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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선물

   

   어릴 적 아버지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다부진 체격으로 늘 모자를 눌러쓰고 다녔다. 집 근처 재래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했는데, 여름 뙤약볕과 겨울의 매서운 바람을 온몸으로 버티다 보니 아버지의 얼굴은 하얗게 될 사이 없이 늘 까만 상태였다. 엄마도 공장에 다니면서 맞벌이를 했지만, 두 분이 열심히 일한 만큼 우리 집 경제력은 그리 녹록하지 못했다. 아침에 엄마가 밥을 해 놓고 출근하면, 나는 그걸 점심으로 챙겨 먹은 후 해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쫄쫄 굶어가며 엄마를 기다리기 다반사였다.

   시장에서 장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손에는 늘 검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여름에는 옥수수, 참외 등을 챙겨오고 겨울에는 붕어빵이나 호빵 등을 사 왔다. 항상 두 남매라 외치며 손 붙잡고 다니던 오빠와 나는 아버지가 오늘은 무얼 갖고 올까 궁금해하며 귀가를 기다렸다. 지금 생각하면 퇴근하는 아버지와 간식 중 무엇을 기다렸는지 양쪽을 저울질해봤을 때, 아마도 간식을 더 기다리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가 갖고 온 주전부리 가운데 오빠와 내가 좋아했던 것은 겨울에 즐겨 먹는 귤이었다. 물론 좋아하기는 바나나를 더 좋아했다. 지금은 바나나를 한 송이 단위로 사 먹지만, 그땐 하나씩 떼어서 판매했다. 낱개로 팔아도 가격이 비싸 생일 때나 한 번 사줄까말까 하다 보니 오빠와 나는 바나나를 먹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겨울 방학이면 아버지는 귤 한 봉지를 사 올 때가 있었다. 운 좋은 날은 한 상자를 사 오기도 했다. 운이 좋은 건 오빠와 나고, 아버지는 비상금이 털리는 날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귀한 귤 한 상자도 우리 두 사람에게는 이삼일 간식에 지나지 않았다. 집에는 귤 먹는 하마가 두 마리나 살고 있다 보니 상자는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빈 젖병을 물고 분유 주기만 기다리는 어린 아기처럼 겨울만 되면 우리는 아버지가 귤 사 오기를 기다렸다.

   언제 그칠지 모른다는 듯 하염없이 눈이 내리고 매서운 추위가 이어지던 어느 날 며칠째 귤을 사 오지 않는 아버지께 나는 물었다.

   “아빠. 귤 왜 안 사와?”

   “귤 장수가 추워서 얼어 죽었다.”

   이삼일 지나 나는 다시 물었다.

   “아빠. 귤 장수 지금도 죽었어?”

   날씨 영향으로 장사가 안되고, 귤 시세가 오르면 아버지는 나에게 못 사 오는 핑계를 그렇게 말씀하셨고, 어린 나는 곧이곧대로 믿고 귤 장수가 살아나길 기다렸다. 그때는 사람이 상황에 따라 죽었다 살아나기도 하는 줄 알 정도로 어릴 때였다. 며칠째 아버지의 손만 기다리고 있노라면 침이 고일 정도로 상큼하고 시큼한 귤 향기가 문밖에서 우리를 불러낼 때가 있었다. 아버지는 장사 하던 도중에라도 귤을 사게 되면 밤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미리 갖다 주기 위해 인기척 없이 집에 잠깐 들린 거다. 우리의 기다림을 알고 있는 아버지의 작은 선물이었다.

   장사를 그만둔 지 오래됐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햇볕에 그을린 까만 피부 그대로다. 이제는 그늘에 계셔도 까만 피부가 아버지를 떠날 줄 모른다. 그 단단했던 체격은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함께 실려 보냈는지 나날이 왜소해지고 있다. 그 옛날 즐겨 쓰고 다니던 모자는 언제 던져 버렸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은 모자를 쓰시지 않는다. 피부색이 하얗게 되었다면 조금 과장해서 아버지를 몰라볼지도 모르겠다. 내가 자라 어른이 된 만큼 아버지는 반대로 노인이 되어가고 있다. 아버지의 젊음을 내가 뺏어왔나 보다.

