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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0 23:59

첫 불효 외 1편

조회 수 118 추천 수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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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불효

 나는 우리집에서 위로 누나 둘 있는 셋째 막내아들이다. 예전 남아 선호사상이 팽배했던 시절, 왠만한 집들이 그랬듯이 우리 엄마 또한 아들을 중시하는 집에서 자라났는데, 아마도 그래서 엄마는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초콜릿 하나 더 주고, 옷 하나 더 사 입히며 누나들보다 더욱 알뜰살뜰하게 챙겼나보다. 그걸 아는 나 또한, 누나들에게 미안하면서도, 엄마를 그만큼 사랑했고 그 사랑은 나에게 사명감 같은 것으로 심어졌다. 말하자면, 나는 항상 무슨 행동을 하기에 앞서, ‘지금 내가 하려는게 엄마에게 부끄럽지 않은 일인가?’라는 자문을 스스로에게 던졌고 그에 따라 판단해왔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판단을 해오면서 바르게 살아왔다는 사실에 때로는 나 자신을 합리화 시켜 가끔은삐뚠 길로 나아가기도 했었지만, 대체로는 엄마의 무한한 사랑만큼 내 마음 속 판사봉 또한 올 곧고 부끄럽지 않게 올바른 결정을 두고 내리쳐졌다. , , 땅 하고 말이다.

 지금 내 목 뒤에는 벌에 쏘인 자국이 불그스름하게 남아있다. 지난 우리 학과 체육 대회 때 실수로 꽃 하나를 잘못 건드려 벌의 성질을 돋군 대가였다.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벌에 쏘인 것인데, 그 작은 침 하나가 그렇게 따끔따끔하고 뜨거운 맛을 보여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근데, 그 예전 우리 엄마는 이런 걸 수 십여 개나 맞았다는 말이지... 또 가슴이 미어졌다. 벌침이 꽂혔던 목 뒤를 어루만지며 수년전의 일을 떠올렸다.


 지금으로부터 아마 8년 전쯤인 20089, 추석으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십대 중반의 중학생이었고, 우리 가족은 추석에 올릴 제사 전에 미리 벌초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 날 아침 엄마가 날 조용히 깨우며 영식아, 벌초해야 하는데 안 갈 거야?’ 라고 물었다. 잠결에 나는 귀찮았던 나머지, 짤막하게 , 잘래.’ 하고 내던지듯 대답해 버렸고, 그 날 오후 엄마는 엠뷸런스를 타고 응급실로 실려 갔다. 나중에 누나들과 같이 찾아가서 본 엄마는 병원침대에 누워, 한 여름인데도 춥다면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엄마의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고, 그렇게 하면 조금이나마 따뜻한 것인지 이불을 꼭 잡은 당신의 두 손은 너무 꽉 쥔 나머지 새하얗게 질릴 정도였다.


 같이 가셨던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산소 주변에 난 키 큰 풀들을 베다가 땅벌이 사는 굴을 잘못 건드려 속수무책으로 쏘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벌들한테 쫓기다 땅바닥에 대굴대굴 굴렀다고 하는데... 그 모습이 선명하게 눈 앞에 그려지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도망가는 엄마의 얼굴은 정말 처절했다. 덜컥 겁이 났다. 지금 저기 누워있는 우리 엄마가 어떻게 되어버릴 것만 같았고, 후회되었다. 아침에 그 잠깐 귀찮은 떨치고 같이 갔더라면 우리 엄마 지금 저기 누워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났다. 너무 미안했고, 면목이 없었으며, 어떻게든 그 댓가를 치르고 싶었다. 우리 엄마 저렇게 만든 건 다른 사람도, 땅벌도 아닌 나다. ? 엄마는 나를 깨워서 끌고 가지 않은 걸까? 내가 잔다고 해도 어떻게든 데리고 갔다면, 저렇게..!


엄마 잘못이야?

