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오늘:
363
어제:
304
전체:
313,244

접속자현황

  • 1위. 후리지어
    67232점
  • 2위. 뻘건눈의토끼
    23461점
  • 3위. 靑雲
    18945점
  • 4위. 백암현상엽
    17074점
  • 5위. 농촌시인
    12042점
  • 6위. 결바람78
    11485점
  • 7위. 마사루
    11385점
  • 8위. 엑셀
    10614점
  • 9위. 키다리
    9494점
  • 10위. 오드리
    8414점
  • 11위. 송옥
    7661점
  • 12위. 은유시인
    7601점
  • 13위. 산들
    7490점
  • 14위. 예각
    3459점
  • 15위. 김류하
    3149점
  • 16위. 돌고래
    2741점
  • 17위. 이쁜이
    2237점
  • 18위. 풋사과
    1908점
  • 19위. 유성
    1740점
  • 20위. 상록수
    1289점
2015.06.29 20:48

보통

조회 수 212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보 통


 나에게는 보통 집안처럼 보통 같은 친척들과 사는 것에 대한 동경이 있다. 명절 때 마다 온 가족이 모여 웃고 즐기는, 같이 여행도 다닐 수 있는 그런 가족 말이다. 큰아버지 가족, 우리 가족, 고모네 가족,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보통 가족과 다를 게 없어 보이는 친가는 보통과는 거리가 멀었다. 친가 식구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하고 싶지 않았다.


 15년 전, 큰아버지와 그의 처는 캐나다 토론토로 떠났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도, 아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유학을 떠난 것도 아니었다. 시댁 살이에 지친 처는 무작정 서울을 떠나기를 원했다. 그렇게 그들은 아들을 데리고 토론토로 가지만 6개월 후 우리들에겐 그들의 이혼 소식이 들려왔다.

캐나다까지 기어가서 한다는 짓이 고작 이혼이냐?

잘 살아보려고 했어요. 근데 아니잖아. 나도 후회하고 있어, 그 여자 만난 걸.”

대체 진호는 왜 그 여자가 데려가는 건데, ?”

진호, 내가 키우기엔 너무 어려. 내가 어떻게 키워, 난 돈 벌러 가야 되는데.양육비는 내가…….”

그 여자는 돈 안 벌 거라니? 왜 네가 양육비를 다 주는데?”

…….”

 일곱 살인 내가 이해할 수 없던 말이 그렇게 두 시간 가까이 흘러갔다. 그런데도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은, 이제 진호 오빠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것. 어린 나이에 그렇게 슬프지도 않아 보이는 이별을 겪어야만 했다. 7년이라는 시간은 우리의 짧은 인연의 끝인 듯 했다.


 이제 우리 가족 이야기를 해볼까. 아버지는 명문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도 쉽게, 결혼도 쉽게 한 사람이다. 그래서 쉽게 회사도 나왔다. 아버지는 재취업하지 않는 동안 모르는 사람의 전도로 교회에 미친 삶을 살게 되었고, 항상 모든 말에 하나님 이야기를 덧붙인다.

모든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라고 하셨다. 빌립보서 46, 7절에서는…….”

 이런 삶을 미워한다는 것은 아니다. 술 담배를 즐겨했던 사람이 온전히 그것들은 멀리하고 건전한 삶을 산다는 것은 배울 점이다. 하지만 나에게도 철저한 금욕주의와 성경공부를 요구한다.


 고모는 아버지에게 가장 한심한 인간으로 비춰진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칭찬에 약해 이단에 빠진 것이라는 고모는 대학에서 전공이었던 전산 공부는 안하고 합창만 했다고 한다. 고모도 우연히 길을 걷다 이단이 전도하는 것에 빠져서는 그대로 이단의 길로 접어들었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칭찬에 넘어간 것이나 뭐라나. 내가 12살 무렵이었으니 어느 정도 기억은 난다. 당연히 아버지의 회유가 있었지. 싸우고,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녀는 자기 고집대로 산다. 그녀가 이단에 빠진 것도 문제이지만, 그녀의 딸 진선이는 아예 귀신이 들린 것 같다. 내가 15살 때였다. 통통한 체격인 나에게 할머니는

너는 아주 보기 좋다. 그년은 말라 비틀어 진 것이 아주 뵈기 싫다.”라고 말씀하시고는 했다. 나는 이 말씀이 나의 몸집을 보고 조롱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녀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원래도 날씬한 체격이었던 그녀는 거식증에 걸린 것 같았다. 원래도 날카롭기 짝이 없었던 그녀는 더욱 뾰족해져 있었다. 남에게 자기가 만든 음식을 먹이면서 즐거워하지만, 정작 본인이 먹는 것은 거의 없었다.

