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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포도를 먹는 방법을 알려준 그 날의 관중들

 

요즘은 세상이 각박해져가면서 차마 믿기 어려운 사건사고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을 보고 사람들은 분위기에 휩쓸려 점점 사나워지거나, 실망해 애써 무시하며 외면하곤 합니다. 그리고 외면 받은 세계는 점점 사람들의 눈길을 받지 못 한 채 어둠속으로 사라져갑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모습은 올림픽에서도 보여지고 있습니다. 특히 요 근래 몇 년 동안 올림픽 정신이 무성해질만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형편없는 관람객들의 관람매너와 승리를 위한 맹목적인 선수들의 승리를 위한 플레이는 스포츠로 하나되는 평화로운 세계를 바랬던 쿠베르탱의 마음이 점점 빛바래져가게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혹자는 이제 올림픽은 그저 각 국가의 홍보수단이 아니냐고 한탄하기도 합니다. 아마 기대를 가지고 보아온 올림픽 경기에 점점 지쳐가던 관중으로서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분명 저도 그중의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한탄하지 않도록 마음먹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올림픽 경기에서 작은 기적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올림픽이 한창이던 어느 겨울날이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강릉은 올림픽 분위기에 한창 들떠 마치 온 시내가 축제를 하는 듯 했습니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묵묵히 해나가는 듯 했지만 작은 올림픽 소품을 사는 등 나름대로의 올림픽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로 들떠있었지만 올림픽 때문에 강릉을 찾은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나니 정작 강릉에서 열리는 올림픽 경기 표를 구하지 못 해 평창에서 열리는 봅슬레이 입석을 구매해 쉬는 날 보러 갈 수 있었습니다.

봅슬레이두 명 또는 네 명이 레이싱카처럼 생긴 얇은 썰매를 타고 구불구불하고 긴 트랙을 누가 짧은 시간 안에 도달하는지 겨루는 경기였습니다. 인터넷에서는 겨우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눈앞에서 사라져버린다고 써져있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가는 길에 버스를 잘못타서 지쳐있었던 탓이었을까요? 처음 출발할 때의 기대와 두근거림이 점점 사라져가고 괜히 먼 거리를 와서 실망할 것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올림픽 분위기만 즐기려고 가는 건데 뭐, 있겠어? 맨날 선수나 관중들이나 서로 야유나 하는 모습 안 보면 다행인거 아닌가라고 마치 먹어보지도 않은 포도를 신포도로 결정해 버린 이솝우화의 여우처럼 단정지어버렸습니다. 특히 뺨을 에는 추위를 견뎌내며 20분가량을 쭉 걷고 의자도 없는 입석자리에서 트랙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미 봅슬레이 경기는 매우 신 포도가 되어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봅슬레이는 한국이 그리 유리하지 않아서였을까요? 그저 큰 기대 없이 아무나 이겨라라고 속으로 심드렁하게 말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심드렁한 관중인 저와는 다르게 외국에서 온 관람객들은 그 추운 날 한창 들뜬 채로 자기들끼리 재잘재잘 떠들어댔습니다. 심지어 응원팀 한 팀은 이번에 실격당해 국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러시아출신 팀을 응원하러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외국인들은 저마다 자신의 국기를 망토와 모자로 만든 채 옹기종기 트랙 옆 입석 구간에 서있었습니다. 각 팀마다 저마다의 국기를 든 외국인들을 보니 딱히 누구도 응원할 생각이 없었던 저는 은근히 동떨어진 기분마저 들었고 그런 기분을 알아차리려는 순간 경기는 시작되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자 그저 이 두 시간이 신포도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했었던 제 걱정은 다행히도 기우에 지나지 않았고, 매우 빨라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봅슬레이 썰매는 눈앞에서 사라져버리는 봅슬레이 썰매의 잔영을 쫓느라고 눈과 목뼈가 뻐근할 정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경기관람의 재미를 관중들이 전해줄 거라곤 그때가진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경기가 어느 정도 진행되자 저는 빠르디 빠른 봅슬레이 썰매를 보는 것도 조금씩 질렸고, 슬슬 땡땡 붓기가 쌓인 다리가 신경쓰이기 시작했습니다. 휴게실에 쉬러 갈지 고민이 시작되려는 찰나 미국팀이 출전하고 여기저기서 환호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제 옆에 있던 한 무리의 금발벽안의 외국인들이 응원을 시작했습니다. ‘GO AMERICA!' 미국팀 봅슬레이가 출발하자 그들이 외쳤던 구호였습니다. 휴게실로 가려던 저는 그들의 응원을 듣고 그 먼 미국에서 응원하려고 여기까지 왔구만, 대단한 양반들일세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다음 팀을 응원하는 소리를 듣고 의문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GO CHINA' 'GO KOREA' 'GO GERMANY' 출전팀의 국적이 바뀔 때마다 그들의 구호도 바뀌는 게 아니겠습니까? 뒤돌아 그들의 표정을 보니 단순히 상투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그제야 제 의문이야 말로 정말 우스운 의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애시당초 올림픽은 스포츠로 세계평화와 화합을 꾀하려고 만든 건데, 너무 당연한 모습을 보고 의문스럽게 생각하다니 . 한편으로는 이렇게 순수하게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그들이 부러워졌습니다. 그런 그들을 보니 시작도 하기 전에 봅슬레이경기를 신포도로 단정지은 제 자신이 괜히 부끄러워지더군요.

