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여 안녕!
원 영 모
“여보, 이제 제주도를 다시는 가지 말아야 하나봐?”
방금 전 제주도에서 올라온 나는 무엇인가 홀린 기분으로 아내에게 말한다.
“정말, 좀 이상하기는 하네?”
아내도 미심쩍기는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라 동의를 한다.
삶의 여유가 있을 즈음에 아이들과 함께 해외여행도 다녔지만 그래도 처음으로 찾은 곳은 제주도였다.
아내와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갔었는데 너무 황당한 추억만 있었기에 언젠가는 다시 찾아간다고 한 것이 큰아이가 15살, 막내가 10살 때다. 제주도에는 이후로도 여러 번 가족과 함께 아니면 친구들하고도 놀러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부부만 갔을 때는 영락없이 뭔 일이 발생했다.
처음 신혼여행으로 갔을 때는 그저 운이 없어서 그러려니 생각하고, 세월이 흘러 결혼기념일을 축하한다는 의미에서 부부만의 제주여행을 가곤 했다.
그런데 첫 번째도 그렇고 두 번째 갔을 때에도 문제가 생겼다. 급기야 어제 세 번째로 갔을 때는 아예 하루만 잠자고 쫓기듯이 돌아왔다.
제주도는 우리 부부를 거부 하는 모양새다. 거부가 아니고서야 그럴 수가 없다.
처음으로 제주도를 찾은 것은 1983년 10월 9일, 결혼식 당일이다.
마침 한글날이면서 일요일이었기에 향후 결혼기념일만큼은 늘 쉬는 날로 정하고 싶어서 잡은 날이다. 한동안 법정공휴일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최근에 다시 공휴일로 지정된 날이다.
지금은 세월이 흘러 대부분의 사람들은 잊혀 진 날이지만, 아웅산 묘지 테러사건하면 나이 먹은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 내가 결혼식 올리고 있을 때에 국가적으로는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현직 대통령을 시해하려는 북한의 만행으로 수행원을 비롯해서 20여명이 사망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그렇다고 내 결혼식에 당장 어떤 여파가 생긴 것도 아니고, 신혼여행에 악 영향을 끼친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러나 이로 인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불행을 전혀 모른 채 우리 부부는 신혼여행을 떠났다.
그 당시 신혼여행으로는 온천여행을 많이 했고, 제주도로 신혼여행 가는 것은 좀 거하게 간다고 하던 시절이다.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천안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바로 김포공항으로 출발했다. 오후 6시 30분 제주행 비행기를 타려면 서둘러야한다.
형 친구가 하얀색 승용차에 우리 신혼부부를 태우고 달렸다. 승용차 뒷문과 트렁크 문 사이에는 오색 풍선이 주렁주렁 걸려있다.
이날만큼은 아무리 과속으로 달려도 교통경찰이 잡지 않는다. 신혼부부 차량인줄을 대한민국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굳이 새 출발을 향해서 달리는 신혼부부의 앞길에 첫날부터 재수 없게 할 수는 없다.
공항에 여유 있게 도착했다. 아내는 난생처음 비행기를 타본다 한다. 그래도 나는 출장으로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몇 번 탄 적이 있다. 그래도 경험이 있었다고 여행용 가방 들고 개폼잡고 앞서간다.
신혼여행가서 같은 옷만 입고 찍을 수 없다는 신부는 가방에 아내 옷이 전부다.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벌써 어둠이 내려앉아있다.
저녁 식사를 아직 못한 상태이지만 숙소에 짐을 먼저 풀어놓고 먹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제주 ‘카00’호텔로 갔다. 5성급 호텔이라 한다.
둘째형 잘 아는 선배분이 이 호텔 지배인이라 하면서 미리 예약을 했는데, 모든 경비도 지배인이 알아서 한다고 했다.
나는 여행 가방을 들고 위풍당당하게 호텔 로비로 갔다.
“어서 오세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네, 예약하고 왔는데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박 영수입니다.” 프런트 직원이 한참을 뒤적인다.