이거 좀 먹어봐. 숙모가 하신 거야.”

고기잖아. 고기 먹으면 살쪄.”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너 거식증이니?”

거식증이 뭔데?”

너 같은 애 말하는 병.”

무슨 상관인데, 삼촌이.”

이 자식이 어른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늘 그렇게 아버지의 호통으로 그들의 대화는 끝이 났다. 우리 가족은 (고모네 가족도 마찬가지겠지만) 다 같이 만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나도 그랬다. 조용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을 가족이라면 만날 필요도 없어 보였다. 만나기만 하면 싸우는 것이 무슨 가족인가.


 왜 가족 모임에서 큰아버지의 이야기는 빠져있느냐고? 서울에 살지 않으니깐. 다시 서울로 돌아왔던 큰아버지는 이혼한지 6개월 만에 부산에 살던 미모의 이혼녀와 재혼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웬만하면 서울에서 살지 그러니. 진호도 있고, 제대로 된 직장도 여기서 구하지.”

 또 한 번의 가족회의가 시작되었나보다. 이혼남과 이혼녀의 결혼 생활은 모두의 눈에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어지지는 않았다. 어린 나의 눈에 큰아버지의 새로운 처는 전처보다는 확실히 착하기는 해보였다. 큰며느리 자리로 시집가면서 캐나다에 가서 산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엄청난 메리트였는지 선뜻 결혼을 결정했다. 이혼까지 했던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다시 재혼할 것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할 노릇이었다. 큰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기에 캐나다로 떠난 것일까? 그 이유를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알게 되었다. 그가 흥미 있어 했던 건축학을 전공한다면 돈을 많이 벌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셨던 나의 조부모님의 간절한 권유로 그는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다고 한다. 형편도 넉넉지 않았던 터라 그는 부모님 말씀을 듣고 명문대학교 공학도가 되었다. 졸업 후에도 이름만 들어도 칭송받는 대기업에 취직하지만 역시나 흥미를 못 느끼고 캐나다에서 건축 일을 할 것이라며 떠난 것이다.

 큰아버지네 가족이 그렇게 떠난 10년 뒤 그들 가족이 서울로 잠깐 돌아왔다. 할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셨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딸을 한 명 낳았다. 그 딸은 40년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제 아버지만을 좋아했다.

그 때 그냥 건축하라고 내비 뒀으면 저 자식이 캐나다에서 막노동할 일은 안 생겼을 텐데…….”

할아버지는 얼굴에 10년 동안의 고생이 묻어있는 큰아버지를 보며 탄식했다.

그런 말을 해서 뭐해요? 어차피 형은 제 맘대로 살 사람이야.”

 자기의 형에 대한 아버지의 냉정한 평가이다. 부모 말은 듣는 척 하면서 후에는 자기 맘대로 하는 사람이라고.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한 달이 지났다.

유언장이 있는지 샅샅이 뒤져봐.”

할머니가 오랫동안 병환으로 고생하시다가 돌아가셨고, 유산 상속을 해야 되었다. 다행히도 할머니는 당신의 병환이 깊어질수록 유언을 남기는 것에 아낌이 없으셨고, 돈 문제와 관련된 이야기도 당연히 쓰여 있었다.


삼 남매에게……

일생을 병으로 시달리다 이제 하늘로 가려는 이 부족한 엄마가 너희에게 줄 것은 많이 없다만, 내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산과 집이 있으니 그것을 팔아 큰아들에게 반을 주고 나머지 반은 작은 아들과 딸이 나누어 가지도록 해라. 그리고 너희 아이들에게 전해주렴. 이 세상을 살 때 틀에 갇혀 살지 말라고. 하고 싶은 게 있을 때 못해 본 것이 너무 많아 후회되는구나.


 난 이 편지의 의미를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되새기고 다닌다. 그러나 대학에 와서도 나의 의지대로 살고 싶었던 것이 모두 허탕이 되고 말았다. 남들보다는 조금 늦은 대학 합격 통보 후 나의 핸드폰에는 문자 한 통이 와있었다.


