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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개를 떨어뜨려 죽인 날, 이후부터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현이의 첫째 형 되는 사람입니다.

현이와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인사드렸었는데, 기억을 하실는지 모르겠네요. 현이와 나이 차가 많이 나서 형이라고 생각을 못하셨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전화 한 통만 걸면 하고 싶은 말을 전할 수 있는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 것이 의외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처음엔 전화로 말씀을 드리려고 선생님 명함을 찾아 전화기 앞에 가 앉았었지요.
 
그런데 막상 번호를 누르려고 하니 말문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더군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나면 어떻게 말을 이어가야 할지,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을 온전히 전할 수 있을지, 도저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오랜 시간 꾸덕하게 뭉쳐 덩어리 진 생각들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예민하게 쌓여있는데, 그걸 털어놓을 제 입은 차갑게 굳어있기만 했거든요. 자칫 잘못하면 선생님이 이 이야기의 본질을 이해하기도 전에 질려버릴까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글로 정리하면서 감정을 덜어내면, 제 생각이 더 명확히 전달될 것 같았습니다. 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아 몇 번이고 쓰고 지우고 종이를 구겨 쓰레기통에 집어던지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서랍 속 깊은 곳에 처박혀 있던 편지지와 만년필만큼이나, 제가 하고 싶었던 말들도 어둔 구덩이 속에 꼬이고 뒤틀린 채로 잠겨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디 이해하기 힘든 문장이 있어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현이는 조금 많이 특별한 아이입니다. 우리 가족이 현이에게 이상한 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게 현이가 말을 떼기 시작한 직후이니, 현이가 벌써 10년이 훌쩍 넘게 치료를 받아왔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만큼 현이는 선생님 이전에도 수많은 의사를 만나왔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처방이나 치료를 해주는 의사는 거의 없었지요. 저희는 아직도 현이의 정확한 병명을 모릅니다. 어떤 병원에선 자폐증 초기 증상이라 했고, 또 어떤 병원에선 조울증세가 있는 우울증이라고 했죠. 서번트 증후군인지 뭔지 하는 천재병의 일종이라며 영재학원에 다녀볼 것을 권하는 병원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영재학원 원장이 그 병원 원장의 조카더군요. 속는 셈 치고 그 학원을 들러봤는데, 누가 봐도 지적 장애로 보이는 학생을 앉혀두고 칠판 가득히 복잡한 숫자를 그리며 뭔가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아이는 구구단도 외지 못할 것처럼 보였는데 말에요. 몇 번이나 이런 일을 겪으며 사기꾼 같은 의사들을 만나다 보니, 더 이상 병원을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만 늘었습니다. 선생님껜 죄송한 말씀이지만, 한때 세상 모든 의사들이 사실은 돌팔이인 것이 아닐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을 갖기도 했지요.


하지만 치료를 그만둘 수는 없었습니다. 병원 진료는 현이가 나아질 거란 기대를 갖게 하는 마지막 희망이었습니다. 결국 가족들이 할 수 있는 노력이라곤 현이와 우리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가능한 한 많은 이야기를 해드리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 제가 쓰고 있는 편지도 선생님께서 현이를 더 잘 이해하면 현이를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적고 있는 것입니다.


혹, 선생님 생각에 이 이야기가 현이를 치료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읽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아무래도 가족의 입장에서 쓰는 편지는 객관적이지 못한 면이 있을 겁니다. 기억이 시간 속에 흐려져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제가 현이와 지난 18년간 함께 살아오면서 겪었던 이상하고 불안한, 그리고 때론 경악스럽기까지 했던 사건들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비단 현이만이 아닌,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저희 가족을 살리기 위한 문제이니까요.

 
1)
 아마 현이가 다섯 살 무렵의 일이었을 겁니다. 당시 저희 가족은 서초동 부근에 새로 조성된 주택가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건물이 오래되고 바래서 아무리 해가 높이 떠 있어도 우중충해 보이기만 하는 동네이지만, 그때만 해도 아파트 개발 붐에 돈을 꽤나 만진 사람들이 모인 멀끔한 동네였습니다. 언덕을 깎아 만든 널찍한 도로엔 윤기 도는 아스팔트가 덮여 숨구멍 하나 뚫을 틈이 없었고, 저녁 시간이 되면 그 길을 따라 금방 세차를 한 것 같은 고급 외제차가 줄을 지어 올라왔죠.

