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와의 대화.
처음엔 보통 남들과 얘기할 때와 같았다. 그 앤 날 작가님이라 불렀고 나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제 만화나 재밌지 저랑 얘기해봤자 재미없어요.
그 앤 유난히 친근하게 사람의 팔을 쓰다듬는 애였다. 나는 독침에 쏘인 듯 화들짝 놀라 직업을 핑계로 냉큼 작업실에 숨어들었고 날 언니라고 부르게 된 그 앤 회선 너머로 존재하게 됐다. 그 앤 자주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와의 긴 대화가 익숙치 않은 나는 핸드폰을 들지 않은 나머지 한 손으로 낙서를 끄적이며 어눌하게 끄덕이기만을 반복했다. 내가 서툴어 보인다면 다 작업 때문일 거야. 그러던 것이 최근 들어선 핸드폰을 베개 옆자리에 아기처럼 고이 누이게 됐다. 나는 그 옆에 두 손을 얌전히 배 위에 포갠 채 눕는다. 그러면 통화하는 목소리가 나란해진다. 마치 이야기하는 그 애가 바로 내 옆에 누워 있는 것처럼…… 나긋나긋해. 문득, 나 아닌 타인의 목소리가 궁금해져 녹음 버튼을 누른다.
새벽 4시. 바로 곁에서 속삭이던 음성이 귀에 쟁쟁하다. 허전함에 잠들 수 없다. 통화녹음을 찾아 본다. 몇 개의 저장파일들, 러닝타임은 15분에서 40분 가량. 재생. 시작부터 그 애가 울고 있다. 처음으로 나와, 타인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본다.
나는 오랫동안 사람들과 아귀를 맞추지 못하고 살아왔다.
─시선처리나 눈맞춤이 남들처럼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형성이 안 돼서. 나중에 혼자 따로 학습하고 익혔어.
─사람 만날 때마다 과제하는 느낌이겠네.
─뭐, 예전만큼은 아냐. 구구단 같은 거라. 구구단 많이 하면 2×3 정도는 자동으로 나오잖아. 근데 미리 긴장하거나 의식하면─이상하게 보이면 안 돼─들키면 안 돼─난이도가 순식간에 두 자리 수 구구단이 돼─그러니까, 상대방에게 잘 보이고 싶거나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자기가 듣는 자기 자신의 목소리는 뼈를 타고 울리기 때문에 실제 남들에게 들리는 소리와는 다르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 뼈는 이 젊은 나이에 유난히 폭 삭은 건가. 골밀도가 낮아 이토록 챙챙 울리고 끔찍한 소리가 나는가…… 아니다 한바탕 '대화'를 치르고 나면 아주 자주 목구멍이 아프므로 내 것은 실제로도 아주 찢어지는 고양이 소리일 것이다…… 사람들은 카랑카랑한 내 목소리가 귀를 긁는 것 같다고 했고 나는 사랑을 받기를 포기하여.
사랑받지 않아도 된다. 섬동네 산자락 작업실로 조용히 은신하며 생각했다. 틀어박혀 작업만 하다 보면 언젠간 창작으로만 먹고 살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글이든, 만화든…… 그땐 이빨로 혀를 끊고 영원히 침묵하며 살아가야지.
누군가는 묻겠지.
─창작은 대화가 아니란 말인가요?
─모르겠습니다. 듣고 싶지 않습니다.
반면 퍽 사교적인 그녀의 화법은 그 지긋지긋한 눈빛들의 상징 그 자체였다─당신의 말은 너무 빨라요─당신 목소리는 고음이에요─사투리가 심하시네요 원래 그 지방은 그래요?─혹시, 나랑 얘기하는 게 싫어요?……
그 앤 내 만화가 시 같다고 했다. 허튼 소리. 나는 시를 읽을 줄 모른다고 말한다. 연과 연 사이의 침묵이 아득하다고, 나를 노려보는 타인이 나에 대해 정의내리고 있을 것 같은 그 정적을 견딜 수 없노라고. 늘 글자를 처음 배우는 시절 같은 눈맞춤, 뼈다귀처럼 매사 삐걱이던 대화들. 그 사이사이 공백, 우회와 함축, 눈빛, 뜸들이는 운문. 굳이 휘돌아 꽃에 가 닿는 나비의 언어. 나를 불안하게 하는 그 침묵, 그들의 고요를 알아들을 수 없다. 그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고, 나는 그들에게 공감할 수 없다.
다 돌아간 녹음파일을 다시 재생한다. 그 애가 다시 운다. 우리는 울음의 방식조차 다르다. 나는 강풍이 나뭇잎을 파스스 부서뜨리는 한낮에 불처럼 울부짖고 그 앤 고요한 한밤에 젖어들 듯 훌쩍인다.
─나는 언니가 지나치게 빠르게 판단한 것, 내 말을 듣지 않은 것, 편집해서 해석한 것에 상처를 받았어. 솔직히 상처라기보단 빡쳤지…… 화났지…….
