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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5 12:41

모래파도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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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빗장걸이가 걸릴 듯 걸리지 않았다. 휘청 이는 그를 밀고 들어가 잡치기를 시도 했으나, 이는 결국 그의 균형을 재정비하게 만드는 별 소득 없는 공격이 되고 말았다. 이후로 한참동안을 그도 나도 별다른 공격을 하지 못했다. 몸에 닿은 그의 근육들이 공격을 시도 하려는 듯 움찔할 때 마다, 나는 다만, 잔뜩 긴장한 채로 막아내려 안간힘 쓸 뿐이었다. 그러나 어느 때보다 느낌은 좋았다. 그토록 내 몸이 알아서 미세하게 반응한 적이 많지 않았었다. 그것은 그동안 지독했던 훈련의 성과이기도 했겠지만, 그렇게 날이 다듬어진 내 그날의 컨디션 또한 나무랄 데 없이 좋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때 나는 그를 미치도록 이겨보고 싶었다. 경기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올라와 본적 없는 결승이었고, 그는 내가 수없이 여러 번을 싸워 한 번도 이겨 본 적 없었던 철옹성 같은 현 장사였다. 이번 대회 들어 내가 많이 좋아졌다고 모두들 하나 같이 칭찬 하면서도 정작 내가 그를 이길 거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들은 많지가 않았었다. 그만큼 그는 확실하게 물이 올라 있었다. 다만 내겐 팀 관계자들의 혹시나 하는 기대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였을 거다. 감독님은 첫 작전으로 허를 찔러보자고 했다. 정면으로 부딪히는 씨름을 구사하는 내 평소 스타일상 예상하기 어려운 기습 공격을 생각해 보자고그래서 시도한 게 그를 들어 올리는 척 하다가 빗장걸이를 넣어 그의 균형을 우선 깨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와 돌이켜보면 그것은 참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나는 그에게 이미 수차례 무너졌고, 상황은 방심할 여지가 있을 수 없는 결승이었다. 현 장사라는 그 하나만 누르면 장사타이틀이 내 것이 되는이쯤 되면 누구라도 욕심을 내게 되어있다. 그럴 때 내가 가장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격은 역시 변칙내지 기습이다. 이건 누구라도 예상 가능한 것일 것이다. 안 그래도 네 수에서 다섯 수는 미리 짜놓고 들어왔음직한 경기에서 그가 그것을 예상 하지 않았을 리는 없을 것이다. 기습이 될 수 없는 기습. 그렇게 치졸한 작전으로 그를 이기려 들었다니. 감독님 입장에서야 뾰족한 수 없이 운에라도 기대를 걸어야 했기 때문에 그런 작전을 제안해 봤겠지만, 감독님이라고 모르셨을까? 이런 결과가 나오리란 걸. 내가 한 두수는 더 생각해 보았어야 했다. 경기를 장기전으로라도 끌고 갈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서로에게서 흐르는 땀이 서로의 몸을 미끈거리게 만들었다. 공격을 시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를 견디고 있는 것만도 힘에 겨워 왔다. 이 상황에서 마냥 시간에 기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것은 체력의 소진을 의미 했다. 그동안의 경기 스타일상 힘에 의존도가 그보다는 내게 컸었기 때문에 결국 그런 여건들은 뒤판으로 갈수록 내게 불리함을 안길 것이었다. 더군다나 내겐 그에 대한 심리적인 압박조차 적지 않았다. 지더라도 그 판에서 승부를 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승부를 걸어서 이기게 되면 좋은 것이고, 지게 되더라도 거기에 따른 도전심이 날 다시 이끌 것이었다. 하지만 그를 받아내는 것도 힘에 겨운 그 조건에서의 기술시도는 자살과도 같을 것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경험 많고, 그 경험 대부분을 승리로 매듭지었을 만큼 노련미도 갖춘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는 나의 성급한 공격을 노리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나는 경고를 각오 하더라도 경기장 밖으로 나가 판을 다시 시작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도 지쳐 있는 게 느껴졌기에, 전열을 가다듬은 뒤 온 힘을 다해 공격을 시도 하면, 이길 수도 있을 거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그가 먼저 경기장 바깥으로 발을 뺏다.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나가려는 그를 밀어내기는 하였지만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져 옴을 느낄 수 있었다. 어찌됐건 그가 경고를 받게 된 건 내게 틀림없는 이득이었지만, 그의 머릿속에 무슨 작전이 구상되고 있는지, 또 그 작전을 구사하기위해 경기를 어떤 식으로 풀어갈지에 대한 것을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대비책을 세우고 들자면, 내가 생각하는 작전들이 모조리 무용지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우선은 그가 생각하고 있는 공격을 막아내야 했다. 땀을 닦고, 다시 경기 준비를 하며 전광판을 보니 삼십초가 조금 넘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한번 그의 작전이 내 작전을 앞질러있다는 생각이 들자 그가 사정없이 커 보이기 시작했다. 늘 그에게 무릎 꿇게 될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던 이런 불안감. 그의 더 탱탱하게 조여 오는듯한 힘을 느끼며 다시 판이 시작 됐을 때 그러나 그는 의외로 아무런 공격이 없었다. ‘아차! 되치기를 노리고 있구나. 나를 좀 더 적극적으로 공격하게 하기 위해서 그가 미끼를 던지듯 경고를 받았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그렇다면 이 판에서 별다른 공격을 하지 않고 그냥 견디어 내는 것 자체가 내게는 이득이 될지도몸에서 열이 느껴졌다. 서로의 몸에 다시 땀이 배기 시작하고 나는 우선 지지만 말자 하는 쪽으로 생각을 선회하고 있었다. 의식적으로 왼 어깨 자세로 자세를 바꿔내었다.

