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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0 15:11

시시한 인간 외 1편

조회 수 17 추천 수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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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인간


'나는 시시한 인간이야.'

나도 모르게 말이 흘러 나왔다. 오랜만에 보고 싶다고 연락한 사람에게.

항상 새 옷을 골랐다. 가진 것 중에 제일 좋은 가방, 특별한 날에만 신는 신발. 티 나지 않게 살짝 머리를 손질하고 통장에서 긁어모아 빳빳한 지폐로 텅 빈 지갑을 채웠다. 자주 쓰지 않는 비싼 샴푸와 아끼던 고급 바디 클렌징, 평소보다 더 공들여하는 화장.

이 모습이 허세는 아닐까 고민할 때도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장 나은 모습을 보이고 싶은 건 잘못된 생각이 아니란 말로 불안한 마음을 잠재운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으로 나간다. 그가 원하는 나를 보게 한다.

그러던 내가 이렇게 말한다.

'사실 나는 시시한 인간이야. 당신이 보고 싶어할만한 사람이 아니야.'

무엇이 나를 이렇게 무너지게 만든 걸까?

잠시 생각을 해보자.

왜 이리 무력하고 모든 것이 시시해 보이는가를. 매일 똑같이 흘러가던 일상에 갑작스레 환멸이 느껴지고 다른 모든 이들에게 서운함과 소외감을 느끼는지.

매일매일 흘러가는 날이 의미 없고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이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이해받고 온 몸으로 애정을 갈구하는 만큼 모든 것을 밀어내버리고 혼자 있고 싶다. 집에서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품에 안은 고양이의 온기만 느끼고 싶을 뿐이다.

나는 이것이 특정하게 조각난 마음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라 여겼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때는 저마다 특별한 모양과 색을 띈다. 누군가를 오랜 시간동안 알아가면서 사랑하고, 염려하며, 미워하고, 질투하는 등 그와 했던 감정들에 천천히 알맞은 형태와 색을 골라 입혀준다. 누군가는 반짝이는 별로, 때론 싱그러운 새싹이나 환한 태양으로, 마음속에 세긴 후에 그들을 기억하는 것이다. 조각은 때때로 커지고 작아지며 누군가는 그리움으로 남고 어떤 이는 빛이 바란 채로 사라지기도 한다.

그 중에 하나, 마음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것이다.

인사도 없는 갑작스런 작별에 온 마음이 흔들리다. 뻥 뚫린 가슴에 방향을 잃은 애정이 빨려 나간다. 깨진 조각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특별하듯 저마다 개성 있는 모양이었기에 대체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평소 즐거웠던 일을 해봐도 대충 덮은 욕조 마개마냥 마음이 줄줄 샐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이 아니면 채워지지 않는다. 작은 틈새가 온 세상을 주저앉게 만들었다.

'그럴 리가. 비워지면 내가 채워줄게.'

다행이야. 당신이 그렇게 말해줘서. 날 시시한 인간이 아니게 만들어 줬어.

그저 처음으로 생긴 내 후배가 갑자기 그만 뒀을 뿐이야. 작별인사 조차 나누지 못하고 아무런 준비도 없었기에 강탈당한 마음을 회수하지 못했던 거야.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이 정작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오는 실망감에 예상치 못한 타격을 받은 거야. 그 허전함이 나른한 봄날과 겹쳐 졸린 것뿐이야.

참 다행이지. 당신이 날 시시한 인간이 아니라고 해줘서. 덕분에 마음이 따스한 빛으로 채워지고 있어. 다음에 만나면 얘길 해줄게,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사실 내가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있어도, 그렇지 않더라도 당신은 상관하지 않았지.

꾸벅꾸벅.

몇 번만 더 졸다가 깨면 난 전과 다름없어 건강해질거야.





우주가 블랙홀로 사라지기 전에

 

간 냄새가 지독히도 났다.

그에게선, 작은 몸뚱이이자 어린 영혼에게 어울리지 않은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입 주변에 흩뿌려져 있는 곱게 간 고깃덩이, 목과 팔에 달라붙은 노란색 영양제, 구멍 난 담배 자국 마냥 이불 곳곳에 점점이 박힌 회백색 유동식.

이것이 현재 내 우주의 모습이다.

