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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보 아저씨

 

세상을 살다보면 자기가족이나 친구 같은 이들을 제외하고도 평생토록 기억에 남을 고마운 사람이 한명은 있게 마련이다.

 

나에게도 그런 분이 한분 계신다. 아주 잠깐의 인연이었지만,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그분.

 

어릴 적 꿈이 과학자, 군인, 경찰 사이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수시로 계속 바뀌던 나는 솔직히 꼭 무엇이 되겠다는 명확한 꿈을 가지진 못했었다. 내가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도 모른 채 막연한 꿈으로 지원했던 육군사관학교에서는 1차 서류전형에서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떨어져 버렸다. 그렇다고 어려운 공식들을 달달 외우고 하루에도 몇 시간씩 수년간을 연구실에 앉아서 연구하며 무언가 새롭고 신비로운 것을 발견하는 위대한 과학자가 되기에는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시민들을 든든하게 지켜줄 훌륭한 경찰이 될 자신도 없었다. 나는 대학진학을 포기하려 했지만, 집에서는 어떻게든 뒷바라지를 해줄 테니 꼭 대학은 가야한다고 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려면 그래야만 한다고 했다.

 

결국 나는 강원도에 있는 대학교의 경찰행정학과에 진학을 했지만, 공부를 잘해 장학금을 받아서 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등록금과 생활비 등이 집에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두 달 정도 지나면서 집에서는 나에게 생활비를 보내기가 힘들어졌고 나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아무리 대학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가족의 생계가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찰이 꼭 되고 싶다는 명확한 신념도 없었다.

 

1999년의 초여름, 내 위의 두 누나들이 모두 그랬듯이 그렇게 나도 대학을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우연히 친구의 소개로 서울 김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면접을 보러 갔는데, 단기간이었지만 당시 웬만한 아르바이트 보다는 보수가 더 괜찮았다. 나를 면접하는 담당자 분이 나에게 서울에 지낼 곳이 있냐고 물어봤다. 나는 지낼 곳이 없었지만, 친구가 소개해준 괜찮은 일자리를 잃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지낼 곳이 없다고 하면 담당자가 나에게 일을 주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면접을 마치고 당장 다음날부터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지낼 곳이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근처에 있는 허름한 싸구려 여인숙에 일주일치 선불을 건네고 머물기로 했다. 아주 오래된 여인숙이었는데, 방은 습하고, 냄새도 퀴퀴하게 나고, 이불도 아주 오래되고 낡았었다. tv도 채널을 손으로 돌려야하는 아주 낡고 오래된 것이었는데 그마저도 지지직거리며 잘 나오지가 않았다. 사람의 목소리보다 지지직거리는 소음소리가 더 크게 들려서 tv를 거의 보지 않았다. 화장실과 세면대도 공용으로 사용하게 되어있었다. 가스 불을 사용하는 취사장도 함께 사용하게 되어있었던 것 같은데, 그곳은 한 번도 사용해 보지를 않아서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우선 취사도구가 없었을 뿐더러, 일을 마치고 무언가를 사서 조리를 해먹을 만큼의 넉넉한 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배가 고팠을 때 빵 하나와 우유를 하나 사서 먹었었다.

아침과 점심은 회사에서 해결할 수가 있었다. 일이 아침 일찍부터 시작하는 거라서 가끔씩은 평소 마치는 시간보다 이른 시간인 오후 330분에 마쳤는데 나는 오히려 그렇게 일찍 마치는 것이 더 싫었다. 왜냐하면 5시에 마치는 날에는 시간을 조금 버티다가 6시쯤 되면 가끔 저녁도 그곳에서 해결을 하기도 했었는데 330분에 마치면 몇 시간씩 그곳에 머물러 있을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 저녁을 먹지 못하고 회사에서 나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날에는 저녁을 굶거나 우유 하나와 빵 하나를 사서 허기를 달랬다.

