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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3 17:30

단편소설 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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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마당


1.


왠지 슬퍼 보이는 눈빛이다. 하마터면 왜 그런지 물어볼 것만 같은 눈빛이다. 그래서 자꾸 신경이 쓰인다. 술집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인다는 것은 꽤나 낭만적인 사람이거나 아니면 우울한 사람일 것이다. 둘 중 어느 경우라도 짐작 가능케 하려는 것인지 넥타이도 약간 느슨하게 매여 있고, 단정했을 것처럼 보이는 머리칼은 한 가닥 비스듬히 이마를 가리고 있다. 분위기와 달리 얼굴은 동안이지만 이마에 깊이 패인 주름자국은 오십줄은 넘었을 그의 나이를 짐작케 한다. 때때로 술잔을 기울이지만 그다지 술이 넘어가는 기색은 아니다. 술을 마시는 시늉만 하는 것일까? 아무튼 신경이 쓰인다.

‘혼자남’의 바로 옆 자리는 왁자지껄하다. 따로 또 같이 내뱉는 소리가 얽히고설켜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을 때도 있다. 때로는 그들의 대화 아닌 대화에 마치 내가 함께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때도 있다.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은 얼핏 보기에도 40대 중반쯤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풍기는 것은 연륜만이 아니다. 엉킨 말 타래 가운데 그의 목소리만 끊어내어도 상당히 자의식이 강하다는 느낌이 든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온통 ‘내가∼’로 시작한다. 나하고 마주보고 있는 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는 아마도 ‘자의식’의 부하 직원인 것으로 보인다. 술자리 내내 한 마디도 없다. 그저 ‘자의식’이 하는 말끝마다 ‘예, 예’이다. 비스듬히 옆모습을 보이고 앉아 있는 이는 ‘자의식’의 친구처럼 보인다. 간혹 ‘자의식’의 비위를 건들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기는 하지만 가끔 말대꾸를 하는 폼이 오랜 친구 사이이지 않나 싶다.

나머지는 빈자리다. 술집의 빈자리는 왠지 쓸쓸해 보인다. 누군가 앉아서 저렇게들 떠들어대던 자리일 수도 있고, 또 누군가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 혼자서 술잔을 기울이던 자리일 수도 있다. 숱한 사연들이 쌓여 있을 빈자리에 그래서 더욱 눈길이 간다. 그 가운데서도 구석진 곳에 놓여 있는 소파가 유독 눈에 띈다. 담배연기에 절어서가 아니라 선술집 비슷한 곳에 생뚱맞게 놓여있는 것부터가 눈길을 끈다. 마치 내가 그랬노라고 웅변이라도 하듯 안개처럼 희뿌연 담배 연기가 조명을 타고 춤을 추듯 흐른다. 그러다 다시 빈 소파를 공격이라도 하듯 일제히 달려든다.

“형!”

그러고 보니 동생과 같이 왔다. 동생과 술자리를 같이 한 것도 꽤나 오래 되었다. 저들에게 우리 형제는 어떤 모습일까? 별로 이야기도 없이 그저 술잔을 따라주는 관계?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존재? 저들처럼 왁자지껄하거나 아예 말 한 마디 없는 것이 차라리 나을까? 저들도 나처럼 술 마시다가 다른 자리 사람들을 분석할까? 그러고 보니 ‘자의식’도 간혹 뒤를 돌아보았던 것 같다. 자신의 이야기에 더욱 탄력을 받을 때마다 마치 동조라도 구하는 양 힐끔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내가 대화에 끼어든 것처럼 선명하게 그들의 대화 내용이 들렸기에 알 수 있는데) 때로는 자신 없는 주장을 내뱉을 때도 힐끔힐끔 뒤를 의식하였던 것 같다. 두 명밖에 안 되는데도 씩 둘러보는 폼이 그도 우리의 분위기를 파악하려는 것 같기도 하다. 때로 ‘자의식’이 ‘혼자남’을 쳐다볼 때는 알 듯 모를 듯 씨익 웃는 분위기가 내가 봐도 기분이 나쁘다.