 

첫판을 비기게 되었다. 그 후로도 한차례의 거센 진통을 겪어내고 나서였다. 무승부라는 아무것도 아닌 결과 하나를 얻기 위해 보낸 2분이란 시간이 족히 두 시간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지만 견디어 냈다는 뿌듯함은 분명 남았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나 팀에게나 표현하기 힘든 어떤 희망 같은 걸 갖게 했다. 기울어가는 팀의 운명을 짊어져야 하는 에이스로서의 소명도 그때서야 그에게서 나에게로 넘어 오는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팀을 나간 후 우리들은 절치부심했다. 모회사의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그것은 그에게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으나, 그가 팀을 나감으로 해서 남은 선수들은 새로운 팀으로의 재 창단에 커다란 걸림돌을 맞이한 채 표류해 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가 없는 팀엔 실질적인 에이스는 없다고 봐야 했다. 16강이나, 잘해야 8강을 전전하는 선수들 몇몇을 에이스로 내세워 새로운 팀을 모색한다는 건 안 그래도 가능성 희박했던 그 일의 진전을 아예 끊어 버릴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우선 그는 팀에 남았어야 했다. 아니, 적어도 그가 그렇게 일찍이 팀을 떠날 것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그가 팀을 떠난 후, 우리는 살기위해 강해져야 했다. 한 단계 이상의 기량 발전을 이뤄내 다가올 대회에서 그걸 증명해내는 길이 우리에게 열려진 유일한 가능성이었다. 어쩌면 그 길마저도 결국 불투명해 질지 모르는 것이었지만. 그해 동계훈련만큼 지독하게 훈련했던 경험이 내겐 없었다. 두 번을 까무러치고 세 번을 일어나는 동안 나는 누가보기에도 눈에 확 띄는 기량 발전을 이뤄 냈다. 대진 운만 따라준다면야 4강 정도는 기대 해 볼만 하지 않겠냐고 감독님은 예상했다. 시합 전 날 따로 불리어 간 감독실에서 팀의 명운은 이제 너에게 달려 있다고, 이번 시합 한 번 멋있게 불살라보자 말씀하시며 나의 어깨를 두드리시는 그 분의 손길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런 일은 처음 있는 것이었다. 불과 몇 개월 전 그가 팀을 나가기 전까지 난 이인자도 삼인자도 아닌, 컨디션이 괜찮을 때 가끔 한 번씩 기대해 볼만한 그저 그런 유망주에 불과 했으니까. 그러나 그 날 예선 32강을 첫 경기로 하여, 16강과, 8강을 넘어 4강까지의 경기를 치르는 동안 난 단 한판의 경기도 내주지 않았을 정도로 철저하게 강해져 있었다. 그날 난 부딪히는 모든 순간들에 날렵하게 대응해 나갔고, 그에 따라 매듭들은 모두 쉽게쉽게 풀리어 나갔다. 한판의 경기는커녕, 한 번의 위기상황조차 허락하지 않았을 정도로 그 날 나는 완벽했던 것이다. 그것이, 그 완벽해 보이는 컨디션이, 1818패의 완연한 열세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그를 이번만큼은 이겨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했을 것이다. , 지더라도 팽팽하게 맞서 볼 수는 있을 거라는그러나 이 18전 전패의 내 초라한 전적 중 14번이 팀 내에서의 연습경기였다는 게 문제였다. 그는 조금은 긴장이 풀려 있는 채로 치르던 경기들이었고, 나는 진지했다. 그리고 졌다. 그러나 졌다. 그렇게 졌고, 그러므로 졌다. 그리고 또졌다. 그야말로 추풍낙엽이었다. 나로서는 어떻게 해봐도 안 돼는 손써볼 도리가 없었던 경기들이었다. 그는 매번 나를 너무 잘 읽고 있었고, 나는 항상 그가 해독되지 않았다. 그 나날들이 내가 그 경기를 치러내는 동안 순간순간의 두려움으로 밀려들어오기도 했다.

