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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7 07:34

[단편소설] 쌍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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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쌍둥이

 

- 은유시인 -

 

 

 

kyc_20140717_04.jpg




 

 


1

 


  3일간의 지방 출장을 끝내고 땅거미가 가뭇할 무렵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로 차를 몰고 들어서려는 순간, 송병태는 아내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뭐라고? 형이 죽었다고?”
  “네.”
  “전화기 감이 안 좋아서 그런지 잘 안 들려. 다시 크게 말해 봐!”
  “좀 전에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었는데, 시아주버니가…… 물에 빠져 돌아가셨대요.”
  쌍둥이 형 병진의 사망 소식은 갑자기 뒤통수를 둔기로 맞은 듯 휘청거리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형의 갑작스런 죽음이 그에게 당장 슬픈 감정이나 반대로 후련하다는 감정을 유발시킨 것은 아니다. 비록 드러내 놓지는 못했어도 언젠가는 닥치고 말 것이란 형의 죽음에 대한 예견은 늘 한 가닥의 질긴 끈처럼 상념의 타래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 흠……. 알았어. 그렇잖아도 지금 막 집 앞에 도착했어. 내 곧 들어 갈께.”
  아내는 그가 현관에 들어서자 가방부터 받아들었다. 그리고 ‘아빠다, 아빠야!’라며 매달리는 예닐곱 된 고만한 딸애들을 떼어놓고는 ‘아빠한테 인사했음, 이제 이 닦고 잠 잘 준비해야지?’라고 타이른 뒤 욕실로 몰아넣었다.
  그는 웃옷을 벗어 아내에게 건네고 넥타이를 풀면서 소파에 엉덩방아 찧듯 털퍼덕 걸터앉았다. 울산으로 대구로 그리고 남해로 출장 중에 옮겨 다닌 거리도 예사 거리가 아니지만, 이제 막 남해에서 6시간 걸려 집에 도착했다. 그러나 잠시도 쉬지 못하고 이 밤중에 다시 왜관으로 차를 몰고 내려가야 할 것이다.
  형의 죽음을 안 이상, 그리고 무척이나 상심해 있을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지체할 형편이 아닌 것이다.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들면서 전신의 기운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저녁은요?”
  “먹어야지.”
  “그럼 샤워부터 해요. 금방 차릴 테니…….”
  “별다른 얘기는 없었고?”
  “어머니가 많이 놀라셨나 봐요. 순덕 아저씨가 시아주버니를 일진병원으로 옮겨놓고 나서야 어머니한테 알렸던 모양이에요.”
  “…….”
  “지금 당장에라도 내려가 봐야 않겠어요?”
  “…….”
  “저도 같이 내려갈께요.”
  “글쎄…… 애들은 어떡하고?”
  “그래도 하나밖에 없던 큰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애들도 데리고 가야겠네요.”
  “…….”

 

  그가 운전하는 차는 심야의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을 질주했다. 오가는 차량도 드물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홀로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졸음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쌓인 피로 때문인지 눈앞이 침침했고, 더욱 안개가 드리워진 곡각지점에선 도로의 윤곽마저 흐릿하여 쌍 라이트를 비춰가며 달렸다. 
  아이들은 한동안 소풍이라도 나온 듯 떠들썩하게 노래 부르고 장난치더니 어느새 뒷자리에서 곤한 잠에 빠져있는지 조용했다. 아내는 조수석에 앉아 골똘한 생각에 잠긴 채 전방만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형과 얽혀 온 기억들을 떠올렸다. 형과의 유쾌한 추억이 있을 리 없었다. 늘 형 때문에 자신이 불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여겨왔기에 한 때는 형이 죽어 없어지기를 얼마나 원했는지 모른다. 그것이 아무리 철부지적 일이라곤 해도 철이 들어서도 형으로 인한 피해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기론 마찬가지였다.
  ‘형의 죽음을 어머니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어머니의 모습이 어떠할지는 상상이 되질 않았다. 분명한 것은 형이란 존재는 어머니에게 있어 지금까지 삶을 지탱해 온 유일한 수단이요 목적이었다. 어머니 입장에선 어떨지 몰라도 그는 분명 그렇게 느껴왔다. 그 때문인지 어머니는 그 어느 누구보다 더 강하게 처신해 왔고 때론 멀쩡한 자식인 그에게조차 티끌만큼의 애정을 보여주기는커녕 얼음장같이 차디차게 대해 왔다.
  오로지 형만 챙기려 했던 어머니를 한편으론 이해하려고도 해봤지만 내심 섭섭한 감정을 지녀올 수밖에 없었다. 아내 또한 늘 며느리가 아닌 손님으로만 대하던 어머니의 태도로 말미암아 서운하게 여겼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랜 침묵을 깨고 아내는 카라얀 지휘의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 울려 퍼지는 FM방송 볼륨을 나직이 낮추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시아주버니……,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
  “늘 목에 가시 걸린 것 같더니만……, 하긴 어머니 입장에선 하늘이 무너진 듯 참담한 고통이 따르겠지만요.”
  “그만 해!”
  “…….”
  그는 부지중에 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뭐가 목에 걸린 까시야? 그리고 니가 시어머니 속을 뭘 그리 속속들이 잘 안다고…….”
  “…….”
  아내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에 그가 말문을 열었다.
  “아냐, 니 말대로 잘된 일인지도 모르지. 형 때문에 엄마도 여태껏 편할 날이 없었으니까.”
  “…….”