저희 가족은 빨간 벽돌집 2층에 세 들어 살고 있었는데, 주인집이 1층이라 이것저것 눈치 볼 것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2층에 가려면 마당에 있는 철제 계단을 타야 했는데, 조금만 발을 거칠게 딛어도 ‘우당탕’하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나곤 했습니다. 저희 형제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발꿈치를 들고 조심히 계단을 오르내렸죠. 여럿이서 함께 올라갈 때는 서로의 얼굴을 발라보며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전 ‘이 집이 우리 집이라면 이렇게 조심하지 않아도 될 텐데...’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곤 했습니다. 가끔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을 때가 있지요. 어른들은 차마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조숙하게 말이에요.

 
주인집은 개를 많이 길렀습니다. 죄다 순종 외제 강아지들이었지요. 덩치가 크고 귀가 뾰족한 셰퍼드에서부터 만화 속 주인공들만 기르던 새하얀 푸들, 스누피처럼 생긴 다리 짧은 개 까지 각양각색의 개들이 가득했습니다. 그 집에선 진돗개도 길렀었는데, 시골에서 막 기르는 이름만 진돗개인 녀석들과는 전혀 다른, 고급스러운 기품이 있는 녀석이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부잣집은 개새끼들마저 때깔이 다르다는 한탄을 하시기도 했지요.

 
그중에 정말 어린 새끼 강아지가 하나 있었는데. 귀여운데다 애교까지 많아 사람들 마음을 그렇게 살살 녹일 수가 없었습니다. 눈망울이 크고 귀가 바짝 선 게 마치 어린 노루 같았습니다. 동네에서 무섭기로 소문이 났던 깍쟁이 할머니도 그 강아지만 보면 손수 소시지 껍질을 까서 먹여주기 바빴습니다. 강아지가 소시지 껍질을 그냥 먹으면 목을 다칠 수 있다며 주름져 무딘 손을 열심히 놀리고 있었던 겁니다. 정작 자기 집 개들에게 먹다 남은 찬밥을 던져줬으면서 말이에요.


저희 형제들 역시 그 강아지에게 홀딱 반했습니다. 예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죠. 우리 강아지이건 아니건 상관이 없었습니다.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어린아이들 특유의 순수한 사랑이었죠. 그래서 현이가 그 개를 떨어뜨려 죽였을 때, 저희가 받은 충격은 상당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철제 계단에서였습니다. 아마 5미터는 족히 넘는 높이였을 겁니다. 제 기억에 그 계단은 가장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마당에 심은 나무의 꼭대기가 보일 정도로 높았었죠. 현이는 계단 꼭대기에서 강아지를 발로 툭툭 차 밀어내고 있었고, 강아지는 납작 엎드린 채 떨어지지 않으려고 바닥을 벅벅 긁어대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얇고 여린 발톱이 철판을 긁어대니 성할 리 없었습니다. 부러졌는지 빠졌는지, 불그죽죽한 피발바닥 자국이 계단 바닥을 사정없이 어지럽혔습니다.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은 녀석이었지만, 죽음엔 순서가 없었고, 탄생의 경이로움은 촉촉한 양수가 채 마르기도 전에 공포에 질려 까맣게 타들어갔습니다. 그 어린 생명이 그토록 처절하게,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는 걸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 한편이 안쓰러워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찔끔찔끔 똥오줌까지 흘리며 낑낑대던 그 강아지는 결국 “깽!”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난간 밖으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마당으로 떨어진 강아지는 머리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네 다리를 사방으로 꼬아댔습니다. 사이렌과 같은 날카로운 비명 소리는 사방을 깨웠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침묵이 켜켜하게 쌓여있던 것 같던 공간은 정신없이 시끄러워졌습니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놀라서 달려 나왔다가 피투성이가 된 털 뭉치를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고, 2층에서 달려 나온 아버지도 사색이 되었습니다. 셰퍼드와 푸들, 진돗개 등등 다른 주인집 개들도 마당으로 달려 나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짖어대며 마당을 개판으로 만들었습니다. 제 동생들 중 하나는 강아지가 불쌍하다고 울기 시작했고, 곧이어 다른 동생들도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누군가 뛰어 올라가 현이를 말렸다면 좋았을 텐데요. 모두가 ‘아니겠지.. 아니겠지’하는 와중에 믿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말았던 겁니다.
 
