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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콘테스트> 제36차 공모 
당선작 및 심사평






  [월간문학 한국인]이 작가로서의 꿈을 이루고자 분발하는 젊은 영혼들의 순수 문학 창작의욕을 북돋기 위해 기획한 <창작콘테스트>가 제36차 당선자를 발표한다. 
  [월간문학 한국인]<창작콘테스트>는 작가로서의 무궁한 필력이나 완벽한 전문성을 하나하나 따져 시상하는 그런 대단한 문학상이 아니다. 오로지 전문작가가 되기만을 꿈꾸어온 예비작가들의 작품들 가운데 다소 흠결이 있더라도 치열한 작가정신과 독특하고도 개성있는 표현, 문학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따져 우열을 가릴 뿐이다. 따라서 설혹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 가능성을 보아 당선작을 뽑을 뿐임으로 문학상으로서의 권위를 논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할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이 그간 겪어온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감각에 의해 산고를 겪듯, 그 누구도 쓰지 않는 자기 자신만의 문체와 어법, 시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하는 작업이 아니겠는가.
  이번 <창작콘테스트> 제36차 공모에 참여해주신 작가 여러분들, 그리고 여러 어려운 여건에서 창작을 자신의 운명으로 택하려하는 모든 분들께 신의 가호가 깃들기를 기원하며 각별한 감사와 격려의 뜻을 전한다.





동상
*******************************************************************
시(詩)부문



■ 침체
   - 김형조


 사그락 사그락 
 여름의 비명을 불러일으키는
 주머니 속엔 가득했던 추모의 말들
 겨울까지 아껴두려 했지만 이미
 위로 받을 영혼들은 모두 무덤을 잃었다
 최대한 조심히 걸었어야만 했는데
 끝내 너에 의해 부서지고야 마는

 봐, 거리가 벌써 노랗게 물들었다고
 당장 어디로든 떠나고 싶다고
 나무에 애처로이 매달린 잎들과 어제의
 노을 지던 하늘 또한 그런 너의 마음과 같았을까
 그리고 어젯밤만은 내가 그걸 이곳에 옮길 수 없었던 이유

 아직 남아 있다고 생각했어

 너는 매일 밤마다 다른 사람이 되었다
 하루는 딱 하루만큼만 담길 수가 있다고
 그날 밤으로 돌아가 너를 다시 마주한다고 해도
 나는 아마 붙잡을 수 없을 거야

 일기예보에선 내일 눈이 내린다 했는데
 거리엔 아직 마르지 못한 잎들이 남아 있었다

 *

 창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는
 소리들에 대해서 생각했어
 그것은 생각할 수밖에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소리를
 붙잡으려는 사람의 마음은 대체 어떤 것인지

 더 이상은 발을 뗄 수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네가 남기고 간 자취들만이 선명해서, 이곳은
 이제 다른 이야기가 찾아올 수가 없다는 것을

 아직 남아 있다고
 끝까지 잘가라는 말을 입안으로 옮겨내지 못했다
 겨울은 그러는 사이에 문득 찾아오는 것이었음을

 다음 이야기가 아니었다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 횡단
   - 김형조


 발자국과 발자국 사이는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었어

 실패한 게임은 저장된 지점부터만
 다시 시작될 수 있고
 마지막 발자국이 지워지는 날엔
 하늘에서 체류하던 몸들도
 지워져버릴지 모른다고

 그래도 다시 이어가는 일이 더 두려워

 저기 위에선 볼 수 있을 텐데
 너와 겪었던 유년의 계절부터
 지난밤 네가 홀로 숨어서 흘렸던 눈물까지
 모든 장면들은 잊혀도 죽지는 않고
 파란 잎맥을 솜사탕처럼 불리는데

 말과 말 사이가 벌어진 만큼 간격에
 귀와 눈을 자수 놓듯 촘촘히 메우고
 하늘로 팔을 뻗어 열리는 천상의 열매들
 내게 허락된 시간만큼 전부 수확할 거야

 네가 걸어가는 길의 종착지를
 저곳에 간다면 알 수 있어

 섬의 끝에는 늘 바다가 존재하고
 어떤 새의 비행은 대양을 넘나들지

 발을 잃은 새가
 남은 전력을 다해 날아가고 있어
 열매를 안고 마침표를 향해서
 새롭게 돋아날 파랑으로


■ 부력
   - 김형조


 팔과 허리 사이가 벌어지며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허공을 가르며
 새가 날아오르다
 하늘 너머 우주 너머까지 날아오른다

