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오늘:
20
어제:
35
전체:
305,337

접속자현황

  • 1위. 후리지어
    65542점
  • 2위. 뻘건눈의토끼
    23333점
  • 3위. 靑雲
    18945점
  • 4위. 백암현상엽
    17074점
  • 5위. 농촌시인
    12042점
  • 6위. 결바람78
    11485점
  • 7위. 마사루
    11385점
  • 8위. 엑셀
    10614점
  • 9위. 키다리
    9494점
  • 10위. 오드리
    8414점
  • 11위. 송옥
    7661점
  • 12위. 은유시인
    7601점
  • 13위. 산들
    7490점
  • 14위. 예각
    3459점
  • 15위. 김류하
    3149점
  • 16위. 돌고래
    2741점
  • 17위. 이쁜이
    2237점
  • 18위. 풋사과
    1908점
  • 19위. 유성
    1740점
  • 20위. 상록수
    1289점
2017.04.07 21:38

유서

조회 수 48 추천 수 1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유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온 몸에 한기를 느끼며 나는 굽혔던 허리를 폈다. 속이 뜨거웠다. 뱃속에서, 장기가 아무렇게나 뒤엉키는 느낌이었다. 몸을 가누기가 어려워 왼쪽 벽에 손을 짚었다. 매끈한 타일에서 전해지는 냉기가 손바닥을 통해 전신을 훑었다. 불쾌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혼자서는 몸을 지탱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뒤집어진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가슴을 쓸어내렸다. 순간 피로감이 엄습했다. 끔찍하게도, 수면욕은 고통과 비례했다. 그럼으로써 고통은 더욱 심화되는 것이었다. 침실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바로하자, 또다시 음식물이 역류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급하게 변기 쪽으로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먹었던 음식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쏟아 낸 음식의 양에 놀랐다. 속이 안 좋은 원인이 과음보다는 과식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어제 먹은 음식을 헤아려 보았다. 식탐이야 원래 많은 편이었지만 술을 마실 때면 더욱 자제가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살만 찌고 있다. 게걸스레 먹어치웠던 골뱅이 소면과 곱창, 부대찌개……. 더불어 어제 저녁 식사까지 토해냈다. 구토는 역순으로 이뤄졌다. 어쨌거나 뱉어내면 다 똑같은 쓰레기였다. 변기 물에 떠 있는 밥알과 김치가 눈에 들어왔다.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킨 음식들. 나는 소화시키지 못한 찌꺼기들이 부끄러웠다. 토사물의 역한 내도 견디기 어려웠다. 변기의 물을 내리며 나는, 변기가 아름답지 않다, 는 사실을 작은 위안으로 삼았다. 물론 터무니없었다. 계속 쓸데없는 생각만 드는 것을 보니 아직 술이 덜 깬 모양이었다. 너는 나를 한심하게 여길까? 그래도, 조금은 개운해진 기분이었다.


새로 내린 변기의 물이 맑았다. 이제는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화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두통이 다시 시작되었다. 거실이 마치 벽처럼 다가와서, 도무지 나갈 자신이 들지 않았다.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커튼을 치지 않아 어두운 거실. 그곳에 낡고 오래된 소파와 얼룩덜룩한 카펫, 되는 대로 쌓여있는 신문과 잡지들, 조금 비스듬히 걸린 가족사진 같은 것들이 원근감을 잃고 좌우 일렬로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 정돈되지 않은 풍경이 TV 불빛으로 인해 일제히, 퍼렇게 깜빡거리며 내 앞을 가로막았던 것이었다.


나는 무엇보다도 그 속에 앉아 있는 손님, 소파 팔걸이에 기대 턱을 괸 그 남자가 무척이나 신경 쓰였다. 거실에 있는 다른 사물들에 비교해 그는 유난히 뚜렷한 윤곽을 지니고 있었다. 거실에 있는 그의 모습은 화풍이 다른 그림이 한 캔버스에 있는 것만큼이나 기이하게 보였다. 그가 호흡하면서 가볍게 오르내리는 가슴께, 규칙적으로 깜빡거리는 눈꺼풀, 가끔씩 자세를 바꿔 앉을 때의 움직임, 그 모든 것은 하나같이 평범한 것인데도 나의 신경을극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안다. 사실은 모른다.