합격 축하해요. XX교회 다니는 언니예요. 아버지 소개로 핸드폰 번호 알게 되었는데, 우리 만날 수 있을까요?


 철저한 기독교주의인 우리 아버님께서는 내가 남들과는 다른 대학생이 되기를 원하셨고, 그의 교회에서 몇 다리 건너 알던 사람을 나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그 여자는 성경 공부라면 미치고, 그녀도 우리 아버지처럼 자기의 생활을 나에게 강요한다. 그 이후로 원인 모르는 어지럼증이 생겼다.

“MT에 가기로 했어요. 아빠가 허락했어요. 솔직히 아는 친구도 몇 없고, 교수님이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번 MT는 가야할 것 같아요.”

이런 말을 하면서도 내 마음 한 구석에는 가는 것이 떳떳하지 않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MT에 가야 친구를 사귀고, 교수님을 알게 되는 건 아닐 것 같아. 그런 불건전한 곳에 꼭 가면서까지 친구를 사귀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기도해보고 생각해봐.”

아버지가 나에게 물어봤다.

언니는 뭐래? 가도 된다고 찬성 했니?”

……아니.”

그럼 가지마.”

 이런 황당한 말 바꾸기는 내가 제일 증오하는 짓이다. 아버지와 나는 이 일로 대판 싸웠다. 대학생이 MT에 간다는 것이 정말 이상한 일인가? 난 이 싸움에서 졌다. ‘MT따위는 내가 생각지도 못할 놀라운 스케일의 불건전한 것이며, 나 같은 경건한 사람은 가서는 물들기 때문이다라는 것이 결론이었다.

 나도 내 의견에 떳떳하지는 못하였다. 그런 나의 의견에 조금이나마 찬성의 뜻을 표하지 않는 그 여자와 아버지가 미웠기 때문일까. 그 여자에게 악감정이 생겼다. 그 여자 또한 내 사생활에 간섭하기 시작했다. 매일 문자에, 전화에 어찌나 연락을 하고 싶어 하시는지, 골치 아플 지경이다. 그녀는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고 자부하는 것 같다. 그러나 틀렸다. 난 그녀 모르게, 그녀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경건해 보이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이중생활이나 다름없겠지.

 무더운 여름날. 수험생 때도 없었던 어지럼증은 심해져만 갔다. 이내 나는 쓰러졌다고 한다. 깨어보니 병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무얼 하고 있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날 병원으로 이송해준 한 사람이 말하길 내가 학교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 컴퓨터 화면은 여행 정보 업체 사이트에 접속되어졌다고 덧붙였다. 여행 정보? 내가 누구와 여행을 가려고 집도 아닌 학교에서 여행 정보를 찾고 있었던 거지? 억눌린 나의 가정에서 가족 외에 다른 누군가와 여행을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가족끼리의 여행이라도 여행 계획은 한 번도 세운 적이 없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눈만 감고 있는 나는 점점 내 생각에 빠져 들어갔다. 의사가 찾아왔다. 좀 정신이 들었냐고, 급격한 스트레스와 더위로 인한 쇼크인 것 같다며 다른 검사를 권유했다. 스트레스……. 이중생활을 한다는 것은 수능을 치루는 것보다 더 큰 스트레스지. 내 자신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다른 검사는 필요 없을 것 같다며 의사를 내보냈다. 추가 검사 비용을 받기 위한 의도가 나에게는 먹히지 않았다고 판단했는지 의사는 쉽게 물러갔다.

난 어디로 가고 싶었던 것일까? 생각에 잠긴 나에게 아버지가 다가왔다.

무슨 생각이 많아서 스트레스가 쌓인 거니? 스트레스 받지 말고 기도를 하면…….”

나의 울분은 뻗쳤다. 이중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는 아버지로 인한 것이기도 했으니까.

맨날 그 놈의 기도, 기도, 기도. 지겹지도 않아?”

너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람이 무슨 말이니? 기도하면 뭐든 다 이루어주신다고!”

! 생각났다. 난 분명 아버지께 혼나고 있지만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쓰러지기 전 나의 첫 일탈을 계획하려던 참이었다. 며칠 전 어머니와 아버지의 대화를 엿들은 것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 놈의 자식은 어디라고 거길 기어들어가? 좁은 방구석에 참 잘하는 짓이다. 에휴, 한심해.”

자기야, 이참에 형네 한국으로 오는 거 아니야? 진호가 캐나다 가면 형수가 짜증나서 서울 온다고 난리칠 것 같은데?”