 들풀과 들풀 사이가 벌어지며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숲을 지나며
 뱀이 나아가다
 산을 건너 대륙을 건너까지 나아간다

 공상만으로는 어떤 운동도 발생하지 않았다
 산발적인 몸들은 의도함과 동시에 한 곳에 모여 돋아나는 것

 밧줄 아래 허공을 가르는 발길들
 피어오르는 연기 사이 끊임없이 기침들
 도끼에 찍혀 갈라지는 나무들과
 거미줄에 묶여 퍼덕이는 날개들

 연민만으로는 어떤 의미도 생겨나지 않았으므로
 이제 차오르는 순간 망설임 없이 손 뻗을 것


 지향을 멈춘다면
 지금을 기점으로 그저 우리 굽어갈 뿐
 침을 질질 흘리며 바닥으로, 거기 닿고서도
 바닥 너머를 만들어가며 끊임없이 가라앉는 것

 달라붙은 발들 끌고서라도 처진 어깨를 얹고서라도
 맞닿는 심장마다 불을 던져 눈은 항시 타오를 것

 나무 밖으로 툭 떨어지는 사과, 바닥을 구르는데
 그 사과 들어올릴 거라면 온몸으로
 당신이 기어코 삼키겠다면
 넘긴 만큼 꼭 당신 너머 세계까지 닿게 할 것

 밤이 오기 전까지 우리 모두 필사적으로 차오를 것

 눈을 열고 눈을 닫는 일 
 그 사이사이로도 바람이 계속 일고 있었다


■ 중독자
   - 김형조


 빛나는 빵이야 나에게만 빛나는 빵
 오늘 아침인지 일 년 전인지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어제는 분명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은 어제도 오늘 이 자리에 있었다는 말인가 
 모르겠다 대체 그것을 여기 누가 알 수 있으려나
 오늘 내 눈에 빛나는 빵 내 눈에만 빛나는 빵
 입안에 가득 욱여넣고 최대한 잘게 갈리도록 하루 종일 씹어댈 거야
 최대한 전부 느낄 거야 천천히 천천히 다 소화시키고 말 거야
 다른 눈이 지나갔다면 과연 빛났을지 
 과연 이 빵을 발견해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미 내 손안에 들려있으므로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
 이미 내 입은 씹기 시작한지 오래이므로 
 '누군가는 봤음에도 집어 들지 않았다'라고 들린다고 해도 이젠 다 소용없는 일
 늘 굶주린 상태로 나의 눈은 찾아왔던 것만 같다
 빛날 수 있는 그러나 내 눈에만 빛날 수 있는
 지금도 내 주위로 빵들이 곳곳에 널려 있을지 몰라 
 이건 추측이긴 하지만 꽤 그럴싸한 걸
 나도 종일 서재 안에서 굶주림을 달랬던 시절이 있어
 그래서 지금의 이 기쁨을 너희들과 함께 나누려고 해 
 너희들의 가혹한 밤을 밝혀줄 한줄기의 포만감
 그 뒤에 나는 이곳을 떠날 것이다
 당신들과 다르게 내게는 서재 안에선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으므로
 태양이 머리 위에 떠 있을 때에도 나는 너무 어두웠다
 어두워져야만 내가 죽지 않을 수 있었다


■ 빙하기
   - 김형조


 겨울이 오기 전에 따로 집을 지었어야만 했는데
 내 눈앞에 보이는 광경들이 전부 내 집이 되어야만 했었나

 추억하는 것만이 가능한 곳이다 잊혀진 계절들이 소복이 쌓이고
 쌓이는 것들은 죄다 내 것이 되어야만 했으니까
 내 것이 된 것들엔 늘 아파해야만 했으니까

 나를 지나쳐 간 것들이 안개가 되고 구름이 되고
 전보다 더 무거워질 수도 있다는 것은 몰랐지
 이젠 우산 하나만 가지곤 지켜낼 수 없는

 여름에서 겨울
 그러니 또 다른 여름이 다시 오고 있다 믿었지만

 얼어버린 강물 위를 걸으며
 나도 그때 저 편으로 건너야만 했는데

 그늘 아래를 더 이상 버티지 못할 때
 앞에 선 나무들과 만날 수 있고 버티지 않을 때
 저 나무에 맺힐 수 있을지 몰라
 아직 여전한 그리고 이젠 영원해져가는 이 집에서

 청사진은 이제 빈 땅 위에 그려지기 시작한다
 하늘엔 새겨질 수가 없는 꿈이었다
 더는 우산이 필요 없어진 시간 속에서
 누군가의 지붕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
동상
당선작 심사평


