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텃밭
"아니야 가서들 먹고 와. 난 집에서 할 일이 있어."
오늘도 실랑이다.
식구들 외식 한 번 할라치면 아버지는 늘 이렇게 손사레를 치신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게 라면이라며 혼자 라면을 끓여드시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그러나 식구들은 물러서지 않는다.
아버지의 속내를 다 아는 우리는 온갖 이유를 대며 아버지를 끝내 가족 외식에 동참시킨다.
아버지 나이 올해 여든.
평생 건설업체와 탄광업체 측량기사로 가족을 위해 땀흘려 일해왔으니 이제는 일 안 하고 자식들에게 의지해도 될 나이.
그런데 아버지 마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마치 '날개 잃은 독수리' , '꼬리 잘린 악어'처럼 매사 자신이 없으시다.
자식들에게 생활비 일부를 받아쓰는 것도 미안하고 몹쓸 짓인데
외식마저 따라나서서 돈을 더 축낼 수 없다는 게 아버지의 생각이다.
"자식들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켜 제밥벌이하며 살게 해줬으니이젠 떳떳하게 받으셔도 된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아버지의 생각은 철옹성 처럼 단단하다.
그런 아버지가 봄과 여름이면 푹 빠져서 하는 일이 있다.
아파트에 딸린 1평 남짓한 텃밭에 상추, 깻잎, 치커리를 기른다.
아침 저녁으로 텃밭에 나가서 물을 골고루 뿌려주고, 하나하나 정성들여 매만져준다.
아버지 정성에 햇빛 잘 들지 않는 도심속 아파트 텃밭에는 상추,깻잎,치커리가 무럭무럭 자라 정글을 이룬다.
아버지의 정성은 텃밭에서만 발휘되는 게 아니다.
한아름 뜯어온 상추와 치커리를 신문지 위에 펼쳐놓고 돋보기를 쓰신다.
채소 잎 뒷면에 벌레들이 알구슬을 대롱대롱 붙여놓지 않았는지 일일이 살펴보시고,
베란다 쪽 수도꼭지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한잎한잎 깨끗하게 씻는다.
그렇게 싱싱한 상추를 식탁에 올려놓는 것까지 아버지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홀로 하신다.
그리고 자식들에게 전화해 상추 먹으러 오라고 하신다.
그때 만큼은 아버지 목소리에 윤기가 가득하다.
자식들 먹이는 가장의 임무를 이렇게라도 할 수 있는 것이 행복하다는 듯이.
그래서 텃밭 일 만큼은 아무도 들어설 수 없는 아버지 영역이다.
평생 버겁고 힘겨웠을 가장의 의무.
그러나 그게 곧 삶의 이유요 존재의 근원이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작으나마 텃밭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지...
올봄과 여름에도 우리는 밭에서 갓 따내 야들야들하고, 향이 진한 상추를 입안 가득 밀어넣었다.
드레싱을 뿌려 샐러드도 해 먹고, 고기 얹어 쌈도 싸먹고, 액젓과 고춧가루 뿌려 겉저리도 해먹었다.
오늘도 아버지에게 말을 건네본다.
"아버지! 저희 매년 상추 맛있게 먹고 있으니 가끔 외식으로 보답하는 거 허락해주세요. 알았죠."
mybin70@hanmail.net
010-3539-6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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