 

  차는 어느덧 왜관 톨게이트로 들어섰다. 아직 동이 트기 이른 시각이었다. 읍내로 길게 이어진 아스팔트 도로는 마냥 한적하였으나 짙은 스모그로 차의 속력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왜관을 떠난 지도 18년이란 세월이 지났건만, 왜관이란 곳은 늘 그 모양 그 꼴로 변한 것이라곤 전혀 없어 보였다. 변한 것이 없는 만큼 살갑게 다가와야 함에도 살갑기는커녕 변화되지 않는 모습이 지겹기까지 했다. 그가 느끼는 그런 감회 때문인지 왜관은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지만 언제 찾아와도 낯선 이방인 취급을 하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왜관이란 데는…….”
  그는 말을 꺼냈으나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맛을 다셨다. 아내가 그의 말을 되받았다.
  “왜관이 어떤데요?”
  “글쎄……, 왠지 정이 들지 않는 서먹한 동네랄까…….”
  “그래도 자기가 태어난 고향이라면서요?”
  “그렇지……. 고향이랄 수는 있겠지만…….”
  “…….”
  “왜관만 오면 숨통이 꽉 조여 오는 것 같아.”
  “그래도 아직까지는 어머니가 사시는 곳인데.”
  “글쎄다…….”
  “이제, 어머니를 서울로 모셔 와야 할까 봐요.”
  아내는 화제를 어머니 얘기로 돌렸다. 어쩌면 며느리로서 홀로 남은 시어머니의 거취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하지. 오기 싫다 해도 어쩔 수 없잖아.”
  “…….”
  “근데, 너 우리 엄마를 제대로 모실 자신이나 있냐?”
  “왜요, 어머니 구박할까 봐? 그런 일 결코 없을 테니 암 걱정 말아요.”
  “우리 엄만 꽤나 불행한 여자야. 여태껏 호강 한 번 못 누려보고……. 호강은커녕 지지리 고생만 하고 살았으니까.”
  “…….”
  그는 죽은 형에게도 새삼스레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어머니의 늙고 초췌한 모습을 떠올리자 눈시울부터 붉어졌다.

 

 


2

 


  칠순을 넘긴 어머니는 그 나이에 걸맞지 않게 여전히 정정했다. 허리도 꼿꼿했고 시력도 좋았으며 치아도 대개 온전했다. 전혀 노인답지 않은 그 같은 겉모습과 날렵한 종종 걸음새로 보아 50대 후반이라 해도 깜박 속아 넘어갈 이가 적잖을 것이다.
  지난여름, 병태네 일가족이 휴가 기간을 이용하여 왜관에 들렀을 때였다. 평상에 둘러앉아 수박을 한참 먹고 있었는데, 몇몇 동네 아낙들이 모처럼 찾아 온 서울 손님들에게 준다며 포도와 참외를 각각 한 소쿠리씩 들고 찾아 왔었다.
  “내가 마, 타고 난 근력을 지닌 것도 따지고 보면 다 하늘의 이치 아이겠나. 우리 불쌍한 병진이를 하늘이 버렸드끼, 내 몸땡이 이리 실하게 맹근 것도 날더러 우리 불쌍한 병진이를 죽을 때꺼정 지켜주라 카는 하늘의 뜻인 기라.”
  아낙들의 ‘할머닌 아직도 청춘 부럽지 않게 정정하시다.’란 부추김에 되받아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얘기였다. 
  그네가 자신의 정정한 것조차 형과 연관 짓듯이 그네의 생활 자체도 오로지 형만을 위해 존재해 왔다. 어쩌면 그네는 형 때문에 잠시도 아파 누웠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네는 형을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어 보였다.
  그네는 병태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기공학부 제어계측과에 입학하자마자 17년 가까이 지켜왔던 떡 방앗간을 망설임 없이 서둘러 정리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18년 가까운 세월 내내 형의 곁에서 오직 그만을 위해 살아왔다. 병태는 그러한 그네의 심정을 일견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내심 적잖이 서운했다.

 

  어머니 천심례는 왜관읍에서 머잖은 낙산이란 곳에서 대대로 농사만 지어온, 딸만 내리 여섯인 빈농의 맏이로 태어났다. 
  매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살림은 구차하였으나 그래도 외할아버지는 농사만 지어오던 시골사람답지 않게 ‘여자라도 배워야 사람값 한다.’라며 딸 모두를 중학과정까지 공부시켰다. 
  그네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고등학교까지 마저 보내달라며 몇날며칠을 밥도 굶어가며 울고불고 떼를 썼다. 하지만 가뜩이나 어려운 형편에 그녀의 뒤를 이어 공부해야 하는 동생들이 줄줄이 있는 한 그네의 바람은 여지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네는 여자치고는 키가 훤칠한 데다 뼈대마저 굵었고, 힘도 남정네 못잖게 제법 썼기에 일찍이 동네사람들로부터 ‘여장부’소리를 꽤나 들었었다. 뿐만 아니라 남자라곤 아비뿐인 집안에서 실한 머슴노릇까지 톡톡히 해왔었다.
  그네는 스무 살쯤 되던 해부터 추수철만 되면 벼 나락을 우마차에 싣고 왜관 읍내에 있는 정미소에 도정하러 다녔었는데, 그 정미소에는 마침 정미소 주인의 외아들이자 그네와 중학교 동기인 송석만이 일하고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저는 불구였다. 
  처음에 그네는 그를 못 알아보았으나 그는 그네를 첫눈에 알아보았다. 중학교 때 또래의 여학생들 중에 키가 유난히 크고 공부 또한 잘했던 그네를 잊지 않고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그네를 만난 뒤로 그네에게 자꾸 마음이 쏠리는 것을 어찌할 바 몰랐다. 그네의 집안이 지독히 못 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네를 돕겠다고 다짐을 하고는 도정을 끝내고 돌아가는 그네의 우마차에 아무도 모르게 쌀을 한 가마씩 더 올려놓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해 봄, 느지막한 시각에 정미소 주인 송채득이 그네의 집으로 예고 없이 찾아왔다. 그리고 ‘아들이 비록 다리를 저는 병신일지라도 고등학교까지 나왔고, 성품도 모진데 없이 괜찮으며, 먹고 살만한 재산도 물려 줄 수 있으니 딸을 달라.’라는 청을 꺼냈다. 물론 그러한 청은 그가 그네와 결혼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죽고 말겠다는, 자신의 부모를 상대로 한 지독한 협박에 의해 마지못해 나온 것이었다. 
  그네 역시 그가 비록 다리는 심하게 절지만 그렇다고 목발 짚고 다닐 정도는 아니요, 중학교 동기인 데다 성격도 유순하고 인상 또한 길쭉한 말상임에도 서글서글해 보여 그가 과히 싫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와 결혼하면 먹을 걱정은 덜 것이란 생각에 결혼을 마다할 리 없었다.

