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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감투가 좋다


난 감투가 좋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감투를 쓰는 것이 좋다. 다년간의 감투생활을 한 이유는 단지 좋아서였고, 그런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내가 좀 있어보였다. 나는 남들에게 있어보였으면 했다. 첫 감투를 쓴 이후 수년이 지나, 이제 학생의 자리에서 물러날 때 즈음 후배들에게 말했다. 1학년으로 다시 돌아가면 학생회 하겠다는 문자, 넣지 않을 거야. 활동을 하는 동안 입버릇처럼 다시는 그런 자리에 서지 않겠다고 하지만, 만약 그런 기회가 다시 온다면 나는 주저 없이 YES를 택할 것이다. 난 모순덩어리니까.

학생기록부에 올라가는 한 줄 정도의 글이 영향력을 과시하던 고등학교 때, 학급회의 투표에서 난 부반장이 되었다. 그 나이 때의 학생들이 그렇듯 가산점이 탐났고, 또래보다 위에 있다는 느낌이 매력적이었다. 쉽게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나를 정의하는 또 다른 그 말은 나를 눈치 보게 만들었다. 상처 주는 사람은 없는데, 나 스스로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작은 자리였으나 큰 자리인 냥 너스레를 떨었다. 눈치는 스트레스를 낳았다. 한창 사랑받고 싶었던 나이에 사랑은커녕 외면을 당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감에 햄버거를 먹으며 울었더랬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여렸고, 깨지기 쉬웠고, 강한 척 하는 겁쟁이였다.

그런 겁쟁이는 4년 뒤 한 학과의 학생회장이 된다.

계기는 단순했다. 학과 학생회 임원으로써 한 활동이 오래되었고, 나이도 있었고, 졸업반이었지만 딱히 이렇다 싶게 할 일이 없었다. 너 밖에 없다며 이전 학생회장 선배는 며칠을 졸랐다. 워낙 허물없는 사이었기에 처음에는 늘 하던 단순한 농담이겠거니 넘겼다. 그러다 계속되는 부탁과 그냥 넘기기에는 주변에 나를 아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를 반복해서 푸는 기분이었다. 부반장 따위가 아니었다. 200명의 학생들의 대표라는 자리였다. 나는 대학생인데, 뒤에서 욕하는 것이 두려워 눈물을 흘리는 고등학생이 될까봐 두려웠다. YES라는 결정을 내리고 나서도 걱정은 걱정을 낳았다. 201610월과 11월은 눈물로 보내지 않는 날을 꼽기가 힘들었다.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보다 어울리지 않는 감투를 쓴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학생회장이라는 감투를 쓴 이후로 난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해하는 시간이 생겼다. 학생회 일을 오래 해왔지만 사실 다수를 이끌어가는 일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랑받고 싶고 외면받기 싫어하던 고등학생은 없었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귀찮고 무서워진 또 다른 내가 생겼다. 감투를 쓴 이후로 만나는 사람들마다 사랑받고 싶어 하던 때도 있었다. 이런 학생회장이 되어야지, 하는 흔한 롤 모델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나를 싫어하는 날들이 반복되었다.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사랑하지도 않았다.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던 성격은 한없이 이기적이고 추악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어루만질 수는 있었지만, 나의 못난 점을 사랑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렇게 좋아만하던 감투가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자리라는 것을 깨닫는데 5년이나 걸린 것이다.

은근한 고민과 격렬한 후회 속에서 마지막을 향해 달렸다. 많은 사람들이 응당 받아야 할 몫이라는 듯이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내주었다. 끝날 무렵에는 항상 아쉬움과 시원함에 울었던 내가 보란 듯이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감투를 쓰고자 했던 나 자신에 대한 책임감과 더 이상 무너질 곳은 없다는 뜻의 마지막 발악이었으리라.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디라고 했다. 나는 무게가 아닌 왕관의 크기 때문에 밤새 잠 못 이루던 무능력한 왕이었다. 억지로 머리를 구겨넣어 왕인 척 했을 뿐이었다. 이제 그 감투를 내려놓으려한다. 사랑하지 못했던 나라는 사람과, 그 숱한 고민 속에서 헤매던 나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오직 한 사람