 

 감히 지금 이 상황에서 책임을 돌리려 한 내가 정말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의심이 들었다. 슬쩍 자리를 피해 화장실로 들어가 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남몰래 울었다. 날 데려가고 싶었던 엄마, 데굴데굴 구르며 비명을 질렀을 엄마, 그리고 지금 저기 있는 엄마.. 왜 직접 보지도 못한 엄마의 모습이 이렇게 쉽게 떠올라, 가슴 턱 막히게 잘 그려지는 것일까. 그와 동시에 대비되어 떠오르는, 뭔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른 채 침대에 처자빠져 있는 나의 모습. 죄책감,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을 해하는데, 다른 이도 아닌 내 자신이 일조를 했다는 생각에, 나는 눈물 그칠 줄 모르는 내 못난 얼굴만 마구 쥐어짜댔다. 나는 감히, 아까 보았던 엄마의 하얀 손을 잡아 줄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내가 잡는 순간, 춥다고 떨던 엄마가 눈 치켜뜨며 날 노려본 채, 손을 탁 쳐내며 매섭게 쏘아 붙일 것만 같았다. ‘잠이 잘 오던?’


 벌에 쏘이며 땅바닥에 구르던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렇게 죽는 건가 싶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얘기하는 걸 들었을 때, ‘영식이 두고 이렇게 가나 싶었지. 애 아직 학교도 다 못 보냈는데..’ 내 마음 속 어딘가, 당연히 엄마는 나 때문에 사는 거라 여기고 있었지만, 새삼 그것을 엄마의 목소리로 직접 확인했을 때, 먹먹해진 가슴은 더욱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나를 낳았을 때부터, 아니 어쩌면 그보다 먼저 우리 큰누나를 낳고, 키울 때부터 지금까지 자식이 아닌, 온전히 자신을 위해 시간을 할애 한 적이 있을까? 어디 맛있다는 음식점 생기면 영식이 데리고 가봐야지’, 나는 정말 괜찮은데도 비싼 거 입어야지하며 기필코 브랜드 매장 가서 옷 사 입히고, 근데 난 뭘까. 그런 엄마에게 뭐 하나 해드린 게 없다.


 불효. 지금껏 살아오면서 엄마에게 그렇게 부를 만큼 큰 누를 끼친 적은 없었다. 공부도 남들보다 뒤처지진 않았고, 엄마가 원하는 것이 나도 원했던 것이니까. 그런데 그냥 그렇게 이러한 뜻을 가진 단어구나라고만 인지했던 그것의 주어가 나라는 게 막상 느껴졌을 때, 불효란 나에게도 결코 무시 못 할 아픔이 되고 쓰라린 상처로 남는다는 걸 처음 알았다. 미어진 가슴은 계속해서 미어지고, 차오르는 눈물은 보 터진 하수 마냥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중에 나온 검진결과, 엄마를 쏜 벌들이 그리 강한 벌들이 아니라서 잠시 신경적 장애가 왔을 뿐, 큰 지장은 없을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에서 뭉턱한 덩어리가 턱 하고 미끄러져 내려갔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역하기 전인 올해 초, 마지막 휴가를 나왔다가 복귀한다고 버스터미널에서 차를 탈 때, 엄마는 또 눈물을 보이셨다. 신병 휴가 때는 그렇다쳐도 설마 이제 곧 전역 앞둔, 병장 휴가 복귀할 때도 이럴 줄이야... 우리 엄마 참 극성이네, 하면서도 나는 엄마 없으면, 엄마는 내가 없으면 어떻게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한사코 너 잘되면 엄마도 행복해하고 말씀하시지만 그 말을 듣고 진짜 해드린 게 없는 내가 어찌나 어리석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리고 재작년 추석에는 명절을 맞아 부대에서 한창 쉬고 있는 나를 위해 엄마는, 나 없이도 산소를 올라가, ‘우리 영식이 잘 봐주세요.’ 하고 절을 올리셨으리라.‘엄마라는 거대한 사랑과 헌신 앞에, 거듭해서 초라해지는 나였다.


