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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와 단 하나의 친구





“영호야 이리 와보렴”


엄마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그 순간 나는 겁에 질렸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표정. 내 나쁜 짓이 들켰거나 선생님과 상담 후에 나를 부르는 표정. 평소에는 아빠가 엄마와 나의 싸움을 말렸지만 오늘은 아빠의 표정도 좋지 않다.


“왜요... 엄마...?”


나는 불안감을 가득 안고 대답했다. 요즘은 사고를 많이 치지도 않았건만 말이다.


“아빠네 회사가 부도가 나게 되어서...”


“네...?”


“시골로 내려가게 되었어...”


이곳, 서울에서 11년 동안이나 살아온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인 나는 그것이 심각한 일인지 몰랐다. 아빠의 회사일도... 시골로 내려가는 일도... 난 그저 내가 꾸중들을 필요가 없다는 것에 안심하고 있었다.


일주일 후,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날에 시골에 내려왔다. 최악이었다. 집에서는 죽은 벌레들이 널려있었고 이상한 냄새에 내 방도 없는 좁디좁은 집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친구가 없다는 것. 11년이나 서울에서 살아온 나는 친한 친구가 매우 많았다. 이 나이대에 가장 중요한 ‘친구’라는 것이 없는 나는 정말 어떻게 할 지 막막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사라지게 만든 아빠의 회사와 이 시골이 너무나도 싫었다.


시골로 내려오고 사흘, 난 시골학교에 등교했다. 서울과는 다르게 전교생이 겨우 100명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한 반에 9명씩, 겨우 3개 반... 집에서 가는 길은 어찌나 먼 지 버스를 타도 20분인데 버스가 거의 오지 않았다.


“아...안녕... 나는 서울에서 전학 오게 된 이형호라고 해...”


“웨메, 뭔일루 서울말 쓰는 야가 이런 촌구석에 왔다냐?”


“전학 가는 야들은 많아두 오는 야는 첨 본디야.”


아이들은 깔끔한 옷을 입고, 표준어를 쓰는 내가 이상했는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기만 할 뿐,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내가 서울에 있을 때, 어떻게 친구를 만드는지 잊어버렸다. 자신감을 더욱 떨어지고 수업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학교가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학교에 갈 때는 보이지 않았던 구멍가게 하나가 보였다. 구멍가게에는 졸고 계신 한 할머니뿐 다른 사람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고민이 너무 많아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나는 과자 한 봉지를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갔다. 계산하기 위해 할머니를 깨웠다. 일어난 할머니는 기지개를 한 번 피시고 선량한 얼굴로 계산을 해 주었다.


“꼬르륵”


내 배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걸 들은 할머니는 웃으시며,


“그걸루 되겠디? 쪼만 기다려 봐야.”


하고는 밖으로 나가셨다. 얼마 뒤 할머니는 작은 바구니에 한가득 은행을 담아 오셨다. 그러고 보니 구멍가게 옆에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곧 할머니는 가져온 은행을 볶기 시작했고 나에게 은행볶음을 대접하였다. 솔직히 맛있지 않았다. 강한 떫은 맛에, 약간의 단맛, 이상한 식감에 자동으로 얼굴이 찌푸러졌다. 그런데 왜일까, 허겁지겁 먹게 되었다. 게다가 먹다보니 눈물이 났다. 나는 할머니께 지금까지의 고민을 모두 털어놓았다. 할머니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줄 뿐이었다. 불만을 얘기해도 신경 쓰지 않았던 엄마보다, 지신의 일에 바빠서 이야기 하는 것을 회피했던 아빠보다. 그저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할머니가 오히려 둘도 없는 친구처럼 느껴졌다.


그 후로 매일같이 구멍가게에서 할머니와 놀았다. 할머니는 팽이치기, 윷놀이, 굴렁쇠 등 서울에선 게임만 하던 나도 정말 즐겁게 즐길 수 있는 놀이들을 알려주었다. 할머니와 이야기 하던 도중, 언제는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오늘 학교에서 환경오염에 대한 것을 배웠는데 사람들이 너무 자연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려, 자연이 우리한티 주는 것들도 모르구 말이야...”


“자연이 우리한티 지대로 좀 살라구 교훈도 주는디”


“저기, 저 은행도 봐야. 잎이 왜 널찍~한지 알고 있는겨?”


“하하핫, 그러게요 왜 은행잎만 넓적할까요.”


“내는 이렇게 생각하야. 나무는 바람에 흔들릴 수 밖에 없잔혀?”


“네”


“그러니 흔들리는걸 멈출 바에야, 잎을 널찍하게 만들어서, 다른 것들 시원하게 바람이라도 불어줄라고 하는거 아닌가 하고 생각한디야.”


“니도 어려운일을 극복하는 것두 좋지야만, 지금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과 좀 같이 살아가는 기도 좋은기다.”


“으으... 원가 오글거리는 말이네요.”


“허허허, 그려? 근디 그보다 이런 할미랑 놀아두 되는겨? 또래 친구들이랑두 좀 놀구...”