그녀다.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한참을 보이지 않던 술집 주인이 접시 가득 멍게와 해삼을 담아 이 자리 저 자리에 놓아준다. 안주를 손질하느라 안 보였던 것일까? 새로운 안주를 서비스로 주는데도 ‘자의식’ 일행은 아예 관심 밖이다. ‘자의식’이 연신 떠벌이는 소리에 다른 일행들이 들어주는 시늉을 하느라 바쁘다. 그녀도 별로 신경 안 쓰는 눈치이다. ‘혼자남’은 그녀에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싶다. 입 밖으로는 한 마디도 내뱉지 않았지만 눈으로는 무척 많은 이야기를 하는 눈빛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정반대로 홀대하는 분위기이다. 그녀가 뭔가 한 마디 하는 순간 ‘혼자남’의 눈빛이 더욱 처량하다 싶은 대목이 있었지만 이내 이전의 그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돌아갔다. 무슨 말을 했던 것일까? ‘혼자남’은 술 마시는 것보다 담배를 피는 것이 더 어울려 보인다. 연신 뿜어대는 담배연기가 또 다시 똬리를 틀듯 뒤엉키며 소파를 공격하고 있다.

손님이라야 세 자리 밖에 없는데 그녀가 다른 테이블에 안주 접시를 놓고 우리에게로 오는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진다. 왜 그럴까? 그녀는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와서 접시를 놓더니 자리에 같이 앉았다. 앉겠다는 말도 없이 앉는 것을 보니 순간 ‘혼자남’에게 신경이 쓰인다. 살며시 ‘혼자남’을 살펴보니 흠칫 놀라는 폼이 그 역시 잠시 우리 쪽을 봤던 눈치이다. 도대체 ‘혼자남’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녀는 마치 그에게 무언의 시위라도 하듯 우리에게 더욱 다감하게 다가온다. 부담스러울 정도의 호의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2.


내가 여기에 왜 앉아 있는 것인가. 오늘 따라 술맛도 씁쓸한 것이 왠지 목에 걸린다. 혼자 앉아 있는 것이 머쓱하여 간혹 술잔을 기울이기는 하지만 한꺼번에 마시기에는 목구멍이 너무 좁은 느낌이다. 기분 같아서는 원샷을 하고 싶지만 마시고 나서 내 술잔에 내가 술을 따르기가 더 머쓱하다. 그래서 마시는 시늉만 하고 있다. 술집에 혼자 앉아 술잔을 기울이는 것은 남들이 보기에는 낭만적일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술잔에 스스로 술을 따르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다. 그러니 연신 담배를 꺼내 물고 뭔가를 그리기라도 하듯 연기를 뿜어내고 있다.

대각선 건너편에 앉아 있는 두 명은 외양이나 분위기가 형제처럼 보인다. 그런데 별로 말이 없다. 도대체 저렇게 말없이 술을 마시려면 차라리 나처럼 따로 앉아 술을 마시는 것이 더 편하지 않을까? 둘 중에 나이가 들어 보이는 친구는 술을 마시는 것인지 생각에 잠긴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동생으로 보이는 사람은 그런 형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형하고 시선이 마주치면 모르는 척하고 술잔을 비우곤 한다. 그들도 가끔 내 눈치를 살피는 모양인데, 그들에게 나는 어떻게 보일까? 낭만적으로 보일까? 우울해 보일까? 아니면, 뭔가 사연이 있는 사람처럼 보일까? 저들은 무슨 사연을 담고 있는 것일까?

맞은편에 앉아있는 세 사람은 너무 시끄럽다. 뭔가 생각하려다가도 저들의 이야기에 휘말려 생각이 산산이 부서지곤 한다. 때로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려 했는지조차 생각해내기 힘들기도 하다. 좌장인 듯한 이는 가끔 내 눈치를 보는 눈빛이다. 목소리가 높아질 때면 주위를 돌아보는 모양새가 마치 골목에서 대장놀이를 하는 코흘리개 아이처럼 보인다. 그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 두 사람은 또 왜 그와 같이 앉아 술을 마시는 것일까? 곁에서 보기에도 지겨운 느낌인데 차라리 술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리지, 왜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

그녀다. 어디 갔다 이제 나타난 것일까? 손에 든 접시에는 멍게와 해삼이 가득 담겨 있다. 저걸 준비하는데 이토록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한데도 마치 몇 년 만에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맞은편에 먼저 접시를 내밀어 안주를 덜어주는 것이 조금 기분 나쁘기는 하지만 맨 마지막에 나에게 올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그다지 신경 쓰이지는 않는다. 그런데 안주를 서비스 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이야기에 열중인 것이 거슬린다. 그녀의 심정은 어떠할까? 표정으로 보아서는 알 수 없다. 입술을 약간 실룩거리는 것 같더니 그녀가 돌아선다. 그리고는 이내 나에게 다가온다. 아니 왜 나에게 오는 것일까?