묵직한 칼로 두부를 자르듯이 삶을 숭덩 베어버린다. 지금까지 해 오던 모든 것들을 소멸시킨다. 생활이라는 이름의 현재는 먼지가 되어 날아가 버렸고 나는 두 팔과 다리를 잘라버렸다. 여기 존재하는 건 나와 병든 그 뿐이다. 그렇게 온 우주를 접고 좁혀 너의 몸에 꾸역꾸역 집어넣는다. 부디 오늘은 어제보다 호전되길 기도하면서. 아슬아슬 깎아 올린 모래 탑엔 위태한 생이 간신히 붙들려 있다.

처음은 언제나 행복하게 시작된다. 작고 귀여운 고양이의 등장에 우리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내 삶에 소중하게 스며든 생명. 그 보드라운 온기에 감격했고 무럭무럭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다 같이 흡족해 했다.

하지만 기쁨은 1년을 가지 못했다.

갑작스런 이사 후 녀석은 시무룩해져 활력을 잃더니 나중엔 하루 종일 꼼짝 않고 누워만 있었다. 나는 그것이 적응의 한 과정일 뿐이라 여겼다.

일은 항상 고되며 매일 지쳐나갔다. 휴식 취할 틈도 없이 매달렸지만 퇴근 후의 짐 정리는 아무래도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저 어린 아이의 응석쯤으로 치부하고 말았다. 어떠한 고통 속에서 외로이 버티는지 알지 못한 채로.

병원에서 정확한 진단명을 들었을 때 그동안 겪어온 죽음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내가 자라면서 피하지 못한, 관통 당한 죽음에 관한 기억이 어린 생명의 작은 몸 위에 악마처럼 군림하고 있었다.

그 후 나의 작은 고양이, 깨의 간병에 모든 걸 쏟아 붓는다.

퇴근 후의 휴식과 실낱같던 열정, 스스로에게 주던 관심과 일상의 수고를 전부 내주자 여유와 쾌락, 삶의 대부분 기쁨을 포기하라 말한다. 그럼에도 나는 기꺼이 따른다.

온 종일 작은 몸 옆에 붙어 밥을 먹이고 약을 삼키게 한다. 시간 맞춰 안약을 넣어주고 먹는 물과 볼 일 본 양을 기록한다. 축 늘어진 두 귀, 핏기 잃은 잇몸과 코를 안타깝게 어루만진다. 고기와 선지를 갈아 유동식을 만들고 빈혈로 비틀거릴 때면 옆에서 부축하여 걸음을 돕는다. 윤기를 잃어 퍼석해진 털을 고르고 부운 눈에 내 얼굴을 비춰본다. 언제 마지막이 될지 알 수 없으므로 모든 순간이 소중할 수밖에 없다.

흐르는 눈물을 둔다. 어설프게 그치거나 애써 참지 않는다. 눈물샘이 말라 버린대도 상관없다. 혹시 모를 이를 위한 눈물 따윈 예비하지 않겠다. 나의 남은 사랑을 깊은 곳에서부터 퍼 올려 쏟아 붓는다. 지금 당장 너에게 필사의 사랑을 준다. 과거에 주었던 애정과 지금의 후회,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함께 할 미래의 행복을 전부. 그렇게 시야를 너에게만 고정시킨 채 나의 우주와 온 세상을 작은 몸에 흘려보낸다. 블랙홀이 우주를 삼켜 버리기 전에.

나는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급작스런 이별에 미처 전하지 못하고 사랑의 찌꺼기가 남는 것을, 갈길 없이 방황하여 괴로움에 시들어 버릴 애정을, 가슴 속 깊이 가시처럼 박혀 오랜 시간 욱신거릴 후회의 마음을.

과연 네게 사랑을 주는 건 지금의 나일까?

내게 사랑을 받는 건 오롯이 너일까?

미래에 내가 받을 슬픔에 대한 공포가 너를 사랑하게 시킨다. 결국 후회에 대한 두려움이 우주를 담아낸다.

나는 비겁하게도 상처받기 싫어 죽음 앞의 너를 사랑하고 있다.







채송화 / 086qwert@hanmail.net /  010-3981-4916

  • profile
    korean 2018.02.28 18:42
    좋은 작품입니다.
    열심히 정진하다보면 틀림없이 좋은 결실을 맺으리라 믿어집니다.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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