 

두 번째 판이 시작되자 그가 다리샅바를 놓아 버렸다. 다시 장기전을 노리는 것 같았다. 첫째 판을 그냥 보낸 나의 의중이 어떤 것인지. 같은 작전의 연결선상에서 간파해보려는 것 같았다. 평소의 그 답지 않게 그가 너무 어렵게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내게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냥 그 상황을 부딪혀보는 것밖엔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래 어쩌면 이런 걸 노렸을지도 모른다. 내게서 선택권을 좁혀 놓으면서 좀 더 다양한 기술이 있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그런 의도인지도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도 여기서 수비만을 통해 그를 완전히 잠가버리든지, 그의 공격을 기다렸다 되받아치던 지를 할 수 있을 거였다.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져 왔다. 어쨌거나 유리한 건 두 군데의 샅바를 모두 잡고 있는 내 쪽일 것이었다. 순간 그가 파고들었다. 그를 제지하는 과정에서 나의 한쪽 손도 샅바에서 풀리었다. 그가 파고든 채로 격렬하게 밀어 붙였다. 실타래를 풀듯 내가 경기장을 돌며, 그의 파고드는 힘을 풀어냈다. 경기가 점점 격렬해 지는 동안, 온 신경이 여기서 균형을 잃어선 안 된다는 것에 미치고 있었다. 다시 땀이 나기 시작했다. 닿아있는 몸이 땀으로 인해 또 다시 끈적이기 시작했다. 숨이 거칠어 졌지만 이런 내 숨을 그에게 들키고 싶지가 않았다. 밀어내는 척 맞부딪치며 샅바를 전부 놓아버렸다. 경기가 끊겼다.

 

경기를 하다보면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파도 속에 대책도 없이 들어 앉아 있는 듯한 경우가 있다. 내가 도무지 무슨 기술을 어떻게 걸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경기가 휘말려 가는 듯한 경험.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접했던 씨름이 그랬다. 그때 무슨 이유로 그 시합을 하게 되었는지, 상대가 누구였는지 따위는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 기억에서 지워져 버렸으나, 처음 각인되었던 그런 느낌들은 그 후로도 꽤 오랜 동안 남더니, 결국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두 판의 경기를 했었고, 두 번의 거센 파도가 일었고, 경기가 끝났을 때 두 번을 모두 내가 상대 아이의 위에 있었다. 응원하던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다시 파도소리처럼 아득하게 포개져 왔다. 그런 느낌들 때문에 나는 씨름이 하고 싶어 졌다. 동네 아이들과의 씨름이 종종 해지고 나서까지 이어지곤 했던 그 때,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은 늘 아쉬웠다. 신으려던 신발속의 모래를 털어 낼 때, 그 속에서 쏟아지던 모래 알갱이들이 마치 하늘 위 맑은 별의 아가들 같아 보였다. 나는 그렇듯 모래판이 늘 신비로웠다.

 

두 번째 판을 결국 내줬다. 또 한 번의 파도가 밀어 닥쳤고, 이번에는 내가 아래에 있었다.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어지럽게 들렸다. 내 팔에 묻어 있는 별 가루를 쳐다보았다. 내 몸이 신성해 지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졌는데 왠지 모를 자신감이 일었다.

