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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이름








  명예로운 공무원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살아온 지 25년째 되는 해에 아빠는 퇴직을 하고 싶다고 말을 꺼냈다. 이유는 이제는 쉬고 싶다는 것이었다. 정말 이게 이유야? 이게 다야? 라는 표정으로 나는 고개를 들어 빤히 아빠를 올려다보았다. 다른 근사한 핑계거리라도 빨리 내뱉어달라는 표정으로 아빠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빠는 나에게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나의 눈은 아빠를, 아빠의 눈은 엄마를, 엄마의 눈은 텔레비전 속 배우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텔레비전을 응시하던 엄마가 드디어 입을 뗐다. 알아서 하세요. 한 마디 내 뱉고서 엄마는 다시 텔레비전 속 배우의 제스처를 눈에 담기에 바빴다. 아빠도 더 이상 엄마와 대화를 이어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아빠는 주방에서 물 한 잔을 마신 뒤 안방으로 걸어가 문을 닫았다. 잠을 자기에는 이른 저녁 시간이었지만 안방은 고요했다. 고요한 엄마, 아빠의 침묵이 나를 괴롭혔다. 그날 밤 엄마는 동네 아줌마들과 오랜만에 술 한 잔 한다는 말을 남기고 나갔다. 동이 틀 때쯤이 되어서야 엄마는 집에 돌아왔다.


  아빠의 왼쪽 다리에는 무릎 뼈가 튀어나오는 부분부터 정강이를 지나 복숭아 뼈까지 긴 대각선의 흉터가 있다. 집에서 운동복 반바지 차림으로 있는 소파에 누워있는 아빠를 보면 절로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의 흉한 상처였다. 살과 살이 짓이겨져 쭈글쭈글 거리는 채로 봉합이 되었었던 흔적과 무성한 다리털의 조화는 그다지 썩 좋지 못했다. 처음 다쳤었을 때는 장애판정까지 받을 뻔했다. 이렇게 멀쩡히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라고 주위 친척들은 입이 닳도록 말해주었다. 주변의 애정 어린 위로의 말에 늘 하늘이 도왔다며 입을 놀리던 아빠였다. 매일 밤 2시간 동안 손이 짓물러 터지도록 상처부위를 마사지하는 엄마의 노고를 아무도 모르는 게 분명했다.

  사고는 생각보다 순식간에 벌어졌었다. 아빠는 인천 시청 팀 소속 코치 겸 선수로 조기축구 생활을 했다. 일이 일찍 끝난 날에도 축구팀 회식이라고 자정을 넘겨 집에 돌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주말에도 새벽같이 일어나 운동 가방을 메고 나가기에 바쁜 아빠였다. 그렇게 내가 태어나고 자라는 동안을 아빠는 집 밖에서 여가를 즐기기에 바빴다. 그 날도 아빠는 전라도 연합 팀과 친선 경기가 있다며 전주를 내려갔었다. 이른 아침 화장실에 아빠의 칫솔과 면도기가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는 것을 치웠다. 또 공 차러 갔나보네.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늘 있던 화장실 풍경이기에 놀랍지도 않았다.


  담임선생님께 야자시간에 인터넷 강의를 보고 공부하겠다는 이유로 핸드폰을 빼왔었다. 한창 영어 수능특강 강의를 보던 중, 카톡 알림이 하나 떴다.

  ‘오늘 못 데리러 가’

  ‘오늘은 할아버지가 가실거야. 할아버지 차 타고 집 가’

  엄마였다. 학교가 집에서 40분 거리라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늘 학교로 차를 끌고 데리러 오던 그런 엄마였다. 엄마가 데리러 오지 못한 다는 말은 집에 무슨 일이 생겼구나를 예상케 했다. 불안한 마음에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기도했다. 3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10시. 야자가 끝난 후, 운동장에 즐비해 있는 수많은 차들 중 할아버지의 택시를 찾는 건 쉬운 일이었다. 나는 할아버지 택시의 조수석 문을 벌컥 열고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기도 전에 할아버지께 여쭈었다.

  “엄마 무슨 일 있어?”