방으로 들어서다 말고 화장실로 되돌아갔다. 더러운 화장실. 좁고. 습한.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구토는 오래도록 계속 되었다. 두어 번의 헛구역질을 마지막으로 나는 다시 변기 앞에 주저앉았다. 그러면서 어제의 무절제에 대해 반성했다. 앞으로는 마시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와중에도 그것이 새롭지 않은 다짐임을 깨달았다. 이번에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메스꺼움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래도록 변기 안을 들여다보았다. 할 수 있다면 어제 이전의 것들까지 뱉어내고 싶었다. 의도적으로 토를 하기 위해 노력해보았지만 위장이 뒤틀리는 느낌에 괴롭기만 했다.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정말로 다 게워낸 것이다,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이제 그만 눕고 싶었다.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실을 지나치는데, 손님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TV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나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의 태도였다. 확실히 실내는 어두웠고 TV소리는 컸다. 그렇다하더라도 그가 나를 발견하지 못하게 한 원인이 환경에 있으리라는 추측은 과장된 것이었다. 우선, 그는 내가 거실을 지나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나를 무시하는 것은 구태여 아는 척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그는 자신이 손님인 것을 잊은 것이 분명했다. 그런 그의 모습은 나에게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딱히 그가 우리 집에서 불손한 언동을 보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꺼릴 것 없다는 듯 당당한 태도는 거만하다는 인상을 주어서 나를 불쾌하게 했다. 그와 같은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숨 쉬는 데 답답함을 느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그에게는 나를 불안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가 참혹한 어떤 사건과 관련되었으리라는 믿음, 혹 아직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곧 그렇게 되리라는 나의 믿음은 종교적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확고했다. 나는 그가 빨리 집을 나가주기를 바랐다. 막연하게, 그것을 그도 알고 있으리라 짐작했지만 그는 내게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와 세 마디 이상 대화를 지속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가 어땠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과묵하다는 표현 그 이상으로 말이 없었다. 물리적으로 느껴질 만큼, 그의 침묵은 끈질긴 면이 있었다. 그가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은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교만해보이게도 했다. 볼수록 알 수 없고 의심스러운 인물이었다. 불평하듯, 폐경기의 여성, 어머니에게 손님이 우리 집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물어본 적도 있었다. 손님도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었다. 형 장례식이 끝난 지가 언제인데 왜 안 나가는 거예요? 형 친구라고 하는데, 형이 죽기 전에는 이름도 들은 적 없어요. 도대체 누구에요, 저 사람? 하지만 오히려 어머니는 손님의 눈치를 보며 나를 나무랐다. 빠르고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설명 비슷한 말을 했지만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서 이유는 기억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손님이 우리 집에 머무르는 데 나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손님에 대한 나의 본능적인 증오심, 맹목적이기까지 한 나의 증오심을 배가시켰다.


저기요.”


나는 그를 부르면서, 순간적으로 그를 형이라 부를 뻔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머리가 울려서 그러는데, 음량을 좀 줄여주실래요.”


그러자 그는 말없이 리모컨을 들어 음량을 줄였다. 그것은 나의 형과 같은 태도였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내 문 앞에 그려진 나의 그림자는 어딘가 구겨진 것 같은 모양이었다. 또다시 구역질이 났고 식도가 쓰렸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들어가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에도 역시, 손님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나는 오후 반나절을 잠을 자며 보냈다. 깊이 잠들지는 못하고 길몽도 악몽도 아닌, 길고 맥락 없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맨발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신명나게 달리고 있었다. 앞에도 누군가가 달리고 있었고 뒤에서도 누군가가 달리고 있어서 쫓기 위해 달리는 것인지 쫓겨서 달리고 있는지 확인할 길 없었다. 이유도 알지 못한 채 필사적으로 달리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건물 밖으로는 나가지 못했다. 기이하게 끊어진 계단, 엘리베이터는 고장 났고, 닫히지 않는 창문, 깊고 어두운 복도,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거나 내 인생에서 스쳤을 뿐인 사람들이고, 그들은 짧게 내게 무슨 말을 하는데 나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 일기 과제 하듯이 마냥 달리기만 했다. 멈출 수가 없고, 멈춰야 되는 이유도 알지 못했다. 나의 여정은 쉼 없이 이어졌다. 퍼덕거리며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나는데 그것은 수백 마리의 물고기가 땅바닥에서 몸부림치는 소리였다. 그 사이를 지났다. 책이 무너져 내리는 서재를 지나고 주인공이 백 명 이상인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을 지나는데도 밖으로 나가는 문은 없었다. 그래서 앞에 뛰어가는 남자가 옥상을 내달렸다. 사뿐히 난간을 넘고 건물에서 뛰어내렸다. 이번에는 나의 차례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머뭇할 이유가 없었다. 좋다, 좋아! 나도 같이 뛰어내리며 해방감을 느꼈는데 뒤를 돌아보니 뒤쫓아 오던 내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고 있었다. 좋다, 좋아! 나의 어깨 너머로 옥상 구석에 앉아 흐느끼는 어머니의 모습도 보였다. 어디서인지 크게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잠에서 깨니 오후 여섯 시가 넘어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그 개의 이름을 기억해내며 꿈을 마무리 지었다. 그 개의 이름은 행복이었다.




 

물을 마시러 방 밖으로 나오는데 소파에 앉아 있는 형이 보였다. 아연하여 자리에 우뚝 멈춰 섰지만 금방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형이 즐겨 앉던 곳에, 형이 곧잘 취했던 자세로 앉아 있던 남자는 다름 아닌 손님이었다. 매번 겪는 일인데도 당혹스러웠다. 그는 신경 쓰지 않았는데도 공연히 헛기침을 하고 부엌으로 향했다. 익숙한 일이라는 듯, 그는 나의 동요를 모른 척 넘어갔다. 사실, 그를 형으로 오인하는 것은 나만 하는 실수가 아니었다. 형의 장례식장에 온 문상객들의 대부분은 그를 보고 얼떨한 얼굴을 했었다. 어떤 먼 친척은 내 이름을 부르며 클수록 형을 닮아가네.” 말하며 그의 어깨를 치기도 했다. 친동생으로 오해할 만큼 그는 형과 닮아있었다. 얼마나 닮았는지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콧등에 있는 작은 점의 위치까지도 일치했었다는 점을 말할 수 있겠다.

