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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새 (New Bird)



 즐거운 재즈 음악이 홀 안을 가득 채운다. 사람들은 음악에 몸을 맡기고 경쾌한 스텝을 밟으며 춤을 춘다. 그리고 홀 왼편에는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가 앉아있다. 나는 그의 시선이 가 닿는 곳을 따라가다 그의 눈빛을 바라본다. 미묘한 그의 표정에 담긴 깊은 눈빛이 슬픔을 머금고 나를 부른다. 잘 알지 못하는 너를 이미 알고 있는 듯 한 이 기분을 뭘까. 내 몸의 언어가 나를 부른 그의 고요한 굉음에 반응한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로 천천히 다가간다.

  그때부터였을까. 어떤 세계의 언어로도 묘사할 수 없는 강력한 무언가가 그를 볼 때마다 느껴졌다. 발끝에서부터 발뒤꿈치로 옮겨가며 흐르는 음악을 밟는 그의 스텝이 나의 발바닥 중앙으로 전해졌다. 어느새 그 짜릿한 전기는 나의 두 발바닥을 뚫고 올라와 무릎으로, 허벅지로, 이내 배꼽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약 일주일 뒤에는 심장을 감싸더니 나의 가슴을 터뜨렸다.

너는 언제부터 춤을 췄어?”

5년 전쯤부터?” 내가 그에게 한 첫 질문에 그는 짧은 대답으로 입을 연 후 다시 닫았다.

그렇구나...춤 출 때 행복해보여.”

슬픔이 보이는 그에게서 행복을 찾아낼 수 있었던 순간에 그는 언제나 춤을 추고 있었다. 현란한 발동작과 자유를 표방하는 손짓들, 그리고 이와 어우러지는 음악에 모든 행복을 담은 그의 즐거운 표정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가 행복한 표정을 지을 때면, 나도 왠지 모르게 즐거워졌다. 모든 음악이 꺼지고 잔잔함이 이내 무거움으로 내려앉으면, 그의 분위기도 함께 가라앉았다. 그리고 이를 감지하는 미묘한 내 세포들이 그를 향해 애도를 표했다.

  그와 대화를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자 나는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그도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다.

부모님은 이혼하셨어.” 덤덤한 말투였지만 아픔이 묻어나왔다.

언제...인지 물어봐도 될까?”

3 . 아빠의 사업 실패로 우리 가족은 갈 곳이 없었어. 다른 친척이 없는지라 ...아니 있어도 거의 남남이야. 교류를 안 하고 지낸 지 한참 됐어. 아무튼 그 이후로 부모님이 자주 싸우셨어. 사실 난 어릴 적부터 싸우시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들었었거든. 그래서 이제는 무뎌졌다 생각했는데 여전히 힘들더라. 술병 던지는 소리, 접시 깨지는 소리, 모든 분노가 응집되어있는 침묵의 소리들...전부 답답했어. 귀를 자르고 싶을 만큼. 내 귀가 없어지면 잠은 잘 잘 수 있을 것 같았거든.”

  그렇게 그는 고 3 때부터 떠돌이 생활을 했다. 학교를 자퇴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부모님과의 연락은 단절되고. 외롭고 힘들었을 그를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왔다.

스무 살 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찜질방에 가서 자려고 길을 나서는데, 어디선가 흥겨운 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분명 지상이 아니고 지하였어. 시끄러운 소리였는데, 내가 지금껏 들어왔던 기분 나쁜 시끄러운 소리와는 전혀 달랐어. 음악과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래서 잠시 멈춰 서서 소리가 들려오는 그 곳을 바라보았지. 그리고 나도 모르게 미끄러지듯 이곳으로 흘러들어왔어. 그때부터야. 내가 춤을 추기 시작한 건.”

  그의 꿈은 자유였다. 답답한 소리들에서 벗어나는 것. 몇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의 내면에 존재하는 아픔의 소리들은 그의 몸과 마음을 단단히 묶어놓았다.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도, 싱그러운 빗소리도 단단해진 그의 자물쇠를 풀 수 없었다. 춤을 출 때, 오로지 음악에 온 몸을 풀어내어 그 자신을 표현할 때에만 그는 어둠 속에서 벌거벗은 채로 나와 빛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그를 나는 사랑하게 되었다.

넌 어떤 사람이야?” 그가 물었다.

? ...나는 포도를 좋아하는 사람이야.” 옅은 미소를 띤 채 대답하는 나에게 그도 웃으며 되물었다.

포도?”

