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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1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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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머링 맨. 어둠이 음산하게 내려앉던 1월의 어느 겨울 저녁, 차근차근 한 발자국씩 옮길 때마다 먼발치에서 마치 내 발자국을 내리 찍듯 망치질을 하던 거대한 그 남자는 기억 저 편 깊은 곳에까지 각인되었다. 영어회화연습을 위해 영국문화원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동일한 시각에 같은 길을 지나가며 어스름 추위 속에서 그 남자를 응시했던 한 달이 마치 꿈속인 듯 아련하다. 그 남자와의 추억 때문에 건물 전면의 조각들을 눈여겨보는 습성이 생겼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이 거래를 하나 하자며 연락을 취해 왔다. 박사 코스를 위한 시험을 봐야 하는데 영어를 가르쳐 주면 그 대가로 그림을 지도해 주겠다는 신선한 조건이었다. 그림? 내가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던가? 그 단어가 너무 생소하게 화~악 다가왔기 때문에 마음 단속할 여유가 없어 나도 모르게 승낙해 버린 것 같다.

 

그림이라고 하면, 멋진 호수 근처에 이젤을 세워 놓고 하루 종일 경치와 벗하며 마법에 홀린 것처럼 그리는 줄 알았다. 낭만적인 영화 장면으로 잘못 각색된 편견이었다. 첫 날 영어 공부를 마치자, 지인은 수십 장의 풍경사진을 꺼내더니 마음에 드는 걸 고르라고 했다.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은 애초에 내 로망이 아니었지만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가장 쉬워 보이는 사진을 하나 뽑아 들었다. 에어컨 소리만 요란한 지하 화실에서 직접 고른 사진을 호수라고 상상하며 스케치를 시작했다.

 

덧칠 또 덧칠로 실수를 감출 수 있다는 걸 신기해하며 난생 처음 유화라는 걸 그려봤다. 일주일에 두어 번 지인의 화실에 들러, 한 시간여 함께 영어 공부를 한 다음 홀로 그림을 그리는 게 삼복더위 여름 한 달의 일상이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아등바등했던 외부 세계를 온전히 잊고, 나 자신을 돌려받아 시간을 잊은 채 무념에로의 몰입으로 그 해 여름 더위를 났다.

 

사진을 보고 그릴 거면 굳이 그림 그릴 필요가 있을까? 멋진 사진 그 자체로도 작품일 텐데? 모방에 대한 반감을 은근슬쩍 감춘 의문과 호기심에서 발현된 수많은 질문이 솟아올랐다. ‘말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나마 중간은 간다.’ 큰 오라버니 어록이 떠올라 짐짓 교양 있는 척, 시키는 대로 따라 하기만 했다.

 

점입가경이라더니 겨우 내 그림이다 정붙이며 드디어 작품(?) 하나 완성했나 싶었는데 이젠 대놓고 선생님께서 수정 작업에 돌입하셨다. 하늘이 이토록 청아하게 푸르러서는 곤란하니 톤을 조금 죽이자며 곳곳에 먹구름 낀 듯 하늘을 흐려 놓을 땐 눈물까지 찔끔 날 것 같았다.

 

사실, 그려 놓고 보니 내 그림엔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원본 사진은 사진, 내 그림은 사진과는 판이한 물감모음이었다. 그래도 이 세상에 단 한 점 존재하는 나만의 그림이니 주방 한 쪽 벽면에 잘 모셔놓았다. 거의 15년이 다 되어 가도록 관람객은 나 혼자다.

 

이후로 그림을 그리겠다고 시도한 적도 없고 적당한 기회도 다시 오지 않았다. 다만 화가들의 일생에 대한 영화가 우연히 눈에 띠면 놓치지 않고 챙겨 봤을 뿐이다. 그런데 요즘 인문학 강의 열풍이 불면서 미술에 대한 강의도 다양해지고 덕택에 나 역시 그림에 노출되는 횟수가 잦아졌다. 예전에 몰랐던 여러 사실도 새삼 접하게 됐다.