 

그런데 일찍 마치는 것보다 더욱더 큰 문제는 바로 주말이었다. 토요일에는 오후 1시에 마쳤고, 일요일에는 아예 출근을 하지 않았으니 토요일 저녁부터 다음날까지 쫄딱 굶거나 우유 한 두개와 빵 한두 개로 버텨야 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주말에 어울릴 사람도 없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평생을 지방에서만 살아온 내가 서울에 친구가 있을 리 없었다. 친척도 없었고 어떻게 건너 건너서 어울려 볼만한 사람도 전혀 없었다. 월급이 나오려면 한 달이 지나야 했기 때문에 그 때까지는 어떻게든 수중에 몇 푼 있지도 않은 돈을 잘 나눠 쓰며 아껴둬야만 했다.

 

빠르게 일주일이 지났고 여인숙에서 짐을 챙겨서 나왔다. 그때부터 나는 가방 하나를 등에 메고, 친구들 사이에서 일명 농구가방이라 부르는 둥글고 긴 가방 하나를 또 어깨에 걸치고 회사에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처음 여인숙을 나왔던 그날 아마 오후 330분 회사를 마치고 나왔던 것 같다. 초여름의 햇볕이 내리쬐는 김포거리를 정처 없이 가방 두개를 메고 돌아다녔다. 걸어 다니다가 다리가 아프면 앉아서 쉬었다가, 또 걷다가를 반복했다. 그렇게 걷는 내내 생각했다.

 

오늘 밤부터 당장 잠자리가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고민을 하며 한참을 걷고 있는데 문득 이세상이 너무나 낯설기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 하지만 모두 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고, 내가 지금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어떠한 상황인지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었다. 길가에 우뚝우뚝 서있는 건물들은 나에겐 왠지 모르게 날카롭고, 거칠게만 느껴졌다. 갑자기 여인숙의 방이 무척 그리워졌다. 습하고, 낡고, 벽지의 색이 다 바래져 보기 흉하고, 냄새가나는 지저분한 방이 그토록 그리울 수가 없었다. 낯선 곳에서의 유일한 나만의 공간이었던 그곳. 그날 몇 번이나 그 앞을 반복해서 지나가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냥 가지고 있는 돈을 다 주고 여인숙으로 들어갈까?’

 

수중에 있는 돈을 탈탈 털면 며칠 정도는 더 머물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월급을 타려면 아직 3주가 넘게 남아 있었는데, 그렇게 돈을 다 써버릴 수는 없었다. 나는 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한참동안 고민을 하다가 밤을 새워보기로 했다. 당장 돈을 주고 여인숙으로 들어가더라도 며칠 후에는 또 여인숙에서 나와야만 했기 때문에 어차피 나중에 겪어야 할 일 그냥 부딪혀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다행히 날씨는 초여름의 조금은 후텁지근한 날씨라서 밤새 밖에서 얼어 죽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밤을 새울 땐 새우더라도 그렇게 계속 돌아다니며 밤을 샐 수는 없었다. 다리도 아팠고, 허기도 졌다. 어디서 쉴 곳이 필요했다. 하지만 어디서 쉬어야 하는지가 난감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이 계속 신경이 쓰여 계속해서 사람의 발길이 뜸한 구석진 곳을 찾아다녔으나, 어느 곳이건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은 없었다.

 

나는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불이 다 꺼진 한 학교가 보였다. 문이 굳게 닫힌 학교에는 아무도 없었고, 사람들이 그 안으로 들어올 일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위를 슬그머니 둘러보고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얼른 담을 넘었다. 깜깜한 학교의 운동장 그 곳으로 은은한 달빛이 비쳤다. 도시의 불빛으로 전혀 느낄 수 없었던 달빛이 그 도심의 한가운데 자리 잡은 불이 꺼진 깜깜한 학교운동장에 살며시 푸른빛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운동장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렇게 앉아서 하늘을 바라봤다. 어두운 운동장에서는 바라볼 것이 하늘밖에 없었다. 잘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희미하게나마 별이 보이기도 했다.

