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귀여운 어린 여자 꼬마아이
초등학교 5학년때 매일 밤 학교가기 전 날 하던 고민은 내일은 무슨 옷을 입고 가지? 라는 고민이였다.
어떤 옷을 입어야 친구들에게 주목받을 수 있을까? 어떤 가방을 메야 창피당하지않을까?
그때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가난이 어린아이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학교 안 ‘반’이라는 단체무리에 제일 빨리 도태되어가는 기준이였다. 그래서 난 오래되고 짜리몽땅한 5층짜리 아파트인 우리집이 미웠다.
그냥 미웠다고 말하기 뭐할정도로 좀 많이 미웠다. 다른 친구들의 아파트들은 꼭대기층도 높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하늘과도 맞닿을 것 같은 모습이였기에 난 학교에서 더 철저히 가난이랑은 거리가 먼 사람처럼 입고 메고 신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절대로 쟤처럼은 안돼야지’
여기서 내가 생각한 ‘쟤’라는 아이는 그냥 몸집이 남들보다 작은 단발머리에 여자아이였다.
그런데 그때는 왜 그냥이라는 말을 몰랐을까. 우리 모두가 그냥 이라는 한 단어를 습득하지 못했던 걸까.
그 아이는 그냥 작고 어린 여자 꼬마아이 였을뿐인데 그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못했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소리가 새어나가지않도록 귓불옆에 손바닥을 세우고 아주 조용하게 귓속말로 말했다.
“쟤한테 냄새나는거 같아” 그 뒤로 그 아이는 그냥 냄새나는 아이가 되었고 우린 그냥이라는 말을 그제서야 알게되었다.
그리고 또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이번에는 더 은밀하게 두손으로 귀를 감싼뒤 절대 소리가 새어나가지않도록 작게 말하였다.
“그거 알아? 쟤 머리에 이 있는거 그리고 쟤네 아빠 맨날 술먹고 쟤 때린다더라 불쌍하지?” 무엇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던걸까
그 아이의 머리에 이가 있는 것? 아버지한테 맞는다는 것? 아니다. 40명이 채 안되는 아이들에게 냄새나고 머리에 이가 있고 손찌검을 하는 아빠를 둔 사람으로밖에 보일 수 없다는 것.
이것이 그 아이를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자 라고 도덕시간에 배우고 제일 가까이있는 불쌍한 사람을 더욱 더 처절하게 불쌍토록 만들었던 것 이다. 언제는 무작위로 작은 종이에 번호를 써서 같은 번호를 뽑는 사람끼리 짝꿍이되는 형식에 자리뽑기를 하였다.
그리고 그 날 그 불쌍한 여자아이 때문에 어떤 남자아이가 서럽게 울었다. 그 반에 있던 아이들은 우는 남자아이 곁으로 몰려들었고 그 여자아이는 연신 눈치만보며 바닥만을 쳐다봤다. 그 여자아이가 바라볼 하늘은 결코없었다.
그리고 그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왜 쟤랑 짝꿍인데!” 남이 받아야할 벌을 자기가 받게되었다는 태도로 소리치고 화를내며 울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남자아이를 동정하고 여자아이를 경멸의 눈으로 쳐다봤다. 여자아이의 고개는 더 내려갈 뿐이었다. 익은 벼는 겸손한 자를 닮지않는다. 바라볼 하늘이 없는 불쌍한 자만이 익은 벼의 모습을 띈다.
그리고 그때 담임선생님이 화가 난 표정을 얼굴에 잔뜩 머금은 채 들어왔고 그 여자아이를 뺀 반 아이들은 긴장하고 겁먹었다. 우리가 한 행동들이 얼마나 많은 모순을 담고있는지 얼마나 비겁한 행동인지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이라는 단어또한 그렇다. 우린 원래부터 다 알고있었다. 하지만 우린 알고있음에도 가난한 이를 마음까지 더 가난하게 만들었다. 같은 메이커의 가방을 메고 같은 게임기를 가진 사람들끼리의 암묵적인 눈치게임이였던 것이다.
