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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군고구마>


올해만은 가을 없이 지나는 줄 알았다. 해도 해도 너무한 더위에 거의 매일 이런 생각을 했다. 어느 정도 기세를 떨치다 저 알아 서서히 물러갈 줄 아는 여느 해의 점잖은 인정은 기색도 없었고, 더한 건 아침저녁의 구분마저 앗아가 버렸다는 거였다. 정말 여름다운, 다른 이름은 생각도 못하게 하는 뜨거운 시간이었다. 서서히 피부가 거칠어지고 서로 끌어당기는 감촉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올해도, 그 험난한 더위 속에서도 가을은 다가오고 있었다. 유독 추위를 타는 체질인데다 원하든 원치 안든 내 몸 곳곳에 다가온 계절의 한기를 감지하는 센서가 작동한다. 이유도 없이 결리는 어깨, 어제까지 멀쩡했던 감정의 급격한 하강 그리고 내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우울함... 모진 더위 속에서도 은근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길 망설인 데는 매해 겪음에도 여전히 그 이유도 알 수 없는, 또 치러야 할 그 우울한 감정의 늪이 두려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주 가는 도서관은 양쪽으로 난 길 가운데 도로가 놓여있다. 도로 위를 씽씽 달리는 자동차의 부산함만 뺀다면 잠시지만 도서관에 가기까지 걷게 되는 그 길은 마치 한 장의 엽서처럼 느슨하고 운치가 있다. 그 운치 속에 늘 그 자리를 지키는 하나의 풍경이 있는데 풍경을 지키는 아저씨는 철도 모르고 군고구마를 팔고 있다. 이번 여름만은 그 풍경도 단 며칠이라도 사라질 줄 알았다. 제아무리 성실하다해도 성실만으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정도의 더위가 아니었기에 은근 며칠 정도라도 검게 탄 일상의 수고를 놓기 바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군고구마 파는 아저씨는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휴가가 겹쳐 이래저래 평소보다 잦은 걸 음을 한 바람에 공교롭게도 더 자주 아저씨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서로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는 누군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사람만이 일방적으로 공상을 하게 되는데, 아저씨와 내 편에서는 내가 그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살짝 꺾어지는 경사를 지나 설마 오늘 이 날씨에는 없겠지 싶어 몸을 휙 돌리면 나른할 대로 나른한 표정을 동반하긴 했지만 군고구마 연기를 여리게 여리게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아마 내일도 있을 아저씨의 얼굴은 한낮 더위의 색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검어도 너무 검은... 그 곁을 지날 땐 어느 예배당에 들어설 때만큼이나 걸음이 조심스러워지고 짐짓 경건한 마음마저 들기도 했다. 올 여름 같은 날씨에도 묵묵히 고구마를 굽는, 가만있어도 활활 타는데 제 곁에 불덩이 하나를 더 피우는 그 습관적인 삶의 연단...


특별한 계획을 잡기 힘들었던 휴가라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도서관을 찾았던 거 같다. 휴가철을 기념할만한 맹렬한 더위는 그 며칠 동안도 계속되었고 그 며칠 동안의 풍경 속 단연 으뜸은 35도에 육박하는 더위 속에서도 묵묵히 고구마를 굽던 검게 그을린 아저씨의 존재 그 자체였다. 뭐라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은 시원한 냉방기 아래서 책을 편 순간에도 오래 잊히지 않고 계속되었다.


다시 돌아온 일상. 변하지 않아 다행이고 또 그래서 아쉬운 시간, 일상으로 돌아와 또 며칠이 지나고 있다. 아마 지금도 굽이진 골목을 돌아 도서관의 끝 글자가 눈에 들어올 위치쯤 가면 이 더위보다 더한 삶의 열기를 묵묵히 굽고 있는 아저씨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덥고, 내가 해야 할 일은 여전히 소박하고 때론 반복된 습관과도 같다. 하지만 그 순간순간마다 잠시나마 떠올려 볼 수 있는 한여름의 열기와 그보다 더 뭉클했던 삶에 대한 경건한 집념의 장면이 있다는 것. 올 여름의 한가했던 휴가는 실상 그 어느 해보다 더 뜨거웠는지도 모른다.



❍ 이 름: 박희영(010. 9327. 2835)

❍ 이메일: rydbr30@nate.com

  • profile
    korean 2017.02.27 20:59
    잘읽었습니다.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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