   이제는 내가 친정에 들릴 때 검은 봉지를 가지고 간다. 때로는 내 손에 쇼핑백이 들려있기도 하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소주를 한 병 사 가기도 한다. 매일 사 오던 아버지처럼은 아니지만, 감사의 마음을 살짝 실은 검은 봉지를 아버지 대신해 내가 내밀어본다. 아버지는 뭘 사 오냐고 하면서도 어릴 적 오빠와 내가 좋아했던 것처럼 반가워한다. 차이가 있다면, 그 당시 우리는 아버지가 사다 주는 걸 당연한 거로 생각했고, 지금의 아버지는 무척 고맙고 미안해하면서 받으신다.

   지금도 나는 귤을 좋아하지만, 오빠와 싸워가며 한 개 더 먹으려 했던 그때만큼 맛있지는 않다. 나에게도 딸과 아들 두 남매가 있는데, 그들에게 귤을 건네면 우리 때처럼 잘 먹지 않는다. 먹거리가 풍족해진 요즘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그때의 귤 맛을 아이들이 모르고 자라는 게 아닌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헬리콥터맘

     

   나는 여러 가지 자격증을 가지고 있지만, 그 가운데 남들에게 “저, 이런 자격증 있어요.”라고 말하기 쑥스러운 특별한 자격증이 있다. 어문회에서 주관하는 한자능력검정 7급 자격증이다. 8급부터 특급까지 15단계로 되어있는데, 급수별로 상용한자를 배분해 놓고 읽기, 쓰기 등으로 시험을 본다. 내가 가지고 있는 7급은 150자의 상용한자가 문제로 나온다. 주로 초등학교 저학년이 보는 시험이다.

   이 시험을 보게 된 경위는 간단했다. 딸이 초등학교 2학년일 때, 학원에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해서 자격증 시험을 보게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학원 차량으로 학생이 벌떼처럼 몰려와 시끌벅적하게 시험을 치르고 가는 추세라 아이 혼자 시험장에 들여보내기가 안쓰러웠다. 생각하다 못해 내가 시험을 같이 보기로 하고, 두 명을 단체접수 했다. 내 수험번호가 딸보다 빨랐다. 초등학생만 3~40명 몰려있던 시험장에 내 자리는 교실 앞문 쪽 맨 앞자리였고, 딸이 내 뒤에 앉았다.

   “학부모님은 모두 나가 주세요.”

   “부모님은 나가라고요.”

   “시험 보러 왔는데요.”

   “그러니까 학생 시험 보게 어머님 나가시라고요.”

   “아니요. 저도 본다고요.”

   책상 양쪽에 손을 걸치고, 나에게 퇴실을 요구하던 시험 감독은 내가 내민 수험표를 보고 어이없어했다. 소인국에 등장한 걸리버처럼 나는 고만고만한 아이들 틈에서 시험을 치렀고, 100점 만점으로 7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몇 년이 흘러 딸이 중학생이 되었을 때다. 나는 회사 업무상 ITQ 공인강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다문화센터 결혼 이민자나 장애우를 대상으로 컴퓨터 활용법 강의를 했었다. 본국에서 컴퓨터를 배우고 왔던 사람들도 있어서, 몇몇은 한글, 엑셀, 파워포인트 자격증 시험을 치렀다. 일요일 시험장을 찾는 그들 틈에 딸도 어울려 시험을 봤다. 나는 집에서 틈틈이 딸을 가르쳤고, 덕분에 한글과 파워포인트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딸은 함수를 이해하지 못해 엑셀 시험을 못 봐 아쉬워했다.

   다시 흐른 시간은 딸을 고등학생으로 만들어 놨다. 드라마 작가가 꿈인 딸과 전국 백일장을 다니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 인터넷 소설을 쓴 후, 몇 안 되는 독자의 반응에 기뻐하고 속상해했던 일이나, 드라마를 보며 뒷이야기를 상상했었다는 딸의 말이 수긍이 됐다.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딸이 부러웠다. 딸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작년에는 주말에 도서관을 함께 찾았다. 무언가 공부해보겠다고 전기기사 자격증 준비를 했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 하는 공부로는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었다. 이왕 도서관에 앉아서 집중할 거면 내가 좋아하는 걸 하자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다. 그래서 올해는 글쓰기 공부를 하고 있다.

