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오늘:
29
어제:
45
전체:
305,939

접속자현황

  • 1위. 후리지어
    65722점
  • 2위. 뻘건눈의토끼
    23333점
  • 3위. 靑雲
    18945점
  • 4위. 백암현상엽
    17074점
  • 5위. 농촌시인
    12042점
  • 6위. 결바람78
    11485점
  • 7위. 마사루
    11385점
  • 8위. 엑셀
    10614점
  • 9위. 키다리
    9494점
  • 10위. 오드리
    8414점
  • 11위. 송옥
    7661점
  • 12위. 은유시인
    7601점
  • 13위. 산들
    7490점
  • 14위. 예각
    3459점
  • 15위. 김류하
    3149점
  • 16위. 돌고래
    2741점
  • 17위. 이쁜이
    2237점
  • 18위. 풋사과
    1908점
  • 19위. 유성
    1740점
  • 20위. 상록수
    1289점
조회 수 222 추천 수 0 댓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필>

 

묵언수행


 

  사건은 광주 버스터미널에서 벌어졌다. 당시에 나는 안산행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며 소세지를 먹고 있던 중이었다. 먼 길을 다녀오느라 허기진 상태였고, 참으로 오랜만에 먹는 고기였다. 입에 넣으려는 순간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 건드렸다. 돌아보니 어떤 아주머니였다.

  “학생, 여기서 청주 가는 버스 어디서 타나?”
  나는 초행길이고 광주 버스터미널도 처음 와보는 처지라서 아무 것도 모른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래도 아주머니는 물러서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더 신경질적으로 되물었다.

  “청주 가는 버스 어디서 타냐고!”
  나는 전보다 더 자세하게 초행길에 오른 내 상황을 설명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최대한 순진한 표정을 지어 보이려고 애썼다. 아주머니의 눈은 점차 가늘어졌다. 마치 쉬운 문제에 쩔쩔 매는 어린아이를 보는 선생님처럼,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이었다. 한참동안 손목시계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던 아주머니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어디론가 달려갔다. 아마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해줄 사람을 찾으러 간 듯했다. 내 반응이 그렇게 이상했을까. 다시 생각해봐도 아니었다. 초행길인 내 상황을 명확하게 전달하려 노력했고,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성의껏 표현했다. 뒤늦게 깨달은 문제가 있다면, 내가 말을 하지 않고 마음 속으로만 대답을 했다는 것이었다. 잠깐 말하는 법을 잊고 있었다. 아마 아주머니의 눈에 나는 난처한 상황에 빠진 청각장애인으로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식어버린 소세지를 입에 넣다가 나는 혼자 허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말하는 법을 까먹은 건 순전히 해남 땅끝마을에 있는 미황사 때문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78일간의 묵언수행이 원인이었다. 나는 그곳에 있는 동안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묵언수행 중에는 입 밖으로 소리를 내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의사전달이 필요할 때 한정으로 필담까지는 허용됐다. 그러나 꼭 필요한 순간에 한정해서만 가능했다. 이를 어기면 죽비로 어깨를 맞거나, 심하면 강제퇴소를 당하는 게 원칙이었다.

  나는 왜 이런 피곤한 수행을 자처했던 것일까. 당시에 나는 언어라는 매체에 조금 지쳐있었다. 말하는 게 귀찮고 짜증스러웠다. 언어로도 표현되지 못할 찌꺼기 같은 감정들을 어떻게 갈무리하면 좋을까. 그런 감정들은 타인에게 전달될 수도 없으니 인간관계라는 거 어차피 결국 허울이 아닌가. 문득 언어를 기반으로 한 삶에 허무감이 밀려왔다. 그러자 타인을 만나는 것도 지겨워졌다. 서로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소중한 관계라도 되는 것처럼 연기하고 싶진 않았다. 나에게는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인터넷을 통해 묵언수행이라는 정보를 접하게 됐다. 일정은 당장 이틀 뒤였다. 나는 회오리처럼 빠르게 돈을 입금한 뒤 신청서를 작성했다. 수행이라면 일부러라도 말을 시키는 곳이 대부분인데, 오히려 입을 쉬게 해준다니 딱 나를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나 나의 기대는 미황사에 도착하자마자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무참하게 빗나갔다.

