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싸우세요>
마음이 너무 힘들었던 어느 날,
어디선가 들려온 "힘들어도 우리는 웃을 수 있습니다."란 말에 버럭하고 화가 났던 적이 있다.
뭐라고? 웃음? 안 나는데?
공감받지 못한 위로는 얼마나 허망할까. 절로 쓴웃음이 났었다.
아마도 그날부터였을 거다, 위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기 시작한 건.
좋은 위로란 무엇일까,
나는 당신에게 어떤 위로를 해줘야 했던 걸까,
다짜고짜 '힘 내세요', '파이팅!'이라고 하는 것은 위로일까 응원일까 혹은 회피의 말일까.
그러나 끝내 마땅한 답을 못 찾은 채
책장을 덮듯, 뚜껑을 닫듯, 그렇게 그냥 그렇게 두고 상념 속에서 빠져나왔었다.
덮어둔 고민을 열게한 곳은 의외의 장소였다.
"힘을 내야 내일 또 따지러 가지!"
부당함을 토로하는 주인공에게 상대 배우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 날 그녀는 연기자라기 보단
관객의 속마음을 '대신' 입 밖으로 소리 내 말해주는 대변인 같았다.
말은 화살이 되어 머리가 아닌 가슴 속을 파고 들어왔다.
맞아. 힘을 내야 하는 이유가 그래서구나.
그래야 내일 또 따지러 갈 수 있으니까.
내일 또 따지러 가지, 내일 또 따지러 가지..
도돌이표처럼 마지막 문장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어제는 병문안을 갔었다.
환자는 너무나 씩씩한데 손님들은 눈물을 닦기 바빴다.
그 이질적인 상황을 당황스럽게 마주하고 있는데 문득 무대 위 저 대사가 떠올랐다.
"힘을 내야 내일 또 따지러 가지!"
아픈 사람에게서 의연함이라기 보단 부자연스러운 씩씩함이 더 강하게 느껴졌던 건 그래서였을까.
아파도 힘을 내야 내일 또 치료를 받을 수 있으니까.
힘을 내야 내일 또 병마와 맞서 싸울 수 있으니까.
그럴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병원을 나와 집으로 향하면서, 오랜만에 '위로'란 단어를 다시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세상엔 싸움을, 맞서 싸우는 것을 권장하는 위로도 있을 수 있겠다는,
그 "내일도 싸우세요."라는 말이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위로일 수도 있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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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쓴다>
어느 만화가가 그랬다. '개를 키우면 개를 그리게 된다.'
이 말은 이 말도 된다. '개를 키우면 개에 대해 쓰게 된다.'
집에 개가 오면서부터 말하고 쓰는 대상이 하나로 모아지기 시작했다.
이름을 지어줬더니 그 이름을 발음하면 반응을 하고, 사람이 일어나면 같이 움직이고,
안으면 온기가 느껴지고, 웃으면 같이 웃어주는 생명체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만다.
함께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그 대부분은 좋은 것들-이 매일 하나 둘씩 늘어난다.
아침이면 기숙사 사감처럼 각 방마다 돌면서 순회에 나서고,
스트레칭도 하고, 하품도 한다.
말을 하면 묵묵히 듣곤 이따금씩 꼬리를 흔드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는데,
생각을 알 길이 없어서 안달난다.
얘 눈이 어떻고요.
우리 애기는 어떤 걸 좋아하고요.
어느 날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청소기 소리에 벌벌 떨 땐,
코스모스보다 연약한 존재가 우리집 개다.
매일 관찰하게 되고, 매일 안아주게 된다.
사랑 고백이 아니다.
그저 개를 키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자동적으로 손을 움직여 쓰게 되는, '우리집 개 관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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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영 / sjlove0401@nate.com
늘 건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