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갈이 할아버지
"할아버지,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찍으소. 그런데 사람은 나오게 하지 말고."
"예에. 얼굴은 안 나오게 해드릴게요."
마음씨 좋게 생긴 초로의 할아버지. 아파트 숲 속에서 우연히 만난 칼갈이 할아버지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너무나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라 조심스레 프레임에 담아보았다. 할아버지는 저번에도 어떤 젊은 사람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난리였다면서 맞장구를 치신다. 그러면서 요즘에는 이런 모습을 보기가 힘들어서 신기한 모양이라며 점잖은 결론을 내린다. 그 결론에 심정적으로 동의하면서 나는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칼 가는데 얼마예요, 할아버지.?"
"한 번 가는데 이천 원!"
"우산은요?"
"기본은 천원이고 우산대 상황에 따라 달라요."
"어머, 그러세요. 다음에 고장 난 우산 가지고 올게요."
"그렇게 하이소."
나는 사진을 그냥 찍는 것이 마음에 걸려 다음에 수리하러 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알 것이다. 내가 한 약속이 일종의 인사치레이며, 허언에 불과하리란 것을. 그나마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고맙지 않느냐며 스스로 위안하실 것이다.
조금 있으니 머리를 양쪽으로 땋은 여자 아이가 망가진 분홍색 우산을 들고 할아버지 곁으로 다가가는 모습이 보인다. 뒤돌아보니 아이가 ‘할아버지, 우산 좀 고쳐주세요’라고 귀여운 목소리로 말한다. 할아버지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장비를 꺼내 그 자리에서 뚝딱 고쳐주신다. 아이는 다 고친 우산을 여러 차례 접었다 펼쳤다 하며 이상 유무를 확인하였다. 이윽고 아이가 천 원을 내 밀자 할아버지는 그냥 가라고, 손녀 같은 애한테 뭘 받겠느냐며 손사래를 치신다. 여자 아이는 방긋 미소를 지으며 고맙습니다를 연발한다.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아름다운 풍경.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저 자리에서 다문다문 찾아올 손님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루 서푼이라도 조금씩 벌어서 집에서 기다릴 손자들에게 과자나 군것질거리를 사 주실 것이다. 도대체 할아버지는 저 수레를 얼마 동안이나 사용했을까? 한눈에 보아도 수십 년은 족히 됨직한 수레인 것 같았다.
할아버지와 헤어지면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문득 우리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초등학생 시절, 일 년에 한 두 차례 우리 집에 오셨던 할아버지는 왜소한 체구에 쉰 목소리를 지닌 분이었다. 할아버지는 참 부지런하셨다. 낡은 우리 집을 볼 때마다 혀를 차시며 여기저기를 수리해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늘 어머니가 쓰시던 칼을 숫돌로 갈아주셨다.
쓱쓱 싹싹. 당시만 해도 부엌 식칼은 참 무섭게 생겼었다. 게다가 요즘 식칼처럼 스텐 식칼이 아닌 강철 식칼이었다. 그래서 녹도 잘 슬고 무뎌지기 십상이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칼을 가실 때마다 옆에 앉아 물을 조금씩 숫돌에 뿌려대곤 했다. 할아버지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칼을 가셨다. 평생 농사일만 하신, 두툼하고 손톱 때가 끼어 있던 할아버지의 손. 그 손마디에는 짙은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칼갈이 할아버지의 손에도 그런 흔적이 배어 있긴 마찬가지였다. 우리 할아버지나 저 할아버지나 결국엔 자식을 위해, 손주를 위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숫돌에 가시는 풍경을 그윽한 눈길로 쳐다보셨고, 다 갈린 칼을 받아 들고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 칼로 가족들에게 줄 음식을 썩썩 자를 때는 절로 콧노래를 부르시기도 했다. 그 후 할아버지는 내가 여중생 시절에 노환으로 별세하셨다. 그날 우리 어머니가 서럽게 우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우리 어릴 때의 동네 풍경은 참 소박했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참 많이 돌아다니셨다. 아침에는 두부 장수 할아버지들이 작은 종을 딸랑거리며 두부나 콩나물을 팔았다. 그보다 더 이른 시간에는 재첩 국을 머리에 인 할머니가 '재첩 국 사이소'를 외치며 돌아다녔다. 오후가 되면 들려오는 소금 장수 할아버지의 '소금 사시요잉'이라는 외침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비가 오기 전이나 비 갠 오후에는 칼갈이 할아버지들이 칼을 간다고 외쳤다. 참 정겹고 그리운 외침들. 그 많은 외침들은 어느새 추억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립고 아득했던 그 시절의 모습이 풍경화처럼 선연히 머리에 떠오른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의 언어들, 소박한 사람들의 바람을 담았던 외침들, 그리고 좁은 골목길.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그 질긴 삶을 좁은 골목길에서 연연히 이어가시면서 자식들을, 손주들을 키우셨던 것이다. 그 추억의 언어를 생각하며 비 갠 오후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어느새 하늘에는 파란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이름 : 신령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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