 

어머니는 붕어빵을 팔았다. 가슴이 뜨거워져야 비로소 태어나게 되는 물고기. 그러나 그 물고기는 차가운 세상을 유영하지 못했다. 철거반을 피해 세상의 구석구석을 떠돌아야 했던 물고기는 결국 사방이 막혀버린 막다른 웅덩이에서 출구를 헤매다 각혈했다. 어머니 몰래 붕어빵기계에 모래를 집어넣은 채 구워 본 적이 있다. 모래 한주먹이 따뜻해지고, 그 한주먹의 모래가 다른 모래들에 그 따뜻함을 전하면 씨름판이 따뜻해지고, 그 따뜻함이 돌아 올 거라 생각했다. 붕어빵을 구워야 하는 겨울은 매번 너무 추웠고, 나는 어서 빨리 따뜻해지고 싶었다. 따뜻해진 모래가 사막이 되어 더욱 막막해 진다는 걸 그때는 모르고물고기의 배를 가르듯 식은 붕어빵의 배를 가른 적도 있었다. 너무도 빨리 식어 버리는 가슴이 고장 난 걸지도 모른다 생각 했고, 어떻게든 그걸 고쳐놓고 싶었다. 단팥뿐인 내장은 매번 처참하게 다가왔다. 그게 처음부터 그렇다는 것을 모를 리야 없었지만, 늘 그 배를 가르는 동안은, 고칠 수 있는 가슴으로 변모해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기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고, 대신 장기의 고장은 어머니를 찾아 왔다. 어머니는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는 그리움을 먹는 걸로 풀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이는 지독한 허기를 음식으로 채운 것이다. 성장이 멈추고, 급격하게 살이 찌기 시작했다. 하지만 덩치가 커갈 수록 늘어가는 건 더욱 지독한 그리움의 허기였다. 더욱이 뚱뚱함은 인간관계의 단절을 가져 왔다. 모두들 나를 피했다. 단절은 또 다른 단절을 낳았다. 나 또한 스스로 그들을 피함으로, 끝내 커다란 벽 하나를 세우고 만 것이었다. 한동안을 세상에 응답하지 않고 지냈다.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었고, 필요 없는 존재였다. 문득 증발해 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많았다. 이른 아침이면 풀잎에 맺혔다. 이내 사라져버리는 이슬방울들처럼. 나는 버겁게 무거웠다.

 

내가 그를 들어 올렸다. 그가 고목나무속 매미처럼 힘을 쭉 늘이빼고 내게 달라붙었다. 그건 정석이었다. 들배지기에 대응하는 씨름기술의 정석. 들린 이는 들어 올린 이의 몸에 힘을 쭉 빼고 붙어, 들어 올린 이의 다음공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맘속으로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일상에서의 힘을 뺀다는 건 욕심을 버리는 것을 의미하겠지만, 씨름기술의 이 힘 빼기 속에는 오히려 가득 찬 욕망이 들어 있다.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힘을 뺀 몸 안에 욕망으로 바꾸어 숨겨 두는, 불욕을 넘어서는 욕망의 욕망. 그것이 들어 있는 것이다. 나의 주특기 기술은 바로 이런 욕망과 늘 맞부딪히게 될 수밖에 없는 들배지기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이런 상황을 염두 해 둔 채 운동을 할 수 밖에 없다. 내게는 이 고목나무속 매미 자세가 늘 너무나 비열하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늘 그런 비열함을 시원하게 내팽겨 쳐 버리는 걸 꿈꿔왔는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 없이 태어난 내게 남아 있는 혈육이란 병원에서 힘겹게 생에 매달리고 있던 치매 걸린 외할아버지뿐 이었다. 힘이 빠져 쇠약해진 목소리로 절절히 생을 갈구하는 외할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고목나무속 매미, 그 자세를 연상시켰다. 이리 돌려 치고, 저리 돌려 쳐도 내 팽겨 쳐 지지 않는모든 것에 너무도 쉬이 지쳐갔던 그때의 나로선 도저히 감당이 안됐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노망.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렇게 힘이 겨운 모습으로 참 지난한 세월을 견디고 또 견디었다. 나는 그만큼 숨이 찼다. 그렇다고 그 분이 내가 함부로 놓아버릴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놓을 수도 없고, 놓아지지도 않는, 할아버지는 늘 어려운 과제처럼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그즈음의 경기에까지 이어졌다. 나는 이겨야 하는가? 져야 하는가? 수없이도 누군가를 들어 올리며, 늘 나에게 하게 되는 질문이었다. 이긴다고 이기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때부터 항상 나를 괴롭히곤 했다. 많은 부분 나는 상대를 그냥 놓아버렸다. 그러다가 지게 되는 경기도 종종 있었다. 잘 매치지를 못하는 들배지기 선수. 이것은 학창시절 내내 나의 딜레마였다. 그 딜레마를 극복하게 된 건 수없이 반복된 연습과, 할아버지에서 시작되어 사람들을 향해 키워나갔던 나의 무관심 이었다.

