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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어빵


시월의 끝자락을 걷던 나는 어김없이 물고기를 발견했다. 보통 물고기들은 추위를 피해 바위틈에 숨어 지낸다는데, 어찌 이 녀석은 더 활개를 치고 다닌다. 또 맛은 어찌나 좋은 지, 추위에 떨던 사람들도 몇 분이건 기다려 한웅큼씩 잡아가곤 했다. 이 녀석의 이름은 바로 붕어빵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붕어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유년시절, 구수한 팥 맛을 알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맛보다 더 싫은 건 녀석의 모습이었다.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똑같이 복제된 붕어빵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철판 위에 누워있었다. 수십 마리의 붕어빵이 2, 3층으로 쌓여 하나의 탑을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상하게 나의 모습이 오버랩 되곤 했다. 그래서 피했다. 누가 사주면 겨우 하나 먹었지, 절대 내 돈 주고 안 먹는 녀석이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은 한 마리의 붕어빵이나 다름없었다. 시월 모의고사가 끝날 무렵, 선생님은 우리에게 종이를 한 장 내어 주셨다. 그리곤 희망대학과 희망학과를 적으라 했다. 나는 입시기관에서 나누어 주는, 수십 개의 학과가 적힌 책자를 찬찬히 읊어 내려갔다. 칠판 옆에 걸린, 지긋지긋한 시간표 속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과목이 있듯, 무미건조한 학과들 속에도 나를 가슴 뛰게 하는 문구가 몇 있었다. 하지만 나는 기어코 그 학과를 선택하지 못했다. 평소 선생님께서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남자는, 이과는 공대, 문과는 경영학과, 따른 건 취업 못해, 취업 못해!” 그렇게 나는 무얼 배우는 지도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 있는 정치인 같은 그 이름을 적고 펜을 놓았다. 뒤에서 앞으로 보내라는 말과 함께 내 앞으로 몇 장의 종이들이 도착했다. 나는 내 것을 얹어 앞으로 보낸 후 뒤를 돌아 친구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인범이, 인범이 뒤에 앉은 채환이, 그리고 그 뒤의 지하까지, 똑같은 까까머리에, 똑같은 교복, 그리고 하나같이 적힌 경영학과. 우리는 교실이라는 틀에 찍혀 가는, 한 마리의 붕어빵에 불과했다

 

그렇게 망망대해를 헤엄쳐 도착한 대학, 기필코 날치빵이 되리라 다짐했다. ‘남들처럼 말고, 남들과 다르게.’ 펄쩍펄쩍 바다 위로 날아오르는 날치가 되고 싶었다. 이를 물었다. 호기롭게 손을 들고, 모두가 기피하는 과대에 도전했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다.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홍대 앞에서 길거리 버스킹도 해보았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4학년에 들어설 무렵, 나는 다시 한 마리의 붕어빵으로 돌아와 있었다. 점수가 필요했다. 졸업을 하기 위해선 토익 점수가 필요했다. 자격증도 필요했다. 어디 한 곳 이력서라도 내밀기 위해서는 각종 자격증을 따야 했다. 그렇게 나는 종로에 있는 학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또 다시, 칠판 앞에 앉아 연필을 끄적이는, 한 마리의 붕어빵이 되어있었다.

 

발끝에 빨간 단풍잎 하나가 부딪힌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가을이 찾아왔고, 나는 근 40년짜리 학교에 입학했다. 아직 일이 손에 익지 않은 탓인지 급한 일만 서둘러 마무리하고 나왔는데도 열한시가 넘어 있었다. 아침의 부산스러운 공기와는 다른, 나지막한 어둠 속 서늘한 냉기가 두 뺨을 스쳤다. 아파트 단지 내로 들어가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불 꺼진 간판들 속에서 홀로 환하게 빛을 내는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빵을 굽고 있는, 붕어빵 가게였다. 나는 불 꺼진 복도 위, 비상구 표지판을 따라가듯, 그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철판 위에는 수십 마리의 붕어빵이 배를 뒤집고 누워있었다. 나는 붕어빵 한 봉지를 달라 했다. 배가 고파서 사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을 뿐이었다.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문자 하나가 날아온 적이 있다. 문자를 클릭하자, 두 마리의 새가 하트를 그리며 날아올랐고, 바닥에 있던 문구들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처럼 떠올랐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이 자리에 섰단다. 용기를 내어 행복의 계단으로 한발짝 다가서겠단다. 고등학교 동창의 청첩장이었다. 그때였다. 붕어빵을 싫어한 지 근 20, 나는 스스로 붕어빵이 되고 싶다 생각했다. 나도 남들처럼 작은 집 하나만, 나도 평범하게 아들 하나 딸 하나 낳고 살고 싶은데. 아무리 못 구워도 남들만큼은 나오는 붕어빵이 내심 부럽기까지 했다. 노란 은행처럼 잘 익은 붕어빵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하얀 봉투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유난히도 바람이 찼다. 봉투 속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온기가 내 가슴에 닿는다. 나는 발걸음을 멈춰 섰고, 이내 뚜렷하던 가로등이 아른거렸다. 감정의 파도가 휘몰아 치는, 시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마지막 장면

