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올해의 처음부터 가을이라는 계절을 피부로 느끼기 전까지, 다시 말해 1월부터 요즘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뜨겁고 긴 ‘여름’을 보냈다. 모든 것이 넘쳐났다. 나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애정, 나를 사랑하는 마음, 학구열, 행복감이 늘어나는 건 당연히 좋은 일이다.
문제는 ‘모든 것’이 늘어난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이성과 가까워지려는 마음이 커지는 건 당당하게 좋은 일이라고 할 순 없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당연히 나쁘다. 하지만, 왜 이성과 가까워지려는 마음을 내가 통제해야했을까. 간단하다. 아름다운 첫사랑인데, 미성년자인 내가 좋아해선 안 되는 대학생이었다.
사실 통제하는 건 너무 힘들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좋아한다는 감정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도 긴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시간이 아까웠다. 하지만 이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묻는 방법조차 몰랐으며, 난 사랑보단 내 꿈이 중요했다. 내가 그 사람과 마주친 기간 동안은 열심히 공부해야 했던 시기이고 열심히 공부했으며, 그런 모습을 긍정적으로 봐주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 내가 지금까지 가까워지려 노력한 대상은 가족, 친구, 그리고 선생님뿐이었다. 이런 유형의 노력밖에 안 해본 내가 이성으로써 매력적으로 느껴질 가능성? 역지사지로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이게 지난 1월의 얘기고, 그 후론 실제로 마주친 적도 없다.
나에겐 모든 것이 넘쳐났고, 마치 드라마 같은 내 첫사랑 따윈 내 마음속에 담아 둘 자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이 불어날 때 마다 내 그릇도 커져 결국 욕심으로 꾸역꾸역 다 소유하고 있더라. 그걸 깨달고 하나 둘 내려놓기 시작한 요즘이, 내 인생의 가을인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애정은 집착으로 번지지 않았고, 가까워지려는 마음은 추억하는 그리움이 되었다. 모든 것이 둔하고 무기력한 ‘겨울’까지 가지 않은, 딱 좋은 그런 상태다.
난 원래 가을을 좋아한다. 단순히 시원한 바람, 빛나는 태양, 그리고 그런 날들의 저녁이 좋다. 하지만 올해 맞은 가을은 유달리 더 특별하다. 나에게 가을이란 겨울 이전, 그 의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만 같다.
가을에는 낙엽이 떨어진다. 왜 나무는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걸까? 역할을 다 한 나뭇잎은 이제 필요 없는 존재인 낙엽이 되어 나무를 떠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앞에선 내 인생의 가장 뜨거운 부분의 열기가 식고 안정된 시기로 접어든 것이라면, 여기선 그 식은 것의 쓰레기들은 치워버렸다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쓰레기들은 사람이, 내가 가진 감정이, 또는 그 외의 다른 것이 될 수도 있다. 크진 않지만 인생에 도움이 되긴 한다, ‘저렇겐 되면 안 된다.’ 는 표본인 것이다.
난 쓰레기를 말 그대로 ‘치웠다.’ 어디 다른 구역으로 가져간 것이 아니라, 내 그릇을 줄인 후 어딘가에 따로 분리해놓은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조금은 다른 세상 얘기 같았다. 그 ‘쓰레기’에는 잘못보고 분리해놓아서 먼지만 털어 새로 사용할 것들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완전히 내려놓진 않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내 인생의 주류로 들여놓을 생각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지구의 완전한 탄생 이후로 쭉 사계절을 가지고 살아갔다. 그 중에서 가을이 몇 번 있었냐고 묻는다면 지구의 나이를 따져야 하므로 대답은 굉장히 큰 숫자가 될 것이다. 나는 ‘가을’이라는 기간을 가지고 있는 인생, 또는 지구로써 이번 가을이 끝이 아니며 수도 없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가을이 다가올 때마다 신선한 모습으로 날 기쁘게 해줄 것이라는 사실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