 

  그들 부부의 금실은 여느 부부 못잖게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그들 사이엔 5년, 10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들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하여 그들 가운데 하나가 불임이 될 만한 몸의 이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서울의 내로라하는 종합병원에 가서 여러 차례 정밀진찰을 받았으나 양쪽 모두 아무 이상이 없었다. 
  하물며 온갖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다니고 굿이란 굿도 다 해봤다. 또 좋다는 약제는 물론 애를 낳기 위한 민간처방도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였다. 흥국사란 절에서 100일 치성까지 드렸어도 결국 효험 없기론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자식 얻기를 포기할 즈음, 결혼한 지 10여 년 만에 어렵사리 얻은 자식이 하나도 아닌 일란성 쌍둥이였다. 참으로 오랜 기다림 끝에 하나도 아닌 둘을 한꺼번에 얻게 되었다 하여 너무 흥에 겨운 나머지 동네잔치까지 거하게 벌였다. 
  그러나 출산일이 임박하자 담당의사는 ‘쌍태분만(雙胎分娩)에서 빈도가 높은 분만장애 인터록킹(interlocking)이 발생했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해왔다. 그리고 ‘현재로선 두 태아가 서로 얽혀있는 상태라 무리하게 정상 분만을 시도하다 보면 태아나 산모 모두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라며 제왕절개수술을 권했다. 
  “어떻게 얻은 아기들인데…….”
  아기들이 잘못될까 봐 눈앞이 캄캄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담당의사는 수술을 권유하고도 무슨 까닭인지 정작 분만 당일에는 정상 분만을 시도하였다. 따라서 첫째아이 병진이는 산도(産道)를 빠져나올 때 시간을 너무 지체한 까닭에 저산소증에 의한 뇌사상태에 빠졌다가 어렵사리 소생하였고, 그 후유증으로 정신박약아가 된 것이다. 담당의사는 뒤늦게 질구(膣口)를 절개하여 둘째아이 병태를 꺼내었기에 그만큼은 아무 이상이 없는 정상아로 태어날 수 있었다. 
  담당의사의 무책임한 실수로 인해 병진이가 이후 정신박약아로 살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 아버지는 담당의사와 병원을 상대로 고소를 하였다. 재판은 5년여에 걸쳐 지리멸렬하게 이어졌다. 법원 재판부는 ‘의사의 과실을 입증할만한 증거의 제출’을 자꾸 요구해왔으나 그런 자료란 게 있을 리 없었다. 결국 ‘고의적 과실을 인정할 수 없음으로 병원과 담당의사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라는 고등법원의 확정판결로 인해 끝내 아무런 책임도 묻지 못했다.  
  아버지는 병태에 비해 행동이 굼뜨고 침을 겔겔 흘리는 병진이만 보면 그 측은함을 견디지 못해 말술을 들이켰다. 그리고 눈에 띄는 사람마다 붙들고 의사들 흉을 그리 보았다.
  “의사 놈들…… 증말 믿을게 몬 된단 말이지. 배웠단 놈들이…… 순 거짓말만 주절거리고 책임도 질 줄 모르고…… 아주 막돼먹은 놈들이란 말이지.”
 
  아버지는 늦게 본 쌍둥이를 그리도 애지중지했다지만, 쌍둥이가 채 세 돌을 맞기도 전에 지병인 급성간경화증으로 죽었다. 따라서 병태인들 아버지의 체취를 온전히 기억할 리 없었다. 
  아버지가 죽고 난 얼마 후 어머니는 정미소를 처분하여 상당한 빚을 정리하고, 대신 왜관 시장 통에 조그만 떡 방앗간을 사들여 병태가 서울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거의 17년이란 세월을 방아를 찧고 떡을 만들어가며 억척스레 일만 해왔다.

 

 


3

 


  “얼레리 꼴레리……. 누구누구는…… 쌍둥이래요…….”
  어려서부터 병태는 동네아이들이 놀려대는 것이 싫어서 자신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 병진이를 걸핏하면 따돌리려 하였다. 
  “이 빙신이……, 저리 몬 가나?”
  “실어잉…….”
  “가라이 빙신아, 니 저만코롬 안 갈 끼가?”
  “실어잉…….”
  그때마다 어머니는 ‘니까지 형아를 빙신 취급해서야 쓰것니? 형아랑 꼭 붙어 다니면서 잘 보살펴 줘야지.’라며 병태만 나무랐다. 
  “형아를 니가 안 돌비면 누가 돌비것노? 엄마가 장사 때리차뿌고 형아를 돌비야 쓰것니? 우리 식구 모두 밥 굴머도 개얀코? 그라고 형아한테 절대로 대들거나 때리려들지 말고…….”
  “엄마는 노상 형아 편만 들고…… 쒸…….”
  “봐라, 니 형아는 아야 하잖니. 니도 아야 하면 개얀캤나?”
  예닐곱 살이 될 때까지 병진이와 병태는 겉모습만 봐서는 거의 구분 못 할 정도로 생김새와 몸집이 똑같았다.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그들 쌍둥이를 한번 보게 되면 ‘고놈들 참 잘 생겼구만!’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귀염성과 귀티를 풍기는 얼굴이라 쌍둥이를 보는 시선마다 여간 신기한 듯 한참 머물렀다. 다만, 야무진 표정의 병태에 비해 병진이는 시선이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풀어졌으며, 히죽히죽 웃기를 잘했고 게다가 침까지 질질 흘리고 다녔다.


