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기도 버겁던 2011년 여름. 연일 미디어는 이례적인 폭염으로 찜통더위, 가마솥더위, 한증막더위 등 실감 나는 환유로 국민들을 으르며 낮 시간 야외 활동 금지를 권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구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이천으로, 이천에서 지산 포레스트 리조트로 휴가를 감행했다. 이동에만 반나절이 소요된 고달픈 여정이었다. 한여름의 스키장은 을씨년스러웠고 새하얀 설원은 온데간데없이 푸른 잔디와 더 푸른 침엽수만이 우거져 언젠가 만화에서 본 외계행성을 보는 것 같았다.
지산 포레스트 리조트에서는 3일간 음악 축제가 열릴 예정이었다. 국내외 아티스트 74개 팀이 참가하는 여름 최대 규모 '록 페스티벌'로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이 전부인 한시적 지상낙원이었다. 연일 인터넷에서는 브릿팝의 대명사 스웨이드와 아이돌 출신 보컬의 편견을 깬 원오크락, 오아시스를 누르고 영국에서 빨리 팔려나간 데뷔 앨범 기록을 갈아치운 악틱 몽키즈 등 내로라하는 밴드들의 내한으로 하루에도 몇 천 개의 게시물이 쏟아졌다. 그 덕분에 티켓은 6개월간 9만 2천 장이 팔려나갔고, 내 티켓도 그중 하나였다.
친구와는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티켓 발권과 텐트 수령을 위해서였다. 수백 명이 운집한 장소에서 일면식 없는 상대를 기다리기란 쉽지 않았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허공을 맴돌던 눈동자가 마주친 순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터졌다. 환자복을 입은 나와 눈썹 피어싱을 한 그녀는 누가 봐도 서로의 솔메이트였다. 나는 그녀의 강렬한 첫인상에 놀랐고, 그녀는 내 옷차림에 경탄했다. 우리는 글보다 대화가 더 잘 통했고 내가 '콩'하면 너는 '팥'하는 환상의 짝꿍임을 서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제아무리 우리라도 다툼을 피할 수는 없었다. 5천 원짜리 맥주에 싫증이 난 나는 그녀에게 새로운 도전을 제안했고 우리는 '예거마이스터' 부스로 향했다. 때마침 계산대에는 흑인 남성이 서있었는데 그는 갈색 술이 담긴 검지만 한 플라스틱 잔을 한입에 털어 넣고는 곧장 무대로 되돌아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는 옳거니 그를 흉내 내었고 타들어가는 듯한 목구멍의 뜨거움에 잔디밭에 나동그라졌다. 아득히 들려오는 함성소리에 그녀가 기다리던 무대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지만, 마음과 달리 몸은 꼼짝도 않았다.
첫 만남에 웃음을 터트렸던 우리는 헤어지는 날 설움을 터트렸다. 말다툼 끝에 그녀는 공연장으로, 나는 숙소로 행선지를 달리했다. 자책은 책망으로, 책망은 후회로, 후회는 책임 전가로 그녀를 탓하기에 이르렀을 때 누군가 내게 '너 때문이야'라고 소리쳤다. 소리의 근원지는 무대였다. 뒤이어 '불협화음을 내는 건 나 혼자뿐인 걸'이라는 노랫말이 귀가 아닌 가슴으로 스며들자, 나는 이 밴드를 사랑할 '운명'을 직감했다.
킹스턴루디스카. 검은색 바탕에 펑키한 글씨가 적힌 현수막이 무대에 걸려있었다. 9명의 멤버들은 각각 정장과 캐주얼 차림으로 트럼펫, 색소폰, 트롬본, 전자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을 바쁘게 연주했고 관객들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뛰놀았다. 보컬도 입으로 마라카스 소리를 내며 흥을 돋우었다. 내 손끝도 무아지경에 빠져 허벅지 언저리에서 다듬이질을 시작했다. 나는 감정보다 앞선 몸의 반응에 실소했고 노래는 '울었다 웃었다 변덕을 부리는구나'라며 골려 대었다. 그럼에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감정보다 앞선 몸의 반응에 당혹스러운건 열 걸음 남짓한 거리의 그녀도 마찬가지 같았다. 우리는 '미안해, 잘못했어'와 같은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고, 손을 잡거나, 부둥켜안지도 않았다. 그저 알 수 있었다. 직사하는 태양은 따사롭고, 우리를 감싼 공기는 유쾌하고, 대지의 울림은 가슴 떨려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같은 풍경을 바라보리라는 것을. 따로 또 같이. 함께 하리라는 것을 말이다.
잊고 지냈던 청춘의 한 조각을 떠올리게 하네요.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