  제36차 <창작콘테스트> 동상은 시(詩)부문 김형조 씨의「침체외 네 편의 시를 선정했다. 
당선자께선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시인 김호철 / 시인 정은정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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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 고향의 축제
   - 정석두


누구에게나 아련한 추억이 있다. 그것은 살아가면서 시를 만들기도 하고 사고하는 바탕이 되기도 한다. 재경 향우회에서 주형이가 우연한 말끝에 수십 년이나 지난 그 일이 속임수였을 거라고 했다. 성구조차도 그럴 수도 있다고 맞장구를 쳤을 때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그것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나의 보루였다. 그 일이 진짜로 꾸며진 것이었다면 지금까지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 온 유년기의 기억들이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마르지 않는 샘 같은 내 유년의 공간이 훼손되는 것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뒤로는 어래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앞으로는 청보리가 일렁거리는 넓은 들판의 한복판에 깨어진 사금파리처럼 흩어진 초가집들이 옹기종기한 마을이 존당마을이다.
가난을 벗어나고자 정부에서 통일벼를 도입하던 첫 해였으니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로 정확히 기억한다. 백양목숲 건너편의 작은 오두막으로 서울에서 어떤 할머니가 젊은 딸과 함께 이사를 왔다.
그전까지는 비록 가난하기는 했지만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월성 손씨 집성촌이라 외지에서 들어온 타성바지들에게는 약간 배타적인 마을이었는데도 모녀는 마을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특유의 붙임성도 있었지만, 여자들만 사는 집이어서 아낙들이 쉽게 드나드는 사랑방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젊은 딸의 상냥하고 멋진 서울말이 신비로웠다. 사람들은 그 집을 서울 할매 집이라고 불렀다.
이 집은 우물가나 빨래터처럼 누구 집의 소가 새끼를 낳았다거나 다음 장날에 읍내 콩쿨대회(노래자랑)가 있다든가 하는 시시콜콜한 마을의 소식보다는 쉽게 말할 수 없는 은밀한 소문들의 발상지가 되기도 했다. 빨간 옷을 입고 첫인사를 왔다는 이유로 못골댁 둘째 며느리를 어디에서 굴러먹었을 거라는 의심을 진짜처럼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그들이 이사 오고 가을걷이가 끝난 그해 겨울에 마을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서울 할머니가 열병으로 몇날 며칠을 혼수상태로 몸져누웠다가 깨어난 후에 갑자기 신기(神氣)가 생겨 무슨 일이든지 족집게처럼 맞히는 영험함이 생겼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소문의 발단은 곰보 조평달씨로부터 시작되었다.
조평달씨는 사람됨이 나빠서가 아니라 문중산을 관리하는 산지기란 직업도 있지만 노름판을 기웃거리고 술이 거나하면 질러대는 고함 때문에 ‘초삐’ 또는 ‘좆팽다리’로 쉽게 불리던 위인이었다.
그가 마을 사람들과 같이 서울 할매의 병문안을 갔는데 사립문을 들어서자마자 송장처럼 누워 있던 할매가 벌떡 일어나서 ‘부정 타는 저지레를 지른 놈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 들어오느냐’고 득달같은 호통을 쳤다.
그러자 같이 갔던 사람 중에 유독 조평달씨만 발이 땅에 딱 달라붙어 오도 가도 못 하였다. 사람들이 달려들어 떼어 내려 했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겁에 질린 그가 며칠 전에 노루를 잡아 마을 사람들 모르게 혼자 먹었다고 실토를 하고 살려 달라고 빌면서 애원을 했다.
그제야 발이 떨어진 조평달씨가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을 쳤다는 소문이 온 마을에 쫙 퍼졌다.
그러나 듣기만 했지 직접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영험하다는 소문을 들은 마을 사람들은 은밀히 할매를 찾아가 타관에 나가 있는 자식들의 신수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윗대 조상의 악상까지도 훤하게 알아맞힌다는 소문은 꼬리를 물고 풀모단, 황새말, 노당리 등 근동의 큰 마을로 퍼져 나갔다. 몸이 아픈 사람들도 할매의 눈빛만 보아도 병이 나아 버린다는 것까지도 합세하여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점괘를 시험해 보기 위해 거짓 신상을 말했던 대밭골 당골네는 입이 돌아가 버렸다는 소문도 났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을 가득 태운 대절버스 한 대가 동네 어귀에 들어왔다. 좁은 신작로를 따라 곡예 하듯 나타난 버스는 아이들에게는 처음 보는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비로드 치마저고리를 입은 귀부인들은 소문을 듣고 찾아온 도회지 사람들이었다.
대절버스가 들어온 것이 도화선이 되어 서울 할매는 더 유명해졌고 아픈 사람에게 손만 가져다 대도 병이 낫는다는 신의 손도 되었다.
조만간 방송국에서도 찾아올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도회지에서 온 사람들은 숙식을 마을의 집집마다 묵었다. 사랑채가 있는 집은 사랑채를 빌려주고 그렇지 못한 집들은 식구들을 한방으로 몰아붙이고 안방까지 내어 주고 방세를 받기도 했다.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자 질서를 위해서 번호표를 나눠 주면서까지 점을 쳐야 했다.
표를 나눠 주거나 순서를 정하는 것은 할매의 딸이 하였고 질서를 유지는 조평달씨를 포함하는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맡았다. 방만 빌려주던 사람들은 돈맛이 들어 밥까지 해서 팔기 시작했다. 무싯날에도 십리길 안강 읍내에서 동태와 두부 등을 사다 날랐다.
돌담에 나팔꽃 넝쿨이 우거진 집에 살던 점례 아버지는 도회지 사람들의 구미를 맞추기 위하여 검은 돗바늘이 듬성듬성 달린 돼지고기까지 끊어다 날랐다.

