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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던 자리엔 미련과 그리움이 남는다...


며칠전 이른 아침에 전 여자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노래를 듣다 생각나 연락해본다며, 잘지내냐고. 반가운 마음보다는 착잡한 마음이 컸고 그러기에 한참을 읽지 않은 채로 남겨두고나서는 또 한참을 읽은 채로 남겨두고 저녁깨나 되서야 짤막히 답장했다. 이제는 서로 생각나도 연락하지말자. 추억정도로만 간직할 수 있게.

헤어진지는 일년도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사이사이 연락 한 번 없지는 않았다. 헤어짐을 받아들이기엔 미련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보고 싶은 마음에 어쩔 줄 몰랐기 때문이다. 이별의 원인에 어느 한 쪽의 과실이 더욱 크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만남은 어쩔 수 없는 이별의 수순을 밟고 있었고 그 이유는 여자친구가 한 문장으로 잘 말해주었다. '이렇게 사랑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인거 같아 우리.'

헤어질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여자친구의 이별통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나는 자그마치 한달동안을 매달렸다. 어쩌면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었더라면 다시 만나지 않았을까? 여자친구 집 앞에서 하루 종일을 기다려보기도 하고 외딴 섬에 갇혀 기약 없는 구출 신호를 보내듯이 매일매일 장문의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각고의 노력 끝에 두 번 정도 잠깐 마주할 기회는 있었지만 여자친구의 마음은 완고했다.

봄이 저물어갈 때 쯤 이별을 했었는데 그 해 여름이 유난히도 더웠고 그렇게 내 마음도 함께 타들어갔다. 전공책을 펴고 앉아도 왈칵 눈물이 쏟아지기도 하고, 같이 거닐던 동네를 버스로 지나쳐 갈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샤워기 소리에도 울음을 묻어본 적 있다. 급기야는 드라마에서나 보던 것처럼 '사랑 따윈 믿지 않아'라며 사랑이나 연애에 관한 글, 방송, 만화, 노래 등 모든 것들은 한동안 코웃음치며 넘겨버렸다.

그 사람을 글로 표현한다면, 눈이 어떻고 코가 어떻고 입술이 어떻다기보단 '바라만 봐도 행복한 사람'이겠다. 교양 수업을 들으며 만난 전 여자친구는 한참 이상형으로 외모만을 좇을 때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늙어서도 항상 아름다울 것 같다'는 인상을 심어주었고 열심히 쫓아다닌 끝에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추운 겨울 매일 밤 만나 산책하기도 하고 여자친구가 도서관에 갈 때나 기숙사로 돌아갈 때 시간 맞춰 나와 함께 이동하며... 여자친구는 세살이나 어린 나에게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어두운 밤 동아리 연습실에서 피아노를 쳐주던 모습에 설레기 시작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여자친구를 바라보면 눈이 부셔서 눈이 아파서 제대로 바라볼 수도 없었다. 이런 내 모습을 재밌어 하기도 하던 여자친구는 사랑받는 느낌을 온몸으로 느낀다며 고마워했다. 그러나 그게 독이었을까. 내 머릿속에 여자친구는 언제나 늘 내게 과분한 사랑이었고 가시처럼 박힌 독이 퍼지면서 불안이 되었고 이런저런 일들이 겹치면서 결국엔 우리는 가시를 빼내지 못했다.

우린 너무 어리다던 여자친구의 말을 결코 아니라며 부정했던 나는, 그 말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사실이라는걸 알았기 때문에 발버둥치던게 아니었을까? 상대방을 존중할줄 몰랐던 그 때의 나... 오직 내 사랑만 채우기에 급급했던 나... 사실 바라만 봐도 행복한 쉬운 행복이었기에, 여자친구가 주던 사랑에만 안주하려 하고 내 할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여자친구가 회사에 있을 때 휑하니 떨어져 있어야 했던 시간을 혼자서 잘 관리해내지 못했고 내가 짊어져야했던 나의 생활들을 외면한채 쉬운 행복에서만 만족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자기 할일을 할 때 가장 멋있는거야' 잠망경 앞에서 촛불하나 공연을 보며 여자친구가 내게 건냈던 말은 사실 내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심해지는 내 집착에 여자친구도 힘들어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랑했음에 최선을 다했다는 점에 있어서 후회는 없다(고 변명해본다). 내가 시간이 바쁠 때가 있더라도 여자친구를 한 순간도 소홀히 대한 적 없었고, 늘 거짓 없는 사랑으로 채워주었으며, 마음으로 하는 일이라면 다시 할 용기가 안날 정도로 노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회하는 점이 있다면, 준 만큼 받고 싶어했다는 것. 이별하고 나서야 알았다. 연인 간에는 누가 더 사랑하느냐보다 함께 있음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길가의 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고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꽃에 물을 준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는 상대방에 대한 소유가 아니라 상대방의 행복을 기원함과 동시에 함께 있으면서 행복해 하는 시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때는 몰랐을까 아니면 알면서도 욕심내기 급급했을까.

