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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의 편린

  사랑의 상처는 또 다른 사랑으로 치유된다는 말이 있다. 기억이라는 것도 어쩌면 이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영원할 것만 같던 기억도 어느 순간 누르스름해진 책갈피처럼 그렇게 바래지고 너덜너덜 해지는 것이 또한 기억이라는 것일 테다. 그러한 기억에 스멀스멀 자리를 비집고 들어서는 또 다른 이름의 기억들, 그럼에도 왠지 흐물흐물 해 질 것만 같은 그 기억이라는 것이 화인처럼 새겨져 도무지 다른 이름의 기억들로 채워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 기억은 나로 하여금 그녀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그저 옷깃을 스쳐지나가는 보통의 다른 인연과 다르지 않았을 기억이라는 이름을 또박 또박 새겨 넣었다. 시간이 지날 수 록 흐릿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또렷해진다.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그녀와 함께 했을까. 그녀는 언제부터 나의 마음 한겻을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일까. 그녀의 존재는 언제부터 나의 마음속을 비집고 들어선 것일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녀의 존재는 그저 스쳐지나가는 사람에 불과 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어머니, 그녀의 존재는 그저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내 어머니를 세상 밖으로 이끄시고, 어머니란 이름의 타이틀을 거머쥔 그저 그런 존재로만 내게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잃어버린 30년의 세월도 세상 속에 존재하는 그저 그런 사람들의 사연 외에 어떠한 의미를 내게 부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단 한 번 찰나의 순간이 그녀와 나를 매듭으로 엮어내기 전까지는,

 

  그녀가 기억이라는 것을 완전히 잃어버리기 직전까지도 그녀에게 나의 이름 석 자는 주문과 같은 것이었다. 기억의 범위가 줄어들기 전까지도 내 이름 석 자는 그녀의 기억 속에 사라지지 않았다. 내게 그녀의 존재가 희미하듯 그녀에게도 나의 존재는 자신의 딸의 딸, 그저 손녀 정도 외 에는 아무런 의미로 자리 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기 직전까지도 나의 이름 석 자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뜻하지 않았던 단 한 번의 그 이유로 말이다.

 

  꽤 오래 전 일이다. 그녀는 뜻하지 않게 뺑소니 차량에 치어 크게 다쳤다. 의사는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라 얘기했다. 엄청난 출혈, 움푹 파인 이마의 함몰, 그런 상흔들이 그녀가 살아있음이 천행임을 얘기해주고 있었다. 운명이란 그런 것일까. 살아있음은 그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 나야 가능한 것이었을까.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감수해야 했다. 그 이후로 그녀의 기억은 조금씩, 서서히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왜 그날 그 시각에 그 일을 자처했는지를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이 그녀와 나와의 짧은 운명의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평소 완고하고 고집이 센 노인, 거기다가 사람과의 관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그녀, 측은지심이었을까. 사고로 기억을 잃은 그녀는 종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함몰된 이마, 구부정한 다리는 사람들과 섞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런 까닭 이었을까 평소 그녀와는 단 한차례의 대화다운 대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이끌림에 그녀와의 조심스러운 접촉을 시도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모험이었을 것이다. 평소 같으면 자처하기는커녕 오히려 모면하려 애썼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선뜻 하겠다고 했다.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산발이 된 그녀의 머리를 자르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머리를 깎아 봤던 경험이 있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마음 속 자그마한 양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사고 이후 그녀와의 첫 만남을 시도했다. 그녀를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것은 아마도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알 수 없는 매캐한 냄새들이 득달같이 내게 달려들었다. 숨쉬기조차 버거움을 느꼈지만, 모든 것을 자처한 이상 더 이상의 후퇴는 있을 수 없었다. ‘어서와, 머리 깎으러 왔어.’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그녀는 꽤나 차분했다. 그렇다고 그 상황이 마냥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냄새로 인해 매스꺼움을 느꼈고, 가능한 한 그녀와의 마찰을 피하려 애썼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의 기억은 많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나를 알고 있었고, 내 이름 석 자도 또렷하게 기억했다. 무슨 얘기인가를 꽤나 오랫동안 그녀는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초라하고 남루한 허수아비 같은 영혼 없는 껍데기의 그녀만을 보았을 뿐이다.