. 어렸을 때 포도 한 송이를 손에 쥐고 주물럭거렸는데, 그 때 보랏빛의 포도즙이 흘러나오는 거야. 옹알거리는 포도에 내 손이 닿는 순간 포도즙으로 변하는 모습이 아름다웠어. 자신을 있는 힘껏 동그랗게 말았다가 포도즙이 되는 순간에, 그 때에 편안하게 자신을 내어 본래 모습을 보여주는 포도가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어.”

  나를 바라보는 그의 다정한 눈길을 느낄 수 있었다. 공기를 통해 전해오는 그 따스함을 나는 가슴에 품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청 치열하게 살았어. 피아노, 리코더, 단소, 발레, 태권도, 수영, 탁구교실부터 영어, 수학, 국어, 그리고 독서토론 학원까지... 여러 가지를 배웠고, 또 내가 흥미도 있어서 공부도 열심히 했지. 덕분에 중학생 때는 전교 1등도 했었고. 근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내 자신이 너무 싫은 거야. 답답했어. 학교에서 배우는 수업들도 지겨웠고, 문득 내가 이걸 왜 배우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내 삶 속에서 그려내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남들이 다 하니까 따라서 하는 쳇바퀴 같은 삶을 사는 내 자신을 보고 있자니 슬프더라. 현모야, 나도 너처럼 자유를 원해. 내 본래의 모습을 찾고 싶어. 내 자신에게 솔직하고 당당히 살고 싶어. 내 포도가 간절히 원하는 삶 말이야. 나는 네가 춤을 출 때 네 발끝에서부터 심장을 관통하는 포도즙이 풍요롭게 흘러나오는 것을 봤어. 음악과 하나가 된 너를 적시는 그 보랏빛을 말이야.”

 

  그 날 이후, 음악이 꺼지고 모두가 집에 돌아갈 때 우리 둘은 그 공간에 남아 보라색의 찬란한 빛으로 서로를 비춰주었다. 내가 추는 춤에 그가 몸을 움직였고, 나 또한 그가 추는 춤을 바라보며 내 몸을 활짝 펼쳐냈다. 우리만의 이야기가 담긴 재즈 음악을 틀고 함께 춤을 출 때 그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

작은 빗방울이 소나기가 되어 내릴 즈음 핸드폰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잠에서 깼다. 새벽 4시경이었다. 그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미안해.”

불안했다. 그의 짧은 문자에서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역시 그는 그 날 춤을 추러 오지 않았다. 그는 어디로 도망쳤을까. 그토록 아름다운 몸짓을 놓아두고 어디로 간 것일까.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와 손을 잡던 순간 온 몸이 떨려왔던, 바로 그 순간만큼 나는 떨고 있었다. 자신을 가두었던 속박의 어둠이 그의 가슴 속에서 다시 고개를 내민 것일까. 자유를 억압하는 쾌쾌한 공간 속에서 남몰래 키워온 가시를 내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인가. 그리고 그 가시가 나를 찌를까 두려워 자신의 온 몸을 내게서 떼어버린 것이었을까.

  그를 온전히 느끼고 싶은 아픔이 배에서부터 명치를 지나 심장까지 올라왔다. 그의 가시에 찔려도 좋으니 그를 안고 싶었다. 그가 춤 출 때 내게 보여주던 행복한 그 미소에 다시 입맞춤하고 싶었다. 아픔과 두려움이 뒤섞인 그 장막의 눈빛 속에 따뜻함과 사랑의 그림자를 내비치던, 깊은 두 눈에 내 눈을 맞대고 싶었다.

그는 그렇게 내게서 사라졌다. 나는 그가 자신의 자유를 찾아 멀리 날아갔다고 생각했다. 자유롭게 세상이란 무대에서 춤을 추는 그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아팠지만 나는 그를 쫓지 않을 만큼 현모의 전부를 사랑했다.

 

  나는 계속 홀에서 사람들과 춤을 췄다. 현모는 그 공간에 없었지만 설명할 수 없는 끈으로 나와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와 함께했다. 홀은 어둠으로 깔렸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샤워했다. 그리고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거울 앞에 섰다. 왠지 모르게 몸을 떨고 싶었다. 행복했다. 거울 속 춤추는 내 모습을 보니 오랜만에 즐거워졌다. 거리로 뛰쳐나가 달리고 싶었다. 바다가 있는 곳으로, 아니 바다가 아니어도 좋으니 맑은 물이 찰랑거리는 그 곳으로 가 마음껏 소리치고 싶었다. 이 세상은 내 것이라고.