모두가 허둥대는 사이, 강아지의 깽알대는 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쉑쉑 거리는 앓는 소리로 변했다가, ‘푹-’하는 바람 빠지는 듯한 허무한 소리를 마지막으로 조용해지고 말았습니다. 제발 그 자리에 있던 누군가가 아무렇지 않다고, 괜찮다고 말해주길, 제가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모르실 겁니다. 가장 아무렇지 않았던 것은 배가 고프다며 어머니를 졸라대던 현이었지요. 현이는 마치 개미 한 마리 집어던진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행동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 우리 가족은 주인집에서 쫓겨나 더 허름한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고작 개 한 마리 떨어뜨린 게 뭐 그렇게 큰 일이냐고 의아해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래 어린아이들이란 본래 영악하기 마련이라, 순진한 표정으로 온갖 나쁜 일을 저지르기도 하니까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 가족들에게 이 사건은 마감 없이 내려진 ‘시한부’ 선고와 다름없었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있었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건 생각 이상으로 피곤한 일이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여리고 어린 동생이기만 했던 현이가, 하루아침에 괴물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 그건 생각 이상으로 피곤한 일이었어요.

현이가 어떤 짓을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항상 비상상태였습니다. 특히 저희 형제들은 녀석을 감시하느라 언제나 긴장하고 있어야 했지요. 아버지는 툭하면 현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신경질적으로 묻곤 했어요. 바로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면 굳은살 하나 없는 여리디 여린 손바닥으로 형제들의 뺨을 올려붙이곤 했습니다. 동생 관리를 어떻게 했냐며 질책하는 아버지의 얼굴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어요. 어느샌가 죽어가던 아랫집 강아지의 눈물주머니처럼 벌겋게 차오른, 슬프고 피로한 얼굴을 가진 중늙은이가 되어버리셨거든요.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남이 시키는 일만 할 줄 알았던, 사람 좋고 성실하기만 한 분이었는데 말이에요.


그 사건 이후에도 현이는 가끔 남의 집 대문에 목이 또각또각 잘린 사람들이 불타고 있는, 섬뜩하기 그지없는 그림을 붙여놓는다던가, 비디오테이프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려 시꺼멓게 태워버리는 등의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곤 했어요. 덕분에 동네에선 악동으로 소문이 났지요. 하지만 대부분은 어린아이의 철없는 장난으로 여겨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어요. 애가 겉으로 보기엔 예쁘고 멀쩡하게 생겼으니 귀엽게 여긴 탓도 있지요. 차마 정신병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진 못한 겁니다. 우리 가족들에겐 다행이기도 하고, 속이 타들어가는 일이기도 했지만요.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으시면 현이가 사이코패스 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증상이 있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다른 병원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받을 충격과 고통, 슬픔 등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자신의 행동이 옳고 그른지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이죠.


저희도 처음엔 현이가 사이코패스 같은 정신병을 갖고 있는 거겠거니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다 보니, 나쁜 놈이면 개나 소나 사이코패스 딱지가 붙는 유행이 생기더라고요. 그 단어는 간단명료한 느낌만큼이나 사람을 평면적이고 전형적으로 만들고 있었습니다. 인간냄새가 없다는 겁니다. 자존감도 없고 콤플렉스도 없어요. 분명 그들도 범죄자가 되기 전까지 나름대로의 고민도 있고 계기도 있었을 텐데, 딱지가 붙는 순간부턴 마치 원래 나쁜 짓을 하기 위해 태어나 존재하는 사람인 것처럼 그의 인생에 있었던 모든 맥락이 사라져 버립니다. 아마도 드라마 제작자들의 나태함과 몰이해, 그리고 상상력 부족에서 원인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현이의 행동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니, 이젠 전혀 사이코패스같이 느껴지지가 않았습니다. 현이에게서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부족한 감정 교류를 채우려는 과정에서 오는 공허함이나 충동은 아닌 것 같았거든요. 딱지 하나 붙여서 현이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2)
 현이는 어렸을 때부터 벌레나 곤충 같은 것들을 좋아했습니다. 지치지도 않고 산을 뛰어다니며 다리가 많이 달린 것들을 잡아왔어요. 어디서 그렇게 많이 잡아오는지 궁금할 정도로 솜씨가 좋았지요. 그 아이의 플라스틱 채집통엔 메뚜기와 여치, 방아깨비, 송장벌레, 사마귀 같은 것들 뿐만 아니라, 가끔씩은 개구리와 참새 같은 것들도 들어있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채집통은 딱 한 개뿐이었지요. 그래서 채집통은 언제나 먹이사슬 속 온갖 짐승들이 뒤엉킨 먹고 먹히는 살육의 현장이 되곤 했습니다.

