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다 친구야
초등학교 4학년 늦가을,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요. 지금도 그렇지만 막상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한다는 것이 마냥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그동안 정든 친구와 학교가
아닌 낯선 사람들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 그 날도 어머니의 손에 이끌리다시피 학교로
향했고, 교감 선생님과의 면담 후 자연스레 학급과 담임 선생님이 정해졌습니다.
"자, 오늘부터 여러분과 함께 할 친구니까 사이좋게 지내도록. 박수!"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움츠러 들면 오히려 놀림을 받을까 저는 어깨를 펴고 큰 목소리로 인사를 했죠. 아이들은
왠지 저를 얘기하는 듯한 제스처로 수근수근거렸습니다. 왠지 저에 대한 놀림 같은 생각에
벌써부터 학교 다니기가 싫어진 소년, 그 때였습니다.
"안녕. 나는 우성이다. 니는 이름이 뭐고?"
검게 그을린 피부색이었기에 유난히 하얀 치아를 드러낸 우성이란 아이. 겉보기엔 키도
또래보다 작아 보이고 몸도 약해 보였지만 왠지 모를 당당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자 자꾸 제 뒤를 따라 붙는 아이,
"니 왜 자꾸 따라 오노?"
"아 그게 아니라..아까부터 사탕 주고 싶었는데 못 줘서..자 받아라."
"난 이거 필요없는데 뭐 일단..고맙다."
"그래. 그럼 우리 이제 친구하는기가?"
다들 새로 온 전학생을 그저 먼 발치서 눈구경만 하던 아이들과는 달리 우성이는 먼저 제게
다가왔죠. 첫 날 오전수업만 할 줄 알았는데 미처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 했을 때도 제 책상으로
다가 와 자기 밥과 반찬을 꺼내던 우성이.
"우리 학교는 금요일에도 오후 3시에 마친다. 니가 젓가락 할래, 아님 숟가락? 니 편한 걸로
해라. 내랑 같이 먹자."
"아 뭐..그냥 아무거나."
어색함과 마지막 남은 자존심에 톡톡 쏘는 듯한 제 답변에도 우성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웃으며
끄덕였죠.
그렇게 친구가 되면서 집 방향은 반대였지만 서로가 번갈아 가며, 하루는 우리 집에서 또 하루는
우성이 집으로 데리러 가곤 했습니다. 학교에서 둘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셨는지 선생님께서도
콤비라며 짝꿍으로 바꿔 주시곤 했죠. 방과 후면 학교 앞에 파는 달고나나 뽑기를 하기도 하고
서로의 집에서 컴퓨터 게임도 하고 밥도 먹곤 했는데요.
한 학기를 끝낼 무렵 갑자기 우성이가 장기결석을 하더군요. 매일 텅 빈 옆자리를 보며 우성이 네
집을 찾아 갔습니다.
"저기 우성이 친군데요..우성이 있어요?"
"우성이 친구라고? 우성이 지금 병원에 있는데..다 나으면 전해줄꾸마.."
친구를 위해 우성이가 좋아하는 로봇 카드를 한 뭉치 가져다 주면 좋아하리라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많이 아파 보였습니다.
다행히 일주일 후 우성이는 다시 등교를 했고, 여전히 사이좋게 지내던 우리,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때론 참 가벼운 것인지..5학년이 되면서 우리는 반이 갈라졌고, 처음에는 쉬는 시간마다 서로의
교실에 가서 놀기도 했는데 새로운 반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서 발걸음도 점차 줄어 들었는데요.
그래도 하교 시간이면 제가 늦게 마쳐도 기다려 주던 우성이, 하지만 제 마음에서 친구의 자리는
조금씩 멀어졌나 봅니다.
"야, 같이 가자."
"내 오늘 청소당번인데? 니 먼저 가라."
"괜찮다. 기다려 줄게."
"그냥 가라니깐? 우리 반 애들하고 같이 갈 데가 있다."
"맞나..그래 알겠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기나긴 복도를 무거운 발걸음으로 사라져 가는 우성이를 보며 괜히 눈치없는
행동에 화가 났던 저.
"왜 맨날 우리반에 오노. 자기 반 애들하고 놀면 되는데."
그렇게 우리는 졸업을 하고 다행히 같은 중학교로 배정을 받았는데요. 역시나 반은 달랐습니다.
그리고 2학년 1학기의 어느 날. 학급 내에서 들리는 대화.
"야 니 그거 아나? 1반에 어떤 애 있는데 걔 선천성 무슨 병으로 얼마 못 산다더라.."
처음엔 '그게 누구길래'라는 생각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우성이 얘기였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사실에 1반으로 달려 갔지만 이미 장기결석한 상태였고, 병문안을 가고자 여쭈
었지만 이미 입원 중이고 면역력이 약해져서 만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아무도 관심주지 않던 제게 가장 먼저 다가왔던 아이, 왜 하필 이 친구에게 이런 시련을 주셨을까..
한편으로는 지난 날 괜히 상처를 준 것 같고, 차갑게 대하던 제 행동에 몇 번이나 후회를 했지만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우성이의 치료로 가정형편도 힘들어져서 전교에서 십시일반으로 모금행사도 있었는데요.
그렇게 한 달이 지나 안타깝게도 우성이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말았습니다. 아직 사과도
해야 하고, 다시 친해지고 싶었는데..
혼자서 집으로 향하면 괜히 지난 날 우성이와 함께 가던 우리만의 아지트도 살펴 보고 우리만의
숲길도 걸었습니다. 학업과 거리가 멀었던 친구지만 팝송 하나만큼은 참 잘 불렀었는데..그게 바로
엘튼 존의 'goodbye yellow brick road'였는데요. 서로 영어 뜻도 모르면서 후렴구를 흉내내기도 하고
음악 평론도 하곤 했죠.
"야 이 노래 참 잘 만들지 않았냐?"
"응, 이 사람 진짜 천재 같아."
거장의 음악은 여전히 대중들의 입에서 오르 내리는데 이젠 더 이상 친구의 멜로디를 못 들은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노래를 들을 때면 괜시리 마음이 복잡해질 듯해 듣는 도중에 다른 생각을
하곤 했는데 오늘만큼은 싱그러운 풀잎처럼 내 친구 우성이의 미소가 아른거려 글을 써 봅니다.
내 친구 우성아, 잘 지내제? 나도 잘 지낸다. 보고 싶다 인마.
열심히 습작을 거듭하다보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