 

밤과 달 그리고 별. 이들은 전혀 새로운 세계를 잠시나마 만들어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낯설음과 외로움은 기꺼이 그들의 새로운 세계로 나를 밀어 넣었다. 그 새로운 세계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래서 더욱 슬퍼졌다. 조용히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태어나 처음으로 잠을 잘 곳이 없어 노숙을 하던 날 세상은 너무나 차갑고 무섭게만 느껴졌다.

 

잠시 그 새로운 세계에 빠져있던 나는 몸이 아주 지치고, 피곤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초여름의 날씨라도 밤이라 제법 쌀쌀했지만 학교 운동장 한쪽에 웅크리고 누웠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는 게 그리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느새 눈이 스르르 감기고 잠이 들어버렸다. 그렇게 잠시 눈을 붙이고,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아직도 새벽이었다. 달빛과 별빛은 한 층 더 밝아졌지만 추위는 더욱 매서워졌다. 순간적으로 학교 안으로 들어가서 추위를 피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혹시나 그것이 문제를 일으키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금 편하자고 문제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이불이 없었기에 옷을 몇 벌 더 꺼내서 덮어봤지만, 추위와 불편함에 다시 잠들기는 힘들 것 같았다. 억지로 잠을 자려고 애쓰다 결국엔 일어나 앉았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한기가 드는 것 같아서 덮었던 옷들을 주섬주섬 가방에 집어넣고는 다시 담을 넘어 학교 밖으로 나왔다. 조금이라도 움직여야 추위를 몸 밖으로 밀어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새벽의 거리는 조용했다. 터벅터벅 어두운 거리를 그렇게 걸으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서서히 동이 터오고 내가 일하러 갈 곳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반갑고, 고맙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며칠을 공원벤치나 구석진 길가, 학교 운동장을 전전하며 잠을 잤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 역시 사람들이 빨리 집으로 들어가고 거리가 고요해지길 바라며 터벅터벅 밤거리를 걷고 있었다. 대로가 나와서 횡단보도로 건널까 지하도로 건널까 가벼운 고민을 하다가 그냥 지하도로 건너기로 했다.

지하도를 지나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 한 분이 신문지를 덮고 거기서 잠을 자고 있었다. 지하도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이라 이전에는 부끄러워서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누군가 그곳에서 자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용기(만약 그것을 용기라고 부를 수 있다면)가 생겼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피다가 잠시 동안 다니는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퍼뜩 주위에 굴러다니는 신문지를 얼굴에 덮고는 지하도의 벽 쪽을 향해 돌아누웠다.

 

정말 신기한 것은 누우려고 하는 그 순간이 부끄럽고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누워서 자리를 잡으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이었다.(이것 역시 관성의 법칙인지도 모르겠다.)

 

곁에 자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왠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든든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아주 놀라운 경험을 했다. 신문지라는 것이 참 신기했다. 그것은 그 위에 쓰여 있는 글자들의 조합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나면 생명을 다하는,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급하게 신문을 덮어쓴 것이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나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신문지가 얼마나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지를. 어느새 신문지를 덮어쓴 얼굴이 훈훈해졌다. 나는 누워서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발자국 소리가 뜸해졌을 때 얼른 일어나서 주위에 흩어져있는 신문지들을 더 끌어 모아서 몸을 덮었다. 그리고 다시 얼굴을 덮은 뒤 잠을 청했다. 몸이 따뜻해지는 신문지의 포근함과 신문지에서 풍기는 특유의 냄새가 너무나 포근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신문지로 온몸을 덮고서 나는 아주 곤하게 잠이 들었다. 아마 노숙을 한 이후로 처음으로 숙면을 취하고, 몸에서 추위가 아닌 온기를 느끼며 잠에서 깼던 것 같다.

 

그때 생각했다. 이제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오늘은 또 어디서 밤을 보낼지 고민할 필요 없이, 자면서 몇 번씩 추위에 떨며 일어날 필요 없이 신문지 몇 장을 구해서 이곳에서 해결을 하면 되겠구나 하고. 마치 아주 소중한 보금자리를 하나 얻은 것 같은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발자국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신문지를 걷어내고 일어났을 때 이미 그곳엔 여러 명의 사람들이 잠을 자고 있었다. 몇몇은 어린 학생으로 보이기도 했다. 나는 일어나 출근을 했고, 그렇게 또 며칠을 거기서 밤을 보냈다.