 

서양화의 본래 목적은 존재하는 현실을 그대로 모방하는 재현(再現)’이라고 한다. , 삼차원의 현실을 이차원적인 공간에 고스란히 옮겨 놓는 것. 오랜 세월 지난한 노력으로 조금씩 목적을 달성해 나가면서 명암과 원근법 등 다양한 기법으로 입체감을 나타내게 되었고, 급기야 시간성의 압축과 완벽한 재현을 달성한 사진기의 발명으로 결실을 맺었다. 본질을 빼앗기게 되어 위기에 처한 그림. 존재여부를 위해 철저한 분석에 돌입하여 문제해결 방법을 부단히 모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노력의 흔적으로 순수미술을 넘어 응용미술의 분야까지 확대재생산이라는 반전의 길을 닦은 건 아닐까? 심지어 현대에 이르러서는 압축된 시간을 다시 풀어 놓아 줌으로써 인간성의 회복을 꾀하는 예술의 본질을 되찾아 간다고.

 

사진보다도 더 섬세하고 명확하게 그리는 극사실주의, 혹은 사진과는 전혀 다른 추상주의의 그림들, 예컨대, 칸딘스키의 따뜻한 추상이나 피카소의 입체파 혹은 초현실주의의 그림들. 사진기가 발명됨으로써 우린 운 좋게도 재현은 물론, 더욱 풍부하고 다양한 표현 방법을 새로이 접하게 되었지만 무지와 수동적인 태도만으로는 감히 그런 다양성을 포용할 수가 없게 됐다. 진정한 감상을 위해서는 관람자로서의 시각도 다각도로 벼려야 함을 요구받는 듯하다.

 

몇 년 전인가? ‘행복한 눈물이라는 그림이 매스컴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무슨 만화 같은 그림이 그토록 비싸고 소장가치가 있을까 자못 의아했던 나의 무식은 최근에서야 조금 벗겨졌다. 팝아트의 한 장르로서 커다란 유화지만, 사진이 나타내지 못하는 아주 미세한 면까지 점으로 그려져 있다고 한다. 이제는 그림을 대신한 사진이 아니라 사진을 대신하는 그림이, ‘재현을 넘어서는 표현이라는 화두를 슬쩍 던지는 것 같다.

 

남들과 달라 보이는 게 두려워서 항상 모방에만 힘쓰던 나의 일상생활이 재현이라면 사진 같은 판박이 일상에 색다른 변화를 주고 삶에 보다 솔직한 표현을 시도해보며 한 번 뿐인 삶의 단계를 조금씩 확장시켜 나가는 것, 진정한 우리의 바람이 아닐까? 사진기가 대신한 재현때문에 그림이 홀대 받기는커녕, 위기를 극복하고 영역을 확대해 추상으로까지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했듯이. 아직 완벽한 재현조차 이루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언제 재현을 넘어 추상의 영역까지 미칠 수 있을까 한숨보다 깊은 신음이 내뱉어진다. 피카소가 그랬다던가? 9살 때 이미 재현을 완성한 그가 내가 어른처럼 그림을 그리는 데는 9년이 걸렸고 다시 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30년이 걸렸다라고?

 

재현이 표현의 필수불가결한 기본 영역이라는 걸 인정하지만 이젠 모방을 넘어서 자신만의 진정성으로 삶을 표현해야 할 인생의 겨울을 맞이한 것 같다. 혹독하게 추운 1월의 겨울 저녁, 성급하게 어둠이 내려앉던 거리 한 복판에서 시간을 쪼아내듯 둔탁한 손놀림으로 망치를 두드리며 자신을 벼리는 것 같던 해머링 맨처럼.