  “오늘 집에 현빈이 밖에 없을겨. 잘 챙겨주고 일찌감치 자.”

  “왜? 엄마는?”

  “느이 아빠 수술 했어 오늘. 느 엄마가 병원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현빈이 잘 챙겨서 학교 보내 내일.”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알 것만 같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빠구나. 놀러 나간 사람이 왜 수술을 하게 되었는지, 어디가 어떻게 다친 것인지 단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아빠는 나에게 나를 낳아준 부모라는 타이틀 외에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술과 담배, 축구에 빠져 살아 만날 엄마를 괴롭히던 모습밖에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래서 안쓰럽지도 눈물이 나지도 않았다. 다친 상대가 오히려 엄마, 할머니, 할아버지, 동생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집에 도착하니 곤히 자고 있는 동생의 코골이 소리만이 나를 맞이했다. 동생의 방문을 닫아주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목소리는 많이 가라앉아 있었고 끝말이 흐려 잘 들리지가 않았다. 엄마 목소리만으로도 오늘 하루 얼마나 고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엄마 말로는 상대 팀 선수가 아빠 다리를 걷어찼다고 했다. 상대방 선수는 공을 뺏으려고 하다가 어쩌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차게 됐다고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했다고 한다. 죄송하다는 말로 끝날 일이냐고 실수로 사람 다리 하나 병신 만드는 게 말로 되는 일이냐며 엄마는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생각해도 사람에게 걷어차인 다리 치고는 심하게 다쳤다. 근육, 인대 파열에 뼈까지 부러져 조만간 철심도 박아야 한다며 한숨을 쉬며 엄마는 말했다. 이제 다시는 공 잡지 않겠지. 글쎄. 나는 확신 없는 말을 건넸다. 앞으로 제대로 걸을 수나 있을는지 모르겠다며 걱정 하는 엄마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내일 학교 가야한다고 이만 자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엄마는 다친 아빠를 걱정했고 나는 그런 엄마를 걱정했다.


  세달 간을 아빠는 엄마 없이 아무런 생활도 하지 못했다. 그 쉬운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엄마의 부축 없이는 갈 수가 없었다. 퇴원을 하고 집에서의 생활도 병원생활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씻기고 면도해주고 옷 갈아 입혀주고 밥 해 먹이고, 동생과 내가 엄마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였다. 우리의 위치에서 우리의 생활을 잘 해내자. 엄마의 손이 가지 않게끔 생활하자. 나와 동생은 서로가 서로를 챙기며 바쁜 생활을 억지로 맞춰 보냈다. 그 동안 엄마는 아빠의 다리를 꺾고 주무르기에 정신없었다. 요란한 자세로 아빠의 다리를 꺾고 찜질하는 걸 보면 집에 물리치료사가 와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장애 판정을 받지 않고 다시 예전처럼 멀쩡히 걸을 수만 있게라도 만들기 위해 엄마는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했다.

  “장애 판정 받으면 돈 나오잖아.”

  나의 한 마디에 엄마는 그렇지 않아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나를 쳐다봤다.

  “아빠 앞에서 그런 말 꺼내지도 마.”

  엄마의 힘 있는 단호한 말 한 마디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잊어버렸고 잃어버렸다.

  “내일 몇 시에 집에 와?”

  “독서실 갔다가 점심 먹으러 1시에는 할머니네 집 가려고. 왜?”

  “엄마가 내일 할머니네 못가니까 너라도 좀 빨리 가라고.”

  “알았어. 알아서할게. 나 바쁘다 끊는다.”

  아빠의 다리가 거의 나아가자 엄마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구내의 어린이 도서관 사서 선생님으로 다시 복귀했다. 일을 거의 2년 만에 다시 손에 잡자 엄마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아빠도 다시 출근하기 시작했다. 비장애인처럼 아직 완벽하게 걸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유심히 보지 않으면 왼쪽 다리를 저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 집은 마냥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다시 예전처럼 흘러갔다. 매일같이 가던 옆 아파트 할머니네 집도 바빠진 엄마 대신 나랑 동생이 갔다. 엄마는 무남독녀로 형제 하나 없이 혼자 귀하게 큰 외동딸 이었다. 그래서 형제가 일곱이나 되는 아빠와는 달리 유독 할머니, 할아버지를 향한 집착이 컸다. 우리 집이 할머니네 아파트 옆으로 이사 오게 된 것도 다 엄마의 확고한 고집 때문이었다. 나와 동생은 엄마의 의견을 존중했다. 나였어도 그런 선택을 했었을 것 같으니까.


