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오늘:
19
어제:
120
전체:
306,140

접속자현황

  • 1위. 후리지어
    65812점
  • 2위. 뻘건눈의토끼
    23333점
  • 3위. 靑雲
    18945점
  • 4위. 백암현상엽
    17074점
  • 5위. 농촌시인
    12042점
  • 6위. 결바람78
    11485점
  • 7위. 마사루
    11385점
  • 8위. 엑셀
    10614점
  • 9위. 키다리
    9494점
  • 10위. 오드리
    8414점
  • 11위. 송옥
    7661점
  • 12위. 은유시인
    7601점
  • 13위. 산들
    7490점
  • 14위. 예각
    3459점
  • 15위. 김류하
    3149점
  • 16위. 돌고래
    2741점
  • 17위. 이쁜이
    2237점
  • 18위. 풋사과
    1908점
  • 19위. 유성
    1740점
  • 20위. 상록수
    1289점
조회 수 164 추천 수 1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살찌우는 존재


나는 먹는다. 먹으며 버틴다.


아침잠에 짓눌려버린 인간에게, 그나마도 어제의 잔흔과 같은 더부룩함이 남아있다. 어젯밤 먹음의 증거. 더부룩함이, 내가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을 따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면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리맡에 스친다. 조용히 이불을 벗겨내고 침대 끝에 몸을 일으켜 앉는다. 이윽고, 욕망에 굴복한 내 자신이 얼마나 허망한 존재임을 확인한다. 맹렬히 나를 쫒던 욕구가 충족된 이후에는, 이처럼 냉정한 회고만이 나를 기다린다. 그리고 조용히 내 귓가에 속삭인다. 공허한 뱃속을 채우는 일이 얼마나 아무런 의미가 없었는지. 마무리되지 않은 어제와 함께, 또 다시 준비되지 않은 하루가 나에게 주어진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루는 시작된다. 선택사항은 없다.

알람 소리를 듣고, 이불을 걷어서, 화장실 문을 열고 물을 트는 여정은 얼마나 험난한가. 여전히 잠에 빠져있는 시체 같은 육체, 그리고 어젯밤의 과식을 기억하는 위장은 끊임없이 너는 나약한 존재.’임을 강요한다. 육체로 느껴지는 죄책감 속에, 나는 파리한 변명을 늘어보고자 잔머리를 굴려본다.



아으…….”

호스를 타고 올라온 얼음장같은 물이, 두피를 타고 머리카락 사이로 젖어든다. 이가 딱딱 부딪히며 소리를 낼 때, 이윽고 변명은 존재할 수 없다는 분명함이 피어오른다. 넌 욕망에 지고 말았어, 늘 그랬듯이. 차가운 물은 잠에 젖어있던 육체를 더욱 명민하게 만들고, 다시 한 번 부질없는 약속을 하게 만든다. ‘그래. 다시 시작이야. 오늘부터는 정말 인간답게 살거야.’라고 짐짓 근면한 나로 다짐하여 본다. 차가운 물을 통해 나는 다시 면죄부를 얻고, 오늘을 살아갈 최소한의 자격을 부여받는다. 실낱같은 자존감과 함께.



차가운 공기가 뺨에 스치는 것을 느끼며, 늘 내 앞에서만 야속하게 닫혀버리는 신호등 앞에 오늘도 섰다. 알람이 울리던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꾼 뒤, 배부름과 더부룩함의 차이를 생각한다. 이미 늦어버린 출근 시간때문에 마음을 매섭게 재촉해야 한다. 오늘은 아무것도 먹지 말아야지. 빨간 불을 기다리며 나를 바라보는 시간 속에, 몸과 마음이 무거워져 버린 한 인간이 서 있다. 그래 너무 배불러. 오늘은 먹지 않고 잠에 들 수 있겠어. 이내 파란 불이 켜진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쏟아진다. 이 사람들도 나처럼 다 늦은 걸까. 인파의 풍경 속에 나를 녹여낸다. 길 위의 사람들이 걸음을 재촉한다.

작은 도서관에서 일하는 낮 동안 만큼은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다. 책 속에 파묻혀 책 속의 글자가 아니라 책의 먼지들과 싸워야 할 때, 나는 먹어야 한다는 욕구를 잊는다. 손과 코에 덥수룩한 먼지들이 쌓였을 때, 그것을 확인하며 나는 오히려 생산감을 느낀다. 먹어서 생긴 잉여의 인력을 '어딘가에는 쓸 수 있구나.'하고. 손과 얼굴에 쌓인 먼지들을 비눗물에 씻겨 보내기가 어쩐지 아깝다. 손에 잡히는 얼굴의 결이 두툼하다. 물때가 낀 거울 속 잔상에 나를 비추어 본다. 얼굴에 피둥피둥 살이 더 오른 어떤 이가 나를 응시하고 있다. 하루하루의 나약함이 모여 정직히 거울에 나타내고 있을 뿐인데,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그저 낯설게 그것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어느덧 온수의 온기가 거울을 덮쳐오고 있다.