'분명 후회할거야, 난 자신 있어.'라고 말하며 걱정해주는 친구들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자신있어 했음이 무엇을 자신있어 했는지는 모르겠다. 내 바닥을 보이면서까지도 최선을 다했던건 맞지만 그게 여자친구를 위한 것이었냐는 질문은 똑바로 마주할 수 없었기에, 그리고 한편으로는 여자친구가 돌아와주길 바라며, 기다리는 날이 길어지면 길어질 수록 가슴 아픈 쪽은 나였기에.

어떤 노력도 아무 소용 없겠다고 체념하게 된 직후부터는 카카오톡에서 여자친구의 프로필 사진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먼저 잊어버리겠다는 오기로 여자친구와 함께 했던 사진은 앨범에서 모두 지워버렸으니까. 후회해도 돌릴 수 없었으니까. 내 마음 정리를 도와주려는 듯 여자친구는 새로운 연인이 있음직한 사진들을 프로필 사진으로 올렸었다. 질투심에 속상하기도, 여자친구가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결국에는 그 사람이 행복하기를 빌어줄 수 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하림의 노래처럼 다른 사랑으로 지워지리라는 믿음으로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몇번의 연애를 했었고 설렘을 느꼈던 사람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 때 그 마음과 비교하게 되면, 사랑이 아닌건가 하는 죄책감에 오랜 사랑을 유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여친에 대한 마음의 자리를 결코 남겨두려는건 아니었다.

이별의 직접적인 원인이 나의 부족함이라는 사실에는 전혀 틀림 없다. 하지만 내가 바랬던 것과, 여자친구가 자신의 가치관이라며 자랑스러워했던 것들, 그리고 여자친구가 보여주었던 모습들 간의 간격으로부터 혼란스러워했던 것도 사실이다. 사랑하기에 어느 한쪽이 아닌 우리가 둘 다 어리다고 말한건 이 때문일거다. 아마 그 사람에게 직접 전해주는 편지였다면 이 글이 조금 더 잔인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던간, 우리가 사귀면서도, 헤어지고나서도 힘들어했던 그 사랑은 끝내서야 마침표를 찍었다. 서로가 미련에 못이겨 연락을 했지만 또 서로를 외면했던 이유는 함께 했던 시간이 그립기는 해도 그 마음이 그리움에서만 그치기 때문이다. 단지 나도, 그 사람도 여물지 못한 성격이라 대차게 정리하지 못했을 뿐. 그래서 내가 대신 정리한 셈이다. 나를 위해서라기 보단 그 친구를 위해. 그리움에 못이겨 연락할 때보다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연락이 왔을 때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젠 생각나도 연락하지 말라는 단호한 내 말에 전 여자친구는 다소 화가난 것 같기도, 당혹스러운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복잡한 내 심정을 조금은 알까. 노래를 듣다 생각나면 가볍게 연락해도 되는건가라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하는 나를. 아직도 습관처럼 카카오톡에서 이름을 찾고, 연락처 여덟자리를 끝내 잊지 못하는 나를...   


기계번역에 대한 고찰

불과 몇 년 안 됐지만, 친구들이 나에게 영어 잘한다고 말해주기 시작했다. 이전 같았으면 극구 아니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을테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 나 영어 좀 해'.