   딸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하지 못한다고 설득하는 바람에 나는 콘서트 관람을 위한 새벽 줄서기도 감행했다. 겨울에 진행된 고척 돔구장 콘서트는 금요일 저녁 8시부터 토요일 오전 10시 티켓 배포 전까지 밤샘 대기였다. 다행히 집이 가까워 새벽에 2시간 정도 교대로 자리를 비우고 집에서 씻고, 자고 오기도 했다. 바닷바람이 매섭다고, 안양천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상상 이상으로 추웠다. 바지 위에 수면 바지, 외투 위에 담요를 걸치고 패션을 포기한 나는 캠핑매트와 돗자리를 깔고 하룻밤을 버텼다. 올림픽 체조 경기장은 새벽 4시부터 줄서기 시작했는데, 우리는 그날 스탠딩 좌석을 선택했었다. 마흔이 넘는 아줌마에게 새벽부터 시작된 빡빡한 일정에 스탠딩 공연은 무리였다. 나는 공연 내내 끝나기만 기다리다 마지막 가수로 박진영이 나오자 환호했다. 연령대별로 손들어 보라는데, 스탠딩 좌석에 40대는 나 한사람이었다. 이제는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남은 온 기운을 다 쏟아내고 왔다.

   2017년 3월부터 1년 휴직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나와 딸을 위한 선택이었다. 23년의 직장생활은 긴 마라톤이고, 반환점을 넘어 결승선을 향하는 시점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갈 여유가 필요했다. 딸이 참가하는 전국 백일장과 대학 입시 면접에 동행도 해야 했다. 백일장에서 나는 일반부로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글을 써 보겠다고 결정한 지 얼마 안 되어 심사위원이 흉볼 수 있는 솜씨겠지만, 일정한 시간에 지정된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보는 좋은 기회였다.

   휴직과 동시에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과 2학년에 편입한 나는 조정래의 ‘태백산맥’ 10권을 모두 읽었다. 그 외에도 과제를 위한 청소년 권장 도서 15권과 교수님 추천 도서 등 10개월 동안 50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 내가 읽은 도서 가운데 좋은 책은 딸에게 추천해주었고, 그것은 딸의 생활기록부 독서 활동 목록에 자리 잡았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꽉 채운 생활기록부를 가지고 딸은 대학교 수시전형에 합격했다.

   오랜 직장생활을 하면서 딸을 지지해줄 수 있었던 건 가족의 뒷받침이 있어서였다. 아직 중학생인 둘째와 살림 돌보기는 어머님 몫이었고, 남편은 나의 가정에 대한 소홀함을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었다. 가족이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러기에 미안하고 고마움이 늘 가슴 한 편에 묻어있다.

   헬리콥터 맘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들이 성장해 대학에 들어가거나 사회생활을 하게 되어도 헬리콥터처럼 아이 주변을 맴돌면서 온갖 일에 다 참견하는 엄마를 일컫는 신조어다. 가끔 걱정된다. 나도 헬리콥터 맘이 돼서 딸의 매사를 간섭하고 있는건 아닌가? 내가 미처 못 느꼈지만, 내 행동이 부담이었을 수도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관심 두는 건 당연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어느 정도 선을 그어야 한다. 이제는 미성년자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 딸도 나와 같은 성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인가 보다.

   “너와 휴직에 관련된 수필을 많이 쓰게 된다. 이번에 제목이 헬리콥터 맘이야.”

   이런 말을 건네자, 딸이 대답했다. “엄마는 헬리콥터 맘 아니잖아.” 딸이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스러워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차미화 / 010-3077-2501 / leechaa@daum.net


  • profile
    korean 2018.02.28 18:01
    좋은 작품입니다.
    열심히 정진하다보면 틀림없이 좋은 결실을 맺으리라 믿어집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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