 

최근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김영하 작가의 <오직 두 사람>을 읽은 적이 있다. 흔히들 베스트셀러를 읽는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뉘는데,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사람과 그 책이 베스트셀러였어? 하는 사람이다. 나는 후자였다. 책을 읽고 나서는 어둡고 무서운 기분에 휩싸였었다. 김영하 작가가 이렇게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책을 쓸 수 있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책은 쉽게 읽혔고, 깊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내가 겪은 하나의 사건과 책 속의 몇 마디가 쉽게 떠나지 않았다.

울 코트보다는 트렌치코트가 어울렸던 계절, 한강에서 작은 여유를 즐기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고, 아빠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래간만의 여유 부림을 비웃기라도 하듯 혼란은 빠르지만 차갑게 다가왔다.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실감, 허둥대는 상황 속에서 몇 분 뒤 다행히도 입원치료만 하면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걱정은 되었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흔히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내가 아빠에게 느끼는 흔한 감정이었다. 근데 그 흔한 감정을 가진 것이 문제란 듯이 아빠는 병원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누군가가 있어야 물을 먹을 수 있었고,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없었으며,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우리는 점점 아빠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다. 핸드폰을 달고 살던 사람이 그 작은 기계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의 나는 멀리 떨어진 학교에 다니고 있던 터라, 틈이 나면 가려고 노력했지만, 왕복 다섯 시간이 걸리는 거리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래, 내가 굳이 가지 않아도 언젠가 자리 털고 일어나시겠지. 뭐 별거 있겠어? 라는 생각이 더 컸다. 나는 아빠를 외면했다.

4월의 첫 머리에, 나는 아빠에게 문자 한 통을 받게 된다. 생일이냐? 축하한다. 간단하지만 아빠다운 문자였다. 잘 움직이지 않는 손을 들어 서툴게 쳤을 타자에 살짝 웃었다. 고맙다는 답을 보냈다. 그날 난 생일이란 명목 하에 즐길 거리는 즐기는 평범한 학생 신분을 누렸다. 그 날 밤이었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가 쓰러졌어, 큰 수술을 받을 것 같아. 내가 아빠에게 받은 마지막 문자는 생일 축하한다는 것이었다.

전신마취를 하면 사람은 그때 그냥 죽는 거야, 오랜 시간 마취했다가 깨어난 사람은 원래의 그 사람이 아니야. 도마뱀의 꼬리도 자르면 재생하지만, 원래의 크기로 자라지는 않는다잖아.” 김영하 작가의 <오직 두 사람> 이야기는 주인공의 후배가 보내온 편지로 시작한다. 편지의 주인공도 아버지가 큰 수술을 받았고, 그렇게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였다. 앞의 구절은 편지 주인공의 오빠가 한 말이다. 주인공은 저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자신이 그동안 살면서 보아왔던 아버지는 이제 없다. 자신이 알던 아버지는 죽었다고 말이다. 중환자실에 가만히 누워만 있던 아빠를 보고 나도 생각했다. 내가 미워하던, 또는 사랑하던 아빠는 이제 없는 건 아닐까하고. 지금 여기 누워, 나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보고 있는 전혀 다른 사람은 아닐까하고 말이다.

엄마와 나는 그 공허한 눈동자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자존심 강하던 사람이 저렇게 누워만 있으니 얼마나 불쌍하니, 너무 안타까워. 엄마는 가끔 눈물을 흘렸다. 엄마에게 지금의 나는 행복하진 않지만 불행하진 않다고 했다. 엄마는 행복하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대단했고, 밝았지만, 나는 계속 책의 구절을 입 밖에 낼까봐 두려웠다. 난 그런 낙천적인 사고는 못해, 엄마. 미안해. 우리는 이제 둘이서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오직 한 사람만이 병실에 누워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을 하고 있을 뿐이다.

  • profile
    korean 2018.02.28 17:39
    좋은 작품입니다.
    열심히 정진하다보면 틀림없이 좋은 결실을 맺으리라 믿어집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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