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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2 18:09

똥개의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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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개의 나날

 

 

  홧김에 훔쳐 온 똥개가 나를 올려다보며 꼬리나 흔들고 있으니 나는 헛웃음만 나와 그만 풉하고 웃어버렸다. 네가 그래서 똥갠가 보다 아무한테나 꼬리를 흔들어대니. 주인이 보고 싶다고 앓는 소리를 내거나, 구석에 쪼그려 앉아 눈물이라도 흘리고 있으면 너를 가엾게 여긴 내가 마음이 흔들려 곧장 네 주인에게 데려다 줄 텐데 어째 좋다고 혀까지 내밀고 저렇게 팔짝팔짝 날뛰고 있는 건지 너무하기도 하다. 제 주인은 지금쯤 울고 있을 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녀석은 정신없이 뛰어놀다가도 나를 보고서는 씩 웃는데 이게 좋아서 그러는 건지, 넌 이제 큰일 났다며 놀리는 건지 잘 모르겠다. 사람 말을 못하는 녀석이니 답답하기만 하다. 개 말을 배워둘걸 그랬다.

  밥 달라고 저렇게 날뛰는 건가 해서 슈퍼에서 사온 소시지를 조금 떼어 입에 갖다대주니 날름 받아먹곤 또 달라고 혀를 날름거리는데 주제에 애완견이라고 꽤 앙증맞다. 이러다 정들지. 난 지금 너랑 놀아주는 게 아냐 똥개야.

  녀석을 훔쳐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이미 화가 풀렸고, 똥개를 내 방에 내려놓았을 땐 다리가 풀렸다. 춥지도 않은데 온몸이 떨리고 손이 차가웠다. 도망쳐 나온 녀석을 길에서 우연히 주웠다는 핑계로 다시 돌려주러 갈까 생각했지만, 이미 CCTV에 찍혔겠지. 내가 씩씩거리며 녀석을 데리고 가는 게. 솔직하게 말하고 잘못했다고 싹싹 빌까? 아르바이트는 그만 두면 되지 뭐. 그럼 방세는? 복학하고 나서 차비는? 여기만큼 시급 잘 주는 데가 어디 있다고.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이참에 윤주언니에게 나를 화나게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렸으니 그 언니도 나를 무서워하게 되지 않을까? 이제 너한테 잘해 줄 테니 제발 우리 쑥이를 돌려달라고 울며 매달릴 수도 있는 법. 그 언닌 분명 강자한테 약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까 화났다는 이유로 자기 개까지 훔친 나를 오히려 무서워하지 않을까? 나는 그동안 너무 착했다. 그래 이건 자존심 싸움이다. 그냥 집에 가만히 있자. 그러면 언니가 찾아오든지 경찰이 나를 찾아오겠지.

  경찰이 찾아오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럼 나는 감옥에 들어가겠지. 감옥에 들어가서 살인이나 사기죄로 잡혀 온 죄수들 사이에서 나는 구석에 찌그러져 있을 테고, 동물애호가로 활동했던 죄수에게 두들겨 맞고, 개도둑이라는 별명으로 놀림이나 당할 테고, 내 정신은 피폐해질 테고, 비뚤어진 나는 석방 후 다른 범죄를 저지르다가 또 감옥에 들어가겠지. 그렇게 돼 버릴까봐 나는 무서웠다. 그 언니가 나를 경찰에 넘겨 버릴까봐 두려웠다. 저 똥개의 주인 윤주언니 말이다.