 그 때로부터 몇 년이나 지났다. 이제 군대도 다녀왔고, 23살의 모자랄 것 없는 어른이요 아들이다. 그 동안 뭐 하나 해드린 것도 없는 엄마에게 미안해하기보다 앞으로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는지 보여드리는 것, 그게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그래왔던 것처럼, 항상 무슨 일을 하던, 늘 내 생각을 하고 있을 엄마를 생각하며 부끄럽지 않게, 후회할 일 없이 살아가야겠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아직은 아니다.


 곧잘 그런 생각을 해왔다. ‘고아로 태어나는 게 더 편했을지도 몰라.’ 이 생각은 내가 나의 미래를 상상할 때면 언제나 그 뒤를 따라왔다. 그 미래란, 이리저리 치여 사는 한국에서의 삶이 아닌, 한적한 섬처럼 유유자적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 걱정 없이 살고 있는 나였다. 그냥 누구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제 할 일만 하고 살아가는 나 자신 말이다. 거기엔 부모님도 없고, 자식은커녕 아내도 없다. 오로지 철저하게 나 혼자 살아간다. 그에 반해서,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부모님이라는 족쇄에 묶여,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대학에 진학하여 또 다시 공부를 하고 있다. ‘이건 그냥 서로 보기 좋으라고 하는 진짜 비효율인 짓이야!’ 정말 나는 부모님이 적당히 나한테 위로금이나 몇 푼 얹어주고, ‘이제 니 알아서 살아라라고 말씀해주시길 바랬다. 그렇다면 당장 대학 때려 치고, 공장 다니든 뭐든 해서 돈 벌고, 한국을 떠서 내가 꿈꾸던 나만의 미래를 찾아 떠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철저한 혼자로의 삶, 어디 이보다 멋진 삶이 있겠는가


 학기를 마치고 나는 집에도 가기 싫어서 학교 근처에 고시원을 잡고 거기서 살기로 했다. 부모님에게는 적당히 봐야할 학교 일이 있다고 뻥을 쳤다. 그리고 얼마 안 되어 궁해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어렵사리 편의점 알바를 구했다. 10시부터 그 다음날 아침 8시까지 하는 야간직이었다. 그 첫날, 처음이라 점장님과 둘이 근무를 서게 되었는데, 편의점 알바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포스기 다루는 법, 매장 물건 배치, 담배 위치 등을 까먹고 헷갈리고 틀려서 계속해서 점장님한테 꾸중을 들었다. 더군다나, 대학가 주변 술집 골목이란 위치 때문에, 술 냄새 풍기는 진상 손님들도 적진 않았다. 이러한 곳에서 그 하루 만에 내 자존감은 바닥 찍은 것도 모자라 땅 파서 관 자리를 잴 정도였다. 옆에서 끊임없이 쏘아붙이는 그 점장 얼굴에 방금 폐기 처리한 삼각 김밥 패대기치고 나오고 싶은 마음 계속 꾹꾹 눌러 담아놓고는, 시간이 다 되어 겨우겨우 그 구렁텅이에서 나와 고시원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또 그 고시원에 들어서서 내 방 들어가는 복도가 왜 그리 어둡고, 좁은지 속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거기를 지나 들어간 내 고시원 방은 더욱 참담했다. 한 달 17만원 이라는 싼값에 당장 그 자리에서 계약 한 1평 남짓한 방. 불을 켜보니, 바닥 장판은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이었고, 벽지를 바르긴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곰팡이가 뒤덮고 있는 천장과 벽은 축축한 습기로 헤집어져있었다. 보기 싫다. 나 같다. 불을 꺼버리고, 더듬거리며 바로 침대에 누웠다. 좁은 방이라 어두워도 멀리까지 손을 뻗을 필요 없어서 뭔가를 찾기엔 참 제격이더라. 이불을 뒤짚어 쓰고, 일단 자기로 했다. 어떻게든 자야만 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신을 잃어야만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은 이곳에서, 나는 다시 상상을 했다. 따사로운 햇빛 받으며 홀로 유유자적하게 거닐고 있는 나를

