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오늘:
286
어제:
281
전체:
312,164

접속자현황

  • 1위. 후리지어
    67142점
  • 2위. 뻘건눈의토끼
    23431점
  • 3위. 靑雲
    18945점
  • 4위. 백암현상엽
    17074점
  • 5위. 농촌시인
    12042점
  • 6위. 결바람78
    11485점
  • 7위. 마사루
    11385점
  • 8위. 엑셀
    10614점
  • 9위. 키다리
    9494점
  • 10위. 오드리
    8414점
  • 11위. 송옥
    7661점
  • 12위. 은유시인
    7601점
  • 13위. 산들
    7490점
  • 14위. 예각
    3459점
  • 15위. 김류하
    3149점
  • 16위. 돌고래
    2741점
  • 17위. 이쁜이
    2237점
  • 18위. 풋사과
    1908점
  • 19위. 유성
    1740점
  • 20위. 상록수
    1289점
조회 수 93 추천 수 2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단편소설)

 

팡팡사건을 기억하십니까?

 


 

때는 지금부터 약 100여 년 전인 2018년 봄이었다. 어느 바다 한 가운데 홀로 자리하고 있는 애록 섬에서 사건은 시작되었다. 5월인데도 날씨는 30도를 웃도는 찌는 듯한 날씨였다. 이런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섬의 한 대학에서는 축제가 한창이었다. 교정에는 학생들이 마련해놓은 여러 가지 재미있는 볼거리, 놀거리 등이 많았다. 그 중에서 인기가 가장 많았던 것은 영문과 학생들이 준비한 고무 물풍선 게임이었다.(지금은 첨단 섬유로 풍선을 만들지만 이 당시에는 고무로 풍선을 만들었다) 게임은, 손님이 돈을 주면 돈을 받은 영문과 학생이 머리에 가시가 나있는 헬멧을 쓰고 손님이 던지는 물풍선을 맞아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날은 정말 미친듯이 더웠다. 얼마나 더웠느냐면, 물풍선 안에 넣은 찬물이 누군가의 얼굴에 맞아 터질 때는 따뜻한 물이 되어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날씨가 덥다보니, 언제부터인가 게임의 손님과 주인이 바뀌어 버렸다. 손님이 돈을 주고 가시 헬멧을 쓰면, 영문과 학생들이 물풍선을 던져 터뜨려주는 식이 되어있었다. 미지근해져버린 물풍선이었지만 그것을 맞으려는 사람들의 줄이 어느새 길게 늘어졌다. 이렇게 게임이 호황을 맞으니, 행사장 한쪽에선 영문과 학생들이 물풍선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다른 한 쪽 엠프 앞에선 큰 파라솔 아래 목소리 좋은 학생이 마이크를 들고 손님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파라솔 앞으로는 물풍선을 맞고 싶어하는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들려오는 라디오 음악소리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리고 큰 파라솔 아래 한 의자에는 대낮부터 거하게 술이 취한 학생 하나가 앉아 있었다. 그 학생에 관해서 잠깐 이야기를 하자면 그는 영문과 학생으로 그해 서른 살이었다. 대학을 열 아홉에 들어왔는데 아직도 졸업을 안 하고 있었다. 그는 졸업이 무서웠다. 그 당시 사회는 경제가 꽁꽁 얼어붙어서 좋은 직장이 아니라 그냥 직장만 구해도 성공했다고 말 할 정도였다. 기업들은 채용이 아니라 퇴출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 학생은 미래가 두려워 졸업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기업 수백여 곳에 원서를 썼으나 합격하지 못했다. 그래서 공무원 시험도 봤었다. 결과는, 할 일이 없어 늘 낮술을 마시고 취해 널브러져 있을 정도라면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반복되는 낙방에 제대로 풀리는 일은 없으니 술만 진탕 마시고 있는 것이었다.

그랬는데, 바로 이 친구가 당시에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사건의 발단이 될 줄이야. 그 사건이란 다음과 같다. 그는 술을 너무 많이 마신 나머지 속에 있던 것들을 입 밖으로 쏟아냈는데, 그걸 어디에 쏟아냈느냐 하면 바로 물풍선 게임에 동원된 라디오와 엠프였다. 그곳에다 아주 질펀하게 토해버렸다. 얼마나 많은 양을 쏟아냈는지, 또 얼마나 냄새가 지독했는지 한동안 주변 사람들의 골이 띵 해져서 한 마디도 못할 정도였다. 양이 많으니 줄줄 흘러 내려갔는데 그게 우연히 주변에 떨어져있던 물풍선에 닿았다. 사건의 발단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아! 여보세요? 들려요? 이거 뭔가 된 것 같은데? 들려요? 들려요?”

 

엠프에서 갑자기 이상한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잡고 있는 사람은 분명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이상한 일이었다. 몇몇 학생들은 깜짝 놀라 겁에 질려 달아났다. 그래도 마이크를 잡고 있던 학생은 용기가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누구세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엠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정말 기뻐하면서 말했다.