  묵언수행 첫날, 나는 미황사에 도착하자마자 해우소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 전날 새벽부터 하루 종일 버스에 앉아있었던 까닭에 흔들리지 않는 땅을 밟는 게 그토록 어색했다. 마침 앞에서 볼일을 보고 있던 스님이 등을 두들겨주었다. 그는 큰 덩치에 인자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는데 허리춤에는 죽비가 걸려있었다. 스님은 세심한 손길로 내 등을 쓰다듬은 뒤 낮고 건조한 음성으로 말했다.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잠깐 바람 쐬면서 경치 구경 좀 하세요.”

  나는 감사하다고 합장한 뒤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피곤에 지친 눈을 끔뻑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미황사의 경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달마산은 어제 솟은 것처럼 생생한 기운을 뿜으며 미황사의 등을 감쌌고, 대웅보전 처마로 빗살무늬의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햇볕이 머문 자리에는 고양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염불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졸고 있었다. 미황사의 입구에 해당하는 일주문(一柱門) 저편에는 끝간 데 없이 푸르게 펼쳐진 바다 위로 안개의 장막이 빛줄기에 걸려 너울거렸다. 나는 흥분에 휩싸여서 연신 와, 세상에, 이럴 수가, 맙소사, 대단해, 같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러자 뒤를 따르던 스님이 죽비로 내 어깨를 내리쳤다.

  “지금부터는 절대 말을 하시면 안됩니다.”

  해우소에서 변기를 붙잡고 구토를 하며 들었던 음성 그대로 낮고 건조한 목소리였다. 나는 지금부터 바로 시작인가요?”라고 대답했다가 한대 더 죽비로 맞은 뒤 아예 입을 다물게 되었다.

  묵언수행 참여자는 나를 포함해서 스무 명 정도였다. 참여계층도 외국인, 노인, 고등학생, 중년부부 등 다양했다. 묵언수행은 총 78일간으로 기획되어 있었는데, 첫날과 마지막을 제외하면 모든 일정이 거의 동일했다. 세벽 네 시에 대종소리와 함께 일어나 대웅전에서 예불을 외는 것으로 시작해, 밥 먹고 쉬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모조리 명상에 쓴다. 명상이란, 포단에 가부좌(혹은 반가부좌)를 틀고, 자신의 마음을 고요히 들여다보는 활동을 말한다. 보통 아침과 점심, 저녁으로 세 시간씩 시킨다. 가끔 주지스님의 심경변화에 따라 명상시간이 다도, 혹은 심신교육이나 요가로 변경되기도 했다.

  그럭저럭 이틀 정도는 여유롭게 버텼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도 하늘이 바닥까지 내려온 것처럼 푸른빛이 감도는 도량을 지나갈 때면 피곤이 저절로 녹아내렸다. 명상을 통해 내 마음을 고요히 들여다보는 것도 신선한 자극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정이 사흘 이상 반복되니 슬슬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아무라도 붙잡아 말을 걸고 싶었다. 그러나 대화할 사람이 없었다. 첫날에 외국인이 어눌한 한국말로 미황사 멋져요라고 말했다가 죽비를 맞은 뒤로는 누구도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함께 밥을 먹고, 명상하고, 같은 곳에서 잠을 자는 사이였지만, 대화가 없으니 교류도 생기지 않았다.

  사흘쯤 지나자 마음속으로 말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허울 좋은 관계라도 대화가 없으면 성립조차 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묵언수행에 괜히 왔다고 마음으로 혼잣말을 했다. 그러자 우울감이 더욱 극심하게 내 속에 뿌리를 내렸다. 스무 명 가량의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철저하게 고립된 기분이었다. 더 큰 문제는 설령 말이 가능하더라도 그들에게 진정으로 건네고 싶은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딱히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 이 무력함이나, 외로움, 표현의 한계에서 오는 허무함을 달리 전달할 방법도 없었다.