 

  그녀는 나에게는 돌부리 같은 존재였으리라. 무심코 걸려 넘어지는 그것의 존재처럼 의식조차 하지 못했던 순간에 파편 조각처럼 내게와 박혔다. 그녀의 삶, 인생, 잃어버린 기억들, 모두가 나의 삶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반 가르마의 곱게 빗어 내린 머리에 은비녀로 쪽 진 그녀의 인상은 단아하고 고왔다. 그러나 그러한 그녀의 모습과 달리 삶은 척박하고 고단함이었다. 그 자그마한 체구에서 열두 명의 자손을 뽑아내었고, 그 중 일부를 가슴에 묻어야 했던 그녀의 인생은 굽이굽이 한으로 점철된 삶이었다. 두 번의 교통사고, 고왔던 그녀의 삶은 어쩌면 의도하지 않았던 삶으로 인해 갈기갈기 찢기었다. 누구도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고, 섞이지 못했다. 그녀의 삶은 온전히 그녀만의 몫이 되어 겉돌고 있을 뿐이었다.

 

  엉금엉금 기어서 무릎은 헤지고, 흥건히 고인 붉은 혈액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오 분이면 닿을 거리를 삼십분이나 지나서 그렇게 홀로 행군을 하듯 그녀가 내게로 달려왔다. **야 **야, 온 동네가 떠나가듯 그렇게 이름을 불러 되면서 통증도 느끼지 못한 채 헐레벌떡 거친 숨소리를 내며 그렇게 왔다. 그런 그녀를 보자 마음과 달리 화가 났다. ‘여기 뭐 하러 왔어, 아유 피 흐르는 것 좀 봐.’ 천식을 앍고 있던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연신 헉헉거렸다. 잠시 숨을 고르는 듯 하 더니 이내 바지저고리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찾기 시작한다. 그녀가 꺼낸 것은 흰 실타래에 둥둥 매여져 하얀 손수건에 싸매어진 지폐였다. 거기에서 만 원 짜리 지폐 석장을 건네는 것이다.

 

  그녀는 무슨 생각으로 무슨 까닭으로 그 많은 시간들을 견디어냈을까. 그녀가 늘 즐겨듣던 회심곡, 한 풀이를 한 듯 여기저기 찢어 놓은 휴지 조각들, 어느 순간 어느 지점에 그녀는 와 있었던 것일까. 잃어버린 삼십 년의 기억 속에 그녀는 어느 시점에 살고 있었던 것일까. 대수롭지 않았던 그일, 왠지 모르게 자처하였던 그일, 그것은 그녀로 하여금 나의 존재를 각인시켰고, 그녀는 그 일로 인해 나의 기억 속 어디선가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결코 가는 것은 나이순이 아니었다. 훨씬 더 젊은 나의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나서도 시간은 무심히 흘러갔다. 무심한 시간 속에 그녀의 기억도 점차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사위 밥은 잘 먹지.’ 세상을 떠난 지도 한 참 되었건만, 그녀의 기억 속에 여전히 당신의 사위는 식성이 까다로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 시점에 머물러 있던 기억은 그나마도 괜찮은 편이었다. 마지막 순간에는 당신의 아들도 기억하지 못했다. ‘엄마 나야 내가 누구야?’ 당신이 그토록 사무치도록 보고파 하던 아들은 멀어져만 가는 기억을 붙잡으려 애를 써보지만, 정작 그녀는 엉뚱한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저씨 누구세요.’ 눈을 감기 전 그녀는 당신의 아들에게 마지막 말로써 이 말을 남겼다. 그녀는 이승에서의 모든 기억들을 잊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행복했던 순간, 자신의 기억이 온전히 살아있었던 그날만을 기억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던 따사로운 사 월, 그렇게 그녀는 세상에 마침표를 찍었다. 모든 기억들을 뒤로 한 채......,.

 

  살아가면서 많은 기억들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새겨 넣는다. 그것들이 마냥 좋은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때때로 잊고 싶어지는 기억들도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그녀는 때로는 아픔으로 ,때로는 느껴보지 못했던 할머니의 포근함으로 순간순간 돌부리처럼 치인다. 살다 보면 그녀와의 기억들은 어느 순간 점점 멀어져갈 것이다. 그 자리에는 또 다른 기억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잃어버린 삼십 년의 기억과 삶은 그저 그런 그 누군가의 삶이 아니라 나의 삶 속으로 들어와 있다.

 

  새 하얀 눈으로 온통 세상이 뒤집혔다. 절기는 입춘을 지냈건만, 쉬이 봄은 오지 않고 있다. 이제 곧 작년과 다르지 않을 봄이 또 찾아들 것이다. 따스한 햇살에 몸을 내 맡기듯 포근했던 그녀의 품을 기억할 것이다.

 

  나는 살다가 가끔 돌부리에 치이게 될 것이다. 그럴 때 마다 그녀는 내가 혼자가 아니었음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그대의 길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것은 의도하지도, 억지로 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라 짐작만 할뿐이다. 그러나 때로는 왜 그래야만 했는지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삶이라는 것이 주사위를 던져 나올 수 있는 확률적인 게임이 아니듯 그저 살아있으므로 살아야 했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다.