이야! 제 목소리가 들리는 겁니까? 제 목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 이게 얼마만인지! 정말 행복하군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거긴 지금 몇 년도 입니까? 제가 죽었을 때는 1959년 쯤이었는데. 얼마나 오래 저 혼자 떠돌며 지냈는지 알고 싶군요. , 이것 참. 너무너무 좋아요. 너무너무. 이 조그만 물풍선 안에 있어야 하는게 정말 지옥 같았다고요. 아 정말 좋아요. 어어, 건들지 말아요. 괜히 건드렸다가 저와 여러분들의 연결이 끊기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조심히 다루라고요.”

물풍선을 통해서 죽은 사람과 대화를 한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영리한 영문과 학생회장은 이 사실을 알고는 일단은 아무나 물풍선과 대화하지 못하게 막아놓은 다음, 약간의 돈을 내고 들어온 사람들에게만 죽은 이와의 대화를 시켜주는 식으로 돈을 벌었다. 많은 학생들은 분명 어딘가에 트릭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현세의 인간들과 대화한 물풍선 영혼는 재치있고 활발한 성격이어서 많은 학생들이 그와의 대화를 즐겁게 생각했다. 죽은 이도 즐겁고, 살아있는 이도 재미있고, 영문과 학생회장은 돈도 버니 처음에는 서로간에 누이좋고 매부좋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그 당시 인터넷을(잠시 간략히 인터넷에 대해 설명하자면, 지금 사용 중인 가상 텔레파시 인터페이스 방식의 원조격인 매체이다) 통해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동영상, 보이스 파일, 사진 등으로 전 세계에 이 사실이 알려졌다. 아무튼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들은 너도나도 죽은이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죽은 영혼과의 연결은 쉽게 성공되지는 않았다. 실패는 수없이 많았고 성공은 아주 극소수였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서로의 경험담을 공유하며 방법을 연구하였고, 그 결과 죽은 이와 대화를 하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30도 이상의 기온, 난방 방식에 따라서 대화의 음질이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30도 이상의 기온이 필요했다. 그리고 토사물, 이 부분이 조금 복잡한데 그래도 독자들을 위해 자세히 적기로 한다.

 

* 2병의 위스키, 10잔의 맥주,(꼭 생맥주로 하길 바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죽은 영혼들은 생맥주 냄새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 안주로는 노가리(우리가 흔히 노가리 깐다는 말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 30세 초반이며 3년 이상 백수의 길을 걸어온 남자의 토사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물풍선 속의 죽은 이와 대화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30세 초반 백수의 토사물 뿐이었다. 또한 주의해야 할 점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토사물이 말라 비틀어지는 순간 대화가 끝나므로, 항상 촉촉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 번 연결되었다가 끊어진 물풍선과는 두 번 다시 대화가 이루어질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30대 초반 3년 이상 백수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정부 기관에서, 연구 기관에서, 또는 그냥 심심한 사람들이 너도나도 백수들을 고용했다. 백수들은 편안한(사실은 꽤 더운) 곳에서 위스키와 맥주와 노가리를 공급받고 즐겁게 마시다가 구토 한 번 해주고 짭잘한 용돈을 벌었다. 섬 정부 기관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백수들의 토사물을 원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른 나라 30대 백수의 토사물은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꼭 애록 섬에서 온갖 취업, 외모, 영어, 자격증 등의 스트레스를 잔뜩 겪은 30대 초반 백수만이 물풍선과의 대화를 위한 양질의 토사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물론 오래 일할수는 없었다. 대략 한 달 정도 일을 하면 백수라는 효렴이 떨어져서인지 효과가 없어졌다. 그래도 그 한 달 동안 그들이 벌어들이는 액수는 평소라면 생각도 못할 액수였다. 그러니 이 발견이 그들에게는 사막에서의 오아시스와 같았으리라.

