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을 품은 여우 >
“어푸, 이게 다 뭐람.”
눈앞에 날리는 먼지들의 행렬에 창문을 열고서 환기를 시켰다. 햇볕이 따사로운 올해의 마지막 날 오후. 내일이면 새해가 되는 만큼 오랜만에 대청소를 하려 했건만. 어찌된 일인지 이놈의 집구석은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
냉장고 한쪽 귀퉁이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작은 반찬통이 김치의 색에 물들어 있고, 혼자인 게 서글퍼질 때 날 위로해주던 소주도 반 병 처박혀 있다. 뽀얗게 똬리를 튼 곰팡이 녀석들까지 처리하고 나니, 더는 들어갈 곳이 없을 것 같던 냉장고가 어찌된 일인지 휑하기만 하다.
“……먹을 것도 없네. 이따 마트라도 가야겠다.”
어차피 들어줄 사람도 없는 텅 빈 곳. 공허한 목소리를 들으니 괜스레 쑥스러워져 최신 가요를 틀어두고는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냉장고 청소를 끝내고 쌓여있는 설거지가 신경 쓰였지만, 어차피 조금은 물에 담가놔야 잘 닦이는 법. 청소기를 들었다가 털썩, 소파에 몸을 뉘이고는 엉망이 된 집 꼴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구석구석 박혀있는 박스를 빼내어 그 안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한쪽이 끝났나 싶으면 또 다른 청소거리가 눈에 보였다. 내 방은 다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소파에 누워 보니 옷장 위에 작은 박스 하나가 숨박꼭질을 하고 있었다.
“에이, 저건 또 뭐야. 오늘 중에 다 하려나…….”
오늘 중에 끝내려면 움직여야 했으니, 읏차-기합을 넣으며 몸을 일으키고는 옷장 위에 박힌 박스를 빼냈다. 흐엑. 날리는 먼지에 어푸푸 숨을 몰아쉬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놈의 먼지는 여기가 좋은가 보다. 수북이 쌓인 먼지들을 청소기로 빨아들이고 박스는 걸레로 닦아냈다. 뿌연 먼지를 닦아내고 나니 언제 써놨던 건지 기억도 안 나는 글씨가 보였다.
[소중한 기억들]
소중한 기억들? 그게 뭐지. 박스에 붙은 테이프를 뜯어냈다. 색이 바랜 노란 박스를 여니, 어릴 적 앨범이 들어있었다. 오래전, 내 보물 1호라 여겼던 곰돌이 머리띠도 들어있고 비디오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몇 십번이고 봤던 ‘미래소년 코난 6편’도 있었다. 다이스 선장이 코난과 라나를 구해줄 때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기집애가 무슨 코난을 보냐는 친구들의 핀잔에도 나는 코난을 보기 위해 고무줄놀이도 포기하곤 했었다.
‘이게 아직 나오려나…….’
비디오테이프를 바라보며 잠시 그 시절을 떠올리다가, 박스 옆에 두고서 잠든 앨범을 꺼내들었다. 꽉 다문 입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왜 이제야 펼치냐는 듯 투정을 부렸다. 하긴, 이사 오고 나서는 꺼내보지도 않았으니 고스란히 10년은 잠들어 있었나 보다.
‘벌써 여기 온지도 10년이 지났네. 시간 빠르다.’
대학생의 꿈에 부풀어 이 집을 구한 게 엊그제 같은데, 살다보니 10년의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풋풋하기만 하던 내 나이 앞자리는 이제 한 단계 올라섰고, 설레기만 했던 마음은 무덤덤해졌다. 몇 번의 연애도 결실은 맺지 못했고, 추운 겨울을 몇 번 넘겨보니 마음이란 놈도 강해지는 건가. 왠지 씁쓸해지는 마음을 애써 외면하며 앨범 속 사진들에게 눈길을 돌렸다. 갓난아기 때부터 학교생활까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는 나의 추억들. 역시 남는 건 사진뿐인 것 같다. 가물거리던 옛 기억들이 사진 한 장에 새록새록 떠오르니 말이다.
