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나는 **여자기숙학원을 다니고 있는 ‘이진희’이다. 나의 부모님은 지금까지 매달 몇 백 만원씩 들여가며 내 어깨에 무게를 늘려왔다. 그리고 그 무게는 이윽고 나를 짓이겨버리기 시작했고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시험날짜는 숨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내 머릿속은 점점 더 생존의 욕구로 가득 찼다. 때문에 밖으로 뛰쳐나가는 상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는 건 당연한 일상이었다. 나에게 유일하게 남은 탈출구라 함은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철창 밖에서 스며들어오는 시원한 밤공기를 맡는 일. 밤공기를 맡고 있자면 지긋지긋한 종이냄새와 연필냄새를 잊을 수 있었다. 그날따라 바람과 함께 흩뿌려지는 나뭇잎소리가 한동안 들어보지 못한 노래처럼 들려왔다. 나는 여러 번 뒤척이고는 시험이 끝나면 이곳에서 탈출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만을 되 네이며 잠에 들었다. 달빛은 유난히도 밝게 빛났다.
몇 시간이나 잤을까. 기상나팔소리가 들리고 원생들은 잠옷을 입은 채 기숙학원 운동장으로 집합했다. 나는 조금이라도 더 잠을 청하려 애를 썼지만 곧 원장이 들어와 나를 깨웠고 내가 당장일어나지 않으면 죽 일듯 한 기세였다.
오늘따라 이상하게 숨이 정말로 쉬어지지 않았다. 기상체조를 하면서도 숨이 차올라 몇 번이고 멎을 뻔 했다. 결국 어지러움을 느끼고 잠시 동작을 멈췄고 이내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았다. 주위를 둘러봤을 때 주위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였다. 나를 무섭게 쳐다보고 있는 친구들과 사람들. 나를 빨리 일으켜 세우려고 독촉하는 듯 했다. 고개를 저으며 눈을 비비고는 다시 사람들을 봤을 때는 모두들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침밥을 먹으면서도 숨은 여전히 턱턱 막혀왔다. 덕분에 살짝 체했는지 속은 더부룩하고 두통도 찾아왔다. 양호실에 찾아가 소화제를 받아먹고 침대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 오전 자습시간까지는 아직 30분은 남아있으니 괜찮겠다는 생각과 함께 눈을 감았다. 조용히 양호선생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래서 학교는 들어가겠어? 시간 아까운 줄 모른다니까. 숨은 더욱 막혀왔고 거칠고 빠른 호흡이 계속되었다. 양호선생님이 이상하다는 듯이 침대 커튼을 걷었고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도망치듯 양호실을 빠져나왔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그녀에게서 알 수 없는 살기가 느껴졌다. 지금 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보였다. 나에게 무서운 눈빛을 쏘아댔고 그 눈빛은 자습시간이 되자 나를 미치게 했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듯 했고 나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벌벌 떨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심해졌고. 오늘은 일주일 째 되는 날이다. 다크써클은 심하게 내려왔고 호흡은 짧았고 또 불규칙했다. 여기서 빠져나가고 싶다. 이 지긋지긋한 생활 속에서 빠져나가고 싶다. 무엇보다도 이곳은 너무 무서웠다. 눈만 감으면 느껴지는 수많은 시선들.
‘그리고 오늘 탈출을 감행하기로 했다.’
나는 **여자기숙학원을 다니고 있는 한 학생이다. 시험날짜가 다가오면 더 지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요즘 따라 같은 방을 쓰고 있는 진희가 많이 지친 듯 했다. 솔직하게 표현하면 미쳐버린 것 같았다. 다크써클은 광대까지 내려올 기세였고 숨 쉬는 것도 거칠어졌다. 걱정되는 마음에 다가기만 해도 화를 버럭버럭 낸다. 노트를 빌려달라는 걸로 착각하는 건가? 우리는 2층 침대를 사용하고 있는데 위층인 그녀의 침대에서 삐걱 거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나쁜 년 분명히 나 몰래 졸린 몸을 뒤척이며 밤새 공부를 하는 게 분명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뒤척이는 소리가 들린다. 내심 화가 난다.