신년 음악회

 

오후 630. 드디어 출발할 시간이 됐다. 창밖을 흘낏 보니 어느 새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5분 전만 해도 차도에는 엉덩이와 얼굴을 서로 붙인 채 빽빽이 늘어선 차들과 인도의 오가는 사람들 윤곽이 보였었는데...역시 1월의 하루는 짧고 어둠은 순식간에 급습한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나갈 준비 완료.

 

어느 새 4년이 후딱 지났나보다. Y 전당에서 신년 음악회를 즐기며 한 해를 느껍게 맞이하던 그 때가. 하지만 무대의 화려함만큼 빛나지도, 열광하며 들었던 음악만큼 신나지도 않았던 한 해였다. 그 해 가을 일 년 이상 병원에서 누워 지내던 친정엄마가 돌아가셨다. 아흔하고도 삼년을 이 세상에서 머무르신 후에 가기 싫은 걸음 마지못해 떼며 떠나셨다.

 

지하철에서 내린 후, 버스로 환승하여 두어 정거장을 더 가니 목적지인 콘서트 하우스 바로 코앞이었다. 버스를 내릴 때 시간을 보니 71. 적당하게 도착한 것 같다. 시작이 730분이니 지금쯤 들어가면 넉넉히 여유로울 것이다. 세상의 모닥불인양 어둑한 광활함 속에서 홀로 빛을 내는 콘서트 하우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창 저편에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 무리지어 공연장 안으로 들어 갈 시간을 기다리는 듯하다. 건물 입구의 계단을 오른다. 가끔씩 스쳐가는 차의 불빛이 잠깐씩 계단을 비춰 준다. 추위와 어둠이 점령한 거리에 콘서트 하우스의 환한 불빛이 다소나마 옅은 온기를 발산하는 듯하다.

 

작년이었다. S아트홀에서 신년음악회를 한다는 일정을 확인하고 자못 기대에 부풀어 찾아갔다. Y 전당 신년 음악회의 감격을 오랜만에 되살려 볼 수 있겠구나 가슴이 뛰었다. 전석 초대이니 너무 일찍 가서 쭈뼛거리지 말고 적당하게 시간 맞춰 품위 있게 들어가리라 맘먹었다. 괜히 근처를 서성거리며 시간을 맞추었다. 15분 전쯤 되어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오르자 저 위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실내로 들어서니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의아했지만 떼 지어 서 있는 사람들을 뚫고 좌석 표를 받으러 갔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고 이미 표는 매진이었다. 이럴 수가! 완전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조금 일찍 오시지 않구요. 오늘은 높은 분들이 오셔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출동하다시피 하셨네요.’ ~왜 진작 사태 파악 못하고 쓸데없는 시간 낭비로 이런 낭패를 당하는 걸까? 작년 한 해, 그 영향 때문이었는지 마땅한 시간제 일거리도 없어,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책과 무료강의로 한 해를 때웠다.

 

오늘 갑자기 한파가 몰아쳐 추워진 탓인지 거리에 사람들도 뜸하고 바람도 차가웠다. 전석 초대 좌석 표를 받으려고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도 드문드문하고 나눠 줄 프로그램도 수북이 그대로 쌓인 채였다. 오히려 표를 예매하는 경우에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 같은 건 나만의 느낌일까? 높은 천장과 넓은 홀 안이 왠지 썰렁하게 느껴진다. 착석하고 시계를 보니 720. 10분 후면 공연 시작일 테니 그동안 프로그램이나 봐 두자.

 

오케스트라 이름이 플루트인가? ‘플루트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아 연신 고개를 갸웃거려 본다. 공연 시작을 알리는 듯 무대 위 조명이 환하게 밝아 오면서 단원들이 하나 둘 씩 입장하자 궁금증은 풀렸다. 70명 단원 중 거의 60명 가까이가 플루트를 들고 있었다. 2009년도 쯤, 일산에서 윈드 오케스트라 야외공연을 본 기억이 났다. 당연히 무료였고 사람들은 편안하게 노천극장 같은 곳에서 상쾌한 봄바람의 애무를 받으며 공연을 즐겼다. 그 땐 거의 브라스(brass) 밴드였었다.