하지만 그들의 순수한 열정은 이윽고 제 부끄러움마저도 잊게 만들었습니다. 어느새 저 자신도 국적에 상관없이 출전선수들을 함께 응원하고, 안타까워하고 격려하며 경기를 즐기고 있었고 땡땡 부은 다리와 새빨개진 뺨을 때리는 차가운 바람에도 입석트랙에 남아 마지막 주자를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팀인 캐나다가 출전했고, 저는 뒤의 외국인 응원팀과 같이 응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이미 강력한 우승후보인 독일팀의 우승을 확신하고 있던 사람들은 하나 둘 씩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GO CANADA!' 캐나다의 썰매가 지나가자 외국인들과 함께 속으로 외쳤고, 이윽고 엄청난 굉음을 내며 제 앞을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몇 초 뒤 기록을 전해주던 해설자의 목소리가 다급해지고, 결국 올림픽에서 다시는 보기 힘든 기적을 보게 되었습니다.

공동 1’ 0.001초를 다투는 경기에서 독일과 캐나다의 공동 금메달이라는 기적과도 같은 결과가 나왔던 것입니다. 관중석의 곳곳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오고, 곧 경기 트랙주변은 축제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경기와는 다르게 우울해하거나 울상 짓는 사람들 하나 없이 즐거운 분위기로 바뀌어갔습니다. 다들 국적에 상관없이 갑자기 보게 된 기적에 어린아이들처럼 들떠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깨닫지 못한 채 그저 냉소적인 분위기로 경기를 관람했더라면 지루함과 추위에 지쳐, 역사에 남을 명장면을 보지 못했겠지요. 그리고 그저 신기한 경기 중 하나로 기억되고, 점점 머릿속에서 퇴색되어 갔을 겁니다. 하지만 그 날 외국인 응원팀이 보여준 따뜻한 경기 관람법은 신비한 경기를 잊지 못할 추억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이건 선수도 경기도 저에게 주지 못한 깨달음이자 온기였습니다.

언젠가 저를 포함한 많은 관중들이 신비한 경기가 아닌 기적과도 같은 경기를 다시 보게되기를 희망하면서 이만 회상에서 나와야겠습니다.


난징인의 착각이 부른 이해

 

드라마에서 보면 여러 등장인물들이 오해와 착각으로 갈등을 겪는 경우를 많이 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착각과 오해 때문에 좀 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2년 전, 운이 좋게 중국으로 교환학생으로 있던 4학년 마지막 학기가 끝나가던 어느 날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저는 중국을 떠나기 전 나홀로 배낭여행을 중국 동부로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이유는 항상 책으로만 보던 역사유적지와 유물을 제 눈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특히 여행지 중 하나인 난징은 여러 왕조의 수도였기 때문에 중국 역사에 관심이 많은 저로서는 기대하는 여행지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여행가기 전날이 되었습니다. 중국인 친구들에게 제 중국여행 일정을 말했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중국인 친구가 말했습니다.

