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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나는 죽을 생각이었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나는 수능이 끝나고 죽을 생각이었다.

 

3이 되고 꾸역꾸역 버텨낸 시간이 사실 그리 힘들지만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거짓말이라고 웃어넘기는 편이지만실은 이미 2018년에 최악을 경험해보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길게 늘여놓기가 싫어서다. 그냥 딱 그뿐이다. 떠올리는 것조차 고역인 2018년이 내겐 더 힘들었으니까.

예방접종 주사에 인위적으로 바이러스를 넣는 것처럼.



사실 그때는 단순히 인간관계의 문제였다.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에도 여전히 그를 미워하지 못하는 모순된 사람

그런 나의 유일한 선택은 자기비관뿐이었고 탓할 누군가가 필요했으나 그 삿대질의 종점엔 늘 내가 서 있었던 것뿐이다

아마 그때부터 알 수 없는 피해망상이 생겨났을 터. 누군가 내게 다가오면 무조건 필요에 의한 접근이라고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도 그때는 정말, 정말로 힘겨웠던 나날들이었지. 이제 와 떠올려봐도 몸서리가 칠 정도이니. 꾸역꾸역 살아남았으나 

버티는 방식이 그리 긍정적이지도 못했다. 나를 향한 혐오로 치환된 상처들은 꼭 내게 분풀이를 해야만 아물곤 했다

그렇게 내게 2018년은 그저 숨만 쉬던- 살아갔다기보다는 버텨온 시간, 1년 전체가 단지 딱 그 정도의 의미뿐이었다.



  고3이 된 후에도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수업 도중 멋대로 문을 박차고 나가 펑펑 울고 왔던 적도 있었다. 8시간을 쉬지 않고 자기소개서를 쓰다 어지러움에 구역질을 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때마다 떠올려냈다

  ‘그래도 지금이 2018년 그때보단 훨씬 낫지.’ 남들이 들으면 한없이 불쌍한 자기최면일 뿐이겠지만 내게는 그 무엇보다도 날 지켜내는 마법 주문 같은 것이었다. 더는 내게 악의적으로 상처 입히는 사람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이 얼마나 편안한가- 어차피 내가 내게 상처 입힐 일은 없을 테니까 말이야.

  

  그러나 야속하게도 결과는 늘 편안한 것과 반비례하는 것이었다. ‘이 대학 정도는 붙겠지라고 생각했던 것마저 보기 좋게 떨어졌고 수능에서는 너무 긴장한 탓인지 마킹을 밀린 채 제출하고 말았다. 불 보듯 뻔한 결과였다. 이건, 이전과는 조금 

다른 류의 불행이었다. 괜찮아하고 토닥일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의 내겐 인생이 걸린 문제였다. 엄마아빠 말을 잘 듣는 외동딸, 중학교 내내 전교권을 놓쳐본 적이 없던 모범생, 자사고에 진학해서도 늘 중위권은 벗어나질 않았던, 그래서 많은 

가족과 친척, 친구들 선생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나 자신


걘 이제 없어.’


한순간에 나 자신을 싫어하게, 아니 혐오하게 되었다. 한심해. 너무 한심하다 못해 쓸모없는 사람 같아. 실패자야 난

이렇게도 멘탈이 약해져 있었다. 타인으로부터 입은 상처는 그 사람에게서 멀어지면 끝날 불행이지만, 내가 내게 입히는 

상처는 내게서 멀어져야만 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정도를 모르고 극으로 치닫는 것이 

사람이다.



수능 수학 시험 종료령이 울리고, 그제야 번호가 하나씩 밀렸음을 직감한 나는 그 길로 짐을 싸서 시험장을 나가려했다

나가서 가장 높은 건물이 어디인지, 아니면 차라리 다리에서 떨어지는 게 나을지를 고민하고 있던 친구들이 붙잡았다

  ‘그래도, 우리 끝까지 시험은 다 보고 가자. ?’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눈물도 안 난다는 게 이런 말이구나 싶었다. 지난 12년의 학창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친구들에 이끌려 내려간 급식실에선 밥도 먹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이 착해 빠진 녀석들은 괜히 내 눈치를 살피며 

끊임없이 말을 건네줬다. ‘괜찮아. 수학 안보는 대학들 많대!’ ‘맞아. 자영이가 그랬는데 이대에도 수학 안보는 학과 있고.’ 

나머지 과목은 정신 차려서 잘 마무리해야지. 얼른 밥 먹어. 너 이거 다 먹어야 해.’ 그제서야 약간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래. 이렇게 좋은 친구들 두고 당장 죽어버리러 나가면, 애들이 신경 쓰여서 어떻게 수능을 치르겠어. 수능 끝나고 

죽으러 가도 충분하잖아. 또 수능은 마치고 죽어야 수능 때문에 죽었다고 이유라도 댈 수 있겠지.


, 나머지 시험들도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치르느라 제정신은 아니었다. 전체 종료령이 울리고 헛웃음을 지으며 계단을 내려오던 그때, 급식실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친구가 내게 다가왔다. ‘너 집 어떻게 가?’ 애초에 집으로 갈 생각이 없어서 

얼버무렸다. ‘그냥... 택시 타고 가겠지.’ ‘우리 엄마차 타고 가. 데려다줄게.’ 거절하기도 전에 교문 앞에서 친구 어머니가 반갑게 내 손을 잡으며 차로 이끌었다. , 내가 또 거절을 못 하는데. 심지어 어른이면 더더욱. 그렇게 친구 어머니의 차를 타고 결국 집에 도착해버리고 말았다. 집에서 20층이 넘는 아파트까지는 차 타고 10분 거리에 있었다. 다리는 그보다 더 멀었다. 허무했다. 다들 내 계획을 이렇게도 무너뜨리려 하는구나. 그런다고 포기할 줄 알고?- 나는 택시 타고서라도 갈 거야

  그래도, 가기 전에 유서 한 장 남기는 정도는 괜찮겠지.