  점심때가 되자 역시나 집중이 안 되기 시작했다. 꼼지락 꼼지락 지우개 똥으로 손장난을 치다 하품 한 번 하고는 스탠드 불을 껐다. 독서실에서 나와 할머니네 아파트를 향해 걸었다. 할머니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자 레카차 한 대가 급하게 할머니네 아파트 동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뭐지 싶은 마음에 발걸음을 놀려 빨리 할머니네 아파트 동으로 뛰어갔다. 104동. 검은색 페인트로 칠해 놓은 지 얼마 안 된 듯한 커다란 숫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경비실 모퉁이를 돌아 딱 할머니네 아파트 동 입구를 보는 순간 아차 싶었다. 아까 전 달려가던 레카차가 주차장에 주차되어있었고 아파트 주민들은 벌떼 같이 모여 아파트 입구를 에워싸고 있었다.

  “할머니 뭐해?”

  “……”

  아파트 앞 벤치에 서서 팔짱을 끼고 가만히 서있는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지만 할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할머니는 그저 앞을 바라보고만 서 있었을 뿐 아무런 행동도 말도 하지 않으셨다. 할머니의 눈을 따라 나도 고개를 들었다. 처참했다. 너무 처참해서 나 또한 아무런 행동도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초록색 등을 단 개인 택시 한 대가 아파트 1층과 지하실 사이 틈에 우악스럽게 박혀 있었다. 바꾼 지 얼마 안 된 할아버지 쏘나타와 똑같은 차였다. 설마. 심장이 덜컹하고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지만 아니겠지 라는 마음으로 처참한 사고 현장을 향해 다가갔다. 차의 본네트는 억지로 끼워 맞춰진 듯 찌그러져 지하실 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30바 7307. 할아버지 차였다. 나는 최대한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벌 떼 같은 사람들 틈을 헤집고 할아버지를 찾으러 뛰었다.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다 뛰쳐나온 것인지. 아파트의 웬만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다 모여 있어 할아버지를 찾기란 어려웠다. 그때였다. 홀로 바들바들 떨고 있던 덩치 큰 우리 할아버지가 눈에 띄었다. 일흔 넷이라는 나이에 맞지 않게 키가 컸고 배가 나온 할아버지가 오늘은 너무 왜소해보였다.

  “몸은?”

  나의 물음에 할아버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할아버지 손에는 레카차 회사에서 나눠주는 찌라시가 들려있었다. 이 와중에 할아버지가 직접 전화 해 불렀구나. 덜덜 떨리는 할아버지를 옆에 둔 채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엄마 할아버지 사고 났어. 어디 다치신 건 아닌데 엄마가 와야 할 것 같아.”

  “뭔데 무슨 일인데? 할아버지 바꿔봐.”

  “아니. 할아버지 놀라서 전화 안 될 것 같아. 일단 와.”

  엄마는 15분 만에 택시를 타고 도착했다. 엄마도 처참한 사고 현장을 보자마자 할머니와 할아버지부터 찾기 시작했다. 엄마는 자동차 보험사에 전화 하며 나에게 카드를 쥐어주었다. 청심환 사오라는 엄마의 말에 아파트상가 슈퍼로 뛰어갔다. 그 날 엄마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정형외과를 갔다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갔다가 보험사 직원을 만나고 다시 도서관에 돌아가지 못했다. 나는 동생과 묵묵히 할머니 옆을 지킬 뿐이었다.