내가 15년 동안 본 적 없던 나의 감춰진 사촌 오빠. 진호 오빠는 제대한 후 변변치 못한 대학을 졸업하고 일자리는커녕 고기 집에서 아르바이트나 하고 있다고 했다. 제대로 된 직장을 갖기 힘들다고 판단한 탓인지, 큰아버지의 전처가 새로운 가정에 훼방을 놓기 위한 계획에서 비롯된 수작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진호 오빠는 캐나다에 갈 것이라고 할아버지께 선언했다고 한다. 내가 아들인데 못 갈 이유가 없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것이 내가 여행정보를 찾았냐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냐고? 나도 캐나다에 가고 싶기 때문이었다. 내 큰아버지가 그곳에 사는데 조카인 내가 못 갈 이유가 없다는, 누군가와 비슷한 이유로. 오랜만에 보는 큰 아버지 댁의 아름다운 가족사를 한 지붕 아래서 본다니,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이런 황당한 상황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가려고 하는 것만은 아니다. 일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제 일의 목적이다. 의사도 말하지 않았는가. 과장되게 말하면 나에겐 잠재된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 정신을 잃어 쓰러지기까지 하였다고. 이 시점에서 나에겐 휴식이 필요하다. 난 이틀 만에 퇴원하고 집에 돌아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어머니에게조차 말하지 못할 극비사항이기에 조심하여 행동했다. 준비하는데 걸린 시간은 한 달. 방학 기간이라 나의 도피 작전은 성공할 것이리라. 그 동안 캐나다에 진호 오빠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난다. 그 오빠는 남의 가정 풍비박산 만들려고 작정을 했나. 그 멀리까지 기어코 간 이유는 무엇일까. 여권을 만들고, 비행기 티켓 예매 완료.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된다. 그래도 예의 상 큰아버지께는 출발 하루 전에 전화는 했다.

큰아빠, 저 내일 캐나다로 떠나요. 죄송해요. 죄송한 거 아는데, 한 번만. 딱 일생에 한 번만 신세 좀 질게요. 모두에게 비밀로 해주세요.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 얼마 전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쓰러졌어요. 의사가 일상에서 도피해보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진단을 내리더라고요. 제가 갈 데가 어디 있겠어요, 캐나다밖에. 부탁 드려요. 2주면 다시 돌아 올 겁니다. 제발, 제발 비밀로 해주세요.”

에휴, 알았다. 와라. 지금 진호 온 거 알지? 사람이 배로 늘겠구나. 나도 부탁 하나만 하자. 여기 오는 조건으로 진호 한국으로 데려가라.”

이건 무슨 말씀? 오빠를 다시 데려가라고? 나에게 어려운 임무가 주어졌다. 그래도 일단은 무조건 오케이를 했다. 우선 짐은 친구 집에 가져다 놓았고, 집에서 몰래 빠져나와 공항에 도착한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지금 인천 공항이야.”

? 거길 왜 갔어?”

나 캐나다로 떠나. 이미 큰아빠는 알고 계셔. 2주 만 나한테 시간을 줘.”

너 당장 안 와? 너 대체 왜 안하던 짓을 하고 그러니?”

딱 한 번이야.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부탁할게. 나한테 큰 임무가 있어.”

거기 진호도 가있잖아. 넌 또 왜 가서 그 집 더 어렵게 하냐고, 대체.”

나 이제 이륙한다. 2주 뒤에 봐. 갔다 와서 자세히 말할게. 사랑해.”


 비행기는 이륙하고 지루한 비행시간을 거쳐 드디어 토론토에 도착했다.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큰아버지, 새로운 큰어머니, 그 둘 사이의 아이, 그리고 진호오빠까지. 안 본 사이 큰어머니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진호 오빠 문제 때문일 것이리라.

 캐나다 큰아버지 댁은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비좁았다. 새로 추가 된 나와 진호 오빠까지 포함하면 사람이 넘쳐날 정도로. 내가 온 것이 그들에게는 짐이 되었으리라.