 

  아르바이트 첫날에 윤주언니를 보며 나는, 웃는 게 예쁘고 무표정도 예쁘니 똥마려울 때의 표정마저 예쁠 언니라고 생각했다. 또 몸매는 어찌나 가느다랗고, 가녀린 몸매에 맞게 얼굴도 조막만하고, 그 작은 얼굴로는 어찌나 화사하게 웃고, 웃는 눈은 또 얼마나 반짝거리고 그윽한지 그 언니는 만인에게 사랑받는 모든 조건을 갖춘 여자였다. 남자애들은 물론이었고 조용하던 여자애들마저 윤주언니에겐 말 한번 걸어보려 선뜻 먼저 다가가 친해지려 노력했으니 말이다. 남의 얘긴 관심 없고 서로 자기얘기에만 바쁘던 아이들도 그 언니가 입을 여는 순간 자기들은 입을 싹 다물고 윤주언니의 말에 집중했다. 윤주언니가 나타나면 장난스럽게 “여신이 나타났다!” 라고 외치면서 시끌벅적하고 요란스럽게 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이 개성강한 아이들과 별 탈 없이 지내려면 윤주언니의 총애를 받아야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다.

  나의 본능은 윤주언니를 향해 배를 드러냈고, 윤주언니는 오냐오냐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의 충성에 감동한 윤주언니는 식사시간에도 나를 꼭 옆자리에 앉히고, 나와 눈이 마주치면 먼저 씩 웃어주었으며, 나에게 슬쩍 다른 아르바이트생의 뒷담화를 했다. 다른 사람의 뒷얘기를 내게 한다는 것은 언니가 나를 믿고 있다는 의미이고, 믿을 건 나밖에 없다는 의미이지 않겠는가. 윤주언니의 뒷담화 대상이 된 아이는 며칠 후 일을 그만 두었지만, 그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나도 몰랐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니까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애가 일을 그만 두자 언니는 나에게 일거리를 잔뜩 주었다. 신입인 내가 일을 빨리 배웠으면 하는 언니의 배려인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믿었었다. 나는 언니에게 이런저런 일거리 받으며 첫 주엔 내가 신입이니까 내게 이것저것 시키는 구나, 둘째 주엔 내가 일을 잘해서 이것저것 부탁하는 구나, 셋째 주엔 언니가 나를 제일 편하게 생각하는구나, 라고 홀로 좋아하며 다른 애들의 잡일까지 떠맡았다. 애완용품점에서 그냥 판매만 하면 되지 뭐 그리 할 일이 많은가 싶었지만 참 할 일이 많더라. 나는 하루 종일 개똥을 치우고, 개 오줌을 닦고, 개 샴푸를 팔고, 개 옷을 추천해주고, 개 사료 샘플을 먹이고, 개 침대를 꺼내 팔아치웠다. 나는 항상 바빴고, 한가해 보이던 윤주언니가 바닥에 떨어진 개 껌을 나더러 주워 올리라고 시켰을 땐 무언가 답답하고 미묘한 기운이 나를 파고들고 또 파고들고 계속 파고들었는데 그 출처를 알 수 없어 무척 답답했다.

  매장에 너부러진 개똥을 단 한 번도 치운 적 없는 윤주언니에게 나는 물음표를 품었지만 아주 잠시였을 뿐, 곧 느낌표를 얻었다. ‘내가 신입이니까 당연히 일을 더 많이 하는 거지!’ 라고 생각하며 나는 사회생활의 이치를 깨달은 어른이 된 듯 뿌듯하기까지 했다.

 

  나보다 훨씬 더 어른인 점장은 윤주언니를 참 예뻐했는데 이는 아주 당연한 이치였다. 특유의 친화력과 미모로 단골을 여럿 만들고 손님들과 함께 오는 강아지들에게마저 사랑받는 아르바이트생을 어떤 점장이 싫어하겠는가. 그깟 잡일 하는 것 좀 싫어한다 해서 어찌 혼낼 수 있겠는가. 잡일은 다른 아이를 시키면 되는 거지. 그 잡일의 주인공이 굳이 내가 되었다는 게 기묘했지만, 이렇게 바쁜 게 오히려 더 나았다. 손님이 없어 일할 거리도 없어서는 장사가 안 돼서 월급이 밀리고 밀려 지금까지 급여를 못 받고 있는 이전 아르바이트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손님이 없어 장사가 안 되었대도 내가 집지키는 강아지마냥 가게를 지킨 데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아직도 난 구걸하듯이 월급 독촉전화를 정중히 걸고 있고, 상대는 정말 미안하다는 말로 나의 구걸을 정중히 거절하더라. 그럴 거면 차라리 이렇게 바쁜 게 낫지. 암 그렇고말고.