  수행원에 대한 관심을 잃은 채 하릴 없이 도량을 걷고 있을 무렵이었다. 맞은편에서 이국인이 헐레벌떡 달려와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나는 하마터면 말소리를 낼 뻔한 걸 겨우 참고, 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 표정을 지었다. 외국인은 손가락으로 일주문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손가락이 향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참가자들이 다 같이 길게 일렬횡대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외국인은 참가자들이 있는 곳으로 내 손을 이끌었다. 스님들에게 단체기합이라도 받는가 싶어 나는 조금 긴장했다. 외국인과 함께 참가자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고 봤다. 자욱한 구름 사이로 빛줄기들이 빗자루처럼 바다를 쓸고 지나가는 풍경을. 그것은 한 폭의 정물화 세트장처럼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다. 옆을 보자 참가자들 중 몇이 바다너머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서로 한마디의 말도 섞지 않았던 참가자들은 단 하나의 풍경을 보고 이끌리듯 일주문 앞에 모인 것이었다. 나는 속에서 무언가가 복받쳐 눈으로 비어져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내며 바다 너머를 응시했다. 그 순간만큼은 땅의 끝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태양이 완전히 구름 속에 가려지자 예불시간을 알리는 대종이 울렸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젖은 눈으로 합장했다. 언어로 다 표현하지 못할 감동을 공유했다는 성취감이 수행원들의 얼굴에 넘쳐흐르고 있었다.

  서로 말없이 만났을 때와 같이 묵언수행 마지막 날, 우리는 말없이 헤어졌다. 합장하고 명함을 주고받은 게 전부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관주 터미널에서 말하는 법을 잊고 있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 정도로 나는, 언어의 수단이 가지는 강박에서 조금 벗어나있던 상태였다. 우리는 말하기 이전부터 많은 것을 나누었고, 말이란 그 순간의 작은 재현이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그 작은 재현이란 얼마나 값진 포착인가. 새삼스럽게 언어를 다루는 길을 선택한 것이 자랑스러웠다. 나는 매표소 직원에게 다가가 위풍당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산행이요.”



이름 : 윤선우

연락처 : 010 7249 8503

이메일 : sowooyun16@naver.com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콘테스트-수필 공모게시판 이용안내 6 file korean 2014.07.16 2769
773 (수필) 토해낸 것과 삼켜낸 것 외 1편 1 해파리 2018.04.10 25
772 (월간문학 한국인 제9차 창작콘테스트 공모 / 수필] 동치미 & 어느 가을날 밤의 마실 1 동연 2016.02.08 187
771 (제 13차 창작 콘테스트) 수필 공모- 강당안의 낡은 피아노 , 오솔길 1 모두미 2016.09.08 82
770 (제 32차 창작콘테스트) 일상의 특별함 1 풍란 2019.12.08 20
769 (창작수필 공모) 청춘을 위한 여행 안내서 1 구구리 2016.03.25 92
768 -건강이론- 2 뻘건눈의토끼 2016.02.16 76
767 10회 창착콘테스트 수필공모 [쳇바퀴 도는 그날, 하루] 외 1편 1 file ate.Shine 2016.04.05 140
766 11월 2일, 어느 27살의 일기 1 용용 2014.11.02 168
765 12차 창작 콘테스트수필 공모 1 이좋은날 2016.08.10 47
764 12회 수필 2편 행복희망이 2016.08.10 32
763 14회 공모전 수필부문 응모 <눈사람> 1 론샙 2016.12.10 26
» 14회 공모전 수필부문 응모 <묵언수행> 1 론샙 2016.12.10 222
761 14회 공모전 수필부문 응모합니다 <거북등의 달팽이> 1 도도탄 2016.12.09 35
760 14회 공모전 수필부문 응모합니다 <야래할머니> 1 도도탄 2016.12.09 32
759 15차 공모전 응모 - 우리엄마 1 전화기를꺼놔 2017.01.04 90
758 15차 공모전 응모- 아버지 인생 2막을 열다 외 1편 1 구분칠초간의고민 2016.12.12 86
757 15차 창작콘테스트 수필 공모 <제비꽃은 제비꽃답게, 나라면 나답게> 1 긍정 2017.02.10 41
756 15차 창작콘테스트 수필공모 1 김아일랜드 2017.02.09 20
755 15회 콘테스트수필 - 아빠 2 새벽사슴 2017.01.23 37
754 15회콘테스트-행복한 기업 3 새벽사슴 2017.01.20 41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0 Next
/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