  할아버지는 한 달 택시 일을 쉬었다. 나도 주말에는 독서실을 때려 치고 할머니네 집에 같이 있었다. 노인 두 분이 계시기에는 당분간 안 좋을 것 같다고 할머니, 할아버지 옆에 꼭 붙어 있으라는 엄마의 당부 때문이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삼촌도 주말만 되면 소고기며 돼지고기며 홍어며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이란 음식은 다 사들고 놀러왔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며 떠들다 보면 놀란 노인 두 분의 마음과 몸이 조금이나마 괜찮아 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었다. 그런 마음에 아빠를 뺀 우리 가족 모두는 할머니, 할아버지 곁을 지켰다. 아빠는 그나마 나아가는 왼쪽 다리를 이끌고 다시 잔디 밭 구경 가기 바빴으니까. 아빠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할머니 네에 아빠가 오지 않는 게 훨씬 편했다. 나를 낳아준 부모고 가족이었지만 그건 그저 그런 타이틀에 지나지 못했다.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라고 치부해버리는 모양이었다. 엄마의 손이 물러터지도록 손가락 뼈 마디마디가 울퉁불퉁 튀어나오도록 주무른 다리로 다시금 공을 차는 아빠를 보며 엄마는 아무 말을 내뱉지 않았다. 걸어서 4분 거리 외갓집에 오지 않는 아빠는 45분 경기를 뛸 때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런 아빠를 보는 엄마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할아버지가 다시 일을 시작하실 수 있었을 때 쯤 엄마도 다시 활력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엄마의 웃음이 좋아서 엄마가 건네는 농담이 보기 좋아서 나는 야자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조잘조잘 하루 있었던 일들을 과장해서 풀어내기 바빴다. 나의 그런 모습에 덩달아 맞장구 쳐주는 엄마였다. 좋아하는 남자 선생님 이야기, 급식 줄 두 번 서서 밥 두 번 받아 먹은 이야기, 급식에 피자가 나온 이야기, 매점에서 녹차마루를 하루에 세 번이나 먹은 이야기. 정말 시시하기에 짝이 없는 이야기들의 나열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눌 때마저도 엄마는 귀 기울이며 내 말을 듣고 농담을 던졌다.

  “그래서 변주일 선생님이 너 좋다고 하시디?”

  “그치~ 그 샘이 나한테 생일 편지도 써줬었잖아.”

  “엄마가 한 번 학부모 상담 가봐야겠네 이거. 내 딸은 안돼! 이러면서 난리 한 번 쳐줘?”

  “아 진짜 뭐라는 거야 엄마. 주책이여 주책!”

  남이 들으면 웃을 일이 이렇게나 없나 싶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나랑 있는 동안은 엄마나 아내, 딸이 아닌 그냥 안경아 모습 그대로였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마치 어렸을 적부터 보고 자란 친구처럼 하루의 일상을 나누기만 해도 웃음이 터지는 그런 친구 같은 모녀가 되길 내심 바랐다.


  가방 지퍼를 내리고 손을 넣어 뒤적였다. 엄마에게 회색빛의 갱지 안내장 하나를 들이 밀었다. 숭덕 예지관 안내. 이게 무엇이냐는 눈으로 엄마는 나를 바라보았다.

  “예지관 한다고 하더라. 다음 주 금요일에.”

  ‘학생들의 인성과 효를 기르기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명목 하에 학교는 예지관이라는 수업을 진행했었다. 하루 종일 수업을 하지 않고 다과 체험, 한복 체험, 진로 강연 등을 들으며 하루를 학교에서 보내는 활동이었다. 먼저 예지관 활동을 한 다른 반 친구들은 다들 예지관의 하이라이트는 부모님 앞에서 편지 읽기라고 입이 닳도록 말했다. 편지의 앞부분만 읽으면 애고 부모고 대성통곡을 하게 된다고 난리들이었다.

  “엄마 아빠 둘 다 오래.”

  내 말에 엄마는 흠칫 놀란 듯 보였다.

  “엄마만 갈 걸 알면서 너는 왜 얘기하니?”

  엄마의 말에 나는 일관된 침묵으로 응했다.