퇴근시간에 임박한 이들의 분주함은 아침의 그것과 어딘가 다르다. 누구하나 입 밖으로 꺼내지 않지만, 조용함 속에 왠지 모를 콧노래가 있다. 조그마한 내 자리를 정리하며, 창밖을 바라본다. 노을이 장막으로 바뀐 하늘. 오늘 나의 하루에는 내가 존재했을까. 다른 사람들은 약속이 있는지 저마다 핸드폰으로 연락하기 바쁘다.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뱃속으로 밀려온다. 외로운 배고픔에 허기를 느끼는 일만큼 규칙적인 일도 없다. 어느새 아침의 다짐은 잊고, 집 앞 편의점에 도착했다. 편의점 쇼윈도에 비친 이의 실루엣이 어찌하여 애처로울만큼 희미한가.



먹어선 안돼.’

아침의 다짐만큼이나 얄팍한 죄책감을 읊조린 후, 전쟁 통에 식량을 발견한 사람처럼 먹을거리들을 마구잡이로 장바구니에 집어 담는다. ‘찰나의 망설임어서 입에 넣어 쾌락을 맛보고 싶다는 분주함이 공존하는 이 시간에, 난 늘 이곳에 있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컴퓨터 앞에 앉아 편의점에서 사온 저렴한 음식들을 수라상처럼 펼쳐 놓은 뒤, 가장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을 하나 틀어 놓는다. , , , 귀가 동시에 즐거운 이 시간. 짧은 시간 안에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며 자조하지만, 욕구의 돼지가 된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 안타까운 사실을 너무나도 쉽게 인정하면서 나는 먹음을 계속할 뿐이다. 나는 이미 먹음에 길들여진 상태이리라.



갑자기, 컴퓨터 화면 속에 낯선 이가 한 명 있다는 것을 포착한다. 예능 프로그램 속 웃고 떠드는 사람들과 분리된 한 사람. 모니터 화면에 비친, 음식을 입에 쑤셔 넣고 있는 이의 얼굴. 너부대한 얼굴로 면발을 입으로 가져다 대고 있는 이는, 도서관 화장실에서 만났던 그 사람임에 틀림없다. 뱃속은 분명히 차오르고 있는데, 모니터의 그 사람은 만족감과 생경한 얼굴이다나는 이렇게 열심히 먹고 있는데 왜 당신은 웃고 있지를 않나.



.”

 

이 방에 그 사람과 나밖에 없다는 칼날 같은 절망감이 목구멍을 타고 뱃속을 통과한다.

 

 






나는 그저, ‘살찌우는 존재이다.

 

 












성명 : 김용근

연락처 : 010-5646-3665

이메일 : cbnu134106@naver.com

  • profile
    은유시인 2015.12.20 20:14
    저도 식탐이 좀 있는 편입니다.
    무지막지하게 많은 먹거리를 쌓아놓고 티비를 보는 시간이 그리 행복할 수가 없으니까요.
    먹고서 살만 찌지 않는다면, 먹고서 몸에 탈만 없다면 무에 그리 걱정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죽는날까지 맘껏 먹어댈텐데 말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콘테스트-수필 공모게시판 이용안내 6 file korean 2014.07.16 2769
613 길을 걷다 2 진하울 2015.11.04 143
612 8차 수필공모전 응모 - 삼일 외 1 1 file 꽃도라지 2015.11.05 210
611 기사회생 1 몽구 2015.11.06 150
610 몽구의 귀천.. 1 몽구 2015.11.06 176
609 동경 외 1편 1 하나린 2015.11.19 105
608 엄마, 1년 외 1편 1 마음약한사자 2015.11.27 160
607 글을 쓰고 싶은 날 1 이은유 2015.12.03 77
606 변치 않는 모습 1 이은유 2015.12.03 100
605 치즈 외 1편 1 루아 2015.12.07 173
604 전산쟁이와 Carpe diem 외 1편 1 대갈량 2015.12.07 152
603 제8차 창작콘테스트 응모작 아메리카노의 눈물 / 매니큐어 1 HelenKim 2015.12.08 230
602 멀어지다 외 1편 1 흉터 2015.12.09 99
601 제 8차 창작콘테스트 수필 부문 응모작 - 네 개의 서랍장 외 1편 1 나니 2015.12.09 232
600 제 8차 수필공모 : 소녀 외 1편 1 자두 2015.12.09 90
599 사랑해 더 사랑해 외 1편 1 아로미 2015.12.10 218
598 제 8차 창작콘테스트 수필공모 -인형의 집 외1편 1 블랙로즈 2015.12.10 170
597 제 8차 수필공모: 행복과죽음외 1편 1 미야 2015.12.10 101
» 제 8차 수필공모 : 살찌우는 존재 1 용뿌리 2015.12.10 164
595 월간문학한국인 제8차창작콘세스트 1 file 김춘식 2015.12.10 99
594 오래 바라보는 일 외 1편 1 klayahn 2015.12.10 82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40 Next
/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