 음침한 골목, 여자라면 힐끗 힐끗 쳐다보는, 인종 가릴 것 없이 수상한 남정네들, 더러운 환경. 이곳에서 큰아버지와 그 처가 어린 딸을 키운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여기서 그들이 꼭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서울에 살면 캐나다에서는 손에 쥐지도 못할 돈을 갖고, 넓은 집도 가질 수 있는데 형수의 고집으로 15년 동안 그 짓거리를 하고 산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15년간 진호 오빠와 만나지 못한 그 공백이 너무 컸던지, 우리는 정말 어색했다. 솔직히 내가 캐나다집 식구들 사이에 끼면 분위기가 더 좋아지겠거니 생각해 보기도 했다. 이 몸뚱이가 정말 진상을 부리러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난 그래도 어색함을 깨기 위해 진호 오빠에게 밖에 나가서 산책을 하자고 청했다. 진호 오빠도 그러자고 했다. 우린 15년간 묵혀오고 감춰왔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언제 알았어? 큰아빠 재혼 하신 거?”

……. 느낌은 있었는데 확실히 안 건 등본 떼어 봤을 때. 내가 우리 엄마의 자식이 아니라 저 여자의 아들로 나와 있더라고.”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는…….”

내 두 뺨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진호 오빠가 없어서 영정 사진을 끌어안고 영구차로 가는 역할은 고모부가 대신 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오빠는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오빠,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나 정말 많이 울었어. 오빠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힘이 되었을 거야.”

미안해. 나 그 때 군대 가 있었잖아. 그리고 할머니 돌아가셨다는 것도 일 년이나 지난 뒤에, 월세에서 전셋집으로 이사 갈 때 알게 되었어.”

 할머니 돌아가신 것도 알려주지 않는 사람이 큰아버지의 전처이다. ‘돈도 받을 것은 다 받으면서 어떻게 이런 식으로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15년 사이의 공백이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10일이 지났다. 그 동안 우리는 여행을 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서울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여보세요? 아버님이세요?”

……그래, 나다. 애들은 잘 지내고 있니? 애미가 고생이 많구나. 여긴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철없이 거기 가 살고 있는 너희들에게 전할 소식이 있어 전화했다.”

……?”

진선이가 갔어. 결국엔…….”

어디를요? 캐나다로요?”

아니, 먼 곳으로…….”

이리 줘봐. 무슨 통환데…….”

얼굴에 검은 빛이 역력한 큰어머니의 수화기를 큰아버지가 뺏어갔다.

진선이가 죽었다고…….”

? 무슨 말씀이세요. 어린 애가 왜요?”

왜긴 왜이겠냐…….그렇게 안 먹으니 병으로 죽었지.”

아버지, 성미는, 성미는 괜찮아요?”

자식새끼가 죽었는데 괜찮겠냐? 너희들 다 어서 채비하고 오거라. 그래도 조카고 친척이 죽었는데 안 와보면 쓰나.”

알겠어요, 아버지. 가장 빠른 걸로 타고 갈게요.”

전화를 끊은 큰아버지는 당장 서울로 가는 비행기 표를 알아보았다. 진선이가 죽었다니. 그 말을 들었을 때에는 사실 감흥이 없었다. 우리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친척 지간이어도 즐겁게 놀았었던 기억은 전혀 없었다. 그 병이 생기자마자 날카로웠던 성격은 더욱 더 사람을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친척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그래도 슬프지 않았다. 이기적이라고 보일 수 있겠지만, 남보다 못한 사이였기에.

나도 가요 아버지?”

너도 가야지, 여기 혼자 있으려고?”

난 온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가버리면 다시는 여기 오지 못하게 할 거잖아요.”

큰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진호 오빠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기 때문일까. 나는 가져온 짐을 모두 챙기기 시작했다. 옆방에서 큰 소리가 났다.

이 참에 서울로 들어가자.”

내가 어떻게 당신이랑 결혼한 건데. 당신이 시집살이 안 시키고, 캐나다 가서 산다고 해서 당신이랑 결혼한 거 몰라?”

알지, 잘 알지. 이제 당신 괴롭힐 시어머니도 안 계시잖아. 우리 집 이제 제사 안 지내는 것도 알거고. 뭐가 문젠데? 딸내미 교육시키기에는 서울이 나아. , 진호도 온 마당에 아직도 캐나다에서 그렇게 살고 싶니?”

맞는 말이었다. 더 이상 큰어머니도 반박하지 않았다. 방에서 나온 큰어머니는 나에게 비행기 표는 내일 것으로 예약하라고 했다. 집 정리하는 데는 적어도 하루는 필요하지 않겠냐면서. 난 진호 오빠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큰엄마, 큰아빠 다 여기를 떠날 건가봐. 오빠는 그래도 여기 있을 거야?”

