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스웨터
포근한 스웨터가 생각나는 계절이 돌아왔다.
옷장에 고이 보관된 분홍스웨터를 볼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하곤 한다.
어머니가 20년도 더 입으시다가 내게 돌려준 그 스웨터는 아직도 외출용으로 별 손색이 없다.
손뜨개질을 배우면서 짠 첫 스웨터인데 어머니가 입고 싶어 하셨다. 넌 또 짜입으라고 하시면서.
손재주 없는 네가 이렇게 잘 짤줄 몰랐다면서 탐을 내시니 안드리고 배길 재간이 없었다.
그 옷을 입고 나가실 때마다 사람들이 예쁘다 잘짰다 칭찬하면 막내딸이 짜준거라고 자랑하신다고.
그렇게 아끼면서 곱게 입으시던 그 옷을 내게 돌려주면서
“본래 네가 입으려고 짜는 것 알면서도 달라고 했지. 너무 맘에 들어서. 아직 입을만 하니 더 입던지 버리던지 알아서 하렴.
나는 이제 더 입을 날이 없을 것 같구나.”
어머니는 딸들에게서 받은 것들을 돌려주셨다.
반지를 사준 딸에겐 반지를, 목걸이를 사준 딸에겐 목걸이를.
어머니의 유품인 그 옷을 내가 어떻게 버릴 수 있을까. 1년에 한두번씩 입고 외출하기도 한다.
청바지에 입어도 좋고 검은 스커트에 맞춰 입어도 괜찮다.
여전히 포근하고 따뜻하다.
어머니는 짙은 회색의 긴 치마에 받쳐 입으셨다. 코트를 입기전까지 겉옷으로 기능할 수 있는 옷.
어머니가 이 옷을 입을 때 마다 내 생각을 했듯이 나는 어머니 생각을 한다.
별것 아닌 옷을 소중히 생각하여 의미부여 해주셔서 정말 소중한 옷으로 만들어 주신 분.
손뜨개질을 안한지가 오래되어 지금 이렇게 짜라면 다시 짜지 못한다.
내손으로 다시 만들 수 없는, 그러나 내손으로 만든 이 옷.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게 해주는 이 옷.
늘 고단하고 슬픈 어머니였지만 이 옷을 입으면서 환하게 웃으시던 그 모습을 추억할 수 있어 내게는 정말 소중한 옷이다.
6.25때 행방불명되신 아버지를 대신하여 8남매의 가장이 되셨으니 그 삶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떡장사, 생선장사, 과일장사 안해본 장사가 없고 남의집 살이도 하셨다고.
고무장갑도 없던 그 시절 추운겨울 맨손으로 빨래를 하니 손바닥까지 갈라지더란다.
내가 철들어 학교 다니던 시절엔 장성한 언니오빠 덕으로 생활이 안정되어 고생은 면하셨지만 몸에 밴 근검절약이 어디 가겠는가.
돈이 있어도 옷을 잘 안사입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달라고 했을 때 싫은 내색 없이 선선히 주어 고마웠다.”
돌려주시면서 하신 그 말씀이 마음에 걸렸다.
달라고 하기 전에 먼저 드렸어야 했는데.
어머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자식을 위해 모두 주시는데 나는 주기전에 이것저것 따지곤 했다.
이 옷을 주던 날 언니가 입고 싶어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이 옷에 얽힌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이 옷이 점점 소중해진다.
이름 : 정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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