“어어, 안 되어 있는데요, 오늘이 맞으신가요?”
“분명 오늘 인데요, 혹시 박 성수로 되어 있는지 봐 주시죠.” 혹시 몰라서 형 이름까지 대봤다.
.
“없으신데요. 내일 날짜에도 없고, 혹시 다른 호텔은 아니신지?"
황당한 일이다. 빈방도 없단다. 전화로 둘째형한테 확인 할 방법도 없고, 그냥 나올 수밖에 도리가 없다.
좀 전까지 맑았던 하늘이 잿빛 하늘로 변했다.
결국 결혼 첫날부터 잠 잘 곳을 찾아 헤맨다. 아내에게 정말 할 말이 없다. 몇 군데를 둘러보아도 빈방이 없단다.
겨우 찾아간 곳이 어느 여인숙 같은 허름한 여관이다.
가방 들고 헤매느라 피곤도 하고 시간도 늦어서 여관집에 부탁했더니 둥근 양은쟁반에 백반을 차려온다.
부부가 되어 처음 먹는 밥을 방구들에 앉아서 신문지 깔아놓고 먹었다.
편안히 신혼 첫날밤을 보내려고 했던 것이 너무 무자비하게 망가진다.
일생에서 가장 황홀한 밤이 되어야 하는 날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에게는 무방비 상태에서 그대로 날아갔다.
모든 신혼부부가 꿈꾸는 첫날밤의 행사를 우리 부부만큼은 조용히 지냈다.
개떡 같은 상황에서 신혼 첫날밤이라는 공식 일정을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다음날 새벽 4시쯤, 방에 있는 전화벨소리가 요란하다.
“박 영수씨 인가요?”
“네, 그런데요.” 잠결에 깜짝 놀라서 받았다.
“아! 예, 죄송합니다. 여기는 카00호텔 프런트입니다.”
“네, 그런데요.” 나는 심드렁하게 변했다.
“저희가 VIP손님으로 예약 된 것을 모르고, 너무 큰 실수를 했습니다.”
“네에!!!!???” 아닌 밤중에 봉창 두들기는 소리이지 이게 뭔 말이냐?
“나가신 다음에 밤새 찾았는데 이제야 연결되어서 죄송합니다.”
“그래서요?” 순간 나는 울화통이 터졌다
“지금이라도 이곳으로 모시고 싶은데 어떻게 하실지? 오신다면 지금이라도 차를 바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됐습니다. 어차피 좀 있으면 일어날 시간인데 번잡하게시리 됐습니다.”
알고 보니 그 호텔에 예약은 잘 되어 있었다. 단지 지배인 혼자서 어차피 비어 있는 VIP룸을 예약해 두었고, 프런트 직원은 우리 부부가 VIP 손님이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다.
신혼부부 주제에 옷차림이나, 들고 있는 가방을 보아하니 VIP 손님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한 것이다.
하필 내가 찾아 갔을 때 지배인은 잠깐 자리를 비우고 없어서 몰랐단다. 시간이 넘었는데도 나타나지 않아서 직원한테 물었더니 벌써 왔다 간 다음이다.
3박자가 어긋난 결과다.
밤새 인근에 있는 숙박시설을 일일이 전화로 확인해서 찾았단다.
VIP룸 손님이 이런 허술한 여관방에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기에 새벽이 다 되어서야 연결된 것이다.
신혼 첫날밤을 망쳐놓고 정말 씁쓸한 일이다.
하기야 지금까지 살면서 언감생심 VIP룸이 뭔 말이냐?
천지가 개벽할 일이라고 시샘한 그 무엇이 나로 하여금 신혼 첫날밤을 여인숙으로 몰았다.
아마도 지금 생각하니 신혼여행지가 제주가 아니고 부산이나, 경주였다면 달라지지 않았겠나 싶다. 그 때는 당연히 몰랐다. 제주가 나를 거부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으니 말이다.
다음 날부터는 미리 예약한 단체버스를 이용하여 제주도 여행을 했다.