환호한 사람들은 또 있었다. 바로 물풍선 관련 상인들이었다. 물풍선이 날개를 단 듯이 팔려나가자 물풍선은 더 이상 학교 근처 문구점에서 살 수 없었다. 물풍선 전문 판매상들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들은 잽싸게 공장들과 독점 계약을 맺어 이익을 챙겼다. 그에 따라 자연스레 가격이 10배 가까이 올랐다. 하지만 이런 가격 인상도 물풍선 신드롬을 막지는 못했다. 원래 가격이 워낙 쌌기 때문이기도 했고, 사람들의 호기심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풍선 공장과 독점 계약을 하지 못한 상인 중 머리 좋은 몇몇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대박을 터뜨렸다. 아무리 호기심이 강해도 냄새나고 더러운 토사물을 계속 바라보고 있는 것은 불쾌한 일이었다. 이런 불쾌함을 없애주기 위해서 검은 색의 특수관을 만들었다. 특수관은 마치 심지가 양쪽으로 두 개 달린 다이너마이트처럼 생겼다. 관 안에 토사물을 넣고 뚜껑을 닫은 뒤 양쪽 심지를 각각 물풍선과 라디오에 연결하면 끝이었다. 직접 토사물을 연결한 것보다는 조금 음질이 떨어졌지만,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었기에 문제되지 않았다. 또한 특수관 안에 들어간 토사물은 더 오래 촉촉하게 유지되었기에 아주 인기가 좋았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자면, 아주 영악한 특수관 개발자는 관을 일회용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물풍선의 개수만큼 특수관을 사야만 했다. 하루에 수백개씩 팔려나가는 물풍선과 특수관을 바라보면서 상인들은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 그럼 죽은이들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해주었을까? 아니, 질문을 바꿔야겠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은이들에게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었을까? 당연히 사후세계에 관한 이야기였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죽은이들에게 사후세계에 관해서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물었다.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되느냐고? 아니 지금 몰라서 물어? 봐봐. 나처럼 되는 거지 뭐. 천국이 있느냐고? 그건 모르겠어. 사실 지옥도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심판? 그런거 하나 안하나 난 잘 몰라. 그냥 난 죽었고, 정신을 잃었다가 깨보니 내가 물풍선 안에 들어가 있더라고. 이게 다야. 시시하지? 사람들이 독방에 갇혀있는 거랑 비슷해. 죽을 맛이야. 보이는 것도 없고, 이야기 할 사람도 없고, 할 것도 없어. 그냥 생각이나 하고 지내다가 터지면 다른 물풍선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가고 그러더라고. 물론 물풍선이 터질 때의 고통은 정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지. 두 번 죽는 것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게 물풍선의 운명이니 어쩌겠어. 터뜨리라고 만들어 놓은 거니 뭐 터뜨린 사람들을 원망할 수도 없고. 여하튼 말이야, 현세 사람들은 신에 대해서 엄청난 경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볼 때는 신은 무심해. 대충 대충이야. 사람들이 장난감 만들었다가 재미없으면 부숴 버리거나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는 것처럼, 하나하나 처리하기 귀찮으니까 그냥 물풍선 안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집어넣어 버리는 거지.”

가장 먼저 발견된 물풍선 속의 영혼은 위와 같이 말했다. 물론 이 발언은 섬의 종교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애록 섬에는 두 개의 종교가 있었다. 하나는 천국과 지옥과 창조신을 믿는 하키다 교였고, 다른 하나는 정신 수양과 명상으로 자신을 다스리고 이를 통해서 궁극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호렌교였다. 그 중 창조신을 믿는 하키다 교는 물풍선 속 영혼의 발언에 심하게 반발했다. 그러니까 이 발언이 신을 모독했다는 것이었다.

그 영혼은 악한 영혼입니다. 거룩하신 신을 믿지 않았으니 당연히 죽어서 좋은 곳은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가혹한 형벌을 받게 된 것이지요. 그 형벌이 무엇인지는 자기 스스로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그 물풍선 속에 들어있는 것을 감옥의 독방에 비유했습니다. 여러분도 다들 아시다시피 수감자 가운데서도 가장 죄질이 나쁜 사람들을 가두는 곳이 바로 독방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냥 가만히 있는게 무슨 처벌이야? 그냥 잠만 자면 되겠네. 하지만 여러분,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누구 하나 이야기 할 사람도 없습니다. 읽을 책도 없고 뭐 간단히 손장난 칠만한 돌멩이조차 없습니다. 말 그대로 암흑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일주일만 지나도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100, 200년 씩 있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곳이 좋은 곳일 것 같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독방이 감옥 중에서 가장 깊숙한 암흑의 핵심이요 최고의 형벌이듯이, 저 물풍선 속은 지옥 중에 가장 지독한 지옥이고 가장 가혹한 형벌인 것입니다. 저렇게 악한 영혼들과 이야기 한다는 것 역시 죄악이고 신의 법을 어기는 행위인 것입니다. 물풍선은 터뜨리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신이 저들을 물풍선에 넣은 것은, 터짐으로써 고통을 받고 살면서 지은 죄를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저 물풍선들을 터뜨리는 것을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더 열심히 터뜨리면서 저런 물풍선 속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마음을 다져야 할 것입니다.”

개개인의 수행을 중요시하는 호렌교 역시 이 잘난 영혼에 대해서 별로 좋은 시선을 두고 있지 않는 듯 했다. 공식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호렌교 사원에 다니는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다음과 같았다.

글세요, 사원에 가서 고행자(호렌교의 교리를 수행하는 자)들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그런 일로 마음속에 든든히 자리잡고 있는 신앙심을 흔들면 안된다고 하더군요. 그 영혼은 호렌의 왕국에 들어간 영혼도 아니고, 그렇다고 좋은 사람으로, 귀중한 동물로 다시 기회를 얻은 영혼도 아니라고 하면서 말이죠. 오히려 그렇게 불쌍하게 물풍선에 갇힌 영혼이 되지 않도록 마음을 닦고 평온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호렌교에서는 이번 사건에 되도록 휘말리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관심 없다는 것 같기도 하고요.”