“안 가요?”

들릴 듯 말 듯 그녀는 내게 한 마디 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꼭 나에게 말하였다는 그런 느낌조차 들지 않을, 나지막하다 못해 아예 무미건조한 그런 목소리였다. 그런데도 나에게는 아주 크게 들렸다. 어디를 가란 말인가. 내가 여기에서 이렇게 술을 마시고 있는데 어디를.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다. 생각 같아서는 벌떡 일어서서 한 마디 하고 싶지만 다른 자리가 신경 쓰여서 그럴 수는 없다. 아니 그게 아니다. 내가 한 마디 하면 그녀가 뭐라 할 지 알 것만 같아서 더욱 말할 수 없다. 그저 빈 술잔만 들이키는 시늉을 할 따름이다. 그녀는 내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계처럼 안주를 덜어주더니 다른 자리로 가려는 분위기이다. 나도 모르게 손목을 잡았다. 그러다가는 불에 대인 듯 화들짝 놀라 손을 놓았다. 그녀를 쳐다보았다.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왠지 이번에 보지 않으면 영원히 볼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도 그녀는 외면하고 대각선 형제 자리로 가더니 이내 그 자리에 합석을 하였다. 형제 가운데 형인 듯한 사람이 나를 힐끔 쳐다본다. 왜 쳐다보는 것일까? 나를 무시하는 것일까?

전투에서 이긴 장수마냥 의기양양해 있는 것일까? 그녀에게 외면당하고 한쪽에서 빈 술잔이나 찔끔거리는 나를 패잔병 취급하는 것일까? 나한테 보란 듯이 깔깔거리는 그녀가 왠지 낯설어 보인다. 몇 년을 입은 옷이 갑자기 어색해지는 꼴이다. 이제 떠날 때가 된 것일까?


3.


그녀와 내가 처음 만난 것은 장천동의 어느 카페에서였다. 그러고 보니 벌써 5년 가까이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회식을 한 후 2차로 들른 집이 그녀가 운영하던 카페였다. 다소 어두침침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밤이 깊은 시간 때문이기도 하지만 흐린 조명과 탁한 공기 탓에 더욱 더 칙칙한 느낌이었다. 개업할 때부터 쭉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소파에서는 담배 냄새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그런데도 왠지 익숙한 분위기였다. 술집으로서는 한창 때인데도 손님 한 명 없다. 아마 우리가 처음인 듯했다. 나중에 그녀에게서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사가 꽤 잘 되는 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같이 일하던 동생이 문제를 일으켜 손님들의 발길이 뚝 떨어졌다고 한다. 그 문제가 무슨 문제인지 아직까지도 말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상당히 심각한, 혹은 민감한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여하튼 그 날은 내내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텅 빈 카페에서 마치 전세라도 낸 듯 2차 분위기를 흠씬 내었다. 한 쪽 구석에 천덕꾸러기처럼 놓여 있던 노래방 기기도, 마치 오랫동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양 그날따라 흥겨운 가락을 토해 내었다. 이런 분위기라면 단골들이 많이 있을 법도 하다. 그런데도 우리 같은 뜨내기만 남아 밤새 질펀한 분위기에 흠뻑 젖어 있다는 것이 이해하기 힘든 대목도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여유가 없다. 연신 희뿌연 노래 가락이 조명을 타고 춤을 추듯 흘렀기 때문이다. 그러다 때로는 빠른 비트의 전자음이 똬리를 틀듯 뒤엉키며 우리를 공격하였다. 사람들의 춤과 노래가 제각각인데도 묘한 어울림이 있다. 박자도 음정도 판단조차 필요 없는,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였다.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조차 기억이 아스라하다. 문득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깨어 혼자 남아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깨셨어요, 과장님?”