버스 내에 승객이 전부 신혼부부다. 아내는 새색시 아니랄까봐 색동저고리에 치마까지 준비해 와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기가 없어서 지난해에 결혼한 여동생 남편, 즉 매제한테서 빌려 온 미제 ‘캐논’인데 어린아이 머리 크기만큼이나 거창하다.
그동안 가끔 남의 사진기로 찍은 경험은 있었지만 이 사진기는 처음이다. 출발할 때 대충 주인한테 사진기 다루는 방법을 배우기는 했다.
그러나 막상 찍으려니 잘 모르겠다. 사진기가 반자동이라면서 대충 눌러도 된다고 했는데, 이게 또 문제가 될 줄은 이때 까지는 까맣게 몰랐다. 반자동이라는 의미가 누르기만 하면 알아서 찍히는 것 인줄로만 알았지, 초점을 제대로 맞게 찍어야 한다는 것을 그 당시 촌놈의 실력으로는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여행 끝나고 사진을 인화했는데 완전 엉망이다. 필름 5통을 찍은 결과, 겹치던지 흐리던지 그나마 봐 줄만한 것이 10장 이내다.
그것도 얼굴이 누구인지 겨우 알 정도의 사진이다. 일부러 한복까지 준비해서 갔는데......
신혼여행 사진이라고는 있다고 할 수도 없다. 여행하고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고 했는데, 남아 있을 건더기도 없다.
신혼여행의 좋은 추억보다는 아픈 추억들이다. 그래서 세월이 흘러 결혼기념일을 맞아 못 다한 신혼여행을 위해 제주도로 아이들하고도 갔었고 우리 부부만 가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오붓하게 옛 추억을 살리려고 둘이서 결혼기념일을 맞아 처음으로 제주를 찾았을 때다.
한창 제주 올레 길로 유명세를 탈 때다. 2박 3일 일정으로 인터넷을 뒤져서 펜션을 미리 예약하고 떠났다.
김포공항에서 첫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하니 오전 8시전이다.
1번 올레 길의 출발점인 시흥초등학교까지는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제주 올레 길을 처음으로 시도하려는 사람은 의례히 1번 코스를 시발점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우리도 그랬으니 모든 이의 생각은 거기가 거기다.
가을 풍경을 바라보면서 우리 부부도 힘차게 출발이다.
“여보, 출발이다. 가자!” 나는 아내의 밝은 얼굴을 바라보면서 예전에 못 다한 신혼 기분을 내기 위해 밝게 외쳤다.
“그래요, 날씨도 좋고 참 기분 좋다.” 아내도 처녀 같은 웃음을 지면서 답한다.
3km정도를 걷다 쉬다, 쉬엄쉬엄 오르니 ‘알 오름’정상이다. 정상 8부 능선 정도에 작은 소나무가 외롭게 서있다.
사방팔방 언덕에 아무것도 없이 소나무 한 구루만 덩그러니 서 있는데, 어른 3~4명만이 겨우 그늘에 앉을 정도로 작은 나무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나무 밑에서 쉬었다 간다. 우리 부부도 저 멀리 보이는 들판을 보면서 땀을 식힌다.
출발선에서 7km정도를 지나니 이제는 해안선을 따라 걷는다. 바닷바람을 만끽하면서 왼편으로는 바다를 보고, 저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총길이 15.1km를 걸어서 종점인 ‘광치기해변’에 도착 할 때는 오후 4시가 안되어서다.
종점 근처에 이미 인터넷으로 예약한 숙소를 찾았다.
“여보, 우리 먼저 숙소부터 찾아가서 쉬었다가 나오자.”
“으응, 그게 좋겠어요. 한번 씻어야지?”
“아! 저기 보인다. 00펜션이라고 간판 보이지?” 나는 예약한 펜션이 눈에 띄자 반가웠다.
인터넷에 올린 사진과 비슷한 건물이다. 바다가 보인다는 3층 건물이다.
가을철이라 관광객이 많아서 혹시라도 숙소를 정하지 못할까봐 일찌감치 예약했고, 나름 바다도 보이고 전망이 좋다고 올린 댓글을 보고 결정한 집이다.