밥상머리에서 할아버지는 점을 보러 오는 사람들 중에는 국회의원도 있고 대학교수도 있다고 했다. 보리 매상 때나 봄나물이 나올 때가 아니면 동전 한 푼 나오지 않던 가난한 마을에 돈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까만 고무신만 신던 내가 난생처음으로 끈이 있는 운동화를 신어 보았으니 나도 그 혜택의 영향권에 있었던 셈이다. 꾀가 많은 기출이 아재는 방을 두고도 없다고 버티다가 돈은 더 받아 낸다고 마을 사람들이 수근거렸다.
서울 할매 집은 집대로 점괘가 나쁘게 나오면 복채를 내는 것만큼 액운을 감면해 주기도 하였으므로 존당마을은 강아지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도 있었다. 겨울이 지나고 그 이듬해 한여름에도 마을안의 황톳길에는 풀썩풀썩 날아다니던 땅 메뚜기 대신에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여기까지가 향수 속에 있는 내 유년기의 떠들썩했던 축제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야 이 이야기의 서두에 말한 꾸며진 것이라는 주형이의 말은 나를 허무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는 왜 그 일이 속임수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는지 조심스레 말했다.
마을의 사당 앞을 지나는데 조평달씨가 사당으로 들어가고 뒤이어 서너 명의 낯이 익을 듯 말 듯 한 사람들이 따라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거기에는 서울 할매의 딸도 있었으므로 사당 안으로 들어갔던 그 사람들은 버스를 끌고 왔던 보이지 않는 큰손에 의해서 포섭된 정보를 가져오는 끄나풀 일거라고 했다. 번호표를 사고도 순서가 따로 없었던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신상이 도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자신의 견해를 덧붙임으로 틀림이 없을 거라고 못을 박았다.

흑백텔레비전에서 보던 멋진 박치기 프로 레슬링이 미리 짜 놓은 각본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밝혀졌을 때 추억의 한쪽이 뚝 떨어져 나가는 허무를 경험했던 그때보다도 더 지독한 허무가 몰려왔다.
어찌 되었든 그 친구도 나처럼 어릴 적에 고향을 떠났으므로 어떻게 그 축제가 마무리되었는지 서울 할매가 돈을 얼마는 벌었는지 그 뒤의 일들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다만 조평달씨도 서울 모녀도 나의 새 운동화도 향수 속의 소중한 기억들이다. 만약에 그것이 대절버스를 몰고 온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꾸며진 진짜 속임수였다면 내 유년의 소중한 서정이 너무 공허하여 더 깊은 허무 속으로 빠져 버릴까 두려웠다.
추억은 순간만 머물러 있는 기억이 아니라 살아오면서 생각하는 모든 것의 시발지이며 끊임없이 시적인 감성을 만들어 내는 발전소이기 때문이다.