과장님? 그래 생각난다. 이미 회식 자리에서부터 잔뜩 취해있던 나는 2차로 이 카페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맥주 몇 잔 마시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하였다. 그다지 술이 센 편이 아닌 내가 동료들에게 연신 축하 술잔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 내가 과장 승진 턱 내는 자리였지. 농협에 입사한 지 20년 가까이 되었기에 과장 승진 한 것이 그리 자랑거리도 못 되었다. 그래서 한 턱 내라는 동료들의 성화를 애써 모른 채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어찌 하다 보니 늦게나마 회식을 하게 되었다. 연일 승진 턱을 낸답시고 못 마시는 술을 한 잔 두 잔 마시다보니 술이 마치 목에 찬 느낌이었다. 더 이상 술을 마시기도 힘들고 잠도 밀려와 나도 모르게 다른 자리에서 잠이 든 모양이다. 얇은 이불이 덮여 있는 것으로 봐서 내가 잠든 것을 알고 그녀가 덮어준 것으로 보인다. 이불에서는 향수 냄새가 났다. 무슨 향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온 몸의 세포를 자극하는 야릇한 향이었다.

일어서 나가려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비틀거렸다. 아직도 기력이 회복되지 않은 모양이다. 바람 빠진 공기인형처럼 무너져 내리려는 나를 그녀가 부축하였다. 이불에서 나던 향수 냄새가 난다. 익숙한 냄새다. 그래 그 냄새다. 언젠가 독한 감기에 걸려 연신 코를 풀어 댈 때 티슈에서 맡았던 그 냄새. 어쩌면 오래 전 뒷골목 어느 술집에서 맡았을 법한 분위기의 야릇한 향수 냄새다. 마술에 걸린 듯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그녀도 오래 길들여진 듯 나에게 안겨 들어왔다. 기진맥진하여 눈에 초점도 풀린 것 같다. 그녀의 얼굴이 파스텔 톤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뿌연 조명 탓일 수도 있다. 나의 눈은 애써 초점을 맞추려 하였지만 입술은 개의치 않고 그녀의 입술을 탐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퇴근하면 김유신의 애마처럼 내 발길이 자동으로 그 카페로 향했다. 명분만 있으면 동료들을 끌어들여 그 카페로 갔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특별한 것이 있을 리도 없었다. 가끔씩 그녀와의 스킨십이 마력처럼 나를 이끈 것일 뿐이다. 그녀도 내게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화장실을 오고 가다 그녀와 단 둘이 마주칠 때면 남들의 눈을 피해 짧지만 긴 포옹을 해대곤 하였다. 플라토닉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지만 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린, 아니 적어도 나는 그 짧은 순간에 나름대로 스릴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개구쟁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카페도 나름대로 굴러가고 있었다. 딱히 내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온 이후로 장사가 잘 된다고 그녀는 모든 것을 내 공으로 돌리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왠지 모를 의무감 같은 것을 느끼곤 하였다. 마치 내가 술 마시러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 아니 내가 오래 전부터 그 카페에 갔고, 그것이 마치 운명처럼 느껴지는. 간혹….

그러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다시는 그 카페에 가지 않게 되었다. 그 이유가 꼭 검정 양복을 입은 사내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어느 날이었다. 그 날도 어김없이 퇴근길에 들러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아니 기울이는 시늉만 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며칠 동안 괜한 신경이 쓰였다. 내가 술 마시고 있을 때마다 마주치는 사내 때문이었다. 그래서 술잔을 기울이는 것보다 그 쪽을 기웃거리는 횟수가 더 많아졌다. 그녀가 내 앞에 앉는 시간보다 그 사내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아진 것도, 시간을 체크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 서둘러 자리를 뜨고 만 것도 그 즈음이었다. 사내는 나이에 비해 제법 풍채도 있고 경륜도 있어 보였다. 그래서 체구가 작은 나를 압도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어쩌다 화장실에 가다가 서로 마주칠 때면 나는 애써 그의 눈길을 피하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퇴근길에 동료들과 한 잔 한 후 2차를 가자고 붙잡았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혼자 술 마시러 가기가 뭐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 사내와 부딪히기가 뭐했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핑계를 댄 채 억지로 동료들을 끌고 그 카페에 갔다. 아니 그녀에게 갔다. 카페에 들어가 동료들이 자리를 잡는 사이, 있어야할 자리에 없는 물건을 찾는 사람 마냥 나는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그런데 주방 한 구석에서 사내가 그녀에게 치근대고 있었다. 보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의 눈을 보지 않았어야 했다. 돌아서 나오려 하는데 머리를 찰랑거리며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내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싫지만은 않다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그랬던 것 같다. 오래 전 이 카페에 처음 와 술에 취했을 때 어슴푸레하게 보았던 그녀의 눈빛이 이랬던 것 같다. 어쩌면 그녀가 오히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 같았다. 도망쳐 나오듯 그 자리를 빠져 나온 것이 벌써 몇 년이 되었다.

