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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눈사람

 


 

  나는 겨울이 좋다. 녀석이 매년 한파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지만, 그래서 내가 겨울마다 감기에 시달리곤 하지만, 여전히 겨울만한 계절이 없다고 생각한다. 여느 계절과는 다르게 겨울은 모두에게 공짜로 고성능 장난감을 선물한다. 바로 눈이다. 이제 나이 스물다섯으로, 대학교 학과 안에서 고학번 선배로 분류되고 있는 나는 겨울만 되면 신이 나서 장갑을 끼고 밖으로 튀어나간다.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다.

  나는 보통 인적이 드문 새벽에 거리로 나가 눈사람을 만든다. 눈사람을 만드는 건 그렇게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없다. 그저 눈송이를 굴려 몸통과 머리를 만든 뒤, 몸통 위에 머리를 올리면 끝이다. 조금 더 욕심이 생긴다면 이목구비를 그리거나, 나뭇가지로 팔을 만들어줄 수도 있다. 일단 최대한 많은 수의 눈사람을 날이 밝기 전까지 만드는 게 중요하다. 수호신을 형상화한다는 생각으로, 거리의 파수꾼을 세운다는 자부심으로 하나하나 만들다 보면 어느 샌가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눈사람들은 하루아침에 동네주민처럼 태연한 모습으로 거리 곳곳에 세워진다. 이 작업들은 내가 비밀스럽게 지켜 온 내 나름의 의식이다.

  내가 겨울마다 정기적으로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한 건 열 살 때부터였다. 당시 나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아이인 줄 믿고 있었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서 정신은 이미 어른인데, 몸이 정신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또래들은 미래의 경쟁자였고, 학교는 약육강식 원칙으로 돌아가는 정글이었다. 왜 이런 기묘한 착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세상의 비밀을 너무 빨리 깨우쳤다는 자의식에 충만해져 있었다. 항상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다녔고, 누가 호의를 보이면 맥락 없이 경계했으며, 대화할 때마다 약자강자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때는 그게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행동인 줄 알았다.

  문제는 설날에 벌어졌다. 우리 가족은 고속도로가 막힐 것을 우려해 설날이 있기 하루 전날 저녁 일찍 차를 타고 출발했다. 그런데도 교통정체로 우리 가족은 몇 시간이고 도로 위에 갇혀있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세절된 종이처럼 자잘한 눈들이 차에 달라붙어 시야를 가렸다. 우리 가족이 시골에 도착한 건 다음날 새벽이었다. 아버지가 동네 입구 앞에 차를 주차하자 오줌을 참느라 거의 실신지경이었던 동생은 가랑이를 붙잡고 친정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내 대문 앞에 서서 울상을 지었다. 누군가의 승용차가 대문 앞에 주차를 해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차 옆에는 밉살스럽게 생긴 눈사람도 서 있었다. 인내심이 거의 바닥나 있던 아버지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어떤 놈인지 주차를 아주 개같이 해놨네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승용차를 피해 초인종을 눌렀다. 얼마 되지 않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달려와 반겨주셨다.

  “아니, 저 차랑 눈사람 뭐야?”

  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이웃집 무당네 거라며 신경 쓰지 말라고 웃었다. 나는 마당 앞을 서성이며, 가족들이 모두 집안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당에 놓여있던 눈삽을 집어 들었다. 남의 집 앞에 차를 대둔 것도 모자라, 점령지에 깃발을 꽂듯 눈사람까지 만들어놨다는 게 너무 괘씸했다나는 눈삽을 들고 무당네가 만든 눈사람 앞에 섰다. 가까이서 보니 제법 공을 들인 테가 나는 눈사람이었다. 빨간 목도리에 돌멩이로 단추, 나뭇가지 팔에는 벙어리 장갑도 껴 있었다. 나는 준비동작으로 눈삽을 몇 번 허공에 붕붕 휘둘렀다. 이것은 파괴가 아니라, 몰상식한 이웃에 대한 정의의 철퇴였다. 눈삽을 높이 들어 눈사람의 목에 찔러 넣었다. 이미 눈이 어느 정도 녹아 머리와 몸이 고정된 상태였던 눈사람은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나는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눈사람을 조졌다. 마침내 눈사람의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 옆집에서 벌컥 창문이 열렸다. 무당네였다.

  “, 너 뭔데 남의 눈사람을 부숴! 미쳤냐?”