■ 어머니와 간장 두 병
   - 정석두


내가 나를 맘대로 할 수 없는 나는 내가 아닙니다. 그래서 나를 ‘사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에게 지독히도 끈질긴 당뇨란 놈은 이제는 먹는 약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신다. 그나마 조금 기력이 남으신 아버지가 뼈만 앙상한 어머니의 쭈글쭈글한 팔에 인슐린 주사를 놓고 있을 동안 사내는 엉거주춤 서 있을 뿐이다.
자신이 해야 몫을 못하는 것에 대한 죄송함과 어색한 분위기를 외면하듯 머리맡에 있는 약통만 뒤적거린다. 약 바구니로 쓰이는 영양제의 빈 곽인 큰 양철 상자 안에는 약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크고 작은 약병들과 ‘아침’, ‘저녁’이라는 글만으로는 무슨 약인지 알 수 없는 비닐봉지 속의 많은 알약들이 여든 노인의 무거운 일상을 대변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혈압과 당뇨 약을 거의 30년 이상이나 복용하고 계셨지만 또 몇 가지의 약이 더 늘었다. 이렇듯 약은 어머니의 동반자가 되었다. 고작 몇 달 만에 한 번씩 의무인 양 손님처럼 휙 둘러보고 가는 사내를 그래도 자식의 그늘이라고 아버지는 사내에게 물었다.
“이 약이 뭔 약이래? 이걸 먹이면 너거 어무이가 자꾸 잠만 자는데 무슨 약인공?”
사내는 약병을 받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무조건 주는 대로 받아 오는 노인의 답답함에 짜증을 낸다. 약병에 ‘파킨슨의 통증 완화’라는 작은 글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병원을 한 군데만 다니셔야지 여기저기 다니시면 약만 많아지잖아요.”
오죽했으랴! 사내는 또 맘에 없는 소리를 한다. 아버지는 ‘니가 어디 한 번이라도 병원에 데려간 적이 있니?’라고 반목하실 법도 하지만 죄를 지은 양 머뭇거리신다.
“무슨 약인지 그걸 안 먹으면 고개가 뒤로 젖혀져서.”
“이런 시골 병원에서 뭘 안다고 지들 맘대로 진단을 내리고…….”
차라리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과 자신의 불효에 대한 제 설움에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심통을 부린다. 맏이가 아니고 차자라는 허울의 그늘에 숨어 병원 한 번 모시고 가지 못한 불효 위에 또 다른 빈정거림으로 불효보다 더 큰 패악을 저지르고 있었다.
멋쩍은 듯 다른 상자에 쌓인 약통을 뒤적거리면서는 혹시나 중복되는 약이 없는지 살펴보면서 약간의 무거운 마음을 덜어 내려고 애를 섰다.

집으로 올라오는 날 아침 어머니는 방문턱을 기다시피 넘어가서 엎드리신 채 싱크대 찬장의 맨 밑 칸에서 비닐봉지에 꽁꽁 싸서 노끈으로 동여 멘 페트병 두 개를 꺼내셨다.
몸이 이토록 나빠지시기 전에 담그신 간장이었다. 이 간장이 사내에게 주는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젖이라는 것을 사내는 안다.
가난이 돌처럼 짓누르던 그 시절 어리던 오 남매를 위하여 일찌감치 시들어 버린 어머니의 삶도 왜 모르겠는가? 그래서 마음이 저며 오지만 저며 오는 마음만큼 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사내의 이기심과 함께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다. 이 간장병을 묶어 놓고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이별은 언제나 힘든 것이다.
“언제 다시 오누?”
“약 잘 잡숫고 계세요. 곧 올게요.”
늘 그랬듯이 사내는 또 ‘곧’이라는 말을 했다. 당면(當面)을 모면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쉽게 내뱉은 ‘곧’이라는 측량할 수 없는 시간의 부사어로 인하여 대문 밖에 차 소리가 나도 노인은 귀를 세울 것이다.
“대학 병원에 가 볼랍니까?”
어머니는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절대 가시지 않으리라는 것과 가실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내는 또 물었다.
“놔 둬라. 우리는 개않다. 너거도 어려울 텐데.”
옆방에서 아내가 아버지에게 봉투를 내미는 모양이다. 알량한 몇 푼의 용돈으로 불효를 희석시키고 있었다.
사내가 집을 나서기 위해 일어선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현관문까지 기다시피 나오셔서 오랫동안 신지 않았던 먼지가 앉은 플라스틱 슬리퍼를 신으셨다.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시는데 손등의 힘줄이 파르르 떨린다. 아버지가 부축을 하여 몇 발자국을 떼신다. 사내는 또 엉거주춤 어머니를 잡지 못한다.
“힘도 부치는데 왜 나오시려고 그러세요.”
아버지를 뒤따르면서 사내는 마음에 없는 말을 또 했다. 대문을 나서다 빛이 바랜 호마이카 문패를 얼핏 본다. 언제까지 저 문패가 달려 있을까 생각했다. 어머니는 대문가에 놓인 댓돌에 걸터앉으시며 가쁜 숨을 몰아쉬셨다. 이별은 늘 이렇듯이 혹시나 이게 마지막이 될까 사내는 덜컥 두려웠다.
“어여 가라. 운전 조심히 하고.” 아버지가 당부하신다.
시동을 걸고 몇 미터를 갔을까? 백미러에는 두 노인의 흰머리가 들어온다. 또 어머니의 고개는 또 뒤로 젖혀지고 아버지는 그대로 멍하니 자동차의 뒷모습을 쳐다보신다. 두고 가는 걱정보다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설움이 더 앞선다.
사내에게서 심연의 깊은 곳에서 무언가 울컥하는 뜨거움이 올라온다. 죄스러움과 걱정과 애련함에 범벅이 된다.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어머니! 내 앞가림 하기 바쁘다는 핑계로 내 생각만 하여 온 나는 치졸한 이기주의자입니다. 주머니 속의 전화기에 버튼 하나 누르는 것도 하기 귀찮아했던 게으름뱅이입니다.
나를 맘대로 할 수 없는 나 또한 내가 아닙니다. 어머니.