  어머니는 ‘아비 없는 자식’이란 소리라도 들을까 봐 쌍둥이의 입신에도 여간 신경을 쓴 것이 아닌지라 왜관이란 시골에서는 그 훤한 옷차림새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래서 왜관 일대에선 그들 쌍둥이를 못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는 쌍둥이에게 항상 똑같은 옷만 입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신발도 양말도 주머니 속에 넣어주는 손수건까지도 늘 똑같았다. 장난감을 사줘도 똑같은 것으로 두 개씩을 사다주었으며, 머리를 깎아도 똑같은 머리 꼴만 주문하였다.  
  가뜩이나 생김새가 똑같은 병진이랑 누가 쌍둥이가 아니랄까 봐 그런다고 병태는 내심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땐 일부러 병진이의 옷차림을 흐트러뜨리거나 더럽히기도 했고, 온갖 몹쓸 심술을 다 부렸다. 
  그리고 때로는 머리통을 쥐어박기도 했고 꼬집기도 했고 발길질도 했다. 그때마다 병진이는 아파서인지 아니면 서러워서인지 기차화통을 삶아대듯 그 큰 목통을 놓아 제법 서럽게 울어댔다. 그 유별난 울음소리에 딴 사람들이 몰려올까 봐 얼른 얼러주고 달래야 했는데, 그러면 병진이는 언제 울었더냐 싶게 헤벌쭉거리며 여전히 병태의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녔다. 
  병태는 병진이와 함께 있을 때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는 것이 여간 싫은 게 아니었다. ‘귀엽다.’라든가 ‘예쁘다.’라든가 하는 소리도 듣기 싫었지만, 특히 ‘둘이 어쩜 그리 똑같이 생겼냐?’란 소리는 그중 제일 듣기 싫은 소리였다. 
  “저 빙신이랑 나가 와 똑같노? 나가 저마코로 빙신이란 말이가?”
  그래서 한때는 주위에 사람들이 안 보일 때마다 병진이의 코를 미운 돼지 코와 같은 들창코로 만들려고 코를 힘껏 위로 젖혀가며 눌러댔고, 반면에 자신의 코는 예쁘게 세우기 위해 연방 코를 쥐고 잡아당겼다. 콧날을 오뚝하게 세우려면 코를 열심히 잡아당겨야 한다는 어른들의 얘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러한 행동도 콧구멍 부위가 빨갛게 헌 병진이의 코를 본 어머니의 추궁에 의해 덜미가 잡혔고, 그 때문에 병태는 손바닥이며 종아리가 짓무르도록 모진 회초리를 맞기도 했다. 
  “봐라, 니 형아가 돼지 코가 됐으면 그리도 좋것냐? 요 몬된 손모가지, 다신 그 몬된 손모가지 함부로 놀렸다간 손모가지 뿐질러뿔끼다.”

 

  병태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병진이를 데리고 학교에 다녀야 했다. 어머니의 일손도 바빴지만 무엇보다 병진이가 병태 곁을 잠시도 떠나려하지 않았다. 1학년 첫 담임은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인자해 보이는 인상의 50대 남자선생이었다. 
  어머니는 담임선생한테 간청하여 병태 옆에 병진이를 앉게 하였으나, 처음 한동안은 병진이가 제멋대로 교실 안을 휘젓고 다니느라 수업에 큰 지장을 주었다. 다행히 병진이는 산만하기는 했지만 온순한 성격이라 차츰 길들여졌고, 담임선생의 ‘어험!’하는 소리만 들리면 얼른 제자리로 돌아가 얌전히 앉아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병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대소변이 마려우면 병태에게 ‘응가응가’라며 발을 구르고 보챘다. 그러나 대부분 화장실에 데리고 가기도 전에 바지에다 쌌다. 어머니가 늘 기저귀를 채우지만 어느 땐 대변이 기저귀 틈새를 비집고 나와 바지를 엉망으로 만들기 예사였다. 그 치우는 일도 병태 몫이었다.
  아이들은 처음엔 그 둘을 번갈아 보며 쌍둥이라 놀려댔으나 차츰 병진이만을 골려대는데 재미를 더 붙인 듯했다. 병진이는 때리지만 않으면 아무리 놀려대어도 같이 놀아주는 줄로만 여겼던지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을 다 받아주었다. 
  병태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조롱당하는 병진이를 멀찍이 바라보며 그런 바보 같은 병진이가 꼴 보기 싫다 여겼고, 언제부턴가는 병진이가 아예 죽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생각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또래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되면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저런 빙신은 죽어 없어져야 해. 저런 빙신만 죽어 없어지면 나도 다른 애랑 똑같을 거야. 저 빙신만 없어지면 나도 놀림 따위는 안 받아도 되고, 또 엄마도 나만 이뻐해 줄 거고…….’ 
  그러나 병진이가 죽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 끝에 막상 병진이가 허연 게거품을 물고 죽어있는 장면이 떠오르면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섬뜩하게 죽어있는 꼴은 차마 못 볼 것 같았다. 그래서 잠자듯이 평온하게 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4

 

 

  병태가 초등학교에 입학한지 두 달쯤 지난 5월 어느 날이었다. 운동장 한쪽은 전날까지 내린 비로 질펀하였지만 날씨는 비갠 후라 유독 화창하였다. 운동시간을 맞아 반 아이들은 모두 운동장으로 몰려나갔고, 얼마 후 편을 갈라 배구공을 축구공 삼아 공차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이들과 섞여 공놀이를 하고 싶었으나 담임선생이 병태더러 병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스탠드에 가만히 앉아 구경하고 있으라 하여 놀이에 끼이지도 못한 병태는 마음이 잔뜩 상해 있었다. 병태와는 달리 병진이는 그리 신이 났던지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질러대며 잠시도 가만있으려 하지 않았다. 
  도무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가 앞에 서서 얼쩡거리는 병진이의 엉덩이를 발로 냅따 걷어찼다. 순간적으로 병진이가 너무 미웠기에 ‘죽어라.’라며 천 길 낭떠러지로 밀어버리는 심정이었다.  
  병진이는 2미터가 넘는 높이의 스탠드에서 떨어져 그 아래 배수관로에 곤두 박혀 한동안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까무러쳤다. 금방 아이들이 몰려들었고 곧 담임선생도 달려왔다. 병태는 소란스러운 상황이라 겁은 더럭 났지만, 이참에 병진이가 아예 죽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거듭했다.