 

 그런데 그 꼴을 누군가 비웃고 있는 것 같다. 소름이 쫙 돋아 잠이 달아났다. 그 누군가가 내 뒤에서 칼을 들고 있는 것 같이 느껴져서 당장 불을 켰다. 다시 내 삶이 나타났다. 그대로 있으면 곰팡이가 나한테까지 스며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 위에는 빈 지갑과 눈치 보며 몰래 챙겨온 아침 대용 폐기 햄버거가 보였다. 그걸 보고 있으니, 곧 있으면 또 거기로 나가서, 한 시간에 4000원 받기 위해 싫은 소리 들으며 또 꾹꾹 눌러 담고 있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목구멍 윗 언저리가 시큰시큰해진다. 이러려고 집 안 가고 여기 있는 건가. 터지기 직전이다. 이에 대해 어떻게든 발악을 하며 터져 나오는 눈물을 다시 넣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지나가다 누구한테 들킬까, 옥상으로 뛰어 올라가 숨 한 번 들이쉬자 조금 진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냥 자동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고 귀에 대었다. ‘, 아들..’ 잠에서 막 깬 엄마의 부스스한 목소리를 듣고는 결국, 또 터져버렸다. 엄마는 놀라서 무슨 일이냐며 계속 날 다그쳤고, 나는 겨우겨우 목맨 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냥.. 외로워서...’ 그렇게 나는, 자신조차도 속이고 잊어버릴 정도로 완벽하게 은닉했다고 생각했던 큰 죄를 제 스스로 시인해 버렸다. 그런 나를 엄마는 당신의 목소리만으로도 포근하게 감싸주었고, 나는 크게, 힘들 때 내뱉는 한숨이 아닌, 숨을 내쉬었다. 잊고 지냈던 그 따뜻함은 내가 그 동안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지내왔는지 따위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아무런 위화감도 없이 나를 받아들였다. 부끄러워졌다. 지금 이렇게 엄마 품에 매달려 꼴 사납게 훌쩍거리는 주제에 무슨 철저한 혼자의 삶을 누리겠다는 가당치도 않은 생각을 한 건지, 그리고 가장 최우선으로 신경 꺼주고 나 혼자 알아서 살게 내버려주길 바랬던 사람에게 이 얼마나 비겁한 짓일 수 있을까. 항상 엄마는 내게 말했었다.

 

암만 네가 거기서 지내더라도 객지야,

그러니까 늘 필요한 거나 힘든 거 있으면 말하고 전화 자주 하고...‘


 나는 ATM 기기 옆에 꽂힌 봉투를 하나 들고 와서, ‘관둡니다. -김영식이라고만 겉표지에 써서 아까 교대했던 낮 타임 알바생에게 전해주고, 다시 돌아가 짐을 싸서 고시원을 나섰다. 그리고 그 길로 시외버스를 타고 집으로 올라갔다. 집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 행복하고, 걷고 뛰며 집에 가까워질수록 몸이 가벼워질 수 있는지, 그렇게 느끼고 있는 내 자신이 참으로 놀라웠다. 무엇보다 학교 기말고사가 끝난 후, 처음으로 보는 엄마의 얼굴을 본다는 게 너무나 설레고 들떴다. 혼자라는 것은, 나에겐 아직 견딜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중에 조금 더 겪다보면 무덤덤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무덤덤함이 오는 것도 그때 까지만은 엄마 곁에서 유보할 수 있을 만큼 유보 하는게 맞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 profile
    korean 2016.02.29 01:22
    좋은 글입니다.
    열심히 정진하시면 좋은 결실을 반드시 걷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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