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의 자격
얼마 전 있던 일이다.
내가 사는 곳 근처에는 봄가을로 은행 냄새와 벚꽃향이 진하다.
은행이 발에 채일 때는 진저리치지만 벚꽃의 분분함은 또 쉽사리 밉지 않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렇다고 애호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양쪽으로 번갈은 채 누가 싫든 좋든 태연하게 사람들을 마중하고 선 그 모양이 호불호를 사기 어렵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녀석들은 교묘하게 사람의 안중에서 벗어나 있어서, 나는 지나칠 때마다 멈추고 넋을 놓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냥 배경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럴 때는 홀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을 누린다.
가로수가 심긴 곳이 등굣길인 것을 미루어보면 이 나라의 학생들은 나무와 같이 계절을 타기에는 너무 바쁜 것일 수도 있다. 그 날도 등굣길을 걸으면서 벚꽃을 보고 있었다. 이형기 시인의 시가 생각나는 낙화였는데, 개중 나뭇가지에 매달리기가 파릇한 꽃 한 송이가 대뜸 입을 여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젖살이 채 안 빠진 중학생이었다. 벚꽃 운운하는 모양새가 꽤 반갑다.
‘이 녀석은 안 바쁜 모양인가 보구나!’
그러고 있는데 반응없이 걷는 친구가 섭섭했는지 녀석이 냉큼 화제를 바꾼다.
“야, 넌 어른 되고 싶냐? 어떨 거 같음?”
“민증 나오겠지 딴 거 있냐 뭐.”
“민증은, 씨바, 집에서 굴러댕기는 우리 오빠도 받는 거고. 좀 다른 거 있잖아.”
“술?”
“아니, 흐흐. 것도 그렇지만... ... .”
가만히 듣고 있자니 어린 애들이 하는 얘기가 맹랑하다.
“나는 연애를 한다면 그래도 오빠 쪽이 나을 거 같아. 아저씬 심했고, 고딩? 아님 내 차 있는 대학생!”
“지랄, 누가 만나주긴 한대?”
“말을 해도... ... . 우리 반 애들 보면 진짜 유치하잖아. 난 좀, 나를 이해해주고, 말 들어주는 타입이 끌리드라. 완전 연상 취향~”
“오, 그건 쫌 공감.”
“그치, 그게 다 똑같다 해도 좀 사회 물 먹은 사람들은 다르다니까. 어디서 읽었는데, 사람은 나이 먹는 만큼 깊어진대. 멋있지 이 말?”
그 즈음 마침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뒷자리 강 주임의 전화였다.
월말 정산을 뭐 이렇게 해놨냐고 바락거리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봄날의 앨리스에서 현실로 깨어났다.
이미 중학생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형기 시인은 낙화에 빗대어 가야 할 때를 아는 이의 아름다움을 ‘나의 청춘은 꽃답게 진다’라고 서술했다. 위를 보자 가지에 매달린 꽃송이의 모양새가 아까의 녀석과는 다르게 사뭇 아슬아슬하다. 나는 그걸 보고 문득 내가 피었던 시절을 겹쳐보고서는, 질 때를 모르는 것이 벚꽃의 자격인가 하였다.
-
이동준
010 4945 0641
sspwing@naver.com
열심히 습작을 거듭하다보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