 

나는 다시 상대방을 내려놓았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 질문이 다시 나를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내게 비수처럼 안다리를 걸어 왔다. 그 안다리를 견뎌내는 수초 동안에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이마에서부터 눈물이 나서 그의 등으로 떨어졌다. 경기는 다시 지루하게 흘러갔다. 한동안을 또 서로가 서로를 견뎌야 했다. 내게 시간이란 원래가 그렇게 지루하게 견디며가는 것이었기에 나는 익숙하게 참아 냈으나, 어머니는 그 시간의 막힌 어느 골목쯤에서 또 다시 지독한 각혈을 뱉어내고 있을 것이었다. 탈출구가 없을 그 미로 속은 얼마나 답답할까? 종종 모래판에 물결이 일고, 뜨거운 모래심장을 가진 붕어들이 그 물결 속을 노닐었다. 그 물결 속에 또 한사람의 모습이 어리었다. 그게, 사랑이었을까? 아직도 의문이 드는

 

내 심장은 어린 시절 내가 고쳐보려 했던 붕어빵의 그것처럼 손써볼 수 없는 걸로만 알았다. 뜨거워진다 해도 금방 식어버리는 걸로만 알았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진 그런 줄로만 알고 살아왔다. 사랑이란 게 쉬이 새어버리는 가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녀를 알게 된 후로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버거워 합숙 훈련장을 나와 버린 날이 며칠 있었다. 날씨마저 그 사람들만큼 쌀쌀했던 한 겨울 날이었다. 처음으로 씨름을 그만 둘 생각을 했다. 병원에서 쫓겨나 집에 하루 종일 누워있는 할아버지를 보고 있는 일이 막막해서 돈 벌이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씨름을 그만 둘 마음을 먹은 이상 사회에 적응해야 했다. 이런 저런 아르바이트자리에서 퇴자를 맞았다. 체격 때문이었다. 그러자 오기가 생겼다. 사람들과 정면으로 부딪혀 이겨내고 싶어 졌다. 물건 파는 일을 하게 되면 성격을 활발하게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생활정보지를 뒤졌다. 그래서 하게 된 일이 공예품 판매로 나와 있는 일이었다. 연말이었다. 연초를 앞두고 복조리를 판매하는 일. 상가나 가정집들을 방문하여, 개당 만원씩에 복조리를 파는 일은 정직한 일이 아니었다. 얼마 되지 않는 원가의 제품을 비싸게 파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복조리란 것 자체가 이미 도시에선 의미 퇴색 된 물건에 불과 했다. 그것을 파는 사람들의 태도도 문제였다. 우리가 파는 건 복이 아니었다. 온갖 언변으로 사람들을 현혹해 강매하듯 물건을 떠넘기는 일에 나는 곧 의욕을 잃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물주와 계약한 기간이 있었고, 매일 팔아내야 하는 물량이 있었다.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자신감을 잃어가면서 어느 정도 올리던 매출도 떨어졌다. 아르바이트생들의 매출을 총 합산해, 개당 얼마를 물주에게 떼어주고, N분의 1로 나누게 되어있는 급여 지급 방식에, 판매량이 떨어진다는 건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다. 매일 여러 명 아르바이트 생중 나와 그녀만이 표시 나게 판매량이 떨어져 갔다. 물주도, 동료 아르바이트생들도 우리에게 은근히 압력을 가해 왔다. 결국 우리 둘을 포함 한 세 명이 한조가 되어 판매에 나서게 된 날, 나머지 한명의 눈을 피해서 우리는 탈출을 감행 했다. 사위가 어두운 가운데 그녀나 나나 가진 돈이 얼마 되지 않았다. 개시를 하기 전이었고, 간단하게 챙겨 간 짐들마저 그나마 숙소로 잡아놓은 여관에 다 놓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근처 공원으로 가 우리는 그 날 밤을 지새우기로 했다.

춥지 않아요?”

 

……

 

이거라도 입을래요?”