내 말은 평소 아주 빨랐고 자주 그 애 말을 삼켰다. 그녀가 드디어 그것을 문제 삼는 것이다. 어쩔 수 없어. 너랑 나는 다른 사람이야. 너는 조심조심 서행하는 안전운전자, 나는 중앙선을 침범하는 폭주 드라이버. 나는 팽팽하게 날이 선 맹수처럼 말을 하는데, 너는 너무 온순한 초식동물이야. 그러나 나는 이 맑은 눈망울의 짐승 또한 나를 삼켜 먹을 것 같아 촉각을 곤두세운다. 한 음절 한 음절이 찌릿찌릿 아프다.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지기를 너무나 일찍 포기해버린 데 대한 대가인가. 그녀가 잠시 호흡을 고르는 동안 나의 긴장된 숨소리가 느껴진다. 퉁겨나갈, 준비.
─내가 관계 맺기에 대한 언급을 몇 번이나 했는데. 좋은 말은 똥꼬로 듣고 나쁜말만 귀로듣고!
─아.
─그거 재조립하고!! 은근 내 말 잘 듣지도 않지… 난 말 다 끝나지도 않았는
─어 그게
─가만히 있어.
─…….
─말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먼저 분석하고 오해하지……
나는 벌에 쏘인 겁쟁이 사자가 되어 순식간에 움츠러든다. 역시 이 앤 내게 자극이야. 아퍼.
─다만, 나는 좀 더 기다릴 뿐이라고. 내가 어? 얼마나 어? 부드럽게 어? 기다려주면서 어?? 내가 진짜 오랜만에 예쁜 사람 만나서 좀 우아떨고, 상냥하게 다정하게, 이 언니 관계맺기 오랜만이니까 어???? 기다려주면서 어????? 다치지 않게 어?? 그렇게 내가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데!??!?!?!!? 그런 건 그냥 배려라고 생각하란 말이야, 배려란 말이야!
─후……
침묵.
침
묵
(아 다시 혼자가 되고 싶어)
.
…….
─있지. 요리를 할 때, 센 불에 빠르게 해야하는 요리가 있고 약불에서 오래 해야하는 요리가 있어. 어떤 것들은 밑작업을 해주어야 하고 어떤 것들을 오히려 그런 것들을 하면 안 돼. 가지 겉껍질을 벗겨서 요리하거나 당근을 깎지도 않고 삶거나…… 나는 그런 식으로 요리를 망치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나는 때론 기다리고 때론 바로 말하는 거야.
─무슨 무슨 생각이 들면, 그래서 불안하고 초조하면 메일을 보내요. 내가 컨펌할게. 나와의 일이니까. 같이 이야기하고 오해하는 부분이 없었음 좋겠어요.
─관계맺음은 어떤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만 가능한 게 아니야. 나와 언니는 파장이 맞는다고 했잖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참 좋은 걸 이뤄낼 수 있는게 아닐까……
파일 재생이 끝나가고 있다. 사근사근한 목소리에 비로소 잠이 드는 듯도 하다……
─언니. 내 시 보내줄게.
어느 정오, 화창한 음조에 차마 나 시 안 좋아한다고 했잖아 소릴 못 한다.
시는 그녀 자신의 말투와 비슷했다. 그 애의 나긋나긋한 어조, 느린 호흡, 다정한 눈길이 떠오른다. 문득 나 또한 소리내어 읽고 싶어졌다. 말을 주고받듯. 템포를 맞춰보고 싶다. 그 애가 언젠가 그랬다. 난 내가 노래부르는 걸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해...... 그렇다면 난 그 노랫말이란 어떤 느낌일지 알고 싶어서. 낭송해보고 싶어.
그리고 그, 호흡과, 내.
─통화 목소리를 믿어도 되는 건가.
─응?
─아니, 녹음이. 내 목소리 생각보다 너무 어린애 같아서. 비음 막 섞여 있고……
─아냐 언니 목소리 실제로도 그래. 애교 많구 애기 같구……
녹음파일, 우리의 대화, 나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파일을 반복재생한다. 또다시 울음소리다. 그 애 목소리가 이제야 내게 와 닿는다. 팔랑팔랑. 까무룩 잠이 드는 나의 숨소리. 정(定). 고요한 밤 눈물이 소리없이 스민다.
나보다 인생을 앞서 산 어느 낯모르는 이의 말을 기억해낸다. "호칭을 부르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말을 한 건 아니다. 그걸 둘이 차례로 번갈아 한다고 그게 대화니. '대화'는 일단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하고 하면서 연습해야 한다. '대화'라는 게 원래 얼마나 어렵고 무력한 건지 알아야 그걸 잘 해낼 방법을 연구하게 되고……"*
사람과 살아간다는 게 이런 것일까. 창작은 또 어떠한가. 타인과의 교류 없이, 대화 없이 골방에 틀어박혀 단지 그림을 그리고 문자만 뱉어내다 보면 뭔가 나오겠지 나의 날것만 들여다보던. 이제 비로소 삶을 아는 걸까. 다각다각 아귀 맞춰 들어가는 길. 서로의 조각을 끼워가는 일.
그 앤 사람을 만질 줄 안다. 나는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은 내 몸뚱이가 낯부끄럽다. 언니 만화는 시 같애. 따뜻한 손바닥에 살갗이 달라붙는다.
이리, 살을 맞추듯 말을 맞추고……
그래서 언젠가 우리의 모든 녹음이 노래가 되었으면.
나, 이제 노래를 아는 사람이 되리라.
*트위터 계정 @antipoint(박작가)님, 2015년 2월 10일 트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