 

  병진이는 삼덕의원에 실려 가고 나서도 한참 만에 정신을 차렸다. 병태와 함께 정신없이 병원으로 들어선 어머니는 병진이를 끌어안고 통곡을 했다.
  “아이고…… 내 새끼, 우에다 이리 됐노?”
  어머니의 통곡은 한동안 이어졌다. 병태는 처음 듣는 어머니의 통곡소리에 왠지 불안하고 겁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오줌 누러간 사이에 병진이가 스탠드 아래로 떨어졌다.’라며 거짓말한 것도 미안했지만, 막상 어머니의 통곡에 그토록 죽기를 바랐던 병진이가 막상 잘못될까 여간 걱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생전 눈물을 보이지 않던 어머니가 병진이 때문에 그리 슬피 우는 까닭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한편으로는 ‘엄마는 병진이만 위한다.’라는 서운한 생각이 듦은 어쩔 수 없었다. 
  “이만한 게 천만다행이구먼요. 머리부터 하수구에 처박혔다 카든디. 이마가 찢긴 덴 네 발 꿰매고 나면 머리는 말짱할 것이고, 근데 늑골 두 대가 부러졌구먼요.”
  일흔이 넘어 보이는 의원 원장이 커다란 엑스레이 필름을 벽면에 부착된 라이트스크린에 척 붙이고 나서 부러진 늑골부위를 가리켰다. 
  “늑골이라고요? 갈비뼈 말인교?”
  “예, 좌측 늑골 4, 5번……. 여기 보면 희미한 선들 보이죠? 요 선이 뼈에 금이 간 것을 나타낸 것이죠.”
  “그럼, 몸엔 별 이상은 엄꼬요?”
  “예, 아직 얼라라 금방 아물긴 하겠지만, 혹 흉막의 충격으로 염증이 생겨 늑막염으로 전이될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나 넘 걱정 마이소. 서너 달만 안정을 취하고 잘 멕이면 괴얀을 겝니다.” 
  “하이고…… 선상님, 참말로 고맙씸다.”
  어머니는 눈물이 글썽해진 눈으로 병태를 바라봤다. 그리고 병태의 두 손을 모아 쥐며 부드럽게 타일렀다.
  “니는 니 형아를 와 이 지경으로 맨들어 놨노? 니 형아가 이 모양이 되도록 와 혼자 놔뒀노 말이다. 니는 멀쩡하지만 니 형아는 반 빙신 아이가, 그러니 니가 형아를 항상 보살피야지.”
  병진이는 예상보다 빨리 회복되어 예전처럼 병태를 따라 학교를 드나들었다. 
 
  병태가 다니는 학교는 축조한지 오래되어 화장실부터 허름했다. 본관과 멀찍이 떨어진 외진 곳으로 해가 기울 무렵부터는 을씨년스러워 귀신이라도 나올듯한 분위기였다. 거기에 촉수가 낮은 백열구가 하나만 켜져 있어 겨우 주위를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어두웠다. 
  대변을 볼라치면 비좁은 공간에 시커먼 구멍은 어찌나 크고 너른지 키 작은 아이의 경우엔 가랑이가 찢어질 정도로 두 다리를 힘껏 벌려야 볼 일을 볼 수 있었다. 발이라도 헛디딘다면 그 구멍 속으로 빠질 것 같은 위험스러운 공간이었다. 
  그래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조차 그런 곳에서 볼 일 보기란 여간 꺼림칙한 게 아니었다. 그 때문인지 똥통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있었다더란 소문이 아이들 사이에선 무성했다. 그렇지만 실제론 그때까지 학교 화장실의 똥통에 빠졌다는 아이는 없었다.