  내가 사료 유통기한을 체크하고, 다 팔린 개 껌을 창고에서 꺼내 채운 뒤, 화장실청소를 마치고 젖은 발을 말릴 때 윤주언니는 다른 아르바이트생과 함께 장난치며 쑥이와 놀고 있었다. 쑥이는 윤주언니가 키우는 강아지인데 눈가에 백 원짜리 동전만한 쑥색 점이 있어서 이름이 쑥이다. 언니는 가끔 쑥이를 매장에 데려와서 우리에게 보여주곤 한다. 녀석은 잡종이고 못생겼다. 제아무리 깔끔하게 털을 깎고 예쁜 옷을 입어도, 태가 안 살고 지저분해 보이는 게 암만 봐도 똥개였다. 그런데 언니는 그 똥개가 뭐가 그리 예쁘다고 번쩍 들어 아기처럼 껴안고 쓰다듬어주고 뽀뽀까지 해주는 것인가? 나는 표정관리를 꽤 잘하는 사람이지만 그때 왠일인지 표정관리가 안 돼서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그건 쑥이라는 똥개에 대한 묘한 부러움이었다. 나는 그날 밤 잠들기 전에 윤주언니가 나를 번쩍 들어 껴안고 쓰다듬어주고 뽀뽀까지 해주는 상상을 했다. 지금 떠올리려니 참 해괴망측하지만 나는 그만큼 그 언니의 사랑을 받고 싶었다.

  나는 이렇게까지 윤주언니를 좋아했고, 언니에게 언니 몸매는 딱 보기 좋게 마르고 비율이 훌륭하며 균형이 잡힌 게 아무리 보아도 무용하는 사람의 몸인데 언니의 전공이 무용이 아니란 게 놀랍다며 알랑방귀까지 뀌어댔는데, 어느 순간부터 윤주언니를 시작으로 아이들이 내게 조금씩 거리를 두었다. 다 같이 모여 얘기하는데 내게서 등을 돌리고 얘기하질 않나, 내가 말이라도 걸면 어색하게 웃질 않나, 이젠 자기들끼리만 웃고 농담하지 나한텐 농담은커녕 어색한 웃음조차 지어주지 않더라.

  하루는 내가 윤주언니에게 농담이나 걸어보려 익살을 떨었는데 윤주언니가 으흥, 하고 눈을 일그러뜨리더니 다른 알바생에게 휙 가버리더라. 나는 그때 윤주언니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네가 말을 걸면 어색하고 지루해 미치겠다는 그 표정. 글이나 그림으론 설명할 수 없는 그 특유의 표정을 나는 본능으로 느꼈다. 그래도 나는 그 예쁘게 생긴 언니를 의심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나는 윤주언니에게 잘못한 게 없으니, 죄 없는 사람을 미워할 언니는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오히려 지나치게 예민하고 소심한 내 탓이라며 자책했다.

  하지만 오늘 나는 윤주언니를 마음을 알아버렸다. 오늘 난 유통기한 지난 간식을 발견했고, 한꺼번에 정리 하려고 잠깐 카운터에 올려두었는데, 카운터 의자에 앉아 수다나 떨던 윤주언니가 내게 말했다.

 

 

  “미연아 너 일 진짜 열심히 한다. 그럼 돈을 더 받니? 응? 계속 수고하고.”

 

 

  비아냥거리는 말투. 이전에 알바하던 아이를 뒷담화하며 비꼴 때 쓰던 말투다. 무언가 아니꼽고 우스운 걸 볼 때 사람들이 흔히 짓는 표정. 나는 언니가 오늘 기분이 영 아니라서 저러나보다 생각하곤 괜히 민망해져서 장난이나 치려고 언니에게 다가가는데 글쎄 언니랑 제일 친한 애가 언니한테 “언니, 미연이한테 시집살이 시키는 거야?” 라며 낄낄거렸다. 그때 나는 언니가 나 들으라고 한 말과 내뱉던 호흡까지 똑똑히 기억한다.