가로 세로로 한 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 천적이 몰려있으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여치는 메뚜기를 머리부터 와그작 와그작 씹어먹었고, 개구리는 길고 끈끈한 혀로 여치의 허리를 말아 반으로 부러뜨려 버렸죠. 여치는 먹는데 바빠서 자기 몸이 반토막 나는 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씹어 삼킨 메뚜기의 살점이 몸 반대편에서 줄줄 흘러나와도 그걸 알아채지 못했는지 턱을 움찔대고 있었습니다.


참새는 무방비하게 드러난 개구리의 등허리를 피가 울컥거리며 튀어나올 때까지 ‘집요하게’ 쪼아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초록색 살가죽이 벗겨지고 살구빛이 감도는 내장이 튀어나왔죠. 깨끗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티 하나 안 묻어 있는 신선한 내장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참새가 병아리와 같은, 귀엽기만 한 동물이라 생각했었는데, 개구리의 창자가 참새 부리 사이에 끼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보니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역겨울 정도로 혐오스러운 감정이 밀려오더군요. 뭐, 참새를 욕할 수는 없겠지요. 어찌 되었건 그 공간은 모두가 모두에게 먹히는 것이 당연한, 굉장히 작은 생태계였으니까요.

 
녀석은 친구들에게 그 아수라장을 자랑하듯 보여주곤 했어요. 몇몇은 흥미를 보이며 작은 세계 속에서 펼쳐지는 쇼를 관람했죠.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는 것처럼 흥분해서 응원하기도 했어요. 물론 어떤 아이들은 그 작은 생명들이 불쌍하고 잔인하다며 울면서 집에 돌아가기도 했지요.

 
그건 마치 몽둥이 하나 없이 맨몸으로 맹수를 상대해야 하는, 아니 사실은 먹이로 던져진 원형 경기장 안의 검투사들과, 그 모습을 구경거리로 삼는 제국의 시민들 같았습니다. 그들의 처참한 최후에 환호를 던지는 관중들, 돌더미를 끌어와 경기장을 쌓아 올린 인부들, 아프리카 초원과 아마존의 밀림에서 흉악한 맹수를 산채로 잡아온 사냥꾼들, 그들에게 밥을 주고 임금을 챙겨준 관리자들, 그 모든 것을 지시한 어떤 높으신 분, 그리고 이 아이디어를 제안한 이름 없는 누군가... 현이가 이 유희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던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역사 속에서 이 쇼가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끝나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모두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게임이었니까 그럴 만도 하지요. 아이들은 그 작은 세계를 바라보며 또 다른, 좀 더 넓은 세계를 만들어 갔겠지요. 각자 자신의 역할을 찾으면서 말이에요. 

 
쇼가 끝나 채집통 안이 조용해지면, 현이는 마당 한쪽 구석에서 뚜껑을 열고 안에 든 것들을 탈탈 흔들어 털어냈어요. 간혹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미 엉망으로 씹힌 살덩어리가 되어 있거나, 신체 곳곳이 떨어져 나간 채 기진맥진하게 숨만 붙어 있었습니다. 우리 안에선 포식자로 군림하던 것들도, 밖으로 나오면 그저 연약하기만 한 존재로 전락했지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인지 비실거리다 곧 죽어버리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부러지고 떨어져 나가 채집통 이곳저곳에 붙은 미끈거리는 잔해는 물로 닦아도 잘 씻겨 내려가지 않았어요.

 
누가 “벌레들이 불쌍하지도 않니?”라며 힐난을 던져도 현이는 꿈쩍 하지 않았습니다. 별다른 변명을 하지도 않았지만, 꾹 다문 입술은 ‘나만 재밌게 본 게 아닌데 뭘 유난스럽게 굴어? 난 그저 여흥을 제공했을 뿐이야. 그걸 재밌게 보던지 말던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하는 거 아냐?“라며 얄미운 미소를 던지는 것 같았지요.