  여름방학을 며칠 앞둔 7월 중순이었다. 장마가 한 꺼풀 물러나고 가끔은 비가 오락가락하는 후텁지근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점심을 먹은 뒤라 식곤증이 몰려왔고 가만히 있어도 온몸에는 땀이 배어 기분 나쁠 정도로 끈적거렸다. 그런데 뒷자리에 앉은 아이가 아까부터 코를 후벼 코딱지를 떼어다 병태의 목덜미에다 붙여대는 것이었다. 우렁이 속살처럼 제법 굵은 코딱지가 미끈거리며 잡히자 비위가 상했다.
  “쒸…… 니 죽을래?”
  뒤에 앉은 아이를 향해 눈살을 찌푸리며 주먹을 휘둘러 보였으나 겁먹기는커녕 혀를 날름거렸다. 그때 병진이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응가응가’라며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뭐하노? 병진이가 응가 마렵다잖니. 얼릉 데리고 변소 갔다온나.”
  담임선생이 아이들을 위해 책을 읽다말고 병태에게 지시했다. 병태는 병진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서자마자 허벅지를 발로 야무지게 걷어찼다. 병진이의 헤벌쭉한 얼굴이 너무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병진이는 눈치가 빤해 누가 밉다고 때리면 아프든 안 아프든 큰 소리 내어 울기부터 하는 것이다.
  “으앙…… 앙앙앙…… 앙앙앙……. 으앙…… 앙앙앙…… 앙앙앙…….”
  “죽어삐라, 니 같은 바보 멍충이는 죽어두 싸다.”
  병진이가 아무리 큰 소리로 울어도 교실까지는 거리가 멀어 누가 들을 염려는 없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울고 있는 병진이를 보니 부아가 더 치밀어 올랐던지 병태의 발길질과 주먹질은 계속되었다.
  “빙신새끼 똥통에 빠뜨릴까 부다.”
  순간 ‘아, 그러면 되겠다.’ 병태의 머릿속엔 얼씨구나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병태는 울면서도 잡아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오는 병진이를 변기구멍 속으로 억지로 밀어 넣었다. 
  ‘첨버덩!’하는 소리가 들려오며 똥물이 튀어 올랐다. 그 순간 겁이 더럭 났다. 밑을 살펴보지도 않고 화장실을 뛰쳐나와 화장실 건물의 뒤편 벽에 기대앉았다. 그 이후로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머리 위에서 담임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병태야, 여태껏 여기서 뭐하고 있노? 그라고 병진이는 어데 갔노?”
  “…….”
  “병진이는 어째고 니 혼자 여기 있노 말이다.”
  “몰라예, 똥뚜깐에 빠졌는데예.”
  “뭐라고? 똥뚜깐에 빠졌다고?”
  담임선생은 혼비백산이 되어 허겁지겁 화장실 문마다 열어보았다. 한 화장실 구멍 속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담임선생은 구멍 속을 들여다보았다. 병진이가 온몸이 똥물 속에 파묻힌 채 목만 내밀고 있었다. 
  “아이고, 이런 우짜면 좋노?”
  병태는 어쩔 줄 몰라 구멍 밖으로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밥알같이 생긴 구더기들을 신발바닥으로 탁탁 터뜨리며 담임선생 눈치만 살폈다.
  “봐라, 병진아. 손 좀 올려봐라.”
  병진이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그리고 움찔거리더니 똥물 속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래 손 좀 쭉 뻗어봐라, 그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담임선생이 아무리 손을 뻗어도 병진이의 손이 닿지 않았다. 그새 화장실 안은 반 아이들이 죄다 모여들었던지 북새통을 이루었다. 
  “아이고 뭔 놈의 구더기는 이리도 많노? 참 추접네.”
  담임선생은 마지못해 구멍 속으로 머리까지 처넣고서야 가까스로 병진이의 손을 잡을 수가 있었다.
  병진이는 온 몸이 똥 범벅이 되어 엉망이었다. 입에서도 콧구멍에서도 똥 찌끼와 구더기가 기어 나왔다. 수돗가로 데리고 가서 몇 번씩 씻기고 나서야 삼덕의원으로 데리고 갈 수 있었다. 
  “니는 얼릉 가서 어머니 모셔온나.”
  병태는 공연한 짓을 저질렀다는 생각에 풀이 잔뜩 죽었다. 찔끔찔끔 눈물까지 났다. 병진이가 죽지 않은 것이 안심은 되면서도 어머니를 대하기가 여간 겁이 나는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병태가 훌쩍거리며 ‘형아가 똥뚜깐에 빠졌는데…… 삼덕의원에 있어.’라는 소리를 듣고 기절초풍했다. 어떻게 의원까지 한달음에 내닫았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진료실 입구에서 서성거리던 담임선생이 어머니를 맞았다.
  “선생님, 우리 아가 어찌 됐능교?”
  “병태 어머니, 넘 걱정 마이소. 병진이 이제 괴얀습니다.”
  “하이고…… 이게 뭔 사단이여? 우리 아가 와 빈소에 빠졌다요? 접때 보니깐 무신 놈의 똥뚜깐 구녕이 그리 크다요? 그러니 여직껏 작은 얼라들이 안 빠진 게 신기하다요.”
  “그래도 똥 퍼낸 지 얼마 안 되놔서 똥이 허벅지밖엔 안 차오른 게 천만다행이지요.”
  “아이고 내 새끼……, 병진인 어찌 됐씨요?”
  병진이는 발가벗겨진 채 병상 위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의원 원장은 약봉지 하나를 어머니에게 건네주며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부터 시켰다.
  “이제 막 식도며 위세척도 했고 온 몸 소독도 했으니, 아마 큰 탈은 없을 거구먼요. 혹 똥독이 오를지 모르니 이 약을 멕이고……, 에 또…… 이 약은 벌겋게 부어오른 델 발라주면 돼요.”
  “똥독 오르면…… 어찌되는감요?”
  “똥독이 뭐…… 똥 속에 독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십이지장충 같은 유충이 피부 속을 뚫고 들어가 있으면 피부가 벌겋게 붓게 되는데, 심한 경우 열이 나기도 하지만…… 약만 잘 멕이면 큰 탈은 없을 겝니다.”
  “예, 그럼 다행이고요. 암튼…… 선상님 고맙씸다.”
  그 일이 있고부터 병태는 병진이를 더 이상 학교에 데리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병진이에 대한 얄궂은 증오심은 그로서도 어찌할 수 없이 여전했는데, 중학교 2학년이 다 지나갈 무렵 사춘기를 벗어날 즈음에야 겨우 수그러들 수 있었다. 그렇다고 병진이에게 눈곱만큼의 온정을 베풀었던 것도 아니었다.

 

 


5

 

 

  병태는 어머니에게 병진이와는 똑같은 옷을 입기 싫다고 떼를 쓰기도 했지만 전혀 먹혀들지 않는 투정에 불과했다. 그러나 중학교에 입학하고부터 병태의 소망 한 가지가 이루어졌으니, 바로 교복을 입기 시작하면서부터 병진이와의 똑같은 차림새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는 사복은 죽어라 안 입고 집안에서든 밖에서든 꼭 교복만 입었다. 물론 병진이도 병태와 똑같은 교복을 입겠다고 난리를 피웠지만, 그것만은 병태가 필사적으로 막아내어 어머니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니는 교복을 아무나 입는 건 줄 아나? 나 맹크로 중학생이 돼야 입는 기다.”
 