다만 그의 머리가 형보다 더 곱슬곱슬하다는 것, 형의 턱보다 그의 턱이 조금 더 길다는 것, 형은 코가 조금 화살 코인데 그는 그렇지 않다는 것 정도가-그 차이점들 또한 모두 미묘한 것이었지만-그들을 구분하게 하는 특징이었다. 그래도 요즘은, 체격으로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형은 어려서부터, 그리고 5년 전 다이어트를 하기 전까지 고도비만이었다. 모질게 다이어트를 감행하고 난 그는, 1년 만에 35킬로그램 이상을 감량했었다. 부작용이 없지는 않았다. 그 이후로는 거식증과 폭식증을 반복이었다. 폭식증이 왔을 때에는 새벽마다 억지로 토를 해서 정상체중을 유지할 수 있었다. 처음 손님은 형이 죽기 직전의 체구였으나, 지금은 조금씩 살이 찌는 추세였다. 장례 기간을 포함하여 같이 지내게 된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으나,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을 만큼 그는 빠른 속도로 살찌고 있었다. 나는 부엌에서 따라온 물을 마시며 통통해진 그의 볼이며 옆구리를 눈으로 훑었다. 그는 그다지 많이 먹는 편이 아니었다. 운동량이 적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심지어 물도 잘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가 살찌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4초마다 1명의 어린이가 사망하고 있습니다.”

TV에서 나는 소리였다. 화면 속에는 맨발의 흑인 아이들이 땅바닥에 앉아있었다. 3세계 아동권리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아마도 이제 막 시작한 것 같았다. 나는 손님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다큐멘터리는 형과 내가 즐겨보던 프로그램이었다. 여전히 손님이 불편했지만, 나는 거실에 앉아 같이 보는 것을 택했다. 내게는 집주인으로서 자유롭게 행동할 권리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한 명의 시청자로 정의할 수 있다.

영양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세계적으로는 감소하고 있지만, 최빈국 아동들의 영양 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있습니다. 1990년과 2008년 사이 나이지리아에서는 빈부 간 굶주림 정도의 차이가 약 2배 증가하였습니다. 사실상 전 세계에는 모든 사람들이 먹고도 남을 만큼의 식량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빈국에는 그 식량이 없습니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치솟는 곡물가격 상승이 빈부 간 격차를 심화시키는 데 기인하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내전 또한 그 원인 중 하나입니다.”


다큐멘터리는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의 모습에 이어 내란에 동원되는 소년병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다. 생기 없는 큰 눈이 TV에 가득 찼다. 카메라는 죽어가는 것들만을 다루고 있었다. 그렇게 죽음은 흔한 것이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나는 손님의 반응이 궁금했다. 만약 형이었으면, 벌써부터 우는 소리를 냈을 터였다. 형은 별 것도 아닌 내용을 보면서도 곧잘 눈물을 짜고는 했으니까. 그래서 궁금했다. 손님과 형이 닮은 점이 외형뿐일까? 각별한 사이라고 했으니 외적인 특징보다는 정서적인 측면에서 더욱 비슷한 부분이 많지 않을까?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손님이 우는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확인하려는데, 그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서 위협적으로 손을 번쩍 들더니, 나의 쪽을 향해 몸을 숙였다. 곧 철썩, 하고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놀라서 어깨를 움찔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자신의 손바닥을 뒤집어보았다. 그것을 나도 함께 들여다보았다. 그의 손바닥에는 엄지손가락만큼 큰 바퀴벌레 한 마리가 처참한 모습으로 짜부라져 있었다. 긴 더듬이와 세 쌍의 다리(다리 두 쪽은 부러져 있었다), 터진 옆구리로 비어져 나온 끈적끈적한 액체……. 그러나 나에겐 벌레 사체보다, 이를 내려다보는 그의 무표정한 얼굴이 더 엽기적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태워 죽여야 했는데…….” 중얼거렸다. 바퀴벌레가 죽을 때 알이 여기저기 튄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바퀴벌레를 박멸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먼저 약을 뿌려 죽인 후 휴지에 싸 불태우는 것이란다. 바퀴벌레는 지독한 생물이니, 남은 재는 변기로 흘려버려야 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되었다. 나는 바퀴벌레를 없애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몇 개월 전을 떠올려 보았다. 그때는 어둠속에서 타다닥거리며 움직이는 바퀴벌레 소리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리기 직전이었다.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조사한 후에 나는 동네 화공약품 가게에 들러 붕산을 샀었다. 최근의 정보에 따르면, 탈증현상을 유도하는 붕산이 바퀴벌레 박멸에는 직방이라는 것이었다.