  엄마만 오는 것을 알면서도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편지는 두 개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는 엄마, 또 다른 하나는 아빠. 친구들에게 물으니 나 말고도 엄마만 오시는 아이들이 많았다. 다른 집도 다 우리 집 같구나. 하는 마음에 내심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반 친구들 부모님 앞에서 장기자랑을 한답시고 조 별로 나누어 춤과 음악도 준비했다. 다들 입으로는 이걸 왜하고 앉아 있냐는 푸념을 늘어놓기 바빴지만 막상 부모님 앞에서 보여드린다는 마음에 노래를 틀면 한 없이 열심인 아이들이었다. 그렇게 매 쉬는 시간, 점심시간, 석식 시간을 짬 내서 연습하기를 일주일. 갈고 닦은 실력을 보여 줄 예지관 날이 다가왔다.


  대망의 예지관 날, 석식을 먹고 난 후 편지쓰기 시간이 되었다. 다들 가지각색 편한 자세로 방에 누워 편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훌쩍 거리는 아이들이 하나 둘 나왔다. 끽해봐야 편지 하나 쓰면서 뭘 그렇게 눈물들이 많을까. 다들 이십년도 안 되는 인생 살면서 얼마나 부모한테 못할 짓들을 많이 저질렀길래 저럴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펜을 잡고 곰곰이 생각했다. 무슨 말을 적을까.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수 없는 생각 끝에 펜을 들고 편지지를 채워 내려갔다. 그렇게 편지지를 다 채워갈 때 쯤 예지관 건물도 조금씩 시끄러워졌다. 부모님들이 도착하시기 시작한 듯 보였다. 담임선생님과 목사님은 부모님들을 앞에 의자 자리로 안내하셨다. 준비된 의자가 거의 들어찼을 때 쯤 1조부터 앞으로 나가 준비한 장기자랑들을 뽐내었다. 80년대, 90년대의 갖은 춤과 노래들로 분위기는 점점 달아올랐다.

  “아 아 학부모님들 이렇게 뜻 깊은 예지관 행사에 참석 해주셔서 굉장히 감사합니다. 이제 예지관의 꽃이라고 볼 수 있는 편지읽기 시간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부모님들 다 편지 준비해오셨죠? 우리 아이들이 나와서 부모님께 먼저 편지를 읽어드리면 그에 대한 답장으로 부모님들도 읽어주시면 됩니다. 자 우리 1번 다은이부터 나오자.”

  학번 순서대로 차례차례 아이들이 나가서 마이크를 잡고 편지를 읽었다. 13번인 나는 아직 시간이 좀 있었기에 앞 순서 아이들의 편지를 조용히 들었다. 말을 하다말고 감정이 북받쳐 올라 우는 아이, 사랑하는 엄마께를 듣자마자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 아빠 미안해를 듣자마자 얼굴과 귀까지 새빨개지는 아버지, 억지로 울음을 참고 있는 담임선생님. 정말 끝없는 눈물의 향연이었다. 앞에 앉은 12번 친구가 일어나서 마이크를 잡았다. 마이크를 잡은 친구의 손이 덜덜 떨렸다. 편지를 한자 한자 읽어 내려갈 때마다 떨리는 것이 마이크를 잡은 손인지, 친구의 목소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다음은 13번 혜영!”