  어머니는 병태가 철들 무렵부터 그에게 보다 강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모든 일은 그 혼자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네 자신에겐 사랑이란 것이 단 한 개 밖에 없으니 그 사랑을 아예 기대하지 말라며 그의 가슴에 쐐기 박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따라서 병태는 푼수 같은 형 병진이에게 늘 어머니의 관심마저 빼앗긴 듯 여겨왔다. 자신에게 돌아올 사랑이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으리라 확신했고 그 때문에 혼자라는 자각과 함께 늘 외로움을 느끼며 자랐다.
  자라면서 병진이의 덩치는 병태보다 점점 더 커져 갈수록 둘 사이의 체격은 큰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병태 또한 또래에 비해 키가 큰 편이지만 병진이는 병태보다 키도 더 크고 살도 많이 쪄서 다 자랐을 땐 몸무게가 병태의 곱절은 되었다. 
  그러나 병진이의 지능은 여전히 유아기에 머물러 있어 옆에 누군가가 늘 따라붙지 않으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천방지축이었고, 대소변도 누가 옆에서 거들어줘야지 혼자서는 제대로 가릴 줄 몰랐다. 
  그런 병진이 때문에 유난히 공부하기를 좋아했던 병태는 병진이를 돌보지 않으려고 가급적 오래 학교에 머물러 있으려 했다. 머리도 좋고 대단한 집중력을 갖고 있어 학교 수업만으로도 별도의 복습이나 과외수업을 받지 않고도 늘 1등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독점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병태가 아무리 1등만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고, 또한 상장을 많이 타왔어도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때마다 ‘공부 잘하는 것도 좋기야 하것지. 그보다 니 형아한테 잘할 생각이나 해.’라는 충고만 들려주니 나중엔 그런 소리도 듣기 싫어서 성적표든 상장이든 일일이 어머니한테 보여주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안 하리라 마음먹기에 이르렀다.

 

  병태는 대학시절 내내 서울에만 머물렀다. 명절 때 외엔 방학 때도 좀처럼 왜관에 내려가려 하지 않았다. 
  대학 2학년 땐 신체검사 통지를 받고 신체검사에 응했으나 얼마 후 군 입대 면제판정을 받았다. 그로서는 군 입대를 일부러 피할 생각은 없었다. 면제사유는 ‘피부양자가 둘 딸린 가장으로써 생계유지상 소집면제’라 하였다. 그런 면제사유를 읽어보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그는 한동안 대학원에 진학할까 고민했다. 그러나 겨우 학비와 자취할 생활비만을 빠듯하게 보내오는 어머니한테 그런 여유가 없겠거니 라는 생각과 무엇보다 아무 수입도 없이 병진이를 데리고 사는 늙은 어머니한테 더 이상 손 벌리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내 밥벌이는 내가 해야겠다.’란 생각에 한국전력 사원모집시험에 응시하였고, 당시 100대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한전에 입사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그때만큼은 ‘장한 내 아들이다.’란 칭찬의 말과 함께 그가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아파트를 선뜻 사주었는데, 그 아파트는 그가 결혼하여 지금까지 살아온 스물두 평짜리인 것이다. 
  “내가 니게 해줄 수 있는 게 이기 전부다. 지금부턴 니 혼자 힘으로 살아가도록 혀라.”
  “엄마, 고맙씸다. 난 사실 엄마한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니는 효자다. 이태까지 내 속 한 번 안 썩히고 혼자서 무던히도 잘만 해오데. 그간 마이 서운했긋제. 내 안다. 그란데 우야겠노. 니 형아가 저 모냥인데…….”

 

 


6

 


  병진이의 사체는 일진병원 영안실 한쪽 침상에 하얀 시트가 덮인 채로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평소 키 186센티에 몸무게 163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였음에도, 물살에 부풀려서인지 200킬로그램을 웃돌 정도로 팽창되어 있어 더욱 그로테스크하게 보였다. 푸른빛마저 감돌듯 창백하고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해도 물컹하니 물기가 주르륵 배어나올 것만 같은 피부와는 달리 얼굴 표정은 지극히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의 그것이었다. 병진이의 입가에서 늘 흐르던 침 대신에 미미한 웃음 끼를 발견한 병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병태는 병진이와의 기억을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펼쳐보았다. 그에게 잘해주었던 기억을 떠올리려 해도 전혀 떠오르지 않아 안타까웠다. 철부지 때부터 병진이는 늘 병태를 따랐다. 어쩌면 그렇게 위해주던 어머니보다 병태를 더 따랐는지 모른다. 그러한 병진이를 늘 멀리하여 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철없을 때는 물론 장성해서도 쭉 그를 증오하여 왔고, 또 한 때였지만 모질게 괴롭혀 왔으며 내심 죽어 없어지길 얼마나 바랐던가. 왜 하필 병진이의 시신 앞에서 이런 때늦은 감상에 젖게 되는지, 자신의 어처구니없는 소갈머리에 진저리를 쳤다. 
  내재되어 왔던 어렴풋한 죄책감이 막상 그의 싸늘하게 식은 시신을 마주하고 보니 더욱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이는 곧 자신에 대한 분노로 폭발할 것만 같았다. 
  ‘어헝…… 으아아악……!’
  병태는 걷잡을 수 없는 회한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한동안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천정을 쳐다보며 터질 것 같은 감정을 무언으로 쏟아냈다.  
  “형! 미안하오. 내가 넘 잘못했수. 굳이 용서를 바라진 않지만, 형 앞에 엎디어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싶수.”
  침상 위에는 병진이가 아닌 바로 그 자신이 누워있는 것으로 착각되었다. 따라서 형의 시신이 아닌 자신의 시신을 보며 빌고 있는 듯했다. 한쪽 팔다리가, 아니 몸의 반쪽이 떨어져 나간 느낌처럼 휑하니 여겨졌다. 
  순간 몸이 휘청거렸다. 어떤 중압감에 의해 어깨부터 짓눌려지더니 철퍼덕 주저앉혀졌다. 그제야 봇물 터지듯 오열이 터져 나오며 눈물과 콧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졌다.