 

정확히 733. 무대가 밝아지는 것과 반비례하여 객석은 서서히 어두워지고 잠이 들 때처럼 편안한 마음이 됐다. 단원들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 조용히 착석하는데 거의 모두 여성이다. 혹 다른 악기가 있나 살펴보니 끝줄에 드럼을 맡은 듯한 남자 한 명이 보인다. 모두 착석을 마치자 무게감 있어 보이는 초로의 남성이 플루트를 들고 등장, 단장이라며 인사를 한다. 전원 아마추어로 구성된 플루트 오케스트라에 대해 간략한 소개도 겸했다. 박수. 드디어 까만 턱시도를 날렵하게 차려입은 지휘자님 등장. 좀 작은 키에 약간 벗겨진 머리 때문에 동네 아저씨처럼 평범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첫 곡과 플루트 독주가 무난하게 끝나자 곧이어 낯익은 가락이 흘러나왔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와 함께 즐겨 치던 젓가락행진곡’. 플루트와 바이올린으로 색다른 느낌의 변주곡을 연주한다. 또 박수.

 

이루마의 피아노 독주회 때는 첼로와의 듀엣 연주가 끼여 있었다. 처음 보는 조합이라 다소 신기했지만 예상외로 조화로웠다. 요즘 젊은이들이 서로 간에 케미를 찾듯, 악기 사이의 케미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정작 연주곡의 제목은 잊었지만 첼로에게만 집중되던 조명아래 또렷하던 부각되던 이미지와 분위기는 몇 년 후까지도 선명하게 기억났다.

 

네 곡 연주 후 인터미션. 오늘 전석 초대인 신년 음악회가 별로라는 생각이 들면 인터미션 때 그냥 집으로 돌아온다는 대안이 있었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보고 1부 연주를 들어 보니 플루트만의 색다른 연주가 신선하게 와 닿아서 공연 끝까지 자리를 지키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겨울밤에는 어둠이 급속히 깊어진다는 게 불안했고 집으로 가는 버스가 일찍 끊기는 대중교통편도 걱정이 됐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겼다. 잠시 내가 판도라가 된 듯해서 슬몃 웃어본다.

 

딸과 함께 크리스마스이브 축하공연을 갔었다. Y 전당에서 하는 하프연주회였다. 천상의 소리 같은 하프연주를 그것도 크리스마스이브에 듣는다는 것 자체가 축복인 듯해 그 날 아침부터 구름 위를 걷는 듯 들떠 있었다. 서둘러 퇴근해 집에 와 보니 딸은 가기 싫은지 늑장 피우며 이것저것 핑계를 댄다. 겨우 채근해서 공연장을 향해 나섰는데, 도로가 완전 주차장이었다. 버스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좋지 않은 언사로 서로를 탓하며 기분 상하고 연주회 끝나서는 각자 따로 집에 왔다. 좋은 음악을 좋은 날에 들었는데 왜 그랬을까? 우리 모녀는 늘 그렇듯 빗나가고 어긋나며 30년을 지나온 것 같다. 음악은 사랑을 싹틔울 수는 있지만 미움이나 증오를 감하기에는 역부족인 걸까?

 

8252부 공연 시작. 생뚱맞게 네 명의 남성 브라스밴드가 먼저 무대로 입장하여 맨 끝단에 자리를 잡았다. 첫 곡은 주페의 경기병 서곡’. 곱고 미려한 음색으로만 인식되던 플루트가 오케스트라를 결성하니 이런 연주도 가능하구나! 잠시 놀란다. 윈드 오케스트라 야외 공연 때의 추억이 상승효과를 내면서 인터미션 때 집으로 가지 않았음이 정말 다행이었다고 스스로 대견해 한다. 트럼펫, 트롬본, 튜바 사실 그네들이 함께 해 준 덕에 가능했던 연주였던 것 같다. 주니어 단원들의 앙증맞은 연주도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 주었다.