 

 

노숙을 하기 전 내가 처음 김포에 와서 여인숙에 머물 때, 여인숙 골목길 입구에서 오며가며 마주치는 아저씨가 있었다. BYC라는 간판을 커다랗게 걸어놓은 속옷가게이었는데, 아저씨는 얼굴에 털이 소복했다. 그리고 속옷가게를 직접 홍보라도 하시는 듯 주로 하얀색 러닝셔츠만을 걸치고 계셨다. 가끔 그 앞을 지날 때면 속옷가게 아저씨는 동네 어르신이나 친구 분으로 보이는 분과 함께 간이 플라스틱의자에 앉아서 바둑을 두고 계셨다. 당시 낡은 TV라 방송도 제대로 안 나오던 여인숙 방에서 마땅히 할 것도 없었던 나는 지나가다가 바둑을 두시는 것을 보고는 가끔 구경을 하고는 했는데, 어느 날 아저씨가 나에게 바둑을 둘 줄 아냐고 물어보셨다. 내가 조금 둘 줄 안다고 말하자 아저씨가 한 판 둬보자고 하셨고, 잠깐이지만 그렇게 서로 알고 지내게 되었다. 하지만, 여인숙에서 나온 이후로는 그곳으로 갈일도 없었고, 바둑 한두 번 뒀던 아저씨에게 짐을 잔뜩 들고 다니며 내가 노숙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왠지 내가 길거리에서 잠을 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저씨나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속옷가게 아저씨는 어디를 다녀오시는 길인 듯했는데 나와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다. 아저씨는 나를 보고는 요즘 잘 안보이더니 어디 갔냐고 물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하기 부끄러워 그냥 주변에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두툼한 가방을 두개씩이나 매고서 말이다. 아저씨는 잠시 나를 훑어 보시더니 바둑 한 판 두러 가자고 하셨다. 나는 밤이 되기 전까지 계속해서 거리를 돌아다녀야 했던 터라, 시간을 보내기 좋겠다 싶어서 아무 말 없이 아저씨를 따라 아저씨 가게에 가서 바둑을 두었다. 바둑을 두면서 아저씨가 물었다. 진짜 머물고 있는 데가 있느냐고.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내 곁에 놓여있는 짐이 가득한 가방들을 힐긋 보고는 아저씨가 이미 짐작하셨을 거라 생각하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봉고차에서 잠을 자도 좋다고 말씀하셨다. 아저씨의 가게 앞에는 아저씨의 봉고차가 한 대 있었는데, 그곳에서 잠을 자도 좋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사람에게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선뜻 자신의 차를 내어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더군다나 나 같이 어리고 신원도 알 수 없는 노숙자에게 말이다. 나는 예의상 한두 번 거절을 했지만 아저씨께서는 괜찮다고, 봉고차에서 잠을 자라고 하셨다. 지하도에서 이전보다 편하게 잠을 잔다고는 하지만, 길에서 자는 것과 차에서 잠을 자는 것은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나는 결국 아저씨께 너무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그날 밤부터 아저씨의 봉고차에서 잠을 잤다.

 

길거리에서 잠을 자다가 처음으로 봉고차에서 잠을 자게 되었을 때, 봉고차는 결코 좁고 불편한 곳이 아니었다. 나에게 있어서 그곳은 세상 어느 곳보다 포근하고 아늑한 나만의 공간이었다. 누구에게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곳.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이 아닌 폭신하고 따뜻한 의자. 이 세상에 내가 마음 편히 몸을 눕힐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그토록 소중하고 행복한 것인지 그 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더 이상 무겁고 불편한 짐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었다. 짐을 봉고차에 놔두고 회사에 다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봉고차에서 일주일이 조금 넘게 지내며 무사히 회사에서 한 달을 채울 수가 있었다. 나는 고향인 김해로 내려가야 했다. 단기계약직이라 한 달만 일을 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이 끝나고, 월급을 받은 그날 나는 음료수 한 박스를 들고 속옷가게 아저씨의 가게로 향했다. 아저씨는 내가 음료수를 사온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한사코 받으려 하시지 않으셨다. 길거리에서 잠을 자던 사람에게 뭔가를 받기가 부담스러우셨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신세를 지고도 그 정도 밖에 보답을 못해드리는 것이 오히려 못내 아쉬웠다. 나는 아저씨의 손에 음료수를 억지로 쥐어드리고는 이제 고향으로 내려간다고 건강히 잘 지내시라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남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단한 번도 말을 놓으신 적이 없었던 속옷가게 아저씨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이 했습니다. 보니까, 이렇게 지낼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고향에 돌아가서 잘 지내세요."