 

그녀에게 내 겉옷을 벗어주면서 그녀도 나만큼이나 쉽지 않은 시간을 견뎌내고 있다는 걸 나는 분위기로 느낄 수 있었다. 따뜻하게 있을 곳, 아울러 잠시나마 눈 붙일만한 곳을 찾아야 했다. 바깥에서의 하룻밤을 여자인 그가 견뎌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우리들은 공원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군데군데 노숙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이 괜찮아 보이는 자리를 전부 차지하고 있어서인지 우리 두 사람이 발붙일 곳은 없어 보였다. 공원 한 구석, 두개의 벤치에 결국 우리 둘은 자리를 잡았다. 근처 편의점에서 컵라면 두 개를 구입하면서 이사 때문에 필요하다는 거짓말로 종이박스 두 개를 얻었다. 그녀의 자리에 그 두 개를 모두 깔아주고서, 사 온 컵라면으로 몸을 녹이고, 얼른 벤치위에 녹인 몸을 웅크렸다.

 

춥지 않니?”

 

견딜만하네요?”

 

괜히 미안하네.”

 

괜찮아요.”

 

여긴 바닥이 꽤 따듯하다. 종이 박스에도 체온이 있는 것 같아. 어린 시절 안아주던 엄마 품 속 같은

 

……

 

새벽녘에 잠시 짧은 대화가 이어졌으나, 이내 곧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기댈 곳 없는 밤은 길었고, 또 쌀쌀했으나, 그 긴 시간 중에서도 해가 뜨기 바로직전이 가장 어두웠고, 가장 추운 시간이었다. 나는 그때 비로소 말로만 들어왔던 그 시간을 실감하며, 우리들의 지금 시간도 해뜨기 바로 전이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어디로 갈 거예요?”

 

멀리. 아주

 

근처 지구대라도 가보실래요?”

아니

 

그녀가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으나, 그 웃음의 싸늘함으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녀도 나처럼 사람들에게 소외당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의 그런 웃음에 시나브로 정이 갔다.

 

세 번째 판을 다시 비겼다. 사람들의 야유소리가 들려 왔다. 그 야유를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정작 이기는 것보다 그때 내게 중요했던 것은 이기고 싶은 그 상대 앞에서 우선 지지 않고 견뎌내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해 뜨는 나머지 시간을 기다리는 것. 고통스러워도, 비록 삶이 그때의 그 경기처럼 재미없어 진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도 말이다. 나는 야유를 보내는 사람들을 향해 정면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 자자자자자! 아자!”

 

꼭 누군가를 향해 외치는 말은 아니었다. 재미없어진 경기에 대한, 삶에 대한 일종의 예의 같은 것이었다.

 

뒤집기에 재미를 붙였던 때가 있었다. 씨름 기술 중에 가장 화려하고 멋있는 기술. 그러나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허리의 유연성과 완성된 근력, 파고드는 집요함과 견뎌내는 끈기가 합해져야 비로소 완성되는 기술이 뒤집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뒤집기의 방어기술은 의외로 단순하다. 파고 들어오려는 상대를 처음부터 받아주질 않거나, 어느 정도 받아주다 그대로 눌러 버리는 것. 그렇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눌러대는 상대를 견뎌야 하는 끈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힘의 방향이 틀어지는 것도 문제다. 그리 됐다간 상대가 내 힘을 이용하게 된다. 힘들이지 않고 너무 쉽게 무너지는 기술도 바로 뒤집기이다. 그럴 때, 뒤집기는 씨름기술 중 가장 무모한 기술이 되기도 한다. 나는 상대에게 파고 들어가 그들을 하나하나 견뎌내고 싶었다. 무너지는 일이 부지기수였어도, 버텨 내는 것 자체를 내가 즐기게 된 건, 내 씨름에서나 인생에서나 가장 큰 하나의 성과였다. 내가 처음으로 뒤집기에 성공했던 날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의 죽음은 그래서 인지 그냥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졌다. 본격적으로 혼자가 된 삶. 그 날 뒤집어 진 채 열린 하늘에서 쏟아지던 햇살이 너무 눈에 부셔 조금 눈물을 흘렸을 뿐이었다. 외할아버지의 부고를 알기 전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훈련장으로 들어와 살았다. 잡히지 않는 무언가가 미워져서, 잡히지 않는 그 무언가를 쓰러트리려 운동에 매달렸다. 허나 그러면 그럴수록 무너지고 있는 내 자신도 너무 잘 보였다. 밤을 새워 운동장을 걷고, 뛰어도, 지치도록 연습상대들을 들었다 매쳐 봐도, 그림자처럼 좀체 떨어지지 않는 그 모습은 훈련 중 매고 뛰는 모래가마니보다 훨씬 더 큰 무게로 날 억누르기도 했다.