우리가 어른들의 눈을 속이고 그 게임을 시작한 순간 그 여자아이는 진짜 가난한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어찌 어른을 속이랴. 담임선생님은 우리가 아까 그 여자아이를 노려봤던 경멸의 시선으로 우리를 대하며 비겁한 우리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낡은 나무바닥이 뚫어져라 쳐다보던 익은 벼의 행색을 한 여자아이의 손목을 잡고 우리 앞에 세웠다. 선생님은 그 여자아이를 익은 벼의 모습이아닌 꼿꼿이 선 대나무의 모습을 닮게 그 여자아이의 어깨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얘가 대체 무슨 잘못을했는데? 그리고 너희들은 어디가 그렇게 잘나서 밥 먹을때마다 얘를 혼자두게 만들고 짝 바꿀때마다 눈치보게 만드는데? 너희 다 부끄러운줄 알아. 그리고 너도 잘못있어 누가 눈치보면서 땅만 보래? 너 잘못한거 하나도없어 고개숙이지마.” 그 아이는 꼿꼿이 선 상태로 우리를 바라보았고 우린 고개 숙여 낡은 나무바닥밖에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울고있던 남자아이는 조심스럽게 그 여자아이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미안하다고 말하였다. 우리 모두 티를 내진않았지만 놀랐다. 미안하는 말을 건냈다는 사실에 놀란게 아니다. 그 여자아이의 까맣고 아토피 때문에 튼 손을 만졌다는 것.
우리는 그 전까지만 해도 그 여자아이와 닿는 것을 전염병처럼 여겼다.그래서 그 여자아이와 실수로라도 살갗이 스친 아이는 짜증을 냈고 우린 킥킥대며 그 아이를 놀려댔다. 눈치게임 다음으로 잔인한 전염병게임 이었다.
우린 그 여자아이를 진짜 가난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도 모자라서 진짜 병든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 이다. 우리는 그 남자아이가 내민 손에 놀란 다음 그 여자아이가 옆에 있는 담임선생님이라는 방어막을 갖고 과연 어떻게 그 남자아이의 사과를 뿌리칠 것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꼿꼿이 선 대나무같은 행색의 아이가 자신의 부끄러움이 만천하에 알려져 고개를 쳐 박아 익은 벼의 행색을 하고있던 아이의 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라고.
그때 난 처음으로 그 여자아이의 웃는 모습을 보았다. 그 여자아이는 웃으면서 또 울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때 내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 하나 ‘난 왜 저 여자아이가 처음부터 웃지않는 사람이라고 여겼을까?’
그렇다. 난 저 여자아이가 웃을줄 안다는 걸 전혀 몰랐다. 우린 불쌍한 사람은 도와줘야한다고 배웠지만 저 여자아이 앞에서는 모른체했고 맘에 들지않은 사람과 짝꿍이 되었다고 해서 짜증을 내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조차도 모른체했다. 근데 저 여자아이가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은 모른체한게 아닌다. 정말 몰랐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후 내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고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가없었다. 얼굴색은 이미 홍당무가 되어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하여 가리기 바빴고 그 부채질 조차 부끄러웠다.
진짜로 창피한건 나의 짜리몽땅한 5층짜리 연립주택 아파트인 우리 집이아니였다.
그 집에 살고있는 짜리몽땅한 인격체의 나였고 진짜로 창피한건 반에서 값비싼 메이커의 신발과 가방을 가지지못한 것이 아닌 그 여자아이를 뺀 고개숙인 양심을 가진 우리들의 자화상이였다.
고개를 돌려 다른 아이들도 살펴보니 다들 얼굴이 빨게진채 자신들이 암묵적으로 감춰왔던 창피함과 맞닥뜨린 모습이었다. 이 일이 있고난 뒤부터 난 우리집을 창피해 하지도않았고 엄마에게 유명한 메이커 물건들을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여자아이에게 먼저 다가가 없는 준비물을 내어주고 함께 웃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우리만 웃고 그 여자아이 혼자 동 떨어진 듯 무표정으로 있던 것이 아니라 같이 웃었다.
그리고 난 속으로만 그 여자아이의 웃는 모습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이런생각을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것이 쑥스러워 그 여자아이에게 전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우리는 “너희 다 부끄러운줄 알아” 라고 말하였던 선생님의 말씀처럼 우리들이 한 행동들에대해서 여과없이 부끄러운줄 알고 난뒤에야 그 여자아이를 비로소 그냥 작고 어린 여자 꼬마아이로 볼 수 있었다.
지난날을 기록하는 지금에서야 ‘어린’ 이라는 말 앞에 ‘귀여운’ 이라는 말을 집어넣고 싶다.