물풍선 영혼의 이야기가 일파만파 커지자 정부에서도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의견이 커지기 시작했다. 처음 발견된 영혼 이후에도, 사람들이 대화를 시도한 많은 물풍선 영혼들이 하나같이 그들의 사후세계가 지루하고 따분하고 신은 없다는 종류의 발언을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허무주의에 빠지거나 굳건히 지켜왔던 어떤 삶의 믿음까지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국민 의식이 피폐해 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었다. 그리하여 정부는 애록섬 윤리위원회를 소집하였다.

현 시점에서 더 이상 물풍선 영혼에 대한 기사나 언급은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물풍선의 발언들이 인터넷에 과장되어 확산되는 것은 섬을 혼란에 빠지게 하려는 음모가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선동 작전에 동요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미 사람들의 정서가 이 음모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자신은 죽어서 물풍선이 되기 싫다며 오직 살아있는 것에만 극도로 집착하는 증세를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어차피 죽으면 물풍선 속으로 들어갈 텐데 뭣 하러 인생을 고생하며 사냐는 식의 허무주의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태를 정부로선 도저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습니다. 언론 통제는 물론 악법입니다만, 지금은 특수한 상황이므로 물풍선에 대한 이야기는 강제로 삭제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협조하여 주시고, 한동안은 국민들에게 희망이 되고 힘이 되는 기사를 많이 써주셨으면 합니다. 또한 인터넷에서도 물풍선을 금칙어로 하여 물풍선에 관한 이야기가 더 이상 퍼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모든 물풍선에 대한 제조와 판매를 금지합니다. 이 점을 국민들이 잘 양해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와 같은 조치로 물풍선 사건이 한동안 일단락 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표면상으로는 아무도 물풍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았다. 신문에서도, 방송에서도, 인터넷에서도 물풍선이라는 단어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길거리에서 물풍선이나 특수관을 파는 장면도 볼 수 없었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어떤 사건이든 언론이 조용하면 사회에서도 점점 잊혀지기 마련이었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그랬다. 하지만 초고도 현대화 된 요즘 사회에서도 불법 복제가 끊이지 않는 것처럼, 100년 전인 그 때도 어둠의 경로를 통한 복제와 드러내놓고 말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은 계속되었다. 또한 갑자기 살길을 잃은 물풍선 관련 상인들이 어둠의 경로를 통해 판매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정부가 조치를 취했을 때 쯤 물풍선은 또다른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물풍선이 금칙어가 되면서 물풍선의 인터넷 상 닉네임은 팡팡이 되었다. 이 팡팡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었다. 다음은 팡팡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작성자의 글이다.

 

안녕하십니까. 비공인 팡팡 연구소의 소장 파바팡입니다. 저희는 팡팡 연구를 통하여 여러분들게 항상 신선하고 새로운 사실을 전달해 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막는 다는 것은, 뭔가 떳떳하지 못한 게 있다는 말이니까요. 막으면 막을수록, 저희는 더 열심히 연구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팡팡의 모습에 관한 것입니다. 재미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팡팡은 30대 백수의 토사물과, 라디오, 마이크를 이용하여 대화를 해왔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조금 생각을 달리해 보았습니다. 왜 항상 라디오여야만 하는가, tv는 안되는가, 컴퓨터는 안되는가, 스마트 폰은 안되는가 등등. 안될게 뭐 있겠습니까? 저는 몸소 뛰는 연구자, 직접 실험하는 연구자 파바팡입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연구해 봤습니다.

저는 올해로 서른 두 살인 백수입니다. 제 토사물은 100% 완벽한 토사물이죠. 해본 사람은 알지만, 30도 이상의 더운 방에서 술 마시고 토하는 게 과히 기분 좋은 경험만은 아닙니다. 그래도 저는 여러분들을 위해, 또한 제 연구 결과를 기다리시는 많은 분들을 위해 이 한 몸을 희생하기로 했습니다. 열심히 먹고 토해서 실험 준비를 마쳤습니다.

제가 준비한 물건은 라디오, 노트북, 컴퓨터, TV입니다. 알려진 대로 토사물로 물풍선과 위의 물건들을 연결해 묻혀놓습니다. 각각 물품들은 물풍선과 대화가 가능하도록 마이크를 설치해 두었습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라디오 : 알려진 데로 라디오는 물풍선과 가장 대화하기 편한 매체였습니다. 다만 물풍선을 디지털방식의 라디오를 사용했을 경우 물풍선이 조금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여기서 저는 살짝 짜증이 났는데요, 마이크를 연결할 수 있는 아날로그 라디오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거든요. 여하튼 알려진 대로였습니다.

노트북, 컴퓨터 : 이상하게도 노트북과 컴퓨터에서는 물풍선이 극도로 짜증을 내다가 터져버렸습니다. 아마 복잡한 기계가 물풍선에게 어떤 나쁜 영향을 미친 듯 합니다.