잊었는 줄 알았다. 잊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것이 사랑인지도 알 수 없다. 아니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세월이 흐를수록 또렷하게 새겨지는 것이, 바쁜 일상 속에서는 잊고 지내다 문득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면 가슴이 아리듯 하니 그냥 사랑이라 해도 될 성 싶다. 찢겨진 달력이 아니라면 따뜻하다 못해 아예 여름인가 싶을 정도로 열기 가득했던 지난 겨울 어느 날이었다. 명예퇴직을 한 후 여기저기 산에 오르는 것으로 소일을 하던 중 우연히 들렀던 소주방에 그녀가 있었다. 어쩌면 운명적이라 할 정도로 그녀와 나 사이에는 어떤 인연의 끈이 매어져 있는 것이라고 애써 자위하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다.

몇 년 사이에 고생을 많이 하였는지 그녀는 많이 늙어 보였다. 왜 여기에서 장사를 하느냐는 말도 묻지 않았다. 지금은 무엇을 하고 사느냐고 그녀 역시 나에게 묻지 않았다. 그저 우리는 한 동안 말을 잊은 사람처럼 단어와 단어로 대화를 나눴다. 그때부터 나는 그녀와 개인적인 대화를 단 한 마디 나누지 않으면서도 또 다시 출퇴근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 가게에 들렀다. 술이 원래 약하기도 하였지만 혼자서 술잔에 술을 가득 부어놓고 조금씩 조금씩 음미하는 습관이 든 것도 그 가게에서였다. 그러나 밤이 무르익어 가면 왠지 나의 무대는 막을 내리는 것 같아 조용히 자리를 뜨곤 하였다. 처음부터 말을 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점점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녀 역시 특별히 나에게 말을 붙이려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 역시 말을 잊은 것일까? 그녀 역시 지난 세월 동안 나로 인해 가슴 아렸던 그런 기억이 있는 것일까?

그러나 말을 잊은 사람은 나 혼자였다. 그녀는 다른 손님들, 특히 대각선 쪽에 앉아있는 저 형제들에게는 특히 말을 많이 붙이는 눈치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가끔씩 힐끔힐끔 내 쪽을 쳐다보는 눈치가 이제 무대에서 영원히 퇴장하라는 무언의 압력인 양 보였다.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때까지 그랬던 것처럼 술값으로 만 원 짜리 한 장 남겨두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날은 그러지 않았다.

“계산….”

무엇을 계산하자는 것인지 알듯 모를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는 그녀를 불렀다. 그녀 역시 마치 내가 무엇인가 말하기를 기다렸다는 듯, 나지막한 목소리였는데도 금세 알아차리고 내 쪽으로 왔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계산대로 왔다. 계산이랄 것도 없이 간단하였지만 우리는 끝내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아니 내가 그랬는지 모른다. 지금 그녀의 눈을 보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끝이다 싶으면서도 여지를 남겨두고 싶은 그런 심정이었다. 그렇게 쓸쓸히 나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4.


‘혼자남’이 나가는 뒷모습은 왠지 쓸쓸해 보였다. 뭔가 여운을 남기는 듯한 눈빛이며 뒷모습이,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디에서 언젠가 또 만날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십여 년 후 나의 미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술은 마시기나 한 것일까? 도대체 저 자리에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던 것일까? 다음에 또 올까? ‘혼자남’이 나가는 그 짧은 순간에 별의별 생각을 다 하였다. 그러다 내 스스로가 문득….