그런데 숙소를 찾아 가는 길목에는 더 멋있어 보이는 펜션 앞에서 손님을 찾는 아주머니들이 여러 명이나 있다. 주인이거나 알바를 하는 아주머니인 듯한데, 아무튼 미리 예약을 안 해도 충분히 잠 잘 곳은 많이 있었다.
내가 예약한 집은 그중에서도 제일 끝에 겨우 바다가 보일 듯 말 듯 가장자리에 있는 집이다.
현관문을 열면서 들어서니 마침 할머니라고하기에는 좀 이른 아주머니가 우리를 보면서 묻는다.
“혼저 옵서예?”
“네? 아뇨 우리 둘인데요.”
“오늘 왓수과?”
“네? 지금 오는 길인데요. 그리고 우리 미리 예약했는데요?”
“아! 예 반갑수다. 이름이?”
확인하고 2층 방까지 안내하면서도 무엇이라고 말을 하는데 잘 알아듣지를 못하겠다.
방에 들어갈 때 약간 퀴퀴하고 이상한 냄새가 났지만 창문을 닫아서 나는 냄새려니 생각하고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키면서 누워서 쉬었다.
이때만 해도 그저 환기만 시키면 되는 줄 알았다. 저녁 식사할 시간이 되어 창문은 열어놓고 해변을 거닐면서 손님이 가득한 식당으로 찾아갔다. 갈치조림으로 맛깔스럽게 하는 집이다.
어둠을 뒤로하면서 다시 숙소로 찾아오니 8시가 훌쩍 지났다. 창문을 열어놓고 나갔었지만 그래도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이상한 냄새가 조금씩 난다. 아내가 먼저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이상하다고 한다.
“유미 아빠! 뭐지 이 냄새가?”
“글쎄? 뭔지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창문을 좀 더 열어놓으면 되지 않을까?”
“아니, 창문을 언제까지 열어놔? 이제 밤에는 추워지잖아.”
냄새에 대한 후각은 무디어서 그렇게 딱히 무어라 말도 못하고 밤이 늦어서야 이부자리를 폈다. 밤에는 추울 것 같아 창문도 닫고 불도 끄고 잠자리에 들어서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유미 아빠! 아무래도 이상해? 퀴퀴한 냄새가 더 나는 것 같아.”
“정말 그러네, 누우니깐 더 나는 것 같은데, 도대체 뭐지?”
나는 다시 일어나서 본격적으로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서 킁킁대기 시작했다.
넓지도 않은 방을 엉금엉금 기면서 찾으니 수상한 냄새는 화장실에서 나는 냄새다. 화장실 배수구에서 난다. 정화조 썩은 냄새다. 냄새라기보다는 가스다. 가스가 물안개 퍼지듯이 화장실 문틈으로 방바닥에 퍼진 것이다. 그러니 누우면 더 심하게 난다. 정화조에서 올라오는 가스라고 생각하니 이제는 머리까지 어지러울 정도다. 실제로 이산화탄소일 수도 있다.
원인을 알았으니 수건을 적셔서 화장실 문틈을 막아보지만 소용이 없다. 잠시 눈을 부치려고 잠을 청하지만 격한 냄새로 인해서 잘 수도 없다.
우리 방만 이렇게 심한 것인가?
바깥 동정을 살펴보니 다른 방 들은 조용히 자는 듯하다. 마침 복도 끝에 가을 되면서 치워놓은 선풍기가 있다.
화장실 앞에서 복도를 향해 선풍기를 돌렸다. 당연히 방문은 활짝 열어놓은 채다.
밤새 선풍기로 환기를 하면서 잠자느라, 토끼잠을 잘 수밖에 없다. 방문을 활짝 열어놓은 상태에서 편하게 잠을 잘 수가 있는가?
다음날 뜬 눈으로 밤을 샌 듯 눈은 빨갛고, 얼굴은 푸석거린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주인을 찾아서 방안으로 모셨다.
“아주머니! 이 방에 무슨 냄새가 이렇게 심하죠? 우리 밤새 한 잠도 못 잤어요.”
