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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挽章)은 없었다. 장례식장의 직원은 그걸 구식이라고 했다. 요즘은 주변 민원을 생각해 담백하게 고인을 모시는 게 유행이란다. 그러고 보니 만장만이 아니었다. 녀석의 발인에는 노제(路祭)도 곡()도 찾을 수가 없었다. 직원의 말마따나 세태가 녹아든 탓일까. 아니면 도회지의 각박한 풍속 때문인 걸까. 조부(祖父)의 장례 이래, 십수 년 만에 처음 대면하는 죽음은 낯설고 어색하기만 했다. 놈이 걷는 마지막 길이 유독 외로워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운구차가 동네를 다 돌고 장지로 이르는 내내 어디서 소쩍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평소 진지하지만, 한 번씩 엉뚱한 장난을 꾸미던 녀석이다. 이번에는 그 정도가 심하다고만 생각했다. 평소답지 않게 엉뚱함을 넘어 불쾌함을 가지고 장난을 친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단단히 일러둘 생각이었다. 인명은 농담거리가 아니라고, 한 번 더 이렇게 굴면 재미없다고. 영정 속에 놈을 보고도 한참은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영정이라기엔 너무 환한 그 모습까지 다 장난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종종 농담보다 더 허무하다고 했던가. 녀석은 정말 이 세상에 없다.

 

소설이라면 그 엉터리 작가를 나무랐을 것이다. 모든 게 작위적인 연출이며, 자극적인 소재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소재는 허술하고, 개연성은 엉망이다. 누구보다 씩씩하고 당당했던 청년이, 그것도 이제 막 직장을 얻어 꿈을 펼치려던 그 청년이 왜 스스로 세상을 등졌는가. 작가는 우리가 수긍할만한 답을 내놔야 할 것이다. 그 빈곤한 상상력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고통을 내모는지 아냐고도 묻고 싶다. 평생의 보물을 잃은 부모의 눈에는 3일 내 눈물이 마르지 않고 있다.

 

모두 미안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처음 녀석이 남긴 유서 내용을 듣던 순간 목이 멨다. 슬퍼서만은 아니다. 놈이 떠난 세상에서 녀석 덕택에 난 그 아침의 첫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그 사실이 나를 괴롭게 했다. 여기서 태연히 그 국물을 기도로 넘긴다면 난 얼마나 더 뻔뻔한 인간인가. 김을 피워내는 육개장을 앞에 두고 한참을 생각했다. 친구는 무엇이 미안하고 또 무엇이 감사했던 것일까. 내용을 거듭 곱씹자 유서는 한낱 육개장에 지나지 않았다. 속은 온기를 잃고, 표면은 불순물이 부유하는 육개장. 죽음 앞에 무기력한 인간을 생각하며 나는 다 식은 국물을 삼켰다. 더는 사레가 들지 않았다.

 

영원(永遠) 같던 수일이 지나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학교와 도서관, 집을 잇는 반복적인 동선, 이따금 갖는 일탈이라곤 여자친구와 가지는 데이트가 전부였다. 내 오감과 정신이 더는 녀석의 부재에 반응하지 않았다. 놈이 사라졌다는 의식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외려 죽음을 목격한 경험은 현세와 내세를 더 분명하게 갈라놓았다. 죽음은 저들이 속한 세계고 나는 그로부터 최소 몇 길의 강 건너편에 서 있다, 이 무렵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는지 모른다. 죽음은 짙은 그림자가 되어 생()에 대한 조명만 선명히 할 뿐이었다.

 

죽음이 강을 건너 다시금 내 삶으로 넘어온 것은 전화를 한 통 받은 뒤였다. 수화기 너머 음성은 나를 강하게 몰아세웠다. 어떻게 그렇게 무심하냐, 네가 그러고도 친구냐. 불알친구 K의 목소리였다. K는 오늘이 녀석이 떠난 지 49일째라고 했다. 49····.그랬다. 그날은 놈의 49재 날이었다. K는 발인 때보다 더 앙상해진 49재를 보고 잔뜩 흥분한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본래 49재는 가족끼리 조촐하게 치르는 종교의식이다. K가 흥분한 것과 달리 애초부터 엄숙하고 조용하게 치르는 게 맞다. 그래도 죄책감은 가시지 않았다.

 

놈이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몇 해가 지났다. 지금도 이따금 뜻 맞는 친구끼리 모여 놈을 만나러 간다. 우리는 이걸 육개장 값한다고 부른다. 그날 염치없이 넘긴 육개장의 잔금을 치르는 것이다. 의리파 K는 단골 멤버다. 얕은 구릉을 오르는 길인데 벌써 숨이 찬다. 이제 우리 체력도 예전 같지 않다. 친구 몇 놈은 배불뚝이가 됐고, 또 몇 놈은 이마까지 뒤로 밀려 났다. 아마 녀석이 봤다면 아저씨라고 놀릴 게 뻔하다. 그게 가장 녀석다운 반응이니까. 놈을 만나고 온 날은 술이 빠지지 않는다. 49재 사건은 그런 날 가장 인기 있는 안줏거리다. K의 흥분한 목소리를 흉내 내면 모두 자지러진다. K도 이제 면역이 생긴 탓인지 같이 웃는다. 그렇게 한참 웃고 나면 죽음이나 생이니 하는 것은 다 말장난일 뿐이다. 먼저 간 그 친구도 무리에 같이 섞인 기분이 든다. 앞으로 잔금이 얼마나 더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갚을 생각이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그게 죽음을 기억하는 우리만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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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뻘건눈의토끼 2020.02.13 16:55
    설이라면 그 엉터리 작가를 나무랐을 것이다. 모든 게 작위적인 연출이며, 자극적인 소재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소재는 허술하고, 개연성은 엉망이다. 누구보다 씩씩하고 당당했던 청년이, 그것도 이제 막 직장을 얻어 꿈을 펼치려던 그 청년이 왜 스스로 세상을 등졌는가. 작가는 우리가 수긍할만한 답을 내놔야 할 것이다. 그 빈곤한 상상력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고통을 내모는지 아냐고도 묻고 싶다.
    웃기네 이 아저씨야... 니 마누라나 잘 살펴...
  • profile
    korean 2020.02.29 21:00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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