손님이 TV 옆에 있는 각 티슈를 뽑아 쓰는 것을 보면서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형을 생각했다. 죽음과 형 이제 이 두 단어는 비슷하게 여겨졌다. 죽음, , 죽음, . 나는 다시 한 번 죽음이 멀리 있는 게 아님을 생각하면서 최근의 또 다른 죽음을 기억해냈다. 우리 가족이 5년 이상 키우던 개, 흰 털 색깔처럼 순했던 해피의 죽음도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특히나 형은 그 개를 무척이나 사랑했었다. 해피가 죽자 그가 얼마나 비탄에 빠졌었나! 살찌고 늙은 암캐, 우리의 해피는 소파 앞에 자리를 잡으면 웬만하면 일어나지 않았다. 식사 때에만 몸을 일으켜 사료가 채워진 제 밥그릇을 향해 뒤뚱뒤뚱 걸어갔었다. 형이 주식처럼 먹어댔던 감자 칩, 그가 흘린 과자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것은 해피의 주된 일상이었다. 형이 과자를 먹던 손으로 털을 쓰다듬으면, 해피는 형의 손에 남은 소금기를 핥아 먹고는 했다. 형의 손은 일을 하지 않아서 통통한 편이었는데 살을 뺀 후에도 손만은 변함없었다.


나는 형의 손과 비교하기 위해 벌레를 닦아내는 손님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는 오른 손에 휴지를 쥐고서, 왼손으로 뒷목을 주무르고 있었다. 앉아있던 자세가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목을 이쪽저쪽 돌리며 부엌 쪽의 쓰레기통을 향해 걸어가는데, 잠깐이었지만 옷깃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보였다. 그의 목덜미에 난, 두 줄로 그어진 붉은 상처. 나는 하마터면 자리에서 일어나 가까이서 확인할 뻔 했다. 그것은 사람이 할퀸 자국이 분명했다. 몸이 떨렸다. 내게는 그것이 불길한 징표처럼 여겨졌다. 딱지가 앉아 있었지만 그리 오래 되어 보이진 않았다. 깊이 파인 그 상처는 최근에 그가 누군가와 몸싸움을, 그것도 아주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음을 직감하게 했다. 아마도 그는 싸움에 몰두한 나머지 고통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는 더 큰 상처를 입혔을 테다. 나는 근거 없이 추측을 계속해갔다. 그러면서 나는 그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음을 확신했다. 한편, 그를 둘러싼 공기에 압도당했다, 단지 그가 상처를 입은 것을 본 것만으로도. 나는 싸우는 방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휴지를 버리고 돌아오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나는 나를 꿰뚫어보는 것 같은 그 눈이 무서웠다. 그의 눈동자는 너무 흔들림이 없었다. 나의 의심을, 그 또한 알아차린 것일까? 주저함을 모르는 그의 눈빛은 완벽하게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중요한 무언가가 결여되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짐승도 그런 눈은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 눈동자가 지금,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도망쳐야 했다. 거리가 점점 좁혀져서,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고야 말았다. 때마침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가 장을 마치고 돌아온 것이었다.


나는 재빨리 현관문 쪽으로 다가가 다녀오셨어요.” 인사했다. 그러는 동안 손님이 나를 지나쳤다. 그러고는 무심한 태도로, 자신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일부러 그의 쪽을 보지 않았다. 그를 향한 나의 감정을, 그에게도 어머니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대신 나는 어머니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척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손을 뻗어 장바구니를 건네받으려 했지만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피로에서 오는 짜증스런 태도가, 습관처럼 몸에 밴 것 같았다. 하지만 손님에게는 달랐다. 내 인사는 본척만척 하던 그녀가, 그에게는 공손하고 깍듯하게 목례하는 것이었다. 손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서로 오가는 말은 없었다.


어머니는 반찬거리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무기력한 걸음걸이였다. 원래부터 생기가 넘치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형의 죽음 이후로 더욱 기운이 없어보였다. 자식이 죽은 날, 마치 방금 해산한 여자처럼 진이 빠져보였던 어머니. 그러다 발작적으로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침통해했던 어머니는 정말로 형의 친어머니 같이 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형이 열네 살 때, 그리고 내가 열세 살이었을 때 아버지와 재혼한 새어머니였다. 친어머니와 이름이 같았지만 그것은 그저 우연의 일치일 뿐이었다. 어쨌거나 형과 나는 일반적으로 계모에게 갖는 그 어떤 피해의식도 지니지 않았는데 간혹 신경질적인 구석을 보이긴 했지만 그녀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어머니로서의 거의 모든 역할을 해냈었기 때문이었다. 형은 올해 스물여덟 째 생일을 맞이하면서, 그때 나이를 기준으로 지금의 어머니가 자신 인생의 딱 절반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해피를 쓰다듬으며 다음 해부터는 절반 이상이 되겠네요, 말했던 것이 기억나면서, 그것은 자살을 결심한 사람의 말이 아니라고 여겼다.