“아이고 죄송 함다. 정화조가 망가져서 그래요. 어제 고친 다는 것이 못 고쳤수다.”
“아니? 그러면 손님을 받지 말든지, 무슨 조치를 했어야죠? 구린내도 아니고 무슨 시궁창 냄새 때문에 머리까지 아프잖아요!”
며칠 전부터 냄새가 심하다고 투숙객들이 아우성쳐서 알아보니 정화조에 이상이 생겨서 그랬다 한다.
고친다고 하면서 며칠이 지났고 오는 손님한테 말도 못하고 영업을 하던 것이다. 우리가 항의 하니깐 그때서야 지불한 숙박료는 되 돌려준다한다.
“아주머니! 우리는 돈이 문제가 아니에요. 결혼기념일이라고 모처럼 오붓하게 왔는데 완전히 기분을 망쳤잖아요.”
사실이 그렇다. 결혼기념일을 맞아 기분 좀 내려고 비행기 타고 왔건만, 시궁창 냄새 맡으며 밤을 지새운 것이 너무 황당한 일이었다.
운이라고는 눈곱 반 푼어치도 없다. 그 많은 펜션 중에서 하필이면 이런 집을 택했을까?
그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만약에 우리가 다른 집으로 숙소를 정했다면 역시 그곳에서도 무엇이던지 문제가 발생했으리라 믿는다. 멀쩡하던 이 집도 우리가 온다는 것을 미리 감지한 무엇인가가 그렇게 만들어 놓지 않았나 싶다.
하여튼 결혼기념일 제주에서 둘 만의 기분 좋은 밤은 날아가고, 또 한 번 황당한 밤을 보낸 사건이다.
그런 사건이후 3년이 지나서 결혼기념일을 맞아 또다시 제주를 찾았다.
우리 부부가 제주를 찾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그동안 직장생활하면서 해외 출장이던지 국내 출장을 갈 때마다 이용한 비행기 마일리지가 많이 쌓여있어서다.
부부가 해외여행 갈 때는 여행사를 통해서 가기 때문에 마일리지를 이용할 수 없고, 그나마 비행기타고 해외여행기분을 낼 수 있는 곳이 제주이기 때문이다. 또 볼 곳도 많고 도로에서 버리는 시간이 적다는 것도 한몫했다.
3년 전 냄새나는 숙소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이번에는 예약도 안하고 현지에서 직접 골라보기로 하고 떠났다.
제주도에 여러 번 갔어도 주로 해변으로 관광하면서 다녔기에, 이번에는 한라산 등정을 목표로 갔다. 우리는 가급적 제주에 갈 때는 이른 비행기를 타고 내려간다. 그래야 하루 온종일 관광을 하던지 무엇을 하더라도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지금 사는 곳이 공항 가까운 일산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해외여행을 가기위해 인천공항을 가더라도 집에서 버스타고 한 시간이면 된다. 김포공항은 더 가깝다. 여차하면 택시타고 30분이면 충분하다.
어차피 여행을 떠나는데 좀 서둘러서 가면 여유롭게 다닐 수 있기에, 아침 일찍 떠나는 비행기를 이용해서 제주를 찾았다.
한라산 등산 코스 중에 그래도 쉽게 등정 할 수 있다는 어리목코스를 선택했다.
배낭에는 산에 올라가 먹을 김밥, 감귤 한 봉지. 물병 네 개를 넣었고, 옷가지 몇 개도 채워져 있다.
산꼭대기는 춥다하니 두툼한 옷으로 무장하고 올라갔다.
아내는 사실 근래에 무릎 관절이 아프다 해서, 산에 오르는 것을 피해 왔다. 예전에는 자주 함께 다녔는데 나보다 먼저 퇴행성관절염이 생긴 모양이다. 그래도 더 늙기 전에 올라가 보자고 시도한 것이다.
아내는 윗세 오름까지는 힘들어 하지만 그래도 무난히 올라갔다. 그러나 정작 내려가는 하산 길에서 문제가 생겼다.