그 때였다. ‘혼자남’이 나가자마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 마냥 머리를 가지런히 뒤로 넘긴 뚱뚱한 체형의 남자가 들어섰다. 나는 하마터면 인사를 할 뻔 했다. 최근 너무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사내도 나를 알아보는 것 같은 눈치이다. 술집에서도, 식당에서도, 심지어 동네 목욕탕에서도 거의 매일 그 사내와 마주친다. 단 한 번도 인사를 나눈 적은 없지만 때로는 사우나 안에서 단 둘이 마주치게 되면 무심코 말을 걸고 싶을 충동이 일 만큼 오랜 인연의 끈이 우리를 묶고 있는 느낌이다.

사내는 들어오자마자 고향집처럼 익숙한 분위기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딱히 그 사내의 자리랄 것도 없지만 왠지 그의 자리가 예비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내의 자리는 담배연기에 절은 소파인데, 그 소파 아니고는 사내의 육중한 몸을 지탱하기 힘들 것으로 보였다. 주변을 한 차례 무성의하게 둘러보던 사내는 자신들만의 암호가 있는 것처럼 주인에게 뭐라 한 마디 하였다. 그러더니 돌연 째려보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시력이 나빠 사물을 확인하려는 듯한 눈매로 우리 쪽을 보았다. 마치 흘겨보는 것 같았다. 괜시리 움찔해졌다. 갑자기 초등학교 시절 문구점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것은 작고 깜찍한 샤프펜슬이었다. 너무나 마음에 들어 샤프펜슬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그러다 문구점 주인이 쳐다보자 마치 마음을 들킨 듯하여 움찔하였던 적이 있다. 그런 기분이었다.

그녀는 익숙한 솜씨로, 아니 마치 그 사내가 올 것이라 생각하였던 것처럼 재빨리 상을 보았다. 뚱뚱한 체구답게 그 사내는 안주부터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마치 무엇엔가 성난 사람마냥 한참을 먹어대더니 소주잔에 소주를 넘칠 듯이 따라서는 홀짝 들이켰다. ‘홀짝’이라고 느껴질 만큼 그의 덩치에 비해 소주잔이 작아보였다. 아까 ‘혼자남’이 혼자서 소주잔을 기울이던 그런 모습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어쩌면 소주 한 병도 한꺼번에 들이킬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 자리에서 그 사내의 자리로 옮겨 앉았다. 아니 이제는 아예 우리 쪽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내는 들어올 때와는 달리 조금은 풀어진 눈빛으로 연신 우리 쪽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눈빛에서 조금씩 소주의 역겨운 냄새가 흩어져 나올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면서도 마치 포연이 자욱한 험난한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자의 그런 여유랄까, 혹은 이제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다는 식의 가진 자의 여유가 느껴지기도 하였다. 실은 더 이상 들어갈 데가 없을 정도의 포만감에서 오는 여유로움으로 보인다. 먹을 때는 고개조차 들지 않던 그가 이제는 주변을 둘러보곤 한다. 굳이 그 시선을 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자의식’ 일행이 안 보인다. 언제 간 것일까? 계산은 하고 간 것일까? 그러고 보니 왠지 분위기가 달라졌다 했더니 왁자지껄하던 그들 일행이 나가서 그랬던 것 같다. 짧은 침묵으로도 긴장이 감돌 수 있다. 여기가 마치 적진을 향하여 서로 총구를 겨누고 숨죽여 대치하고 있는 그런 전쟁터 같은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소총이 있다. 그런데 소총이 그 사내를 향해 있다.

“형!”

갑자기 동생이 부르는 소리에 하마터면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질 뻔하였다. 동생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마치 ‘빵!’하고 총 쏘는 소리처럼 들려왔기 때문이다. 동생은 무슨 생각을 하였던 것일까? 이 지루한 전쟁터에서. 하기야 동생은 ‘혼자남’과도 마주보지 않았고, 지금도 저 사내와는 등을 대고 있으니 이런저런 대치 상황을 알 리가 없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투가 임박하였는데도 말이다. 나는 뭔가를 들킨 것 같은 심정으로 조심스레 사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사내는 이런 정황을 눈치 채지 못한 분위기이다. 아니 아예 무시하는 느낌이다. 도대체 저 사내는 그녀와 무슨 관계일까? 술을 마시러 온 것일까? 그녀를 만나러 온 것일까? 아니면 뭔가를 먹으러 온 것일까? 어찌 보면 마치 사내가 진짜 주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녀의 남편? 그렇게 보기에는 너무 젊어 보이기도 하고….