“친해지고 싶은데 어떻게 친해져야 할 지 모르겠어요...”


“일단 니가 먼저 말을 하야 친구들이 알제. 니 마음을 다른 야가 볼 방법이 없으니껜 니가 말을 하덜않으면 모르는겨.”


다음 날에는 할머니의 말을 되새기면서 같은 반 연수에게 말을 걸었다.  연수와 함께 있던 세 친구들은 새삼스레 뭘 그러냐며 나를 받아주었다. 친해지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고 친구들과 놀기에 바빠 더 이상 구멍가게에 들릴 이유는 없었다.


구멍가게에 가지 않게 된 지 3주, 하루는 친구들과 공터에서 놀다가 모두가 배가 고파져서 어디서 먹을 것을 구할 지 고민했다.


"나 집에 용돈 있는데, 가져오려면 시간이 오래걸려"


“음... 어떡하지...”


갑자기 경수가 말했다.


“... 그라믄, 영호 니가 즈기 깡고 할매하고 친하니껜, 가서 뭣 좀 훔치 오래이.”


“뭐...?”


연수도 끼어들었다.


“맞다, 맞다. 내 봤데이 저~번에 저기 할미랑 니랑 자주 놀디만.”


“아니... 그래도 물건을 훔치는 건 조금...”


“기냥 갔다 와라! 야야 어서어서.”


“아... 알았어..”


몇주만에 구멍가게에 들렸다. 물건을 사는 것도, 할머니와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닌 물건을 훔치러. 가게 옆의 은행나무가 고작 몇 주 사이에 커진 것 같았다. 구멍가게에 들어가니 할머니가 자고 있었다. 먹을 것 몇 개를 들고 나가려니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순간, 나는 뒤돌아보았다. 일어난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눈이 마주친 것 같았지만 나는 무시한 채 친구들에게 달려갔다. 뒤의 은행나무가 나에게 돌아오라고 손짓하듯 잎을 흔들고 있었다.


그날 밤에는 도통 잠에 들지 못했다. 할머니께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난 여전히 친구들과 지냈다. 다음날, 또 경수가 말했다.


“영호야, 니 전번에도 해 갔구 왔으니께 오늘도 좀 훔치 와 바라.”


“맞다. 슬슬 배고파진데이.”


나는 점점 화가 치밀었다.


“후... 난 못하겠다.”


그러자 경수가 말했다.


“에이, 그러지 말구 여기서 저 할매랑 친한 야가 니 밖에 없데이.”


“몰라! 훔치는 뭘 하든 난 안해. 너희가 알아서 해!”


친구들에게 소리 친 후 난 집으로 달려갔다.


“새끼... 저거저거 갑자기 와 그러노?”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그저 몸이 움직였다. 녀석들과 내가 그저 다른걸지도 모르지만, 할머니의 선량한 웃음이 머리에서 자꾸 아른거렸다.


난 내 서랍에서 오천원을 들고 구멍가게로 달려갔다.


“할머니! 정말 죄송해요!”


“웨메, 오랜 만에 와선 뭔 소리랴?”


나는 오천원을 내밀며, 말했다.


“제가 할머니 몰래 물건을 훔쳐서는 친구들에게 줬어요. 정말 죄송해요!”


“무라꼬? 친구들?”


나는 곧 들을 말을 생각하며 눈을 질끔 감았다. 내가 한 일에 혼 날 준비를 했다.


“네도 이젠 친구가 생겼구마! 축하할 일이데!”


놀랐다. 분명 혼날 줄 알았지만 의외의 답변에 가슴이 울컥했다. 나는 이렇게 나쁜데 그것에서도 좋은 점을 찾아 나를 위로해주는 할머니가 어찌나 대단한지... 아주 조금 

눈물이 났다.


“근디 친구들은 두고 온겨? 친구들한티 가야 하는기 아녀?”


“여기 있잖아요 친구...”


나는 손으로 할머니를 가르켰다.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고개를 들지 않을 채로.


할머니는 마치 나와 내 주변의 모든 일을 아는 듯이 슬며시 웃음을 띠었다.


고작 몇주간이지만, 우리는 마치 몇 년이나 만나지 못한 것처럼 이야기꽃을 피웠다. 문 밖의 은행나무가 가지를 흔들며 우리의 이야기에 대답을 하는 것 같았다. 여든 살 할머니와 열한 살 꼬마의 이야기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할머니, 이제 겨울이 되었습니다. 나무들의 잎은 모두 떨어지고 점점 더 추워지네요. 전 친구들과 즐겁게 잘 지내고 있답니다. 이젠 더 이상 구멍가게의 문은 열리지 않지만, 잎이 다 떨어진 은행나무는 구멍가게 옆을 지키고 있네요. 이 은행나무를 보고 있자면 환한 얼굴로 은행을 가져오던, 이제 더 이상은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신 할머니... 당신이 떠오릅니다.”







이관우

dorux1590@gmail.com

010-7359-2423

  • profile
    korean 2020.10.31 20:29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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