 

 

  “내가 일 시켰냐? 남자애들 보라고 지 혼자 오버하는 거지.”

 

 

  나는 언니의 말을 듣고 귀싸대기를 두들겨 맞은 것 같았다. 눈두덩이 부터 시작해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식은 손에서 식은땀이 났고, 얼굴은 덥고 화끈거렸다. 나는 좋아하던 언니에게 내 모든 것을 무시 받았다는 생각에 온몸이 떨렸다.

  나는 그저 열심히 일했을 뿐이고, 언니가 하라는 데로 다 했고, 솔직히 같이 일하는 사람이 자기 일까지 도맡아서 해주면 편하고 좋지 않은가? 그리고 첫날부터 이것저것 시키며 나를 누구보다 성실한 일꾼으로 만들어놓은 게 누군데 이제 와서 저런 소리를 하는 거지? 그리고 나는 언니에게 잘 보이려했지 남자애들에게 잘 보이려 오버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똑부러지게 “언니, 그게 아니라 저는요 남의 돈 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열심히 내 할 일만 하는 것뿐이에요. 뭔가 오해 하신 것 같은데요. 남자애들한테나 잘 보이려고 열심히 일한 게 아니에요. 다 오해에요 언니.”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남의 얘길 엿들은 꼴이 되고, 괜히 잘난 체 하는 것 같아 그냥 못들은 척 등을 돌리고 어정쩡하게 서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귀가 뚫려있는데 듣고도 못들은 체 하려니 괴로웠지만 나는 꾹 참았다.

  이로써 언니의 그간 행동이 모조리 이해가 갔다. 저 언니가 나를 싫어하는구나. 나는 상처받은 척, 억울한 척, 충격 받은 척 입을 살짝 벌리고 언니를 아련하게 쳐다볼까 생각했지만 괜히 착한 체 하는 것 같고 민망할 것 같아 그만 두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여우 짓을 하고 있었던 건가? 내가 욕하고, 재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런 여우 짓 말이다. 남자애들은 개뿔, 그 애들 역시 나를 그저 성실한 일꾼으로만 생각하는데 말이다. 윤주언니에게 나는 재수 없고, 궁상맞고, 기분 나쁘게 오버하고, 그래서 등을 돌리고 얘기하고 싶고, 그래서 피하고 싶은 여우였던 것이다. 똥개만도 못한 여우.

  나는 울지는 않았지만 무척 슬펐다. 상처받진 않았지만 도저히 일을 할 기분이 아니었고 집에 들어가고 싶었다. 화가 나고 짜증났다. 그래서 제대로 여우 짓 한번 해보기로 작정했다. 홧김에 말이다. 나는 점장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일을 진짜 열심히 하며 계속 수고하느라 몸이 무척 피곤하니 일찍 퇴근해 보겠다고. 물론 윤주언니 들으라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그때 언니의 표정을 힐끗 살펴봤는데 언니의 썩은 표정은 정말 못생겼더라.

  나는 언니에게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인사를 건네는데 언니는 못 들은 체 수다나 떨더라. 나는 화가 나서 붉어졌다. 거울을 보진 않았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아 내가 지금 얼굴이 시뻘개졌겠구나, 라고. 홧김에 나는 그만 윤주언니에게 소리 질렀다.

 

 

  “누가 저를 이렇게 만들었는데요? 저 무슨 짓 할지도 몰라요. 확 죽어버릴지도 몰라요. 이왕이면 언니네 집에서요. 언니 방 침대에서 배 찌르고 죽을거에요. 그럼 언닌 자려고 침대에 누울 때마다 제가 생각나서 평생 괴롭겠죠? 밤마다 제 환영이 보일 테고, 잠도 못자고, 밤새 죄책감에 시달리고 제 생각이 나서 슬프고 괴롭겠네요? 귀신 돼서 밤마다 언니한테 나타나서 안고 만지고 뽀뽀도 할 거. 그럼 언닌 무서워서 정신과에서 상담 받고 그러겠죠? 아니 오히려 만져주니 좋아하려나? 네? 아무 말이나 좀 해봐요.”