  새벽일까 아니 아직은 새벽이 아닌 자정 무렵에 미친듯하게 웃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친구와 신나게 통화하고, 그녀의 연애 이야기를 듣고, 나의 아픔과 즐거움이 동시에 공존하는 이 무시무시한 모순의 시공간 속에서 온전히 현재를 소유하고 있는 기쁨 속에 풍덩 빠지고 싶었다. 늘 그랬듯이, 나는 너와 함께였지만 혼자였다.

  너는 지금 어떤 감정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을까. 후회일까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연민일까. 아니면 어느 누구도 이름 붙일 수 없는 너만의 슬픔일까.

 

  아침 햇살이 나를 따스하게 비춰주는 꿈을 꿨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풀잎에 이슬이 맺혀있었다. 밤새 내린 비가 아침 햇살 대신 내 슬픔을 거두었다. 어제의 폭발적인 감정의 응어리가 여러 방울로 조각나버린 이슬에 자신의 자리를 내주었다.

  새벽에 맺힌 이슬의 향기를 맛보며 집에서 조금 떨어진 카페로 걸어 나갔다. 오늘 내 하루 일과에 적힌 빼곡한 글씨 따위는 잊고 싶었다. 온전히 나만의 무드를 느끼며 오늘 하루를 음미하고 싶었다.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을 아주 살짝이라도 다시 꺼내어, 그 아픔 속에 담긴 부드러운 사랑을 다시 껴안고 싶었다.



 두부와 감자조림이 담긴 접시 위에 벌건 무화과나무 열매가 있었다. 속이 투명해 보이는 그 열매조각을 멍하니 바라보다 순간 웃음이 났다. “넌 나와 반대구나. 난 겉으로는 투명하고 밝은 표정을 지어도 속은 시뻘겋게 타오르고 있는데.” 내가 마주한 아침 식사는 내 배를 채워주는 대신 울고 있는 내면의 어린아이를 자극했다. 이제는 내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두 조각내어 삼킨 투명한 무화과나무 열매의 빨간 껍질만 토해내고 싶었다. 왠지 그러면 편안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붉게 상기된 내 어린아이가 순수한 열매조각의 맑은 부분만을 흡수해서 안정을 취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를 달랠 수만 있다면 난 지금 당장이라도 무화과 열매를 물처럼 흡수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조용했던 카페는 점심 무렵이 되자 시끄러워졌다. 아름다운 커플들의 모습을 보니 나가고 싶어졌다. 그런데 어디로 가지. 목적지를 정해두지 않고 이곳저곳을 표류하는 나의 자유로운 영혼을 더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다. 바람이 이끄는 대로, 꽃향기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겨보자는 결심이 섰다. 카페를 나서기 전, 사랑의 에너지로 가득 휩싸여 사랑만을 이야기하고 사랑만을 행동하고, 또 사랑만을 먹는 커플들에게 내가 먹은 무화과나무 열매의 빨간 껍질을 토해냈다. 더 빨갛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라고 이야기하면서 그들에게 놓인 내 시선을 거뒀다.


 얼마쯤 걸었을까. 온 길거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노래들의 가사가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엉켜 하나의 새로운 노래를 완성했다. 노래의 제목은 새 새(new bird)’, 작사, 작곡, 편곡 - ‘포도즙’. 집 앞 공원의 잔잔한 물결의 흐름에 거의 와 닿자 나의 첫 노래도 완성되었다. “자유로운 나는 진정한 자유를 원해. 물결을 스치며 비행하는 나의 새여. 내게 사랑이란 푸른 물감으로 하늘을 칠하며 그의 심장과 눈빛을 적시는 새로운 새가 되는 것.”

  멍하니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았다. 그저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잔잔한 편안함이 내게 전해지자 순간 전율했다. 내 사랑을 볼 수 있다면, 너에게 보내는 나의 사랑은 오감을 넘어 존재하는 여섯 번째 감각의 짜릿함일까. 아니면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 11차원의 의식 속에 이미 너와 내가 함께 존재하는 무형의 아름다움일까.