올라가는 계단보다 내려가는 계단이 그렇게 힘들어 할 줄을 미처 몰랐다. 평소에도 내려가는 계단을 힘들어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날 만큼 아프다 하지는 않았다. 오르면서 힘이 들어갔기에 무릎이 완전 망가진 모양이다. 아내를 엎다시피 안고서야 겨우 한 계단 한 계단 짚을 수 있었다.
3시간이면 하산할 수 있는 거리를 두 배는 걸려서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영실휴게소에 도착했다.
마침 휴게소 주차장에 택시가 있다. 택시를 타고 중문단지로 가면서 기사 분한테 바다가 보이고 편안한 숙소를 소개 받았다.
아는 형님 내외가 은퇴해서 식당과 펜션을 운영하는데 새집이라서 깨끗하고 경관이 아주 좋단다. 우리가 부탁도 안했는데 전화하면서 손님 모시고 가니 좋은 방 내놔야 한다고 일침을 놓는다. 잘 아는 분인지는 몰라도 아마 손님을 모시고 가면 무슨 혜택이 있는 모양새다.
아무튼 저녁이 다 되어서 숙소도 정하지 못하고 있으면 낭패인지라 기사분이 안내하는 대로 따랐다. 도착한 곳은 ‘모슬포’항 쪽으로 바닷가에 지어진 예쁜 집인데, 막 일몰의 장관이 펼쳐지고 있다. 좀 전의 피곤함이 싸악 가시는 광경이다.
2층 방에서 바라보이는 바다의 모습은 환상적이다. 멀리 파도소리까지 은은히 들으며 충분히 심신을 달래줄 수 있는 곳이다.
주인이 운영한다는 식당에서 각종 생선구이와 해산물로 이루어진 백반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정갈한 차림새뿐만 아니라 하나같이 정성이 듬뿍 들어간 느낌이다.
고생한 아내의 무릎을 더운물로 찜질도 해주면서 저녁시간을 보내고 잠자리에 들었다.
잠을 잔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바깥이 시끄럽다. 단체 손님이 들어온 모양이다. 늦게까지 어디서 무얼 하다가 늦은 시간에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한방에 모여서 술 파티를 열고 있다.
조용히 마시면 누가 뭐라나? 확성기만 안 틀었을 뿐 모두가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복도 건너에 있는 우리 방까지 도대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주인이 몇 번이나 떠들지 말라고 경고를 했어도 그 때 뿐이다. 하는 꼴들이 밤을 새울 듯이 떠들더니만 그래도 자정이 되면서 조용해진다. 다행이다. 일찍 자려던 것이 결국 12시 넘어서야 겨우 잠들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난 일이라면 굳이 제주여행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할 얘기가 아니다.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이제 겨우 깊이 잠들만 하니깐 옆방에서 난리다.
우리보다 좀 늦게 들어온 젊은 부부 같은데, 조용하던 옆방에서 부부싸움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큰소리 정도로 잠을 깨우더니 아예 여자 비명소리에 몸싸움까지 벌어지면서, 누구 한 사람은 죽는 것 같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는 살인 방조죄로 끌려갈 판이다. 복도에는 다른 방에서 자던 투숙객까지 나와서 웅성대고 있다. 급기야는 주인이 올라와 문을 두들긴다. 그러나 방 안에서 싸우는 부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조금 조용한듯하면 또다시 요란하다.
이제는 다른 투숙객들이 잠을 못 자게 한다면서 경찰을 부르라고 다그친다. 결국은 경찰을 동원해서 부부를 연행할 때 까지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상황 종료다.
그 부부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우리 부부는 무슨 죄냐?
결혼기념일 조용히 보내고 싶어서 찾아온 제주여행의 첫날밤을 또다시 엉망으로 만든 사건이다.
살면서 흔치 않은 일을 우리 부부는 제주도로 결혼기념일 여행을 왔다하면 일이 생겼다. 그것도 타인의 문제로......
사실 우리 부부가 결혼기념일이라고 매번 여행을 하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제주도로만 여행을 하는 것도 아니다. 강원도 동해로 가기도하고, 온천여행으로 충청도나 경상도로도 자주 갔다.