 

  병진이를 잃어버린 것은 4일 전이었다. 그 전에도 여러 번 병진이를 잃어버린 적은 있었으나 대개 당일에 찾았다. 병진이를 발견한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잃고 나서 다음날 찾은 적도 두어 번 있었다. 매번 주변 10킬로를 벗어나지 않은 곳에서 발견되어 그때마다 파출소에서 보호받던 병진이를 인도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병진이는 겁이 많아 순간적으로 위험을 느끼면 그 자리에 몇 시간이고 얼어붙어 꼼짝도 않는 버릇이 있었다. 또한 기차나 자동차를 두려워하여 누구와 함께 가지 않는 한 철로변이라든가 차로 쪽엔 얼씬도 하지 않아 교통사고를 당할 염려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왜관 일대에선 병진이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병진이의 목에 이름과 집의 위치, 전화번호가 적힌 표찰을 항상 걸게 하였고, 수시로 병진이에게 다짐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니 이름이 뭐꼬?”
  “송…… 병…… 지…… 인…… 이다.”
  “옹냐, 잘혔다. 니 이름이 뭐라 캤노?”
  “송…… 병…… 지…… 인이다.”
  “옹냐, 내 새끼…… 잘혔어. 그럼 니 이름이 뭐라 카드나?”
  “송…… 병…… 지…… 인…….”
  “오메…… 내 새끼. 참 잘혔다.”

 

  병진이의 사체는 오후 늦은 시각 왜관에서 아래쪽으로 수 킬로 떨어진 낙동강변 모래사장에서 발견되었다. 
  병진이를 잃어버리고 거의 사흘간을 밤낮없이 병진이를 찾아 헤매던 어머니는 탈진하여 몸져누웠고, 마침 병진이를 발견한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을 땐 어머니와 평소 가깝게 내왕하던 이웃집 순덕 아저씨가 전화를 대신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일진병원으로 병진이의 사체를 옮긴 다음, 조심스럽게 어머니에게 그 같은 사실을 알렸던 것이다. 
  “아이고…… 우리 병진이가 우에 됐다꼬예? 우리 병진이가 죽었다캤능교?”
  “예…… 그렇구먼요.”
  “아이고…… 병진아…….”
  “아지매, 고만 정신 차리소.”
  어머니는 한참동안 온 방안을 나뒹굴며 병진이만을 찾다가 끝내 거품을 물고 혼절하여 일진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한 식경쯤 지난 뒤에 겨우 기력을 되찾은 어머니는 비로소 아들보다 며느리에게 그간의 사정을 알렸던 것이다. 
  “엄마, 형 잃어버렸을 때 전화부터 주지 않고…….”
  “바쁜 너거들 오라 가라 할 수도 없잖냐.”
  “엄마, 미안해요. 엄마 혼자서 다 감당하게스리…….”
  “아이다. 오히려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르제. 내가 마…… 병진이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었겠노. 아무것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게……. 오메…… 내 새끼…….”
  “…….”

 

  병진이의 사체는 왜관에서 십 여리 낙동강변을 타고 올라간 곳에 위치한 창동교우묘지에 안장되었다. 어머니는 해가 떨어져 어둑해질 때까지 병진이의 무덤 앞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엄마, 왜 그랬어요? 왜 그러셨어요? 왜 형만을 위하셨냐구요?”
  “니가 아즉…… 철이 덜 들었나보구나.”
  “알아요. 저라도 엄마 입장이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렇지만……, 제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아세요?”
  “그랬니?”
  “제가 아직 철이 덜 들었고 유치하다 해도 좋아요. 단 한번만이라도 사랑한다는 얘길 단 한번만이라도 제게 들려줬었더라면……, 형을 그렇게 미워하질 않았을 텐데…….”
  “나도 어쨀 수 없었던 거여. 글치만…… 니는 니 형아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많은 걸 가졌잖니?”
  “아무리 그렇더라도…….”
  “오히려 이 에미나 니 형아나 니한텐 절대루 짐이 안 되려 했다. 니한테 겔림돌이 안되게 하려했던 기다. 그러니 애비 없이 자란 니라도 더 강하게 자라야 안되것냐.”
  “엄마……!”
  어머니에 대한 섭섭했던 감정과 병진이를 그토록 증오해 왔던 감정은 쉽게 돌이킬 수 없어 이후 장성하기까지 병태의 가슴속에 치유할 수 없는 큰 상처로 자리해 왔다. 그런데 어머니의 그 한마디에 비로소 그는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었다.
  어머니에 대해 새삼스런 존경심이 우러났고 반대로 형에 대한 죄책감은 더해갔다.
  “엄마,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다음날 오전 내내 어머니에게 함께 살자며 아무리 설득하려 해도 어머니의 태도는 너무나 분명하여 마치 서릿발 같은 완고함마저 느껴졌다.  
  “어머니, 우리랑 같이 올라가서 함께 살아요.”
  “네, 그렇게 해요. 엄마.”
  “아이다. 너거들이랑 함께 살고픈 마음이야 와 없겠노. 그래도 내 죽을 때까지 내 불쌍한 새끼 무덤을 지킬란다.”
  “엄마, 괜한 고집부리지 말고 우리랑 함께 서울 올라가요.”
  “내가 니네한테 가봐야 짐밖에 더 되것냐. 그라이 내 걱정일랑 말고 너거나 열심히 살그라.”

 

  칠순 중반을 넘긴 노인답지 않은 정정함에 꼿꼿한 몸가짐을 지녔다지만, 그러나 백미러를 통해 가물거릴 때까지 한 자리에 못 박힌 듯 붙박이로 서서 멀어져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어머니의 모습은 멀어질수록 분명 초라한 노파의 모습으로 비쳐졌다. 
  평생 굴레로만 여겨왔던, 그래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너무나도 벗어나고 싶어 했던 쌍둥이란 굴레. 그러나 막상 벗어나고 보니 그것은 굴레라기보다 당연히 받아들였어야 할 운명이었음을 어찌 알았겠는가.

 

 

  

쌍둥이

 

- 끝 -

 


 
2004/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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