TV : 여러분들 놀라지 마십시오. 제가 TV 화면 속에서 물풍선 속 영혼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대화도 물론 할 수 있었고요. 정말정말 놀라웠습니다. 제가 TV에서 만난 아가씨는 18살의 꽃다운 나이였습니다. 죽기 전 살아있을 때의 모습이, 외모나 복장 모두 그때 모습 그대로 TV에 비춰지고 있었습니다. 아가씨 말로는 영혼은 죽었을 때 모습이 그대로 남는다고 하더군요. 육체가 남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남아, 귀신처럼 TV를 통해 보여질 수 있다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어쨌든 감동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몰려왔습니다. ! 이렇게 아가씨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빨리 다시 아가씨 보러 가야겠습니다. 정말정말 예쁘고 착한 아가씨입니다. 여러분도 물풍선 속 영혼과 TV를 통해 진정한 친구를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연구 결과는 이정도면 되겠죠? 안녕히 계세요. 다음 시간에 다시 뵐게요.

 

위의 글은 수십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대히트를 쳤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TV 속의 친구를 가지고 싶어서 불법적인 일인 줄 뻔히 알면서도 물풍선을 사대기 시작했다. TV 친구 찾기 성공 사례가 인터넷에 올라오면 올라올수록 열기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특히나 어떤 학생 하나가 외국에서 구해온 물풍선에서 마릴린 먼로의 영혼과 만났다는(이 이야기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헛소문 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올라오면서 물풍선 사재기는 절정에 다다랐다. 외제 물풍선도 아주 인기가 있었는데 2, 30대 남성들이 특히 미국과 프랑스, 러시아 등의 물풍선을 사들였다. 자신들도 외국인 스타와의 만남을 꿈꾸며.

어떤 사업가는 이 사실을 이용해 사업을 새로 시작했다. 이른바 돌아가신 조상 찾아주기서비스였다. 만약 물풍선 속의 영혼이 최근에 죽은 사람이라면, 다시 말해 그를 기억하는 살아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면 자신들에게 신고를 해달라고 했다. 그러면 자신들이 물풍선은 물론이요 TV까지 통째로 사들이겠다고 광고했다. 그리고 그것을 물풍선 영혼을 그리워하는 사람에게 되판다는 사업이었다. 이 사업 역시 드러내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한동안 잘 나가는 듯 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사회는 절정의 혼란으로 치닫았다.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한꺼번에 수면 위로 올라오며 물풍선 신드롬을 잠재우려는 정부의 노력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문제들 몇 가지만 설명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경제 위기였다. 그 당시에 애록섬은 IT 강국이라는 이름하에 인터넷 보급률이 99%에 육박했다. 한 번 인터넷에 퍼지면, 거의 모든 섬 사람들이 안다는 말이었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평균 60%를 넘지 못했다) 다른 나라들은 이 물풍선 사건이 터졌을 때 사건이 가져올 파장을 예견한 듯 자국으로의 정보 유입을 막았었다. 특히 인터넷 부분에 신경을 써서 정보가 새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애록섬의 관광업이 그리 발전하지 않아 섬을 왕래하는 사람이 적었던 것도 타국에게는 긍정적 요인이었다. 애록섬 정부 역시 이 사실이 퍼져나가는 것을 그리 원치 않았다. 결국 통제는 성공하여 타국에는 물풍선이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는 애록섬 같은 파장이 일어나지 않았다.

어쨌든 애록섬에서 TV를 이용해 물풍선 속 영혼과의 만남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각 나라들은 엄청난 양의 물풍선을 섬에 몰래 팔아넘기기 시작했다. 후에 에록섬 역사학자들이 달러 팡팡 버리기라고 비꼬아 말했던 사건이었다. 아무튼 엄청난 양의 달러가 외국으로 빠져나갔다. 밀거래였으므로 정말 부르는 게 값이었다. 특히 미국 러시아 프랑스 3국은 자신들이 미리 실험해본 미녀 물풍선이라면서 터무니없는 가격을 책정해 섬에 팔아넘겼다. 물론 그 나라들은 실험해 본 적도 없었다. 처음에 말했던 것 같이 한 번 연결한 후 끊어지면 다시는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조차 잊을 정도로 섬 남자들은 외국 미녀들을 TV로 만나고 싶었는지 모른다. 어쨌든 외제 물풍선의 수요가 가히 엄청났으므로 아무리 비싼 물풍선이라도 날개 달린 듯 팔려나갔다. 정부는 물풍선을 사는 사람에게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정부에서 모든 택배를 뜯어볼 수는 없었고 모든 집안을 감시할 수는 없었다. 속수무책이었다.