그 알 수 없는 표정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깨닫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한 달에 두 번, 현이을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것은 저의 몫입니다. 처음엔 아버지가 현이를 데리고 다녔지만, 그때마다 회사를 빠질 수 없으셨기 때문에 그나마 자영업을 해서 시간이 자유로운 제가 현이의 병원 방문을 맡게 되었지요. 서울까지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왕복해야 해서 퍽 지루하고 귀찮은 일이지만, 숨이 막힐 정도로 정체된 도로 위에 멍하니 앉아 있다 보면 현이도 힘이 든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곤 합니다. 그 말 없는 녀석도 그 의미 없는 시간에 지쳐버렸던 거죠. 그래서인지 현이가 다른 형제들 보단 저를 친근하게 대하는 것 같긴 합니다. 사실, 대화를 한다기 보단 녀석이 하고 싶은 말을 일방적으로 하는 것에 가깝지만요.


언젠가 현이가 TV 다큐멘터리에서 본 해파리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습니다. 아마 붉은 해파린가 하는 평범한 이름이었습니다. 현이 말에 의하면 생긴 것도 그리 특별한 게 없는 그냥 투명한 하얀색 해파리였대요. 다 비쳐 보이는 속 한가운데에 빨간 덩어리가 있는게 조금 신기하긴 한데, 사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 보기엔 그게 그거인 것처럼 보이겠죠.


그런데 이 해파리가 지구 상에 유일무이한 불노불사의 존재랍니다. 죽을 때가 되면 번데기 같은 고치 모양으로 변했다가, 이틀 정도가 지나면 다시 유충과 같은 어린 개채로 다시 태어난다는 거예요. 사람으로 치면 오늘내일 할 정도로 폭싹 늙은 할머니가 이불을 똘똘 말고 이틀 정도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면 갓 태어난 아기가 되는 것이죠. 현이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영원히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나는 게 어떤 일일지 궁금하다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더군요.


사실 전 그 해파리가 신기하긴 했지만, 그리 부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하는 전래 동화의 결말에 감탄하기엔, 이미 삶의 권태로움을 너무나 잘 아는 나이가 되어버렸으니까요. 영원이 가져다주는 행복보단, 견딜 수 없는 피로감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제대로 된 휴식 한 번 없이, 한평생 힘들고 귀찮은 일을 하며 애 낳고 다 클 때까지 키우다가 소소한 행복 챙겨보려고 이곳저곳 쓰지 않아도 될 신경까지 써버리고, 건강은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안 좋아지는데, 그런 변변찮은 삶을 끝내긴 아쉬워 전전긍긍하며 매달리는 모순적인 삶. 부끄럽긴 하지만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적인 모습이잖아요?

 힘들게 최후를 인정하는 순간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다니, 제겐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현이에게도 삶엔 행복한 순간보단 참고 견디는 시간이 더 많다며, 해파리도 그것을 그리 반기진 않았을 거라는 요지로 답변을 했어요.
 
 그러나 현이는 제 말을 듣곤 피식- 하는 소리를 내더군요. 비웃음 소리였지요. 현이는 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사람이 어떻게 해파리의 생각을 알 수 있겠냐.”라며 따져 물었습니다. 사람은 때로 자신이 가진 관념과, 감각의 신호를 밀어붙여 상대방을 이해한다고 그럴 듯하게 말을 하지만, 사실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이해하려는 시도 자체가 오만과 독선의 시작이라고 하더군요. 생각지도 못한, 자못 철학적이기까지 한 답변에 저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현이는 그런 제 얼굴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더니 이어서 말했습니다. 인간 사이도 별 다르지 않다고요. 누군가 감각을 느끼고 있다면, 그 감각은 다른 그 누군가의 감각과도 같지 않을 거라며, 같은 색을 보고 같은 온도를 느낀다고 해도, 실제로 다른 사람이 되지 않는 이상 그것이 같은 느낌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으며, 아주 단순한 형태의 현상에 대해서도 가치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에겐 그것이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허구일 수밖에 없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저는 잠자코 녀석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물었죠. 그래서 내가 어떻게 말해주길 바란 거냐고요. 녀석은 “인간은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 돼. 침묵 그 자체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인 거야.”라고 말하며, 그 말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잠시 ‘그렇다면 내가 그 해파리처럼 영원히 다시 태어나며 살아봤어야 했던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습니다.