나는 **여자기숙학원에서 양호선생을 맡고 있다. 대부분 하는 일이라고는 생리대를 챙겨주거나 빈혈기가 있는 학생들을 침대에서 재워주는 일이었다. 때문에 최근에 한 이상한 학생이 기억에 남는다. 체한 것 같다며 거친 호흡을 내쉬며 나를 찾아온 그녀는 내가 준 소화제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곧바로 침대에 가서 누워버렸다. “그렇게 몸상해서 공부나 되니? 컨디션 조절 좀 하지 그래?.” 무심코 뱉은 말이었다. 이상하게 그녀의 호흡은 갈수록 거칠어졌고 나는 그녀를 살피기 위해 커튼을 걷었다. 그러자 그녀는 나를 보고 하얗게 질려서는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양호실을 달아나버렸다.
나는 **여자 기숙학원 원장이다. 나는 돈을 받고 학생들을 먹여주고 재워주며 공부만 시키면 된다. 작년 진학률이 좋았던 탓인지 올해는 한 재벌가의 딸도 등록을 했다. 등록을 하던 날에는 거금을 쥐어주며 진희 잘 부탁드립니다. 라는 말을 남겼고 매달 원비보다 많은 금액을 보내고 있다. 때문에 올해 진학률은 더욱 신경이 쓰였다. 나는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학생들을 더욱 강하게 잡았다. 문제는 진희였다. 애가 게으른 것은 아니지만 공부에는 흥미가 없어보였다. 나는 진희 부모님의 기대에 부흥해야 했기 때문에 그녀는 특별히 더 압박했다. 최근에는 얼마나 싫었는지 아침부터 일어나지 않더니 체조시간에는 쓰러진 척까지 했다. 정말 골치 덩어리 학생이다.
나는 침대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래층 침대에서 나와 같은 방을 쓰고 있는 친구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녀의 얼굴은 점점 더 무서워졌고 나를 죽일 기세로 일어났다. 두려웠다. 심장은 빠르게 뛰었지만 호흡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침대 구석으로 도망쳤다. 그녀는 내 침대위로 올라오고 있었고 나는 내 침대 옆에 놓여 져 있던 필통에서 커터 칼을 꺼냈다. 나는 오지마! 오지마! 소리치며 아무렇게나 휘둘러댔고 그녀의 얼굴에 상처를 냈다.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나를 덮쳤고 나는 반사적으로 칼로 그녀의 배를 찔렀다. 그녀가 배를 잡고 쓰러졌다. 갑자기 정신이 들었고 친구는 고통을 호소하며 울고 있었다. 나는 이 상황이 무섭기만 했다. 피를 흘리고 있는 그녀의 눈빛이 다시 무서워 보였고 방을 뛰쳐나왔다. 복도는 어두컴컴했고 나는 괜스레 누군가 따라오는 것 같아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내 도망치는 발소리가 기숙학원에 울려 퍼졌고 나는 더 빨리 도망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누군가가 내 뜀박질 소리를 들은 듯했다. 방문을 열어젖히고 곧바로 플래시를 켜 도망치는 내 뒷모습을 포착했다. 정신없이 달렸다. 이제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가던 중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붕 뜨는 느낌과 함께 계단을 굴렀다. 그리고 머지않아 플래시의 빛이 나에게 비춰졌고 그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갑자기 밝아진 빛 때문에 그가 누군지 파악할 수도 없었다. 발목이 삐었는지 너무나 아팠고 도망치는 것은 무리였다.