“어? 이건…….”
코팅이라도 된 듯, 찰싹 달라붙은 비닐을 떼어내고 사진을 꺼냈다. 사진 속, 활짝 웃고 있는 할머니와 나. 내 손에 쥐어진 가장 좋아했던 동화책. 새삼 옛 기억이 떠오른다. 일찍 여읜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하여 엄마역할까지 해주셨던 할머니는 곧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곤 하셨다. 할머니의 입은 이야기보따리라도 되는 것 마냥 어쩜 그리도 재미난 얘깃거리가 많은지.
밤이 되면 동화책을 읽어주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자장가삼아 잠이 드는 것도 소중한 기억이었다. 지금생각해보면 할머니의 목소리는 낡아버려 쉰 목소리가 섞여 들렸는데 그것이 왜 좋았는지 모르겠다. 할머니이기에, 할머니였기에 좋았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찌 보면 어릴 적에 난, 할머니바라기였을지도.
“아차차! 내 정신 좀 봐. 청소하다 말고 뭐하는 거람.”
어느새 눈가에 맺힌 눈물 한 방울 닦아내며 제일 먼저 청소를 끝냈던 책장에 앨범을 꽂았다. 언제라도 추억을 꺼내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조금 전 빼냈던 사진 한 장은 책상 유리 속에 밀어 넣었다. 생각해보니 어른이 되고 나서는 가족사진 하나 찍어놓은 게 없었다. 이번 주말에 할머니를 찾아가 사진이라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다시 박스로 향했다. 얼른 박스 안에 물건들을 정리하고 충분히 불었을 설거지도 해야 했다.
작은 공간 박스로 머리띠, 공기방울, 비디오테이프를 담아 놓고는 박스 바닥에 붙어 있는 빳빳한 종이를 꺼냈다. 익숙한 색, 친근한 그림. 어릴 적 가장 좋아했던 동화책이었다. 사진 속 내 손이 쥐고 있던 그 동화책.
[알을 품은 여우]
책상 유리 속에 넣어둔 사진을 다가가보니 그때 그 동화책이 맞았다. 너무 많이 봐서 표지가 덜렁거리는 내 동화책이었다.
“이게 아직도 있었구나…….”
그러고 보니 이게 어떤 이야기였더라? 하도 옛날이라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결국 청소를 뒤로 미루고 추억을 택한 나는 어릴 적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앨범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어버린 동화책이 추억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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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무이, 할무이. 이거, 이거.”
“이건 어제도 읽었지 않니.”
“이거 보꺼야.”
“원, 녀석두.”
동화책을 들이밀며 볼을 한껏 부풀린 아가를 향해 웃음 짓던 할머니는 동화책을 받아들고는 첫 페이지를 펼쳤다. 어제도 들려줬건만, 아가는 지겹지도 않은지 초롱초롱한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누워야지? 할미가 읽어 줄테니 코-하렴.”
“응!”
읽어준다는 말에 금세 이불 속으로 들어간 아가를 바라보며 할머니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어느 숲 속에 살고 있는 여우이야기를 동화책에 쓰인 딱딱한 말이 아닌, 친근하고 좋은 할머니의 목소리로.
“어느 날, 그 여우는 어느 날 나무 밑에서 새의 알을 발견하고는 알을 품었단다. 바로 먹어도 맛있겠지만, 알에서 태어나길 기다렸다가 잡아먹으면 더 맛있지 않겠니? 그렇게 알을 품기 시작한 여우는 호시탐탐 알을 노리는 재빠른 족제비와 사나운 오소리를 쫓아내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도 알을 지켰단다. 오직 알에서 태어나는 새를 잡아먹겠다는 생각만으로 그 고생을 한 게지.”
“…….”