 

아저씨께서는 인사치레로 그렇게 말씀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이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있다. ‘이렇게 지낼 사람이 아닐 것 같다는 그 말. 아저씨께서는 그때 하셨던 말을 기억하지 못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그 말은 지금껏 살아오며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떠올리는 것으로 나에게 아주 큰 힘이 되었다.

 

누구에게도 주목받거나, 칭찬받거나 위로를 받을 수 없었던 그 때, 이렇게 지낼 사람이 아닐 거라는 아저씨의 그 말은 내가 나 스스로 너무 보잘 것 없고 초라하다고 느낄 때 나를 일으켜 세워주고, 버팀목이 되어주는 크나큰 한마디였다.

당시 나는 몸과 마음 모두 너무나 많이 지치고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경험이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렵고 힘든 시절의 경험일수록 더욱 값진 보석이 된다는 것을 지나고 나서야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그것이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인생의 사계절 중에서 언제나 봄에 머물 수 있는 행운만이 있으면 좋으련만 혹독한 추위의 겨울은 누구나 겪게 되는 필연의 것이다. 겨울을 빨리 벗어나느냐 그러지 못하고 오랫동안 머물러 있느냐 하는 것의 차이가 있을 뿐. 그리고 겨울이 찾아오는 것이 필연의 것이라면 봄이 찾아오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이다. 지금 너무나 힘들고 지쳐서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사람이 있다면 내가 털보아저씨에게 들었던 말을 그에게 해주고 싶다.

 

당신은 이렇게 사실 분이 아니에요.”

 







모과나무

 