두 번째는 건실한 청년들의 건강이었다. 이 말은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까지 포함한다. 30세 초반의 3년 이상 백수들은 실험용 토사물을 만들기 위해 잦은 음주에 시달렸다. 안주는 노가리가 전부였으므로 그들의 위장과 간은 급속히 나빠졌다. 게다가 물풍선 TV 대화 시대가 열리면서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30세 초반이고 3년 이상 백수이면서 물풍선용 구토를 하지 않은 청년들은 손꼽을 정도였다. 그러자 이들의 구토 사례비는 어마어마하게 뛰어 이들이 한 달간 벌어들인 돈은 그때 시세로 대략 대기업에서 2, 3년 정도 일한 월급과 맞먹었다. 어차피 구토물의 양은 적어도 대화가 가능하였으니 소비자들은 공동구매로 알뜰하게 토사물을 구매할 수 있어서 수요가 줄지 않았고, 백수들은 자신들의 사례비가 늘어나자 행복해하며 한달동안 미친듯이 술을 마셨다. 하지만 그렇게 한 달간의 구토 업무가 끝난 후에는 벌어들인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병원으로 직행하기 일쑤였다. 몇몇의 남자들은 사망에 이르는 사고까지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일들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일어나고 있었으므로 정부는 규제할 방법이 없었다. 적발되더라도 그냥 친구들과 술 마시다 그랬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처벌할 수 있겠는가. 이 현상은 20대와 10대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30대가 되면 꼭 해보고 싶은 일 1위에 구토 전문가가 오르는 기현상까지 일어났다.

세 번째는 전국에 진동하는 냄새였다. 노가리에 맥주 위스키를 섞어 마신 사람의 구토물 냄새가 좋을 리 없었다. 특수관은 일찌감치 개발되었기 때문에 실내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사용하고 난 뒤의 구토물은 휴지통이나 하수구에 무분별하게 버려졌다. 그 진득한 냄새는 청소부들이 물로 쓸고 닦아도 쉽사리 없어지지 않았다. 비라도 한 번 내리면 구토물들은 빗물에 씻겨 내려가 하천으로 흘러들었다. 강 주변 공원은 사람이 아닌 파리로 들끓었다. 정부는 이런 강물을 정화할 생각은 안하고 냄새를 없애는 게 급선무라며 냄새를 없애는 화학 약품을 강에 뿌렸다. 강은 아무 물고기도 살아남지 못했다. 거액의 보수를 내걸어도 강의 상태 조사를 위한 잠수에 지원하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은 각자 개인 공기필터를 마스크처럼 두르고 다녔다. 그것이 그들의 유일한 대책이었다. 환경을 위해 힘을 모아 무언가를 할 만큼 한가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윤리적인 문제였다. 물풍선 속 영혼들은 점점 살아있는 인간들의 장난감처럼 되어버렸다. 물풍선 속 영혼들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수십개의 물풍선을 대량으로 구매했다. 그리고는 한 개씩 TV에 연결했다. 그 물풍선이 별로 재미있는 사람이 아닐 경우, 그러니까 늙어서 자연사 한 노인이거나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남자이거나 아니면 못생긴 여자일 경우에는 가차없이 바늘을 들이댔다. TV 속의 영혼이 아무리 애걸복걸해도 개의치 않았다.

그래도 그냥 바늘을 들이댄 사람은 양반이었다. 조금 악독한 사람들은 TV에 물풍선 두 개를 연결시켜 놓고는 싸움을 붙였다. 싸워서 진 쪽의 풍선은 터뜨린다고 협박했다. 영혼들은 풍선이 터지면 다른 곳으로 옮겨질 터이지만, 풍선이 터질 때의 고통은 죽음을 한 번 더 겪는 듯한 고통이었으므로 필사적으로 싸웠다. 그 모습을 살아있는 사람들은 유유히 과자를 먹으며 즐겼다. 변태적인 성향이 있는 남자들에게 걸린 여자 영혼은 고통이 더욱 심했다. 바늘을 흉기로 들이대며 온갖 성인 비디오를 연상케 하는 동작들을 주문했다. 그렇게 자신의 기분을 만족시키고 나서도 물풍선을 그대로 두는 경우가 없었다. 그건 마치, 야한 동영상을 다운받아 보고는 휴지통 폴더로 옮겨 삭제하는 일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일이었다.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여러분들은 필자가 앞에서 말한 사업을 기억하는가? 물풍선 영혼을 사서 영혼의 연고자에게 되판다는 사업. 그 사업에 대한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겠다. 처음에 이 사업은 잘 나가는 듯 했다. 죽어서 다시 못 볼 사람들을 TV로나마 다시 만난다고 크게 광고를 내자 처음에는 죽은 영혼을 찾아달라는 문의 전화로 몸살을 앓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사업 역시 윤리적으로 큰 문제를 가져왔다. 처음에야 눈물 콧물 흘리며 기뻐하던 가족들이 차차 지겨워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루 종일 어디 나가지도 않고 TV 속에 들어앉아 잔소리를 해댔으니 누가 좋아하겠는가. 특히 돌아가신 시부모님을 다시 모시게 된 며느리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물풍선을 터뜨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친자식들도 힘든건 마찬가지였다. 잠도 안자고(그들은 육체가 없으므로 밥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하지 않았다) 심심하다고 떠들어대는 것을 견디는 자식은 거의 없었다. 결국 하나 둘씩 비장한 각오로 손에 바늘을 쥐었다. 그리고 그 몇 일 뒤에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TV 브라운관 속의 비명은 끊이지 않았고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때 대안으로 등장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물풍선 속 영혼에게는 최대의 적이었던 하키다교였다.