그러나 다른 어느 곳도 문제가 생겨서 잠을 설치게 한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단지 제주도에서만 신혼여행을 포함해서 네 번의 여행마다 사건이 터졌다.
그 네 번째가 어제다.
또다시 아내와 제주 올레 길을 걷자고 결혼기념일을 맞아 제주도를 찾은 것이 어제다.
예전의 사건들은 모두가 운이 없어서 그러려니 했을 뿐이다. 당연히 아무런 의심의 여지도 없이 제주 올레 길을 선택했다.
이번에는 7번 코스다. 해변을 따라 걷는 길이 환상적이란다.
제주공항에서 600번 공항버스를 타고 ‘약천사’ 입구에서 내렸다. 7번 코스는 서귀포 시내에서 출발하여 ‘월평 아왜낭목 쉼터’가 목적지인데, 우리는 반대로 ‘약천사’ 입구에서부터 서귀포를 향하는 방향으로 잡았다. 그래야 도착해서 숙소를 마음대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천사’ 입구에서부터는 8번 코스가 조금 포함된 거리다. 오전 10시부터 걷기 시작하니 목적지 까지는 중간에 점심 식사를 한다 해도 개략 오후 5시 정도에는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말 많던 ‘강정포구’를 지나 점심식사를 하고 걷다보니 ‘강정유원지’가 나오면서 쉬었다 가라고 정자가 세워져 있다.
“여보, 점심 먹고 바로 가려니 피곤한데, 여기서 잠시 눈 좀 부치다 가자.”
“그럴까? 여기 신문지 깔고 누워요.”
“우와! 시원하고 좋다. 완전 신선놀음 갖지 않냐?”
잠깐 쉰다는 것이 30여분은 족히 잔 것 같다. 땀을 흘린 상태에서 바닷바람을 쏘이며 잔 탓인지 으스스 몸에 찬기를 느끼면서 일어났다. 감기 들기 딱 좋은 조건이다. 기분 탓이려니 하고 재출발이다.
그렇게 두어 시간 걷는 도중에 감귤을 파는 좌판을 만났다. 아내는 육지보다 너무 싸다며 두 봉지를 산다. 한 봉지에 3,000원이다.
“한 봉지만 사지, 왜 두 봉지냐?”
“으응, 하나는 가면서 먹고, 하나는 집에 가서 먹으려고.”
“나, 배낭 무겁잖아, 싸면 얼마나 싼데?”
“에이! 이게 뭐가 무겁다고 그래, 남자가 이것도 못 들어?”
사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아까부터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 아무래도 감기 기운이 도는 것 같다.
그런 마당에 싸면 얼마나 싸기에, 집에 가서 먹을 것 까지 짊어지게 하는지......
남자의 자존심 까지 건들면서 기어코 배낭에 감귤 두 봉지를 집어넣는다. 그렇지 않아도 몸 컨디션이 안 좋은데, 배낭 무게가 묵직해지자 더 힘들어 진다.
올레 길에는 갈림길마다 표지판은 있어도 거리 표시가 없어서 목적지 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는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가끔가다 반대편에서 오는 관광객에게 남은 거리를 대충 물어보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오후 시간이 되면서는 마주 오는 행인도 뜸하다.
예전에는 사진을 찍으려면 필름이 아까워서라도 조심스럽게 찍었는데,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로는 경치가 좋다하면 일단은 찍고 본다.
특히 아내는 나이가 들어도 사진 찍기를 무척 즐긴다. 즐기는 정도가 지나쳐서 본인이 무슨 모델인줄 착각할 정도다.
주로 아내의 독사진인데 같은 장소에서도 온갖 폼을 다 잡고 찍는다. 그러니 경치가 좋은 7번 코스에서 사진 찍는다고 소요되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걷는 시간보다도 어쩌면 사진 찍는 시간이 더 많을 듯하다.