“위험 속에서도 여우가 품으며 잘~큰 알이 드디어 금이 가더니 아기 새가 배꼼 고개를 내밀며 세상과 마주하였지만 여우는 입을 크~게 벌리며 잡아먹으려고 했단다. 지금까지 기다렸으니 이제 먹는 일만 남았던 게지.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아기 새가 대뜸 여우에게 ‘엄마’라고 하는 게 아니겠니? 당황한 여우에게 아기 새는 배고프다고, 놀아달라고 보챘단다. 네가 할미에게 하는 것처럼.”
“………….”
아가는 어느새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었다. 아가가 걷어찬 이불을 다시 덮어주던 할머니의 투박한 손이 동화책도 덮으려다 움직임을 멈췄다. 깊이 잠들지 않은 아가가 풋잠에서 깰까 싶어 다시 동화책으로 시선을 옮긴 할머니는 이야기를 이었다.
“크게 당황한 여우는 아기 새에게서 도망쳤단다. 하지만 아기 새의 울음소리를 듣고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지. 망설이던 여우는 결국 아기 새에게로 돌아왔고, 아기 새의 엄마가 되었단다.”
“………….”
“아가, 여우가 왜 돌아왔는지 아니? 여우는 나쁜 녀석들을 쫓아내고 알을 소중히 품으면서 엄마의 마음을 갖게 된 거란다. 이 할미가 너를 소중히 하는 마음을 여우도 갖게 된 게지. 너도 나이가 들며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 이 할미 마음이 이해가 될게다.”
투박한 손으로 아가의 배를 토닥토닥 두들기던 할머니는 밖에서 들리는 강아지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잘 키우라고 옆집 장씨 할아범이 준 강아지이건만, 어쩐 일인지 어두워지면 울어대기 바빴다.
“요녀석이 밤이라고 무서워서 그러나……. 조용히 혀라, 복실아. 엄마 나간다~.”
환했던 방 불이 어두워지고, 잠든 아가를 뒤로 하며 할머니는 밖으로 나왔다. 아가는 살짝 눈을 떠 할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다시 잠이 들었다.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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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책은 마지막 페이지를 나타내고 있었다. 추억이란 건 가끔씩 무서울 때도 있는 것 같다. 몇 페이지 되지도 않는 그림 동화에 어릴 적 그때의 기억을 되돌려주니까.
나는 그때 잠들지 않았었다. 아니, 잠이 들었었지만 반쯤 깨어있었다. 그래서 다 들을 수 있었다. 알을 품은 여우에 대한 할머니의 이야기. 엄마의 마음을 가졌기에 차마 아기 새를 버릴 수 없었던 여우의 마음과 나를 소중히 여기는 할머니의 마음이 같다고 했다. 나는 아직 엄마가 되지 않아서 할머니의 마음이 무엇인지, 이야기 속 여우의 마음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단순히 오래 있어서 정에 이끌리는 것이라면 친구들도 있지만 그것과는 다른 것 같다. 떨어지면 걱정되고, 함께 있으면 무언가 더 해주고 싶은 마음. 그것이 모성애, 엄마의 마음인 걸까.
동화책을 덮으며 바닥에 앉았다. 차갑다. 창문을 바라보니 어느새 어둠이 내려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청소하느라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들이치는지 커튼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직도 흘러나오는 노래 소리도 작게 줄이고 나니 아무것도 없었다. 집 안에 나 혼자, 덩그러니 추억에 잠겨 쓸쓸했다. 꺼놓은 보일러도 쓸쓸해 보였다. 기분 좋게 추억을 들여다본 것뿐인데, 왜 이런 것일까.
“……야.”
조금 잠겨버린 목소리로 말했다.
“……해피야.”