내가 일하는 가게 주위에는 나무가 여러 그루 심어져 있다. 봄이 오는 소식을 알려주는 작은 매화나무와 꽃잎이 하늘하늘 떨어지며 흩날리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운 벚나무. 다 익을 때까지 기다리면 어느새 새들과 벌레들이 실컷 포식을 해버리는 복숭아나무. 냄새가 많이 나지만 구워서 소금에 찍어먹으면 쫀득쫀득 맛있고 몸에 좋은, 때로는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열리는 은행나무. 손님들이 가끔 매실과 혼동하는, 관절염에 좋은 돌복숭아 나무 등등. 여러 가지 나무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나무는 모과나무다. 열매로 차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고 하지만 가게에 있는 모과나무는 영양이 부족해서인지, 병에 걸린 것인지, 토질이 맞지 않아서인지 아직까지 제대로 된 열매를 맺은 적이 단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내가 이 나무를 좋아하는 까닭은 어릴 적 할아버지 댁에서 보았던, 못생겼지만 냄새가 너무나 향긋하고 좋았던 모과 열매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께서 그것을 차로 드시던 모습을 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다만 모과 열매를 따서 몇 알 정도를 방에 놓아두시고는 그 향을 즐기실 뿐이었다. 나에게도 몇 알을 주시며 집에 가져가서 방이나 거실에 놓아두라고 하셔서 그것을 집으로 가져가서 손으로 만지고 놀기도 하면서 맡았던 향기가 참 좋았었다. 모과가 신기한 것은 흠집이 많이 나고 누르스름하게 농한 것 같은 부위가 많을수록 그 향기가 더욱 짙고 풍부하다는 것이었다. 마치 아픔과 슬픔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욱 진한 사람의 냄새가 묻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가게에 있는 모과나무는 많이 약해보였다. 열매도 제대로 맺지 못하고, 이파리의 색깔도 누르스름했다. 모과나무의 병충해에 대해서 인터넷에 찾아보니, 향나무에서 비롯된 적성병(赤星病)이라는 것이 나오던데 정확하게 그것이 맞는지 아닌지 제대로 된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시중에 나오는 영양제를 잔뜩 사다가 모과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흙에다가 꽂아 주었다. 사람도 아프면 잘 먹어야 낫는 것처럼 모과나무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싶어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어설픈 노력은 모과나무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듯했다. 모과나무는 여전히 잎의 색깔도 누렇고, 열매를 맺지를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하루 종일 가게 안에만 있다가 바깥바람을 쐬러 가게 뒤편으로 나갔다. 천천히 나무들을 둘러보며 걷는데, 모과나무 앞에 이르렀을 때 이전과는 뭔가 다른 것을 발견했다. 어떤 식물의 넝쿨이 모과나무를 타고 올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칡넝쿨이었다. 그것을 보자 어떤 책에서 봤던 칡넝쿨과 관련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 칡넝쿨은 위로 뻗어 오르기 위해서 다른 나무를 의지해야만 한다. 그렇게 나무를 타고 올라 잎사귀에 햇볕을 듬뿍 받고 스스로를 살찌운다. 칡넝쿨은 무럭무럭 자라고, 그렇게 자라서 무성해진 잎과 굵어진 넝쿨은 자신에게 기꺼이 타고 올라가라고 몸을 내어준 나무를 고사시키고 만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섭리이겠지만, 당시의 나는 이상하게도 화가 많이 났다. 하필이면 많고 많은 나무들 중에서 잎도 누렇고 열매하나 맺지 못하는 연약한 모과나무를 타고 올라간단 말인가! 도대체 왜? 모과나무 옆에는 튼튼하고 위로 길쭉하게 높이 자란 나무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이면 모과나무를 선택했는가 말이다! 나는 칡넝쿨이 일부러 약한 나무를 골라서 타고 올라가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한 자에게 함부로 대하고 강한 자에게는 눈치를 살피는 비열한 간신배! 나는 모과나무에 얽혀있는 칡넝쿨을 노려보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치밀어 오르자 얼른 손으로 넝쿨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칡넝쿨의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아랫부분만 뜯어내면 모두 말라 죽어버릴 것이었지만 나는 씩씩 거리며 모과나무에 들러붙어 있는 모든 칡넝쿨을 일일이 다 손으로 뜯어내었다. 정신없이 맨손으로 칡넝쿨을 다 뜯어내었을 때 손에는 생채기가 나서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세상은 왜 힘든 사람을 더욱 힘들게 만들까? 세상은 왜 겉으로 못나 보이는 사람에게 등을 돌릴까? 왜 세상은 첫 인상만으로 그 사람을 단정 지을까?’

 

당시 나의 상황이 너무나 힘이 들고, 좋지 않은 일들이 겹쳤던 탓일까? 나는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자연의 현상에도 어느덧 나의 처지를 빗대어 내 마음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내 스스로가 위로 받으려고 말이다.

 

연약한 모과나무와, 그런 모과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칡넝쿨. 이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단지, 이런 것들에 빗대어 무언가 의미를 발견하자고 애쓰는 인간들이 있을 뿐.

 

나 역시 굳이 울퉁불퉁하게 생긴 모과를 보며 어떤 의미를 부여하자면, 이 세상엔 겉모습은 볼품없어도 뿜어내는 향기는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 향긋한 모과와 같은 사람들이 수없이 널려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린 멀리서 거칠고 투박한 겉모습만 볼뿐, 모과의 향긋한 향이 번져 있는 곳까지 다가가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이름 : 한우

이메일 : kokoko2080@naver.com

연락처 : 010-9958-8886


  • profile
    korean 2016.02.29 00:01
    잔잔한 감동이 묻어나는 좋은 수필입니다.
    열심히 정진하시면 좋은 결실을 반드시 걷을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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