3)
 그러고 보면 저 역시 현이를 저의 기준에서 바라봤을 뿐, 현이가 바라보는 세계는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보려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분명히 다를 텐데 말이에요. 하지만 아무리 상상하려 해도 실체가 있는 이미지는 그 어떤 것도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원숭이가 닭이 알을 낳는 고통을 결코 알 수 없듯이, 해파리의 행복이 어떤 것인지 절대 알 수 없듯이, 저 역시 현이를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현이에 대해 침묵해야 할 수밖에 없는 걸까요? 현이를 그저 어딘가 어느 시간에선가 존재하고 있는 한 객체로만, 저와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존재 자체로만 의미가 있는 존재로 인식해야 하는 걸까요?

제가 지나치게 해석을 크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현이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타인과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는 것 자체를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현이의 말이 틀린 것만은 아니죠.  저 역시 저의 생각을 남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게 힘들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고요. 하지만 어차피 알 수 없을 거라는 이유로 타인을 이해하는 행위를 포기하는 것은, 분명 일반적이라고 보긴 힘들죠. 현이 역시 언제까지나 입을 굳게 다물고 살아갈 수는 없는 거니까요. 하지만 단단하게 닫힌 현이의 마음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저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전에 다니던 병원에서 현이를 돌봐주던 간호사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 있어요. 지금은 현이의 증상에 대해 치료가 가능한지, 혹은 불가능한지를 문제 삼을 때가 아니라, 그냥 이 정도로 계속되기를 바라면 진료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물고기를 아무리 열심히 치료해봤자 물고기가 아닌 다른 존재로 만들 수는 없는 거라고요. 지금 하는 치료는 현이가 좁은 어항 속에서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었겠지요. 우리 가족 역시 현이가 영원히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희망이 없다는 착잡한 말은 결코 반갑지가 않습니다.

 
 가끔은 녀석이 우리 가족에게 주는 부담이 어항에서 살아가는 걸 버티지 못할 정도로 커지면 어떻게 할까 걱정이 됩니다. 어항 속엔 녀석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우리 가족들도 어떻게든 이 울타리 안에서 버티고 싶어요. 현이 때문에 가족이란 이 테두리가 깨져버린다면, 우린 더 이상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신세가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 현이도 벌써 열여덟 살이에요. 이제 곧 성인이 될 테고, 자신만의 삶의 기반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의 마음은 점점 불안해지기만 해요. 점점 커지기만 하는 현이의 존재에 밀려나 압사당할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날씨가 흐린 날 하늘을 올려다보면 켜켜히 쌓여있는 희색 구름이 금방이라도 쿵 내려앉을 것 같아 마음 속이 답답합니다. 마치 저희 가정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 처럼요. 그만큼이나 절박하게, 저희 가족은 한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현이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을 이해하지 않는다는 건,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갈 기회를 잃는 것이기도 합니다. 인간이란 살아가며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자신을 비춰보며 자아를 찾아가는 동물이니까요. 그래서 전 현이가 무서우면서도 불쌍하고 안타깝습니다. 저 역시 채집통 안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벌레들을 유심히,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바라보고 있는 그 아이의 무감동한 시선이, 나를 비롯한 모든 사물을 똑같이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쳐요. 하지만 현이가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떤 힘겨운 일들을 겪는지, 그럼에도 살아남았다는 것에 얼마나 큰 자부심을 갖게 되는지, 그렇게 쌓아 올린 것들이 물거품이 되고, 늙고 병들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에 어떤 고통을 느끼는지 결코 알지 못할 거란 생각을 하면, 또 가슴 한 편이 먹먹하게 아파옵니다.