여우와 할머니의 마음은 모르겠는데, 복실이의 마음을 알 것 같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어린 녀석에게 할머니는 엄마였을 것이다. 동화 속 작은 새처럼 세상에 태어난 작은 녀석에게 할머니는 항상 함께 있고 싶은 엄마였을 것이다. 그래서 동화 속, 여우처럼. 할머니도 다 큰 녀석을 팔라는 동네 사람들의 말에도 끝까지 키우겠다고 했던 게 아닐까. 15년이나 살았음에도 제법 건강해 보이는 녀석이니 제 값 받아야 된다며 나 역시도 팔자 했었는데, 그것이 후회된다.
시내 애견샵에서 한 마리 데려와, 적적함을 달래려다 똥오줌 못 가리는 녀석에게 신경질 나 되려 보내버린 것도 후회되고. 복실이 새끼를 한 마디 데려왔다가 너무 장난이 심하여 시골로 보낸 것도 후회된다. 그 아이들에겐 내가 엄마였을 텐데. 진짜 엄마와 떨어져 마음 붙일 곳 없는 녀석들이 마음을 붙였던 새엄마였을 텐데. 그저 집지키는 걸로만 생각하고, 겉모습만 좋아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다시 데려올까.”
잘 키울 수 있을까. 또 싫증내버리는 건 아닐까. 아무데나 싸고 다니면 어쩌지.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것저것을 떠올리는 머리와 달리 내 마음은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 저에요.”
[수진이냐? 니 할미 저녁 밥 한다.]
“그래요? 그럼, 할아버지. 저 지금 내려갈 건데 같이 밥 먹어요.”
[지금? 내일이 주말이던가……아닌데. 일도 바쁜데 뭣하러 내려오누.]
“할머니, 할아버지도 뵙고, 해피 데려가려구요. 아무래도 걔한테는 제가 엄마인데 너무 내버려둔 것 같아서요.”
[컬컬, 철들었네. 우리 손녀. 이제 결혼 할 마음이 드나보구나.]
“그런 거 아니에요. 해피 잘 있죠?”
[잘 있다마다. 복실이 새끼들이랑 잘 논다. 그래도 네가 보고픈지 새벽녘에 울긴 하더라. 복실이 새끼는 안 그런데, 유독 저놈만 그러는구나. 흠……복실이 새끼는 지어미와 오래 있어서 그런가.]
“그런가봐요. 그럼, 저 준비하고 금방 갈게요. 할머니께도 저 간다고 말해주세요”
[오냐.]
두터운 외투를 걸치고는 무릎담요도 하나 돌돌 말아 챙겼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복실이 새끼는 집 안이 마냥 신나서 장난을 쳤을 지도 모르고, 애견 샵에서 데려온 아이는 너무 어려서 똥오줌을 못 가렸을 것이다. 훈련받은 아이도 아닌데 당연하겠지. 내가 힘들어서, 내 생활이 고달파서 말 못하는 아이들에게 짜증을 부린 것 같기도 하다.
급히 나가려다 엉망이 된 거실 한 켠을 걸레로 대충 닦아놓고 ‘소중한 기억들’이 들어있던 빈 박스를 눕혀 헌 담요를 하나 깔았다. ‘소중한 기억들’이란 글씨를 매직으로 한 번 더 진하게 쓰고는 그 밑에 ‘……ing’를 썼다. 해피를 데려와 함께 하며, 소중한 기억은 계속해서 이어질 거니까 말이다.
글씨를 바라보며 살짝 웃음짓고는 꺼놨던 보일러를 다시 켜고 집에서 나왔다. 해피와 함께 집으로 돌아올 때는 따뜻한 온기가 가득해질 것이다. 그것은 보일러로 인해 데워진 방의 온기뿐만 아니라, 해피와 함께 하는 것에 대한 온기도 있을 것이었다.
‘엄마, 금방 갈게. 이제 헤어지지 말자. 해피야.’
시골로 향하는 발걸음이 어릴 적 그때, 할머니 품에서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설레고 또 설렜다. 동화 속, 여우가 아기 새에서 되돌아가며 웃음 짓는 것 같이.
열심히 습작을 하시면 좋은 결실을 이뤄내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