********
동상
당선작 심사평


  제36차 <창작콘테스트> 동상은 수필부문 정석두 씨의 「고향의 축제외 한 편의 수필을 선정했다.
당선자께선 본 당선을 계기로 향후 한국 문단, 더 나아가 세계 문단에 우뚝 설 수 있게끔 
보다 치열한 정진이 있기를 기대한다.


수필가 유미숙 / 수필가 정금희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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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부문



■ 은행나무와 꽃무늬 스웨터
   - 박선영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노을은 이미 해를 삼켜버렸는데 어머니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다. 마을 공터에도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데 어머니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는 꽃무늬 스웨터도 없다. 그제야 짐작 가는 곳이 있다. 아무도 몰래 집을 나선다. 비뚤비뚤 이어진 논둑을 지나자 조붓한 산길이 이어진다. 층층을 이룬 산밭에는 작물들이 키를 재고 있다.
   산과 밭의 경계에 초록이 무성하다. 한껏 물이 오른 은행나무 한그루가 턱 버티고 선 채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발아래 세상을 관장하듯 위엄이 서려 있는 은행나무는 늘 봐도 변함이 없다. 사시사철 색깔만 달리할 뿐, 산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듬직하다. 품을 벌려 뭐든 다 안아줄 것만 같다.
   나무 밑에 어머니가 앉아 있다. 무심하게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에 노을이 짙다. 도대체 저런 자세로 얼마나 앉아있었던 것일까. 얼굴에 노기가 사라진 걸 보니 꽤 오래 있었던 듯싶다. 나무 밑에서만큼은 어머니의 얼굴에 깃든 평화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머니가 의지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것에 안도의 숨이 나온다.
  어머니는 그렇게 산밭 은행나무에 마음을 달래며 살아오셨다. 만약에 나무마저 없었다면 어머니는 어찌 살아오셨을까. 그 때문에 나 또한 산밭 은행나무가 신성하게 보였다. 그냥 나무가 아닌,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마음을 다독거려주는 그런 나무가 우리 집 선산 산밭에 있었다.
   어머니는 15살 어린 나이에 32살이던 아버지와 혼인했다. 당시 일제강점기 시대는 처녀들을 공출했기에 어머니는 공출을 피하고자 혼인을 선택한 것이었다. 요즘 나이로 15살이면 아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예전에는 어디 그랬는가. 엄한 시집 가풍에 무조건 순종해야 했고, 시집살이가 아무리 혹독해도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당시 여자라면 누구나 겪는 시집살이와 집안일쯤이야 어머니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일해야 먹고 살 수 있었고, 시집살이야 각오했으니 그로 인해 어머니의 삶이 흔들린 건 아니었다.
   어머니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건, 대를 잇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종가라면 모든 책임이 여자에게 있었다. 결국 어머니는 남편을 베갯동서에게 내어주어야 했다. 종부의 의무만 남고 권리를 빼앗겨버린 어머니는 화를 가슴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상처를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온 집안이 뒤집어진다는 걸 잘 알던 어머니의 선택이었다.
   화병은 끝내 폐병을 불러왔다. 어머니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심한 기침으로 온몸이 녹아내리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기침 소리마저 들으려 하지 않던 어른들과 아버지로 인해 숨어서 울음을 삼켰다. 기운이 없어 비실비실하다 마루에 걸터앉기라도 하면 영락없이 어른들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머니는 마음대로 쉬지도 못한 채 남들의 눈을 피해 가쁜 숨을 삼켜야 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어머니는 호미를 자주 들었다. 밭에 가기 위해서였다. 빈손으로 집을 나가면 누군가 또 없는 말을 만들까 봐 어머니는 호미와 양동이를 들고 집을 나섰다. 밭에 갈 때 어머니는 꽃무늬 스웨터도 잊지 않았다. 