 

두 번을 비기고, 한번을 졌으니 이번 판을 내주거나 비기면 경기는 끝. 나는 배수의 진을 견디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의 안으로 파고들어 갔다. 결승에서의 뒤집기는, 더군다나 완숙한 기량의 그의 앞에서 뒤집기는 무모하리란 걸, 너무나도 무모 하리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뒤집기를 하려는 게 꼭 궁극적 목표인 것도 아니었다. 그 때 나는 나를 넘어서는 벅찬 상대, 벅찬 세상을 견디러 그의 안을 파고 들어갔던 거다. 나는 버티고 또 버텼다. 답답함이 밀려왔다. 숨을 못 쉴 것 같은눈물이 나왔다. 답답함이 서러움으로 변해 왔으므로. 그러나 나는 버텼다. 버티고 또 버티고내가 할 수 있는 건 집요하게 견뎌 주는 일. 나는 소싸움을 하는 소처럼 그저 묵묵히 그의 안을 밀고 들어갔다.

 

세상 안에 혼자서만 붕 뜬 느낌이 든다는, 그 발작이 끝나고 나면 그녀는 한참동안 깊은 잠에 빠졌다. 그녀의 입가에 발작의 흔적들을 슬며시 닦아주며 나는 그녀의 잠이 깰 때 까지 그저 바라보았다.

 

기억들이 어디론가 도망 가 버리는 거 같아.”

 

잠에서 깬 후에 그녀는 늘 버릇처럼 말 했다. 친근했던 기억들은 어느새 아득해지고, 멀찍했던 기억들은 다 사라져 버린다고. 나에 대한 기억들도 언젠가 그런 통로를 따라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까 두렵다고.

 

그녀가 내게 다시 찾아 온 건 그 날 아침 병원에서 헤어진 후 두 달쯤 지나서였다. 나는 돌아오자마자 다시 운동을 시작해 그것에 전념했고, 어느 날 문득 그녀가 학교 훈련장으로 나를 찾아 온 것이다.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몽땅 다 사라져 버리는 순간들이 있어. 악몽처럼 잔인하게 머릿속에 안개가 내리는 날, 그 안개를 모아 눈물로라도 쏟아 버리려 안간힘을 쓰지. 그런데악몽이 늘 그렇듯 그게 되지를 않아. 될 듯 될 듯 하면서도 그게 되지를 않는 거야. 울어도, 울어도 안개가 걷히지를 않아. 그럴 땐 견디기 힘들만큼 너무 무서워. 무서워 미치겠어.”

 

……

 

간질이란 병이 원래 그래. 이 병 때문에 모두들 나를 피하지. 사실 기억이 좀 사라지는 것 빼곤 아무것도 아닌데

그날도 그녀는 발작을 했다. 너무 놀라 119에 전화를 하고서, 무작정 구급대원을 기다렸다. 발작하는 그녀에게 어떻게 조치를 취해줘야 하는지 나는 아는 것이 없었다. 그저 옷의 갑갑한 부분을 풀어주고, 다치지 않도록 머리를 받혀 줬다. 그리곤 그녀의 차가워진 손을 꼭 잡아 줄 뿐이었다. 구급차가 도착하고, 보호자가 없는 그녀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보호자 되시지요? 혹시 애인? 처음 보신 것 같네요. 이러시는 거? 간질이 있으신 것 같아요. 이럴 땐 기도 만 확보해 주시고, 최대한 편안하게 해주시기만 하면 되요. 간질 환자들은 발작이 끝나고 나면 무조건 재우셔야 하거든요. 기도만 확보 된다면 발작 하시도록 그냥 놔두셔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의사는 의외로 냉담하게 얘기해 나갔다.

 

간질은 거의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병입니다. 완치가 되기도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다른 것을 신경 쓰실 건 없어요. 약만 잘 복용하시면 발작도 어느 정도는 제어가 가능합니다. 다만, 환자의 심리상태가 자주 불안정 할 테니 주변에서 그것을 파악하고, 맞춰주시는 게 중요 한 거 같네요. 전염성 같은 건 없으니까 외롭게 두지는 마세요. 환자들은 그걸 가장 힘들게 생각 하니까요.”