 

  음악을 세계의 공통된 언어라고들 한다. 강렬한 사운드의 메탈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도통 알아들을 수 없을뿐더러 난해하기도 하다. 물론 가사를 미리 알고 들으면 그 음악의 깊이를 이해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음악을 언어라 표현하는 것에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언어 그 이상의 표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와 음악을 다르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성급한 오류일지도 모르겠다. 음악이 언어 이상의 그 무엇을 표현해 주듯 아버지가 주는 느낌 또한 일일이 어떠한 단서를 붙이지 않아도 음악의 언어처럼 느껴진다.

 

  클래식을 연주하는 연주자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상상의 세계를 살고 있는 것 같다. 곡조가 어지럽고 난해할지라도 연주자의 얼굴은 언어 이상의 표현을 가지고 있다. 변주를 심하게 반복하더라도 연주자를 통해 지금의 상태를 읽어 낼 수 있게 된다. 쉼 없이 나아가는 당신의 삶에서 연주자의 마음을 읽듯 당신의 뜻을 이해하고 읽어내려 했지만, 쉬이 읽히지 않았다. 나는 아마도 연주자의 얼굴이 아닌 가사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도통 자신의 지난날을 얘기하는 법이 없었다. 지나간 당신의 삶의 십분의 일이나 알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할아버지를 닮아 잔재주가 많았고, 한때 총명하여 동네 어른들의 유망주로 떠올랐다는 정도일 뿐이다. 간혹 담배를 싸고 있는 은박지로 나팔, 장미 꽃 등을 순식간에 접어내거나, 짚을 엮어 바구니 정도를 만들어 내는 것을 간간히 목격한 적이 있었다.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는지 하얀 도화지에 수양 버드나무를 그려 넣고, 그 위에 새 한 마리를 그려 넣은 것을 본적이 있었다. 그 많은 나무 중 왜 하필 수양 버드나무 일까 궁금하여 물어본 적이 있다. 대부분의 나무들은 위를 향하는데 버드나무는 잎이 아래로 늘어뜨린다. 그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왠지 다른 삶을 사는 당신의 모습처럼 생각이 들기도 했다.

 

  유년시절에는 유쾌하고, 장난기 가득한 아이였다고 했다. 동네에서 담 넘기를 좋아하고, 짓궂을 정도로 개구쟁이였던 아버지가 성장하여 청년에 이르렀을 때 뜻하지 않은 일을 당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야 너 걷는 게 조금 이상하다. 병원에 가봐.’ 친구들의 걱정스러운 근심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했다.

 

  눈을 뜨고, 감을 때 까지 집안은 늘 사람들로 붐볐다. 그들이 뿜어내는 담배연기, 여기저기 뒹구는 술병들, 오고가는 거친 음성, 시작과 끝은 늘 그것과 함께였다. 패를 돌리는 그들의 빠른 손놀림과 끝없이 이어지는 판은 시간이란 개념을 잊은 듯했다. 그들의 한숨과 환호가 뒤섞여 들숨과 날숨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그들만의 리그는 그렇게 밤, 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 되었다. 글을 읽는 이들이라면 대충 짐작 하였을 것이다. 그렇다. 그는 노름꾼이었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타짜다. 그것에 입문한 과정이 꽤나 드라마틱하다. 아버지가 장애로 힘든 시기를 보낼 때 어는 사내가 와서 아버지를 데려간 곳이 지금으로 치면 하우스다. 그곳에서 그나마 간신히 생계를 이어가던 가계를 탕진시킨 이가 바로 그 사내였다. 전 재산과 다름없는 돈을 탕진하자 당신은 할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었을 것이다. 인명은 제천이라 했던 가. 당신은 살아날 운명이었고, 아직은 세상 속에 섞여 있어야할 사람이었던 것이다. 때마침 우연히 찾아간 곳이 타짜가 있는 곳이었다. 그 사람을 만나고, 복수를 다짐하듯 그렇게 화투에 입문하게 되었다고 했다. 몇 해 전 영화로도 개봉되었지만, 타짜는 절대로 돈을 잃지 않는다. 전 재산을 탕진하고 죽으려 했던 당신은 또 그렇게 그것으로 다시 가계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잃은 돈 되찾기 위해 시작한 그 일이 꽤 오랫동안 당신의 직업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신이 의도한 삶이 든 아니 든 간에,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전혀 의도치 않았던 상황으로 인해 더 이상 그것은 직업이 될 수 없었다. 아이를 들쳐 업은 한 아주머니의 등장은 다른 삶을 살도록 재촉하는 촉발제가 되었다. 그 여인의 대성통곡은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계속되었고, 더 이상은 지속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노름을 끊었고, 의도하지 않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노름뿐이었고, 그것으로 인해 생계를 꾸려가던 아버지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새로운 결심을 했다. 그것은 아무도 살지 않는 황무지를 개간하여 그곳에 터전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자그마한 동네가 만들어졌고, 그곳에서 온갖 궂은 동네일을 돌보는 이장이 되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가축을 소개하고 수수료를 받는 중개업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그것이 아버지의 인생 제 2막장의 이륙인 동시에 착륙이었다.