허청허청 산에 오른 어머니가 호미를 밭둑에 두고 먼저 찾은 건 은행나무였다. 언젠가부터 나무는 어머니의 가장 절친한 벗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나무를 향해 당신의 마음을 쏟아놓았다. 나무가 마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머니는 뭉친 마음을 그렇게 풀어놓으셨다. 나무는 어머니를 품어 주었다. 가지를 흔들어 다친 마음을 다독거려주고, 그늘을 만들어 어머니의 심신을 편히 쉬게 해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실하게 매단 은행 알은 어머니의 폐병에 도움이 되었다. 어머니는 손에 잡히는 대로 은행을 양동이에 주워 담았다. 은행이 기침에 좋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이다. 은행나무는 어머니에게 정신적 육체적 버팀목이었다.
  어머니가 꽃무늬 스웨터를 가져간 건, 추위를 피하려 한 것도 있지만, 어머니도 여자로서 예뻐 보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었다. 베갯동서에게 아버지를 빼앗겨버린 후, 어머니의 젊음은 파리하게 시들어갔고, 외로움은 가슴에 똬리를 틀었다. 꽃무늬 스웨터를 입고 어머니는 나무아래 조용히 앉아 눈을 감았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서라도 어머니는 여자이고 싶었다.
   어머니가 쓰러지던 그 날도, 호미를 들고 어머니는 산에 올랐다. 밭에는 일이 지천이었다. 뙤약볕 아래 어머니는 땅을 일구었다. 끝이 없는 일은 어머니의 손에서 호미를 놓지 못하게 했다. 어머니는 심한 어지러움에 허공을 붙잡다 밭둑에 고꾸라졌다. 그 와중에도 살아야겠다는 의지 하나로 어머니는 기어서 나무 밑으로 갔다.
  그리고 어머니는 나무 밑 풀숲에 고여 있던 물을 마셨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 있던 어머니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았을 때 옆에는 해골바가지가 뒹굴고 있었다. 어머니가 마신 물은 해골바가지에 고여 있던 물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근처는 빨치산들이 활동하던 무대였고, 해골의 주인은 시동생의 것으로 밝혀졌다. 기막힌 우연이었다.
   어머니는 은행나무 옆에 시동생의 봉분을 만들고 해마다 정성껏 제사를 지내주었다. 그 후 어머니의 폐병은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세상의 이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그 후 건강을 되찾았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너그러워졌다.
   어느 날, 베갯동서가 사라졌다. 딸만 다섯을 낳아 놓고 그 딸들을 온전히 어머니에게 맡긴 채 혼자 떠났다. 내게는 동생이 다섯이나 생긴 셈이다. 그날 아침, 밥상에는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굴비가 놓여 있었다. 딸들을 부탁한다는 의미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에게는 또 다른 삶이 펼쳐졌다. 다섯이나 되는 애증을 보듬어 안아야 하는 어머니는 품을 넓히기 위해 또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주위의 눈총과 숙덕거림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오히려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에겐 나무가 필요했다. 어머니의 하소연을 묵묵히 들어주던 나무도 가끔은 눈물을 흘리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머니는 나무에서 무엇을 얻으려 했을까. 나는 산에 올라 나무를 볼 때마다 어머니가 풀어놓았을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듣는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나무를 쓰다듬고 어머니처럼 그 자리에 앉아 밭을 둘러보곤 했다. 그러면 씀벅씀벅 가슴이 아려왔다. 감히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어머니의 삶이 내게로 스며들어와 눈물이 되었다.
   이제는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는 나란히 나무 옆에 누워계신다. 그 질곡의 세월을 다 품어 안고 흙 속에서 영원한 삶을 얻으셨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살아생전 어머니가 보인다. 꽃무늬 스웨터를 입고 은행나무 아래 앉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어머니가 보고 싶은 날이면 아직도 푸른 그늘을 드리운 채 묵묵하게 서 있는 은행나무에게로 달려가고 싶다. 