여기 있어서 저 사람들한테 내가 피해만 주는 거였나 봐. 난 그냥, 그냥 내 아버지니까…….나도 다시 서울로 갈래. 내가 여기에 있어서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진호 오빠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짐을 쌌다. 마침내 그 내일이 되었다. 집 정리나 월세 계약 등은 다시 큰아버지가 와서 해결하기로 하고, 대충 정리를 마치고 다들 그 좁은 집을 떠났다. 공항에 들어서까지 아무도 말이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미션, 바로 진호 오빠를 서울로 데려가라.’는 그 미션을 이런 식으로 해결할 줄은 몰랐다. 우리는 공항에 마중 나온 아버지의 차를 타고 한창 발인을 진행 중일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다른 소리는 안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장례식장에 도착해서는 이단들로 둘러싸인 고모가 슬피 울고 있고, 그 옆에 고모부도 상실감에 쪄든 표정으로 아무 생각 없이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진선이를 떠나보냈다. 고모는 아버지에게 다가와 이런 인생을 원한 것은 아니라며 한탄했다. 아버지는 고모에게 제대로 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고모는 회개했다. 이제는 이단에서 빠져나올 때가 되었다면서, 자기의 딸을 그렇게 죽게 한 것도 당신 자신이라면서.


 이 사건 이후에 큰아버지 가족은 서울로 와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뒤로 진호 오빠의 소식은 거의 들을 수 없다. 아무런 수확 없이 돌아왔기에 자괴감에 빠졌을 수도, 아니면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한 계획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캐나다에 돌아와서는 더 심한 감시 속에 살게 되었다. 아버지, 그리고 나와 성경공부를 같이 하는 그 여자의 감시 말이다. 어떻게 보면 나도 불행해 진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이중생활을 계속해 갈 것이고, 나의 스트레스는 더욱 쌓여져 가겠지. 그러면 난 또 다시 도피를 원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일까? 다른 사람이 하는 건 다 해보는, 그런 남들과 똑같은 삶을 원해서? 이제는 보통과 같은 자유로운 삶을 동경하지도 않는다. 보통을 위해 나의 특별함을 희생하지는 않겠다. 이게 내가 처한 상황이고, 그 현실을 받아들이려 한다. 친가 식구들이 보통 같지 않은 것도, 단순한 삶은 아니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인정하면서. ‘보통이라는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각각은 오로지 보통을 가장한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느낀다. 나와 우리 친가 식구들은 보통 같지 않은 삶을 산다고 여겨져도, 드라마와 같은 삶이라는 평가를 받아도, 우리는 그저 우리만의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곽희승

hskwak03@naver.com

010-2955-6451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콘테스트-단편소설 공모게시판 이용안내 16 file korean 2014.07.16 3332
165 ▬▬▬▬▬ <창작콘테스트> 제6차 공모전을 마감하고, 이후 제7차 공모전을 접수합니다 ▬▬▬▬▬ korean 2015.08.11 82
164 현실성이 없는 종말이야기. 인간은위대해 2015.08.10 252
163 첫번째 인간 량양 2015.08.10 167
162 당신의 로베르트는 욘주 2015.08.10 319
161 보험왕 조만나씨 몽쉘 2015.08.10 342
160 모래 시계 casker2 2015.08.08 279
159 똥개의 나날 진씨. 2015.08.02 40
158 회전목마 클리셰 여느 2015.08.01 421
157 동거 나타샤 2015.07.28 89
156 찰나의 모든, 그 순간 히여미 2015.07.28 46
155 여름기억 키싸일 2015.07.27 92
154 동성의 법 이야기소녀 2015.07.19 180
153 번데기 file Raina 2015.07.15 57
152 엄마의 밥상 알로 2015.07.13 387
» 보통 루루 2015.06.29 212
150 ▬▬▬▬▬ <창작콘테스트> 제5차 공모전을 마감하고, 이후 제6차 공모전을 접수합니다 ▬▬▬▬▬ korean 2015.06.11 114
149 상상 - 형상을 생각하다 베리나으 2015.06.10 291
148 슬픈 농담 문정석 2015.06.10 40
147 오늘이다 리망 2015.06.10 36
146 시지프스의 돌 외 1편 장굴 2015.06.10 41
Board Pagination Prev 1 ...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 37 Next
/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