  나를 부르는 목사님의 목소리에 일어나 앞으로 걸어갔다. 주섬주섬 준비해 온 편지 두 통을 꺼냈다. 한 통만 손에 들고 나머지 한 통은 다시 체육복 후드 주머니에 우겨넣었다. 내가 앞에 서자 엄마도 뒤따라 나와 내 옆에 섰다. 목사님이 손에 쥐어 준 마이크를 들고 천천히 편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엄마 안녕. 딸 혜영이야. 엄마한테 처음 편지를 써 보는 것 같네. 편지에는 상대방한테 말하고 싶었지만 평소에는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담는 거라고 하더라. 그래서 나도 엄마한테 말하고 싶었지만 여태껏 말 하지 못했었던 것들을 써보려고 해. 엄마 만약에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에는 아빠 만나지마. 엄마가 하고 싶은 것들 하면서 살아. 무남독녀 귀하게 자란 딸로 누릴 거 다 누리면서 살아. 내 엄마가 아니라, 아빠 아내가 아니라 안경아로 살아. 나는 그랬으면 좋겠어 엄마가. 집 안의 크고 작은 모든 일에 끼어들 수밖에 없는 엄마가 싫어. 엄마라는 아내라는 타이틀로 살아가는 엄마도 싫어. 엄마도 꾸미고 싶고 먹고 싶고 놀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 투성이잖아. 항상 엄마가 원하는 것들을 뒷전으로 미뤄두고 사는 것도 싫어. 그러니까 다음 생에서는 내 엄마가 아니라 한 명의 여자로 살아줘. 엄마를 못 만나는 거는 조금 슬플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나는 괜찮아. 이번 생에 엄마를 만났으니까 이걸로 만족해. 그러니까 다음 생이 있다면 아빠 만나지 마. 아니면 엄마 좋다고 처녀 시절에 따라다니던 차있고 집 있는 그런 남자 만나서 행복하게 누리고 살아. 제발 행복을 누리고 살아 누리게끔 옆에서 도와주지 말고. 엄마가 늘 나한테 말했었지. 엄마는 괜찮다고. 그런데 내가 볼 때에는 왜 엄마가 괜찮아 보이지 않은 걸까? 내일 아침밥을 위해 밥솥에 애매하게 남은 밥을 덜어놓고 새로운 밥을 안칠 때, 그 남은 밥은 왜 항상 엄마 몫이 되는 걸까. 엄마 앞머리에 희끗 희끗한 흰머리는 날로 갈수록 늘어 가는데. 엄마는 왜 화장실에서 아빠의 머리를 염색해주고 있는 걸까.”

  

  담담히 편지를 읽어 내려가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 받쳐 올랐다. 왜 친구들이 눈물을 보이는지 이해가 갈법했다. 부모 앞에서 내 마음을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기란 생각보다 어려웠다. 편지의 마지막을 읽을 때 쯤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있었다. 만약 누가 툭 건들기만 해도 주르륵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일제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찌어찌해서 편지를 다 읽고서 멋쩍은 웃음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엄마도 많은 생각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목사님의 주도 하에 내 손에 있던 마이크는 엄마에게로 넘어갔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엄마도 막상 많은 사람들 앞에서 편지를 읽으려니 떨리는 듯해 보였다. 엄마도 가방에서 편지 한 통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나의 딸래미 혜영이에게. 1998년 10월 2일 나에게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해준 혜영이가 어느새 커서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어느덧 3학년의 시작을 앞두고 있네. 중학교까지는 그래도 쉬엄쉬엄 공부하며 지냈었는데. 매일 반복되는 야간 자율 학습에 학교 공부에 시달리며 잠이 부족해서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 할 때마다, 그런 너를 깨우는 엄마의 마음도 너무나 힘이 든단다. 아침 일찍 일어나 등교하는 모습을 매일 창문을 열고 네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있는 거 너는 모르지? 오늘도 혜영이가 행복한 하루되게 만족스러운 하루 되게 학교생활 열심히 해달라고 속으로 기도하며 등굣길을 내려다보고 있었어. 많은 이야기를 글로 쓰려니 또 너무 오랜만에 편지를 써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 말 만큼은 엄마가 꼭 해주고 싶었어. 우리 딸은 진짜 좋은 사람 만났으면 해.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사랑하는 게 무엇인지 알았으면 해. 엄마는 그거를 너무 늦게 알았나봐. 우리 딸이 아직 이런 감정이 무엇인지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인가? 그래도 엄마는 알려주고 싶었어. 언제 한 번 이렇게 진지하게 혜영이에게 말 해보겠어? 그렇지? 엄마는 텔레비전 속에서나 영화 속에서 보여 지는 사랑이 사랑의 정답이고 표본인지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비가 오면 우산 하나로만 나누어 쓰고 그러는 것만이 사랑인줄 알았어 엄마는. 내 어깨가 좀 더 젖든 상대방 어깨가 조금 더 젖었었든. 그 때는 그것만이 사랑인 줄 알았는데. 때로는 각자 우산을 쓰고 물웅덩이를 조심하라며 웃고 얘기하며 걷는 것도 사랑이더라.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 상대방에게 오늘은 쉴까? 라고 물었어야 했던 것도 사랑이더라. 우리 혜영이가 아직 이 말을 이해하려면 더욱 시간이 필요하겠지? 나중에라도 엄마가 했던 말들 되새겨 보았으면 좋겠다. 엄마는 우리 딸은 좋은 사랑을 해보고 성숙하게 자랐으면 하거든. 엄마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우리 혜영이는 꼭 그런 좋은 사람, 좋은 사랑 만나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는 애써 울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엄마가 한 글자 한 글자 편지를 쓸 때 무슨 감정이었을까. 무슨 마음으로 적어 내려갔을까. 18년 동안 엄마를 짓누르던 그 무언가가 나에게도 와 닿는 것만 같았다.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알았다. 엄마가 평생을 안고 살아 온 짐이 무엇인지를. 엄마를 짓눌러온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나에게도 전해졌다. 나는 그런 엄마가 한 없이 불쌍했다.