어머니는 부엌에 가자마자 창가에 놓인 라디오를 켰다. 이제는 구하기도 힘든 구식의, 크고 투박한 라디오였다. 그녀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정작 본인은 수다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끊임없이 어떤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정치든 경제든 자신과 관계가 있든 그렇지 않든 상관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침묵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이었다. 스스로 제 이야기의 여백을 메울 자신이 없어서 외부의 것에 정신을 쏟는 것이었다. 그런 면은 친부모자식처럼 형과 어머니는 비슷했다. 형 또한 잠을 자고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TV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었다. 그들은 그들 삶의 관찰자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스스로는 어떤 의미도 낳지 못한다.


그녀는 장바구니에서 고등어를 꺼내 조리를 시작했다. 싱크대에 물 떨어지는 소리, 물 끓는 소리, 칼이 도마에 부딪치는 소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앵커의 목소리, TV가 들려주는 이국땅의 언어들이 집안을 가득 메웠다. 아직까지 숙취가 온전히 가신게 아닐뿐더러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신경이 무척 예민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사방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들,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이야기들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인신매매의 희생양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추가 공습이 이어지면서 주요 도시는 폐허로 변했습니다. 폭격을 맞은 창고 건물은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습니다. 잔해더미에서는 아직 연기가 계속 새어 나옵니다. 소년병이 되거나 성 산업에 종사하게 됩니다. 반란군에게 납치되어 강제로 군인이 되었어요. 부엌에서 그릇이 덜그럭거리는 소리. 물을 잠갔는데도 물방울이 맺혀 뚝뚝 떨어지는 소리. 총을 들고 싸움을 하는 것은 물론 밥 짓기, 설거지, 청소 등 힘겨운 일을 하고 심지어 성 폭력까지 당합니다. 2톤 트럭 운전 중에 신호를 어긴 채로 돌진해 횡단보도를 건너던 5명의 보행자를 강하게 쳤습니다. 교차로를 지나 맞은편 차선에 신호 대기하던 택시와 접촉 사고를 내고 정차했습니다. 어머니가 잔기침을 했다. 차량에서 내린 후 등산 나이프를 들고 무차별적으로 행인과 경찰을 찌르며 공격했습니다. 생활고에 찌들어 세상이 싫어졌다, 누구든 상관이 없었다. 이 개새끼! 개만도 못한 새끼! 칼 소리, 총소리, 폭발물이 터지는 소리, 비명소리, 욕 하는 소리, 울음소리 등이 정신없이 들려왔다. 한꺼번에 쏟아지는 정보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모든 주어는 생략되어 있었다. 그 소리들은 고통을 연상케 했고, 고통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냈으며, 죽음은 또 다시 나의 형을 생각나게 했다. 형으로 이어지는 그 소음들은 점점 커지고 빨라져서 알아듣기 힘들게 되었다. 재발하는 편두통에 숨이 턱 막혔다. 이를 악물고 눈을 감았다. 시간이 지나자 라디오 소리가 멎었다. 그리고 TV를 통해 들려오는 아프리카 언어 사이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들 식사하세요.”


나는 눈을 뜨고서, 어머니가 여전히 내게 화가 나 있음을 알았다. 화가 나 있을 때 어머니는 내게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으며 존댓말을 했다. 나는 어머니가 화난 이유에 대해서 짐작해 보았다. 어제 술에 취해서 집에 들어 온 일에 대해서 되짚어보고, 아마도 그 일 때문에 그런 것이리라 생각했다. 손님은 TV를 끄고 식탁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바닥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밟았다. 과자가 부서지는 소리는 아주 작았지만 그가 걷는 뒷모습, 그의 맨발과 과자가 이상하게 느껴질 만치 신경이 쓰였다. 그는 얌전한 걸음으로 형의 자리에 앉았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지금은 옷깃이 잘 정돈되어 있어 목덜미의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도 그에게 상처가 있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녀는 고등어조림을 식탁에 내 놓고 자리에 앉았다. 나에게 빨리 오라든지, 음식이 식는다든지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화가 나 있을 때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았다. 필요한 말은 하나씩이면 충분했다. 나는 뭐든 먹어야 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걸어갔다.


식사를 하면서도, 나는 손님의 일거수일투족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가 나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럴 때에는 도움이 되었다. 나는 그가, 정확히는 그와 형의 관계가 궁금했다. 사실상 그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외형적인 특징이나, 버릇, 취향 등을 모두 파악하게 된다 해도 그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수가 없었다. 나는 결정적인 무언가를 위해, 마치 처음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앞에 앉은 남자에게 몰입했다. 그는 젓가락질이 서투른 편이었다. 밥보다는 반찬을 많이 먹는 편이었고, 식사 중에 물을 마시는 버릇이 있었다. 편식을 하지 않고 고루 먹고 있었는데, 모든 음식을 즐긴다기보다는 의무적으로 영양을 섭취하는 것으로만 비춰졌다. 그는 김치를 집어먹으면서 왼쪽에 있는 컵을 제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가 컵을 들어 올리자, 손목에 찬 금속 시계가 형광등빛에 반사되어 번쩍거렸다. 그 때에, 형의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소름이 돋았다.