 

밤은 산과 하늘의 경계를 무너트려 세상을 하나의 까만 덩어리로 만든다. 하루내 꼽은 주삿바늘에 아더도 지칠 대로 지쳤나 보다. 집으로 돌아온 아더는 캣타워에 올라 까만 하염없이 창문만 내다보고 있다. 그 동안 아더를 키우며 한번도 녀석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다. 하루의 절반이상을 멍하니 어딘가 바라보고 있는데 당최 무얼 보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알 것 같다. 어둠 앞에 희미하게 비치는 네 실루엣만으로도 알 것 같다. 생각을 아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일 줄 알았더라면, 평생 몰라도 됐을 텐데 말이다.

 

2주 전이었다. 1994년 이후 7월 기온이 최고점을 찍었다고 했다. 살이 익는다는 게, 푹푹 찐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몸소 느끼는 요즘, 쟤도 더워서 그러는 거라 생각했다. 며칠째 그대로인 밥그릇을 보고 아더를 들어 세웠다. 왜 밥을 먹지 않냐고 다그치자 내 눈을 요리조리 피한다. 밥그릇 앞에 내려 놓고 사료를 입에 갖다 대니 그제서야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먹은 게 아니라 먹어 준거였나 보다. 다음날 아침, 세탁기 앞에는 아더가 개워 낸 토사물이 넓게 깔려 있었다.

 

의사가 내 인중을 보며 말했다. “복막염입니다.” 그리 치명적인 병명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다음 대사가 이상하다. “길어야 두 달입니다.” 의사는 다시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이 아저씨가 더위를 먹었나 생각했다. 복막염에 시한부라니. 의사는 바이러스니 백신이니 하는 어떤 말을 길게 늘어 놓았는데 사실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얼른 아더를 데리고 나와 다른 병원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번째 의사도 똑같은 소리를 한다. 설사와 복통, 식욕 저하로 먹지 못해 죽는 결국 병이라고, 지금은 억지로라도 먹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의학 서적과 논문, 각종 사이트를 뒤졌다. 회복한 케이스는 없는지, 개발된 치료법은 없는지 한참을 찾았다. 그까지 꺼 먹이면 되는 거 아닌가, 사람 복막염도 고치는데, 마트에 들러 통조림을 한껏 챙겼다.

 

오늘 아침, 주사기로 입에 물을 넣어주고 있었다. 어느 순간 물도 입에 대지 않자 이렇게라도 먹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더가 경련을 일으켰다. 위로 아래로,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정체 모를 액체가 흘러나왔다.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자지러지는 모습에 나는 손도 못 대고 멍하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의 태풍이 지나가고 다시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아더의 배가 산더미처럼 부풀어 올랐다. 톡 하면 터질 것 같은 아찔한 풍선 같았다. 의사는 복수가 찼다고 했다. 음식을 흡수하지 못해 그렇다고 한다.


“근욱씨, 근욱씨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의사가 내게 말했다. 잠시 동안의 정적이 흘렀고 그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제가 죽게 된다면 방에 커다란 의자 하나를 부탁할 것입니다. 의자에 앉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앉아서 죽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제 마지막 모습은 꼿꼿이 앉아 있는 것이면 좋겠습니다. 생사의 경계에 서서 고통스레 몸부림치는 모습 말고, 편안하게 앉아 눈 감고 있는 모습 말입니다. 물론 속은 평화롭지 않겠지만 평화롭게 보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

 

불을 켰다. 창문 너머로 아더의 모습과 내 모습의 나란히 겹쳐 보인다. 얼마나 많은 생각이 왔다갔다 했는지 모르겠다. 수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나는 아더를 보내주기로 했다. 최악의 모습을 사랑하는 이에게 보여주지 않을 선택, 어쩌면 아더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인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캣타워로 다가 갔다. 녀석을 들어 안으니 평소 답답해 몸부림치던 녀석이 웬일인지 내 두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있다. 아더의 까만 눈에 내가 비쳤다. 터질 듯이 죄어오는 가슴을 억누르고 아더의 귀에 입을 갖다 댔다. “사랑해 아더. 사랑해 아더.” 아더가 내 귀를 햝았다.

 

 



  • profile
    korean 2019.01.01 09:09
    열심히 쓰셨습니다.
    보다 더 열심히 정진하신다면 좋은 작품을 쓰실 수 있을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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