  예지관이 끝난 뒤 엄마와 학교 앞 치킨 집에서 닭강정 대자를 하나 포장했다. 무식할 정도로 크게 박혀있는 ‘지도리’라는 치킨 상호명 글자에 닭강정 소스가 흘러내렸다. 치킨 포장을 들고 차에서 내려 아파트 현관문에 다다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닭강정 냄새가 진동을 했다. 배고파 죽겠다는 얼굴로 엄마를 올려다보니 엄마도 빨리 가서 먹자라는 얼굴로 화답했다. 띠리리릭- 현관문을 열어젖히자 귀가 아플 정도의 텔레비전 소리가 들려왔다. K리그. 케이블 방송에서 해주는 K리그였다. 축구 중계를 하는 해설가와 중계자의 목소리는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러웠다. 거실 소파에 팔을 괴고 누워 축구를 보고 있는 아빠를 보고 있자니 화가 치밀어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는 일상이라는 듯 치킨 상자를 주방 식탁 위에 내려놓고 안방으로 들어가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

  “오늘 아빠는 왜 안 왔어?”

  나의 한 마디에 아빠가 조금의 동요라도 있길 바랐다. 그러나 바람은 바람일 뿐 아빠는 너무나 태연하게 입을 뗐다.

  “그런데는 원래 엄마만 가는 거야.”

  이게 무슨 구시대적인 발상이야 라는 생각에 손이 부들거렸다. 그 잘난 나랏일이 바빠 못 오는 거였다면 억지로라도 이해를 하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집에서 빈둥거리고 앉아 있을 줄 알았다면 아빠가 바빠서 못 오신다는 말은 꺼내지도 말걸. 쓸데없는 고민과 하릴없는 말의 연속이었다.

  “왜 예지관이 엄마만 오는 거야? 원래 아빠도 같이 오는 거였어. 부모님 오시는 거였으니까. 아빠는 내 부모가 아니야? 왜 엄마만 모든 걸 다 해?”

  고분고분 말 잘 듣고 바르게 큰 장녀의 부모를 향한 첫 모진 말이었다.

  “혜영아 들어가 방에.”

  엄마의 단호한 목소리였다. 엄마만큼은 내 편을 들어주겠거니 싶었는데 엄마마저 나에게 도리어 화를 내다니. 서러움에 북받쳐 방에 들어가 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았다. 거실에서 아빠의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가 잘 났으면 뭐가 그렇게 잘 났다고 저래. 아빠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혜영 아빠 그만 좀 하지 애한테? 당신이 가정에 관심 없는 건 알겠는데. 애한테 까지는 그러지 말지 좀?”

  처음으로 본 날 선 엄마의 말이었다. 아빠도 마냥 벙 찐 듯 아무 말이 없었다. 엄마의 한 마디에 모든 상황은 종료된 듯 해 보였다. 나는 체육복 후드 집업과 교복만 벗어 놓고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더 이상의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졸리고 피곤해서 눈이 저절로 감겼지만 눈을 감으면 바로 잠에 들지 못 했다. 마냥 수 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기에 바빴다. 그렇게 밤새를 뒤척이기에 정신없었다. 다음 날 아침 주말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오전 중에 눈이 떠졌다. 깊게 잠을 못자 피곤하기도 할 텐데 웃기게도 잠을 더 자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아빠와 아빠의 운동 가방 둘 다 없었다. 뻔하지 뭐. 사람이 하루아침에 달라지면 그게 사람이겠어. 짜증 뒤섞인 말로 중얼거렸다.