눈을 크게 뜨고 그 시계를 자세히 보았다. 확실했다. 그것은 형의 시계였다. 여섯 시 쪽에 균열이 인 것까지 그대로였다. 형의 시계는 고장이 나서 멈춰있었으나 손님의 시계는 잘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잘못 볼 리가 없었다. 형의 시계를 고장 낸 장본인이 바로 나였으므로. 나는 시계가 고장 났던 그날을 아주 생생하게 기억했다. 형은 저 시계를 좋아했었다. 그래서 남에게 만지지도 못하게 했고, 샤워할 때를 제외하고는 푸는 일이 없었다. 얼마나 좋아했는지 잠을 잘 때에도 차고 잤었다. 어떤 시계기에 형이 그렇게 애지중지하는지 궁금했던 나는 형이 샤워를 하는 동안에 그것을 구경해 보았다.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그저 평범한 시계였다. 김이 새서 도로 내려다 놓으려는데 갑자기 해피가 짖어댔다. 다른 개들도 자주 그러듯이, 해피도 간혹 의미 없이 허공을 향해 짖고는 했었다. 놀라서 시계를 떨어뜨렸는데, 하필이면 가구 모서리에 맞고 튕겨나가는 바람에 귀퉁이가 깨지고 말았다. 황급히 들어보니 초침이 멈춰있었다. 나는 그것을 있던 곳에 두고 시치미를 뗄 작정이었는데, 하필이면 그때 형이 샤워를 마치고 돌아왔다. 형은 시계를 낚아채고는 말없이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그때 사과를 해야 했는데 도리어 화를 내고 말았다. 어차피 집안에만 있으면서 손목시계는 왜 필요해? 그것도 이런 싸구려 시계 따위!


손님이 컵을 내려놓자 소매가 내려왔고 시계가 가려졌다. 나는 내 말에 울었던 형을 떠올렸다. 형은 원래 화를 못내는 성격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다 큰 성인이 그 말에 울 거라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황했던 기억이 났다. 나는 고개를 들어 손님의 얼굴을 보았다. 형이 그렇게나 아끼던 시계였다. 그 시계를 아무에게나 줄 리는 만무했다.


나는 용기를 내서 손님에게 묻고 싶었다. 그는 하나부터 열까지 의심스러운 사람이었다. 나는 설명을 요구해야 했다. 시계는 어디서 났는지, 목덜미의 상처는 어쩌다 생긴 것인지, 왜 장례식이 끝났는데도 우리 집을 떠나지 않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형은 왜 죽어야 했는지?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그렇지만 끝끝내 분노하지는 못한다. 주먹을 쥐자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그것은 피 묻지 않은 발톱. 형은 자살할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손님을 불러야했다. 아래로 내리깐 그의 시선을 이쪽으로 향하도록 해야 했다. 그리고 마주해야 했다. 의도치 않게,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 그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식탁을 밟아 넘고 그에게 달려들고 싶었다. 그를 뒤로 자빠뜨린 후 진실을 토해내도록 하고 싶었지만 나는 꼼짝할 수 없었고 입조차 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손님이 가진 힘 같았다. 식사하는 동안, 그는 그새 또 살이 더 찐 것 같았다. 무서웠다. 그는 점점 비대해지고 있었다. 나는 형을 대하듯 손님을 대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그는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습니다.”


들을 때마다 낯선 목소리였다. 나는 그 억양과 높이를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빈 그릇을 싱크대에 넣고 다시 거실로 돌아갔다. TV소리가 이어졌다. 다큐멘터리가 끝났는지 광고음악이 들려왔다. 나는 꽉 쥐었던 주먹을 펴보았다. 이렇게 끝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예의가 없구나.”

그때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손님을 너무 빤히 쳐다보았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님이 TV 채널을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속은 괜찮니?”


건성으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어머니와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불편했다. 손님과는 반대로, 어머니는 또 유달리 나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런 것은 모른 척 하는 것이 편했다. 손님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었다. 그러고 보면, 대화 없이 진행되었던 식사시간이 그리 짧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그는 형의 자리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시선을 거실에 고정한 채, 자리에서 일어나기 위해 의자를 뒤로 끌었다. 우리는 서로 할 말이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일어서려는 나를 잡았다.


손님에게 사과는 드렸니?”


그 말에, 나는 공격적인 태도로 어머니와 얼굴을 마주했다. 도전하듯이 눈을 치켜뜨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어제 일이 기억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물론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자 침묵이 이어졌다. TV에서는 토크쇼가 진행되고 있었다. 진행자의 말을 자르고, 손님이 보는 앞에서 그런 추태를 보인 것이 부끄럽지도 않느냐고 어머니가 물었다. 준비된 말처럼 또박또박 들려왔다. 거실에서 방청객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대답해야 할 때였다.


진심으로 제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세요?”


어머니는 손톱 끝으로 식탁 모서리를 꾹꾹 눌렀다. 감정이 격해질 때 드러나는 어머니의 버릇이었다. 어머니는 이제 그만 인정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 목소리는 내가 가진 어떤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어머니도 원하던 일이 아니에요?”

네 형은 자살했다.”