 

 

  홧김에, 나는 그랬다. 그랬을 것이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때 윤주 언니와 알바생의 표정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내가 그 말을 던졌는데도 둘이서만 수다를 떨었다는 것이다. 어제 본 드라마 얘기, 취업 고민, 연애 상담을 하더니 내 뒷담화도 하더라. 내가 바로 앞에 있는데도 말이다. 나는 내가 귀신이 된 줄 알았다. 난 항상 이렇게 씹을 거리였구나. 나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아깐 시뻘갰는데 말을 끝내고서는 새파래졌다.

  무시당했다는 민망함과 수치심에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여기저기 영역표시를 하며 돌아다니는 윤주언니의 똥개가 눈에 띄었고, 나는 윤주언니를 엿 먹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놈을 한쪽 허리에 끼고 그대로 집에 데려왔다.

  언니는 내가 쑥이를 데려가는 걸 수다 떠느라 보지 못했나보다. 봤으면 바로 쫓아왔겠지. 쫓아와서 이 미친년이 뭐하는 짓이냐며 똥개를 뺏으려 들었을 테고, 가냘픈 몸으론 힘으로 뺏을 수 없으니 기운을 잃고서는 내게 사정했겠지. 잘못했다고. 미안하니까 제발 쑥이를 돌려달라고. 눈물도 흘렸겠지. 그럼 나는 마음이 약해져서 쑥이를 돌려줬을 텐데 언니는 끝내 달려 나오지 못했다. 어쩔 수 없다. 이건 내게 상처 준 대가다.

 

  윤주 언니는 지금쯤 사랑하는 똥개를 잃어 똥줄이 탈게다. CCTV를 확인해보고 개도둑이 바로 나였단 걸 알고 내게 전화를 수십 통을 했을 것이고, 욕이 섞인 카톡 메시지를 수백 통은 보냈겠지. 헌데 어쩌나 나는 지금 휴대폰을 꺼놓았는데. 어디 실컷 전화하고 실컷 메시지나 보내라지.

  나 원, 창피해서 누구한테 털어놓지도 못하겠다. 길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보면 그렇다고 개를 훔쳐오냐고 나를 타박할테고, 나를 사회성이 부족한 애송이로 보겠지. 하지만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이건 다 윤주언니 탓이다.

 

 

  “야 넌 좋겠다. 일 안 해도 되니까.”

 

 

  나는 쑥에게 말했지만 녀석은 한국말로 얘기하라는 듯 툭 튀어나온 두 눈만 끔뻑거리더니 홱 드러누웠다. 쓰다듬어 달라는 건가, 졸린 건가? 소시지를 다섯 개나 까먹곤 이제 졸린다보다. 녀석이 내 발치에서 배를 드러내며 아양을 떠는데 강아지도 아닌 놈이 참 주책맞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흐뭇한 마음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허허 웃어버렸다. 너를 키우니까 윤주언니가 그렇게 잘 웃었던 거지.

  녀석은 벌러덩 드러누운 채 하품을 하더니 이내 졸려 잠들었다. 부럽다. 나도 아무생각없이 잠이나 자고 싶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고 미칠 것 같다. 지금은 미칠 것 같고 세상이 끝난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겠지. 그저 어릴 때 홧김에 했던 철없는 행동이 되겠지.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것이다. 그렇다면 어서 시간이 흘렀으면 좋겠다. 하지만 시간은 너무 더디게 흐르고, 내 이마에선 식은땀만 흘렀다.