영어로 꿈을 꾸거나, 영어로 책을 쓰거나, 영어로 유창하게 인터뷰를 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영어권 국가에서 아주 살다온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좀 한다는 정도이다. 원어민처럼 했으면 아마 '좀'이라는 수식어 대신 다른 표현을 쓰지 않았을까. 영어로 수업을 듣고 영어로 리딩을 하고 영어로 페이퍼를 쓰며, 심지어 영어로 꾸준한 소득도 벌고 있는데! 아직 전문적으로 훈련받지는 않았지만, 어디가서 영어 못한다고 무시받으면 서러워하는 것 쯤은 해도 되는 정도는 아닐지 생각해본다.

현재는 작은 PR회사에서 국내 홍보 기사들을 영어로 번역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통역장교를 목표로 꾸준히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다. 계속해서 영어를 공부해왔고 즐겨오면서 자연스럽게 용돈이 필요할 때도 구인구직란에서 '영어능통자'를 찾게되고 번역알바와 같은 꿀알바를 찾게되면서 번역을 직업으로 삼아보면 어떨까, 통번역 대학원에 들어가 통역가의 삶을 살아보는건 어떨까 하는 고민해본 적도 있다. 친구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생각을 털어 놓으면 항상 AI기술의 발전으로 번역이나 통역의 직업이 사라지진 않을지 우려한다. 실제로 작년 알파고가 등장했을 때 쯤, '인간적인 번역'을 어필하며 온 곳에 광고를 붙이던 회사가 있었는데,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것을 보면 사회적인 인식에서 번역가라는 직업의 위치가 상당히 위축되었음을 느낀다.

구글 번역기, 네이버 파파고와 같이 번역 프로그램에 빅데이터베이스 기술이 적용되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번역해내기도 하고, 몇 초 내로 음성통역을 해주는 기기가 유투브 채널을 달구기도 하지만, 나는 언어의 영역에 있어서 인간이 디딜 곳을 조금은 남겨두고 싶다. 내가 희망하는 것과 같이 통역장교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통역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인력을 군에서도 모집하고 있고, 각종 구인사이트에서도 통역은 고사하고 단순 번역 업무일지라도 지속적으로 채용공고가 올라오고 있다. 심지어 사내에서도 문서를 해외 바이어에게 전달하는 경우에는, 프로그램을 쓰지 않고 영어능력을 겸비한 사원을 통해 처리한다. 즉 인간에게 의지하는 언어변환의 수요가 대체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끊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인공지능번역의 한계를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최근의 번역 프로그램들은 과거와 비교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고, 나 또한 일상생활에서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으며 때로는 감탄을 금치 못할 때도 있다. 요점은 기계번역에 대한 불신을 어떻게 제거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다. 영어로 과제를 제출해본 대학생이라면 한 번 쯤 구글번역기를 이용해봤을 것이다. 그러나 구글번역기를 거친 1차 가공물을 그대로 제출하는 바보는 없다. 기계번역을 거쳤다고 의심 받을만한 오류가 '혹시'나 있을까봐 그리고 내가 '의도'한 표현과 다르게 번역된 부분을 바로 잡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늘 인간과 기계의 대결에서 인간의 패배를 걱정해왔다. 실제로 산업혁명이 거듭함과 동시에 기술이 발달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어왔다. 하지만 기계의 등장으로 줄어든 일자리를 담당하던 노동력은 오히려 새로운 분야를 형성한 것은 아닐까? 물론 기계에 대체된 일자리보다 훨씬 적은 수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긴 했다. 그래도 일자리의 '수' 보다는 '질'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카메라가 등장하고 나서 수 없이 많은 화가들이 직업을 잃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술계의 철학적 가치들이 발전할 수 있었던 계기는 카메라가 등장하고 나서부터이다. 사실적인 묘사의 공급과 수요가 인간으로부터 기계로 옮겨지고 난 이후에, 그 공백을 인상주의 작품들과 추상회화들이 대신하였다. 많은 이들이 현대 예술을 비판하고 있지만, 우리에게 그만큼 더욱 더 큰 영감을 주는 것들은 더 이상 자연주의적인 작품들이 아니다. 많은 사진 작품들이 사랑을 받고 있는 것도, 그들이 사실적으로 사물들을 묘사했기 때문이 아니다.