두 말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나는 어머니의 말을 못 들은 척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러지 못했다. 충격 받은 얼굴로, 입을 벌린 채 나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나도 감정이 격해져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가 우는 것을 보니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나는 더욱 잔인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어제 했던 말을 되풀이하면서, 나는 일을 명확하게 마무리 짓기로 했다.


왜 어머니는 네 형, 네 형 하는 거예요? 당신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어머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머니와는 달라서, 나는 그렇게 쉽게 믿을 수가 없어요, 이해할 수 없어요. 형이, 자살했다니!”


나는 꿈속에서 옥상에서 뛰어내렸을 때처럼 희열감을 느꼈다. 연극배우가 된 기분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계속 하고 싶었다. 목소리를 더 높였다. 이는 손님도 들어야 하는 내용이었다.


그 종잇조각 하나 찢은 게 뭐 대수라고. 그 유서는 가짜에요. 형이 썼다 하더라도 그건 글쟁이인 형이 지어낸 많은 이야기 중에 하나에요. 형은 평소에도 자주 유서는 따로 쓰지 않겠다고 말했었죠. 자신이 쓴 모든 글이 유서라고 말했어요. 농담이랍시고 매일 그렇게 지껄였죠. 말해 봐요, 유서의 그녀가 누구죠? 형은 집 밖에 나가지 않았어. 형에게는 애인이 없어요! 그건 어머니도 잘 아시잖아요!”


그 말을 할 때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머니는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우연히, 식탁에 놓인 감자 샐러드가 눈에 들어왔다. 그 뽀얀 감자는 어린 아이가 장난 친 것처럼 아무렇게나 으깨져있었다. 그러고 보면 형은 내가 바퀴벌레를 잡기 위해 만든, 붕산을 넣은 감자경단을 가리키면서 못된 장난 짓이라고 비난했었다. 괴로움에 일그러진 형의 표정은 나를 속상하게 했다. 나는 문장으로 사고했다. 그리고 나는 형의 문장과 나의 문장이 헷갈렸다. 어머니의 옆에 서서 형이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형이 아니라 손님이었다. 나는 또 장난처럼 발동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내가 이 말을 기억했다는 것을 알면 어머니는 뭐라고 말할까? 나는 고의로 목소리를 떨며 광대놀음을 했다.


저는 그 아이의 죽음이 슬프다기보다는 부끄러워요.”


이내 어머니 어깨의 떨림이 멈추었다. 두 손을 아래로 내리고, 그녀는 내게 자신의 얼굴을 보였다. 눈물로 범벅된 얼굴이었지만 표정은 건조했다. 14년 동안 지겹도록 본 그 얼굴은 어머니로서의 얼굴이었다. 어머니가 조용히 내 이름을 불렀다.


네 잘못이 아니야…….”


그녀 어깨에 손을 얹고 위로하던 손님이 품속에서 주섬주섬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스카치테이프로 열심히 이어붙인, 너덜너덜한 종이. 그것은 어젯밤 내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찢어버린 형의 유서였다. 나는 감자 경단을 보고 아연실색을 하던 형에게 바퀴벌레는 지독한 생물이야.”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어제 이것을 태워버렸어야 했는데……. 나는 처음 읽는 것처럼 유서의 전문을 읽어보았다. 감정 과잉에 맥락 없는 글. 모호한 데다 재치도 없고, 문장 배열이 특이하긴 하지만 뜯어보면 식상하다, 어쩌다 새로운 표현이 나오면 공감할 수가 없다, 하고 어떤 평론가는 형의 글을 비판했었다. 그에 반항하는 태도로, 형은 열혈이 그 말에 동의했었다. 이 글은 형의 그런 특징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악필에, 오문에, 절반은 쓰다 지운 흔적들이었다. 이어붙인 자국 때문에 보이지 않는 글자들도 더러 있었다. 유서라기보다는 주정뱅이가 휘갈긴, 낙서에 가까운 글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너무 많은 것을 경험해 왔다. 너는 나를 한심하게 여길까? 누군가는 내 죽음을 개죽음이라 여기겠지만, 동생아, 나는 나의 죽음을 변호하기 위해 이 글을 남긴다. 나는 한 명의 시청자로 정의할 수 있다. 소파에 누워 타인의 죽음을 수십 번씩 겪어 온. 그래서 스스로 갖은 절망으로 단련되었다 여겨왔지만. 나는 그녀의 죽음이 너무도 버겁다. 죽음은 흔한 것임을 알지만, 그 사실 또한 견디기가 힘들다. 동생아. 그녀는 나의 행복이었다. 흔들림 없는 그녀의 눈동자를 볼 때에만 나는 행복을 믿을 수 있었다. 언제나 내 곁에 조용히 앉아주었던 그녀는. 나는 왜 그녀를 보호하지 못했는가? 그녀는 하룻밤 사이에 죽었다. 살해당했다! 단지 장난기처럼 발동한 호기심으로. 권태는 괴물. 것은 세계의 잘못. 그렇지만 나 끝끝내 분노하지는 못했다. 철저하게, 나는 내 삶의 관찰자다. 기억 이전의 시간부터 싸우는 법을 잊어버렸다. 피 묻지 않은 발톱은 아름답지 않다만! 동생아, 세계는 더 이상 어떤 의미도 낳지 못한다, 폐경기의 여성처럼. 나 매일 밤 고립된 꿈을 꾸는데 그곳은 낯선 화장실. 더러운 화장실. 좁고 습한! 그곳에서 나는 살만 찌고 있다. 게걸스레 음식을 주워 먹으며 대량생산된 좌절과 슬픔과 고독을 이야기한다. 그녀를 살해한 자는 꼭 나의 얼굴을 닮았다. 나는 그를 안다. 사실은 모른다. 동생아, 사실 아프리카는 없다. 역사는 허구다. 나는 어렸을 적 기억이 없다. 나는 죽을 것. 그녀를 따라서 죽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달리다가 죽을 것이다. 달리다가 심장이 터져서 죽을 것이다. 그녀의 죽음은 곧 세계의 죽음이었다. 그녀가 죽음으로써 그녀의 이름은 죽음과 동의어가 되었다. 이 표현에 위선도 과장도 없다는 것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그것이 누군가에게 우스꽝스럽게 보인다는 것도 이젠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동생아. 나는 원래 외동이었다. 그리고 너는 곧 외동이 될 것이다.