일몰 시간이 되어도 아직 해변을 따라 걷고 있다. 갈 길이 먼 것 같은데 아내는 경관이 너무 좋다며 걸음을 멈춘다.
“유미 아빠! 여기 너무 멋있다. 저기 해 떨어지는 것 보면서 찍어봐.”
“그래그래, 그 쪽에 서있어.”
‘목적지야 걷다보면 언제인가는 도착하겠지.’ 생각하며 아내를 카메라 렌즈에 맞춘다.
예전에 신혼여행 때 날려버린 사진까지 전부 담아가야 할 판이다.
어둠은 순식간에 몰려왔다. 잠시 일몰의 장관에 넋이 나가 사진을 찍다보니 세상이 어두워진다.
태양이 없어지면 어두워진다는 자연의 섭리를 깜박했다.
갑자기 발걸음이 빨라졌다. 제대로 걷고 있는지조차도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이다. 손전등은 당연히 필요 없으리라 보고 챙기지 않았다. 여러 차례 길을 헤매면서 걷다보니 등에는 감기기운에 흐르는 식은땀인지, 불안감에 생긴 식은땀인지 축축할 정도다.
“유미아빠! 이 길이 맞아?”
“그래, 맞을거야.”
아내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난들 와본 길도 아니고, 가끔 보았던 말 표식을 믿고 걸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헤매며 걸으니 갑자기 차량이 다니는 도로가 나타났다.
이제는 마음이 놓인다. 그러나 보여야 할 서귀포 시가지는 아직도 먼 모양이다. 마침 지나가는 승용차를 세웠다. 부부가 타고 있다.
“안녕하세요? 우리 태워 주실 수 있으세요?”
“네? 어디 가시려고요?”
“시내 아무데나 좋습니다.”
서귀포에 일이 있어 가는 길인데, 몇 년 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내려와서 농사를 짓는 단다. 우리를 서귀포 시내 잘한다는 식당에 내려 주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는 구세주나 만난 듯 고마워하며 헤어졌다.
갈치조림을 먹고 나오는데, 온몸이 뜨거워지면서 바들바들 떨린다. 급기야 감기 몸살이 걸린 것이다.
아내가 급히 약국에서 쌍화탕을 사왔다. 감기 걸리면 무조건 쌍화탕 먹고 푸욱 쉬는 것이 최고라는 아내의 이론이다.
가까운 모텔로 들어가자마자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런데 살짝 들어온 감기가 아니다. 밤새 끙끙대며 잠을 못 자는 것은 둘째고 열이 너무 심해서 아내는 계속 수건에 찬물을 적셔오느라 바쁘다. 이토록 심한 감기는 어릴 적 중학교 입학시험 보는 전날 걸린 이후로 처음인 듯하다.
아침이 되어서도 퀭한 눈에 열이 내리지 않은 상태다.
“아무래도 여행 취소하고 올라가야겠어.” 아내는 불안한 마음에 여행이고 뭐고 올라가잔다.
“그럼, 공항에 비행기 좌석 있는지 알아봐.”
마침 비행기가 있단다. 결국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김포공항으로 돌아왔다. 일산 집에 도착하니 점심 전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좀 전 아침까지도 그렇게 펄펄 끌어서 해롱대던 모습은 어디가고 멀쩡하다. 병원에 갈 필요도 없고, 아내가 좋아하는 쌍화탕도 먹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다. 나는 제주도에서 거부당하는 사람이다. 그동안 갈 때마다 잠 못 자게 경고를 했건만, 또다시 나타나니 아예 내 몸에 경고를 한 것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찜찜하다.
1983년 10월 9일 신혼여행으로부터 시작한 4번의 결혼기념 제주여행은 나에게 불운을 안겨주었다. 그중 한번이라도 정상이었다면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려니 했을 것이다. 다 큰 자식들과 함께라면 몰라도 앞으로 섣부른 제주여행은 없다.
이제는 말하겠다. 제주도여 안녕! -끝-
본 명 ; 원 영모
연락처; 010-5277-7088
이메일 주소; ymwoon@naver.com
잘 감상했습니다.
열심히 습작을 거듭하다보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