  언니에게 달려가 녀석을 돌려주고 싹싹 빌 것인지, 자존심 지키려 미친 척하고 집에 가만히 있을 것인지 생각하며 몇 시간을 훌쩍 흘려보냈다. 그러다가 나는 잠든 녀석을 바라봤다. 놈은 작고, 굵고, 하얗고, 파랗다. 신다 버린 낡은 장화처럼 생겼다. 비바람에 맞아 초라하게 시들어버린 낙엽 같기도 하다. 누군가가 나의 잠든 모습을 보며 어떻게 생각할까? 초라하다고 생각할까? 나는 갑자기 우울해졌다. 아까부터 겁이 나고 손이 떨리고 우울하긴 했지만, 아까보다 더 심하게 우울해졌다. 내가 놈을 보는 눈빛으로 누군가가 나를 내려다볼까봐 우울해졌다.

  안 되겠다. 기분이 이상하다. 이만하면 이제 그 언니도 좀 반성했겠지. 잠시나마 엿 좀 먹었겠지. 윤주 언니에게 놈을 데려다주자. 나는 몇 시간 동안 꺼져있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전원이 켜지는 동안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전화는 몇 통이나 왔을까? 경찰서에서도 연락이 왔을까? 윤주언니도 지금 나처럼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려나? 몸이 떨리고 심장이 떨려서 나한테 사과 메시지라도 보냈으려나? 화면이 켜졌지만 나는 확인 할 수가 없었다. 참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대학 합격 발표 순간과 비슷한 긴장이었다. 무서우면서도 기대되는 그 순간. 그 순간동안 나는 똥개를 흔들어 깨웠다. 집에 갈 시간이라며 흔들어 깨우니 녀석은 벌떡 일어나 내 다리에 제 얼굴을 붐벼댔다. 너 이 새끼, 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니? 난 널 납치한 거란다. 나는 윤주언니가 내게 보냈을 욕이 섞인 메시지나, 수많은 부재중 전화 그리고 혹시나 미안하다는 메시지가 오지 않았을까 기대했다. 그래 미안해하면 못이기는 척 용서해줘야지.

  나는 데이터가 잘못 입력된 로봇마냥 온갖 감정이 뒤섞인 채 화면을 바라봤다. 쑥이가 궁금한지 내 다리 위로 껑충 올라왔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휴대폰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고등학교 친구에게 온 게임초대 카톡은 무사히 왔는데 말이다. 대체 왜 윤주언니의 카톡 메시지나 수많은 부재중 전화, 혹은 경찰서에서의 연락은 오지 않았느냔 말이다. 휴대폰이 고장 났나보다.

  나는 홀린 듯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상담 마감시간을 1분 남겨두고 부가버튼을 눌러가며 아슬아슬하게 상담연결에 성공했다. 왜 휴대폰 전원이 꺼졌을 때 나한테 온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를 지웠느냐고 따져 물었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진 상담원은 지나치게 친절한 목소리로 고객님 앞으로 수신된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가 사라져서 불편하셨겠다며 일단 나를 달래주곤, 특정 메시지 업체인 카카오톡의 메시지는 저희의 담당이 아니라서 확인을 해드릴 수 없으니 죄송하며, 연락문제를 확인을 해드렸는데 고객님 앞으로 온 부재중 전화는 단 한 건도 없었다며 조곤조곤 설명해주었다.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그 정도로 눈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니까. 휴대폰을 켠 순간 알아챘다. 윤주언니한테 카톡 메시지나 부재중 전화는 오지 않았다는 걸. 나는 몇 주 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터졌다. 똥개 녀석은 이런 나를 올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불쌍하다? 초라하다? 나는 수화기를 붙잡고 소리 내서 울었다. 실컷 울었다. 퇴근시간을 넘긴 상담원은 차마 먼저 전화를 끊지 못하고 연신 “고객님, 고객님?” 이라며 나를 불렀고, 나는 마냥 울어재꼈다. 나는 이 수화기너머 상담원이 내 울음소리를 듣고 아까처럼 달래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친절하고 상냥하게 말이다. 허나 상담원은 퇴근 후 친구와 술 한 잔 꿀꺽 마시곤 사회생활의 고충을 털어놓으며 말하겠지. 오늘 차암 개 같은 고객을 다 봤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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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오늘이다 리망 2015.06.10 36
146 시지프스의 돌 외 1편 장굴 2015.06.10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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