 


왜 너에게 썼는지 아직도 모르겠니?”


나는 모른다고 말하고 싶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작스런 구토증에, 입을 가리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먹은 것이 그대로 쏟아져 나왔다.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는 데도 토악질은 계속 되었다. 변기물 위에 떠오른 찌꺼기마냥 이런 저런 기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붕산을 넣은 감자경단을 만들었다. 만들면서 호기심이 생겼다. 해피는 뭐든 잘 먹는 개였다. 형은 해피를 사랑했다. 해피가 죽었다. 형이 죽었다. 반복해서. 나는 바퀴벌레를 죽이기 위해 붕산을 샀다. 붕산 5g은 유아 치사량이다. 그것으로 감자경단을 빚었다. 집안 이곳저곳에 두었다. 만들면서 호기심이 생겼다. 처음에는 장난이었다. 결과가 당연한 실험을 생각했다. 해피는 뭐든지 잘 먹는 개, 살찌고 늙은, 우리 가족 같은 개였다. 형은 해피를 아끼고 사랑했다. 어느 날 해피가 죽었다. 그리고 형이 죽었다. 다시 반복. 붕산을 샀다. 바퀴벌레를 죽이기 위해서……. 해피는 살찌고 늙은 개, 암캐다. 형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속이 뒤틀리고 식도가 쓰렸다. 정말이지 나는 다 소화시키고 싶었다. 그럴 수 없다면 속 시원히 토해내고 싶었다. 화장실 문틈으로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그의 죽음이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모든 죽음은 개죽음이었다. 아아! 해피야! 오열했던 형을 떠올렸다. 그때 나는 그를 위로해야 했나. 아니면 사죄 했어야 했나.


나는 세면대에서 입 안을 헹궜다. 거울 안에는 비만한 남성이 새파란 얼굴로 서 있었다. 그 얼굴을 보고 나는 혼자 장난을 쳐 보았다. 소리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

, , , , 철없는, 외동이, 되었습니다.

그 남자는 웃는 얼굴도 아니었고 우는 얼굴도 아니었다.




이름 : 윤희서

메일 : bluemoon0712@naver.com

  • profile
    korean 2017.04.30 21:19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콘테스트-단편소설 공모게시판 이용안내 16 file korean 2014.07.16 3325
345 이사 1 겨울에만들다 2017.04.09 67
» 유서 1 윤서희 2017.04.07 48
343 구더기 냄새 1 박인아 2017.04.03 26
342 검은 개 1 file 붉은달 2017.03.31 28
341 노인 2 file 애니 2017.03.29 63
340 『젖꼭지?!의 날』 - 서옥 / 김평배 3 서옥_김평배 2017.03.20 125
339 지친 오늘에 내일의 희망을 1 바람바위 2017.03.14 46
338 행방(行方)) 2 김지은 2017.03.13 65
337 에케 호모 1 레비 2017.03.13 96
336 의사 루카 씨의 일주일 1 luca 2017.03.01 75
335 ▬▬▬▬▬ <창작콘테스트> 제15차 공모전을 마감하고, 이후 제16차 공모전을 접수합니다 ▬▬▬▬▬ 2 korean 2017.02.11 77
334 급강하 비행 1 펠리니 2017.02.10 118
333 -2 1 깜맨 2017.02.10 160
332 그대들에게 전하는 마음이 바람을 타고 가기를 2 소희 2017.02.10 65
331 열려라 참깨 1 보거스 2017.02.10 110
330 하늘 대학교 1 유명한남자 2017.02.10 35
329 필리아2 1 윤별 2017.02.10 105
328 기쁨의 도시 1 윤별 2017.02.10 80
327 라라 1 윤별 2017.02.10 19
326 훌륭한 아버지 1 윤별 2017.02.10 26
Board Pagination Prev 1 ...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 37 Next
/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