 

  음악 경연 프로그램이 언제부터인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 이것을 굳이 독버섯이라 표현하는 이유는 그것을 설명하고, 해석하고, 감성을 강요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처절한 경쟁사회는 불필요한 다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굳이 소를 흥분시켜 투우사를 희생시키는 우를 범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저 듣고, 느끼고, 원하면 그 뿐인 것이다. 아버지의 삶에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는 전적으로 당신의 몫이다.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살았다 하여 그것을 평가하고, 가치를 훼손 한들 그의 삶이 아닌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난해한 헤비메탈이나 록처럼 도무지 이해하려해도 기피하게 되는 존재, 정상에서 내려올 때의 가벼움보다는 오를 때의 고뇌와 수고로움을 더 많이 느끼게 되는 존재, 그것이 아버지라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신의 생은 남아있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었다. 목 중앙을 뚫어 호흡기에 의존해 삶을 연장해야 한다고 의사는 말했다. 지금이라도 호흡기를 떼면 당신은 살 수 없다는 말이었다. 이미 당신의 오른쪽 폐는 폐로써의 기능을 다하고 남아 있는 한쪽 폐는 기존 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했으므로 당신의 호흡은 가빴다. 숨을 턱턱 들이쉬고 내쉬는 것조차 매우 힘들어 보였다. 그렇게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당신이라면 원하지 않을 삶이었을 것이라 스스로를 위로하며 당신을 고이 보내드리기로 했다.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은 눈물샘의 자극이 많았던 사춘기 시절에는 암초를 만난 조각배처럼 위태로운 것 들이었다. 신념이 아닌 대중성을 쫓는 작가처럼,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살얼음판을 내 딛는 발걸음처럼 아슬아슬한 것들이었다. 현실과 이상, 명분과 실리, 이성과 양심사이에서 기울기가 달랐다. 세월이 흐른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이고,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세상 이치에 눈을 뜨게 된다는 것일 것이다. 외다리를 건너듯 아슬아슬함은 잘 다듬어진 교각 위를 건너는 안정감을 세월이 주는 교훈일 것이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단지 숫자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철학이나 가치 또한 넓어지고 깊어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버지가 나를 낳았을 쯤의 나이가 나도 되었다. 이제야 나는 정해진 길로만 나아갈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 계절이 뚜렷했던 것이 이제는 점차 계절의 분별이 불분명하게 변해간다. 여름과 겨울만이 뇌리에 박혀 봄과 가을이 언제 지나가는지 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봄과 가을의 향수는 오히려 더 짙어 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당신과의 시간은 봄처럼 가을처럼 짧았다. 어쩌면 의식조차 하지 못한 채 지나가게 되는 그 계절처럼 스쳐 지나갔다.

 

  가끔 때때로 당신의 삶의 흔적들을 메 만져 본다. 그 흔적들을 쫓아가다 보면 늘 후회와 원망이 새순처럼 돋아나 있다. 가리어진 커튼처럼 눈을 가렸고, 말문이 막힌 것처럼 굳게 입을 닫아 버렸다. 안타까움, 아쉬움 아버지는 내게 있어서 그러한 존재이다. 당신이 떠나간 빈자리, 아버지란 그 자리는 아무런 대가 없이 얻어지는 자리가 아니었음을 새록새록 느낀다.

 

  딸이 어느 덧 장성하여 시집을 가고, 새로운 가족의 일원으로 아무 탈 없이 그저 잘 살기만을 바라는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을 표현한 애비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를 아버지 입장이 아닌 딸의 입장에서 어느 여 가수가 슬픔을 머금고 한 설린 창법으로 구슬프게 불러 댄다. 나의 아버지도 그러 했을 것이고,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그러 했을 것이다. 음악의 언어처럼.....,.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천국에 다다르는 길은 예수라는 터널을 지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나아가는 길, 혹은 가고자 하는 그 길 또한 그대의 길을 지나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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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은유시인 2016.04.28 16:58
    구구절절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결실을 거둬들이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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