 

나와 두 아이들에겐 플루트에 얽힌 좋지 않은 추억이 앙금처럼 남아있다. 딸이 방과 후 학교를 통해 처음으로 플루트를 대했고 그 후 아들이 바통을 물려받았다. 딸은 선생님에게서도 칭찬을 받을 만큼 소질이 좀 있었지만 아들은 아니었다. 동요 한 곡 연주하면서도 몇 번씩 되풀이 시작해야 하는 게 짜증이 났던지 급기야 화를 버럭 내기도 했다. 성격만 나빠질 것 같아 내가 만류해서 중도에 그만두었다. 두 아이를 거쳐 간 싸구려 악기지만 집에 그냥 두기가 아까워서 마지막으로 내가 문화센터에 등록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6개월을 다녔다. 하지만 제대로 소리 한 번 내 보지 못하고 아들의 심정에 공감하면서 플루트와의 인연은 끝이 났고 플루트의 행방은 지금껏 묘연하다.

 

마지막 곡은 베토벤의 운명이었다. ‘~이게 가능해?’ 싶었는데 정말 가능했다. 다만 피아노의 명징함이 아닌 플루트 특유의 숨소리 때문에 연주가 조금 느려져 질질 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역시 색다른 맛이었다. 드디어 프로그램 진행상의 연주가 모두 끝났다. 남은 일은 손바닥에 땀이 나도록 힘껏 박수를 치는 것뿐이었다. 두 시간여 앉아만 있던 터여서 운동하는 기분이었다. 어쨌든 힘이 들어도 앙코르 연주를 듣기 위해 지휘자가 다시 나타날 때까지 손바닥이 터져라 열심히 쳤다. 의무에는 성실한 사람이라는 걸 입증이라도 하듯.

 

지휘자도 녹녹치 않았다. 다시 나오기에 앙코르 연주를 수락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의 애만 태우고 퇴장. 다시 열렬해진 박수. 오른 팔이 마비되었다가 얼마 전에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이번에도 그냥 들어가면 어쩌지? 연신 박수 쳐대며 걱정하는 우리 마음을 읽은 듯 지휘자는 퇴장하지 않고 짤막한 답례 인사를 했다. 그러더니 우리 모두에게 일어서 달라는 손짓을 했다. 옆구리 찔러 절 받는다더니 우린 갑작스레 기립박수를 요청받은 셈이었다.

 

마침내 앙코르 연주가 시작되었는데 아주 낯익은, 빈 필하모닉이 신년 음악회때면 빠짐없이 연주하던 라데츠키 행진곡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우린 박수를 치며 발을 구르기 시작했고 지휘자는 우리 쪽을 향하더니 무대 위를 오가며 지휘봉을 흔들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유쾌한 흥이 높은 천정까지 퍼져 올랐고 그 열기를 타고 우린 빈으로 유체이동을 했다. 갑자기 동네 아저씨 같던 지휘자는 리카르토 무티로 멋지게 변신하여 흥겹게 우리를 지휘하고 있었다. 손과 발로 2018년을 끌어안으며 플루트 오케스트라 18번째 공연은 환호로 막을 내렸다.

 

1040. 집에 도착하니 방 안 공기가 썰렁했다. 하루 종일 온기 없이 바람난 주인을 기다렸을 내 방. 온도를 확인해 보니 얘도 18도네. 내 기분이 상승한 만큼 보일러 온도를 높인다. 모처럼만에 따뜻하고 편안한 밤이 될 것이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신년 음악회를 맞이할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미래지만 지금까지 지내 온 세월의 반도 넘지 못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하지만 그게 대수랴? 오늘 경험한 새로운 변화와 신선함이 매 해 신년 음악회를 더욱 다양하게 연출할 텐데!


 

  • profile
    korean 2018.02.28 18:06
    좋은 작품입니다.
    열심히 정진하다보면 틀림없이 좋은 결실을 맺으리라 믿어집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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