  팔뚝이 내 허벅지만한 아저씨가 몸을 반쯤 창문 밖에 내민 채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미리 준비해놨던 말을 꺼냈다.

  “여기 승용차 주인 되세요?”

  “그래, 인마!”

  “나 여기 사는 할머니 손자인데 차 빼세요.”

  “그럼 차를 빼달라고 할 일이지, 눈사람을 왜 부숴!”
  나는 큰소리로 되받아쳤다.

  “차를 부술 순 없잖아요!”

  내 스스로의 지혜에 속으로 감탄하며 나는 아저씨를 마주 째려봤다. 그 후 눈삽을 땅에 떨어진 눈사람 머리에 꽂은 뒤 유유히 집으로 들어갔다. 얼마 안 있어 대문 밖에서 승용차에 시동 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엔진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혼자 히죽 웃었다.

  나는 내가 해낸 일에 크게 감동해 있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지혜와 용기로 몰상식하고 이기적인 이웃에게 정의를 구현한 것이다. 아마 그는 차에 시동을 걸면서도 연신 부끄러움으로 낯을 붉혔으리라. 나는 승리했다. 어른한테 이겼다. 이러한 나의 자만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약주를 사러 대문을 나서던 할아버지가 목 떨어진 눈사람을 보고 온가족을 모아세운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평소 인자한 성품 때문에 마을 안에서 신선이라고 불렸던 분이었다. 그러나 그날 내가 본 할아버지는 성난 도깨비였다.

  “, 눈사람 이거 누가 빠개놨냐!”

  나는 번쩍 손을 들었다. 그 후, 무당네가 보여준 몰상식한 행동과 이를 바로잡기 위한 나의 분투를 설명했다. 나는 할아버지도 앞뒤 사정을 들으면 수염을 파르르 떨며 우리 손주가 큰 일을 해냈구나! 어른들인 우리가 오히려 열 살 손주에게 배워야겠군!”하며 대견해할 줄 알았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반응은 내 예상과 달랐다.

  “그거 나랑 할머니랑 무당네랑 밤새 다 같이 만든 건데 그걸 부숴!”

  할아버지가 화를 내며 땅을 찼다. 할머니는 또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며 허탈하게 웃었다. 나는 지금의 상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문 앞에 차 주인이 무당네라고......”

  할아버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당네도 친척들 오는데 차 세울 자리 없어서 잠깐 세워두라고 허락해준 거다! 좀 기다리면 알아서 빼주는데!”

  나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난생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화내는 모습을 봐서 놀란 것도 있었지만, 내가 틀렸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나는 온가족이 내 주변에 모여 나를 달랠 때까지 펑펑 울었다.

  결국 나는 할아버지에게 이끌려 무당네에게 사과했다. 무당네 아저씨는 차를 부수지 않아서 얼마나 고마운지......”라며 끈질기게 나를 놀렸다. 분했지만 딱히 응수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할아버지에게 혼나고 나니 어른을 상대로 이길 자신이 없었다. 어른들은 언제나 아이들 모르게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 비밀 하나로도 아이는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아이로 남는다.

  우리 가족은 밥 먹고 무당네와 함께 대문 앞에서 새로 눈사람을 만들었다. 동네를 둘러보니 집집마다 눈사람이 세워져 있었다. 할아버지 말로는 언제부터인가 겨울이면 이웃들과 함께 눈사람을 만드는 전통이 생겼다고 한다. 이 전통 덕분에 동네 안에서 다툼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혹여 이웃에게 서운한 일이 생겨도 눈사람만 보면 눈 녹듯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무당네와 함께 만든 눈사람을 보며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후부터 나는 겨울만 되면 온 동네에 길목마다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새벽에 눈사람을 만들고 아침에 확인하면 보통 대다수가 목이 잘려서 기괴한 몰골로 변해있다. 그때마다 나는 창문 밖에서 어린 소년이 눈사람 부수는 꼴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무당네 아저씨를 떠올린다. 그리고는 눈사람이 액땜해준 셈이라고 여기며 다시 부서진 곳을 보수한다. 언젠가 우리 동네에도 아파트 주민들이 모여 함께 눈사람을 만드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정을 파수꾼처럼 눈사람이 지켜주는, 그런 따뜻한 겨울이 오기를 기대한다.

 

 

 

 

 

 

 

 

 이름 : 윤선우

연락처 : 010 7249 8503

이메일 : sowooyun16@naver.com

 

 

  • profile
    korean 2017.01.01 23:11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눈사람을 못만들어본지 아득하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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