  엄마는 일찌감치 할머니네로 넘어간 듯 보였다. 동생 방문이 닫혀있는 걸 보니 동생은 아직 자는 듯 했다. 소파에 앉아 이 채널 저 채널 볼만한 예능 프로그램 없나 보고 있다가 문득 어젯밤 사온 닭강정이 생각났다. 부리나케 주방으로 달려가 보니 어제 엄마가 식탁에 내려놓은 그대로 있었다. ‘지도리’라는 글자 위 닭강정 소스가 흘러내려 말라있었다. 비닐봉투를 열어 치킨 상자를 열어보니 하룻밤 사이에 닭은 딱딱하게 식어있었다. 식은 닭을 먹느니 그냥 안 먹고 말지. 다시 닭을 호일로 덮어 놓고 방에 들어갔다. 어제 아무렇게나 벗어둔 체육복과 교복이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었다. 하나하나 털고 다시 옷걸이에 걸어 장롱 속에 넣어두는데 체육복 후드 주머니가 불룩했다. 뭐지라는 마음에 주머니에 손을 넣어 확인했다. 아. 편지였다. 꾸겨질 대로 꾸겨진 편지 하나가 날 반겼다. 아빠에게 이후로 한 마디도 쓰지 못한 편지였다. 편지지의 여백이 내 마음을 대신 나타내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다시 편지를 아무렇게나 접어 책꽂이들 사이에 집어넣어 놓았다.

  엄마는 동네 아줌마들과 거하게 한 잔하고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온 듯 했다. 새벽녘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잠에서 깼다. 냉장고에서 엄마가 얼음을 꺼내는 소리가 들렸다. 오도독 오도독. 아마 엄마가 얼음을 깨 먹는 거겠지. 다시 고요해진 밖의 소리에 이제는 엄마가 자나 싶었다. 고요해진 틈을 타 나도 다시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눈을 감은지 얼마나 지났을까. 엄마의 구토소리에 다시금 눈을 떴다. 손을 더듬어 옆에 있던 머리끈으로 머리를 질끈 묶고 방문을 열고 나갔다.

  “엄마 등 두드려 줄까?”

  욕실의 변기를 잡고 쭈그려 있는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코를 찌르는 듯한 술 냄새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옷도 채 다 갈아입지 못하고 인사불성으로 변기를 부여잡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하고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의 등을 두들기고 엄마는 토를 하고. 소란스러웠는지 동생도 방문을 열고 나왔다. 엄마는 들어가 자라며 괜찮다는 손짓을 보였다. 동생이 주방으로 가 비닐봉투에 휴지를 넣어두고 욕실 앞에다가 두었다. 나는 도자기 컵에 꿀을 한 스푼 넣고 뜨거운 물을 타 비닐봉투 옆에다가 두었다. 꽤나 소란스러운 새벽이었다. 아빠를 제외한 우리 가족에게는 꽤나 정신없는 새벽이었다. 동생은 조용히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나도 얼른 가서 더 자라는 엄마의 손짓과 말에 방으로 돌아왔다. 방문을 조용히 닫고 나니 어째 잠이 다 깨서 침대에 누워도 다시 잠에 들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 침대에 누워 이리저리 뒤척이기만을 수 없이 반복했다. 이제 엄마의 구토소리도 나지 않는 거를 보니 아마 엄마도 자는 것 같았다. 마음 아픈 하루의 시작이었다. 내 방 창문 밖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빛을 내뿜었다. 세상이 가라앉은 듯 푸르스름한 새벽녘의 고요가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성명 : 박민지

이메일 : wlalsqkr981002@naver.com

H.P : 010 - 4225 - 6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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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rean 2019.03.02 10:34
    열심히 쓰셨습니다.
    보다 더 열심히 정진하신다면 좋은 작품을 쓰실 수 있을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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