다시 번역 얘기로 돌아와, 사람이 하는 번역과 기계가 하는 번역을 비유하기 위해 미술관 얘기를 꺼내고자 한다. 미술관에서 '플래쉬 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이유는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미술작품 앞에서 카메라를 꺼내드는 사람들이 있어서이다. 카메라를 드는 이들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아니면 나중에 추억으로 간직하기 위해서 셔터를 누른다. 하지만 막상 집에 돌아와서 앨범을 확인해보면 미술작품을 마주하였을 때의 감동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다.

그에 비해 이런 광경도 본적 있을 것이다. 미술관 한 켠에 앉은뱅이 의자를 갖다놓고 묵묵히 컨버스 앞에 붓을 쥐고 있는 사람들. 아니면 존경하는 화가의 작품들을 오마쥬한 작품들. 이들은 왜 카메라를 들지 않았을까? 미술관에서 느꼈던 감동을 집에서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계의 수동성에서 답을 묻는다. 우리가 미술관에서 느꼈던 감동은 미술관 공간감이 주는 분위기, 북적이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소음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반면 집에서 조용한 방에 들어가 조그만 화면에 담긴 미술품들을 돌이켜보는건 그렇게 정적일 수 없다. 또한 미술관에서는 비치는 조명 속에서 작품을 우리가 재해석하며 다양한 각도에서 감상하지만 카메라가 담은 사진은 능동적 해석이 아닌 다양한 장애물들의 제약을 받는 수동적이고 한정적 묘사일 뿐이다. 미술작품을 보고 다시 붓을 쥐는 사람들의 이유도 '묘사'가 아닌 '감동의 전달'에 있다. 미술이 정보전달이 아닌 감정공유활동인 것처럼 말이다.

또 한편으로는 기계의 창의적 활동에 선을 긋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인터넷에서 본 짧은 만화가 떠오른다. 한 과학자가 인공지능에게 묻기를, '너가 어떻게 사랑의 감정을, 행복을, 슬픔을 느낄 수 있겠니?'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불리는 감정을 기계가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에 인공지능이 답한다. '당신은 제가 새로운 시스템이 업데이트 될 때, 디스크 조각 모음을 할 때, 아니면 제 몸에서 usb 소자가 하나 둘 씩 빠질 때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공감하시나요?'

머리를 띵 맞은 기분이다. 하지만 이 만화가 시사하는 점은 '기계에게도 감정이 있다'가 아니라 기계와 인간이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언어와 언어의 비대칭성으로 '완전한 일대일' 번역이 아니라 '유추를 통해' 외국어를 이해하는 것처럼 우리는 단지 기계의 감정을 유추할 뿐이다. 누가 알까? usb 소자가 빠질 때 기계가 슬퍼할지 기뻐할지.

사람이 번역을 하는 이유도 사람에게 번역을 맡기는 이유도, '혹시'하고 번역결과물에 불안해 하는 이유도 기계가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의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복잡한 감정일 수도 있고, 출처원문에서 나타나는 인간적 오류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인간이 축적된 경험으로부터 '연상'하는 것과 기계가 빅데이터베이스에서 '통계'를 내는 게 다른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맹목적 불신일지도..

회색적인 얘기처럼 들리지만 결국에는 인간 번역도, 기계 번역도 둘 다 쓰이고 있다. 비교하기 어려운 만큼 방대한 양이 기계에 의해서 번역되고 있고, 그 속에서도 번역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꾸준히 돈을 벌고 있다. 어떤 이는 결국 정보전달이 목적이라면 기본적인 요소만 전달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박하겠지만, 문맥과 디테일을 빼놓고 완전한 전달이 이루어질 수 있겠냐는 의구심을 거둘 순 없다. 인간과 기계가 공유하지 못하는 것들에서 비롯되는 불신들을 어떻게 제거해낼 수 있겠느냐가 풀지 못한 과제일테고, 과거에 비해 언어간 장벽이 무너지게 되고, 대학생들이 교정을 보면서 번역기를 돌릴 수 있게된 이유는 사실 기술만 발달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언어교육이 많이 보급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번역을 떠나서라도 우리가 진정 인공지능으로부터 경계해야할 것은 인간적 만족보다 기계가 주는 만족이 더 클 때를 조심해야하지 않을까?
 

황주영 드림
flylikekite94@gmail.com
010-2497-3256

감사합니다.


  • profile
    korean 2018.01.01 00:11
    열심히 정진하다보면 틀림없이 좋은 결실을 맺으리라 믿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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