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1Q84
소년의 나이는 열다섯 살이었다. 남가좌동의 지하실에서 태어난 소년은 중학생이 될 때까지 그 동네를 떠나지 않았다.
소년의 옆집에는 대형 막걸리 공장이 있었는데 누룩의 쌉쌀한 냄새가 소년의 방까지 흘러들어오고는 했다.
훗날 중년이 된 소년은 자신이 애주가가 된 데에는 다 뿌리 깊은 역사가 있다고 변명한다.
너도나도 문워크를 따라 하던 그 시절 소년은 학교에서 꽤나 유명한 학생이었다.
공부엔 영 소질이 없었지만, 기타에 능숙했고 준수한 외모로 여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다.
무엇보다 소년에겐 꿈이 있었다.
"그때 그 망할 놈 때문에 인생 다 꼬였어."
나를 따라서 온 도서관에서 시집 몇 권을 뒤적이던 소년은 한 시인의 시집 앞에서 무언가 생각난 듯 걸음을 멈춘다.
'망할 놈' 소리가 어찌나 입에 착 감기던지 나와 소년은 이곳이 열람실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마주 보고 낄낄 웃는다.
시인은 소년에게 꿈을 준 사람이었다. 공부는 아무래도 좋으니 넌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라.
너 지금부터 글을 쓰면 노벨 문학상도 탈 수가 있어.
아, 노벨.
소년의 심장이 멎는다.
구경조차 해본 적 없는 날개 달린 고체를 타고 스웨덴으로. 소년의 마음은 이미 스톡홀롬 전망대에 와있다.
소년은 반백 년을 살기까지 스웨덴 근처에도 가 본 일이 없다.
늙은 아버지를 잃은 그해 3월, 소년은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소년의 양옆에는 대학생이 된 딸과 사춘기 아들이 나란히 붙어있었다.
"아빠" 자신을 부르는 낯선 소리에 소년은 뒤를 돌아보았다. 소년은 그제야 자신의 이름이 아빠임을 알았다.
노벨상을 꿈꾸던 소년은 입국심사대에서 식은땀을 삐질 거리며 우왕좌왕했다.
그의 꿈을 갉아먹은 값으로 세 번이나 해외에 다녀온 딸은 허둥대는 그를 짜증스레 재촉했다.
나중에는 그 허둥대는 모습을 어떻게든 놀려주고 싶어 어린 동생과 입을 맞춘다.
"아빠, 비행기 타기 전에 엑스레이 촬영해야 하는 거 알지. 저 사람들 다 엑스레이 찍으려고 줄 선거야."
대학에 입학한 그녀는 어느 날 청천벽력같은 선언을 했다.
"나 문예창작학과 갈 거야. 글 쓰는 사람이 될 거야." 소년은 정신이 아찔해졌다.
딸의 어깨를 잡고 묻고 싶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니, 혹시 누가 너에게 노벨 문학상을 탈 수 있을거라고 말하던?
어떤 망할 놈이?
밤 새 시를 읽고 소설을 쓰는 딸을 소년은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꼭 자신처럼 예민한 그녀가 이따금 밤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술을 마시면 소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에 휩싸인다.
너는 나처럼 돼서는 안 된다.
소년의 방에는 이제 더 이상 책 한권도 남아있지 않다.
매일 밤 창문을 두드리던 로빈슨 크루소, 몽테크리스토 백작, 데미안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소년은 생각한다.
그리고 시인의 얼굴을 떠올린다. 망할 놈. 공부나 하게 차라리 때릴 것이지.
딸의 얼굴도 떠오른다. "내가 아빠의 못 이룬 꿈을 이뤄줄게"
생계가 달린 알람시계를 맞추고 고단한 하루를 덮은 채 소년은 눈을 감는다.
정신이 잠과 현실의 경계에 있을 때 열다섯의 기억은 파도처럼 머리를 덮친다.
팽팽한 기타줄, 식은 도시락 통, 손바닥만 한 만화책, 그런데 그 때 내가 쓰던 소설의 제목이 뭐였더라.
풀리지 않는 1984년도의 비밀을 안은 채 소년은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든다.
응모자명: 목선재
이메일: seonjae3661@naver.com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