  내 잠재의식 속에는 그와의 기억들에 들러붙은 거대한 감정의 에너지가 존재한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시공간을 뒤틀어 추억 속의 공간으로 돌아간다. 그 속에서 나는 그의 온기를 느끼기도, 동시에 차가운 아픔을 느끼며 잠재의식 속의 나를 현재의 의식으로 끄집어낸다. 상처받은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와 조우한다. 지쳐 보이는 그 아이를 둘러싼 시커먼 진흙을 한 꺼풀씩 벗겨낸다. 심장과 배에 달라붙어 딱딱하게 굳어진 진흙에 손이 닿는 순간 아이는 두려워 몸을 떤다. 두려움 뒤에서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비치는 부드러운 아이의 눈빛이 나에게 속삭인다. “너무 아파. 여기는 조심히 떼어내 줘. 물을 조금 묻히고 나서 부드러워지면."


 꿈속에서 그의 아름다운 실루엣을 보았다. 장막에 가려져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반짝이는 두 눈을, 내 향기로 둘러싸인 그의 코를,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그의 입술을. 조용한 그 공간 속에서 우리 둘 외에 다른 모든 것은 정지해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내 눈이 장막 뒤의 힘겨움을 느끼고 있었다. 미세한 떨림의 진동이 내 마음을 울렁이게 했다. 순간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싶지 않았다. 우는 내 모습을 네가 볼 수 있었으면. 조금의 연민이라도 좋으니 네가 나를 부드럽게 안아서 달래준다면, 내 눈물도 너를 따뜻하게 감싸 안을 텐데.

 

  자석처럼 이끌려 거부할 수 없이 그와 가까워지던 풍성한 여름날로부터 지구는 한 바퀴의 공전을 끝내었다. 그리고 나 또한 꿈속에서 그와 소통한 지 어느 덧 1년이 되었다. 춤을 추던 홀은 확장 공사를 해 넓어졌고, 춤을 즐기는 새로운 사람들 또한 많아졌다. 현모와 함께 춤을 추며 몸을 맡기던 재즈 음악은 내가 디제이가 되면서부터 공식지정 음악이 되어버렸다. 그 음악을 들으며 스텝을 밟는 내 발끝은 언제나 그를 향해 있었다. 춤을 추고 침대에 쓰러져 잠을 청할 때 꿈속에서 그는 나를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었다. “오늘 춤 멋있었어. 전에 내가 추던 춤보다 더.” 그가 속삭였다. “진짜? 고마워. 사실 오늘 춘 춤은 전에 네가 나에게 보여주던 그 춤이야. 부드러운 s자 곡선으로 내 두 손과 몸통과 두 발을 연결해서 춘 춤 말이야. 손을 하늘 높이 뻗는데 그 끝에 네가 있었어. 손끝부터 시작된 찌릿한 전율이 내 몸통을 타고 발과 연결된 땅으로 천천히 흘러가는 걸 느꼈어. 넌 그 공간에서 분명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어. 맞지?” 차분한 목소리로, 그러나 약간은 흥분이 섞인 말투로 내가 물었다. “아마도...” 이제는 나를 다정하게 껴안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가슴팍에 묻히자 조용하면서도 힘 있게 뛰는 그의 심장소리에 깊은 잠에 빠져 그를 볼 수 없었다. 한여름 내리쬐는 햇빛을 커다란 나무 밑에서 피하듯 선선한 따뜻함을 느꼈다. 그렇게 오랜만에 그의 품에 안겨 꿈을 꾸었다.

 

잘 지냈어?”

그리운 목소리였다. 꿈속에서 하염없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눈물로 그리던 그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현모가 서 있었다. 두 눈의 깊숙한 곳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경쾌한 재즈음악이 들려오고 사람들의 춤으로 어우러진 공간이었지만 그 어떤 소리도 나를 뚫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만이 내 모든 세포를 뚫어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보고 싶었어, 연서야.”

앞머리가 눈을 찔러 눈물이 났다. 현모는 다정한 손길로 눈가로 내려온 앞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를 보자 나의 손끝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떨림은 혈관을 타고 내 심장으로 들어와 닫혀있던 문을 강하게 두드렸다. 그 힘은 나를 더 아프게 했고, 슬프게 했으며, 동시에 화를 불러내었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그의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자 이는 사랑과 연민으로 변형되었다.

현모야...왜 이제야 모습을 보여주는 거야. 너무 보고 싶어서 아팠어. 그리웠어. 네가 미웠어.” 펑펑 우는 나를 그는 부드럽게 안아주었다. 그의 몸 또한 떨리고 있었다.