여러분, 사람은 육체와 영혼 둘 다 가진 존재입니다. 이 두 가지가 서로 공존할 때만이 우리는 그를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만약 둘 중에 하나만, 꼭 하나만 골라서 사람이라고 말해야 한다면 여러분들은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영혼이 없는 껍데기 육체? 육체는 없지만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 영혼? 두말할 여지가 없습니다. 육체보다는 영혼이 사람임을 증명하는 더 확실한 요소라는 것을. 지금 이 사회는 악이 가득 차 있습니다. 무슨 악으로 가득차 있으냐 하면, 바로 살인입니다. 인간들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악독한 죄, 살인으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리는 생각과 감정을 가진 영혼들을 사람이라고, 또는 사람에 아주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물풍선 속의 영혼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사람의 육체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과 똑같은 생각을, 감정을 가지고 있고, 한 때는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가지고서 똑같은 사람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사람입니다. 인간입니다. 그들에게 바늘을 들이대는 것은 다른 이의 몸에 칼을 들이대는 것과 같습니다. 신께서는 인간은 개개인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대할때는 또다른 자신을 대하는 것처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물풍선 속 영혼들을 자기 자신의 영혼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하고 아끼고 보살펴도 모자랄텐데 칼을 들이댄다는 것이 가당한 이야기 입니까? 잔혹한 살인 무기인 바늘을 내려놓으십시오. 물풍선 자체를 사는 일 조차 하지 마십시오. 물풍선을 TV에 연결하고서는 새로운 사람을 창조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만든 것이니 여러분 마음대로 터뜨려 버려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것은 신의 힘에 도전하는 일이고, 신께 감히 도전하는 사람은 신의 형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물풍선 영혼을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이웃으로 인정하고 대접해야 합니다. 불우하고 헐벗은 이웃을 돕는 것처럼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이렇게 하키다교가 갑자기 태도를 180도 바꾼 것은 그 배후에 정부의 입김이 있었다고들 했다. 정부의 물풍선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대통령은 직접 하키다교에 협조를 요청했다. 대통령이 지불하기로 한 보조금의 양도 물론 영향이 있었겠지만, 하키다교는 여기서 대통령의 부탁을 들어주어 문제가 해결되면 여러 정치 분야에 자신들의 입김이 커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섬에서 하키다교와 호렌교의 영향력이 그 전까진 반반이었는데, 이 사건 이후로 하키다교의 입지가 점점 더 두터워졌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었다. 종교 단체에 대한 지원도 하키다교에 대한 지원이 점점 더 많아졌다. 정치인들은 하키다교가 부흥하여 국민 대다수의 의견을 반영했기에 하키다교에 대한 지원도 많아졌다고 말했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반대로 하키다교에 대한 지원이 많아져서 하키다교가 발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하튼 하키다교에서 주최한 물풍선 속 영혼 구하기운동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 운동은 크게 두 가지를 하고 있었다. 첫 번째는 물풍선 불매 운동을 벌이고 있었고, 두 번째로 TV에 연결된 물풍선 무료 수거였다. 하키다교와 정부에서 TV에 연결된 물풍선을 수거하여 그들에게 인간답고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운동이 잘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간단히 바늘로 터뜨려 버리면 될 것을 굳이 사람들을 불러서 멀정한 TV까지 수거해가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물풍선 불매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아직까지 물풍선의 인기는 남아있었고, 외국들은 가격을 낮추어서라도 계속 물풍선을 팔고 싶어했다. 그들은 인터넷에 갖가지 루머들을 퍼뜨려 물풍선을 판매했다. 이를테면 애록섬 정부와 하키다교는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 물풍선이 터져야 영혼들은 하늘나라에 들어간다. 그때 물풍선들이 느끼는 환희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이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작 물풍선 구하기 운동에 치명타를 가한 것은 바로 정부 스스로였다. 정부는 수거한 물풍선 속 영혼들에게 안락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산 사람들의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물풍선 속의 영혼들에게까지 힘을 쏟을 여력이 없었다. 그나마 얼마 안되는 예산은 공무원들이 떼어먹기 바빴다. 아주 가끔 물풍선이 들어오면, 편하게 모시겠다고 말하고는 조용한 곳에서 물풍선들을 팡팡 터뜨렸던 것이다. 이런 사실이 우연히 타국의 정보부에 들어갔고, 그들은 이것을 이용하여 섬의 신뢰도를 추락시키려 했다. 이 사실을 인터넷을 이용하여 사람들 사이로 확산시켰다. 외국의 한 유명 언론에서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물풍선 휴양소의 비밀을 전 세계에 알렸다. 물풍선 수거의 진실은 한순간에 정부의 모든 노력은 거짓말로 만들어 버렸고, 소문으로만 떠돌던 루머들은 순식간에 진실이 되어버렸다. 아무도 정부의 말을 신뢰하지 않았다. 섬 정부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든 격이 되어버렸다.

