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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방학이 되고서 오랜만에 본가에 내려갔다. 여전히 집에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텅 빈 집에서 바뀐 가구들을 살펴보다 오래된 앨범을 발견했다. 앨범의 표지를 넘기자 어린 시절의 나와 너의 사진이 보였다. 발가벗은 채로 침대 위에서 울고 있던 우리가.

 네가 태어나고 나서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아 내가 태어났다. 생일로만 따지자면 내가 더 빨랐으므로 나는 너를 언니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유치원에 함께 들어갔고, 동시에 종일반에 소속되었다. IMF가 터지고 나서의 일이었다. 너는 엄마가 의류수거함에서 주워온 옷을 받아 입었고, 일 년이 지나면 네가 입던 옷을 내가 물려받았다. 여름에 태어난 우리는 여름이 생일인 친구들과 자주 놀았다. 그래야만 친구의 생일파티에서라도 같이 케이크를 먹고 초를 불 수 있었으니까. 그건 나뿐만 아니라 너도 마찬가지라서 견딜 수 있었다. 견딜 수 없었던 건 그게 아니었다.

 유치원에서 학부모 참관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그럴 때마다 유치원에서는 연극제를 올렸다. 나는 극 중에서 염소 역할을 맡았는데, 그날만큼은 엄마가 머리카락을 예쁘게 땋아주길 바랐다. 딸의 연극을 보지 않아도 좋으니 머리카락만은 남들처럼 멋지게 묶어달라며, 연극제가 있기 전날 밤부터 늦게 돌아와 피곤한 엄마에게 신신당부하며 방에 들어가 이불을 덮었다.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내일 주인공보다 주목받을 양 갈래의 예쁜 염소를 상상하며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자 엄마는 미안하다며 나와 너를 유치원 버스로 바쁘게 밀어 넣었다. 그날 나는 머리를 풀어 헤친 망할 염소가 되어 메에-하고 울었다.

 집으로 돌아오며 엄마 앞에서는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엄마가 말하는 나는 뭐든 잘 참는 딸이었으니까. 남의 헌 옷을 입을 때도, 하나밖에 없는 나나 인형이 터졌을 때도, 돈이 없어 생일파티 한 번 못했을 때도 잘 참아왔으니까. 오후 다섯 시였다. 현관문 앞에서 열쇠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복도 바깥으로 두부 트럭의 확성기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너는 나를 끌고 놀이터로 데리고 가 그네를 태웠다. 오후의 햇볕이 느지막하게 지고 있었다. 괜히 눈물이 날 것 같아 눈에 힘을 줬다. 그러자 맞은편에서 놀던 남자아이가 뭘 쳐다보냐며 주먹을 쥐며 내게 다가왔다. 초등학교 일학년 정도로 보이는 체구의 남자애였다. 소리를 지른다고 해서 회사에 있는 엄마가 들을 리 없었다. 나는 그네에 앉은 상태로 얼어붙었다. 처음 겪는 폭력에 대한 공포였다. 그 순간, 네가 그네에서 뛰어내리더니 남자애의 머리카락을 잡아챘다. 작은 입술로 남자애에게 죽고 싶냐 물었다. 그 이후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남자애가 너를 주먹으로 때렸을 때, 나는 아파트 안으로 도망갔던 것 같다. 현관문 앞에 앉아 너를 기다리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두부 트럭의 확성기 소리가 어쩐지 거슬릴 정도로 크게 들려왔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아온 너는 머리카락이 심하게 헝클어져 있었다. 이기고 왔다며 호탕하게 웃기까지 했다. 그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엄마에게 머리를 땋아달라고 하지 않았다. 예쁘지 않아도 멋있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너는 아직까지도 여름의 그네를 잊지 않은 것 같다. 얼마 전에도 같이 드라이브를 하다가 불법으로 끼어드는 남성 운전자에게 너는 창문을 내리고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운전을 왜 그딴 식으로 해! 죽고 싶어요?

 생일은 느리지만 네가 나보다 언니이긴 하나보다. 나는 그런 너를 보며 참지 않아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는 걸 배운다. 이제는 나 또한 가만히 내 머리만을 쥐어뜯으며 자책하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아직도 맞서 싸워야 할 일들이 많으므로.


  성명: 정소영

  이메일주소: tkdzma0395@hanmail.net


  • profile
    korean 2020.06.30 20:01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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