■ 삶의 여백을 채우다
   - 박선영


   그날, 가족들은 모두 들에 나가고 없었다. 나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문을 잠근 채 방에 드러누워 있었다. 집안은 조용했고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때, 부엌 쪽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쥐 두 마리가 쏜살같이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부엌 시렁 위에 있던 쥐약을 꺼냈다. 밥 두어 숟갈과 쥐약을 비벼서 구멍 앞에 두고 부엌바닥에 오도카니 앉았다. 지난밤 아버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농사를 쎄빠지게 지어봤자 먹고살기도 어려우니 너까지 대학에 보내기가 힘들구나.”
  아버지는 휴우, 한숨을 내쉬었고 그 바람에 등잔불이 흔들렸다.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버지의 눈물을 본 건 처음이었다.
“그럼 제가 포기 할게요”
  하는 말이 튀어나와버렸다. 교대로 진학해 교육자가 되겠다던 꿈은 산산이 조각났다. 그날 밤 베개가 젖도록 울었다. 내게는 공부가 최고였던 그때, 대학에 못 갈 바에야 살아서 뭘 하겠나 싶은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쥐약을 마셔버렸다. 평상에 누웠는데 하늘에는 구름이 떠다니고 있었다. 마치 내가 구름 위에 떠 있는 듯 나는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다. 날 내려다보고 있던 아버지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맺혀있었다. 그 사건은 평생 나를 따라다니던 병으로 찾아왔다.
   눈 깜빡하면 지나가는 게 인생이라더니 정말 그랬다. 나는 공부 대신 결혼을 했다. 십년 만에 낳은 아기가 옹알이를 하면서 맨 처음, ‘엄마!’라 불러 주었을 때 코끝이 찡해지면서 귀가 먹먹했다. 아기는 내 삶의 전부였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식 날, 술을 좋아하던 남편이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특별한 기술 없이 아기와 살아가는 건 쉽지 않았다. 쥐약을 마셨던 일로 인해 나는 ‘만성 폐쇄성 폐 질환’이란 병을 얻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직업을 갖기 쉽지 않았다. 아들의 수학 여행비를 마련할 수 없던 날, 아들은 “엄마 괜찮아!”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울었다. 아들은 일찍 철이 들어 중학교 때부터 새벽 신문 배달을 했다. 하지만 아들의 코 묻은 돈마저 내 약값으로 들어갔다.
    나는 백화점에서 배달 일을 시작했다. 밤늦게까지 일을 하면 일당 삼만 원을 받았다. 남편의 제삿날,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더니 어린 아들이 햄과 맛살로 전을 붙이고 아빠 제사상을 차려놓았다. 그날 둘이서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아들은 잘 커 주었고 결혼도 했다. 하지만 내 가슴은 늘 허전했다.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었다.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 방송대에 입학했다. 처음에는 의욕에 불타올랐으나 쉽지 않았다. 더구나 손자를 키우고 있는 나로서는 시간이 자유롭지 못했다.
   공부도 해야 하고 손자도 봐야 하고, 바쁜 날들이 이어졌다. 아기를 그네에 앉혀놓고 컴퓨터 강의를 들었다. 오십여 년 만에 펼쳐본 교과서는 지면에 깨알처럼 글자로 가득 차 있어 어지럼증이 일었다. 아래쪽을 읽으면 금방 읽은 위쪽이 생각나지 않았다. 다음 장을 읽으면 앞장이 까마득해졌다.
  일 학년 말경, 김포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상황은 더 좋지 않게 되었다. 김포에는 방송대 학습관이 없다 보니 서울로 가야 했다. 서울까지는 왕복 네 시간 정도, 걷다보면 숨이 찼다. 어린이집에 보낸 손자를 데리러 갈 시간에 맞추느라 달음박질을 하고 다녔다.
   이 병은 숨쉬기가 어려워지는 게 특징이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면 정신이 가물가물해진다. 한번은 길가에 주저앉고 말았다. 의사는 수술도 할 수 없고, 고칠 수도 없는 병이라 평생 약을 먹는 게 최선이라 했다.
  공부를 놓고 난 뒤, 오십 년이 지나서야 손에 쥔 대학 졸업장을 받던 날, 자살하려고 약을 먹었던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부모님 산소를 찾았다. 졸업장과 사진을 앞에 놓고, 절을 올렸다. “아버지 어머니, 생전에 불효를 용서해 주십시오.” 나는 엎드린 채 엉엉 울었다. 손자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따라 울었다. 할머니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인지, 여섯 살 손자도 책 읽기를 좋아한다. 국문과를 졸업한 뒤 교육과에 편입해서 교육학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공부를 시작하길 정말 잘했다고, 공부를 하면서 늘 나를 따라다니던 후회와 절망, 체념을 뛰어넘을 수 있는 용기를 배웠다. 내 나이 칠순을 넘겼 지만, 소중한 매 순간을 위해 나는 오늘도 컴퓨터를 열고 자판을 두드린다. 내 인생도화지에는 파란색으로 채워야 할 여백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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