언니, 언니는 일본인 닮았으니까 난징여행 조심해요.’

평소에 눈이 커서 중국인들에게 일본인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저에게 한 조언이었습니다. ‘조심할게

그러나 저는 중국인 친구의 말을 단순히 농담으로만 받아 들였고, 결국 친구의 조언이 단순한 농담은 아니었다는 것을 난징에 도착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의 조언을 듣고 여행을 시작한 지 며칠 뒤, 저는 항저우와 황산 일정을 마친 후 여덟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우여곡절 끝에 난징의 숙소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겨우 숙소에 도착해 한 숨 돌리던 것도 잠깐, 저는 오자마자 사고를 치게 되었습니다. 황산등산으로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들고 있던 커피병을 놓쳐 깨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윽고 커피병이 와장창 깨지는 소리에 정신을 차려 곧장 카운터로 달려가 안내데스크의 직원에게 서툰 중국어와 몸짓을 이용해서 미안함과 깨진 병 정리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말을 알아들은 직원은 저를 친절하게 진정시키며 한 할아버지 직원을 불렀습니다. 직원의 부름을 받은 할아버지 직원은 숙소에서 나오셨고 빗자루를 들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상냥한 직원과 할아버지는 대조적이었습니다. 굉장히 무서운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았고 저는 괜히 주눅이 들고 말았습니다.

순간의 정적이 흐른 뒤였습니다. 그런 저와 할아버지 직원을 본 여직원은 잠시 생각하더니 상황판단이 된 듯 할아버지께 상냥하게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저 사람은 한국인이에요.’

그러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언제 자신이 그랬냐는 듯 할아버지는 웃으시며 저에게 다치지 않았냐고 물으셨습니다. 결국 깨진 병은 깨끗이 치워졌고 저는 할아버님이 돌아간 후 침대에 누워 만약 내가 단순히 일본인을 닮은게(아니라 정말 일본인이었다면 큰일 났겠구나, 정말 조심해야겠구나라는 생각과 더 이상의 황당한 오해(?)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잠들었습니다.

그러나 바람과 다르게 고난은 끝나지 않고 저녁에 마트에서 줄을 선 저를 밖으로 밀어낸다거나 어깨를 부딪치고 간다거나 하는 일도 겪게 되었습니다. 중국 다른 지역과는 달리 오해로 빚어진 냉대에 당황스러웠고, 그 당황스러움은 점점 속상함 그리고 억울함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서운함과 아픔은 난징대학살 희생자들을 기리는 대도살기념관에 가서 이해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곳에는 차마 이 글에 담을 수 없는 만행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울렁거려 속이 좋지 않았는데, 단순히 사람이 많아서, 무서운 사진이 많아서는 아닌 인간에 대한 실망감이었습니다. 그리고 실망감을 느끼며 본 수많은 충격적인 전시물과 자료 속에서 난징인들이 저에게 했던 오해와 냉대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누구라도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온갖 모욕과 고통을 준 사람을 닮았다면 곱게 행동이 나가지 않을 거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난징일정에서는 난징인들의 오해를 사도 풀려고 노력했고 이는 난징사람들과의 소통의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난징에서 추억과 지식을 얻은 뒤 다음 도시인 상하이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들의 오해는 이해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저의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울 수 있던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당시 일본인을 닮은 저를 보며 화가 나고 속상했을 난징인들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괜히 그들이 흉터에 소금을 뿌린 게 아니길, 언젠가는 저처럼 일본인을 닮은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을 보아도 아프지 않을 날이 오길 바랄 뿐입니다.


양수연 apppleysy@naver.com 010-2659-7257

  • profile
    korean 2018.04.30 22:47
    좋은 작품입니다.
    열심히 쓰시면 좋은 결과도 얻으실 수 있습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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