정말 오랫동안 유서를 썼다. A4용지 한 장이 가득 찰 정도로. 그곳에는 내 비관이 담겨있었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고

기댈 곳이 하나도 없어서 그만 지쳐버린 거라고. 그리고 감사한 사람들 이름 하나하나를 전부 적어내리다 보니 꽤 오랜 시간이 들었다. 물론 쓰던 도중 부모님과 마지막 통화를 하느라 지체된 것도 있었다. 씁쓸한 기분. 분명 부모님은 괜찮다고 하셨는데, 어째서 실망을 애써 숨기는 것처럼 들리는 걸까. , 또 망할 피해망상 편집증.

.

.

.

9시가 다 되어서야 종이에 마침표를 찍어낼 수 있었다. , 이제 가볼까. 마지막으로 다시는 못 볼 자취방을 눈에 꼭꼭 담아두고 나가려는 찰나, 누군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누구세요?’ ‘나야. 문 열어 줘.’ 옆 동에 자취하는 친구였다. 목소리만으로도 울고 있다는 걸 직감하곤 문을 벌컥 열었다. 친구도 수능을 망치고 수시도 다 떨어지는 바람에 몇 시간 째 집에서 울고 있었고, 문득 내 생각이 나서 위로받고 싶어서 찾아왔단다. 그 말을 듣고 나와 친구는 말없이 부둥켜안고 다시 한 시간을 운 뒤에야 진정할 수 있었다. ‘좀 진정됐어?’ ‘...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 아냐.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미.... 물론 그 말까지 하진 않았다. 이미 잔뜩 무거운 친구의 마음에 짐을 더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오늘 몇 번이나 사람들에게 목숨이 구해졌던 걸까. 시험장을 떠나려던 나를 붙잡아 준 친구, 날 급식실로 데려간 친구, 거기서도 끊임없이 말을 걸며 날 위로해준 친구, 집으로 곧장 가도록 도와준 친구와 그 부모님, 집으로 

찾아와 함께 눈물 흘려준 친구까지. 기댈 곳이 하나도 없었다는 건사실 내 핑계가 아니었을까. 한 번도 누군가에게 기대려고 하질 않았겠지. 오늘처럼 또 짐을 더하기 싫다는 이유를 대가면서 말이야. 문득 사람인()의 속설이 떠올랐다. 사람은 

혼자서만은 살 수 없는 거라고. 그래서 서로 기대면서 살아가라는 뜻에서 자로 만든거라고.


한 때는 내가 사람 때문에 죽을 만큼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문에 사람을 불신하고 되도록 만남을 피하곤 했다

그러나 결국 죽을 위기에 처했던 나를 구해낸 것 또한 사람이었다. , 각자의 가치관과 선택들은 다르겠지만 나는 사람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의지하기로 했다. 결국 사람은 인()이다. 인정(人情)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와 당신이다. 죽이는 것도 사람이겠지만, 살리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이거지? 그러면 나는 차라리 죽을 위기를 다시 맞을지언정 그들의 손에 되살아나고, 또 내가 그들의 손을 다시 잡아주련다.


그렇게 오랫동안 꿈이 없던 내게도 진정한 꿈이 생겼다. 경찰, 경찰이 되고 싶다. 사람을 지켜주고 싶다. 사람으로부터 

죽을 위기에 놓인 그들을 구해주고 싶다. 그래서 다시 사람을 믿게 하고 싶다. 세상엔 나쁜 사람도 정말 많지만, 당신을 도와주고 붙잡아 줄 사람도 얼마든지 많다고 알려주고 싶다.


  올해 나의 수능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 누구에게나 큰 거사를 치른 날이겠지만, 내게는 그보다 조금 더 특별한 의미일 테니까. 차라리 진정한 꿈을 찾게 된 날이라고 기억하는 편이 좋겠지. 그날 적은 유서는 여전히 책장 한쪽에 고이 넣어두었다. 죽으려고 한 극한의 상황에서도 신세 한탄과 우울함보단 고맙고 미안한 사람들의 이름이 훨씬 많은 걸 보면. 이게 그 날의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날 더욱 치열하게 살도록 만들어줄 징표이자 이젠 나의 부적이 될 것이다. 이렇게나 고마움을 보답해야 할 사람이 많으니 나는 그것에 부응해야만 하는, 미래의 나를 향한 일종의 담보 같은 셈이다.

 




이름 : 황지은

전화번호 : 01094767988

이메일 : hwangjin1217@naver.com

  • profile
    뻘건눈의토끼 2019.12.13 12:20
    황지은님... 제 사촌동생이 이름이 심지은인데 일본어과를 들어간다고 하고 연락이 끊긴상황이라서... 어쨋든 미래에도 마음부터 건강하게 챙기시고 하루하루 도전하시길 빌께요.... 제수필 백수의 변명도 봐주세요,... ^_^
  • profile
    korean 2019.12.31 18:53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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