5.


언제부터인가 내 발길이 잦아졌다. 툭 하면 그 소주방에 갔다. 내가 그곳에 가게 된 것은, 아니 그녀에게 가게 된 것은 어쩌면 그 사내를 보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전투에서 이겨 의기양양해 있는 그에게 결정적인 한 방을 먹여야겠다는 그런 심정이었을까? 요 며칠 사이 그녀도 내게 부쩍 친절해진 느낌이다. 자주 간 탓도 있겠지만 왠지 알 수 없는 인연의 끈이 우리를 묵어 놓은 듯한 그런 기분이 들 때가 더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 오랜만에 친구가 찾아왔다. 10년도 훨씬 넘게 전화조차 없던 친구였다. 자연스레 그 소주방에서 만났다. 멀리서 친구가 찾아온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어쩌면 친구가 찾아온 것보다도 그녀에게 갈 수 있는 핑계를 찾은 것이 더 기뻤는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안주삼아 술병을 비우면서도 내 눈은 연신 출입구 쪽을 항하였다. 왜 그 사내는 안 오는 것일까? 밤이 늦어 문 닫을 시간이 되어 가는데도 그 사내는 오지 않았다. 문 닫을 시간이 따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녀가 한 잔 두 잔 받아 마신 술기운이 한계에 달하거나, 준비해 둔 안주감이 바닥이 날라치면 괜히 이 자리 저 자리 행주질을 해댄다. 그러면 문 닫을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10년 만에 만난 친구이기도 하지만 뭔가 이야기를 계속 해야겠다는 알 수 없는 절박함이 있었다.

두 시가 다 되어간다. 다른 자리는 이미 다 비었다. 분위기로 봐서 끝날 때가 되었다. 그런데도 나가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래 공연히 이 이야기 저 이야기 꺼내놓았다. 이번에는 주인도 우리 눈치를 보는 느낌이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는지 그녀가 행주를 들고 우리 자리로 다가왔다. 그래서 마치 신호라도 받은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였다. 계산을 하고 나가려니 비가 왔다. 내리는 모양으로 보아 오래도록 내렸던 것 같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니 나는 비가 오는 줄도 몰랐다. 나보다 멀리 사는 친구를 위해 택시를 불러줄 것을 부탁했다. 택시가 오기까지는 몇 분이 필요했다. 그 몇 분 동안 별 이야기를 다 했던 것 같다. 기억에는 남지 않지만 왜 그런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모를 일이다. 하여튼 택시가 와서 그 친구를 삼키고 빗속으로 사라지자마자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 돌아서서 포옹을 하였다. 왜 그랬는지도 알 수 없다. 마치 예정된 수순처럼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가 되었다.

비 오던 날 이후 그녀와 나는 틈만 나면 서로를 희롱하였다. 어렸을 적 동네 소꿉친구처럼 그런 기분이었다. 때로는 주방에 들어가 물을 마시는 척하면서 그녀의 살품 사이로 손을 넣어 여린 젖가슴을 만지기도 하였다. 그럴 때면 그녀는 어린 아이가 되었다. 그녀에게 뚱뚱한 사내에 대해 물어보려 했지만 차마 입을 떼지 못하였다. 요즈음에는 동네 식당에서도 얼굴을 보기 힘들고 목욕탕에서도 마주치는 일이 전혀 없다.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는 그 사내가 오늘은 왠지 보고 싶어진다.




응모자

허석(010-2613-5032, 6135032@hanmail.net)



  • profile
    korean 2015.11.04 19:21
    데이터를 첨부파일로 올리지 마시고,
    글을 직접 창에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 profile
    은유시인 2015.12.21 00:50
    한 술집을 찾은 여러 종류의 술꾼들...
    술을 마시러 왔다기보다 술집 여주인을 차지하려는 일종의 숨막히는 전투를 벌이는 장면들...
    남자들 세계에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얘기일터...
    그래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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