 

외롭게 두지는 말라는 말, 이 말은 어느덧 그녀와 나를 묶어버린 말이 되었다. 외롭게 두지 않기 위해 나는 계속해 그녀와 연락을 취했고, 그러다 우리 둘은 친해지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노력에도 그녀는 여전히 외로워했고, 그녀의 외로움은 또 다시 날 외롭게 만들었다. 외롭게 두지 말라는 말, 그것은 결국 실천하고 싶어도, 실천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나는 그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을 외롭게 둔 것이었다.

 

그의 체중이 나의 등위에 얹혀졌다. 그를 버티는 일이 점점 버거워 지기 시작 했다. 그가 그녀의 외로움처럼, 내가 외롭게 내 버려 둔 어머니와 외할아버지의 모습처럼. 그동안 외면하며 살아온 많은 사람들의 모습처럼. 나를 거세게 억누르고 있었다. 나는 더 견뎌야 했다. 거기서 무너지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그쯤에서 무너져버리면 그 사람들의 외로움이 더 힘겨워 지는 것이므로. 막상 내가 무너지는 일보다 어느새 그건 더 견딜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으므로. 그가 나를 밀쳐 내었고, 내가 그에게 밀려 나고 있었다. 그를 견뎌내는 내 걸음들의 흐름이 모래판에서 파도로 일었다. 파도는 어느새 갯벌의 느낌으로 바뀌어 갔다. 내 발목이 잠기었다. 내 무릎이 잠기었다. 허벅지가 잠기었다. 허리가 잠기었다. 그렇게 나는 늪 같은 갯벌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이제 곧 머리가 잠기어 버릴 태세였다. 그때, 잠기어 가는 내 발바닥을 툭 치고 빠르게 빠져나가는 물고기의 등지느러미가 느껴졌다. 발에 닿은 그것의 체온이 따뜻함을 넘어 뜨거웠다. ‘내가 빠져드는 여기가 뻘이나, 늪은 아니구나. 물고기의 헤엄이 이리 활발할 수 있는, 이런 곳이 늪일 리는 없어. 나도 저 물고기처럼 흐름을 타자. 흐름을 타고 헤쳐 나가자.’ 순간 내 몸이 흐름을 타고, 몸을 감싼 파도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 파도가 전혀 버겁지 않게 다가왔다. 내 몸이 파도 밖으로 솟구쳤다. 마치 그곳을 오래전부터 겪어 온 한 마리 거대한 고래처럼. 그것은 나의 실전 경기 사상 처음으로 성공한 뒤집기였다.

 

네 번째 판을 그렇게 이겼다. 역대 전적 상 그에게 뺏은 첫판이었다. 그나, 그의 벤치에서나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반면 우리벤치에선 감독님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계셨다. 나 자신도 믿기지 않는 승이었다. 관객들의 함성소리도, 감독님의 작전지시도 그냥 붕 뜬 느낌으로 다가 올 뿐이었다. 그때 나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쓰러져서 그녀처럼 발작해 버릴 것 같았다. 분명 생생하게 발밑으로 전해졌던 그 뜨거움, 절망 끝까지 가서 마침내 피어 난 환희의 기분이 금세 손에 잡히지도 않을 만큼 멀어져 버릴까봐 나는 두려워졌었다.

 

다섯 째 판의 준비를 위해 샅바를 잡을 때에도, 왼 무릎을 세우고 일어나 그를 다시 견디기 시작할 때에도, 나는 벗어 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정신적 공황이 찾아왔다. 그리곤 그 판을 싱겁게 졌다. 내가 그를 들어 올리려는 순간 그가 나에게 빗장걸이를 걸었다. 첫째 판에 내가 시도했다 실패한 기습공격이었다. 그가 다시 한 번 장사 타이틀을 차지한 것이다. 감독님이 손수 내 등을 두드려 주셨다.

 

오늘은 네가 이긴 거다.”

 

그녀의 발작이 나에게 기어이 찾아 온 듯, 모든 게 멀게만 느껴졌다. 마치 내가 그동안 애써 외면하며 지낸 내 삶 같았다. 그때의 무관심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나는 그 발작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 갔다.

 

 

 

 


 
  • profile
    korean 2018.04.30 22:54
    열심히 쓴 좋은 작품입니다.
    보다 더 열심히 정진하다보면
    틀림없이 좋은 결실을 맺으리라 믿어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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