  홀의 불이 꺼지고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갔다. 그 어둠 속에 1년 전처럼 우리 둘만이 서있었다. 작은 조명을 켜고 잔잔한 재즈음악을 틀었다. 현모의 모든 것이 음악을 타고 움직이고 있었다. 슬픔과 함께 사랑을 속삭이는 그의 두 눈과 입술이 나에게 흘러들어왔다. 나도 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의 몸에 돋아난 부러진 가시를 온 몸으로 맞대며 그를 껴안았다.

  현모는 나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집 앞 놀이터의 벤치에 현모와 내가 나란히 앉았다.

현모야,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너한테 문자 보낸 그날, 사실 엄마가 돌아가셨어. 너무 미운 엄마였는데 가슴에서 뜨겁게 눈물이 솟아오르더라. 3년 전쯤부터 아프셨대. 심장이.” 땅 위의 모래를 발끝으로 짓누르며 현모가 말을 이었다.

갑자기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어. 혼자 숨어버리고 싶었어. 내 아픔의 무게를 네가 감당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어. 내가 너무 무거워서 너를 짓누를 것 같았어. 내가 떠나면 네가 조금 더 가볍지 않을까. 나한테 너는 전부였으니까...”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미 그가 떠났었던 그 순간에 알고 있었다. 돋은 가시 때문에 내게 다가올 수 없었던 그를.

  하늘에는 아주 큰 보름달이 떠 있었다. 환한 달빛이 우리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모든 슬픔과 상처를 환히 드러내어 흘려보낼 수 있게 위로해주었다. 그 빛으로 샤워하며 나는 현모와 그날 밤새 이야기했다. 많이 울었고, 또한 많이 웃었다. 현모가 울 때 나는 그를 내 가슴으로 안아주었다. 놀이터의 모래로 발장난을 치며 다섯 살 아이들이 그렇듯 우리도 가장 순수한 본연의 모습으로 서로에게 다가갔다. 그 밤은 가장 설레고 아름다웠다.


  일주일 뒤, 나는 현모를 춤추는 홀이 아닌 신촌에서 보기로 했다. 길거리에는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현란하게 손가락을 움직이며 아름답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연인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분주하게 자신들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현모와 나 또한 그 사이 어딘가에 서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자 우리는 서로를 향해 손을 흔들며 뛰었다. 횡단보도 중간에서 나는 현모의 손을 잡고 그를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현모도 내게 눈빛으로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10분쯤 걸었을까. 커다란 광장이 나왔다. 신나는 음악이 울려 펴졌고 마이크를 잡은 한 여성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춤 선으로 씹어 먹자.’ 채널의 진행을 맡은 MC입니다. 이번 행사는 신나게 춤을 추고 싶으신 분들이 자신의 재능을 이 광장에서 마음껏 펼치는 일종의 경연대회입니다. 10팀의 참가자를 즉석에서 모집해서 대회를 진행합니다. 여기 앞에 계시는 관중 여러분이 심사위원입니다. 이 중 앞에 계신 100여분께 제가 투표기계를 나눠 드리겠습니다. 1번부터 10번까지 팀의 공연을 보고 가장 맘에 드시는 번호를 눌러주시면 됩니다. 장르는 자유고요, 노래 또한 참가자가 직접 선별할 수 있습니다. 5분 뒤에 대회를 시작합니다. 난 여기서 춤추다 죽어도 좋다 하시는 분들..., 그런 분들 있으시면 지원 꼭 해주시구요. 그럼 조금 이따 뵙겠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춤추다 죽어도 여한이 없는 지금 너와 함께 춤을 추고 싶다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우리는 첫 번째로 지원했고, 프로그램의 서막을 열었다. 그리고 늘 그랬듯 무지개의 제일 마지막을 칠하는 우리들의 보랏빛 이야기가 담긴 재즈 음악에 서로를 맡기어 춤을 추었다. 그 공간 속에서 현모와 나는 푸른 하늘을 가르는 자유로운 새였고, 시간을 물들이는 진한 포도즙이었다. 마지막 스텝을 내딛는 순간, 우리는 함께 그 시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서로에게 이끌리던 처음의 순간처럼 거부할 수 없이 강력한 속도로. 자유로운 바람이 우리 곁에서 살랑였다.

 


 




 

 

  

 

 

 

 

 

 

 

 

 

 

 

 

 

 

 

  • profile
    korean 2019.12.31 19:53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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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9 아키모토와 뻘건눈의 토끼의 만남... 완성 1 file 뻘건눈의토끼 2019.10.26 94
648 뿌리 1 그레이 2019.10.23 54
647 월간문학 제 32차 단편소설 응모 서울의 꿈 1 달월 2019.10.23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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