이진희 그 개년이 결국 나에게 일을 벌였다. 나쁜 년. 미쳤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그년한테서 떨어졌어야 했다. 이제 경쟁 때문에 눈에 뵈는 것이 없었는지 커터 칼로 내 얼굴에 상처를 내고는 내가 제압하려하자 배에 칼을 찔러 넣었다. 눈물이 흘러나왔고 출혈은 계속되었다. 그 나쁜 년은 죄책감도 없는지 곧바로 방을 나가 도망쳤다. 나는 아픈 배를 움켜지고 양호실로 향하기로 했다. 복도는 어두컴컴해 으스스했고 나는 그래도 살기위해 조금씩 발걸음을 땠다. 걸으면서 상처가 커졌는지 피는 점점 더 많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걸을 때마다 배가 아려왔기에 보폭은 매우 좁고 걸음걸이도 자꾸만 느려졌다. 멀게만 느껴지던 양호실은 같은 층에 중앙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머지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양호실불은 꺼져있었고 나는 필사적으로 문을 두들겼다.
원장으로서 하루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웠다. 학생들의 떨어지고 있는 성적이 걱정되어 잠이 오지 않았다. 걱정을 덮어두고 잠이 들 무렵 멀리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취침시간에 나오는 것도 모자라 뜀박질을 하고 있으니 나는 화가나 플래시를 들고 문을 벌컥 열어 재꼈다. 플래시를 켜자 복도 끝 쪽에서 누군가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녀를 뒤따라 달렸고 머지않아 우당탕거리며 계단에서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플래시로 그녀를 비췄다. 이진희였다. 나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도 않았다. 다리는 삔 듯 했고 얼굴은 창백했다. 내가 다가가자 그녀는 비명도 제대로 안 나오는지 필사적으로 뒤로 몸을 움직였고 나는 더 이상 취침시간의 소란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우선 발버둥치는 그녀를 어렵게 안아 최대한 힘으로 그녀를 제압하며 양호실로 향했다. 다행히 양호실불은 아직 켜져 있었다.
오늘도 생리통에 짜증을 부리는 여학생들을 돌보는 힘든 일을 마치고 자리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멀리서 누군가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밤중에 누군지는 몰라도 내일이면 원장님한테 단단히 혼날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일분도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양호실 문을 세게 두들겼다. 속으로는 계단에서 구른 사람인가 생각했고 나는 잠옷차림으로 그 주인공을 맞이했다. 나는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랐고 재빨리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그녀는 얼굴에는 칼로 베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고 복부에는 칼이 찔린 채로 피를 흘리며 서있었다. 일단 그녀의 상처를 보니 깊게 찔린 것 같지는 않았다. 우선 배에서 칼을 뽑고 소독을 하려던 찰나 또 누군가가 양호실 문을 두들겼다. 문을 열자 원장님에게 제압당한 한 여학생이 절룩거리며 양호실 앞에 서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녀는 나를 보고 식겁해서는 도망갔던 학생이었다. 이 시간에 뭐하는 짓거린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원장한테 제압당해 양호실로 끌려왔다. 나를 죽이려는 속셈인가? 양호실침대 커튼사이로 누군가의 발이 보였다. 섬뜩한 기운이 들었다. 원장이 그에게 저 학생은 누군가? 라는 질문을 했고 나는 대답을 듣고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쳐 원장에게서 빠져나와 도망쳤다. “아, 방금 전에 얼굴하고 복부에 칼로 상처를 입어서 양호실로 찾아왔어요.” 나는 삔 발목을 무시하고 도망치고 또 도망쳐 운동장을 넘어 달렸다. 그날의 밤공기는 유난히 좋았다. 바람과 함께 흩뿌려지는 나뭇잎소리는 한동안 들어보지 못한 노래처럼 들려왔다. 달빛은 유난히도 밝게 빛났다. 나는 운동장 철문을 넘어 뛰어내렸다.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기상나팔 소리가 들렸고 눈앞에는 철창 밖으로 학생들이 집합하는 모습이 보였다. 원장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