 

이런 와중에이 사건의 해결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왔다. 환경운동가로 널리 이름을 떨치던 John E. Sherman 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 물풍선 사건이 한창 혼란으로 치닫을 시기에 고무나무에 관한 연구 논문 한 편을 발표했다. 고무나무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논문이었는데, 논문의 주된 내용은 고무나무가 인간에게 아주 이로운 물질을 공기에 방출해 낸다는 것이었다. 그 물질에 1년 이상 지속적으로 인간이 마시게 되면 최소한 10년의 수명 연장의 효과가 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고무나무가 이로운 물질을 방출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큰 조건이 있으니, 그것은 스트레스나 상처를 받으면 안된다고 그는 논문에서 밝혔다. (2120년 지금에는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되어 밝혀둔다. 풍선이란 것은 고무로 만들고, 고무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무나무에 상처를 내야 한다) 그리고 John은 논문 끝에 애록섬이 2018년 봄처럼 고무풍선을 사용한다면 1년 안에 이로운 고무나무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될 것이고, 5년 뒤의 인간의 평균 수명은 20년 줄어들 것이며, 30년 뒤에 인간은 멸종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UN에서는 이 논문이 설득력 있다고 판단하고 애록섬 정부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생사와 관련된 문제여서 압박의 강도는 무척 심했다. 세계 각 국은 더 이상 고무, 특히 풍선의 소비를 억제하지 않으면 각종 경제 제재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세계의 움직임에 정부는 대책을 내놓으려 다시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이라면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는 몇 배로 민감해지기 마련인가 보다.

하지만 정부는 특별한 대책을 내놓을 필요가 없었다. 인터넷에서 정보 찾기에서 둘째라면 서러운, 그리고 인터넷의 정보를 거의 맹신하는 애록섬 사람들은 논문이 발표되자 고무로 된 물건을 최소화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그 당시 사람들도 자기 이익이나 생명과 관련되어야만 긴장을 느꼈던 것 같다) 고무를 안 쓰는 것은 물론이요, 고무 공장에 압박을 가해 더 이상 고무를 생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도 사그러들 것 같지 않았던 물풍선 신드롬이, 겨우 세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사그러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기엔 뭐든지 갑자기 관심 보였다가 쉽게 질리는 애록 섬 사람들의 기질도 한 몫 했다. 이에 따라 당연히 고무 풍선을 사려는 사람도 만드는 사람도 없어졌고, 그렇게 물풍선 속의 영혼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갔다.

그때 당시 인터넷에 떠돌았던 팡팡 물풍선에 관한 이야기들은 현재에도 가상 텔레파시 네트워크의 어느 한 쪽에 남아있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아직도 물풍선 속의 영혼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장비들을 구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엔 아무도 물풍선과 대화하려 하지 않는다. 정신없이 복잡한 현대사회. 눈 감으면 코 베어갈지도 모르고 조금만 뒤쳐져도 살아남기 힘든 이 사회에 누가 죽은 사람에게 신경이나 쓰겠는가

  • profile
    뻘건눈의토끼 2017.02.01 16:04
    허니패밀리의 1999년 우리 같이 해요를 보면 그래도 좋은 마음이 생기시기를... 토끼가 ^_^
  • profile
    korean 2017.02.27 21:42
    잘읽었습니다.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건필하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콘테스트-단편소설 공모게시판 이용안내 16 file korean 2014.07.16 3332
325 (제 15차 창작콘테스트 응모작) 마린 스노우 1 뽀얌 2017.02.10 15
324 엔진소리 1 오혁 2017.02.09 18
323 이어진 생 1 미래의작가 2017.02.08 51
322 내 아내의 방 1 chooting 2017.02.07 152
321 가출 1 겨울에만들다 2017.02.05 36
320 소설제목: 담배 1 전주측지반 2017.02.04 104
319 비에 젖은 이야기 1 dididi 2017.02.01 32
318 유년의 추억 1 빡샘 2017.02.01 44
317 그 날이 오면 1 park 2017.01.31 106
316 광어회빵과 샌드위치 1 윤서희 2017.01.31 87
» 15차 응모작. 팡팡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2 리쿠 2017.01.30 93
314 제15차 창작 콘테스트 ‘단편소설’ 응모작 < 놈들(?)의 잔치 > 2 서옥_김평배 2017.01.30 89
313 청춘 마리오네트(marionette) 2 낭만주의자 2017.01.30 73
312 카데바 1 소블리 2017.01.27 56
311 카데바 5 소블리 2017.01.27 122
310 행방(行方) 3 김지은 2017.01.17 58
309 슈퍼스타 1 파란색 2017.01.14 118
308 A급 돌아이 3 아현 2017.01.12 81
307 다시 흐르기 시작하다 1 꿈꾸는자유 2017.01.04 91
306 지옥을 향하다 2 최유지 2017.01.02 101
Board Pagination Prev 1 ...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 37 Next
/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