 나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구매자들은 주문을 할 뿐이고, 우린 배송을 할 뿐이니까. 편지의 내용은 그게 전부였다. 아마도 싸웠거나. 그런 거겠지.

 나는 담배 곽을 열어보았다. 두 개의 포장지 중 하나를 뜯자 담뱃대들의 모습이 보였다. 필터부분이 주황색인 담배였다. 피우던 담배가 있었지만, 나는 아까 영화에서 본 장면이 떠올라 이 담배를 피우기로 했다. 내 담배는 필터부분까지 하얀 담배였다. 지포라이터의 뚜껑을 열고 라이터를 뽑아 기름을 채웠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는 생각했던 것보다 독했다. 나는 담배를 다 태우고 데이빗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피우고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맨 처음에 데이빗과 윌튼 그 둘이 죽이려 했던 남자는 왜 자살한 것이었을까. 영화에서는 끝까지 이유가 나오지 않았다. 둘은 그들이 왜 죽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알 수 없었으니까. 어차피, 어떻게 죽든 시간문제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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