4)
 가족이란 의무감으로 얼마나 더 견딜 수가 있을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옛날엔 그저 현이가 더 큰 사고를 치지 않기만을 바랬었죠. 하루가 조용히 끝난 것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잠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엔 현이에게 있어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어 이전보다 마음이 더 지칩니다. 나에 대해 아무런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 존재가 있다는 게, 그리고 그 존재가 저의 가장 가까운 피붙이라는 게 참을 수 없이 절 괴롭게 해서, 이젠 제가 형으로서 현이를 사랑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저 가족으로 태어났을 뿐인데 왜 저는, 우리 가족은 그 녀석에게 헌신할 수밖에 운명을 가져야만 하는 건지, 왜 그 녀석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가슴 아파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하지만 그래도, 의무감 때문이라도, 저는 현이의 내면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정작 현이는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게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전 그 오만하고 독선적인 행위를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이야긴 쓸까 말까 참으로 망설였는데... 최근엔 현이가 세상을 이진법으로 그린 것처럼 1과 0으로 채워진 거대한 흐름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왜 요즘 TV만 틀면 디지털인지 뭔지를 엄청나게 홍보를 하잖아요? 아날로그보다 더 선명하고 빠르고 원본에 가깝게 현상을 재현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전류가 흐르거나 흐르지 않는 것, 두 가지 신호 만으로 세상 모든 것들을 원본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게 참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현이의 감각도 디지털 단말기와 유사한 부분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인지하는데 무딜지도 모르지만, 존재가 발생하거나 사라지는 ‘현상’엔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죠. 1이 0으로, 혹은 0이 1로 변하는 순간이, 그 아이에겐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는 거예요. 다만 그 아이가 그리는 직각 그래프가 아직은 너무나 투박해, 인간으로서 필요한 모든 감각을 충반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냉정하게만 보이는 디지털 신호가 수없이 중첩되면 유려한 곡선이 되듯이, 지금은 모난 것처럼 보이는 현이의 내면도 더 많은 것을 포용하는 부드러운 것이 될 겁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현이는 디지털 HD 화면처럼 누구보다 선명하게 세상을 보게 되겠죠. 물론 끊임없는 연습이 필요하겠지만 말입니다. 끊임없이 점멸하는 TV 속의 작은 점들과, 그것을 응시하는 현이의 표정에서 저는 그런 인상을 받았어요.


 제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선생님께선 이해하시기 힘들실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쯤 머리를 갸우뚱하고 계실지도 모르지요. 헛된 희망에 취한 환자 가족의 넋두리라고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 저 역시 느끼는 대로 말할 뿐이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서, 스스로도 미쳐버린 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마저 드는군요. 

  다만 현이에겐 현이만의 시각이 있고, 평범한 인간과 같이 감각을 통해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 있다는 점은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 인지할 수 있는 게 아니겠지요. 그러나 현이에겐 분명 감정이 있고, 간혹 그것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비록 그 웃음이 우리 가족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그것은 우리 가족에겐 몇 안 되는 희망이기도 합니다.

 
 혹시나 사람들이 현이를 괴물처럼 느낄까 봐, 사이코패스도 아닌 더 이상한 존재로 볼까 봐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저희 가족이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고,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시길, 그리고 다른 의사들처럼 치료를 포기하지 말아주시길 다시 한 번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선생님의 도움이 있다면 현이도 언젠가 어항 크기에 몸을 맞출 줄 알게 될 겁니다. 형으로서 현이가 너무 큰 상처는 받지 않길 바라지만, 아무런 고통 없이 어른이 되는 사람은 없는 거니까요. 지금은 현이가 스스로를 하나의 존재이자 객체로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밖에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게 먼저인지, 스스로의 존재를 찾는 게 먼저인지 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거울이 하나라도 있어야 반대편을 비춰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그것이 견고한 세계가 산산이 부서지고 난 후 남은 파편이라 해도 말입니다.


 길고 이해하기 힘든 편지를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내방 때는 저도 진료를 함께 받았야겠습니다. 요즘 신경이 날카로운지 잠을 통 자지 못하거든요. 옛날과 달리 요즘엔 진단서 없이 수면제를 처방받지 못하게 되었더군요. 몇 년 전인가 개인적으로 정말 힘든 일이 있어서 길고 영원한 꿈을 꾸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현실로 돌아오기가 무서웠던 거죠. 그런 생각을 계속한다면, 그건 분명 수면 장애가 아니라 더 심각한 정신병이겠지요. 

 현이는 잠을 잘 때 어떤 꿈을 꿀 까요? 다행히도 지금 제 옆에 잠들어 있는 녀석의 얼굴은 한없이 평온해보이는 게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형은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자기를 위해 이 긴 편지를 쓰고 있는데, 혼자서만 잘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얄밉기도 하군요. 하지만,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저의 사랑하는 막냇동생인 것을.





방성식
qkdrntlr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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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유시인 2016.06.30 02:41
    열심히 정진하시면 좋은 결실이 있음을 확신합니다.
    잘 감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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